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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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과 똑같이 '교황(Ⲡⲁⲡⲁ)'이라 불리는 이집트의 총대주교에 대한 내용은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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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문장(紋章). 교황의 왕관인 삼중관과 금색으로 된 하늘나라의 열쇠, 은색으로 되어 하늘나라의 열쇠의 권위가 땅에도 소급된다는 것을 나타내는 열쇠, 또 그 둘이 한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붉은 실로 이루어져 교황의 권위를 나타낸다. 두 열쇠는 마태오 복음서 16장의 내용에 근거한다.
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문장.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금색 줄 3개가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배필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 꽃이 새겨져 있다. 아래에 사목 표어가 쓰여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제266대 교황
Franciscus
프란치스코
교황명
프란치스코 (Franciscus)
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1] 시보리
(Jorge Mario Bergoglio Sívori)
신체
175cm
출생
국적
재위기간
즉위미사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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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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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
2.1. 'Papa/Pope'의 의미 변천2.2. 직함
3. 영향력4. 역대 교황5. 역사6. 가톨릭에서의 위치7. 선출 과정8. 국적9. 알현 시 외교 예절10. 관저11. 교황에게 부여되는 교통편12. 복식13. 신비주의 설들14. 통계15. 타 기독교 교파의 입장
15.1. 정교회15.2. 개신교
15.2.1. 성공회
16. 창작물 속의 교황


그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후계자가 아니라 한 어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모든 권력이나 권위의 행사는 봉사하는 데 있으며, 교황은 자기 자신을 즐겨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라 부른다.

이브 콩가르

1. 개요[편집]

교황 비오 8세의 무덤, 피에트로 테네라니, 1866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 보좌에 앉아 양팔을 펼치고 있는 성상은 예수이고, 예수 앞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조각상은 교황 비오 8세, 왼쪽의 열쇠를 든 성상은 성 베드로, 오른쪽의 칼과 책을 든 성상은 성 바오로다. 교황의 권위와 의무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시각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교황은 로마주교이며 가톨릭 교회의 수장,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다.

2. 명칭[편집]

교황(敎皇)의 직접적인 한자어 풀이는 '교회의 황제'이다. 교황을 부를 때는 성하(聖下, His/Your Holiness)라고 예칭한다.

라틴어에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Pater'가 있는데 이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의미하며,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를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만 보면 '교부(敎父)'로 표기하는 게 맞지만, 국어대사전에는 교황의 동의어로 '교화황(敎化皇)', '법왕(法王)', '법황(法皇)', '로마 법왕(Roma 法王)' 등이 등록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처음에는 '백성을 하느님에게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에서 '교화황(敎化皇)'이라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모든 교리를 세상에서 주관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주교자(主敎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화황을 줄인 교황과 교종을 혼용했으나, 차츰 교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1992년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교황이 공식 용어로 최종 확정됐다. 북한에서는 로마 법왕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교황이라는 호칭이 황제, 군주를 연상시켜 지나치게 권위적인 느낌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3년 3월 21일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경축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베드로 주교[3]는 강론에서 교황 대신 '교종(敎宗)'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택한 분의 복음적 영혼과 삶을 드러내는데 임금과 황제를 표현하는 '교황'이라는 어휘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 이유. 강 주교는 이미 1990년 전례위원장 시절부터 교황의 호칭을 '교종'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강 주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에도 다시 한 번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 가톨릭에서는 '교황'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구태여 '교종'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한 교황이라는 용어가 다소 군주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4], 바티칸 시국의 대표로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제도를 반드시 민주제로 인식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교황직이 교회와 한 봉사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교회 제도의 가시적인 형태를 보아 '교황'이라는 용어가 걸맞는 것이다.

'교종(教宗)'은 중국, 대만중화권에서 교황을 일컫는 말이며, 일본에선 교황(教皇)과 '로마 법왕(ローマ法王)'이 혼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일본 정부의 대내외 공식 문서와 NHK,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들에서 '로마 법왕'이라고 칭했으며,[5] 일본 가톨릭에서는 1981년 2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부터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교황을 '법왕'이라고 하는 건 번역 과정에서 원래 불교 화엄경 한역(漢譯)에서 Dharma-raja에 대한 상대어로 사용한 해당 단어를 석가모니를 비롯한 부처, 나아가 교계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쓰던 용례를 인용해 와서 갖다 붙인 것이기 때문. 당연히 일본 가톨릭은 불교 냄새가 짙은 이 단어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일본가톨릭중앙협의회에서는 한국과 같이 '가르치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교황이라는 단어를 선호하였으나, 교세가 작아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가톨릭 교회와 세속 세계에 의해 두 가지 호칭이 혼용되어 쓰이다가, 2019년 11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일본 정부와 NHK는 공식 명칭으로 '로마 교황'(ローマ教皇)을 사용하게 되었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라는 호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로마 황제가 겸하던 대제사장의 호칭이다. 379년 그라티아누스 황제가 이 명칭을 포기하자 로마 주교가 이어받아 사용했다고 한다.

2.1. 'Papa/Pope'의 의미 변천[편집]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원래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으로 쓰이는 단어[6]지만, 라틴어에서 이를 차용하면서 존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평어는 pater). 그러다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정교회 쪽과 라틴어를 쓰던 서방교회 쪽 모두 사제주교, 총대주교를 Pope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그리스, 러시아, 세르비아의 정교회에서는 교구 신부들을 Pope라고 호칭한다.[7]

반면 서방교회 쪽에서는 이 사용이 점차 제한되면서 3세기 초 무렵 고위 성직자를 일컫는 존칭으로 Papa를 사용하다가[8] 5세기 무렵부터는 주로 로마의 주교를 일컬을 때 사용, 8세기 이후에는 오로지 로마의 주교에 대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들어서 이 용어에 대해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개신교 쪽에서는 당시 많이 사용되던 Papa라는 호칭 대신 "로마의 주교" 라는 원래의 용어를 선호했다.

교황(Pope)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게 된 건 10세기 이후로 그 이전까지는 위에 언급된 '로마의 주교'라는 직함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했다. 영어 Pope는 아버지란 뜻인 라틴어 Papa에서 유래했다. 단,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다른 라틴어인 Pater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른데 Pater는 생물학적 아버지,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이다. 아무튼 Papa는 두루 주교를 부르는 말로 썼으나 점차 교황을 가리키는 말로 유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2.2. 직함[편집]

역사가 오래된 직위답게 호칭이 많다. 「교황청 연감(Annuario Pontificio)」에 따른 교황의 공식 직함은 다음과 같다.
  • 로마주교(Episcopus Romanus): 가장 기본적인 직위.
  • 전체 교회의 최고 주교(Caput universalis ecclesiae)
  • 보편 교회의 최고 대사제(Summus Pontifex Ecclesiae Universalis))
  • 서방 교회의 총대주교(Patriarcha Occidentis): 2008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동·서방 교회 화해를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연감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이 직함을 교황청의 공식 문서에 사용하는 것을 중지했을 따름이고, 교황이 고대로부터 전해온 5대 총대주교의 하나로서나 이후 형성된 지역 동방 정교회의 관할권 밖, '서방' 전역을 관장하는 주교라는 사실에는 전체 보편교회 내에서 누구도 이의가 없다.
  •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Archiepiscopus Metropolitanae Romae): 로마 교구 및 주변 7개 교구 관할. 그 중 오스띠아 교구는 관할 지역이 없는 교구임. 6개교구장은 일반주교임. 라틴 주교급 추기경은 이들 교구의 명의교구장직을 보유함. 수석추기경은 명의 교구장직과 오스띠아 명의교구장직을 더하며 아울러 사제급 명의성당 주임도 부여 받음.
  • 바티칸 시국의 원수(Princeps sui iuris Civitatis Vaticanae)
  •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 대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교황들의 서명으로 많이 애용되는 명칭이다.

교황청 연감에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관례적으로 현재까지 사용되는 명칭은 다음과 같다.
  •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 직역하면 '최고 사제.' 379년까지 로마 황제의 칭호였으나 그라티아누스의 포기 선언 후 가톨릭에서 채택해, 이후 교황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지고(至高)의 주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3. 영향력[편집]

무려 14억 명이라는 전 세계 최대 신도수를 가지고 있는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원수와 동일한 예우를 받으며, 세계 외교가에서도 입김이 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 중세 시대와 비교하면 교황의 영향력이 많이 줄어들었으나 지금도 세계 각국의 중요한 이슈에 대해 교황이 말 한마디 언급하면 각국 기사 헤드라인에 걸릴 정도이다. 현재 교황은 전 세계의 정치, 외교, 문화에 있어 큰 영향력을 끼친다.

4. 역대 교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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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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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톨릭에서의 위치[편집]

가톨릭은 교황이 존재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교회체계가 완성될 수 있었으며, 교황이라는 존재는 가톨릭 교회에서 사도들과 성인들 다음으로 존경할만한 대상이자[9] 상징과도 같다. 교황은 특히 우두머리로서 지상 교회를 이끈다. 역사적으로 일부 교황들은 이런 존경심을 권력으로 이용하여 부패한 적도 있다. 이에 실망한 신자들이 대거 종교개혁을 일으켜 개신교로 이탈한 때도 있었으나,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한 쇄신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한 개혁 등, 교황들의 주도 아래 지속적으로 교회의 쇄신과 개혁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교의적인 관점과는 별개로 교회 정치적 관점에서 보자면, 교황직은 로마 지역 교회가 세계의 지역 교회들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동시에 로마 지역 교회에 대하여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로마 주교가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로마 주교를 선출하면서, 로마 지역 교회와 세계의 지역 교회들이 서로에게 강한 영향을 주고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이 드러나는 예가 현대 교황들의 출신지인데, 폴란드 사람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선출된 1978년부터 40년 넘게 교황이 당연직으로서 겸하는 '이탈리아의 수석주교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선출에 세계 교회의 추기경들이 관여하면서 교황이 세계 교회에 대해 가지는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보완해준다.

6.1. 교황수위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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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교황 무류지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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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말은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발표된 '교황 무류지권(無謬之權)' 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교회' 자체에 대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의 산물이다. 교회 자체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금도 가톨릭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중요한 신학적 논쟁사항이다.

교황이 무류지권을 선언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 교황이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가 아닌 세계 교회의 최고 목자이자 영적인 스승으로서 선언한다. 교황 개인의 신학적 견해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교황 개인은 다르게 생각할지라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보편적 신앙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
  •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만 국한하며 그에 따라 지켜야 할 교리를 차례대로 절차를 밟아 진행한다.
  • 그 발언이 교회의 가르침에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가르침이란 성경을 포함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던 사도적이며 역사적인 전통. 즉 교황이 별다른 근거 없이 마음대로 교리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 이 가르침은 무류적이다 또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크게 상관 없거나 연옥고성소처럼 신학적으로 아직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황이 마음대로 무류지권을 주장할 수 없다.
  • 미리 충실한 조사, 연구, 협의, 기도를 자주 거쳐 충분히 모두가 이해하여 변경의 여지가 없도록 완성한다.
  • 성령이 부여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때 선언문은 '본인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려 선언한다' 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또한 무류성의 마지막 조건은 반드시 교황의 선언이 전 세계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교황이 공식적인 순서를 밟아 모든 교회를 향해 선포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선언은 무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교황의 결정이 전부 무류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결정이 무류하다는 것이며 그나마도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무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교황무류성이 행사되지 않은 다른 가톨릭의 교리는 종교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 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런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사상인 유일신 사상이나 삼위일체, 단죄와 구원에 관한 교리들조차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견해를 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권한은 성경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으며 그에 대한 유권적 해석의 최종 권한('절대 권한' 이 아님)이 교황에게 있는 것일 뿐이다.

현재 무류권에 의해 인정되는 교리는 아래의 3가지 뿐으로 가톨릭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 왔던 교리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칼케돈파 교회[10]에서는 이견없이 믿는 교리이지만, 성모무염시태교리나 성모승천교리는 특히 교파에 따라 교리가 크게 다르다. 위와 같이 교리가 다른 이유는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오랜동안 교회에서 '성전(聖傳)'으로 전승되어 온 교리이기 때문에 그렇다. 특히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하는 개신교는 가톨릭 교회의 전승을 대부분 인정하지 않는데, 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에서 전승되어 온 교리를 교황의 무류권에 근거하여 공식화했다고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449년 교황 레오 1세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정통 그리스도론 신학을 담은 '토메(Tome)'를 보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만을 강조하는 단성론을 반대하면서,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人性)을 모두 지닌다고 선언했다. 레오의 토메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식 신조로 채택되었다.
  • 성모무염시태교리(Immaculata Conceptio): 성모 마리아원죄 없이 태어났다고 하는 교리. 옛부터 공공연히 전해 내려오다 루르드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성녀 베르나데트 수비루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 라고 선언한 일 이후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공식화했다.
  • 성모승천교리(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성모 마리아 사후 그 육체와 영혼이 함께 승천했다는 교리. 다만 예수처럼 자의로 승천(Ascensio Domini)한 게 아니라 구약성경 인물인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들어올려졌다' 는 의미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한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무류지권을 발동해 발표했다.
교황의 무류지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미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문제에 대해 이쪽이 더 타당하니 이렇게 정하고 더 이상 논하지 말 것을 교황이 도장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일어나면 그 순간 교회와는 분리되어 나간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강력한 권한인 것은 사실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에 퇴위하자 교황무류성의 권위가 모호해지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바티칸 측은 교회법상 교황의 무류성은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지니게 되며 사임한 교황은 더는 도그마를 선포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교황이 선종(善終)한 후 차기 교황이 결정될 때까지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는 어떠한 주교도 무결성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7. 선출 과정[편집]


교황이 되는 법.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신자인 남성이 신부주교추기경 코스를 거쳐 교황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130311010713320710020_b.jpg

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선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닫힌 공간’이라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두 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교황으로 선출되면 새 이름을 정하게 되는데 보통 존경해온 전임 교황과 내면적 관계를 연결짓거나 그의 사목노선을 전폭 지지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선임 교황 이름을 이어 쓰기도 하며, 교황으로 선출된 그날이 축일이거나 존경하는 성인의 이름을 따서 짓는 경우도 있다. 교황명 개칭 관습에는 베드로좌에 오른 새 교황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지상 최고의 다리를 놓는 새 사람이 됐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아울러 로마 주교 수위권이 강화되고 교황직무가 강조되면서 다른 교구장 주교와 차별을 두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렇듯 교황의 교체는 대부분 전임 교황의 선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교황이 선종했을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선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본명을 3번 부르며 은망치로 이마를 3번 두드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된 적은 없고 의사과학적 소견을 받아서 하며 선종이 확인되면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떼내 은망치로 표면에 2개의 깊은 십자 흠집을 내어 기능을 정지시키는 의식을 치른다.

교황이 새로 재임할 때 같이 새로운 추기경들을 임명하곤 한다. 이 추기경 목록엔 '비공개' 처리된 사람이 최소 1명씩 있다. 추기경 문서의 인 펙토레 추기경 참고. 어디서 사는 비밀 추기경인지 공산당에 의해 가톨릭이 통제되는 중국 혹은 구 소련 지역이자 정교회가 뿌리 깊은 러시아 지역 추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언제나 떡밥만 무성하다. '예전에 비해 말도 안 될 빈도로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규모 확대일로에다 아예 조직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엑소시즘 파트 담당자라는 소문도 있다.

8. 국적[편집]

대부분의 교황이 프랑스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으나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 때부터 새로운 역사가 열렸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당시에는 냉전 시대였고 폴란드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한편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 프란치스코아르헨티나 출신[11]이다. 왜 '출신'을 강조하느냐 하면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통치자이므로 당연히 국적이 바티칸이고(바티칸 국적 자체는 추기경이 됨과 동시에 나온다), 보편교회의 수장이 특정 국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바티칸 이외의 국적을 포기하기 때문이다.[12]

초창기 교황들의 이름은 의외로 대부분 로마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인데,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인이라는 설명은 거의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교황 연대표는 초창기 교황들 중 7명은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출신이고, 베드로 한 사람만 유대인이라고 기술한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가 시몬을 케파라는 이름으로 바꿔주고, 이를 그리스식으로 베드로라고 읽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리스식으로 개명하는 이런 관행은 제13대 교황 엘레우테리오[13]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중세에도 그리스식 교황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시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리스식 이름을 택하는 관행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이는 그리스 정교회권과의 관계가 점점 소원해졌기 떄문이다.

교황이 공식 석상에서 발언할 때에는 본인을 단수로 '나'라고 칭하지 않고 우리라고 칭했다. 유럽에서 군주급 인물이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를 복수로 칭한 전통에서 유래하는데 이를 장엄 복수형이라 하여 Majestic plural 또는 Royal we라고 하며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우리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 라고 한다거나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단수형인 엘이 아닌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양에서는 그냥 짐(朕)으로 번역하고, 프랑스에서는 왕이 Je가 아닌 Nous로 자칭하며 스페인에는 이런 관습이 없다. 비슷한 전통이 있는 이슬람쿠란에서도 신은 자신을 '우리' 라고 칭한다. 가톨릭에서 이 전통을 깬 사람은 바로 요한 바오로 1세. 자신을 그냥 '나'라고 칭하여 주변인을 놀라게 했다.[14]

9. 알현 시 외교 예절[편집]

다른 군주국의 군주를 알현할 때와 마찬가지로 교황을 알현할 때 역시 엄격한 예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했다. 한때는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추었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세속 국가의 지도자들은)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추지는 않는다.

여자는 복장예절로 검은색 긴 소매 옷과 검은색 머릿수건을 착용해야 하나, 교황의 수단과 같은 흰색 옷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여자들이 있다. 가톨릭 군주국 가운데서도 교황청에 의해 '최고의 가톨릭 군주(Rex Catholicissimus)'로 인정받은 국가의 여왕 또는 왕비만 이런 특권을 받는다. 대통령 등 왕정이 아닌 국가의 수장이나 가톨릭이 아닌 왕가의 여왕·왕비는 이 특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

현재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 벨기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룩셈부르크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15], 이탈리아 사보이아 왕가 등 5개 왕가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권이다. 2016년 기준으로는 스페인의 레티시아 왕비와 소피아 왕대비, 벨기에의 마틸다 왕비와 파올라 왕대비, 룩셈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 이탈리아 마리아나 공비[16], 모나코의 샤를린 공비 등 7명이 이 특권을 받았다. 관련기사

10. 관저[편집]

4세기부터 교황들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인근에 있는 라테라노 궁전에서 기거했지만 아비뇽 유수가 종식된 이후에는 바티칸사도 궁전에 거처해왔다. 로마 시내의 퀴리날레 언덕에도 교황 소유의 궁전이 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사보이 왕가가 몰수했고 현재는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한편 로마 교구의 주교좌, 즉 교황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있다.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황들이 라테라노 궁전을 1천년 가까이 관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11. 교황에게 부여되는 교통편[편집]

이탈리아의 철도사업자인 '트레니탈리아' 는 3~4량의 교황 전용 객차를 보유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국영 여객항공회사인 '알리탈리아(ALitalia)'는 여객기를 전세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며 이탈리아 공군은 H-3D 31-2번기를 Elicottero Del Papa(교황의 헬기)라고 부르며 운영 중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공군이 H-3 시킹 시리즈를 AW101 시리즈로 통일 운영할 시에는 아무래도 교황 전용 헬기 역시 바뀔 것으로 추정된다.

육로를 이용한 대외 활동을 할 때는 전용 차량에 타고 이동한다. 흔히 영화 같은 데서 교황이 나올 때 특이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것. 이 교황 전용 차량은 파파모빌(Papamobile)로 불리고 있으며 방탄 소재로 되어있다. 파파모빌의 차량번호는 SCV 1.

국내에서 <둘이 합쳐 아이큐 100>으로 개봉된 <Le Comiche>라는 이탈리아산 논스톱 코미디 영화에도 교황이 타고 다니는 파파모빌이 등장하는데, 난데없이 난입한 두 주인공 때문에 사막 랠리 경주에 휘말려서 엉뚱하게 랠리 우승을 하기도 한다.

교황에게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과 같은 전용기가 없다.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세속적으로는 로마 안에 있는 도시국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교황에게 전용기가 없다는 것은 다소 뜻밖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교황청은 그동안 교황의 외국 방문 때마다 민간 항공기를 빌려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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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관례로 로마에서 출국할 때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리탈리아 항공을 임차하고 외국 방문 뒤 돌아올 때는 방문국의 국적기를 빌려왔다. 가령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알리탈리아 항공의 에어버스 330 전세기로 한국을 찾고 로마로 귀국할 때는 대한항공의 보잉 777기를 이용했다.

교황이 타는 항공기는 에어포스 원과 같은 국가 정상의 전용기가 아니라 민간 여객기이다 보니 방어용 무기 등이 전혀 장착돼 있지 않고 전세기에 지휘통제센터도 없다. 교황이 탔다는 걸 알리는 건 항공사 로고 아래 교황의 문장 뿐이다. 게다가 교황의 좌석도 일등석이 아니라 이보다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비즈니스다. 알리탈리아 항공 여객기에는 일등석이 없이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석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황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비즈니스석 첫 줄에 혼자 앉는 것뿐이다.[17] 그 항공편이 출발지로 복귀할 때는 보통 일반 승객들을 태우고 돌아오는데, 특별편이 부여된다.

영미권 언론들은 교황이 타는 비행기를 '셰퍼드 원(Shepherd One)'이라고 부르는데, 성경 구절의 '착한 목자'[18]라는 뜻의 셰퍼드와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12. 복식[편집]

교황의 상징색은 흰색. 그래서 교황은 항상 흰색의 수단을 착용한다. 교황이 흰색 수단을 입는 이유는 흰색이 고대로부터 「신」을 상징하는 고귀한 색이고 대사제만 입을 수 있었던 특성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교황은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인 최고의 목자라는 점에서 흰색 수단을 입는다.

13. 신비주의 설들[편집]

성 말라키 오모르라는 12세기의 수도자라틴어 두세 단어로 112명의 교황을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문서가 있는데 이 예언[19]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태양의 신고(辛苦)' 혹은 '일식' 은 요한 바오로 2세, '올리브의 영광' 은 베네딕토 16세라고 하며 마지막 112번째 교황은 '로마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식 기간에 태어나 일식 기간에 사망했으며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올리브. 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명을 따온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속명(조반니 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에 베드로의 이탈리아어 버전(피에트로)이 들어간다고 하면서 이번교황이 마지막이라는 주장을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다. 예언을 끼워맞추기 위해 억지로 대립교황[20]들까지 끌어다 붙였다는 점에서 이미 신뢰도는 크게 떨어진다.

물론 성 비오 10세가 1909년에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며 남긴 말, "아아, 나인지 나의 후계자인지는 모르나 그가 교황좌에서 내려와 로마를 떠날 때 그는 형제들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와 같은 무시무시한 예언이 2012년 종말론과 맞물려 화제가 되었지만 이 일화는 위 예언과는 무관한 교황의 암살을 예언한 파티마의 성모 사건의 제3예언[21]과 관련된 일화다.

이나마도 실신한 교황이 위의 비오 10세를 포함해 비오 12세라든지 바오로 6세라는 등 자료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제 1, 2예언보다 공개가 한참 늦었던 제 3예언을 둘러싸고 핵전쟁 예고라는 둥 각종 음모론이나 추측이 난무했으며 예언이 모두 공개된 시점에도 그렇게 사소한 예언을 교황청이 100년 가까이 일급 기밀로 숨겼을 리 없다며 많은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조직의 수장이 암살당할 것을 예고한 예언이 과연 사소한 것일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하튼 상황이 이러하니 이와 관련해서 교회의 공적 발표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

14. 통계[편집]

  • 역사상 263명(베네딕토 9세가 퇴위와 복위를 반복하면서 3선을 했기 때문)의 교황과 39명의 대립교황이 있었다.
  • 교회사상 가장 많이 선택된 교황 이름은 요한으로, 요한 1세부터 요한 23세까지 총 21명(대립교황 요한 16세는 제외하고 요한 20세는 실재하지 않음)이다. 그 다음이 그레고리오(16명), 베네딕토(대립교황 1명 제외 15명), 클레멘스(15명), 레오(13명), 인노첸시오(13명), 비오(12명), 스테파노(9명) 차례다.
  • 교황은 통상 나이가 지긋하다. 기록이 비교적 확실한 1700년 이후만 따지면 평균 연령이 선출 당시 65세이고 선종 때는 78세다. 재위 기간은 평균 13년이다.
  • 67세에 즉위해 25년 뒤인 93세에 선종한 레오 13세(재위 1878~1903)가 최고령이다. 그다음으로 87세로 선종한 클레멘스 12세(재위 1730~1740), 86세로 선종한 클레멘스 10세(재위 1670~1676)가 있다.
  • 최고령 즉위는 클레멘스 10세로 만 79세 10개월이었다. 그 뒤로 알렉산데르 8세가 79세 6개월, 바오로 4세가 78세 11개월, 클레멘스 12세가 78세 3개월이었다.
  • 역대 교황 중 최장기 재위 교황은 베드로로 꼽힌다. 베드로의 재위 기간은 정확하진 않지만 일반적으로 교회 설립 이후 그가 순교했을 때(기원후 64년 또는 67년)까지 대략 34~37년을 재위 기간으로 꼽고 있다. 베드로를 제외하고 가장 오랫동안 교황직을 수행한 교황은 비오 9세(1846~1878년 재위)로 31년 8개월을, 그 뒤를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년 재위)가 이어 26년 6개월, 레오 13세가 25년 5개월을 재임했다.
  • 가장 짧게 재임한 교황은 우르바노 7세로 13일간 재위했다. 그 다음으로 보니파시오 6세가 16일, 첼레스티노 4세가 17일, 테오도로 2세가 20일, 시신니오가 21일간 재위했다.
  • 78명의 교황이 시성되었으며 대립교황 중에서도 2명(히폴리토, 펠릭스 2세)이 시성되었다. 교황 중 시복된 사람은 8명이다.
  • 출신지별로는 이탈리아 태생이 177명(그 중 로마 태생만 77명), 그리스 태생 11명, 독일 태생이 7명, 시리아 태생이 6명, 시칠리아 태생이 3명, 사르데냐 태생이 2명, 스페인 태생이 2명, 아프리카 태생이 2명, 영국·아르헨티나·포르투갈·폴란드 태생이 각 1명이다.
  • 특이한 직분 출신으로는 수도사 출신이 22명, 탁발 수도사 출신이 16명, 평신도 출신이 2명, 은수자(수도원이 아닌 혼자서 은둔해서 수도하는 수도자) 출신이 1명이었다. 특히 평신도 출신은 하루동안 모든 품을 받고 교황직에 올랐다.
  • 제3회까지 포함하여 수도회 출신별로는 베네딕토회 출신 23명, 프란치스코회 출신 17명, 도미니코회 출신 7명,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6명, 시토회 출신 2명, 테아티노회와 예수회 출신이 각 1명이다.
  • 31명이 순교했고, 5명이 사임, 5명이 투옥, 4명이 살해, 1명이 암살, 1명이 면직, 1명이 군중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사망한 사람이 1명, 1명은 무너진 지붕에 깔려 죽기도(…) 하였다. 사후 부관참시당한 사람도 1명이 있다.
  • 역대 교황 중 '대교황' 칭호를 받은 이는 레오 1세그레고리오 1세 2명뿐이다.

15. 타 기독교 교파의 입장[편집]

15.1. 정교회[편집]

정교회가톨릭동서 대분열은 신학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인 문제로는 교황의 수위권 논쟁을 들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교회에서도 교황(=로마 총대주교)이 총대주교들 중에 으뜸임은 인정하나, 그 으뜸이라는 표현은 명예적인 것으로 교황이 다른 총대주교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권리는 없다고 보았다.

15.2. 개신교[편집]

가톨릭에서 베드로를 제1대 교황으로 추앙하는 것에 대하여 예수 사후 베드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대부분의 복음 전파는 사도 바오로가 주축으로 행했다는 점과 베드로로마에서 죽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교황이라는 개념을 부정한다.(참고글 "로마교황권에 대한 정리)

개신교의 다른 주장으로는 베드로의 '고백'[22]이 반석이 되어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 '베드로'가 반석이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가톨릭 측의 입장인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세철학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믿음'이 축복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떡밥이 되기도.

또한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이든 믿음에 내려진 권위이든 간에, 그 권위를 타인이 승계(세습)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개신교 측의 주요 논거 중 하나이다.[23] 따라서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이외에는 없으며, 교황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24]

아무튼 교황의 권위의 근거는 가톨릭개신교 신자들에게 키배를 벌이게 하는 좋은 떡밥이므로 언급할 땐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이나 영국, 서유럽 등의 주류 교계에서도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하는 경우가 많다.[25]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주장 자체는 애초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는 물론이고 후대의 존 웨슬리(감리회 창시자)도 했던 주장이다. 또한 변형되지 않은 장로회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다만 몇몇 음모론이나 종말론에 심하게 현혹, 심취되어 집착하는 몇몇 극단적 세대주의에 빠진 개신교 이단에서는 교황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고 신빙성 떨어지는 음모론 영상과 자료를 올린다. 이런 건 가려낼 필요가 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민중신학 등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나 신학자들도 가톨릭의 전체주의식 조직 구조가 가지는 보수성과 권위(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원래 개신교가톨릭사제의 존재와 의미에 관련해서 여러모로 다를 수 있으며 그 권위적 질서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만인사제론'과 '개교회주의'의 특성간 개교회 간[26], 신자들 간 수평적[27]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교황이라는 자리는 이 두 정체성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그렇다 보니 그냥 편하게 이웃 교회로 간주하기도 하는 듯.

반면에 가톨릭은 전통과 권위가 존중되는 본래적 의미의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 비판이 최대한 통제되고 조용히 넘어가게 되는 성향이 강하다. 평신도-성직자 및 상급 성직자-하급 성직자 간 순명이라든지 교도권이라는 수직적 질서가 강하다는 것. 파문을 비롯한 종교적·영적 제재의 의미도 훨씬 엄격하기도 하고 한 교회에 뿌리 박고 지내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목사와 달리[28] 주기적으로 전출하므로[29]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는 방식으로 조용히 해결하기 쉽다. 교리 해석도 독점되어 있기에 이상한 사이비 종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30]

이런 면에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보수성 때문에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깨뜨리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지닌다. 한국 가톨릭은 훨씬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적, 타 종교에 개방적인 편인 것은 사실이다.[31][32] 하지만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33]와 신부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황청에서 이단시하는 해방신학을 따르는 이단이라고 간주하거나 심지어 종북이라 말하는 등[34] 내부적인 부분에서는 좀 다를 수 있다.

다만 종교개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교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15.2.1. 성공회[편집]

교황직과 그 권위에 대한 성공회 측의 전반적 입장은 당연히 가톨릭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지는 않으나, 세세한 해석은 그 성공회 신자의 신앙 자세가 고교회파/저교회파/광교회파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국적이나 소속된 관구/교구가 어디인지 등에 따라 꽤 넓은 스펙트럼을 보이는 편이다.[35] 성공회는 신자 개개인의 신앙적 성향을 일일이 터치하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부류부터 가톨릭을 적대시하는 부류까지 매우 다양하다. 개신교의 여느 다른 교파들처럼 소속 교파만 보면 그 신자의 신앙 자세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지 않기 때문에, 성공회 신자 앞에서 교황이나 가톨릭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조심하는 것이 좋다.

성공회는 당시 헨리 8세의 이혼과 후사 문제 그리고 잉글랜드 교회와 웨일스 교회에 대한 과세와 교회 재산의 소유권 문제를 놓고 잉글랜드-웨일스 왕국[36]과 스페인 왕국, 합스부르크 왕가[37],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한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교황권에 대한 해석은 위의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는 조금 시작점이 다르다.

16. 창작물 속의 교황[편집]

파일:alpha5.png   자세한 내용은 교황/창작물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베르골리오'라는 표기로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지침에는 이탈리아어식으로 '베르골료(/berˈɡɔʎʎo/)', 스페인어식으로는 '베르고글리오(/βerˈɣoɣljo/)'라고 표기하게 되어 있다. 가톨릭 굿뉴스에서는 '베르골료'로 표기하고 있지만, 국립국어원에서는 비록 이탈리아계더라도 스페인어를 쓰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점을 들어 스페인어식인 '베르고글리오'로 표기를 심의하였다.[2] 원래 교황은 바티칸 이외의 국적을 가질 수 없다. 보편교회의 수장이 특정국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바티칸 이외의 국적을 포기하게 되는데, 아르헨티나는 헌법상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자국민의 국적포기가 불가능한 탓에 이례적으로 프란치스코는 이중국적 교황이다.[3] 당시 한국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4] 이 점은 '교종'도 마찬가지다.[5] 일본 가톨릭 교회에서 교황으로 명칭을 수정해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는 정변이나 쿠데타로 나라가 바뀌지 않는 한, 한 번 등록된 직책명은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바꾸지 않아, 가톨릭 측이나 외국 측에서 작성한 게 아닌 한, 대부분의 경우 교황이 아닌 로마 법왕이라는 명칭으로 일본 정부의 공문서들과 각종 미디어에서 널리 표기되었다.[6] 우리식으로 하면 아빠 정도?[7] 영어의 pope가 아닌 라틴어 papa에서 나온 러시아어 단어이다.[8] 다만 이건 papa에 대한 것이고, 아버지라는 의미의 존칭들은 21세기까지도 교황이 아닌 사람들에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베네딕도회의 장상이 아빠스로 불린다거나, 신부에 대한 영어 존칭이 father라던가. 물론 father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서도 쓰이는 표현이다.[9]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은 창조주이자 구원자로 흠숭(숭배)와 찬미를 받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은 존경을 받는다. 즉, 창조주이자 구세주이신 하느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위계 구분이 존재하며, 이 위계의 구분에 따라 그 대상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10]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인된 교리를 인정하는 교파를 칼케돈파라고 하며,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가 모두 여기에 속한다. 다시말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절대다수는 칼케돈파 교회이며, 비칼케돈파 교회는 오리엔트 정교회 등 소수이다.[11] 극히 드문 비유럽 출신이자 최초의 신대륙 출신[12] 다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국인 아르헨티나는 법적으로 국적을 포기할 수 없는 탓에, 프란치스코만 이례적으로 이중국적이다.[13] 그리스어로 '자유인'이라는 뜻이다.[14] 요한 23세도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서는 교황에 대해 언급할 때, 말하자면 "존엄하신 분의 입술에서 옥음이 내리셨다" 같은 식으로 표현했는데, 요한 23세는 그냥 "교황이 말했다"라고 쓰라고 지시했다.[15] 그리말디 가문은 21세기 들어서야 이 특권을 부여받은 듯한데, 그레이스 켈리 때만 해도 교황을 알현할 때 검은색 드레스를 착용했다.[16] 이탈리아 (사실상의) 마지막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손자(정식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왕세자(1937~)의 아내.[17]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일등석을 탈 수 있긴 하다.[18]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요한 복음서 10장 11-16절
[19] 112 로마베드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많은 환난 속에 들을 치리라, 그때가 지나면 일곱 언덕 위의 도시는 파괴되고 두려운 심판자가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끝.[20] 정통성이 없어서 정식 교황이 아닌 교황. 간혹 이 대립교황 때문에 교황의 역사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참고 차원에서 대립교황 명단이 따로 있다고 한다.[21] 제1예언은 양차 세계대전을, 제2예언은 공산주의의 대두와 몰락을 예언하였으며 제3 예언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교회에서는 예고된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충고에 따라 신심과 영성으로 극복해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품에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상본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봉헌했다.[22]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 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마태오 복음서 16:16)'.[23] 특히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는 '사도'라는 직분이 초대 교회 이후로는 사라진 직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24]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도 주장하는 내용[25] 개신교 교파 중 그나마 가톨릭과 사이과 원만한 루터교회 중 보수 교단들에서도 이렇게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26] 국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고, 교단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교회 하나하나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 다르다. 확실한 것은 가톨릭의 수직적인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27] 심지어 사제직을 인정하는 성공회조차 만인사제론을 받아들인다.[28]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다. 네덜란드 등에서는 목사의 임기가 정해져 목사가 이동하는 일이 한국보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교단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나, 한국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회는 원론적으로 교회 장로들이 합의를 통해 설교자(목사)를 해임하고 다른 설교자를 초빙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런다. 또한 교회 개척 등 다른 이유로 다른 교회로 옮기는 목사들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 교회에 목사가 오래 머무는 것은 사실이다.[29] 이것도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다. 가령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한 성당에 꽤 오래 머무는 사제들도 있다.[30] 물론 가톨릭에서 사이비 종파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드물긴 해도 있긴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베이사이드 성모와 국내의 마리아의 구원방주 문서를 참고.[31] 실제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수용하고 중도우파(자유보수주의~사회자유주의)적 포지션을 취하며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군사독재 시절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한 투쟁을 거치며 그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진다.[32] 물론 가톨릭도 교구별로 성향 차이가 있다. 대구대교구 측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하고, 광주대교구는 진보적인 편.[33]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 등[34] 물론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은 좀 심각한 사람들로, 가톨릭 내부에서 비판받는 이들이다. 진보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불호를 떠나 가톨릭 교리상 그들을 비난함은 교도권에 불순명한다고 비칠 수 있기 때문.[35] 예를 들어 영국 지역 교회 통합론자들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에 우호적인 목소리 쪽에서는 교황을 기독교 세계의 어른으로 존중할 수도 있다는 식이고, 가톨릭에 부정적인 측에서는 극단적으로는 교황의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식.[36] 정확히는 그 내부에서도 왕실과 의회를 중심으로 한 헨리 8세 지지 세력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왕실과 의회가 교회를 굴복시키는 형태로 내부에서 전개됐다.[37] 스페인과 합스부르크 왕가는 당시 혼인 동맹 관계였다. 헨리 8세의 본처가 스페인 공주 출신인 아라곤의 캐서린이었고, 만약 이대로 헨리 8세가 숨지면 살리카 법을 인정하지 않는 잉글랜드-웨일스 왕국의 왕위는 자연스럽게 그 딸인 메리에게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에,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는 자연스럽게 스페인-합스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이혼 반대파와 잉글랜드-웨일스를 중심으로 한 이혼 찬성파의 국제적 논쟁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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