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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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국기에도 그려져 있는 교황의 문장.
삼중관+천국열쇠가 전형적인 특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이어 교황관 대신 3개의 줄이 있는 주교관이 위에 있고, 예수회 문장과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별, 배필인 나자렛의 성 요셉을 상징하는 나르드 꽃이 새겨져 있다. 아래에 사목표어가 쓰여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어: 교황 (敎皇)
중국어: 敎宗(정체), 教宗(간체)
일본어: 教皇, ローマ法王 [1]
그리스어: πάππας (pappas)
라틴어 · 이탈리아어 · 스페인어 · 포르투갈어: Papa[2]
영어: Pope/Pontiff/Holy Father
독일어: Papst/Pontifex
프랑스어: Pape/Souverain Pontife
러시아어: Папство (Papstvo)/Папа Римский (Papa Rimskiy)
아랍어: بابوية كاثوليكية
에스페란토: Papo

1. 개요2. 명칭3. 역사
3.1. 탄생3.2. Papa/pope(교황)의 의미 변천3.3. 중세, 교황권의 전성기3.4. 근세와 오늘날
4. 타 교파의 입장
4.1. 개신교4.2. 정교회
5. 교황 무류지권6. 교황을 둘러싼 이야기
6.1. 교황의 국적6.2. 교황의 선출 과정6.3. 교황과 외교 예절6.4. 교황 관저6.5. 신비주의적 떡밥들6.6. 교황과 관련된 통계
7. 교황에게 부여되는 것들
7.1. 직함7.2. 교통편
8.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호칭9. 창작물 속의 교황10. 관련 문서11.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교황들
11.1. 실존인물11.2. 가상인물

1. 개요[편집]


'예수와 그의 제자 베드로의 후계자'
교황 비오 8세의 무덤, 피에트로 테네라니, 1866년, 성 베드로 대성당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제작된 작품. 보좌에 앉아 양팔을 펼치고 있는 성상은 예수이고, 예수 앞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조각상은 교황 비오 8세, 왼쪽의 열쇠를 든 성상은 성 베드로, 오른쪽의 칼과 책을 든 성상은 성 바오로다.
그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후계자가 아니라 한 어부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모든 권력이나 권위의 행사는 봉사하는 데 있으며, 교황은 자기 자신을 즐겨 ‘Servus servorum Dei’(하느님의 종들의 종)라 부른다.
- 이브 콩가르

로마 교구의 주교이며 가톨릭의 수장이자 바티칸 시국국가원수. 부를 때는 성하(聖下, His/Your Holiness)라고 예칭한다.

가톨릭은 교황이 존재함으로써 중앙집권적인 교회체계가 완성될 수 있었으며, 따라서 가톨릭의 교황이라는 존재는 가톨릭 교회들의 하느님과 성인들 다음으로 존경할만한 대상이자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는 교황을 곧 하느님의 대변자로써 본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런 존경심을 권력으로 이용해먹으며 찌들어 부패하고, 이에 실망한 신자들이 등을 돌렸던 시절도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선출된 교황들은 세속적인 권력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이런 교황부터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신자들의 존경심이 돌아오고, 다시 존경받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홍콩에서는 최근 미니버스 광고에 현 교황이 나오는 등 가톨릭의 선교활동이 적극적이다. 기존 홍콩 신자들도 많고 신심도 두터운 분위기이기 때문.

2. 명칭[편집]

라틴어에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 'Pater'가 있는데 이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의미하며,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를 뜻한다. 따라서 어원으로만 보면 '교부'(敎父)로 표기하는 게 맞지만, 국어대사전에는 교황의 동의어로 교화황(敎化皇), 법왕(法王), 법황(法皇), 로마 법왕(Roma 法王) 등이 등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는 '백성을 하느님에게 이끌어 감화시키는 자'라는 의미에서 '교화황'(敎化皇)이라 했고, 또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친 모든 교리를 세상에서 주관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주교자'(主敎者)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교화황을 줄인 교황과 교종을 혼용했으나, 차츰 교황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면서 완전히 정착되었다. 1992년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교황이 공식 용어로 최종 확정됐다. 북한에서는 로마 교황이라고 한다.

근래 들어 교황이라는 호칭이 황제, 제국을 연상시켜 지나치게 권위적인 느낌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3년 3월 21일 명동성당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경축 미사를 집전한 강우일 베드로 주교[3]는 강론에서 교황 대신 '교종(敎宗)' 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였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택한 분의 복음적 영혼과 삶을 드러내는데 임금황제를 표현하는 '교황'이라는 어휘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는 것이 이유. 강 주교는 이미 1990년 전례위원장 시절부터 교황의 호칭을 '교종'으로 교체하는 것을 검토한 적이 있었다. 강 주교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에도 다시 한 번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현재 공식적으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교황'이라는 기존의 용어를 구태여 '교종'으로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또한 교황이라는 용어가 다소 군주적인 의미가 있다 하더라도[4], 바티칸 시국의 대표로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제도를 반드시 민주제로 인식하여야 할 필요는 없다. 교황직이 교회와 한 봉사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나, 교회 제도의 가시적인 형태를 보아 '교황'이라는 용어가 걸맞는 것이다.

'교종(敎宗)'은 홍콩, 마카오 등 기독교인이 많고 기독교가 보편화된 중화권에서 교황을 일컫는 말이며, 기독교 인구가 턱없이 적은 일본에선 교황(教皇)과 로마 법왕(ローマ法王)이 혼용되고 있다.

NHK일본 정부 공식으로는 '로마 법왕'이라고 하며[5] 1981년 2월 요한 바오로 2세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부터 일본 천주교에서는 교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에서 교황을 '법왕'이라고 하는 건 원래 불교 화엄경 한역(漢譯)에서 Dharma-raja에 대한 상대어로 사용한 해당 단어를 석가모니를 비롯한 부처, 나아가 교계의 지도자를 일컫는 말로 쓰던 용례를 그대로 유용해와 갖다 붙였기 때문. 혹시 소문대로 일본 황실과 관계가 있는 '황(皇)'을 사용하는 敎皇의 호칭을 피하려 한 거라면 법제(法帝)라고 호칭해도 된다만 일본 가톨릭은 불교의 영향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단어를 안 좋아하기 때문에, 교계 자체적으로는 한국과 같이 '가르치다'라는 의미를 강조하는 교황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교세가 작아 보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하교회가 꽤 크지만 종교의 자유는 없어 표면적인 기독교인 수는 터무니 없는 중국이나 기독교인이 극소수인 대만도 홍콩처럼 교종이라고 한다.

3. 역사[편집]

3.1. 탄생[편집]

나무파일:external/catholicharboroffaithandmorals.com/St.%20Peter%20Lives%20of%20the%20Popes%2001.jpg

가톨릭에서는 예수수제자베드로가 최초의 교황으로 예수가 지어준 이름인 베드로(반석, 터줏돌)라는 뜻대로 베드로에게 주춧돌이 되라고 한 말을 따라 교회의 기초를 닦았다 한다. 이후 교황은 베드로의 후계자로 인정되고 있다는 게 가톨릭에서 보는 입장이다.

교황(Pope)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쓰게 된 건 10세기 이후로 그 이전에는 '로마 총대주교' 라는 말을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했다. 영어 Pope는 아버지란 뜻인 라틴어 Papa에서 유래했다. 단, 아버지를 가리키는 또다른 라틴어인 Pater하고는 조금 의미가 다른데 Pater는 생리적 아버지, Papa는 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이다. 아무튼 Papa는 두루 주교를 부르는 말로 썼으나 점차 교황을 가리키는 말로 유보하여 사용하게 되었다.

3.2. Papa/pope(교황)의 의미 변천[편집]

고대 그리스어에서는 원래 아버지를 부르는 애칭으로 쓰이는 단어[6]지만, 라틴어에서 이를 차용하면서 존칭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동방정교회 쪽과 라틴어를 쓰던 서방교회 쪽 모두 사제주교, 총대주교를 Pope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현재도 그리스, 러시아, 세르비아의 동방정교회에서는 교구 신부들을 Pope라고 호칭한다.[7]

반면 서방교회 쪽에서는 이 사용이 점차 제한되면서 3세기 초 무렵 고위 성직자를 일컫는 존칭으로 Papa를 사용하다가[8] 5세기 무렵부터는 주로 로마의 주교를 일컬을 때 사용, 8세기 이후에는 오로지 로마의 주교에 대한 호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종교개혁 시기에 들어서 이 용어에 대해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으며 개신교 쪽에서는 당시 많이 사용되던 Papa라는 호칭 대신 "로마의 주교" 라는 원래의 용어를 선호했다.

3.3. 중세, 교황권의 전성기[편집]

나무파일:external/www.traditionalcatholicpriest.com/Pope-Innocent-with-St.-John-of-Matha.jpg

중세에 접어들며 종교의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올라가자 한때 교황은 유럽의 왕이나 황제보다도 강력한 실존하는 권력이 된 적이 있다. 1305년부터 1978년까지 모든 교황은 삼중관이라는 관을 썼는데 왕관 3개가 쌓여 있는 형태이다. 이 관은 유럽, 나아가 가톨릭 세계의 다른 어떤 왕과 황제보다도 교황의 권세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인 장치였다.

사실 중세르네상스 시기에 워낙 막장인 교황들이 많았던 점이 비판받기도 한다.[9] 역사적으로 카노사의 굴욕 같이 황제라도 교황한테 대항하다가 데꿀멍하기도 하고 정반대로 아나니 사건이나 아비뇽 유수 같이 교황이 왕권에 굴복하는 사건도 일어나면서 군주권과 교황권의 세력이 엎치락 뒤치락 하기도 한다.

그러다 십자군 전쟁을 정점으로 하여 교황의 권력도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한다.

3.4. 근세와 오늘날[편집]

르네상스 시대에는 강력한 군주가 여차하면 교황을 갈아엎을 수도 있는 수준이 된다. 군주론에서 체자레 보르지아의 실수로 자신에게 해를 입었던 추기경이 교황이 되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을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교황 선출에 권력자들의 입김이 미치는 것도 공공연한 일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도 교황을 정치적 의미에서 종속시켰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 시기쯤에는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가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퍼져나가고, 프랑스 등의 강대국에서는 서서히 원시적 내셔널리즘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도 교황과의 사이가 미묘했던 베네치아 공화국, 피렌체 공화국들로 인해 입지는 줄어들고 있었다. 때문에 이 시기의 교황들은 예술을 후원하는 등 문화, 예술 분야에서 교회의 위상을 높여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입지 때문에 사치스러운 경향이 생겨나게 되고, 이게 하필이면 위에서 언급한 '권력에 종속된 교황직'과 환상의 시너지를 불러일으켜, 교황들의 인성적 자질은 르네상스 시기에 최악을 달리게 된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데르 6세. 이 사람은 일단 교황 선출 과정부터 추기경에게 뇌물을 뿌려 당선되었으며, 교황의 자리에 오른 이후는 뇌물을 받아 먹는 건 약과고, 주교 자리와 추기경 자리를 매점매석 하고 돈세탁까지 해주는 등 온갖 기상천외한 악행이란 악행은 다 행했다. 그 외에도 매춘, 남성과 성관계, 근친상간을 하기도 하고, 매독으로 죽은 교황도 있으니 이런 사람들이 성직자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 결국 이런 식으로 권력의 맛 때문에 교황부터가 썩어 들어가니 종교개혁이 터지고, 개신교가 탄생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아무튼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들 인격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정말 뼈아픈 흑역사라, 신학자들 역시도 교리적 차원에서 가톨릭 교회를 옹호하는 것과는 별개로, 르네상스 교황들 개개인의 인격적 자질에 대해서는 거의 쉴드를 안치는 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전히 교황령이 존재하고 군대 역시 보유하고 있었으나[10]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기를 거치며 많이 위축되었고, 1870년 이탈리아 통일로 교황령을 상실하면서 실질적 권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교황령의 상실이, 결과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되었다. 과거에는 교황이 뭔짓을 해보려 하더라도 반쯤 세속국가인 교황령의 정치적 입장도 고려해서 해야했지만, 교황령이 날아가면서 이제 더이상 눈치볼 필요가 없어진 것. 즉 교황이 세속적 논리에서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로워졌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황령이 날아간 후에는, 교황들의 인격적 자질이 눈에 띄게 좋은 편이다. 물론 인격적 자질이라는게 많은 경우에 주관적 판단이 들어갈 수 있지만, 최소한 르네상스 시기의 교황들과는 비교를 거부할 수준으로 올라간 셈.

물론 그렇다고 교황을 세속국가 이탈리아에 포로 신세로 놓는 것도 여러모로 난감한 상황이라, 이후 1929년 라테라노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市國)을 세우게 된다. 따라서 세속국가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지 않되, 다스리는 땅은 미니국가 수준이라 세속적 권위는 없다시피 한 현대적 교황직이 탄생하게 된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세속국가와 교회의 구분을 더 명확히하게 된다.

이렇게 과거엔 권력에 찌들어 부패하고, 정치적 권력을 악착같이 챙겨왔으나 가톨릭이 정치와 정치적 권력에게 작별을 고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선출된 교황들은 권력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황제를 뛰어넘는 권위를 상징하던 삼중관은 공의회 이후 착용하지 않음은 물론 베네딕토 16세 부터는 아예 문장에서까지 삭제되었으며,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던 세디아 제스타토리아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한 이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박물관으로 가버렸고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와서는 교황의 권위를 뜻하는 붉은 모제타를 착용하지 않은 채 즉위식을 하였을 정도.

그러나 지금도 교황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세계의 거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종파, 단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는 가톨릭에서 최고의 지위에 있는 사람인 만큼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인이 그 영향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 타 교파의 입장[편집]

4.1. 개신교[편집]

반면 개신교에서는 예수베드로에게 직접적으로 교단을 차리라고 말한 적이 없고 예수 사후 베드로의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대부분의 복음 전파는 사도 바오로가 주축으로 행했다는 점과 베드로로마에서 죽었다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교황이라는 존재를 부정한다.(참고글 "로마교황권에 대한 정리)

개신교의 다른 주장으로는 베드로의 고백[11]이 반석이 되어 교회가 세워진 것이지 베드로가 반석이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이 주장은 가톨릭 측의 입장인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논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중세철학적으로는 '사람'이 아닌 '믿음'이 축복 등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떡밥이 되기도.

또한 베드로의 인격에 내려진 권위이든 믿음에 내려진 권위이든 간에, 그 권위를 타인이 승계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개신교 측의 주요 논거 중 하나이다.[12]따라서 개신교에서는 교회의 우두머리는 예수 이외에는 없으며, 교황은 교회의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고 본다[13]

아무튼 교황의 권위의 근거는 가톨릭개신교 신자들에게 키배를 벌이게 하는 좋은 떡밥이므로 언급할 땐 주의해야 한다.

주류 교계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하는 경우가 많다.[14] 교황이 적그리스도라는 주장 자체는 애초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 울리히 츠빙글리는 물론이고 후대의 존 웨슬리(감리교 창시자)도 했던 주장이다. 또한 변형되지 않은 장로교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에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다만 몇몇 음모론이나 종말론에 심하게 현혹, 심취되어 집착하는 몇몇 극단적 세대주의에 빠진 개신교이단에서는 교황을 적그리스도(anti-christ)라고 하고 좀 신빙성 떨어지는 영상과 자료를 올린다. 이런건 가려낼 필요가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진보적 성향의 개신교나 신학자들도 가톨릭의 조직 구조가 가지는 보수성과 권위(주의)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원래 개신교가톨릭사제의 존재와 의미에 관련해서 여러 모로 다를 수 있으며 그 권위적 질서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교황이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인 '만인사제론'과 '개교회주의'의 특성간 개교회 간[15], 신자들 간 수평적[16]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교황이라는 자리는 이 두 정체성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렵다.

반면에 가톨릭은 전통과 권위가 존중되는 본래적 의미의 보수성이 강하기 때문에 내부 비판이 최대한 억제되고 조용히 넘어가게 되는 성향이 강하다. 평신도-성직자 및 상급성직자-하급성직자 간 순명이라든지 교도권이라는 수직적 질서가 강하다는 것. 파문을 비롯한 종교적·영적 제재의 의미도 훨씬 엄격하기도 하고 한 교회에 뿌리 박고 지내는 경우가 비교적 많은 목사와 달리[17] 주기적으로 전출하게 되어있으므로[18] 설령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 신부를 다른 곳으로 보내 버리는 방식으로 조용히 해결하기 쉽다. 교리 해석도 독점되어 있기에 이상한 사이비 종파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는 많은 장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근본적인 보수성 때문에 기존의 구조와 질서를 깨뜨리기 쉽지 않다는 한계도 지닌다. 한국 가톨릭은 훨씬 사회 참여에 적극적으로 정치적으로 진보적, 타 종교에 개방적인 편인 것은 사실이다[19] 하지만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와 신부들은 정의구현사제단을 교황청에서 이단시하는 해방신학을 따르는 이단이라고 간주하거나 심지어 종북이라 말하는 등[20] 내부적인 부분에서는 좀 다를 수 있다.

종교개혁의 효시라 할 수 있는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는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적·교리적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놓고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 성공회헨리 8세 혼인 무효화 문제를 놓고 갈라졌다.

4.2. 정교회[편집]

정교회가톨릭동서 대분열은 신학적, 문화적, 정치적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매우 복잡하다. 정치적인 문제로는 교황의 수위권 논쟁을 들 수 있다. 동로마 제국의 교회에서도 교황(=로마 총대주교)이 총대주교들 중에 으뜸임은 인정하나, 그 으뜸이라는 표현은 명예적인 것으로 교황이 다른 총대주교구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권리는 없다고 보았다.

5. 교황 무류지권[편집]


교황의 말은 언제나 옳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때 발표된 '교황 무류지권(無謬之權)' 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교회' 자체에 대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의 산물이다. 교회 자체에 대한 이해와 정의를 담보로 하기 때문에 지금도 가톨릭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 중요한 신학적 논쟁사항이다.

교황이 무류지권을 선언하기에는 다음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 교황이 한 사람의 신학자로서가 아닌 세계 교회의 최고 목자이자 영적인 스승으로서 선언한다.[21]
  • 신앙이나 도덕의 문제에만 국한하며 그에 따라 지켜야 할 교리를 차례대로 절차를 밟아 진행한다.
  • 그 발언이 교회의 가르침에 모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22]
  • 이 가르침은 무류적이다 또는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23]
  • 미리 충실한 조사, 연구, 협의, 기도를 자주 거쳐 충분히 모두가 이해하여 변경의 여지가 없도록 완성한다.
  • 성령이 부여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때 선언문은 '본인은 이에 관해 다음과 같이 결정을 내려 선언한다' 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또한 무류성의 마지막 조건은 반드시 교황의 선언이 전 세계 모든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즉, 교황이 공식적인 순서를 밟아 모든 교회를 향해 선포한 것이 아니라면 그 선언은 무류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즉 교황의 결정이 전부 무류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결정이 무류하다는 것이며 그나마도 위에 적은 것과 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무류성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역으로 '교황무류성이 행사되지 않은 다른 가톨릭의 교리는 종교적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 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물론 이런 견해에 의하면 기독교의 핵심사상인 유일신 사상이나 삼위일체, 단죄와 구원에 관한 교리들조차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런 식의 극단적인 견해를 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가톨릭 교리의 가장 큰 권한은 성경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있으며 그에 대한 유권적 해석의 최종 권한('절대 권한' 이 아님)이 교황에게 있는 것일 뿐이다.

현재 무류권에 의해 인정되는 교리는 아래의 3가지 뿐으로 가톨릭에서 전통적으로 인정해 왔던 교리를 재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아래 교리들은 오랫동안 가톨릭교회에서 '성전(聖傳)' 으로 전승되어 왔지만 '성경' 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교파에 따라 교리가 크게 다르다. 이 점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공식적인 신앙을 무류권에 근거하여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 449년 교황 레오 1세가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정통 그리스도론 신학을 담은 '토메'(Tome)를 보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만을 강조하는 단성론을 반대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人性)이 함께 있다고 했다. 레오의 토메는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공식 신조로 채택되었다.
  • 성모승천교리(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 성모 마리아 사후 그 육체와 영혼이 함께 승천했다는 교리. 다만 예수처럼 자의로 승천(Ascensio Domini)한 게 아니라 구약성경 인물인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들어올려졌다' 는 의미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한다. 1950년 교황 비오 12세가 무류지권을 발동해 발표했다.

교황의 무류지권은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미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던 문제에 대해 이쪽이 더 타당하니 이렇게 정하고 더 이상 논하지 말 것을 교황이 도장을 찍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정해진 사안에 대해서 반대하고 일어나면 그 순간 교회와는 분리되어 나간 것이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강력한 권한인 것은 사실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13년에 퇴위하자 교황무류성의 권위가 모호해지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바티칸 측은 교회법상 교황의 무류성은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지니게 되며 사임한 교황은 더는 도그마를 선포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제까지 교황이 선종(善終)한 후 차기 교황이 결정될 때까지의 기간과 마찬가지로,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는 어떠한 주교도 무결성을 보유할 수 없다는 것이다.

6. 교황을 둘러싼 이야기[편집]


교황 되는 법.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가톨릭 신자인 남성이 신부주교추기경 코스를 거쳐 교황이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법적으론 가톨릭 실자인 남성은 모두 자격이 있으나 관행적으로 추기경중에서 선출한다.그러나 법적 규정이 그런건 아니어서 돈많은 사람이 미는 일반인이 교황이 되기도 했던 흑역사도 있다)

6.1. 교황의 국적[편집]

現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며 전임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참고로 베네딕토 16세의 전임 교황이었던 요한 바오로 2세수영하는 사진은 파파라치들에게 걸려 웬만한 슈퍼 스타의 사진보다 비싸게 팔렸다.

두 사람 이전에는 대부분의 교황이 프랑스계 아니면 이탈리아계였으나 요한 바오로 2세폴란드 출신이어서 새로운 역사가 되었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당시에는 냉전 시대여서 폴란드공산주의 국가였다. 한편 베네딕토 16세독일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아르헨티나 출신. 왜 '출신' 을 강조하느냐 하면 교황은 바티칸 시국의 군주이이므로 국적바티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이라면 이미 추기경 시절부터 이중국적을 갖고 있다.

교황이 공식석상에서 발언할 때에는 본인을 단수로 '나' 라고 칭하지 않고 우리라고 칭했다. 유럽에서 군주급 인물이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를 복수로 칭한 전통에서 유래하는데 이를 장엄복수형이라 하여 Majestic plural 또는 Royal we라고 하며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우리의 모습을 따라 인간을 만들자!' 라고 한다거나 히브리어에서는 신을 단수형인 엘이 아닌 엘로힘으로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양에서는 그냥 짐(朕)으로 번역하고, 프랑스에서는 왕이 Je가 아닌 Nous로 자칭하며 스페인에는 이런 관습이 없다. 비슷한 전통이 있는 이슬람교쿠란에서도 알라는 자신을 '우리' 라고 칭한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이 전통을 깬 사람이 바로 요한 바오로 1세. 자신을 그냥 '나'라고 칭하여 주변인을 놀라게 했다.

초창기 교황들의 이름은 의외로 대부분 로마식이 아니라 그리스식인데, 그럼에도 그들 대부분이 그리스인이라는 설명은 거의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교황 연대표는 초창기 교황들 중 7명은 로마를 비롯하여 이탈리아 출신이고, 베드로 한 사람만 유대인이라고 기술한다. 아마도 그들은 예수가 시몬을 케파라는 이름으로 바꿔주고, 이를 그리스식으로 베드로라고 읽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름도 그리스식 이름으로 바꿨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그리스식으로 개명하는 이런 관행은 제13대 교황 엘레우테리오에 이르러서도 끝나지 않았고, 심지어 중세에도 '그리스식' 교황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의 시대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그리스식 이름을 택하는 관행의 중요성은 더욱 줄어들었다.

6.2. 교황의 선출 과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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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황은 전임 교황의 선종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15일~20일 이내에 선출된다. 교황의 선출은 세속 선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뿐 아니라 아주 특이한 방법으로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진다.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다.’는 뜻의 콘클라베라 불리는 교황 선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스티나 경당에서 이루어지며 국적이나 출신 등에 관계없이 80살 이하 전 세계의 모든 추기경들이 투표에 참석한다. 외부와의 소통이 일제히 단절된 채 추기경들은 매일 두 번의 비(非)공개 투표를 하며, 그 결과는 전통적으로 짚이나 종이를 태워 알리게 되어 있다. 짚은 검은 연기를 내고 종이는 하얀 연기를 내는데, 연기는 시스티나 경당 내부의 작은 굴뚝을 통해 경당 정면 오른편에 있는 박공 앞의 한 지점으로 뿜어져 나온다.

이렇듯 교황의 교체는 대부분 전임 교황의 선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교황이 선종했을 때 그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선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본명을 3번 부르며 은망치로 이마를 3번 두드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나 실제로 이 방법이 사용된 적은 없고 의사과학적 소견을 받아서 하며 선종이 확인되면 수석 추기경이 교황의 오른손에서 어부의 반지를 떼내 은망치로 표면에 2개의 깊은 십자 흠집을 내어 기능을 정지시키는 의식을 치른다.

교황이 새로 재임할 때 같이 새로운 추기경들을 임명하곤 한다. 그런데 왠지 대대로 정체가 '비공개' 처리된 사람이 꼭 (최소한) 1명씩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추기경 문서의 인 펙토레 추기경 참조. 어디서 사는 비밀 추기경인지 공산당에 의해 천주교가 통제되는 중국 혹은 구소련 지역이자 정교회가 뿌리 깊은 러시아 지역 추기경이라는 설이 있지만 언제나 떡밥만 무성하다. '예전에 비해 말도 안 될 빈도로 언론에 노출될 정도로' 규모 확대일로에다 아예 조직 스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엑소시즘 파트 담당자라는 소문도 있다.

6.3. 교황과 외교 예절[편집]

다른 군주국의 군주를 알현할 때와 마찬가지로 교황을 알현할 때 역시 엄격한 예법과 절차를 준수해야 했다. 한때는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추었지만 오늘날에는 (특히 세속 국가의 지도자들의 경우) 이렇게까지 격식을 갖추지는 않는다.

복장의 경우 여성은 검은색 긴 소매 옷과 검은색 머릿수건을 착용해야 하나, 교황의 수단과 같은 흰색 옷을 입을 수 있는 특권을 갖는 여성이 있다. 가톨릭 군주국 가운데서도 교황청에 의해 '최고의 가톨릭 군주(Rex Catholicissimus)'로 인정받은 국가의 여왕 또는 왕비만이 이 특권을 가진다. 대통령 등 왕정이 아닌 국가의 수장이나 가톨릭이 아닌 왕가의 여왕·왕비는 이 특권을 부여받을 수 없다.

현재는 스페인 보르본 왕가, 벨기에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 룩셈부르크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모나코 그리말디 가문, 이탈리아 사보이 왕가 등 5개 왕가만이 보유하고 있는 특권으로[24], 2016년 기준으로 스페인의 레티시아 왕비와 소피아 왕대비, 벨기에의 마틸다 왕비와 파올라 왕대비, 룩셈부르크의 마리아 테레사 대공비, 이탈리아 마리아나 공비[25], 모나코의 샤를린 공비 등 7명이 이 특권을 갖고 있다. 관련기사

6.4. 교황 관저[편집]

4세기부터 교황들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인근에 있는 라테라노 궁전에서 기거했지만 아비뇽 유수가 종식된 이후에는 바티칸사도 궁전에 거처해왔다. 로마 시내의 퀴리날레 언덕에도 교황 소유의 궁전이 있었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 때 사보이 왕가가 몰수했고 현재는 이탈리아 대통령 관저로 바뀌었다. 한편 로마 교구의 주교좌, 즉 교황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라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에 있다. 아비뇽 유수가 일어나기 전까지 교황들이 라테라노 궁전을 1천년 가까이 관저로 삼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6.5. 신비주의적 떡밥들[편집]

성 말라키 오모르라는 12세기의 수도자라틴어 두세 단어로 112명의 교황을 예언했다고 전해지는 문서가 있는데 이 예언[26]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의 후임 교황이 마지막 교황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태양의 신고(辛苦)' 혹은 '일식' 은 요한 바오로 2세, '올리브의 영광' 은 베네딕토 16세라고 하며 마지막 112번째 교황은 '로마베드로'. 요한 바오로 2세는 일식 기간에 태어나 일식 기간에 사망했으며 베네딕토 16세라는 교황명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베네딕토 수도회의 상징이 올리브.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다. 예언을 끼워맞추기 위해 억지로 대립교황[27]들까지 끌어다 붙였다는 점에서 이미 신뢰도는 크게 떨어진다.

물론 성 비오 10세가 1909년에 실신 상태에서 깨어나며 남긴 말, "아아, 나인지 나의 후계자인지는 모르나 그가 교황좌에서 내려와 로마를 떠날 때 그는 형제들의 시체를 밟고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와 같은 무시무시한 예언이 2012년 종말론과 맞물려 화제가 되었지만 이 일화는 위 예언과는 무관한 교황의 암살을 예언한 파티마의 성모 사건의 제3예언[28]과 관련된 일화다.

이나마도 실신한 교황이 위의 비오 10세를 포함해 비오 12세라든지 바오로 6세라는 등 자료마다 내용이 천차만별이다. 애초에 제 1, 2예언보다 공개가 한참 늦었던 제 3예언을 둘러싸고 핵전쟁 예고라는 둥 각종 음모론이나 추측이 난무했으며 예언이 모두 공개된 시점에도 그렇게 사소한 예언을 교황청이 100년 가까이 일급 기밀로 숨겼을 리 없다며 많은 음모론이 쏟아져 나오는 실정이다. 세계 최대의 단일 조직의 수장이 암살당할 것을 예고한 예언이 과연 사소한 것일지는 읽는 이의 판단에 맡기겠다. 여하튼 상황이 이러하니 이와 관련해서 교회의 공적 발표를 제외하면 믿을 만한 자료는 거의 없다.

6.6. 교황과 관련된 통계[편집]

1. 역사상 266명[29]의 교황과 39명의 대립교황[30]이 있었다.

2. 78명의 교황이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대립교황 중에서도 2명[31]이 시성되었다. 교황 중 복자로 시복된 경우는 8명이다.

3. 출신지별로는 이탈리아 출신이 177명[32], 그리스 출신 11명, 독일 출신이 7명, 시리아 출신이 6명, 시칠리아 출신이 3명, 사르데냐 출신이 2명, 스페인 출신이 2명, 아프리카 출신이 2명, 영국,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폴란드 출신이 1명이다.

3. 특이한 직분 출신으로는 수도자 출신이 22명, 탁발 수도자 출신이 16명, 평신도가 2명, 은수자(수도원이 아닌 혼자서 은둔해서 수도하는 수도자)가 1명이었다.

4. 31명이 순교했고, 5명이 사임, 5명이 투옥, 4명이 살해, 1명이 암살, 1명이 면직, 1명이 대중들에게 다구리를 당해 죽었다. 전쟁터에서 입은 부상으로 죽은 사람이 1명, 1명은 무너진 지붕에 깔려 죽기도 하였다. 사망후 부관참시당한 경우도 1명이 있다.

7. 교황에게 부여되는 것들[편집]

7.1. 직함[편집]

역사가 오래된 직위답게 호칭이 많다.
  • 로마주교(Episcopus Romanus): 가장 기본적인 직위. 의외로 로마 교구는 총대주교구도 대교구도 아닌 그냥 교구이다.
  •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Archiepiscopus Metropolitanae Romae): 로마 교구 및 주변 7개 교구관할. 주변 교구는 6개이며 현직 주교가 추기경으로써 임명된다. 오스티아 교구는 실존지역교구가 아니므로 주변 6교구장 중 선임이 겸임한다.
  •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 대교황 성 그레고리오 1세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역대 교황들의 서명으로 많이 애용되는 명칭이다.
  •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이 추가한 직함. 사실 성 베드로의 후계자라는 점에서 틀린 말이 아니다.
  • 사도들의 으뜸 성 베드로의 후계자
  • 전체 교회의 최고 주교

7.2. 교통편[편집]

이탈리아의 철도사업자인 '트레니탈리아' 는 3~4량의 교황 전용 객차를 보유하고 있고 이탈리아의 국영 여객항공회사인 '알리탈리아(ALitalia)' 는 여객기를 전세하는 방식으로 제공하며 이탈리아 공군은 H-3D 31-2번기를 Elicottero Del Papa(교황의 헬기)라고 부르며 운영 중이다. 아마도 이탈리아 공군이 H-3 시킹 시리즈를 AW101 시리즈로 통일 운영할 시에는 아무래도 교황 전용 헬기 역시 바뀔 것으로 추정된다.

육로를 이용한 대외 활동을 할 때는 전용 차량에 타고 이동한다. 흔히 영화 같은 데서 교황이 나올 때 특이한 자동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것. 이 교황 전용 차량은 파파모빌(Papamobile)로 불리고 있으며 방탄 소재로 되어있다. 파파모빌의 차량번호는 SCV 1.

국내에서 <둘이 합쳐 아이큐 100>으로 개봉된 <Le Comiche>라는 이탈리아산 논스톱 코미디 영화에도 교황이 타고 다니는 파파모빌이 등장하는데, 난데없이 난입한 두 주인공 때문에 사막 랠리 경주에 휘말려서 엉뚱하게 랠리 우승을 하기도 한다.

교황에게는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과 같은 전용기가 없다. 가톨릭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세속적으로는 로마 안에 있는 도시국가 바티칸 시국의 국가원수이기도 한 교황에게 전용기가 없다는 것은 다소 뜻밖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교황청은 그동안 교황의 외국 방문 때마다 민간 항공기를 빌려 사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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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관례로 로마에서 출국할 때는 이탈리아 국적기인 알리탈리아 항공을 임차하고 외국 방문 뒤 돌아올 때는 방문국의 국적기를 빌려왔다. 가령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에는, 알리탈리아 항공의 에어버스 330 전세기로 한국을 찾고 로마로 귀국할 때는 대한항공의 보잉 777기를 이용했다.

교황이 타는 항공기는 에어포스 원과 같은 국가 정상의 전용기가 아니라 민간 여객기이다 보니 방어용 무기 등이 전혀 장착돼 있지 않고 전세기에 지휘통제센터도 없다. 교황이 탔다는 걸 알리는 건 항공사 로고 아래 교황의 문장 뿐이다. 게다가 교황의 좌석도 일등석이 아니라 이보다 등급이 한 단계 낮은 비즈니스다. 알리탈리아 항공 여객기에는 일등석이 없이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석만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교황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비즈니스석 첫 줄에 혼자 앉는 것뿐이다.

영미권 언론들은 교황이 타는 비행기를 '셰퍼드 원'(Shepherd One)이라고 부르는데, 성경 구절의 '착한 목자'[33]라는 뜻의 셰퍼드와 미국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8.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호칭[편집]

하지만 로마 교구에서만 교황의 호칭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아 교구의 총대주교 역시 아프리카 교회의 교황으로서의 명칭을 지속적으로 사용해왔다. 처음 사용한 사람은 13대 대주교 헤라클레우스 때부터이며 가톨릭교회 역시 이 명칭을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자신들을 적법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의 계승자임을 선포한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콥트교회의 최고 수장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들이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교회나 콥트교 내에서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들이 가톨릭의 교황처럼 특별히 주교들의 으뜸가는 위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프리카 지역 내에서의 관리자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교황이라는 말보다는 "아버지"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복음사가 마르코의 후계자이자 아프리카 전 교회의 총대주교답게 이쪽도 만만치 않게 명칭이 길다.[34]
  •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거룩한 신부이자 최고 목자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리비아, 펜타폴리스, 에티오피아, 전 이집트 그리고 전 아프리카의 아버지-총대주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대사제 중의 대사제
    • 13번째 사도
    • 보편교회의 재판관(Ecumenical Judge)
  • 오리엔트 정교회 콥트교회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 위대한 도시 알렉산드리아 교구, 대 카이로 관구의 아버지-대주교
    •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거룩한 정통 사도좌로써 이집트, 리비아,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와 전 아프리카의 총대주교
    • 이집트관구의 수도대주교
    • 북아메리카의 수도대주교
    • 이집트, 펜타폴리스, 누비아, 수단의 수석주교
    • 복음사가이며 사도 순교자인 성 마르코의 후계자
    • 신부 중의 신부
    • 목자 중의 목자
    • 모든 대사제들의 대사제
    • 알렉산드리아 신학교 학장
    • 사도 중의 13번째
    •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의 보편 재판관
    •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오는 교회와 정통 신앙의 기둥이자 수호자

9. 창작물 속의 교황[편집]

교황/창작물 문서 참조.

10. 관련 문서[편집]

11.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교황들[편집]

11.1. 실존인물[편집]

11.2. 가상인물[편집]

[1] 일본 가톨릭 교계 및 신자 사이에서는 교황(敎皇)이란 명칭을 사용하지만, 일반(비신자 및 언론)에서는 로마 법왕(ローマ法王) 아니면 줄여서 법왕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2] 영어에서 교황의 형용사 표현은 papal인데 이게 바로 papa에서 온 것이다.[3]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4] 이 점은 '교종'도 마찬가지다.[5] 일본 교회에서 교황으로 해달라고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서는 정변이나 쿠데타로 나라가 바뀌지 않는 한 한 번 등록한 것은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허락을 안 해줘서 아직도 교황으로 못 바꾸고 로마 법왕이라는 명칭이 각종 미디어에서 명칭으로 쓰이고 있다.[6] 우리식으로 하면 아빠 정도?[7] 영어의 pope가 아닌 라틴어 papa에서 나온 러시아어 단어이다.[8] 다만 이건 papa에 대한 것이고, 아버지라는 의미의 존칭들은 21세기까지도 교황이 아닌 사람들에게 계속 사용되고 있다. 베네딕도회의 장상이 아빠스로 불린다거나, 신부에 대한 영어 존칭이 father라던가. 물론 father는 성부 하느님에 대해서도 쓰이는 표현이다.[9] 대표적으로 30년 전쟁이 끝났을 때는 지역 군주의 신앙에 따라 지역민의 신앙을 결정한다는 종교적 결정이 있었음에도 교황은 교섭에서 배제당했다. 이에 교황이 불만을 제기했으나 열강은 하나같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10] 그냥 '존재하고' 정도가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5대 강국 가운데 하나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다른 넷은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이 시대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중부 이탈리아에 오늘날의 바티칸 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넓은 영토를 보유했기 때문. 따라서 이 시기의 교황들은 성직자로서는 물론 정치가로서의 역할도 해야 했으며, 상술된 바와 같이 '워낙 막장인 교황들이 많았던 점이 비판받는' 것도 성직자인 동시에 정치가여야만 했다는 점을 보지 않고 '교황은 당연히 성직자 아님? 근데 엉뚱한 짓만 하네?' 라는 생각만으로 평가하기 때문.[11]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태오 복음서 16장 16절)'.[12] 특히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는 '사도'라는 직분이 초대교회 이후로는 사라진 직분이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13]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에서도 천명되어 있는 내용[14] 개신교 교파 중 그나마 가톨릭과 사이과 원만한 루터교 중 보수 교단들에서도 이렇게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15] 국교회를 의미할 수도 있고, 교단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교회 하나하나의 관계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해석에 따라 다르다. 확실한 것은 가톨릭의 수직적인 구조를 거부한다는 점.[16] 심지어 사제직을 인정하는 성공회조차 만인사제론을 받아들인다.[17]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다. 네덜란드등에서는목사의 임기가 정해져 있어서 목사들의 이동이 한국 등지보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교단에 따라 차이가 크긴 하나, 한국 개신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회의 경우, 원론적으로 교회 장로들이 합의를 통해 설교자(목사)를 해임하고 다른 설교자를 초빙하는 것도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렇게 행해진다. 또한, 교회 개척 등 다른 이유로 다른 교회로 옮기는 목사들도 상당히 많고.다만,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 교회에 목사가 오래 머무는것은 사실이긴 하다[18] 사실 이것도 나라마다 다소 차이는 있다. 가령 유럽 일부 국가들에서는 한 성당에 꽤 오래 머무는 사제들도 있다[19] 실제로 가톨릭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특히 한국 천주교는 군사독재 시절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한 투쟁을 거치며 그러한 성향이 더 두드러진다.[20] 물론 이 정도로 말하는 사람들은 좀 심각한 사람들로, 가톨릭 내부에서 비판받는 이들이다. 진보파 성직자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불호를 떠나 가톨릭 교리상 그들에 대한 비난은 교도권에 대한 불순명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21] 교황 개인의 신학적 견해가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교황 개인은 다르게 생각할지라도 많은 신학자들이나 보편적 신앙심에 근거하여 자신의 견해에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할 수도 있다.[22] 교회의 가르침이란 성경을 포함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던 사도적이며 역사적인 전통. 즉 교황이 별다른 근거 없이 마음대로 교리를 뒤엎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23]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크게 상관 없거나 연옥림보처럼 신학적으로 아직 증명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교황이 마음대로 무류지권을 주장할 수 없다.[24] 이 중 이탈리아만 군주제가 폐지(1946년)되었다. 그리말디 가문은 21세기 들어서야 이 특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레이스 켈리가 교황을 알현할 때 검은색 옷을 착용했다.[25] 이탈리아 (사실상의) 마지막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손자(정식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아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디 사보이아 왕세자(1937~)의 아내.[26] 112 로마베드로가 교회를 다스리고 많은 환난 속에 들을 치리라, 그때가 지나면 일곱 언덕 위의 도시는 파괴되고 두려운 심판자가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리라. 끝.[27] 정통성이 없어서 정식 교황이 아닌 교황. 간혹 이 대립교황 때문에 교황의 역사 기록에 오류가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 탓인지 참고 차원에서 대립교황 명단이 따로 있다고 한다.[28] 제1예언은 양차 세계대전을, 제2예언은 공산주의의 대두와 몰락을 예언하였으며 제3 예언은 1981년 요한 바오로 2세 암살 미수 사건으로 현실화되었다. 교회에서는 예고된 시련을 성모 마리아의 충고에 따라 신심과 영성으로 극복해낸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요한 바오로 2세의 품에 마침 성모 마리아의 상본이 있었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알을 파티마의 성모에게 봉헌했다.[29] 베네딕토 9세가 퇴위와 복위를 반복하면서 3선을 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263명이다.[30] 콘클라베와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교황직을 주장하거나 수행한 사람.[31] 히폴리토, 펠릭스 2세.[32] 그 중 로마 출신만 77명이다.[33]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 요한 복음서 10장 11-16절
[34] 지역 교회의 최고재치권을 가진 총대주교나 대주교들은 이렇게 관할 구역이나 직함을 줄줄이 늘어놓는 것이 관례이다.[35] 대주교에서 마지막 권에서는 교황이 된다![36] 세이어 교단의 교황으로 은의 현자 최고위인 은의 수호자 중 한 명이다.[37] 엄밀히 말하자면 실제 교황보다는 권세가 훨씬 약하고, 성공회캔터베리 대주교 정도의 위치이다[38] 작가의 사망으로 쓰여지지 않은 스토리에서 동생 알렉산드로 18세가 사망한 이후 교황으로 즉위한다. 교황명의 경우 생전에 작가가 언급한적이 없어서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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