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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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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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buk
郡北
郡北
クンブク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舊 동촌리 781-1)
관리역 등급
보통역
(진주역관리 /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일반 철도
경전선 개업일
1923년 12월 1일
무궁화호 영업개시일
1984년 1월 1일
열차거리표
경전선
군 북
이 역과 함안역 사이에 신음역이 있었으나 1927년폐역되었다.
이 역과 반성역 사이에 원북역, 평촌역진주수목원역이 있었으나 2012년폐역되었다.

郡北驛 / Gunbuk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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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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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사

1. 개요2. 역사3. 주변 관광지4. 이야깃거리5. 여객열차 운행계통

1. 개요[편집]

경전선철도역.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의산삼일로 1992 (동촌리 781-1) 소재. 1029번 지방도변에 위치한다. 구 역사는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지두2길 50 (舊 덕대리 14-54번지)에 위치해 있었다. 신 역사 기준 삼랑진역 기점 64.6 ㎞. 승강장은 쌍섬식.

2. 역사[편집]

구 역사는 1997년 신축되었으나 경전선 복선 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서 지어진지 15년만에 구 역사가 되었다. 구 역사는 섬식 승강장으로, 본선 외 대피선 1쌍회차선로 1개가 있었다.

그리고 구 역전에 있던 구자운의원이 이 건물을 낼름 먹었다.(....) 군북면내에서 외과수술이 가능한 몇 안되는 의원인데다 구자운 박사가 뼈를 잘 고친다고 예로부터 소문이 나서 인근 농군 노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 관련사진

현재 하루 상하행 합쳐서 14회의 무궁화호가 정차한다. 여객수요 자체는 꽤 있는 편. 게다가 이 역 부근으로 제39향토보병사단이 이전하였으므로 전망도 나쁘지는 않은 편. KTX는 정차하지 않는다.
이 역은 열차운전시행규칙 제7조에 따른 1명 근무지정역이어서 역장 혼자서 근무한다. 본래 보통역[1]이었으나 경전선 직선화로 관리할 간이역이 줄어서 격하되었다. 사실 군북면 자체가 지나치게 쪼그라들어서겠지만.. 여러 모로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호로마이역과 닮은 곳.[2]

이 역과 반성역의 거리차이는 13.5㎞로 꽤 먼 편. 중간의 원북역, 평촌역이 있었으나 폐역되었다.

2015년 7월 25일에 개정된 열차운전시행세칙에 따라 운전간이역에서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

3. 주변 관광지[편집]

주변에 명산 고찰이 몇 군데 있지만 교통편 연계는 불편하다. 낙남정맥의 거봉 여항산과 그 줄기인 각대미산(서북산)에는 신라 고찰인 의상대라는 암자가 있다. 이름에서 보듯 의상대사와 연관이 있는 절. 이외에도 코앞에 백이산이란 봉우리가 있어 등산객들이 자주 찾기도 한다. 사실 정상부에 공원 운동시설이 생긴 후에는 거의 동네 앞산 취급이다. 인왕산보다는 높지만... 서편의 방어산과 마애불, 원북역 서산서원까지도 역 주변 명승지로 넣을 수 있겠지만 조금 멀다.

2015년 6월부터 새로운 명승지(?)가 추가되었다.(...)

4. 이야깃거리[편집]

  • 역의 유래는 일제강점기 사설철도(마산-군북)의 종착역. 그래서 당시 기준으로 역전 광장이 매우 넓었고,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꽤 큰 규모의 5일장(군북장)이 열렸다. 현재 면사무소가 있는 일대인 지두리, 중암리, 안도리, 덕대리 등은 전형적인 지리학상 교통취락 발전상을 띤다. 군북장의 규모는 함안장이나 의령장보다도 컸다(!). 쌀을 팔고사는 미전이 10군데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철로는 일제강점기 중반에 이미 진주까지 연장되었지만 군북역은 여전히 물동량이 많았다. 군북역 자체가 의령/합천/거창과 부산/마산/일본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즉 이 지역의 쌀이나 기타 물자들은 현재의 79번 국도를 따라 수송되어[3] 군북역 마당에 집하되었다. 현재도 남아 있는 대한통운 창고와 넓은 광장이 그 흔적. 군북역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북부 경남의 관문으로 흥했지만 남해고속도로가 4차선 개통되면서 망했어요.[4][5]
  • 대한통운 창고와 소화물 플랫폼 철로 맞은편에는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 있었다. 이 급수탑 아래에는 자연적으로 솟아나오는 샘물이 있는데 수량이 매우 풍부하고 샘 자체도 매우 깊다. 단 지금은 급수탑도 헐리고 플랫폼과 창고가 들어서 있어 현재는 물줄기가 대한통운 창고 뒤 구자운의원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발원지는 지금도 지역 주민의 빨래터로 쓰이며 군북장터를 지나 최종적으로는 남강으로 흐른다. 재미있는 것은 근원이 샘물이라 그런지 어떤 추운 날씨에도 절대로 얼지 않는다는 것. 또한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샘물의 지하수원은 헌 군북역 이전지인 동촌리 인근에서 분수령이 되어 신창리 인근에서 지하로 스며드는데, 이 근방에는 효성그룹으로 유명한 함안 조씨 문중의 재실이 있다. 지역 주민들은 효성그룹이 흥한 것이 의령 정암바위와 함께 이 냇물의 기를 받아서라고 이야기한다 카더라.[6] 그리고 우연의 일치겠지만 군북역 이설 후 선로가 효성그룹 문중의 재실 뒷산을 갉아먹고 난 직후 효성그룹은 3세 경영진들이 줄줄이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장터에서 또 한 번 이 지역의 기운이 잠깐 화제에 올랐다(...)
  • 증기기관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특유의 급구배 때문에 진풍경이 벌어지던 곳이기도 하다. 기차 화통 출력이 딸려서 군북역에서 출발하여 소포리 고갯길을 올라가던 열차가 도로 미끄러져 내려오기가 다반사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남자 승객(청년들과 인근 마산으로 통학하던 학생들)들이 내려서 기차를 밀었다!(...) 그리고 잽싸게 다시 열차에 올라서 함안역으로 갔다는 증언들이 있다. 실제로 이 구간은 직복선화 전까지만 해도 구배로 악명높은 산인고개, 어씨굴(원북역-평촌역 구간), 소포리 S자커브 구배 등 거의 옛 4급선 수준의 구간이었기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새마을호 PP동차의 투입을 웬만하면 꺼리고[7] 객차견인형 새마을호만 투입되었었다.
  • 구 역사 플랫폼에는 군북역의 상징인 향나무가 있고, 조차장 주위를 벚나무가 둘러싸고 있어 한철때에는 진해 군항제 때의 경화역 못지않게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외부인에게 취재허가를 좀처럼 내주지 않던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한 철도동호인이 펴낸 "간이역 여행" 단행본에서 유일하게 내용이 누락된 역이다. 심지어 커버스토리도 인근의 원북역이 되었다고..[8]
  • 현 역사 맞은편 논두렁에는 웬 바위가 덜렁 앉아 있는데 이게 사실 고인돌이다(...) 전형적인 남방식.

5. 여객열차 운행계통[편집]

급행여객열차

7.0 ㎞
군 북

13.5 ㎞

7.0 ㎞

13.5 ㎞

7.0 ㎞
군 북

13.5 ㎞
[1] 아래에 적었듯 옛날엔 꽤 큰 역이었다.[2] 실제로 일제시대 당시 오곡리에 구리 광산이 있었다.[3] 의령 정암나루는 조선시대부터 주요 길목이었다. 곽재우 장군이 침공해오는 왜군을 물귀신으로 만든 루트이기도 하다. 1955년 구 정암교가 완공되었는데 이는 정주영의 첫 토목공사로 유명한 고령교 완공보다도 2년이 더 빠르다.(!) 개통 당시에는 함안 의령 사람들이 구경거리 났다고 개통식이 북새통을 이뤘다카더라. 현재는 안전상의 문제로 통행이 금지되고 신 정암교로 79번 국도가 지난다.[4] 의령군, 합천군, 생비량, 쌍백 등의 교통수요가 군북역을 거치지 않고 군북IC를 통해 함안과 마산으로 흡수되었기 때문. 게다가 신반, 봉수 쪽 물동량도 법수-함안IC 루트를 통하게 되며 더블로 망했어요 크리..[5] 이와 정 반대 효과를 누린 곳으로는 하동군 진교면이 있는데, 진교면 이남을 지나던 옛 남해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이설되며 진교면 북부를 지나게 되자 남해군의 물동량이 진교 읍내를 관통하게 된다.[6] 인근의 군북초등학교는 현재 두 자리수 학급이 채 안 되는 분교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도시 못지않은 체육관이 있다! 1986년에는 효성 8비트 컴퓨터로 무장한 컴퓨터실이 있어서 함안군 내 시범학교 지정까지 되었을 정도... 지만 지금은 역시나 망했어요.[7] 정규편성에서 제외, 가끔 명절 대수송기간에만 PP와 구 무궁화동차, CDC가 뛰었다.[8] 사실 원북역이야말로 문자 그대로의 간이역에 어울리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