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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 교회 ==== 훗날 기독교의 탄압이 사라지고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규모가 커졌다. 교회는 국가와 권력자들의 기부를 받아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되었으며, 화려하고 거대한 교회 건물은 [[로마 제국]] 시대부터 건축되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예전의 사회주의적인 모습은 점점 뒷전이 된다. 물론 "자선"은 중세 시대 내내 교회의 중요한 임무이기는 했지만, 점점 정치 권력이나 부에 물들어 타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 [[서유럽]]의 교회는 종교, 자선만이 아니라 행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유럽에서는 문명의 붕괴로 [[기사]]나 [[귀족]], 심지어 [[왕]] 중에도 교양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문맹]]인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왕이나 귀족 휘하의 행정 조직은 [[봉건제]] 때문에 극도로 축소되고 갈갈히 찢겨져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서 자기네 살림 꾸리는 것이나 겨우 가능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봉건시대의 귀족들은 서로 영토 다툼을 벌이다가 몰락하거나 교체되는 경우가 너무 자주 있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행정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결국 이 시대에 --그래도 신학자라고 하면 더듬거려도 [[성경]]은 읽어야 하니-- 많은 수의 지식인을 갖추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회를 관리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은 교회 뿐이었다. 그래서 [[호적]]을 비롯한 많은 행정 업무를 교회에서 담당했다. 태어나면 [[세례성사]]를 받고, 죽으면 장례식도 교회에서 해야 하니 호적을 관리하는데 교회만큼 좋은 데가 없었다. 또 [[종교재판]]도 교회에서 맡았다. 이러한 영향은 [[독일]] 등 소수의 유럽 국가에 아직도 남아 있어 교회가 '공관서'로 취급되며, 이러한 국가에서 목사는 '''[[공무원]]'''이다. 다만 교회는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에 '치안 유지'와 그에 따르는 '재판'은 주로 군사 귀족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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