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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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
2.1. 科學2.2. Science
3. 종류4. 어록5. 각종 오해와 통념들6. 기타
6.1. 과학 드립
7. 창작물에서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Science

자연 현상과 인간 사회를 체계적으로 관찰하여, 그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보편적인 법칙 및 원리를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행위와 이에 대한 방법론 그리고 이 둘의 결과로 이루어진 체계적인 지식이다. 철학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방법론을 이루게 된 학문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범위가 넓은 학문이며, 보통 자연과학을 칭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과학의 역사를 과학사라 하며, 과학에서 쓰이는 방법들을 과학적 방법이라 부른다. 또한 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하는 학문을 과학철학이라 부른다.

2. 어원[편집]

2.1. 科學[편집]

科學(과학)이라는 단어는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위한 학문을 줄여서 과학이라 불렀고, 1874년 명륙잡지(明六雜誌)에 연재된 《지설(知說)》이란 글에서 일본의 교육자 니시 아마네(西周)가 처음으로 사용했다. 물론 당시에는 Science의 뜻이 아니라 '전문화되는 각 분과(分科)의 학문(學)' 이란 정도의 뜻으로 쓴 표현이었다.[1][2]그러다가 Science 로서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는 과학(科學)은 적절치 않고 '격물학'(格物學)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 논쟁의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일컫는 바와 같다.

2.2. Science[편집]

한편 과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 'science'는 라틴어 동사 scire(알다)의 명사형 scientia(앎, 지식)에서 유래됐다.

어원적으로 보면 과학은 특정한 지역의 철학에서 비롯한 방법이다. 고대철학을 분류하는데 있어 그리스의 철학을 자연철학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그리스인들의 철학이 매우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에만 몰두하는 성격을 가졌다.

다른 철학들은 뭐가 다른가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식 자연철학을 이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동아시아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자연의 일을 설명하기 보다는 유교와 도교에서 보이듯이 인간의 행동과 도덕, 정치에 관한 관심에서 이루어졌다.

제자백가라 불리는 수많은 철학체계 속에 인간의 심리와 올바른 행동. 군주의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없는 반면에 자연 그 자체를 설명하고자하는 관심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부차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과학자라기 보다는 사상가에 가까웠다.

중동의 철학 역시도 현대의 3대종교를 낳은 것을 봐도 알듯이 인간의 내세와 도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신의 모습과 의도. 역사. 위대함과 속성에 대해 논의했고 세상의 근원을 탐구했지만 그건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언가라 부를 수는 있어도 과학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의 지식인계층은 다른 문명과 달랐다. 그들은 인간 자체에 대해서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문명에 비해서는 놀랄정도로 무관심했다. 그들의 주된 토론 주제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였다. 그들은 불이 세상의 근본인지. 물이 세상의 근본인지. 4원소가 세상의 근본인지. 작고작은 원자가 세상의 근본인지. 아예 물질화할 수 없는 개념인 이데아가 세상의 근본인지. 존재하지도 않는 이데아가 아니라 그것을 채우고 있는 진흙덩어리, 질료가 세상의 근본인지를 집요하게 탐구했다.

언론학에서 일단 제일 먼저 누가 질러놓으면 그것에만 떠드는 성격을 흔히 '아젠다'라고 하는데 그리스의 지식인들의 아젠다는 심성이나 종교. 정치. 기술보다는 세상을 구성할 수 있는 근원과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탈레스라는 사람이 자연철학의 최초의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 그는 물을 답으로 내놓았지만 알다시피 틀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의의는 물이라는 오답에 있지않다. 질문이었다. 도대체 세상은 왜? 어떻게? 이루어져있는가? 이다. 현재로서는 이게 뭐가 특이한 생각인지 의아하다고 할 수 있겟지만 그건 놀랄정도로 그리스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를테면 동아시아처럼 사람이 어덯게 살아야하는가? 라던가 중동처럼 세상을 누가 조종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실용적인 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보이는 세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서 한문명의 지식인들이 그걸 가지고 몇천년간 키배를 한 것에서 과학이 탄생했으니 그 질문의 의의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을 가리켜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의미는 크다.

한국어로 학문과 과학이라고 다르게 표현하지만 어원적으로는 모두 자연학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이 자연을 연구하면서 발달시켰던 방법론과 설명방식을 모든 방식에 적용하면서 사실상 자연철학 자신은 사라졌지만 대신 존재하는 모든학문을 자연철학의 방법에 종속시켰다. 그렇지 못한 학문체계는 반과학/사이비과학/야만으로 몰아내었으며 학자에 관점에 따라 다르지만 아직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만 사회인문의 이름을 붙여 격리했다.

과학의 많은 부분이 변했지만 이러한 '그리스 철학'에 대한 존중으로 학문분과의 명칭은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 대학을 의미하는 아카데미라는 단어는 그리스의 교육기관인 아카데미아를 그대로 쓰는 것이고 철학 물리학 수학 공학등의 이름도 Φυσικὴ ἀκρόασις (자연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의 챕터명을 그대로 학문분과로 삼았다. 철학 중 인문학 쪽에 가까운 것을 제외한 것을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데 이것 역시도 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ὰ βιβλία (Ta meta ta physika biblia) 에서 기인한 것으로 메타-피지카. 즉 자연학 다음장을 그대로 학문분과명으로 삼는다.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책에서 철학챕터가 물리학챕터 바로 다음에 쓰여 있어서 그렇다. 이처럼 그 근원부터 사소한 단어선택까지 현대과학에서 고대 그리스의 영향력을 배제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다.

3. 종류[편집]

과학은 크게 자연과학사회과학으로 나눌 수 있다. 혹은 응용 방법에 따라 응용과학순수과학으로 분류시킬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분류는 너무 낡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으며, 세계 각국의 과학계(한국의 경우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선 과학의 분류를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국가과학기술표준분류체계 문서 참고.

자연과학은 이성과 관찰 가능한 증거를 바탕으로 물리적 세계, 특히 인간의 행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 아닌 자연의 원리에 대해 검증 가능한 방법을 통해 알아보는, 또는 더 잘 알아보려는 노력이자 그러한 노력의 산실이다. 즉, 결과 자체로 미래를 추정하는 학문이 아니라 과정을 토대로 하여 자연의 규칙성을 찾아내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궁극적인 목표가 애매한 편이나 대충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일반인과의 타협의 선이 되지 않는가 싶다. 이런 의미가 깊숙히 들어간 단어로는 코스모스가 있다.

사회과학인간이 이루어놓은 단체, 구성 모든 것들과 사회, 제도 등등을 과학적 방법론 등을 사용해 기술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에서처럼 모델을 만들어서 사회를 설명하거나 예측하기도 한다.(사회과학 중에서 모델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학문이 경제학이다.)인간이 이룩한 것을 연구하는 측면에서는 인문학과 같으나 인문학과 구별하자면, 인문학이 인간세계의 현상에 대한 규범적 성찰에 무게를 두는 반면, 사회과학은 인간세계의 현상을 가능한 한 가치중립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3] 물론 이것이 완벽하지는 않다. 심지어 자연과학이라 할지라도 그럴 정도. 또한 사회과학은 인간사회를 연구하기 때문에 물질계를 연구하는 자연과학과 달리 잘 통제된 실험이 어렵고, 주로 관찰을 기반으로 한 통계연구/사례연구/참여관찰로서 이론을 실증한다는 차이가 있다.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사회과학 문서 참조.

4. 어록[편집]

"과학적 발견 그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지만 과학의 실천 과정은 도덕적 행위이다."

- 브로노프스키
"현실에 비하면 우리의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초보적이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아서 C. 클라크
"과학에서 새로운 발견을 알리는 가장 신나는 표현은 '유레카!(찾았다!)'가 아니라 '그거 재미있네'이다."

- 아이작 아시모프
"인생의 가장 진실된 조언자는 과학이다."

-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과학은 시로부터 탄생했다. 시대가 변하면 과학과 시는 더 높은 수준에서 친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4]

5. 각종 오해와 통념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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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은 "왜(Why)" 에 대해 설명하는 학문이다.
    • 예를 들어 지구가 중력으로 물건을 잡아 당기는걸 생각해보자. 왜 잡아 당기는가? 라는 질문에 중력 때문이라고 한다면 오답이다. 중력은 물체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현상을 말하지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굳이 대답하자면 모든 물체가 물체를 잡아당기고, 지구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어떤 방식으로' 잡아당긴다고 설명할뿐 왜 물체가 클수록 크게 잡아당기는지 전혀 대답할 수 없다.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도 알 수 없고. 굳이 따지자면 "왜(Why)"를 설명하는 학문은 사회과학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을 연구하는 현장에서 "왜(why)"를 등한시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오히려 " 이렇게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아무리 어떻게 하는 건지 설명을 잘 해도 인정을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실험으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어떻게" 하니까 기존 방법보다 원하는 신호와 배경 사건들로 잘 쪼갤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왜" 그 방법이 잘 작동하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 하면 퇴짜 맞기 일쑤이다. 논문들만 보더라도 "어떻게" 했다라는 설명만 있지 않고 사용한 방법 하나하나에 대한 근거와 정당성, 그러니까 "왜" 썼는가에 대한 설명을 세세하게 달아놓은 걸 볼 수 있다.
    • 그리고 "왜(why)"에 대해 설명하는 것 역시 과학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빛의 질량이 "왜" 0인가를 이론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게 과학이 하는 것들 중 하나이고 과학자들이 관심을 크게 갖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이쯤 되면 과학이 "왜(why)"를 설명하는 학문인지 "어떻게(how)"를 설명하는 학문인지 딱 잘라 말하는 게 가능해 보이지도 않고 별로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를 묻는 분야는 과학이 아닌 철학이며, 어쩌면 답이 없을지도 모르는 심오한 문제다.
    • 다만 주의할 게 뭐냐면 "왜(why)"라는 질문의 초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과학이 다루는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주어진 현상에 대한 더 근본적인 원인을 묻는 질문은 다루지만 목적을 묻는 질문이면 과학에서 다루지 않는다. 중력이란게 존재하는지 설명하려는 시도가 있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이지[5] 어떤 형국으로 그렇게 되는지의 관해서는 과학자들에게 관심 있는 주제가 아니다. 요약하자면 "왜 가능한가"와 "왜 했는가" 정도의 차이가 나는 질문들로 "왜(why)"를 분류할 수 있고, 과학자들은 그 중 전자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가능한가" 같은 질문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바꿀 수 있긴 하고, 그러면 정말로 자연과학이 "어떻게(how)"를 설명하는 학문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 수학은 자연과학의 일부이다.
    • 아니다. 수학은 자체완결적이고 논리적 정합성만 맞으면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자유로운 학문이며, 그렇기에 자연과학의 기초가 되면서도 철학이나 사회과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면, 자연과학은 이미 정해져 있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법칙을 탐구하는 학문이며, 이러한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어떠한 학문도 자연과학으로 부를 수 없다. 예컨대 논리 구조가 아무리 옳더라도 실험적으로 반증된다면 '잘못된 과학'이 되지만, 수학은 학자 개개인이 출발점으로 선택한 공리(기본적인 가정)로부터 논리적인 비약만 없다면 일단 '잘못된 수학'은 아니다. 그래서 자연과학 이론의 가치를 결정할 때는 얼마나 자연을 정확히 설명하는가가 1차적인 기준이 되지만, 수학 이론을 평가할 때는 얼마나 (학문적인 관점에서) 유용하고 흥미로운 성질을 기술하는 체계인가가 기준이 된다.
  • 수학이나 자연과학 역시 믿음(Belief)의 한 종류일 뿐이며, 절대적 진리는 결코 찾지 못할 것이다.
    • 자연과학에서의 '진리'와 신학자, 철학자들이 말하는 진리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과학은 사회과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끊임없는 가설과 검증, 반박을 통해 발전해 온 학문이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라는 용어에 극도로 부정적이다. 물론 순수과학의 세계로 들어가면 과학자들이 "믿고",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항들이 존재하기는 한다.[6] 그러나 이건 절대적인 믿음이 아니라 일정한 통계학적 신뢰 수준 하에서의 믿음이며, 논문 및 저널에 대한 사려깊은 검토 등을 근거로 반대되는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만 일단 신뢰하는 것이다.[7] 방법론적 자연주의 문서도 같이 참고. 사실 앞서 언급했던 "자연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실험적 제약이 있다"는 말도 모든 영역에 100% 적용되지는 않으며, 본질적으로 들어갈수록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의 영역이 깨어지곤 한다. 예컨대 "빛이 직진한다"는 현재까지 알려진 빛의 본질로부터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실험적으로도 옳다고 증명된 명제이다. 그러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의 입자들은 당연히 눈으로 직접 관찰된 적도, 인간의 인지 범위 내에서 관찰할 수도 없기에, 어디까지나 그게 존재한다고 가정할 경우 예측되는 현상들을 실험적으로 확인함으로서 입증한다.[8] 어찌 보면 현대 물리학자들은 일련의 물리 현상을 설명하기 편하게 기본입자라는 형태로 일종의 합리적인 체계를 합의하고[9] 그 위에서 자연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 한마디로 결론짓자면, 자연 "현상"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을 기술하는 자연 "과학"의 체계는 결코 유일하지도 않고, 유일성을 증명할 수도 없으며, 절대적이지도 않다. 자연과학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는 오직 과학적 방법론만이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며, 이는 현생 인류의 사고 체계 내에서 이보다 더 합리적으로 자연을 기술할 논리를 아직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뭔가 기존의 모순되는 현상이 발생한다면 보통 속임수를 의심하지만, 만약 그것이 속임수가 아니라면 비과학적인게 아니다. 그 현상 자체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생길거고, 그 후 설명을 만드는 순간부터 그 현상도 과학에 포함될 것이다. 괜히 마법이란게 존재한다면 과학으로도 해결할지도 모른다는게 얘기가 나오는게 아니다. 당장 자력, 중력 같은 단순한 힘들도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할 수 있을뿐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알 일도 없을거다. 사실, 이 세상에 진리를 말하자면 어떠한 사실도 진리는 없다. 모든 사실 중 뒤집히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없다. 그것이 설사 중력이나 1+1=2라는 절대 바뀔 수 없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 다만, 수학의 경우 (사용된 공리가 무모순이면서 모호하지 않다면) 일단 증명된 명제는 절대적으로 참이다. 다만 상황, 혹은 공리를 바꾸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겠지만[10] 그건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자연수의 사칙연산을 포함하는 이상 완벽한 공리 체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통해 증명되었다고 해서 수학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긴 하는데, 이건 거의 "상대성" 이론 가지고 모든 게 상대적이다라고 오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는 (가지고 있는 공리 체계가 무모순이면) 참인지도 거짓인지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걸로는 이미 참 혹은 거짓이라고 판명된, 혹은 판명될 명제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는 명제라면 참이라고 놓아도 상관 없고 (즉, 무모순이고) 거짓이라고 놓아도 상관 없다.[11]
  • "이건 그저, 단지 이론일 뿐이잖아요!" 또는 "이론이니까 현실에선 틀리는 게 당연하다!"
    • 흔히 사람들은 이론(Theory)을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신뢰하기 어려운 학설"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가설 중에서 특별히 더 많은 검증과 비판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신뢰롭고 믿을 수 있는 가설들을 통해,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해내는 폭넓은 체계를 이론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은 상식과 상반되는 결과들을 내놓아서 그런지 숱한 검증과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전부 이겨냈고 그 자체만으로도 뉴턴 역학이 유효한 영역(광속보다 턱없이 느린 영역)보다 더 넓은 영역을 설명하는 체계이기에[12] 여기서 말하는 "이론"이라는 칭호에 부합하는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단지 이론" 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틀렸다.[13]
    • 이런 오해는 "이론과 실기" 라는 특유의 표현 때문인 것도 있다. 여기서 이론이란 "듣기에는 좋고 이상적이기도 하지만, 너무 교과서적이고 비현실적이어서 써먹을 가치가 별로 없는 생각" 쯤을 의미하기 때문.[14][15] "이런 무능력한 이론가들 같으니라고..." 이런 문서 역시 같은 의미다. 여기서 과학 비전공자들의 혼동이 생긴 듯도 하니 이를 감안하면 좋을 듯.[17]
    • 예를 들어, 여러분이 기존의 이론에 반하는 것 같은 경험을 얻었다고 하자. 이론이 너무 교과서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역시 이론일 뿐이네" 라고 넘어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건 그 사람이 해당 이론을 잘못 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론의 유효 범위를 넘어서는 상황을 무시했다든가, 아니면 이론을 전개할 때 상정한 가정과 전혀 다른 상황에다 자신의 계산을 대입하려고 했다든가, 아니면 심지어 이론을 잘못 배워놓고 엉뚱하게 썼다든가. 어느 경우든, 제대로 된 실무자라면 이론을 무작정 비난하고 넘어갈 게 아니라 자기 지식에서 도대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그 문제를 고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어쨌든 다름 아닌 자신의 지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물론 이론이 틀렸을 수도 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면 해당 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을 찾아가 그들과 상의를 하는 게 올바른 방향으로 일하는 것이다.
    • 덧붙이자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다루는 자연과학에서도 이론적으로 계산된 수치와 실제 실험값은 절대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모든 실험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오차를 가지고 있고, 아무리 이론이 옳고 실험이 정확하다 하더라도[18] 이론값과 실험값의 차이는 오차 범위 내에서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공계 계열 대학생 수업 중에서도 일반물리학 수업을 들은 사람은 알겠지만, 예를 들어 자 같은 걸로 길이를 측정할 때 길이가 눈금 중간값에 걸쳐 있으면 눈금 안쪽의 값은 무시하라고 들었을 것이다. 그 눈금 하나가 오차에 해당하는데, 예를 들어 자 최소 눈금 하나가 1 mm이고 물체가 닿은 눈금 값이 36 mm이면 측정값은 36 mm ± 1 mm가 되는 것이다.[19] 물론 1 mm 눈금의 자 말고 버니어 캘리퍼스 같은 더 정밀한 기구를 쓰면 더 낫겠지만 여기에 또다른 문제가 도사리는데, 막대 자야 흔하고 싸지만 버니어 캘리퍼스부터는 가격이 많이 뛴다. 물론 0.1 mm보다 더 좋은 정밀도를 가진 장비는 훨씬 더 비싸진다. 단순한 길이를 재는 걸 예로 들었지만 실제 상황에서도 비용 문제가 어마어마해진다. 좀 더 거창한 예를 들어보자. LHC의 검출기들을 보면 맨 중앙의 트랙커(tracker)가 무지막지하게 정밀한데 반해 그 바깥으로 갈 수록 정밀도가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정말 정밀하게 하고 싶다면 검출기 전체를 트랙커 정도의 정밀도를 가지는 장비들로 도배하면 되지만 불행하게도 트랙커에 들어가는 실리콘 검출기는 무지막지하게 비싸다. 그런 이유로 인해 좀 더 싼, 하지만 정밀도가 좀 떨어지는 장비를 쓰는 거다. 결국 시간과 돈 문제인 셈. 대신에 이걸 고도의 알고리즘과 데이터 양으로 밀어붙여서 쓸만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실험 장비 중 하나라고 칭송 받는 LHC와 그 검출기들이 이런데 (거기다 들어간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다른 실험에서는 어떨까?[20] 거기다 결국 그 LHC조차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이런저런 문제들을 겪곤 하고, 이런 게 결국 계통 오차(systematic uncertainty)를 키우는 원인이 된다. 이 오차를 잡으려고 심지어 인근 열차 시간표까지 고려하기도 한다지만...[21] 그러니까 이론상 최강은 사실 자연과학에서도 적용되는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오차는 생기는 게 당연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그 차이가 정밀도 안에 들어오는 이상 이런 상황이 전혀 문제 없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모든 것들은 측정할 때 오차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정확히 측정했다 해도 무한으로 쿼크[22]보다도 작게 들어가면 0.0000000...01의 오차는 언젠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앞서 말했듯 물리학 수업에서도 완벽히 정확한 값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근데 사실 LHC 가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오차 범위를 한참 벗어난 결과가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23]
    • 그래도 이론일 뿐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답하자. 지금 우리의 상황은 그 이론의 유효 범위[24] 안에 들어 오고 우리가 가진 장비는 충분히 정밀하다고. 물론 그 말에 책임질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 과학은 오로지 자연에 대한 관찰 및 탐구를 하는 학문이다.
    • 이러한 인식은 오히려 자연과학에 더 적절한 설명이다. 그러나 과학의 한 축에는 사회과학 역시 포함된다. 이는 과학이 방법론이라는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니, 자세한 내용은 사회과학 문서를 참고할 것.
  • 각양각색의 부글부글 끓는 비커와 플라스크, 어두컴컴한 실험실, 수식들과 숫자들이 난잡하게 적힌 채 어지러히 흩어진 종이들, 이리저리 얽힌 기계들은 과학을 상징한다.
    • 분야 별로 상이하다. 정말 저 요소들을 다 갖춘(...) 실험실도 있지만 다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그런 이유가 없다면? 과학자도 사람이라 가급적 밝은 분위기에서 작업하는 걸 선호하긴 한다. 게다가 어둡고 지저분한 곳에서는 위험 요소들을 감지하거나 통제하기가 어려우니,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가급적 밝고 깨끗하게 시설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이론물리나 계산물리와 같이 화학 물질 같은 걸 취급하지도 않고 계산에 필요한 컴퓨터마저 다른 시설에서 원격으로 쓰는 경우면[25] 위에서 말한 요소들은 하나도 없고 볕 잘 드는 방 한 칸에 책상들과 데스크탑 몇 대만 놓인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수식이 어지러히 갈겨진 칠판과 종이 뭉치들이 쌓인 책상들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도 있고.(...)
    • 그리고 이런 것들은 과학에 필요한 도구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과학은 곧 "방법" 이다! 자세한 내용은 과학적 방법 문서를 참고.
  • 과학에 속하는 학문과 그렇지 않은 학문은 확실히 가려낼 수 있다.
    • 초보 회의론자들이 간혹 하는 오해. 오히려 그림자의 경계를 정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과학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의 하나이므로 필요하다면 어느 학문에서든 활용할 수 있다. 자연과학이야 당연하고, 경제학사회학까지 과학적 방법론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므로 과학으로 쳐 준다고 하자. 질적 연구를 중시하는 문화인류학은 과학일까? 법학은? 아니면 역사학이나 정치학은 어떨까? 심지어 언어학도? 실제로 학계에는 "Political Science" 나 "Policy Science" 같은 표현들이 널렸다. 궁극적 목적 자체는 다소 다르더라도 과학을 유용한 방법으로서 동원, 활용하는 것. 이는 과학이 절대적으로 참인 명제를 명확하게 정하는 수학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과 완벽하게 같은 이치이다.
  • 무조건 질적 연구보다 양적 연구가 더 좋은 연구이다. 또는, 질적 연구는 주관적이므로 학계에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을 것이다. 또는, 질적 연구의 비중이 높은 학문 분야일수록 양적 연구의 비중이 높은 학문 분야에 비해 "지적 수준" 이 떨어진다.
    • 학문 분야에 따라서 양적 연구가 설득력이 있는 경우가 있고 질적 연구가 더 잘 먹혀드는 경우가 있다. 가장 흔히 거론되는 질적 연구의 가치는 그 개방성에 있다. 즉, 연구자조차 명확히 알기 어려운 사회과학적 대상을 연구할 때 질적 연구가 가능하다. 예컨대 성 소수자들에게 "이번 인권선언을 통해 사회 주류 집단을 용서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까?" 의 면접법을 실시할 경우, 뜻밖에도 "아니오, 용서할 마음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화해는 할 수 있습니다" 의 제3의 답변이 와르르 쏟아져 나올 수도 있다. 또한 아동보육 문제를 다룰 때에도 학령전기 어린이에게 "우리 친구는 엄마랑 더 많이 놀아요, 아빠랑 더 많이 놀아요?" 라고 물었을 때 "저는 학원 가고 엄마 아빠는 일하셔서 거의 못 놀아요" 라는 답변들을 얻음으로써, 뜻밖에도 남성의 육아 참여보다 맞벌이와 조기교육 열풍이 더 큰 문제라는 터닝 포인트를 만날 수도 있다.[26] 다른 예를 들자면, 군인들에게 "이번 대적관 교육을 통해 전장에서 적을 격멸할 용기가 생겼습니까?" 라고 물을 경우, "대적관 교육은 솔직히 너무 뻔한 내용이라 의미가 없었지만, 오히려 주특기 교육을 통해 용기를 얻곤 합니다" 와 같은 답변들을 얻음으로써, 구시대적인 이념 교육이 아닌 체계적 전투원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과학의 묘미이자 동시에 사회과학 연구의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양적 연구는 p-값만 맞춰놓으면 출판된다지만 질적 연구는 자신의 연구가 얼마나 통찰력 있는지에 대해서 백 퍼센트 연구자 본인의 역량에만 의존해야 한다. 질적 연구는 하면 할수록 노하우가 늘지만 양적 연구는 하면 할수록 데이터 숫자 맞추는 꼼수만 늘어간다 카더라
      질적 연구가 대세인 학문분야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간호학이 있다. 이 분야에서는 근거이론(grounded theory)이라고 불리는 질적 접근법을 활용한 연구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학문적인 체계를 갖추어 나가고 있다.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 간에 어떤 차등을 두는 것 자체가 이미 학문 간의 관계에 대한 통찰 없이 함부로 내뱉는 지적 모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류의 지적 오만(intellectual arrogance)의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진지한 성찰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과학주의 문서도 함께 참고.
  • 사례연구는 껌이다. 또는, 수준 낮은 연구다.
    니가 해봐 임마
    • 해당 문서 참고. 사실 이는 사례연구가 수준이 낮아서라기보다는 체계화가 굉장히 늦게 이루어졌던 방법론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례연구는 더 이상 주먹구구식의 끼워맞추기가 아니다.
    • 사례연구는 자료주도적(data-driven)이라기보다는 이론주도적(theory-driven)인 연구에 속하며, 사례가 특정 이론적 조망을 입증하는지를 본다. 따라서 양질의 사례연구일수록 그 사례를 통해서 특정 이론에 많은 통찰을 제공한다. 즉, 논문에서 소개하는 사례가 4건이라면 N=4의 소표본 연구가 되는 게 아니라, 그 이론이 특정한 사례들에서 네 번씩이나 일관되게 재현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심사 과정에서는 그 사례가 어떤 합당한 기준으로 선별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 역시 중요한 요소이므로, 아무거나 맘대로 뽑아다가 사례라고 내세울 수 없다.
    • 헛소리다. 대표적으로 관상가나 역술가들이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데 현대과학은 현대과학이지 서양과학이 아니다. 물론 서양인들이 시작하고 주도한 것은 맞지만 동양인이나 그 외 인종이 못 할 이유는 없다. 이건 완전히 현대과학에 뿌리깊게 열등의식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의 끝없는 헛소리이다. 심지어 한의사들도 오늘날에는 통계 및 과학을 활용한 협진에 적극적이기 때문에[27] 이런 소리는 실드쳐 주지 않는다.
      단, 방법론이 아닌 의학적 효과나 각종 임상 장면에서는 실제로 국적이나 민족마다 차이가 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단적으로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히스패닉계 내담자에게 특성화된 심리검사 및 정신질환 치료법을 고안하기 위해[28] 문화심리학자들과 협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의학의 경우, 대표적으로 혈당강하제인 설포닐 우레아(sulfonyl urea)가 독일에서는 심장병 발병률을 높이지만 미국에서는 그와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각국의 식생활과 생활패턴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추정되며, 따라서 미국인에 대한 약효가 한국인에게도 똑같이 작용할 것이라고 100% 확신할 수가 없다.
  • 토머스 쿤에 따르면, 어차피 모든 과학 지식은 상대적이므로 언젠가는 무너진다. 따라서 이를 신뢰할 필요도 없다.
    • 이에 대해서는, 유사과학 문서에서 상대주의 과학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참고할 것.
  • 과학자들의 지하 실험실에는 각양각색의 키메라 같은 동물들이 길러지고 있거나 내지는 잔혹한 동물실험이 자행되고 있을 것이다.
    • 매스 미디어를 너무 많이 접하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식의 생각은 대중매체에서 묘사되는 과학자의 이미지에 크게 기대고 있다. 실제로는 연구윤리에 위배되는 실험이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 대학교 및 연구소마다 연구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또한 무언가를 새롭게 개발/발명/발견했을 경우에도 이를 학계에 발표해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선을 넘었다 싶으면 대학교, 저널, 학회 등지에서 벌떼같이 들고 일어난다. 저 유명한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 결국 기승전징계로 끝났다는 걸 상기해보라(…)[33].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과학자들이란 교양과 상식을 갖춘 성인들이다.
  • 과학은 항상 가치 중립적이다.
    • 장기적으로 가치 중립을 지향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먼저, 과학은 "발표 편향" 에 노출되어 있다. 과학자들도 연구비를 타서 쓰는 입장이고, 성과에 집착하는 대학교들에게 가혹한 채찍질을 당하곤 한다. 실패한 실험, 틀린 가설을 다루는 논문을 찾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 이에 대한 과학계 내적인 비판도 많다.
      다음으로, 과학은 "후원 편향" 에도 노출되어 있다. 대기업의 후원에 의해 어떤 식품이 항암효과가 있다더라, 노화를 막는다더라 하는 연구논문 쏟아져나오는 것은 금방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내 기생충 연구자 서민 교수도 지적한 바 있다. 해당 강의 링크
  • 오늘날의 수많은 전쟁과 살육의 비극에는 과학이 책임을 져야 한다.
    • 과학 그 자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과학은 방법일 뿐이다. 이 도구를 활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냐가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좋게 쓰면 한없이 좋은 도구가 되지만, 나쁘게 쓴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절규하게 된다.[34] 예를 들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칼이 잘못했다!"라거나 "칼을 만든 사람이 잘못이다"라고 하는 사람은 합리적으로 보았을 때 아무도 없다.
    • 그런데 일부 매체를 보면 어떤 칼을 가리켜 '요도(妖刀)'라고 칭하면서 그 칼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도 그런 취급을 받은 요도들이 있기도 했고. 물론 이런 태도는 결코 합리적이지 않지만, 인간이 인간 자기자신이 아닌 어떤 도구에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는 비합리적인 모습은 해당 편견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 인문계 고교에서 3년동안 가르치는 수학, 과학 지식은 실생활에 쓸모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 육성에는 쓸모가 없다. 실업계 고교나 직업훈련원 등에서 가르치는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기술이 더욱 유용하다.
    • 고등학교 미적분학이나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을 모르고서 현대 공학, 농학, 자연과학 등에서 유용한 결과를 얻어내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문과로 진로를 잡는다 할지라도, 사회과학이나 경제학, 혹은 그에 관련된 학문의 분야를 선택한다면 수학과 친해져야 한다. 당장 개인의 경제활동을 편미분을 이용한 함수식으로 증명[35]하는 경제학이 있고(…) 경영학, 행정학 역시 고급 통계기법의 이치에 통달해야 한다. 심리학은 우리가 이과지 왜 문과냐고 전공자들이 투덜거릴 정도. 특히 심리학을 닥터 프로스트 정도쯤으로 받아들이고 진로로 삼으면 큰일난다. 아무튼 오히려 실용적이고 전문적인 기술을 원한다면 수학을 해야 한다. 괜히 사회과학대학이 아니다. 수학을 아예 하지 않는 학과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36]
  • 과학 = 기술 = 공학이다.
    • 한국 한정으로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에는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이라는 의미까지 포괄하기는 하지만, 세 가지 개념들이 전부 같은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된 이유는 정확히 구분해서 쓰려는 노력과 저작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기술이라는 용어만 보아도 skill, craftsmanship, technic, technology 이런 단어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 technology를 일반적인 기술과 구분해서 과학기술로 변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따지면 technology는 제대로 된 한국어 번역이 없다. 이렇다보니 국가에서 설립한 KAIST 라는 곳도 정확한 번역을 하면 한국과학과과학기술원이 되어야 한다. 참고로 Brian Authur 의 The Nature of Technology 라는 원서를 번역하려고 했던 어떤 사람이 포기하게 된 이유도 책 내용이 이렇게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술이 모여서 기술이 되고 기술이 발전하면 기술과 기술을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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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기타[편집]

또한 이에 대한 만능주의도 존재한다. 과학만능주의 참조.

수포자 못지 않게 과포자도 문제가 있다. 해당 문서 참조.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물화생지 시리즈가 유일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다만, 그 내용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다.

수학 못지않게 꽤 많은 학생들이 기피하는 과목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외워야 할 게 많아서, 혹은 어려워서나 재미없어서...[37] 초등학교 시절엔 과학에 흥미가 있다가도 특히 중학생이 되고 나면 계산도 복잡해지니 설명을 제대로 이해 못 하면 피 보는 과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과(理科)[38]라는 이름으로 이 과목을 배운다.

2000년대 초반까지, 정확히는 제6차 교육과정 이전의 초등학교의 경우 과학 대신 "자연"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을 배웠다.

6.1. 과학 드립[편집]

파일:sciencebit.jpg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 어떤 현상이 계속 반복되어 규칙이나 법칙으로 불릴 정도까지 이르면 "같은 패턴이 쌓이고 쌓여 과학 이론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미에서 ××는 과학 이라고 비꼬는 드립. 스포츠계에서 아스날 FC 팬들이 과학 유머를 만든 게 시초.

에서는 같은 팀에 야스오가 있으면 반드시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야필패는 과학이라고 쓰이기도 한다.

또한 유명인에 대한 부정적인 논란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마치 본인들이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며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사실 그중 80퍼 이상은 관상을 볼줄 모른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양카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기아 K5과학 5호기라고 불리며 오토바이계에서는 야마하사의 T-MAX가 과학으로 유명하다.

7. 창작물에서[편집]

판타지 물의 경우 마법이나 같은 초자연적인 힘과 대립하거나 그런 초자연적인 힘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예 순수하게 과학만을 중심 소재로 다룬 장르를 SF라고 한다. 가끔 유사과학이나 초능력을 과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게 되어 너무 만능으로 묘사되거나, 특정국가가 모든 과학 분야에서 최고로 묘사되거나, 작가의 잘못된 지식으로 엉뚱한 것들이 과학으로 포장되어서 전공자들이 뒷목잡는 사태가 발생한다.

재밌게도 초능력자와 괴물들이 공존하는 SCP 재단 세계관에는 프로메테우스 연구소나 GOC등이 과학과 접목하여[39] 마법을 사용하기도 하며 2060년을 배경으로 마법이 모두 과학으로 해명되는 세계관도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출처: 인물과학사 2 세계의 과학자들. 저자 박성래.[2] 「哲学」の訳語考, 遠藤智夫, 1994[3] 무엇을 인문학으로 봐야 하고, 사회과학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 견해가 엇갈리기 때문에 이 주장이 늘상 들어맞지 못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법학과 역사학.[4] 파우스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괴테는 여러 자연과학 분야에도 관심이 많아서 <화강암 연구 Über den Granit>를 비롯한 다수의 지질학, 식물학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5] 결국 어떻게 탄생했는지 묻는 질문인 것이다.[6] 예컨대 "빛이 우주에서 가장 빠른 물질이다"라는 명제는 실험적으로 확증되지 않았으며(그렇다고 하기엔 통계적으로도 너무 많은 도전들을 죄다 견뎌내긴 했지만) 왜 그런지 이유도 알 수 없지만(만 현대의 정설로 설명하자면 상대성 이론에서는 아예 이 문제 자체를 뒤엎어 버리는 식으로 답한다. 시공간의 기하학적 구조 자체가 상식과는 많이 다르다는 게 현대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내놓는 결과이며 (강조하는데,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것만이 아니고 지금 그걸 이야기하고 있는 게 절대 아니다!) 이 구조에 따르면 최고 속력이 존재하며, 하필 빛이 그 최고 속력으로 달리는 것 중 하나인 것일 뿐이라는 게 그 답이다. 상대성 이론을 버리지 않는 한, 이미 우리는 그 이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어쨌든 이 가설을 위배하지 않고 현재까지 관찰된 모든 물리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공리처럼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것이다.[7] 더 자세한 내용은 통계학의 기초를 배우면 정확히 배우게 될 것이다.[8] 순수물리학자들이 가속기니 중력파 검출이니 우주 방사선이니 하는 것에 매달리는 이유가 다 이런 맥락이다.[9] 여기에는 고도의 수학적인 기술이 숨겨져 있다. 대칭성, 이를 양자역학 영역에서 기술하는 방식, 그로부터 요구(혹은 유도)되는 양자화 과정이 수반되며, 그 결과를 기본 입자들과 그 상호작용들로 간편하게 해석하고 기술하는 것이다. 일례로 기본입자들의 '궤적'과 그 상호작용을 '표현'한다고 여겨지는 파인만 다이어그램도 사실은 어떤 특정 수식(!)을 편리하게 나타내는 기호일 뿐인데, (선 하나하나, 교차점 하나하나가 수식의 어떤 계수 하나하나를 의미하고, 모양에 따라 적분이라든가 행렬의 트레이스(trace)와 같은 게 추가되어야 하기도 한다) 이걸 또 잘 해석해 보면 입자들의 실제 움직임(???) 같은 걸 표현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어서 그렇게 해석하는 것일 뿐이다.[10] 유명한 예로 삼각형 내각의 합이 180도라는 사실이 휘어진 곡면에서는 더 이상 참이지 않다는 것[11] 대표적인 예로 ZFC 공리계에서 선택 공리는 이걸 참으로 놓든 거짓이라고 놓든 이 공리계의 다른 공리들과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즉, 선택 공리를 제외한 ZFC의 다른 공리들만 가지고 공리 체계를 꾸리면 선택 공리는 참인지 거짓인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연속체 가설을 들 수도 있다.[12] 여기에 양자역학과 조합하여 등장한 상대론적 양자역학인 양자장론QED, 표준 모형과 같은 이론들의 프레임워크로서 상대성 이론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넓은 영역을 말도 안 되는 신뢰도로 설명해내고 있다![13] 과학에서 '이론'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이론'의 의미보다 더 넓고 크면서 창조적인 의미를 담고있지만 일반적 의미는 이론 문서에도 쓰여 있는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일반화한 명제의 체계'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이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의미의 이론이 아닌 사전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니 문제가 될 것은 없다.[14] 반면 실기란 대략 "현장의 목소리, 정말로 도움이 되는 정보" 등을 의미하곤 한다.[15] 그런데 사실 한 개인이 경험한 것보다 다수의 사례들로부터 체계적으로 분석되어 얻어진 결과가 더 유용할 때가 많다.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포괄적인 면으로도 그렇고. 심지어 개인의 경험에는 어느 정도 편향이 있을 수도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다만 너무 복잡한 걸 다루는 경우에는 제아무리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미처 고려하지 못한 사항들이 생길 수 밖에 없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결과가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의학 쪽에서 특히 그런 일이 왕왕 벌어진다고.[16] 이런 사례들 탓에 "이론"에 대한 반감이 더 커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표본들을 체계적으로 다뤄서 뽑아낸 결과가 고작 한두 명의 사례보다 더 가치있음은 분명하다. 아니, 그 전에 논쟁 중인 결과를 가지고 이론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16] 더군다나 비용 문제 때문에 통계적으로 충분한 데이터가 쌓이지 않은 탓에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따라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턱걸이로(...) 데이터를 모으거나 혹은 빼거나(!) 하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p-해킹을 참고하자. 다만 물리학 같은 분야에서는 훨씬 더 강력한 통계적 기준을 요구하고 사회과학, 생명과학 쪽보단 다수의 데이터를 뽑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에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17] 이론상 최강이라는 문서도 어떤 격투게임에서 "이 캐릭터는 이런 식으로 조작하면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가장 강한 대미지를 효율적으로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강한 캐릭터다." 까지가 그 격투게임에 대한 '지식을 논리적으로 적어놓은 체계'인 것이다. 하지만 그 조작이 물리적 이유로 실제로 하는 것이 어렵다면 현실에선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이론상 최강'같은 식으로 부르는 것일 뿐이다. 위에서는 가설 중에서 특별히 더 많은 검증과 비판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신뢰롭고 믿을 수 있는 가설들을 통해, 이론적 조망,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해내는 폭넓은 체계를 이론이라고 한다. 라고 했지만 그것은 과학에서 이론의 가치이자 의미인 것이고 특별히 과학과 관련 없는 모든 상황에서는 기본의 사전적 의미를 따라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론이라는 단어를 과학 전공자들만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과학 용어인 것도 아닌데.[18] 정밀하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이다.[19] 사실 어떤 실험이든 이런 식으로 오차(error) 혹은 불확정도(uncertainty)를 적어줘야 한다. 만약 어떤 결과를 봤는데, 오차가 없으면 그 결과를 사기라고 단언해도 좋다! 물론 아주 극히 미세한 확률로 오차가 전혀 없을 수도 있기야 하지만 그거야말로 이론상의 이야기(...)이다.[20] 다만 지금까진 측정된 상수들 중에서 역사 상 최고의 정밀도로 측정된 값인 미세구조상수는 전혀 다른, 그것도 LHC만큼 크진 않은 장비에서 LHC보다 한참 이전에 측정이 된 것이다.[21] 이건 LHC의 전신인 LEP 이야기이다. 사실 LHC 같은 양성자-(반)양성자 충돌기보다 LEP 같은 전자-양전자 충돌기가 더 정밀한 결과를 낼 수 있다. LHC에선 열차의 영향 정도야 아마 다른 오차 요인들로 인해 무시될 것이다.(...)[22] 현재까지 알려진 가장 작은 물질 입자.[23] 농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론"은 표준 모형으로, 지금 알려진 주변의 모든 물질들의 근본적인 상호작용을 잘 설명해내는 이론으로 칭송받고 있고, 지금까지 숱한 도전을 전부 이겨낸 이론인데, 문제가 뭐냐면 다른 영역에서 연구된 결과들이 표준 모형보다 더 근본적인 이론이 있어야 함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표준 모형은 더 근본적인 이론의 근사일 것이라는 얘기고, 사실 LHC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힉스 입자 발견 뿐만 아니라 표준 모형에서 벗어난 현상 (즉, 기존 이론과 제대로 벗어난 현상)을 입자 가속기에서도 보고자 하는 것이다. 문제는 LHC가 가동한 10년의 기간 동안 (그리고 물론 그 이전에도) 표준 모형에서 벗어나는 결과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B-physics 쪽에서 뭔가 나올 것 같은 조짐이긴 하지만... 아직 모르는 일이고, 이게 다름 아닌 펀드와도 직결된 문제라 입자물리학자들의 애를 더 태우고 있는 상황이다.[24] 사실 모든 이론은 유효 범위를 가진다. 뉴턴 역학과 슈뢰딩거 방정식으로 기술되는 양자역학 체계는 아광속 영역 안에서만 잘 작동하고 그 유명한 표준 모형조차 가지고 있다. 그 유효 범위 바깥이 어딘지 보고 싶어도 좀체 안 드러난다는 게 문제지만 아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양자중력이라든가 통일장 이론 같은 건 논하지 말자 유효 범위가 넓을 수록 좋은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보통의 경우 같은 현상이라도 유효 범위가 (훨씬) 더 넓은 이론을 써서 기술하면 오히려 더 복잡해지고 다루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진다. 예를 들어 열차 구조를 설계하는데 상대성 이론이라든가 양자역학을 적용하는 건 수지타산에 전혀 안 맞는다. 그거 고려한다고 비용은 밑도 끝도 없이 커질텐데 어차피 이런 이론들을 고려해서 생기는 보정이 장비들의 정밀도보다 한참 작을테니까. (다르게 말하자면, 고전역학과 상대론적 역학 or 양자역학의 경계는 다름 아닌 주어진 장비의 정밀도와 필요한 정밀도 수준이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25] 예를 들어 CERN과 협업하는 연구실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에 해당한다.[26] 이건 크게는 아예 학회 수준의 차원에서 연구의 트렌드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로 큰 문제다.[27] #예시1 #예시2. 물론 이것에 대해서 현대의학계가 뭐라고 평가할지는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움직임 자체는 나타나고 있다.[28]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대가족제를 유지하고,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을 사회적 상황에서 숨기려 하기 때문에 기존 유럽계 백인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질환 치료법을 고스란히 적용할 경우 그 예후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29] 현대과학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CERN에 상주하는 과학자 수만 세어봐도 이 고정관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30] 전통적으로 유럽기독교 성직자들은 상당한 수준의 과학 지식을 보유하고, 이를 다른 성직자나 평신도들에게 전수해왔기에, 전근대 시대에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와 같이 과학자를 겸한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 그래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살던 시절의 성직자들은 그 자체로 신학자를 겸하는 과학자들이라고 봐도 무방했다.[31]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몰락한 원인은 천동설을 부인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30년 전쟁으로 인해 전 유럽가톨릭이냐 개신교냐로 갈려 싸우는 와중에, 개신교인들에 대해 애매모호한 반응을 보이거나 되려 가톨릭 교회 내의 높으신 분들을 까는 등의 친 개신교적인 입장을 보여서 교황청의 분노를 산 것이다.[32] 지동설의 근거를 대보랬더니, 무슨 예수 운운하는 얘기나 나불댔다. 이러니 당대의 가톨릭 교회와 과학자들의 반응은 이뭐병 그 자체였고, 결국 그가 이단적인 주장을 폈다는 이유로 화형당했을 때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가택연금에 처해질 때와는 다르게, 그 누구도 브루노에 대한 구명운동을 벌이지 않았다.[33]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폭력성에 대해 연구해보라고 할 때는 연구윤리 상, 실제로 사람을 패라고 할 수는 없으니(...), 대신 참가자들에게 얄미운 기분이 들 때마다 다른 참가자가 먹을 음식에 핫소스를 치라는 식으로 대체하는 형편이다.[34] 사실 이 지적은, 과학자들과 공학자들 역시 최소한의 인문학적 감수성을 필요로 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35] 그런데 그보다 라그랑주 함수를 이용한 증명법이 더 보편적인 것 같기도.[36] 참고로 고대 그리스 시절 미성년자들이 배워야 했던 교양과목인 리버럴 아츠나 동아시아에서 선비들의 필수 과목이라 할 수 있는 육예에서 수학은 필수적으로 들어갔다. 달리 말하면 아주 오랜 옛시절부터 '전혀 쓸모없어 보이는' 수학이라는 학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논리적 사고 배양이나 창의력 향상같은 두뇌 개발에 이만한 학문이 없기 때문이다.[37] 초등학교 한정으로는 사회 과목도 많은 학생들이 기피하는데, 상기한 이유와 거의 비슷하다. 다만 사회는 중학교 이후부터 시사나 지리, 역사 쪽에 흥미를 가지는 일명 지리덕후, 역덕후 학생들이 꽤 있어서 좋아하는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있기도 하다.[38] 일본 발음은 りか. 우리가 알고 있는 '이학/공학/의료 계열'이라는 의미의 이과는 理系라고 쓰고 りけい라고 읽는다.[39] 묘사상 막대기로 마법진 그리는거보다 노트북으로 도형 복사해서 그리는게 더 빠르다고(...) 그리고 나름의 법칙들로 과학으로 밝혀내어 무기로 사용하는 중. 핸드폰과 노트북을 들고 마법을 쓴단다.[40] 개발자가 "야스오 픽하고 지는건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못하는 야스오는 이과, 잘하는 야스오는 문과라는 일종의 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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