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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배경3. 양자역학4. 자유의지와의 양립 가능성5. 기타6. 외부 링크7. 같이보기

1. 개요[편집]

/ Determinism

만사에 있어서 결정된 것이 있다고 믿는 사상.

평범하게 말하면 운명, 고상하게 말하면 결정론이다.

단 '결정론'이라는 개념은 각 분야나 입장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쓰이기는 한다. 자세한 내용은 이하 논의 참조.

2. 배경[편집]

서양 철학사에서 결정론을 처음으로 명시화한 것은 데모크리토스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결정론적인 세계관 자체는 그 형태에 다소 차이가 있을지언정(자유의지 문서 참고) 근대 전까지 당연시되온 것으로 여겨진다.
  • 그리스 로마 신화의 운명론: 운명의 세 여신 문서에서 언급되듯 희랍 전통에서 운명은 올림포스의 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는 했다. 이러한 숙명론적 사고는 결정론을 함축하는 것처럼 보인다.
  • 기독교 신학에서의 예정설: 기독교의 야훼는 통상 모든 것을 아는 전지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모든 것을 안다면 미래의 모든 사건들 또한 알 것이며, 은 통상 그게 임을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만약 미래의 시건이 이미 정해져 있지 않다면, 미래 사건에 관한 참도 성립할 수 없는 것 같다. 따라서 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존재는 어떤 측면에서는 결정론을 함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1][2]
  • 근대 자연과학적 결정론: 데카르트베이컨 등의 합리주의경험주의 같은 사상적 배경 위에서 자연과학의 토대가 성립되었고, 그에 영향받은 아이작 뉴턴물리학을 통째로 일으켜세웠다. 그 때 뉴턴은 가장 기본이 되는 세 개의 법칙을 이야기하는 뉴턴의 운동법칙과 그로부터 미적분이라는 사기스킬기술로 세상을 정량화된 수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자연 법칙을 기본법칙과 이성으로 알아냈다! 이것은 데카르트가 추구했던 기본 원리로부터 모든 것을 설명하는 모습 아닌가?[3] 그렇다면 물리학이 뻗을 수 있는 모든 곳, 즉 우주를 모두 겨우 수 개의 기본법칙으로부터 모두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4] 더욱이 물리학을 벤치마킹한 화학이나 생물학이 성공을 맛보았고, 그에 따라 통계학정치철학 분야에서 뉴턴철학을 따르라는 기조로 사회학이나 경제학같은 신학문들을 만들어 또 성공한다. 이런 일련의 기계론적 정신이 옳다면, 우리는 세계의 초기 상태와 세계의 자연법칙을 완벽히 알고 있는 한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 같다. 즉 미래에 관한 모든 사건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기독교의 야훼에 관해서와 마찬가지로 결정론이 함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라플라스의 악마 참조.

3. 양자역학[편집]

양자역학의 등장 이후로 전통적인 결정론은 거짓임이 입증됐다는 유력한 견해가 있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미시 세계의 양상은 비결정론적이기 때문이고, 일반적으로 우리의 의지는 뉴런을 통한 전자의 전달로 이루어지므로 양자 영역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이 있기에 아인슈타인조차도 이를 두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어떤 변수 때문에 이렇게 보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양자역학은 정말로 인상적이다. 하지만 나의 내면의 목소리는 내게 이것이 아직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론은 많은 것을 설명해 주지만 오래된 것의 비밀에 우리를 가까이 데려다주지 않는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특히 양자역학의 해석에서 주류라 할만한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비결정론적이다. 다만 여러 다른 해석에 따르자면 양자역학 또한 여전히 결정론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해석으로는 숨은 변수 이론이 있다. 결정론적 해석에 따르면 측정을 무시할때 파동함수 자체만을 다루는 슈뢰딩거 방정식에는 불확실성이 없다. 이같은 성질로 인해 슈뢰딩거 방정식은 "결정론적"이라고 불린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결정론적 성질이 근본적으로 항상 성립한다고 여기는 입장이 초결정론(superdeterminism) 이다.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 현상의 측정에서 확률이 나타나는 과정이 비결정론적이라고 해석하지만 초결정론은 측정에 의한 파동함수 붕괴를 인정하지 않고 측정 행위 자체도 파동함수에 의한 결정론적인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자세한 내용은 양자역학의 해석 참조.
불확정성은 중대한 함축을 갖는다. ... 위치와 운동량 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것은 곧 양자계의 행동에 내재적인 비결정론으로 이어진다.[5]

폴 데이비스, Physics and Philosophy 서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저)
결정론에 대한 양자적 행동의 함축을 사람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1926년에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입자의 위치속력을 동시에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을 밝혀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 라플라스의 견해, 곧 과학적 결정론은 한 시점에 우주의 전 입자들의 위치와 속력을 알 수 있다는 주장을 포함한다. 따라서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정리에 의해 심각하게 반박되었다.[6]


"결정론"이라는 말의 전통적 쓰임새는 주류 철학계에서 쓰이는 "결정론" 개념의 정의와도 일치한다. 단적으로 데이빗 루이스양상 논리 상대역 이론에 근거하여 제시한 "결정론"의 다음과 같은 형식적 정의는 위 쓰임새에 부합한다.[7]
  • 결정론이 이다
    • iff 우리 세계는 결정론적이다
    • iff 우리 세계의 자연 법칙 체계는 결정론적이다
    • iff 우리 세계의 자연 법칙 체계에 완벽히 부합하는 갈라진(divergent) 가능세계는 둘 이상 없다.
    • iff 우리 세계의 자연 법칙 체계에 완벽히 부합하며, 초기 시간 부분(initial time segment)이 우리 세계와 복제(duplicate) 관계를 이루지만, 우리 세계와 다른 가능세계는 없다.[8]

4. 자유의지와의 양립 가능성[편집]

결정론이 자유의지와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존재해왔다. 자유의지 문서 참고. 구체적으로 '강한 결정론'이라는 입장은 결정론이 참일 경우, 자유의지는 없다는 입장을 뜻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결심하거나 선호할 지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입장.

5. 기타[편집]

"비결정론"에 대해 마치 '만사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는 입장을 뜻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비결정론을 확대 해석한 것이다. 비결정론은 불확정성 원리와 코펜하겐 해석에서 기인한다. 불확정성 원리는 간단히 말해 입자와 운동량의 정확한 동시 측정이 불가하다는 것을 말할 뿐이고, 코펜하겐 해석은 입자의 상태를 관측 이전엔 확률적으로만 예측 가능하고 관측 이후에는 특정한 상태로 고정된다는 것을 말할 뿐이다.[9] 뉴턴 역학을 기반으로 하는 결정론에 따르면 조건이 같은 개개의 단일 사건을 관측할 때마다 독립적으로 고정된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하지만, 양자역학이 다루는 미시 세계에서는 여러 번의 관측 시행을 통해 통계적으로만 결과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결정론은 부정된다. 비결정론은 이런 결정론의 결함을 지적할 뿐, '만사에 정해진 것이 없다'는 비약과는 무관하다. 만사가 결정되어 있지만 그것을 알 수 없도록 정해져 있는지 역시 알 수 없으므로 위와 같은 비약은 이런 식의 공상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게 된다. 비결정론은 뉴턴 역학식의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뿐 만사가 정해져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하지 않으며 오히려 법칙의 결정성은 긍정한다.

위와 같은 어감 문제와, 거시 세계에서는 여전히 뉴턴 역학이 그대로 잘 작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비결정론' 대신 '확률론적 결정론'이라는 말을 제시하는 경우가 있다.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일종의 다른 차원으로 취급하여, 설령 미시 세계가 확률적이더라도 거시 세계에서의 결정론을 무용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adequate determinism" "확률론적 결정론" 해당 입장에 따르면 전통적인 '결정론' 개념은 사실상 '확률론적 결정론'으로 이전되었고, 이는 비결정론의 본질과 배치되지 않는다. 다만 일반적으로 학계에서는 그냥 '비결정론'으로 칭한다.

6. 외부 링크[편집]

7. 같이보기[편집]

[1] 다만 기독교의 예정설을 이해할 때 필수로 염두에 둬야할 것은 예정설의 포인트가 '신의 주권'에 있다는 것이지 네가 구원받을지 안 받을지는 '인간'은 확신할 수 없다는데에 있다. 루터와 칼뱅이 예정설을 말한 것도 7성사를 통해 구원이 교회에만 있다는 가톨릭 교회의 구원론을 비판하는데 목적이 있었다.[2] 즉, 기독교는 자유의지(스스로의 결정)와 결정론(신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을 둘다 찬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가 그렇듯 둘이 어떻게 양립하냐는 논란이 있고, 이는 곧 기독교 최대 난제인 악의 문제에서 다뤄지게 된다.[3] 그는 철학과 세상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 1명제로부터 모두 설명하고자 했다.[4] 정작 뉴턴은 자신의 법칙을 활용해 모든 것이 결정되고 설명할 수 있게 만들려는 데카르트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뉴턴은 그를 두고 '그는 가능하면 신 없이 구원받고 싶었다.'고 깠다...[5] The uncertainty has deep implications. ... The smearing of position and momentum leads to an inherent indeterminism in the behaviour of quantum systems.[6] It was some time before people realised the implications of this quantum behaviour for determinism. It was not until 1926, that Werner Heisenberg, another German physicist, pointed out that you couldn't measure both the position, and the speed, of a particle exactly. ... Laplace's vision, of scientific determinism, involved knowing the positions and speeds of the particles in the universe, at one instant of time. So it was seriously undermined by Heisenberg's Uncertainty principle.[7] Lewis, David. (1983). New work for a theory of universals. Australasian Journal of Philosophy, 61(4), 343-377.[8] 이때 "세계". "자연 법칙 체계", "시간 부분", "복제" 등은 모두 루이스 자신이 별도의 정의를 제시하는 전문적 용어다. 데이빗 루이스 참조.[9] 이는 불완전한 관측 수단의 한계 때문에 불가능하단 것이 아니라 내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에 가까운데, 외재적인 변수를 증명하지 못하는 한 일종의 Ad Hoc으로 취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숨은 변수'를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