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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3. 시대 구분4. 구한말 인물5. 구한말을 다룬 작품

1. 개요[편집]

구한말(舊韓末)대한제국을 뜻하는 구한국(舊韓國)이라는 말에 왕조의 말기라는 의미에서 말(末)자를 붙인 것으로, 원래는 대한제국 시대만 일컫는 단어이지만 그 뜻이 확장되어 국호를 바꾸기 전의 조선 말기까지 통틀어 일컫는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 개화기와도 상당 부분 겹친다.

통상 흥선대원군 시절~경술국치(1863~1910)까지를 지칭한다. 더 넓게는 철종~경술국치까지이다.

2. 설명[편집]

Burton Holmes가 촬영한 구한말 기록영화[1]

조선 말기를 언제부터 시작되느냐를 보느냐는 다양한 시선이 있는데 보통 구한말은 흥선대원군의 집권[2](혹은 강화도 조약 체결[3])을 그 시점(始點)으로 본다. 병인양요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등 오랫동안 쇄국 정책을 유지하던 조선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나고 임오군란갑신정변 등으로 청나라일본이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고 러시아도 참여하는 등 굉장한 혼란의 시기였다. 사회적으로도 일본이나 선교사 등을 통해 서양 문물이 도입되고 국가제도 등도 굉장한 변화를 겪게 된다.

갑오경장 때는 수천년을 내려온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초기에는 청이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의 사건을 겪으며 영향력을 행세했으나 청일전쟁으로 퇴패하고 러시아와 일본이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며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러일전쟁으로 러시아가 물러나고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영일동맹 등을 거쳐 다른 열강들에게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걸 인정받고 을사조약을 통해 외교권을 박탈한다. 그 후에 군대 해산과 정부 조직 개편 등을 거쳐 1910년에 경술국치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저항 또한 일어나 의병이 나타나나 일본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강제합병 당시에는 거의 소멸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조선~대한제국 정부는 제대로 된 정책 입안에 실패하고 외세에 시달리다가 결국 국권을 상실하여 일제강점기에 이르게 된다.

한편 근대화와 함께 다양한 서양의 신기술들이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온 시기이기도 하다. 철도, 전신, 전보, 우체국, 전등, 전화, 사진, 수도, 신식 소총·대포군함, 의복 과학/기술/생활 분야뿐만 아니라 제도와 사상, 이념, 풍속, 법규 등 모든 것이 획기적으로 변하던 시대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문화충격을 겪었고, 그 과정에서 전통을 지키자는 부류와 개화하자는 부류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단발령에 대한 격렬한 저항은 나라를 뒤흔들기도 했다.

또한 한반도에 서양의 식문화가 전래되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을 기반으로 하는 식문화가 발달되어 이 영향으로 오늘날 쌀 재고량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워낙에 많은 일이 일어나고 드라마틱하던 시대에 국권 상실이라는 고통이 섞여 많은 매체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이 시기를 거친 대부분의 조선 지도자들에 대한 평가 역시 극과 극으로 갈리는 편.

참고로 이 시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홍콩 트램이 운행을 시작하고 빅토리아 문화가 꽃 피는 아시아 도시가 되었다. 같은 동아시아 지역이지만 너무 얄궂게 운명이 갈렸다.

3. 시대 구분[편집]

고종의 제국선포 후의 광무개혁기(1897년 10월 12일 ~ 1904년 8월 22일)와 러일전쟁 승리 직후부터 본격적인 일제에 의한 국권침탈기로 나누어지며 후자는 아래와 같이 나누어진다.
  • 고문정치기 (1904년 8월 22일 ~ 1905년 11월 12일)
  • 통감정치기 (1905년 11월 12일 ~ 1907년 7월 24일)
  • 차관정치기 (1907년 7월 24일 ~ 1910년 8월 29일)

4. 구한말 인물[편집]

5. 구한말을 다룬 작품[편집]

서양인과 서양 문물이 대폭 유입되는 개화기를 배경으로 하기에, 일제강점기 이전을 다룬 사극 등 역사물에서 서양인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또한 조선인(주로 지배층)의 복식도 전통 한복에서 서양식 양복, 제복 차림으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1] 버튼 홈즈 유산 보존회에서는 촬영시기를 1899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1901년으로 규명했다. 다만 1913년에 재방문했을 때 촬영한 영상도 섞였을수 있다고 추정되고 있다. 유튜브 댓글창에서 일본인들이 모리시타 인단森下仁丹 광고지를 근거로 1920년대 일제강점기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모리시타 인단은 이미 러일전쟁경에 한국에서 판매되다가 아류상품까지 나온 제품이므로 근거가 되지 않는다. 경희궁 흥화문이 멀쩡 한것을 보아 늦어도 1915년 이전의 영상일 가능성이 높다.[2] 한국사 교과서, 수험서는 출판상의 편의를 위해 흥선대원군 집권기부터 근대에 편제한다.[3] 근대성에 비중을 두는 관점에서 좀더 엄밀한 시점을 중시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