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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분류

본명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출생
사망
직업
학력
튀빙겐 신학원 철학 석사
예나 대학교 철학 박사
경력
뉘른베르크 김나지움 교장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베를린 대학교 정교수
서명
“전체가 진리이다(Das Wahre ist das Ganze)”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다(Was vernünftig ist, das ist wirklich;
und was wirklich ist, das ist vernünftig.)”

-G. W. F. 헤겔

1. 개요2. 사상3. 영향4. 비판5. 저서 6. 그 외7.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독일 관념론 철학의 정점. 칸트, 피히테, 셸링 등의 독일관념론 철학을 계승,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듣는다. 근대철학을 완성시켰으며, 현대철학의 문을 열었다. 철학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체계를 구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감각과 이성, 주관과 객관의 차이를 하나의 체계 안에서 사유하려 했던 철학자. 물론 그 때문에 들뢰즈 등을 위시한 현대의 철학자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젊은 시절 철학자 셸링, 시인 횔덜린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전해진다. 헤겔은 30대가 되고 나서도 가정교사 자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일찍 성공한 셸링은 듣보였던 헤겔을 추천해 대학에 입성하게 된다. 하지만 헤겔이 『정신현상학(Phenomenologie des Geistes)』을 통해 셸링을 비판하자 셸링은 격노했고 헤겔의 주요한 논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헤겔은 "나는 셸링의 이론을 비판했을 뿐이지 셸링을 비판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나 철학자에게 그 말이나 저 말이나...

이후 헤겔은 셸링을 넘어서 최고의 지성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대학에서 강의를 계속하다가 1831년 콜레라로 급사한다. 죽은 뒤엔 베를린 도르테엔 시립묘지의 피히테 옆에 묻힌다.

현대의 대표적인 헤겔주의자로는 위르겐 하버마스(넓은 의미에서), 악셀 호네트, 찰스 테일러, 리차드 로티, 피츠버스학파의 로버트 브랜덤존 맥도웰 등이 있으며, 이외에 셀 수 없을 정도의 철학자들이 헤겔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스스로 헤겔주의자라고 칭한다. 다만, 주류 학계와는 상이한 헤겔 해석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2. 사상[편집]

헤겔의 방대한 철학 체계를 한국어로 분석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극히 드문 관계로 밑그림만 살펴볼 수밖에 없다.

헤겔은 특히 철학자 중에서도, 철학 체계가 방대한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독일 현지를 제외하면물론 독일어 전공자에게 헤겔 원문과 한국어 번역본을 동시에 가져다주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그의 철학적 면모들 중 일면만이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때 영국에서 유행하던 헤겔은 그의 논리학적 일면이었고,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헤겔은 정신현상학의 헤겔이었다.

독재에 대항하던 운동권들이 마르크스를 추종하던 경우가 많았던 한국에서 가장 널리 퍼진 헤겔은 역사철학에서의 헤겔이다. 즉, 마르크스 사상적 스승으로서의 헤겔과 (흔히 정반합으로 알려져있는) 헤겔 철학의 기저를 이루는 방법론인 변증법이다.

헤겔은 이성이 인류를 진보로 이끌며 이성이 진보를 일궈내는 메커니즘이 바로 변증법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와 로마의 예를 들어 그리스의 자유로움과 로마의 외적 율법주의(엄격한 법치)가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현대 서유럽의 법체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어떤 국민이 있다. 그런데 아주 나쁜 독재자가 나타나서 국민들을 탄압한다. 분노한 국민들은 독재자를 몰아낸다. 여기서 처음의 국민들은 '정'이고, 나쁜 독재자는 '반'이다. 이후 독재자를 몰아낸 사회는 처음의 사회와 비슷해 보이지만, 독재자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그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과 경험과 제도를 얻은 더 나은 사회는 정과 반이 만나 얻은 '합'에 해당한다. 이후 소련이 붕괴하고 민주화도 이루어지자 운동권도 점차 세를 잃으며 자연스레 헤겔도 인기를 잃어갔다.

하지만 헤겔 철학은 역사철학에 대한 변증법의 활용만으로 단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오랫동안 기존 문서에서는 변증법이란 것은 대립되는 두 축 가운데 하나를 택하면서 다른 하나를 부정하는 방법론이라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해석은 오히려 헤겔의 변증법을 역사에 적용하면서 나타난 양상에 대한 서술에 가깝다.

헤겔의 철학에서 등장하는 '변증법'이라는 개념은, 영어로 대강 따지면 conversation이 아니라 dialogue에 가깝다. 말하자면 변증법은 부정과 긍정이 교차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텐데 그리스 어 dialetike를 연상하면 약간 편할 수 있다.[1] 설명하면 dialetike라는 것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좋아하는 대화법, 혹은 교육 방침이다. 질문에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서 어떤 사실을 부정하고 어떤 사실을 긍정해가며 참다운 정의에 다다르게 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는 이 변증술을 통해 직각삼각형 같은 수학적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 그 개념을 깨닫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계속해서 얘기하지만 헤겔에게 있어서 '변증법'이란 학문이 나타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헤겔은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될 수 있는 인식과 지식을 관찰해 보고자 했다. 헤겔 이전에 철학계의 입장은 '우리가 어떤 사물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즉, 우리의 시각이나 촉각, 후각 등을 통해 전해지는 이미지는, 사물의 실상 그 자체와 비교해 보면 한 차례 걸러지면서 왜곡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사물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입장에 대해 헤겔은 기존의 철학자들을 "쫄았냐?" 라고 비웃으며 그들은 쫄보인 나머지 실수가 두려워서 물자체에 대해 알 수 없다던가, 전지전능한 신이 모든 걸 전해준다던가 등등의 이런저런 개념만 전제하면서 정신이 펼쳐지는 모습을 그저 관찰하고자만 했다고 주장하였다.

헤겔은 정신의 양태를 부정과 긍정이 교차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알거나 인식하거나 생각하거나 할 때 결국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사과를 보고 빨간 색이라고 알거나, 사과를 만져보고 매끈거린다고 느끼거나, 먹어 보고 달다고 느낀다. 이런 인간 정신이나 개념에 있어서 시초를 따져 보면 결국 감각과 경험에서부터 비롯됨은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이 느낌들은 분명 언어로는 정확히 환원될 수 없는 어떤 느낌이다. 그리고 우리의 감각은 정확하지 않고 착각을 일으키기 쉽다. 그러므로 칸트가 말하는 물 자체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물 자체란 것이 우리의 개념과 분리된 어떤 실체가 될 수 없다. 이른바 물 자체란 것 또한 개념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물 자체란 것이 있고 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상정한 이후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개념에 대해서만 논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물 자체란 것은 개념이 아닌가?

어차피 개념밖에 논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물 자체를 설정하는 것은 실패할까 조마조마해하는 쫄보들의 작태다. 감각 경험 역시 개념과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감각을 느끼며 이것이 언어나 개념과 불일치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가 이것을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말하려는 순간 이 감각은 언어가 되고 개념이 된다. 즉 개념화, 이성의 작용이라는 것은 1차적으로 부정이 된다는 것이다.

이성으로 개념을 만든다는 것이 부정이라니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 부정이라고 하는 것이 곧 규정이자 개념이라고 한다. 우리가 감각을 지각하고 이를 생각하며 분류하는 것은 뜨거운 것도 아니고, 단 것도 아니고, 쓴 것도 아닌 여러 감각들 중의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다. 헤겔은 이성을 써서 무엇인가를 규정함이 곧 부정이라고 생각했다.(여기서 부정은 어떤 사태가 단순히 부정되었다고 해서 없어지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는 나무위키를 단순히 감각적으로 바라 볼 때 나무위키를 단순하게 '이것' 이라 표현했다 한다면, 이는 가장 개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감각적으로 치부한 이러한 인식유형은 조금 엄밀하게 분석하면 부정된다. 왜냐하면 개별적인 것으로 표현된 '이것'은 아주 보편적인 의미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과 '여기'라는 단어에는 시간성과 공간성을 포함하기 떄문에 내 방에서 밤늦은 시간에 나무위키의 이상한 내용을 수정하며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지금'과 '여기'라 할 수 있고 내가 내방을 나가서 아침시간에 PC방에서 타이핑을 하며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그때 시점에서는 '지금'과 '여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단순히 개별적으로 표현했다고 치부한 '이것'은 모든 것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의미를 포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헤겔에게 있어서 이러한 감각적 확신의 인식형태에서 이러한 부정은 단순히 부정되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차원의 인식형태에 이행 될 때, 가령 경험적인 지각의 인식유형에서 논의될 때 감각적 확신에서 부정된 내용은 이미 지각의 대상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것이 이성이라는 것은 고전 그리스 철학부터 이어진 유산이다. 그리스 어에서 이성이란 말은 곧 언어를 뜻한다.[2] 이것은 인류에게 공통된 인식이기도 하다. 헤겔에게서 이 이성과 언어의 작용이란 것은 부정인 동시에 긍정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지식과 인식 등을 다루던 당대 학문의 경향에 있어서, 헤겔이 말하는 지식의 참된 획득 방법은 감각이 들어오면서 앞으로 나갔다가, 이성과 언어로 이를 규정하면서 뒤로 한 번 후퇴하고, 그것은 또한 동시에 이성이자 언어이자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한 걸음 나가는 작용이다. 다른 것과 구분하면서 부정이 이루어졌지만, 동시에 그 결과로 인해 하나의 지식을 얻는다. 이것이 헤겔이 말하는 정반합이다.[3]내가 무릎을 꿇었던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 없다"라고 말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과 통하며 동시에 파르메니데스의 사상과도 통한다. 무슨 말이냐면 모든 것을 종합했다고 일컬어지는 헤겔답게 대강 두 가지를 다 받아들이면서 말이 되는 걸 하나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변증법 요소 중 하나는 아우프헤벤이다.

3. 영향[편집]

헤겔 이후의 철학은 그게 비판이 되었든 동의가 되었든 간에 헤겔이 뿌려놓은 씨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를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거꾸로 선 헤겔학도"로 표현했을 만큼똑바로 서라 마르크스! 변증법적 방법론을 그의 체계에 도입하고 있지만, 청년 헤겔 학파 등에 대한 그의 무지막지한 비판 덕분에 종종 헤겔 안티로 오해받기도 한다. 블라디미르 레닌, 게오르크 루카치, 테오도르 아도르노 등의 철학은 변증법적 방법론을 마르크시즘에 적용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이데거를 위시한 해석학도 헤겔에게서 출발한다. 슬라보예 지젝자크 라캉과 헤겔 철학 사이의 연결점을 파악하려 시도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라캉과 헤겔 사이에도 연결고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라캉이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그 유명한 헤겔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았으니.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전집을 읽는것보다 데이비드 흄의 저서 한 페이지를 읽는것이 더 가치있다."는 말로 헤겔에 대한 평을 일축해 버렸다. 그외에도 헤겔을 비판한 대표적인 철학자들을 꼽자면 에드문트 후설, 쇠렌 키르케고르, 빌헬름 딜타이, 질 들뢰즈, 칼 포퍼가 있다.

분석철학도 19세기말에 러셀과 무어가 영국의 헤겔주의[4]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5][6] 한동안 헤겔은 흘러간 철학자였다. 시대가 변해서 요즘은 영미철학에서도 헤겔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있는데, 헤겔의 관념론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의미의 재구성에 대한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물론 관념론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서 영미분석철학이든 대륙철학이든 현대철학은 헤겔을 비판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초에 철학사에서 근대와 현대를 구분하는게 가장 일반적인 분기점이 헤겔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동양 철학과 헤겔을 연결시켜보려는 시도도 있다. "의식의 절대적 도야"를 목표로 삼은 헤겔과 동양 철학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해보려는 것이다. 임석진의 "정신현상학" 번역본을 보면 헤겔철학과 동양사상의 접점으로 이끌 만한 논의들에 대해 제법 다양한 주석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확고한 목적론을 지닌 헤겔 사상을 무정형의 변화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사상에 대입하는 것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어려운 것이라 하겠다.

4. 비판[편집]

나폴레옹 프랑스 시기에 출간된 그의 초기 저서 『정신현상학』이 부정적 사고를 전제로 하는 변증법 개념을 전면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그는 일면 진보적 철학자로 여겨졌으나, 말년에 프로이센의 새로운 지배층 육성을 위한 베를린 대학의 철학 교수로 취임하면서 『법철학』을 출간해 헤겔이 프로이센 독재를 옹호하는 관제 철학자가 아닌가 하는 비판이 있어왔다. 이 논쟁은 그의 사후, 헤겔학파가 좌우파로 나뉘어지며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그의 철학은 너무나도 낭만적이며 몽상적이라는 점 또한 그가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이다. 포퍼는 그의 저서에서 헤겔이 칸트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7]

이는 헤겔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관념의 세계였고, 그가 자연을 탐구한 철학자가 아니었던 것에서 비롯된다. 그는 당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던 과학적 성과들에 집중하기보다 정신적인 관점에서 자연을 보았고, 그렇게 정립된 관념 체계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려 했다. 애초에 현실을 관념에 적용시킨 것이 아니라 관념을 현실에 적용시킨 것이니 현실성에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쇠렌 키르케고르도 헤겔 비판에 한몫 했다. 아니 그의 책 상당수가 헤겔을 중심으로 근대철학을 까는 내용이다. 까는 요지는 보통 이렇다. 헤겔을 필두로 한 근대철학은 윤리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았는데, 이게 사람들에게 퍼지면서 모두 자신의 양심보다는 어떤 행동이 현재의 역사적 상황에서 옳은지만 찾게 되었다. 그래서 개개인은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하지 않은 채 역사 탐구에만 몰두하고, 심지어는 역사의 일부분을 축소하거나 과장하여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생기게 되었다는 것이다.[8] 그래서 키르케고르는 이것들에 대한 반대급부로, 현실에 존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과 세계관을 들고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실존주의이다.

철학도들은 헤겔부터 어려워진다고 원성을 내기도 한다. 단순히 읽는게 아니라 내용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들기 시작하면 뒷골이 쑤신다. 독일에서 어렸을때부터 살아서 독일어에 유창한 한 한국인 학생은 한국에서 대학에 다닐때 헤겔이 너무 어려워서 자신의 한국어 어휘력이 부족해서 수업을 못 쫓아가는줄 알고 독일어 원서를 집어들었다가 첫페이지를 보자마자 어지러움으로 정신을 잃다시피하면서 잠들었다고 한다.독일어가 그나마 낫다는게 함정 그래도 『정신현상학』은 칸트의 저작들 보다는 재미있다. 관상학, 골상학 까면서 관상학자는 싸대기를 때리고 골상학자는 두개골을 부숴야 한다, 그런 이야기도 나온다.헤겔이 한참 찌질거리던 시절에 썼던 글이라 하지만 헤겔의 논리학 다루는 그런 정신나간 수업이 있다면 도망쳐라! 당연한 얘기를 왜 굳이 하고 그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철학자 대부분에게 좋으나 나쁘나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덮어놓고 헤겔을 읽고자 하면 엄청나게 힘들지만, 철학적 기반이 쌓인 상태로 헤겔을 읽으면 천천히 읽어나갈 수 있다.[9]

5. 저서 [편집]

독서라고 쓰고 외계어 체험이라 읽는다.
다음에서 언급되는 책들은 헤겔의 주저로, 모두 임석진 교수[10]의 역본이 존재한다.
이중 『법철학 강요』와 『역사철학 강의』는 헤겔 본인이 책으로 출판한 것이 아니라, 헤겔 사후에 그의 강의를 제자들이 헤겔의 강의록 초고과 자신들의 필기노트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출판한 것이다. 따라서 헤겔 본인이 정식으로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은 『정신현상학』과 『대논리학』 뿐이다.

『정신현상학Phänomenologie des Geistes, 1807』
『대논리학Wissenschaft der Logik, 1812~16』[11] (절판)
『법철학 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0』
『역사철학 강의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Geschichte I~III, 1817』

6. 그 외[편집]

동시대의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그를 매우 싫어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저서 곳곳에서 헤겔을 '사기꾼', '협잡꾼'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비난하였다. 헤겔 개인을 인간적으로 싫어했다기보다는, 서양철학 전체를 다 까는 그의 입장에서는 헤겔이 당시 서양철학의 적통이기 때문에 주요 비판대상이 된 것. 쇼펜하우어는 베를린 대학에서 헤겔과 같은 시간에 강의를 하여[12] 정면대결을 했으나, 수강자의 숫자는 쇼펜하우어의 참패. 베를린 대학의 대표 철학과 교수로써 유럽 전역에 명성을 떨치던 헤겔을 갓 데뷔한 쇼펜하우어가 이길 수는 없었다. 그리고 헤겔이 사망하고 나서 다시 쇼펜하우어는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헤겔의 하숙방 밑을 지나갈 때 헤겔이 "저기 절대정신이 걸어간다" 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이렇게만 보면 아무것도 아닌것 같지만, 당시 나폴레옹은 프로이센을 격파하고 수도 베를린에 입성하던 중이었다. 말하자면 제 나라를 침략한 적국의 수장을 저렇게 찬양했다는 것.[13] 근데 알고보면 이해가 가는 것이, 그당시 독일연방 사회 전체가 목불인견의 시궁창이었다. 영주들은 일신의 환락을 위해 무거운 세금을 강요하고 지식인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길 즐겼다. 애첩에게 성을 지어줄 돈을 마련하려고 국민들을 잡아다가 통 크게 인신매매한 영주도 있었고 헤센 공국의 경우는 국가 주도로 용병업을 하기위해 여행과 주거이전의 자유를 박탈했다. 특히 헤겔의 고향인 뷔템베르크(프러시아가 아니다!)에 대해서는 "역사상 뷔템베르크 이상으로 노예상태가 이루어졌던 곳은 독일의 어느 영방에도 없었다."는 말도 있었다. 독일 연방에 대한 이러한 실상을 놓고 헤겔은 "독일은 이제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14] 이런 헬오브헬 상황에서 나폴레옹이 얼마나 독일 진보적 사상가들의 희망이었는지 잘 알게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황제에 올라 배신 그런데, 헤겔이 사용한 절대정신(absoluter Geist)의 Geist의 의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영혼(Spirit) 이외에도 인문적, 역사적, 사회적 사상 등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맹목적인 나폴레옹 찬양보다는 '(자유와 평등 같은 근대적) 시대정신을 체화한 존재' 이런 의미로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하다. '이성의 간지'라는 표현을 떠올려보라.

일반적으로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을 구분하는 마지막 경계가 바로 헤겔이다. 근대철학의 계보는 헤겔이 이어받았으며 그와 동시기의 다른 학자들은 헤겔 철학을 비판하면서 현대 철학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중국에 대해 틈만 나면 악담을 퍼붓는다. 공간만 있을 뿐 시간은 없는 나라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양은 진보하지만 중국은 그대로라는 주장이다.

이 외에도 공자와 맹자가 헛명성만 드높았는데 그들의 저작이 번역된 것을 읽어보니 이 작자들은 철학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같은 말을 한 적도 있다. 또한 중국의 전족이나 귀를 뚫고 입을 뚫는 풍습을 일컬어 야만적이고 무취미하고 완전히 기형적이고 파멸적인 것이라고 깎아내렸다. 물론 이런 것이 좀 전근대적인 풍습이기야 하겠지만 헤겔은 이에 덧붙여 형상이나 모습을 변형시키는 것에 있어서 정신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면 교양 있는 모습으로 변형시킬 수 없다고 막타를 넣었다.

저런 동양 비하 발언들에도,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한국, 중국 등의 동양권 나라에서 대단히 많이 연구된 서양 철학자로, 동양권에서 국가주의 민족주의 성향의 우파 지식인들과 마르크시즘 성향의 좌파 지식인들 모두에게 중요하게 여겨진 학자이다. 그의 변증법적 역사 발전론은 동양의 근대 지식인들에게 국가 발전, 근대화 추진의 사상적 기반으로 여겨졌고, 가족-시민사회-국가로 발전되는 변증법적 집단 윤리 의식을 강조한 도덕철학과 대륙법계 법철학은 유교적 보수적인 동양권 근대 지식인들에게 많이 수용되어 정치 철학과 윤리학, 동양권에 계수된 대륙법계 법철학의 주요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서구권에서는 2차 대전 이후 일부 학계에서, 특히 영미권에서는 국가주의, 전체주의의 시초로도 비판받고 있는 것에 비해서 동양 학계에서 헤겔의 위상은 아직도 높은 편이다.

7. 관련 항목[편집]

[1]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dialetike니 conversation이니 dialogue니 하는 것은 모두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유산들이다. 짧게 설명하자면 dialetike는 흔히 한국말로 하면 변증술로 번역된다. dialetike에서 litike 부분, dialogue에서 logue 부분을 주목하자. logic, 논리라는 영어와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플라톤으로 대표되는 소위 정통 철학자들은 이 dialetike가 제일 좋은 교육법, 문답법, 대화법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 반론술, 쟁론술 같은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2] 서구 철학에서 그리스 어의 영향력을 결국 어느 정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전통에서 이성을 얘기할 때, 언어 역시 동일 범주에 놓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3] 어차피 여기까지 따라온 사람들은 한 번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몇 번 보다 보면 대강 그런 소리인가 하고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개념이나 언어 단어는 엄밀하게 구분해서 쓰지 않았다.[4] 정확하게 말하자면 칸트로부터 시작된 독일관념론 전부[5] 정확히 러셀의 경우 헤겔의 저서를 읽고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영국의 헤겔주의에 대한 비판.[6] 이런 기조여서 그런지 요즘도 영미에서 수학하고 온 분석철학 계통의 학자들은 헤겔더러 심할 경우 거의 개가 짖는 소리 가까운 취급을 하는 사람도 있다.[7] 쇼펜하우어도 그가 칸트를 제멋대로 다루는 것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하였다.[8] 키르케고르,'주체적으로 되는 것',임규정 역,지만지고전천줄,2008,p32-37[9] 물론 이 철학이란 것들은 심지어 가장 처음에 속하는 플라톤 철학조차, 의외로 한국인에게는 기초적으로 공유되는 의식이 없어서 엄청나게 힘들다. 하지만 그 어렵다는 헤겔 철학도 사실 칸트와 그리스 철학 그리고 훗날의 철학을 어느 정도 쌓아 놨으면 적당히 읽어놓을 만하다는 것.하지만 그것은 과거의 두통이 이미 정반합으로 완성되어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10] 한국에 최초로 헤겔을 소개한 한국의 철학자. 헤겔학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지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11] Wissenschaft는 학문이고, der는 영어로 치면 'of the'에 해당하는 소유격 관사이며, Logik은 논리이다. 따라서 직역하면 『논리의 학』이다. 실제로 이 책을 지칭하는 한국어 단어를 '논리의 학'으로 번역하여 기술한 글도 많다.[12] 재미있게도 이 자리는 헤겔이 직접 마련해주었다고 한다.[13]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 저 말을 했을 당시 헤겔은 예나 대학교에서 교수생활 중이었고 헤겔의 조국은 예나 시가 속한 작센 선제후령이 아니라 뷔템베르크 공국이었다. 그리고 뷔템베르크 공국은 프랑스의 동맹국이었다. 작센 선제후령 역시 프로이센의 동맹으로 예나 전투에 참전했지만, 예나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탈탈 털린후 프랑스의 속국이나 다름없던 라인 동맹에 가입한다.[14] 국내에 번역된 나까야 쪼우의 책 '헤겔'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