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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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포괄적인 공부에 대한 공부 관련 조언을 담은 문서[B.] 수험용 공부에 최적화된 공부 및 생활 관련 조언을 담은 문서
공부란 늦춰서도 안 되고 성급해서도 안 되며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다. 만약 공부의 효과를 빨리 얻으려 한다면 이 또한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다. 공부는 늦추지도 않고 서두르지도 않으면서 평생 꾸준히 해 나가야지 그렇지 않고 탐욕을 부린다면 부모가 물려준 이 몸이 형벌을 받고 치욕을 당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로가 처음 공자를 만났다. 공자가 말했다.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자로가 대답했다. "나는 긴 칼을 좋아한다."
공자가 말했다. "그것을 물은 게 아니다. 단지 그대가 잘하는 것에 학문을 더한다면 아무도 그대를 따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자로가 말했다. "학문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는가?"
공자가 말했다. "임금에게 간언해 주는 신하가 없으면 실정하고, 무사는 가르쳐주는 친구가 없으면 귀가 먹게 된다. 미친 말을 몰 때에는 채찍을 잠시도 놓을 수 없고, 활을 당길 때에는 두 번 당길 수 없다. 나무는 목수의 먹줄이 닿아야 곧아지고 사람은 비판을 받아야 비로소 성인이 된다. 배움을 얻고 물음을 중요시하는 사람이 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인(仁)을 어지럽히고 선비를 미워하면 사회와 마찰을 일으켜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러니 군자라면 학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로가 말했다. "남산에 푸른 대나무가 있는데 휘어잡지 않아도 스스로 곧고, 그것을 잘라 화살로 쓰면 가죽 과녁을 뚫어버린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배울 게 무엇이 있겠는가?"
공자가 말했다. "그 대나무 밑동을 잘 다듬어 깃털을 달고 그 앞머리는 쇠촉을 달아 날카롭게 연마한다면 그 가죽을 뚫는 것이 더 깊지 않겠는가?"
이에 자로가 무릎 꿇고 절하였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1권 172쪽

1. 뜻2. 어원3. 공부의 기본4. 학교 공부의 문제점5. 학교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6. 대다수에게 학교공부가 싫은 이유7. 넓은 의미의 공부8. 학교공부와 넓은 의미의 공부의 차이9. 학교공부와 사회성10. 계층이동과 공부11. 공부도 타고나야 한다?
11.1. 공부 유전론의 해악
12. 유해한 공부13. 공부 조언14. 관련 문서

1. [편집]

공부()는 무언가를 익히는 것 또는 좋은 목적을 가지고 실시하는 계획성 있는 행위를 일컫는 단어이다. 넓은 의미에서 어떤 지식ᆞ기술을 탐구하는 것은 모두 공부이다. 다만 분야별로는 학습, 연습, 연구, 탐구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 편이다.

2. 어원[편집]

어원을 따져보면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지식이나 기술을 완성시키는 과정 혹은 결과'에 해당하는 功夫 혹은 工夫에서 나온 말이다.

불교 종파 가운데 선종을 통해서 퍼진 용어라고 한다. 공부라는 한자어 조합은 백화문으로 기록된 당나라 선승들의 어록에서 처음으로 확인되는데, 당시에는 做工夫(주공부)와 같은 형태의 숙어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불법을 열심히 닦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송나라 시대의 대학자인 주자가 자신의 책 <근사록(近思錄)>에서 송학(宋學)의 선구자였던 정명도와 정이천의 사상을 표현하는 말로 '공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면서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점차 工夫로 표기가 고정되어 갔고 일상 용법으로도 현재 우리가 아는 개념으로 굳어지게 된다.

한편 중국은 표기가 혼용되었으며 功夫[공부]는 본뜻 이외에도 중국무술을 뜻하는 것으로도 확장된다.[3] 현대 중국어에서는 보편적인 표현으로 공부를 学习[학습](xuéxí)라고 한다.

일본어에서는 勉強(벤쿄)라 한다. 사실 工夫(くふう)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어의 '궁리(하다)'에 가까운 말이다. 반대로 면강(勉強べんきょう)이라는 말 역시 한국에서는 다른 뜻으로 쓰이는 낱말로, '억지로 시키다'라는 뜻이다. 현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지만 고문헌들을 보면 '면강하여 좇다(억지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따르다)' 등의 표현이 심심찮게 나온다. 옛 일본어에서는 이를 '무리해서라도 노력하여 수고하다[4]'라는 뜻으로 그대로 쓰다가, 점차 '공부'라는 뜻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영어로는 Study로 자주 번역된다. 해당 영단어에는 '연구하다'나 '서재'라는 뜻도 있다.

3. 공부의 기본[편집]

학생이나 준비생들이 공부에서 어려워 하는 부분은 공부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서다. 세상에는 다양한 공부법이 있고, 각자의 방법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공부의 가장 기초적인 의미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즉 대상(교재)을 읽어서 그 내용을 분석하고 무슨 뜻인지 깨달아 이해를 얻는 일련의 행위가 공부인 것이다. 그리고 마냥 읽어서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 시가, 영문법, 수학 공식 등은 연습장이나 교재에 직접 풀어 써서 재차 분석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이해를 구해야 한다.

4. 학교 공부의 문제점[편집]

학교 공부출세를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학업 경쟁 때문에 공교육, 사교육을 막론하고 공부가 점점 지루하고 하기 싫은 것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좋은 선생을 만나거나 근면성실하게 공부하며 원리를 깨우치는 것을 계기로 열심히 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이런 요인이 매우 부족한 학업 과정 전반이 문제라는 것.

학습에 들이는 시간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학생이 효율이 떨어지는 공부에 의해 쓸데없이 낭비할 수 있었던 시간을 다른 쪽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하다못해 이 시간에 자기라도 한다면 학생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이런 공부체제는 학교 공부의 암기력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며 그에 걸맞은 역량을 요구하는 대학입시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낙오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암기력을 포함하여 이해력, 학습력, 응용력 등까지 거의 모든 것을 철저히 요구한다. 이런 것들은 평소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따위의 노력을 꾸준히 하여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성적을 매기는 일은 학생 본인이 지금까지 거둔 학습 성과를 피드백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지, 다른 누군가가 살펴보고 역량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즉, 성적 제도의 변질이다.

이 때문에 상, 중, 하 정도로 나누어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대강은 아는지, 아니면 전혀 모르는지 등을 본인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단출한 등급 체계였지만 이후 수세기에 걸쳐서 A부터 F까지 점수를 매기는 체계로 변화하고 최근에 와서 거기에 +, -까지 붙게 된 것. 이는 인지과학이 발달하면서 성적과 개인의 진정한 학습 이해도간의 상관관계는 길게 볼 때 놀랍도록 작다는 주장들도 속속 나온다. 실제로 시험에서 문제를 많이 맞혔다고 하여 그 사람이 정말 잘 아는지는 의문스럽다. 특히 객관식은 찍어맞히는 경우가 허다하며 시험에 출제되지 않은 지식은 아예 판별할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이른바 '족보'가 도는 시험이라면 기출문제 분석이 성적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사람보다 정답만 달달 외운 사람이 더 점수가 높다는 것이 문제점이다. 시험기간만 되면 학원에 가서 달달달 문제만 죽어라 푸는데, 당연히 답은 맞으니까 성적은 높게 나오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집이 맞다하면 맞는거야가 돼버린다.

오히려 성적큰 의의를 부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결합하게 되면 성적과 자존감이 크게 결부되어 버려 사람들에게 훌륭한 사람 = 성적 좋은 사람이라는 도식이(특히 외부 환경에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어린 시기에는) 선입견을 가지게 할 위험이 크다. 당장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추진력을 잃게 될 위험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나쁜 성적 = 패배자라는 도식에 휩싸여 도망치듯이 공부에 임하게 될 위험이 있다.

교사는 이런 인적 자원(학생)들이 가진 재능을 최대한 인식하고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면 공부를 할 방법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도 교사다. 때문에 교사가 교원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직인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교육학개론, 원론 서적만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 사례가 '개인차'. 사람은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두각을 드러내는 분야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사 '교육학에의 초대(홍은숙, 이한규, 김재춘, 김영화, 김재웅 공저) 교육과학사, 2013년판' 108p를 보면 '교육적 관점에서 개인내 차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개인차에 관심을 가지고 보면 평균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이라도 잘하는 과목이 있을 수 있고 특정한 활동에 뛰어난 소질을 가질 수 있으므로, 저마다 가진 수월성을 키워주는 것이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이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내 차는 '한 개인이 가진 여러 능력들을 비교한 결과'를 말한다. 즉 개인이 가진 능력 중에서도 상대 우위를 가지는 능력이 있고, 오히려 사람들 평균 미만의 능력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입시제도'라는 현실과 몇몇 무능력한 교사들이 그것을 핑계 삼아 태만을 부려 학생을 망친다. 어차피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교육제도의 목표높으신 분들의 말을 잘 듣는 직업군인과 공장노동자를 양성하는 프로이센 교육제도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부의 수정은 힘든 마당이고, 학생 개개인이 상위 몇 퍼센트 내에 드는 꿈같은 대학입시를 노리기 전에 평소부터 실제로 유용하고 가치있는, 혹은 스스로가 정말로 일생 동안 꼭 하고 싶은 재능부터 신중히 찾아보고 노력하는 쪽이 낫다.

하지만 설령 충분한 기회가 있다고 치더라도 정확히 자기가 어떤 재능이 있는 가를 알아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찾았다고 치자. 그 재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아마 거의 대다수는 일단 공부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예 재능을 찾지 않고 학교 공부에 몰두하지 않아도, 정보화 사회의 직종 등 다른 경로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으며 반드시 대학에 갈 필요성이 낮아지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전문 직종은 대학이 필요하겠지만 재능을 알아두면 좋다는 이야기.

이런 재능을 발굴하더라도 일반적인 입시 교육의 공부보다 더 힘든 길이 될 수 있음은 자각해야 하고 재능의 벽도 존재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길을 스스로 찾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데에 있으니 학교 공부보다 힘들다고 하여 그것이 효율이 좋지 않은 길이 되리라고 볼 순 없다.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길이니까. 물론 힘들어서 도중에 때려치우는 것도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다.

결정적으로, 학교 공부는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절대 학생을 킹왕짱이나 엄친아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수단이 아니며, 학생과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만 보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는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부모의 잘못된 착각에서 기인한다.[5]

5. 학교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편집]

90%는 맞다고 볼 수 있다. 우선, '해당 업종에서 성공하기 위한 공부'와 '학교 공부'는 많이 다르다. 성공하려면 직업 쪽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 시험 공부에 시간이나 돈을 투자하는 건 인생 낭비이다.[6] 그래서 학교공부로 단지 돈을 번다는 목적으로 상류층에게 부려먹히는 회사원이 되기 위해 12년간 낭비하는건 결코 효율이 좋지 않은 일이다. 학교공부보다는 돈 버는 방법을 배우는 게 돈 버는 데는 훨씬 유리하다. 그렇다 보니 부자 중에서도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학과 공부'를 못하거나 하지 않은 사람도 엄청나게 많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사례라면 정주영. [7]

어째서 해외가 국내보다 더 낮은 학력 평가를 받으면서도, 훨씬 적은 학업 시간으로 인재들이 우수수 쏟아지는지 상기할 필요가 있다.[8] 당장 지덕체 양상을 기준으로 교육 제도들을 비교해봐도, 이들이 널널하게 자신들의 취미에 시간을 할애하면서도 지덕체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는것만 봐도 느낄 수 있다. 인생을 즐기면서 동시에 성공한 사례들을 보면, 아무리 취미에 투자해봤자 소용없고 천재들만 된다는 헛소리들은 너의 재능이나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수준의 미래와 장래를 책임질 새싹들을 짓밟는 최고수준의 모욕이나 다름없으며, 이런 억지논리에 희생되는 순간 올바른 길을 걷거나 위인들을 따라가긴 커녕 재능을 멸시하는 비뚤어진 어른으로 전락하여 대물림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천재의 이미지가 에디슨처럼 학교 공부를 하지 않았던 사람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성공한 유명인 중 그 나라의 정규 교육을 충실히 이수하지 않은 사람은 매우 희귀하다. 오히려 공부를 못한 특이 케이스라서 유명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공부 이외의 기타 방법으로 돈 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학교 테두리 안에 있는 모든 내용을 경시할 필요는 없다. 그런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부해가지고 힘들게 시험을 칠 필요가 없고 귀찮게 학벌 딸 필요가 없기에 사교육을 투자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자신이 돈 버는 데 필요한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한다. 실생활에서 도움이 되고 전문적으로 검증된 학교 테두리 안의 지식이 인터넷상의 썰보다는 신뢰도가 높은 편이며, 넓은 의미의 공부에선 매우 도움이 되므로 가능한한 열심히 공부해두는 편이 당연히 인생에 도움이 된다.

인생을 사는데 있어 '포괄적인 공부'는 매우 중요하며, 죽기 전까지 해야하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공부다. 상기 각주에서 언급한 사람들도 각자 자기 분야에 있어서는 학자들이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여 학위를 딸 정도 이상의 수행을 쌓은 사람들이 많다. 예를 들어 가린샤는 축구사상 '가장 축구를 즐긴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에미넴은 어릴적부터 언더그라운드 래퍼들과 랩 배틀을 해가면서 랩을 사실상 체득했다.폴 포츠 역시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하니 즉 이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를 생활속에서 갈고 닦았던 셈이다. 현대그룹의 초석을 갈고 닦은 정주영 역시 상시 신문과 책을 보며 공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공부는 어느 면에서나 중요하다. 이에 관한 것은 '넓은 의미의 공부' 부분으로.

6. 대다수에게 학교공부가 싫은 이유[편집]

  • 공부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거나, 공부를 배워야 하는 목적을 모르기 때문.
공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다소 따분하고, 왜 배워야 하며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지에 대한 명분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어렵다. 나중에 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고 할지언정 정작 공부를 하는 중에는 그것을 깨닫기 어려운 법이다. 더군다나 공부의 성과는 매우 느리게 나타나기 때문에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 가며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게임처럼 더 재밌고 즉각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놀거리가 많은 것도 이러한 점에 한몫한다. 다만, 딴길로 새지 말라고 엄격하게 통제하는 학교나 재수학원 등에서도 어떻게든 놀거리를 창조해서 노는 걸 보면 다른 놀거리의 존재보다는 그냥 공부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더 맞다. 이런 점을 극복하려면 순간적인 쾌락을 참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앎의 즐거움을 깨닫고 지식을 쌓고 지적인 활동을 함으로써 쾌감을 얻어야 한다.
  • 자신과 맞지 않는 분야를 강요받음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가 아니라면 하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살면서 하게 될 공부는 대부분 의지와 흥미보다는 그냥 대학입시, 취업 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이다. 게다가 이런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을 부모님이나 교사, 상사 등이 노력 부족, 성적 미달 등의 이유로 들들 볶으니 더욱 싫어지는 것이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개인의 적성은 무시당하고 출세 또는 먹고 살기 위한 공부만을 강요받기에 공부에 대한 반발감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 자신과 맞는 공부방법을 찾지 못함
공부는 오랜 세월동안 차근차근 해와야하는 것으로, 국어나 수학 같은 기본 공부는 그러한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학습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시기를 놓친 경우 어릴 때는 억지로 외우거나 적당히 잔머리를 쓰거나 하면 해결되더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기본기가 부족하면 벽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공부의 기본은 텍스트를 통한 독해, 그리고 논리적 사고력이기에 어릴 때부터 독해력과 논리력을 길러오지 않은 경우 매우 큰 애로사항이 생긴다. 자신에게 맞는 공부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어떤 방법이 본인에게 정말 적합한지 알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공부법에만 집착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9]
  • 지나치게 어려운 교육과정 / 부진아에 대한 대책 부족
나이를 먹을수록 배워야 하는 내용의 분량과 난이도는 급증하는데 그에 비해 가르치는 사람의 강의력은 그닥 좋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상위권 위주로 타겟을 잡기 때문에 중하위권 학생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이 부분은 입시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교 전공교육이나 각종 취업 공부 등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노력하려 해도 기본기가 없으니 어디부터 시작해서 능동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고 암기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 지 감조차 못 잡는다. 어떻게 노력한들 또 새로운 내용을 배워야 하고 이걸 이거대로 연습해야 하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안-습복습까지 해야 한다. 이를 해내기 위한 시간관리와 자기관리가 매우 어렵고 점차 공부가 두려워지며,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가지 못할 경우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학습 부진아에 대한 지원, 대책 부족으로 부진아들은 어릴 때부터 흥미를 못 느끼고, 커서도 공부를 매우 어려워한다[10].
  • 금전적 문제
저소득층의 경우 생계비를 벌어야 하거나 공부에 대한 금전적 투자를 망설이게 되며, 가정불화와 같은 환경적인 요인이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 친구들도 대개는 비슷한 처지이므로 학습 분위기도 잘 조성되지 않고 수업 외에 자습시간을 마련하기도 어려우며, 환경을 개선하려면 또 돈이기에 결국 악순환에 빠지고 어려운 공부를 따라가기도 힘들어진다. 또한 현실적으로 사교육을 받아야 효율적으로 공부를 해낼 수 있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이것도 어렵기 때문에 격차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수능 공부까지는 어찌저찌 가능하지만 학생부전형의 스펙쌓기나 몇몇 직업군의 시험 준비는 돈이 없으면 사실상 꿈도 못 꾸게 된다.
  •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공부는 시험을 넘는 것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시험을 넘지 못하면 얼마나 노력을 하였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출된다.
  • 우리나라 청년들이 노력충이라고 냉소를 보이는 것이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중국,러시아,일본,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쌓인 우리나라는 , 세계 3위의 인구밀도 국이며(1위는 방글라데시,2위는태국) 자원이라고는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아 오직 수출 위주의 경제 성장과, 능력주의 로 대표괴는 무한경쟁의 삶을 살고 있다.
  • 하지만 과거 급제자의 관문을 넘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 조국(인물)이 말한, 알려지지 못한 가재,붕어,개구리들은 어찌하는가? 이들은 능력주의, 경쟁의 패배자들로서 사회로무터 조롱과 멸시를 받는다. 당장 인터넷 상에서의 노가다란 표현이 어찌 쓰이는지 생각해보자.
  • 청년들의 좌절과 분노는 바로 여기서 나온다.내가 제 딴에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평가에서 떨어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허무, 좌절이 노력충이란 단어를 만들고 N포 세대를 만들었다. 내가 한 노력이, 좁은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공부가 싫은 것이다.

7. 넓은 의미의 공부[편집]

넓은 의미의 공부는 제도교육에서 모자란 창의성과 유연한 사고, 다양성과 순발력을 키워주는 효과가 강하다. 게다가 돈을 벌거나 직장생활, 나아가 자신의 사업을 하는데 있어 상상외로 도움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30~50대에 명예퇴직을 얻어맞고 자영업, 스타트업 등을 시작하는 데 있어 제일 강조되는 것은 창의성과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시장상황을 빠른 시간 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런 건 학교에서 달달 외우는 공부나 단순 직무교육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학생 시절에는 시간낭비로만 보이는 사진이나 포토샵 같은 취미도 알고보면 굉장히 유용하다. 회사생활을 하거나 사업을 시작하면, 의외로 깔끔하고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하게 활용된다. 미술 계통의 취미를 통해 얻는 미적 감각, 포샵 편집능력도 영업과 마케팅 면에서 상당히 중요하고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CEO인데 미적감각과 담을 쌓은 인물이라면 팜플렛, 홈페이지, 광고, 홍보자료들의 품질이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감성적인 면은 마케팅의 핵심 요소이며, 꾸리꾸리한 나이트클럽 전단지 수준의 홍보물을 영업한다고 날리면 회사 이미지와 매출에 어떤 악영향이 올지 알아서 판단하자. 특히 자영업 등을 차려 독립하고 1인기업 등을 시작하는 경우 초반에 저런 수준의 홍보를 하면 매출에 치명적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행 학교 교육은 예술과 감성을 대학에 가는 것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식으로 무시하고 억압하는 게 문제다. 그 때문에 학생들의 미적 감각을 키우기는커녕 퇴보시키는 데에만 일조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과서와 문제집을 달달 외우는 주입식 교육에 찌든 삶을 살다가 대학에나 가서야 뭘 하라는 식인데,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저런 식으로 지내면 심미적인 부분에 있어 타격이 매우 크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군대와 취업난에 치여 감성과는 담을 쌓고 지내다가 직업전선에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역시 문제다. 그 결과 상당수 회사들에서 나오는 광고나 홍보물을 보면 주입식 교육으로 입은 감성의 피해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예술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간결하고 깔끔한 느낌의 잘 만들어진 자료는커녕 찌라시 뺨치는 자료나 나이트클럽 홍보물과 자웅을 겨루는 물건들이 쏟아진다. 그렇게 원인제공을 하는 정부와 언론에선 한국은 예술과 디자인, 패션 등이 발전되지 못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드물다는 헛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원봉사여행 역시 사회성을 기르고 감성을 다듬는 면에서 굉장히 도움된다. 직장생활을 하건 개인사업을 하건 상대방의 기분을 빨리 파악하고, 최소한 상처를 주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점점 복잡하고 전문화되는 세상에서 혼자 독불장군식 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다양한 곳을 여행을 통해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생활방식, 문화, 고유한 것을 배우면 나중에 사업아이템은 물론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원천이 된다. 해외 여행을 준비하면서 숙박, 항공권 등을 알아보고 여행자 보험도 들어보고 관세 폭탄 맞지 않게 계획적으로 소비하는 방법 역시 공부의 한 갈래이다. 일례로 전세계 주요 국가의 마트와 재래시장들을 여행하며 보고 온 사람과, 독서실에 앉거나 골방에 틀어박혀서 토익공부만 한 사람 중 누가 무역이나 유통실무를 더 잘하겠는가? 회사를 다니다가 퇴직하고 자기 일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다양한 경험적인 기반과 풍부한 감성을 지니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유연하게 수정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은 넓은 의미의 공부로만 키울 수 있다.

만약 극한의 상황을 가정하여 집안사정이 좋지않아 휴대전화를 가지기 힘들며 여행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자신이 사회와 잘 소통하며 좋아하는것을 하면 그것이 힘들더라도 경험,공부등이 될수있다.

이 넓은 의미의 공부는 책을 읽거나 글을 해석하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순수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쌓는 것이 넓은 의미의 공부다. 예를 들어서 당신이 운동하는 것이 즐겁고 좋아서 더욱 열심히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과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간다. 그리고 게임을 좋아하며 더 열심히 싶고 잘하고 싶기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분석을 하고 피드백을 한다,독서도 음악도 미술도 사회생활도 기타 여러가지 행동들 모두 자신이 할 때 즐거우며 순수하게 더욱 뭔가를 배우기 위해 하는 것들은 넓은 의미의 공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자들은 열심히 공부하는 자들이다. 성공한 운동선수, 예술가, 프로게이머, 가수, 연예인 등등 일부 재능만 믿고 그 기록이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정점에 선사람이나 자기 업계에서 인정받은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한국에서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공부가 아니라 진정 넓은 의미의 공부를 실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거기에서도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또 감이 무뎌지지 않기 위해서 계속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학습과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워야 한다. 난이도나 본인이 어떤 행위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쾌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해보지도 않았는데 남들이 어렵다고 해도 내가 남들보다 잘하고 즐거워할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어려워 하는 일도 다른 사람이 더욱 잘하거나 즐거워 할 수 있다. 사람마다 그런 느낌은 일단 해봐야지 알며 해보기도 전에 이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생각이다. 진짜 자기가 하는 일이 힘들거나 난이도 있는 것은 상대적일 뿐 분명히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거기로부터 큰 쾌감이나 발전 가능성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마음은 안맞아서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별로 성취하고 싶은 생각도 안들고 즐겁지 않으면 그것은 넓은 의미의 공부라 할 수 없다. 잘하면서 취미같은 느낌이 드는데 일은 일인것.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며 몇 번을 해도 안질리는 행동을 하는 것이 바로 넓은 의미의 공부이다.
한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재능도 있지만 열심히 한다. 그 사람들도 못하는 건 당연히 있다. 사람마다 삶이 한정되어 있고 각자 장단점이 뚜렷하기에 많은 것을 잘할 수는 있어도 모든 것을 잘하는 인간이란 망상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자기 분야에서는 자기가 정말 즐겁고 성장하는 것을 느끼기에 그 사람들 스스로가 취미같은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소득을 많이 받고 안받고를 떠나서 성취감을 느끼고 본인이 만족감을 느끼는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뭔가를 원하고 실천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그 자체로 욕심이나 서로 불만을 가질 필요도 적어지고 행복하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배움의 형식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공부는 자신의 기초를 다지고 더욱 세분화 시키는 것이다. 당신이 더 좋은 인생을 살아가려고 하는 일반적인 목표나 과정 자체가 바로 공부다. 비교적 수많은 사람이 가질법한 목표인 진짜 돈걱정 안하고 여유롭게 쓰고 싶어서 많이 벌고 싶다고 한다 치자.
돈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사업가일 것이다. 그런데 현명하고 성공한 사업가들의 접근방식은 일반인이나 보통의 사업가들하고는 완전히 다르다. 돈을 벌기 위하여 추상적으로 주식이나 남들이 말하는 단기적인 시장상황이나 현재만 바라보는 투자방식에 대하여 알려고 하거나 관심도 없고 당장에 이득이나 시장을 따르지 않더라도 스스로 경제나 세상 돌아가는 방법에 대하여 관찰하고 사업에서 내놓을 수 있는 자신만의 장점이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업이나 아이템을 찾기 위한 생각을 한다. 시장이 그렇게 형성된 원인이나 미래의 가능성 등 현재 높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 자신에게 이득으로 돌아오며 진정으로 믿을만한 정보나 기회를 얻기 위하여 남들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당장의 이득이 주어지지 않아도 넓은 의미의 공부로써 통찰력을 얻으며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고 그러한 공부가 훨씬 남들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미래에 큰 이득을 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꾸준히 깊이 있게 공부하기에 그들은 돈을 버는 방법도 잘 알지만 그 이득을 허무하게 잃지 않는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감정에 동요해서 원금을 깎아먹거나 결국에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행동을 제어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반드시 꼰대가 되고 틀딱이 되고 적폐가 된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신념까지 가지면 말 자체가 통하지 않으며, 이런 사람들이 빚어낸 갈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당장 박사모만 봐도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폭력시위를 주도하는 등 대놓고 무식을 드러낸 사례가 많았으며, 역사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공부하지 않다 스스로 무너진 사례는 흔하다. 좆문가가 생기는 원인도 역시 다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괜히 탈출은 지능순이라 한 것도 아니다. 결국 생물학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죽기 싫으면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도 닥치고 공부하라는 소리.

하지만 이를 역으로 말하면, 학습 능력을 잃어버리거나 획득할 수 없는 것 자체가 본인은 물론 주변인에게도 심각한 재앙이라는 말도 된다.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런 환자들을 간호해야 하는 간호인의 스트레스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준. 굳이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찬드라 쿠마리 구룽 사건 처럼 외부 환경 때문에 학습 기회 조차 박탈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 역시 기회를 박탈당한 본인에게는 재앙이나 똑같다. 때문에 고의적으로 배우지 않는 것과, 배우고 싶어도 능력 또는 기회 자체가 없는 것은 구분지을 필요가 있으며, 사회 역시 배움의 기회를 개인에게 적시에 제대로 제공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8. 학교공부와 넓은 의미의 공부의 차이[편집]

학교공부가 그 커리큘럼 내에서 그리고 학교공부의 방식이 자신에게 자신감과 동기를 불어넣어주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공부가 될 수 있지만 대다수 학생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진짜 공부가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짜 공부가 될 수 있는 이 학교공부라는 것은 수많은 공부중의 하나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은 유아기 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한국의 교육년수가 대학교를 제외하더라도 11년이고(고등학교 제외시 8년) 대학교를 가더라도 최소 2년에서 4년 그리고 대학원 유무에 따라 더 학교에서의 생활을 하고 아예 직업으로 교사나 교수처럼 사교육 강사처럼 교육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인구에 비해 상당히 많다.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진학률도 매우 높다. 이런 성장환경과 학교의 영향력 때문에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그리고 대표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공부라고 하면 우선은 수능을 통해 대학을 진학하고 대학에서 학과과정을 거치는 학교공부 혹은 공시나 사법고시같은 특정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익히는 공부가 우리들이 말하는 공부라는 개념이 강하다.

이것도 분명히 공부의 한 종류이고 공부에 해당하는 것은 맞지만 엄연히 말하면 이에 해당하는 배움을 즐겁게 하고 그 내에서 만족감을 얻고 수준을 향상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즉 앞서 말한 행동를 통하여 넓은 의미에 해당하는 공부를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결코 공부가 될 수가 없는 것이고 진정한 공부를 하기 위하여 다른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다. 넓은 의미의 공부는 생각해보면 우리도 하고있을 수 있던 것이 해당될 수도 있고 자기가 진짜 마음먹기에 따라서 시작할 수 있는 정말 여러가지의 행동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부터 대다수의 직장인이나 사회생활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로 떠나고 있고 이 쪽길로 그대로 왔으니 앞으로도 이런 길이 맞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런 일부 공부에 대하여만 긍정적이거나 보편적으로 공부하면 이것이다 라고 하는 인식은 한국에서는 유독 고착화되어왔다.
물론 이렇게 생각해왔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빨랐지만 정신적인 성장이나 문화나 사회적 변화에 대해서는 속도가 느린 국가이다. 또 과거에 IMF나 지금도 각종 실업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일자리가 불안정한 상태라 공부가 미래가 보장돼야지 하고싶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이 이길이 맞든 안 맞든 학교공부나 취업문제를 해결해야지 사회에 진출할 수 있고 그 사회 진출하는 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생각이다. 우선은 학교 공부 그 다음 자격증이나 공시 사법고시 같은 것들이 대부분 취업할 때 하기 위한 공부가 사회적으로 그 어느 수단보다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불안정한 사회상&심리상태와 맞물려 학교공부=공부라는 인식이 팽배하게 된 것이다.

학교공부가 넓은 의미의 공부에 해당하는 사람은 있겠지만 반대로 학교공부 자체가 넓은 의미의 공부에 절대 해당할수는 없는데 혼란했던 사회적 상황이나 대부분 인식이 그렇다보니 이것이 바로 잡아지지 않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 지금의 가치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스레 넘어가면 넓은 의미의 공부와 학교공부간의 결정적인 차이를 인식하게 되지를 못한다. 이 개념을 정립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점을 얘기해보겠다.

학교공부로 성공한 사람은 있고 그것을 열심히 해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분명 있다. 그 사람은 학교공부를 통해 넓은 의미의 공부를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이였기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들은 학교공부 자체를 공부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고 세상을 인식하고 넓은 의미의 공부속에 학교공부를 포함시킬 수 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학교생활에서 이런 넓은 의미의 공부를 경험했으니 자존감 또한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향상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학교에서의 생활, 문화, 공부가 안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대체로 이런 학생들은 학교공부나 학교에서 중요시하는 공부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인생에 별 필요 없거나 재미없는 것으로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이것도 다른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공부라고 말하는 것에 포함되기 때문에 학교공부에 대한 인식 뿐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공부에 대하여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을 바라보거나 대입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에 따라서 학교생활 자체는 둘째치고 학교에서 주요활동인 학교공부에 대해서만 얘기해보면 학교공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이는 그냥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서로 다른 적성은 물론 경험이나 느낌을 받았던 사람들의 의견을 무조건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인간이 각종 사물이나 행위를 인식할 때 사용하는 방법을 통하여 원인을 밝혀보면 왜 학교공부에 대하여 상반된 입장을 취하는 지에 대한 답은 금방 나온다. 서로 학교공부에 대한 경험과 가치관이 다를 뿐인데 진짜 쟁점은 그것에 대한 이야기인데 공부에 대한 의의를 찾고 이야기를 나누기는 커녕 대다수 TV나 유튜브 등에선 공부라 칭하는 학교공부에 대한 조율점만 나오고 있고 공교육 사교육의 쟁점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정치인, 언론, 교육계는 물론이고 기성세대 젊은이들을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근원이 아니라 겉으로만 해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자체가 크게 바뀌어야 된다.

결국은 학생부터 성인까지 사회 구성원들이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학교공부와 혼동하지 않게 하며 최대한의 구성원들이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이끌어주는 것이 답이다. 학교공부를 통해 넓은 의미의 공부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그대로 하라고 하면 되고 학교공부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각기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편견없이 대하며 자아와 통찰력을 갖추고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사회 및 교육계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이 아닐까?
물론 넓은 의미의 공부를 실행하려면 방법이나 제도의 변혁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개개인에게 통찰과 깨달음이 필요하고 자기 스스로 생각하며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이여야 하기 때문에 모두를 바꿀 수는 없지만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있다.
학교공부를 공부라고 칭하는 잘못된 인식의 변화와 암기식 지식이 아닌 실용적인 지식을 가르치고 정답을 맞추는 것보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생각을 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성장시켜야 한다. 부모, 교사를 비롯해 교육자들의 인성도 가려뽑아야 하며 지금처럼 교육계가 과포화 상태로 서로 파이다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는 줄이되 참교육자를 선별하고 가정에 대하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참부모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어야 햐다.
이처럼 사회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많다. 핀란드나 덴마크같은 모범적인 교육선진국을 표본으로 삼고 앞으로의 세대와 건강한 사회를 위해 적용하려고 하면 한국도 분명히 할 수 있다.

학교공부라는 것 또한 다른 공부들과 마찬가지로 결국에 수만가지의 공부 가운데 하나인데 다른 길에서 넓은 의미의 공부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 하나의 잣대로 무수한 사람들을 평가하고 그 좁은 구멍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이를 통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공부에 대한 철학은 물론 현실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진학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예전이나 진학률이 매우 높고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지금사회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는 커녕 방침에 변화가 없으며 본질적으로 변화가 없다보니 사람들 자체도 이를 혼동하여 정형화된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엄밀히 따지고보면 현실적이지도 않으며 참 웃긴 일이다.

앞으로 태어날 세대에게 교육방침을 변경할 뿐만 아니라 그리고 현 세대에 억울하게도 그런 넓은 의미의 공부를 배우지 못하는데도 악착같이 살기위하여 그리고 넓은 의미의 공부를 하지 못했던 그 허전함조차 사회에서 말하는 공부를 통하여 보상받으려고 한 수많은 국민들이 이 나라에 존재한다. 세상도 사람들도 이건 서로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데 오해를 하고 있다.
좁은 문으로 몰아넣으려 하고 그 좁은 길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줄 알았고 자기 자식 세대는 그렇게 되지를 않기 바래서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순수한 내면이나 넓은 의미의 공부의 중요성은 인식할 수도 없이 말이다. 현대 대다수 한국인들은 삶에 치달려서 그리고 그것밖에 보이지 않는 환경속에서 돈과 사회적 지위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는 마음만 남은 채 질주하고 있다. 그러니 삶은 허전해지고 뭔가 마음은 편치않고 미워할 대상은 찾아야 되겠는데 누가 잘못했는지 어떤식으로 잘못했는지는 잘 모르니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도 겉으로 보이는 것에 일일히 서로 말로 다투고 혹은 신경이나 누군가를 바라보더라도 예민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건 뭔가가 뒤틀린 세상 속에서 살아왔고 뒤틀렸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뒤틀렸다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과 이 세상이 왜 뒤틀렸는지를 알고 그 원인을 자각하며 한 명의 자아와 생각을 지닌 인간으로써 고쳐나가야 한다.

9. 학교공부와 사회성[편집]

사회성이 우수한 학생들의 경우 학교, 학급, 또래그룹 등에 대한 소속감으로 심리적 안정감과 자신감을 가지면서 문제해결능력이 높고 성적과도 관련이 있다.

사회성이 떨어지면서 공부를 잘 하는 케이스도 많이 있다. 전교권인데 은따를 당하는 식이다. 일반 대기업 등 거의 대부분의 3차산업 직군에 취직하면 직장생활 부적응자 취급을 받기 쉽다. 즉 공부 잘한 사람들이 나중에 종사하게 되는 사회적으로 인기있는 직종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진짜 공부를 잘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단순히 수학문제를 잘풀거나 영어문장을 잘 해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보다 높은 성적을 받게 되면 분명히 주변에 자신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적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적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잡음을 최소화하는 처세술까지 잘 발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1][12]

앞서 언급되었던 전교권인데 사회성이 떨어져 은따를 당하는 식이라면 차라리 순수하게 공부로 승부를 볼 수 있는 학자나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은 직업군을 택하는 편이 좋다. 직장생활 문서 등에서도 꾸준히 강조하는 대목이지만, 아쉽게도 현실에 존재하는 직업 중 90%는 그레고리 하우스 같이 인간성, 사회성은 개판이지만 능력 하나로 다 쌈싸먹고 이런 게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웬만한 대부분 일은 꾸준히 시간을 들여 직무교육을 시키기만 하면 그럭저럭 밥값은 할 정도로 익숙해진다. 고용주는 돈을 잘 벌어줄 슈퍼스타를 선호할지 몰라도, 동료나 중간관리직은 슈퍼스타가 있어봤자 자기 월급이 오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끊임 없이 불화를 일으키고, 내부 단결을 저해하는 사람은 아무리 일을 잘하더라도 거대한 마이너스 요소라고 욕을 하게 된다. 심지어 학계나 전문직같이 이론적으로는 실력으로만 돌아간다는 직종 내에도 90% 정도는 그렇다. 그리고 까놓고 그런 곳들은 대부분 기본 이상은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실력이 통한다는 보장도 없다. 대학원생으로 몇년 지내 본 사람들은 연구실 내에서 혼자 설치는 인간들보다 지도 교수와 옆에 있는 학과 동료들을 기분 좋게 해주고 연구실 내 연대 의식 형성에 기여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사랑 받는다는 걸 알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자기 실력만 갖추면 남을 기분좋게 하지 않아도 인정받는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곳은 (1) 재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든지,[13] (2) 사회적인 평판이나 제삼자의 주관적인 판단과 무관하게 굴러가는 직업이든지, (3) 그 자리를 얻고 유지하는 데 운이 많이 작용하든지 등의 이유가 작용하기 십상이다. 이런 류의 직업 중 대표적인 것으로 개인 스포츠의 프로 플레이어들을 들 수 있다. 특히 심판 판정의 주관성이 개입할 가능성조차 없이 개인과 개인간의 점수내기로 100% 결정되는 종목들, 바둑, 장기, 체스, 골프 등이라면 당신에게 사회성이 없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런 분야의 재능은 대부분 철저하게 타고나는 것들이고, 어린 시절에 성공 여부가 거의 다 결정되어 버린다 라는 것.

사회성이 부족하여 왕따를 경험한 학생들의 경우 심리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어서 좌절하고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고 오히려 독기를 강하게 품게 되어서 성적에 더욱 몰두를 하게 하는 영향을 끼칠수도 있다. 하지만 독기를 품는 경우는 적어도 숨 쉴 구멍은 있는 경우다. 숨 쉴 구멍도 없이 괴롭힘 당한 학생은 공부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사회적 관계 형성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14][15] , 취학전 또래들과의 사회적 관계 형성을 통해 언어능력과 상황판단력 또는 눈치 등을 배우면서 취학후 학교에서 공부할수 있는 기본적인 반석을 쌓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공부는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대한 정확한 파악또한 중요한 점이 주를 이루는 점을 감안할 때 그다지 강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공부를 개인을 위한것이 아닌 같은 반의 모든 이를 위한 공부가 된다면, 적어도 경쟁 개념은 낮아지고, 지식의 수준이 평등해지기 때문에 뒤쳐지는 학생도 없는 적어도 사회성이 떨어지는 문제아가 나오지는 않을것이다.

하지만 입시를 위한 학교공부는 엄연히 단체전이다. 작게 보면 개인전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교내에서는 반끼리 경쟁하며 더 나아가서는 학교끼리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공부못하는 학생한테 체벌 등을 가하는 이유도 공부 못하는 학생이 팀워크를 깨뜨리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임도 자기 반이 꼴등하면 교장이나 교감으로부터 꾸중을 듣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시말서를 써야하는 경우도 있으며, 학교 전체적으로는 그 학생들이 학력평가 등에서 낮은 성적을 받을 경우 예산지원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게될 수 있다. 특히, 영재학교나 상위권 특목고를 비롯한 최상위권학교의 경우대학의 입학담당지들이 항상 주시하고 있으며, 그해 그 학교에서 올린 전체적인 성과 등이 커트라인에 반영된다.

하지만 반드시 "단체전"이라고 볼 수 없다. "단체전" "팀워크"란 이유는 또 무엇인가? 꼭 "단체전" "팀워크"가 실제로 중요한 요소일까? 강제로 지식을 욱여넣는 게 진정 공부를 말하는 것인가? 그리고 입시를 위한 학교공부가 왜 엄연히 단체전인가 인강도 있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재수하는 사람도 있다. 단체전이라고 해서 같이 남아 공부 하는데 제대로 이해도 안 된 상태에서 흥미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 수업시간에서 제시해준 개념을 막연히 외우려고 하고 언어생활이나 학문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나중에는 다 잊어 버린다. 학교는 장소만 제공해주고 거의 방치 상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수업한 그 당일마다 이해 못 한 아이가 있는 것 같으면 같이 방과 후에 선생과 남아서 모르는 부분을 체크하고 같이하고 보완하면 되는데 실제로는 장소만 제공해주고 일률적으로 등수를 나누는 상황이다. 이런 것은 낙인효과와 연계되어 개인에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

고3이란 구실, 명목으로 학생들을 몰아세우는데 그 이전부터 꾸준히 아이들의 모르는 부분을 보완해줬으면 됐을 일이다. 선생들 또한 사람이고 가족도 있으며 취미 생활을 하고 싶을 것이다. 고등학교 학생들이 야자를 하면 보통 오후 9시나 오후 10시 더 늦으면 12시 까지 하고 가는 경우도 있다. 외부와 단절되고 야간자율학습을 시킬경우 좁은의미에서의 공부인 흥미가 발화되지 않은 학교공부만 보게 만들어 학교공부외의 것은 저하되고 사회성을 떨어지게 만든다. 여담으로 그때 선생들도 같이 야자 감독을 하며 남아 있는데 자신의 시간을 야자 감독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책임감 의무 때문이란 말도 있지만 남들이 다하니까, 당번제로 정해졌으니까, 학교에서 시키니까 한다는 느낌도 사실은 강하다.

한국은 질문하는 문화와 거리가 먼 만큼 틀리는것이 창피한 게 아니란 것을 알려주고, 개개인의 적성과 흥미을 찾아주는 활동을 통해 보다 더 생동감 있는 삶을 살게 해주며, 공부는 꾸준히 하는 것이란 걸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이로써 학벌과 좁은 의미의 공부 실력이 아닌 그 사람의 행실을 보도록 만든다. 이 일련의 교육 과정이 사회와 사회성의 속성에 영향을 준다.

학교는 공부하러 모인 곳인데 학교가 아이들의 흥미와 재미, 적성을 고려하지 않아 수업이 재미가 없으니 공부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며 할 이야기가 없으니 다른 아이들을 욕하고 덜 떨어져보이는 아이들을 욕하게 된다. 그러고는 서로 싸우거나 뒷담화를 하고 학교에 있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술, 담배 같은 어른들의 좋지 않은 문화를 따라하고 또 탈선하게 되는 것이다. 탈선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즐겁게 하여 스스로 탈선하지 않게끔 인도하는 학교가 되게 해야한다. 결론적으론 흥미와 재미를 이끌어내고 즐겁게 공부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기를 수 있는 학교, 자신감을 길러줌으로써 사회성 또한 상승시킬 수 있는 학교가 먼저 되어야 한다.

자녀가 아스퍼거 증후군, ADHD 등 정신병적인 원인으로 사회성이 또래들보다 떨어질 경우, 성적과 관계없이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및 치료를 통해 사회성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가야 한다. 치료 없이 공부를 시키는 것만으로 출세시키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하다못해 정신과적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학업만 시키다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리고 그 칼날은 부모를, 또는 사회를 겨누게 되기에 장기적으로는 결코 좋지 않다. 닫힌 사회가 결코 성장할 수 없듯 우물 안 개구리 역시 결코 성장할 수 없다.

공부의 넓은 의미에도 나왔듯이 건전한 취미생활을 하나 갖고, 국내여행도 하고, 영화관람, TV 시청도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성 향상을 위한 공부다. 학교에서 수업듣는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다. 겉에서 보기엔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놀 때는 놀아야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성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학업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

해외여행, 여러 가지 대외활동 및 취미 아르바이트 또한 좋은 사회 공부가 될 수 있다.

10. 계층이동과 공부[편집]

대한민국의 입시 경쟁은 이미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부터 내려져 오는 유서깊은 전통이다. 신분에 따라 현실적 제약은 있었지만 양반에서부터 평민까지 과거제도를 보고 합격만 하게 된다면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양반은 3대가 넘도록 급제하지 못했을 경우 양반 취급을 받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이걸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 한국은 집성촌을 기반으로 한 씨족사회였고 꼭 집성촌이 아니더라도 오랜기간 동안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경우가 많으며, 이에 한 마을에서 장원급제자가 나오면 그 마을 사람들이 그 장원급제자를 삼아 각종 부정부패 등 나쁜 짓들을 저지르기 쉬워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대에도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당선자의 생가와 고향에서 큰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아니나 다를까 실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의 생가나 고향마을은 임기 기간 동안 살기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시골에서 손주가 행정고시 등에 합격하면 동네 잔치를 성대하게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한다. #[16]

이후에 뿌리박힌 전통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대학 진학만이 신분상승 내지 계층 이동이 가능한 유일한 길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고, 이후 대학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지금은 위와 같은 사고방식이 명문대학 진학이 곧 신분상승 내지 계층이동, 혹은 유지를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으로 살짝 바뀌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다만 교육사회학적으로, 교육이 계층 이동 가능성을 더 줄인다는 관점도 존재한다. 부유한 부모의 자식이 더 많은 기회를 갖고 부를 쌓아 자기 자식에게 다시 그걸 물려주고, 가난한 부모의 자식은 반대의 경우가 되는 빈익빈부익부의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인강의 등장으로 이 주장또한 설득력을 잃고있는 중이다. 오히려 몇몇 조사결과에 따르면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사교육에 의존할 시간이 없는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교과서나 개념서 또는 문제집을 푸는데 주로 시간을 쓰지 학원에 많을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그리고 중산층 이상 계층의 아이들이 입시에서 큰 성과를 내는 데는 중산층 이상 계층의 의사표현 방식도 영향을 주고 있다. 서민이나 빈곤층에서는 직설적 표현이 많은 반면 중산층 이상에서는 화자의 실제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완곡표현이 주를 이룬다. 학교 시험문제를 잘푸는 것의 핵심도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인 만큼 이러한 중산층 이상의 아비투스 역시 학교 성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1. 공부도 타고나야 한다? [편집]

운동선수가 되려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학교공부에도 유전자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17][18] 오히려, 다른 분야보다도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연구가 있다. 수학의 응용문제를 봐도 알 수 있듯이 학교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결정짓는 것은 독해능력에 달렸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잘하는 아이들은 귀로 소리를 듣는 것뿐만이 아니라 소리를 정확히 듣고 인지를 하여 이에 대해 적절한 행동을 하게하는 능력인 청각지각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19]

이 청지각능력은 경청에 있어서도 기본이 되는 요소이며, 이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공부뿐만 아니라 사회성 등에서도 남들보다 뛰어난 경우가 많다. 사실 이 부분은 운동선수가 되기위한 요소인 근소포체와 비슷하다고 볼수 있으며, 근소포체의 경우처럼 유치원때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훈련을 통해 어느정도 향상시킬수 있긴 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컴퓨터로 비유하자면 TXT, DOC, HWP 등 문자 또는 문서 파일을 JPG, GIF 등 이미지 파일로 변환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는 셈이다. 즉 애시당초에 국어를 못하면 다른 과목도 못하는 것이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문이과를 막론하고 상위권 이상의 학생들은 언어영역에서 강세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20][21] 언어영역의 경우 어느 정도 외워서 해결할 수도 있는 것 외워야만 하는 것[22]도 있지만 언어능력[23]이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국어공부를 거의 안 해도 성적은 그런대로 잘 나오는 경우도 많다. 한국인이 한국어 잘한다고 생각하면서 국어를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아마 KBS에서 주관하는 한국어능력 시험 쳐보면 우리말 어눌하게 하는 외국인 수준이나 그보다 더 낮은 점수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어능력 시험까지 안가도 당장 우리말 겨루기 보고 어려워했던 경험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 연구결과는 교육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자들은 고객(학생)이 줄어들까봐 고객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을 생각해서 말을 해 봐야 학부모가 그걸 받아들일 리도 없다. 모 유명 입시학원 강사[24]는 학생들에게 '난 이미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솔직히 얘기해주는 건데, 난 여러분이 여기에서 돈낭비하는 게 너무 슬퍼. 공부는 해도 되는 놈,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놈이 정해져 있는데 여기 있는 학생들은 대부분 후자야'라는 솔직하지만 고객들의 기를 죽일 수도 있는 말을 했는데 고객이 줄어들지가 않는다고...

하지만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공부가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렇게 공부가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은 대다수의 학부모들이 자기 자녀가 천재인줄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80년대 이후 더 두드러졌는데, 그 이유는 이 시기 이후로는 대다수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녔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교사들이 학부모 면담때 자녀의 더 많은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은폐하고 극소수의 장점만 나열하고 여기에 어느 정도의 픽션을 보태 천재라는 식으로 립서비스를 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아이가 뇌성마비자폐증같은 중증의 장애를 앓고 있는데도 그렇게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당연히 아이가 진짜 천재라서가 아니라 유치원 입장에서 원생은 그저 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이에 대해 나쁘게 말할 경우 해당 학부모는 다른 유치원으로 옮겨버릴 것이고, 더 나아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해당 유치원에 대해 안좋은 소문이 퍼져 유치원이 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등학교 교사, 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사, 대학교 교수는 진실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공무원이기에 안 좋게 말해도 흉은 들을지언정 회사를 짤리거나 학생을 잃게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초등학교, 학생이 공부를 통해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미리 판별해서 공부에 적합한 학생은 일반학교인 김나지움으로 진학을 시키고 부적합한 학생은 일찍부터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직업학교로 보내도록 하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도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는 시기에 시험을 치는데, 이 시험의 커트라인을 넘는 학생은 정말 극소수며, 대다수의 넘지 못하는 학생들은 나중에 대학 입학지원 자체가 금지된다.[25]

부모님이 사용하는 마법의 말들 중 하나. 지금 뭘 하고 있든지 간에 "공부나 해라." 한마디면 전부 쓰잘데없는 일이 된다. 그런데 가끔 학생이 공부에 의욕을 보이고 부모가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면서 학생의 공부를 방해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가끔 자신이 너무 놀 생각만 하고있다며 자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잘 쉬는 것도 에 정말 중요한 것이다. 상위권 학생이라면 잠시 쉬어가며 배운것들을 잠시 복습하는 하루를 가지고 2~3일 정도는 기본적인 공부만 하며 쉬어보는 것이 어떨까.

유튜브 등지에선 의욕을 자극하기 위한 영상들도 존재한다. 의욕을 자극받기 위해 수험생들 사이에서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영상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SNS에서 공유가 활발한 편이다. 보고 난 뒤에는 또 다른 유튜브 컨텐츠를 보겠지 몇몇을 빼고는

공부를 취미로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공부를 취미로 한다고 볼 수 있다. 게임 전술을 만드는것도 공부고 심지어 똥을싸고 처리하는 과정도 공부이다. 공부라는 것는 상당히 포괄적인 단어라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 사람들은 학교공부만을 공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보고있으면 학생의 유형이 노력파와 재능파(?)로 나누어진다. 노력파는 정말 보는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자기가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리는 경우.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력파는 천재를 이기기 힘들다.[26] 공부량이 머리 좋은 사람의 몇배는 돼야 하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운동 좀 잘하지 못해도(못하는 경우는 가망없지만...) 노력하면 동네에서 축구 좀 하는 사람 정도는 될 수 있지만 선수가 되지는 못하듯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까지는 갈 수 있어도 공부로 먹고사는 것은 불가능.[27]

분명 공부를 함에 있어서 노력파와 재능파로 나누는 경우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재능이라는 것은 전 분야에 걸쳐 하나의 객관적인 수치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뇌의 발달 정도 또한 어느정도 지병, 손상, 극악의 유전 확률이 아니고서야 그 격차가 일반적으로 크지 않기 때문에 원하는 성적을 얻는 데 있어 노력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영역이다.[28]

1. 분명 공부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성적이 상위권내지 최상위권이다. → 이 경우 크게 간과한 것이 있는데, 대부분은 친구와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분명 친구가 공부하는 적을 본적이 없겠지만 그것도 같이 있을 때만을 전제로 한 경우이고, 사실은 그 친구를 본 적이 없는 시간에 나자신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들인 경우이다. 쉽게 말하자면 놀 때는 딱 놀고, 공부할 때는 딱 공부할 줄 아는 방법및 노하우를 자신에게 맞게끔 터득한 것.
2. 시험 2주 전에 암기 과목에 대해 질문하면 모르는데 2일 전에 질문하면 다 안다. → 이 경우는 벼락치기.
3. 최상위권 재능파는 뭐든 잘 한다. → 이 경우 어렸을 때부터 공부습관및 집중력, 누적 공부량, 독해력,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을 충실하게 쌓아온 경우가 상당수이다. 이러한 것들을 토대로 공부를 잘 하는 법과 공부에 최선을 다 하는 법을 본인에 맞게끔 터득해놨기 때문에 다른 것도 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교 최상위권 아이들치고 무언가를 건성건성하는 경우는 보기가 힘든 것을 생각해보자.
4. 그냥 딱 봐도 잘 한다. → 첫인상 심리와 관련이 깊은 문제.
5. 분명 공부 하나도 안 하고 시험치기 10분 전에 책만 훑어봤는데 나보다 잘봤다. → 이 경우는 어릴때부터 선천적으로 독해력, 논리력 등 언어능력과 공간지각능력, 수리추론력, 연산능력 등 수리사고력이 매우 뛰어난 경우 또는 어릴 때 쌓아올린 공이 커서 기본 상식이 풍부하거나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주구장창 읽어서 독해력을 높인 경우 또는 고등학교 입학전까지 미리 영어, 수학, 과학 등 주요 과목 위주로 고교 3년 분량을 제대로 공부해놓고 오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는 자기딴에선 공부 열심히 한 것이 맞는데 공부 아예 안했다고 거짓말을 한 경우.공부량 역분식회계[29]

11.1. 공부 유전론의 해악[편집]

공부는 유전이 결정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유전론은 공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맹신하게 되면 공부를 잘하면 조금 공부해도 좋다고 생각하여 공부를 소홀히하게 되고, 공부를 못하면 쉽게 포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제대로 된 공부법을 알아 공부를 잘하게 된다고 해도, 공부를 못한 사람을 가능성 없는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하거나, 신분제를 공고히하는 논리로 쓰일 수도 있다. 잘 못 가르치는 교사가 네가 멍청하거나 의지 박약이라 공부를 못한다며 학업 부진의 책임을 학생에게 돌릴 좋은 핑계거리도 될 수 있다. 이는 정말로 재능이 있는 사람조차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30]흙수저 수능 만점[31]

세상에는 공부를 약간만 해도 남들의 몇 배의 성과를 내는 사람, 두뇌 회전이 남들보다 몇 배는 빠른 사람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공부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너무 시시한 학업에 지루함을 느끼거나, 고압적인 환경에서 스스로 위축된 경우, 학습 방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학습부진 영재 고지능자 문서를 봐도 알겠지만, 지능이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라도 학업에 탁월한 성과를 보이기도 하지만, 안 그런 경우도 부지기수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공부에 최적화된 지능은 멘사 가입기준(IQ 약 상위 2%)보다 약간 낮은 상위 5%~15%라는 주장도 있다. 멘사코리아 전 회장 지형범 씨의 글

손주은은 수능 강사로 유명했던 시절 공부 재능론을 역설한 바가 있다. 윗 문단은 이런 얘기를 쓴 것으로 보인다. 돈 낭비가 슬프다는 말도 손주은이 한 적 있다. 고객이 줄어들까봐 이런 사실을 말을 하지 않는다는데, 스터디코드 대표 조남호 등 유명한 사교육 시장의 교육자도 이런 말#을 한 바가 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이런 발언은 수입을 줄어들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돈이 많거나 좋은 공부법을 아는 사람들의 환경을 대물림시키는 일을 조장하는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돈이 많거나 공부 잘한 부모를 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며, 그 사람들만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 '나는 공부를 잘했으니 우리 자식말고 다른 자식은 공부 잘 할 생각마라'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손주은도 노력의 중요성과 학습 동기를 학습시킨 금식 기도하시는 할머니가 계셨다.#

손주은의 재능론을 비판하는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의 댓글을 보면, 공부가 재능과 집안 특유의 양육[32]이 결정한다는 인식은 허구라고 하고, 이런 인식을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가정환경이라는 것은 돈으로 밀어붙이는 면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공부는 유전된다면서 자주 인용되는 기사가 있다. 더쿠 공부에서 선천적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96%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96%는 선천적 재능 을 가리킨다고 수정된 바 있다. 기사 원문 단순히 들인 시간 뿐이 아니라, 피드백도 중요하다는 내용도 언급이 되어 있다. 그래도 기사 첫 문단은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연구의 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원 연구의 퍼센테이지가 선천적 재능을 언급하지 않았을 뿐더러, 연구 자체에 허점이 있다는 주장이 있다.##

위에서 언급된 유전력 연구는 영국에서 정말 있던 연구는 맞다. 그런데 이 연구는 환경과 결합된 유전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한 연구다. 중등교육 수료시험(GCSE)이라는 시험을 잘 보았는가로 학업성취도를 파악하였는데, 이는 영국의 교육제도와 교사의 평균적인 교수법에 맞는 성격을 가진 것까지 유전으로 포함시킨 것이다.원문 60~70%의 유전력이라는 해석도 영국의 교육이라는 특정 환경과 시간에서 평균적으로 공부 잘할 확률을 올려주는 유전자가 있다는 뜻이라, 예외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유전력이 99.9%라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이 연구에서는 유전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모두 환경으로만 설명한다. 교육 제도가 굉장히 효율적이고 공평하여 모두의 특성에 맞게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모든 사람의 학업 성취도가 좋아진다 해도 학업 성취도의 차이를 유전만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연구는 성적의 상대적인 차이를 비교한 연구다. 모두가 위의 GCSE라는 시험을 잘봐도 차이는 생기기 마련이고, 차이가 있다고 해서 자신이 공부를 더 잘할 수 없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연구는 어떤 방식으로 훌륭하게 공부해도 소용없는 일반인이 있다는 걸 말하지 않는다.[33] 겉으로 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단지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으로 적절한 환경에서, 적절한 시간을 들여 제대로 공부한 것일 뿐이다. 그것보다는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 태어나면서 공부머리의 차이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자신이 머리가 나빠 공부를 못하는 것 같으면 지금보다 공부를 더 좋은 방식[34]으로 하면 된다. 그러면 남들보다 많은 노력을 했을 망정 결국 공부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수월해진다.

교육학적으로는 개인의 특성에 맞는 교육이 있어야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는데, 이를 좀 더 고려한다면 소질이 없다고 여겨지던 학생도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거나, 난독증 같은 공부를 방해하는 정신 질환을 치료하여 공부를 잘하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지능, 끈기 같은 것도 바꿀 수 있다. 게다가 아래에도 설명하겠지만 이 글을 보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다. 이는 뇌가 변하는 성질인 '가소성'으로 설명이 된다. 난독증의 유전과 치료유전력이 강한 것으로 보이는 특성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영문)

공부는 재능으로 결정된다는 인식이 학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도 심리학계에 널리 보고된 바가 있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이론이 캐롤 드웩의 마인드셋 이론이다. 이 이론은 자기 존재에 대한 믿음을 '고정형', '성장형'으로 나누는데, 자신의 지능과 같은 특성이 변치 않는다는 믿음을 '고정형', 변한다는 믿음을 '성장형'이라고 한다. 수학 성적이 떨어진 학생들을 수학 공부법만을 가르치는 집단, 공부법에 '성장형' 마인드셋을 가르치는 집단으로 구분하여 실험을 한 결과, 유의미한 성적 향상을 보인 집단은 성장형 마인드셋을 가진 집단 뿐이었다는 것이다. #

이 밖에도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마음인 '자기효능감'[35]도 학업성취에 중요하다는 연구국내 연구#가 있다. 단, 무조건 노력만 강조하기보다는, 노력을 하려는 시도는 학업에 유익하다고 보고, 좋은 학습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이 이런 연구에서 언급하는 부분이다. 무작정 효율적 방법을 찾는 대신 강압적인 노력만을 강조하는 노력 지상주의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에 대한 대응으로 재능론을 주장하는 것도 개인의 발달을 저해시킨다는 뜻이다.

독일# 등 서구의 몇몇 국가와 일본에서 직업교육을 시키는 것도 단순히 학생을 걸러내기 보다는 경제상황에 맞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측면, 또는 예전부터 이어져 온 방식을 답습한 측면이 크다. 한국에서 이런 제도가 잘 도입이 되지 않는 이유는 '직업학교에 가는 것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품격이 낮다'는 귀천 의식 등 다른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직업학교에 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교육, 넓게 보면 독일 교육은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을 직업학교로 내치는 성향이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한국의 초등학교 격인 소학# 때 갈라지는 진학의 기회를 위해 부모들이 공부를 많이 시킨다. 이 정도의 경쟁 시스템은 싱가포르말고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시스템이다. 독일의 교육도 어렸을 때 소질을 파악하는 노력을 하고 우열을 나누지만, 대학에는 우열 의식이 옅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구분하는 이런 시도에 대해 유리천장과 다름 없다는 비판적인 의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특히 핀란드를 위시한 북유럽의 국가에서는 도태 위험이 있는 사람을 위한 교육이 활발하며, 상대적인 서열을 중시하는 교육에 소극적이다.

모두에게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유교적인 가르침[36]에 따라 교육에 집중했던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고, 이는 다른 유교 문화권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고도 성장이 끝나가면서도 획일화된 기준으로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게 하는 지금의 교육 풍토는 많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공부가 아예 안 될 사람을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부 방법을 모르거나 흥미를 잃은 사람에게 가르치는 사람이 생각없이 강압적으로 공부를 시키는 것, 공부를 의대나 명문대 로스쿨 진학 등의 안정적인 고소득의 직업을 위한 출세의 수단, 남들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풍토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전론이 공부를 잘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은 비도덕적인 일, 더 나아가 사회에 해가 되는 일을 정당화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 공부에 꽤 일가견이 있었던, 국정농단의 주범이었던 우병우의 사례가 이를 대변한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 또래에게 공부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며 핀잔을 주었다던 주장#이 있고, 승진도 오만하다고 밀린 적이 있다고 한다. 앞에서 이준구 교수가 이를 반대했던 배경도 여기에 있던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잘못된 공부 방법으로 공부를 하다가 공부 자체에 흥미를 잃거나 잃을 뻔한 경우#가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도 관찰되고, 출세의 범위를 좁게 잡고 다양한 성공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다보니 최근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와 체념을 터득하는 것이다.#

지금의 교육 세태는 마치 콩쥐팥쥐에서 보듯 콩쥐에게 산비탈 자갈밭의 김을 매라고 하며 나무 호미를 주는 일, 밑 빠진 독에 물 채우기 같은 일을 시키는 세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좋은 도구를 주거나 독의 구멍을 막아주듯 누가 도와주지 않는 한 포기가 합리적이고, 그 결과 윗 문단 같은 정서의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맡은 일을 즐겁게, 사회가 강요하는 일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공부가 필요한데, 사회는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다양한 가치를 서로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공부에는 재능이나 비효율적인 노력을 강요하는 것보단 자기 성찰을 강조하는 합리적인 공부를 지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12. 유해한 공부[편집]

삶에 도움이 되는 공부도 있지만 유해한 공부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유사과학이나 모르면 공부하세요, 사이비 종교 신천지에서 주기적으로 벌이는 대규모 시험이 있다. 사이비 교리만 공부하느라 실생활에 필요한 것은 배우지 못하는 세뇌된 신도로 인생을 낭비하는 공부니 사기단체에서 주관하는 공부라면 절대 가지도 하지도 말아야 한다. 악마

13. 공부 조언[편집]

[A.] 포괄적인 공부에 대한 공부 관련 조언을 담은 문서[B.] 수험용 공부에 최적화된 공부 및 생활 관련 조언을 담은 문서

자기 계발서에서 공부 조언 등을 기재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참고용으로 한번 훑어보는 것 이상으로 맹신할 필요는 없다. 자기 계발서 등은 책을 팔기 위해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자극적인 요소만을 담아 편집하며, '사회의 어두운 면(빈부 격차, 지역 격차 등)'은 눈을 감고 모른척 하고 그에 대한 어떠한 코멘트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 학습 비법, ~~몇 달만에 끝내기'' 등으로 광고해대는 경우가 많은데, 공부에 필요한 기본 생활비와 주거 환경 및 빈부 격차, 지역 간 격차, 부모의 소득/직업따른 환경 격차 등은 절대 기재하지 않고 그냥 하나 마나한 소리를 조언이랍시고 적어놓고 광고하며 책을 팔아 먹는 경우가 너무 많다.

14. 관련 문서[편집]

[1] 이이가 젊은 시절 자신을 깨우치기 위해 썼다는 '자경문'에 나오는 말이다.[2] 이이는 구도장원공으로 이름을 날린 수재였다.[3] 우리가 아는 쿵후의 한자표기가 功夫다.[4] 여기에서 파생되어, 해당 한자어는 일본어에서 '값을 깎다'라는 의외의 뜻으로도 사용된다. 발음도 똑같이 '벤쿄'다. '(상인 입장에서) 손해보더라도 최대한 값을 깎아준다'의 의미에서 나온 표현으로 보인다.[5] 이것을 간과하면서 생기는 게 경쟁 만능주의자살, 청년실업 같은 심각한 사회 현상이다. 애초에 학교는 별의별 학생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장소이며 더 나아가서는 사회의 모든 인원과 협동, 경쟁 등을 가르치는 곳이지 돈을 어떻게 벌어야 된다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대한민국 입시 교육의 문제점도 이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부를 안 해서 아이가 경쟁에서 뒤떨어진다.→우리 아이는 공부도 못 하는 패배자다.'라고 보는 사회적인 시각도 학교 공부의 문제점을 키우는 데 한몫 거들었다.[6] 자영업 (고깃집 주인, 채소집 주인, 생선집 주인, 과일집 주인, 빵집 주인, 카페 주인 등), 투자, IT (개발자, 해커 등), 인터넷 유명인 (BJ, 유튜버 등), 연예인, 예술인 (작가, 화가 등), 운동선수, 프로게이머[7] 하지만 예체능계에서는 자기 실력을 갈고닦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목이 다를 뿐 다 공부이고, 정주영 같은 경우는 시대상을 감안해야 하기는 하다. 사실상 정규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어도 돈 버는 공부를 하면 통한다가 맞는다. 그리고 정주영은 학벌콤플렉스가 꽤 심했다. 정주영의 경우 아들 정몽준이 서울대에 들어갔을 때 엄청 기뻐했다고.[8] 다만, 한국인이 5천만 명이고 미국인이 3억 5천만 명이라는 점, 한국인의 평균 소득과 미국인의 평균 소득 사이에는 약간의 차이가 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국 단위의 IT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시장의 규모 면에서 약간(?)의 차이(약 10배)가 있다는 걸 생각해두어야 한다. 정말 성공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IT 벤처 아이템이 있으면 미국 실리콘밸리로 떠나는 게 나을 거다.[9] 그래서인지 요즘은 공부가 머니? 라는 프로그램도 있다.[10] 학습부진아의 경우 정규 교육 과정에서 싱가포르처럼 직업교육 등 다른 루트나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닌지라 학교 교육을 포기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것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 정규 교육 과정을 벗어나는 것은 큰 위험부담이자 모험이며,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견뎌내야만 한다. 래퍼 Dok2는 초졸이지만 래퍼로서의 능력 하나만으로 성공, 십억 단위의 돈을 벌며 롤스로이스를 모는 부자가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오는 위험과 멸시적 시선들은 다 자신이 극복해내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상당수가 이런 선택을 말리고 있다. 모든 위험 부담은 학생 자신이 감수해야 하며, 일말의 사회적 도움조차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재능을 발견하지 못하고 대학 입시로 뛰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조차도 다양하지 않다.[11]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인성이 좋다는 선입견이 생기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인성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이런 처세술을 위해 이미지 메이킹과 감정노동을 잘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12] 금수저 출신 엄친아들이 코이카 등에서 활동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13] 참고로 뇌도 솔직히 물리, 생물학적으로 특별할 것 없는 기관이라 각종 측정에서 사람마다 차이가 나타나며 스포츠라면 몰라도 지적 능력에서는 체급 같은 제한이 없다. [14] 오히려 탈선의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15] 참고로 사회성의 학술적 의미는 "사회적 성숙, 타인과 원만하게 상호작용하는 능력, 다양한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에 있기에 사회성이 좋은 학생들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할려는 성격을 띄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남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할려고 한다. 실제로 전교권에 들 정도로 공부잘하는 학생들은 최소 자기가 다니는 학교 교내에서는 유명인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16] 지금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집성촌의 학생들이 비집성촌보다 공부 문제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 경우가 많다.[17] 학업성취도의 유전력 (heritability)은 약 60%~70% 정도로 잡힌다. 공부의 70%가 유전의 영향이라는 말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 집단 A의 평균 시험 점수가 80점이고, 집단 B의 평균 점수는 60점이라 치자. 이 두 집단의 차이의 60-70%, 즉 총 20점 차이중에 12-14점이 유전자 때문이라는 소리다. 참고로 키의 유전력은 60-80%, 머리색과 눈색은 100%, 성인의 지능은 80%, 대머리는 40% 정도다. [18] 쉽게 말해서,경운기에 아무리 좋은 부품을 끼워도 F-1머신을 레이싱으로 이길 수 없다.[19] 대부분의 교사나 선생들이 말하는 것으로, "진득하게 앉아서 참는 것도 재능"이라는 말이 있다. 노력으로 때우면 된다고 할 지 모르지만 앉아서 책을 잡고 진득하게 참아내는 힘은 타고 나는 쪽이 유리하다. 묶어 놓아도 하기 싫다는 아이는 공부 하지 않듯이, 앉아서 참는 것 역시 재능이다.[20] 물론 예외도 있다. 다른 과목 성적은 높지만 유독 국어 성적만 잘 안오르는 학생들도 있다.[21] 같은 까닭으로 어려서부터 또래에 비해 압도적으로 타고난 언어능력을 보이는 경우 나중에 공부를 잘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어릴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은 경우에도 나중에 공부를 잘 할 가능성이 생긴다.[22] ~의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은 문제의 경우[23] 여기서 말하는 언어능력은 독해력, 논리력이다.[24] 심지어 이 분은 옛날에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에서 첫 단계 자세가 나오지 않는 학생들은 부모님의 동의서를 받고 밧줄로 의자에 묶어버렸다고 했는데, 이는 공부가 타고나는 것인지 아닌지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었을 것으로도 분석된다. 공부가 타고난다는 주장도 자신이 직접 이러한 실험들을 실행해보면서 나온 결과니까.[25] 하지만 싱가포르의 교육 제도가 문제인 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성적이 낮은 상태였다가 나중에 공부 의지가 생겨도 이미 국내 대학은 갈 수 없게 되어 대학을 가려면 무조건 해외유학을 가야 한다. 또 초등학교 시절 성적이 인생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유치원생, 초등학생인 자녀한테 공부하는 기계 수준으로 공부를 시키는 부모들이 많다는 문제점이 있어서 싱가포르의 교육은 절대 한국보다 낫지 않고 오히려 한국은 2009년 공부의 왕도에 출연한 중3 겨울방학부터 성적 때문에 안양예고 응시에서 떨어진 일을 계기로 공부하기 시작해서 심화반에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보스턴 대학교에 간 최보희, 실업고에서 Y대를 간 김수영(작가), 그 외 유튜브 등지에서 떠돌아 다니는 전교 꼴찌에서 명문대 입학을 한 사례가 많이 있어 좀 늦더라도 노력하면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26] 정확히는 어느정도 노력하는 천재를 이기기 힘들다고 볼 수있다.[27] 이는 대학원이상으로 갈 경우 느낄 수 있다.[28] 흔히 사람들이 알고있는 IQ 또한 지능 발달 지수일 뿐 재능 수치 그 자체라 보긴 힘들다. 물론 IQ 와 시험 성적의 상관관계는 분명 존재하나 그 상관관계의 정도는 강한 관계가 아니다. 쉽게 말해 아이큐가 높은 사람일 수록 공부를 잘 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낮은사람일수록 공부를 못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것이 절대적으로 아이큐가 높으면 반드시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29] 상위권및 최상위권 학생 치고 "나 공부 열심히 했다"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공부를 해봤으니 자신보다 똑똑한 사람들을 많이 경험해서 자만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맞지만 사실 시험을 망쳤을 때의 자기합리화를 하기 위해 보험삼아 해두는 경우가 많다. 시험치고나서 시험망쳤다 하는 친구들이 알고보니 하나 두개 빼고 다 맞거나 만점을 받았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30] 멘사 회장이었던 빅터 세리브리아코프는 자신의 IQ가 73이라는 말을 듣고 말을 더듬고 바보 취급을 당하며, 중학교만 졸업한 채 아버지의 정비소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의 IQ가 173이었다는 말을 전해듣고 용기를 얻었으며, 국제멘사협회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31] 이 기사의 주인공 송영준 군도 고등학교 때 뒤에서 2등을 한 적 있고, 한때 공부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공고 진학을 바란적도 있었다. 그는 선생님 등 주변의 도움으로 학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수능에 맞는 교육을 하는 외고에 진학한 것도 수능 만점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지만, 공부 의지를 유지하게 할 환경이 뒷받침되면 흙수저도 수능을 잘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32] 이 교수는 '심리학자나 사회학자가 말하는 nurture'라는 표현을 썼다.[33] 실제 연구에서도 유전력이 변경 불가능성(immutability)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점도 강조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고, 핀란드의 사례에서 보듯 거의 모든 학생이 기본적인 학업 성취도 가능하다고 언급한다.[34] 공부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적절히 쉬는 것, 효율적 암기법의 사용일 수도 있다. 그 이외에도 많은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35] 캐나다의 심리학자 앨버트 밴듀라의 이론에서 따온 개념이다. 엄연히 교육심리학 교재#에 나온 내용이다. 자기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학업에 도전적이며 적극적으로 임하고, 그 결과 높은 학업 성취를 이룬다고 한다. 적절한 학습 전략을 공부하고, 성취감을 느끼는 공부를 하며, 성과가 노력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어야 이를 높일 수 있다고 한다.[36] 누구나 노력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유학의 관점이다. 정창손이 이런 관점을 거부하여 세종의 분노를 사 파직당한 것이 이런 가르침이 배경에 깔린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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