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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2. 칭호3. 현황
3.1. 귀족이 있는 나라3.2. 귀족이 없어진 나라
4. 승계5. 군대의 경우6. 창작물에서의 모습
6.1. 귀족 캐릭터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귀족(貴族)은 일반 민중과는 다른 정치적·법제적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 및 집단이다. 쉽게 말해 에 의해 보호받는 특권 계층을 가리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장교 임관에서 우선권을 갖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특권은 사라지고, 명예 칭호만 남은 경우가 많다. 영어로는 Nobility 및 Aristocrat이라고 한다.[1]

귀족과 그외 일반 민중을 구별하는 기준은 혈통, 재산, 공적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러한 특권 계층이 성립된 이유와 그 특권의 종류도 국가와 시대마다 천차만별이므로 귀족을 딱 이렇다고 정의하기란 어렵다. 칭호는 제각각이지만 법제화된 특권 계층은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가 있다.

한국사신라, 고려중국위진남북조-수당 시대에 있었다고 하는 귀족은 후대에 서구의 귀족 이론을 빌려서 붙인 것이다. 그 시대에 귀족이란 말이 쓰인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이들이 왕과 더불어 정치를 하는 주요 계층이었지만, 현대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귀족정이 사멸되었다. 반대로 민주정의 경우는 민중이 기초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전제하에 경우 귀족정보다 엇나갈 확률이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민중이 심각하게 굶주려있는 경우 비현실적이더라도 이 굶주림을 타파할 터무니없는 공약을 내세우는 자에게 표가 몰리는 경우가 있다. 바로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아돌프 히틀러나치당이 그러하다. 때문에 현대의 민주정은 '다수정'이라는 간접 민주정의 기본 전제를 유지하되, "설령 만장일치로 표를 얻더라도, 권력 분립과 상호견제는 유지해야 한다"라는 공화주의적 비판들을 상당히 받아들였다.[2]

영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8세기 중세 유럽의 귀족 비율은 혁명 이전 프랑스의 경우 약 1%, 스웨덴은 약 0.5%, 독일의 경우 약 0.01%로 매우 적었다. 봉건제의 끝물인 18세기에는 유럽의 총 인구 1.7~9억 명 중 약 3-4백만 명으로 약 1.5%~2.3%가 되기도 했다.

현재의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상이 정착된 건 근대 이후에 부르주아들이 귀족화되며 혹은 빨라도 르네상스절대왕정 시기에 자리잡았다. 그 이전의 중세 귀족들은 고상하고 우아한 부르주아보다는 오히려 화려하면서도 상무적인 전사계급에 더 가까웠다. 중세 유럽의 실권을 장악한 게르만족의 이미지가 어땠는지 떠올려보자. 또한 봉건 영주의 계약에는 40일간의 의무복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간이 넘어가면 왕은 급료를 줘야 했고 외국으로의 공격인 경우 영주는 참전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방어전인 경우 급료는 받을 수 있지만 참전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왕이 사라지면 계약관계에 의한 영주의 권한도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 하지만 여전히 40일이 넘어가면 그 값을 치뤄야 했다. 후기로 갈수록 직접 참전하는 대신 왕에게 방패세를 내고 왕은 그 돈으로 용병을 사는 방식을 택했다.[3]

그 숫자가 피지배계층에 비해 매우 적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뜻으로 '희귀한(레어한) 존재'를 가리킬 때 쓰기도 한다.

지방의 호족과 대비하여 중앙에 거주하는 권력자를 함의하기도 한다.

2. 칭호[편집]

독일어권이나 러시아에서는 승계한 대수(代數)와 봉작지(封爵地)를 따로 하지 않고 단순히 이름만으로 귀족을 나타낸다. 이것은 아래 승계 단락에서 서술하듯이 작위가 장남에게만 세습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고, 따라서 작위가 성씨와 한 묶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 Richard Karl Freiherr von Weizsäcker(독일 전 대통령)

나머지 유럽 대륙국가에서는 대수는 포함시키지 않는 채 봉작지(封爵地)의 이름만 부른다.

그 외에 영국이나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에서는 이름 뒤에 대수와 봉지를 기재함으로써 귀족임을 나타낸다.

영국에서 작위의 칭호는 문장원(College of Arms)이라는 기관과 협의하여 결정한다. 대부분 자신의 이름과는 별도로 노섬버랜드 공작(The Duke of Northumberland)처럼 본가에 가까운 지명(본래는 영지를 의미한다)을 취하지만, 다이애나 스펜서 전 영국 왕세자빈의 부친(현재는 남동생)의 작위명인 스펜서 백작(The Earl Spencer)처럼 성씨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든 당주는 로드(Lord)를 붙여서 부른다. 또한 명목상의 작위를 칭하는 장남과 마찬가지로, 공작과 후작의 차남 이하는 로드에 성씨가 아닌 이름을 붙이고, 백작이나 자작, 남작의 아들이라면 디 오너러블(the Honourable)을 붙인다. 여성의 경우는 조금 달라서, 공작과 후작, 백작의 딸은 레이디(Lady)를 붙이고, 자작과 남작의 딸은 디 오너러블을 이름 앞에 붙인다.

한국어에도 폐하, 전하, 합하, 각하 같은 종류의 경칭이 있는데, 이 말에 들어 있는 하(下)는 신분이 높은 사람을 직접 지칭하는 것을 삼가고, 그 사람의 발밑을 가리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자신을 낮추는 용법이 영어에도 있는데, 가령 여왕을 직접 불러서 말을 걸 경우라면, 처음에 "Your Majesty"와 같이 "요-[5] 마제스티", 2번째부터는 "Ma'am"과 같이 "마-암".[6] 왕실의 남성을 불러야 할 경우, 처음에는 "요- 하이네스"(Your Highness), 2번째부터는 "서"(Sir)라고 한다. 3인칭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각각 "허- 마제스티"(Her Majesty), "히즈 로열 하이네스"(His Royal Highness)가 된다. 마찬가지로 귀족의 경우, "요- 로드쉽"(Your Lordship), "요- 레이디쉽"(Your Ladyship)이라고 하는데, 군주의 경우 공작 등을 "요- 그레이스"(Your Grace)라고 부른다.

한편 귀족은 아니지만 작위와 마찬가지로 총리 등의 추천을 통해 군주가 수여하는 칭호 중에 준남작(baronet)과 기사(knight)가 있다. 2가지 모두 이름 앞에 존칭인 Sir/Dame을 붙이지만, 전자는 세습되고 후자는 당대에 한정된다. 준남작의 경우 기사와 구별해야 할 때는 Sir Marcus Worsley, Bt.(또는 Bart) 라고 표기한다. 부부를 함께 표기할 때는 Sir David and Lady Wright 식으로 한다. Sir/Dame에는 반드시 이름이 따라 붙으며, 직접 성이 오는 경우는 없다.

동양에서는 한국(고려시대)과 중국의 작위는 봉작지를 표시한 데 비해(가령 漢壽亭侯 關羽, 唐國公 李淵), 근대 일본화족제도는 봉작지 없이 작위만 표시하였다(가령 伯爵 寺內正毅).

3. 현황[편집]

3.1. 귀족이 있는 나라[편집]

  • 영국: "귀족이 있는 나라"의 대표격. 성문(成文) 규정은 없으나, 작위 수여는 군주의 관습적 권한이다. 1965년 이후 非 왕족 출신에 대한 작위 수여는 3건에 불과하다. Lord의 칭호를 받는 공후백자남 세습 귀족 가문은 900개 가량이다. 성립 시기에 따라 잉글랜드 귀족, 스코틀랜드 귀족, 아일랜드 귀족, 그레이트브리튼 귀족, 연합왕국 귀족으로 구분된다. 아울러 귀족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남작 밑에 준남작이 있으며, 세습되지 않는 일대귀족(전원 남작)이 있다. 1999년 귀족원 개혁으로 759석 중 92석만이 세습귀족의원의 몫으로 남았지만, 귀족이 명예칭호에 불과한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작위에 따른 공적 특전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7]. 영국의 현존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준남작위 목록
  • 캐나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현재 캐나다도 영국처럼 귀족이 남아 있다. 암데일의 준남작인 투퍼 가문을 비롯한 여러 귀족 가문이 현재 존재한다.
  • 바티칸: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자의교서 "교황궁 규정 변경"(Pontificalis Domus)을 통해 교황궁에서 토를로니아 가문과 콜론나 가문을 제외하고[8] 나머지 귀족들의 의례상 의무를 정지시킴으로써 완전히 무력화되었지만,[9] 작위 수여는 여전히 교황의 권한으로 남아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즉위 초반기에 몇몇 폴란드 동포들에게 작위를 수여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교황의 작위 수여는 조용히 이루어지며, 사도좌공보에도 실리지 않는다. 등급은 남작, 후작, 공작, 프린스의 4단계가 있다. 검은 귀족 참고바람. 기사작위는 아니지만[10] 기사훈장 또한 수여하고 있다. 교황 훈장 문서 참조.
  • 네덜란드: 성문규정은 없으나, 작위 수여는 군주의 관습적 권한이다. 공작, 후작은 내국인 작위로는 존재하지 않고[11], 백작, 남작, 기사(Ridder), 無작위귀족(Jonkheer)의 4단계가 있다. 1994년 이후 非왕족 출신에 대한 새로운 작위 수여는 없다.
  • 벨기에: "국왕은 작위를 수여할 권리가 있으나, 이에 어떠한 특권도 수반되어서는 안 된다(헌법 113조)"고 규정한다. 공후백자남 아래 기사(Ridder), 無작위귀족(Jonkheer) 등 7등급이 있다. 가문의 수는 1천개 남짓.
  • 스페인: 작위 수여는 군주의 권한으로 헌법 제62조에 근거한다. 영국과는 달리 작위에 따른 공적인 특권은 없다. 1948년 프랑코 총통에 의해 작위수여가 부활한 뒤 지금에 이른다. 콜럼버스의 후예인 베라과 공작(duque de Veragua), 아즈텍 왕실의 후예인 목테수마 데 툴텡고 공작(duque de Moctezuma de Tultengo), 잉카 왕실의 후예인 산티아고 데 오로페사 후작(Marquesado de Santiago de Oropesa) 등이 있다.
  • 스웨덴: 기존의 귀족 작위들을 없애진 않았으나 1902년 이래로 왕실을 제외한 작위 수여가 없으며 1975년 군주의 작위 수여 권한을 폐지했다.
  • 덴마크: 기존의 귀족들을 없애진 않았으나 19세기에 귀족들의 특권을 모두 폐지했다. 현재 200개 정도의 남작과 백작 가문이 존재한다.
  • 노르웨이: 현재 10~15개 가량의 귀족 가문이 존재한다.
  • 통가: 전통적으로 부족장들을 귀족으로서 대우하며[12], 영국과 마찬가지로 이들에 대한 공적인 특권이 존재한다. 현재 양원제 형식으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가 존재한다[13].
  • 사모아: 통가와 동일한 케이스다[14]. 그래서 사모아의 국가원수는 전통적으로는 사모아 부족 연맹의 대추장으로 취급된다.
  • 태국: 전통적으로 9단계로 나뉘는 귀족 계급이 존재했으며, 현재도 이들은 '하이쏘'[15]라고 불리면서 사회의 기득권을 독점하고 있다. 심지어 드라마같은 태국산 창작물에서는 귀족들을 대인배에 개념인인양 미화하기까지 하는데, 이것이 태국 왕실의 우민화 정책과 연결되어 태국의 빈부격차를 고착화하고 있다[16].

3.2. 귀족이 없어진 나라[편집]

20세기 이후에 귀족 제도가 사라진 나라만 언급한다.
  •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위제도는 1970년대 노동당 정부가 폐지했다가 1976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부활했는데 1992년에 다시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토니 애벗 총리가 다시 부활시켰으나 맬컴 턴불 총리가 2015년 당선되면서 또 폐지했다.(...) 좌파와 우파가 번갈아 집권할 때마다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 이탈리아: 1947년 폐지되었으나 무솔리니 정권 이전에 받은 귀족 칭호 자체는 인정해주었다. 이탈리아도 공화국 기사작위를 수여하는 일이 있다.
  • 프랑스: 프랑스의 귀족제도는 프랑스 혁명 발생 이후 1790년 폐지되었다가 1802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부활되는 등 왕정과 더불어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가 프랑스에 공화정 체제가 자리잡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에선 귀족 가문의 후예들이 자신을 공작이니 백작이니 칭호하는 일이 흔했고 정부 차원에서도 귀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구 귀족가문의 명사들을 XX백작, XX공작으로 공식 칭호해주었으나 1975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대통령이 안와르 사다트 당시 이집트 대통령의 방불에 맞춰서 이러한 관례를 폐지했다. 이러한 관례를 폐지한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스카르 대통령은 "프랑스는 공화국이다"라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재밌는 것은 지스카르 대통령도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
  • 핀란드: 핀란드 귀족 제도는 1809년까지는 스웨덴 귀족 제도를 따르다가 1809년부턴 러시아에서 정립한 핀란드 귀족제도를 따랐다. 핀란드에서 최후의 귀족은 1912년에 서임되었으며 이후로 세습이 가능한 작위가 수여된 바가 없다. 핀란드는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귀족제도를 폐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회 수립과 더불어서 차차 귀족들의 권한을 줄여 나갔고 1920년에 세금 특권을 폐지함으로 주요 특권들을 모두 회수했으며 1995년 귀족들의 특권을 완전히 말소했다. 여전히 핀란드 공화국 정부는 기사작위를 서임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이러한 기사작위를 귀족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편이다.
  • 일본: 화족이란 이름으로 2차대전 이전까지 존재했으나 패전한 뒤 GHQ에 의해 1947년 폐지되었다. 이때 다이쇼 덴노의 직계를 제외한 모든 방계 황족들과 화족들은 평민 신분으로 전락했다. 이를 신적강하라고 한다.
  • 이집트: 이집트는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 1952년 귀족 제도를 먼저 폐지했으며 1953년에 왕정도 폐지해버렸다.
  • 몽골: 몽골은 1925년에 귀족 제도를 공식 폐지했다.
  • 인도 공화국: 영국 식민지이던 인도 제국 시기까지는 각지의 번왕[17]을 포함한 귀족[18]들의 지위가 인정되었으나, 인도의 독립과 동시에 번왕과 귀족들의 법적 지위와 특권이 모조리 박탈당했다[19]. 현재도 번왕이 있기는 하나, 법적으로 공인받는 존재도 아니고, 아무런 특권도 법적 지위도 없다[20].
  • 파키스탄: 인도 공화국과 동일하다. 이쪽도 여러 번왕국들이 존재했으나, 1950년대에 모조리 폐지했다. 파키스탄의 번왕들은 인도의 번왕들보다 상황이 더 안습해서 아예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번왕의 존재가 아오안이 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나마 번왕의 존재감이 있는 지역에서도 번왕이 대놓고 정부에 의해 개무시당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훈자 지역[21]은 전통적으로 세속주의 성향이 강했기에 현지의 번왕이 직접 이 지역에 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법률을 강요하지 말라고 파키스탄 정부에 항의했는데도 무참히 씹혔다.
  •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까지는 각지의 번왕과 기타 영주들에게 법적인 지위가 인정되었으나, 독립 이후에 모조리 부정되었다. 단, 발리욕야카르타같이 왕실의 존속 기간이 길었던 지역은 여전히 왕실 관련 인사들이 현지의 지역 유지로 군림하는 중이다[22].
  • 아일랜드: 1922년 이전까지는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영국 왕실이 임명한 귀족들이 대거 존재했다[23]. 그러나, 아일랜드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이를 위해 벌인 영국-아일랜드 전쟁에서 아일랜드 독립군이 승리하면서 아일랜드 영토에 남아있던 귀족들이 독립운동에 가담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죄다 친영파로 몰려 영국령으로 남은 북아일랜드로 추방되면서 귀족 제도가 사실상 소멸하였고, 1922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이 선포되면서 아예 귀족 제도의 폐지를 명문화했다.
  • 아프가니스탄: 1973년의 쿠데타로 인해 왕정이 폐지되면서 귀족 제도가 소멸하였다. 단, 아프가니스탄은 구 귀족 세력이 아직도 현지에서 지역 유지로 군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 그리스: 1830년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 파나리오테스라고 불리던 전통적 귀족들의 지위가 대거 박탈되었다가,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전환된 후에는 왕족들에게 일부 귀족 작위가 수여되었다[24]. 하지만, 1974년에 왕정이 폐지되어 공화국이 된 이후로, 남아있던 귀족 작위도 다 폐지했다.

그 외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법적 인정을 받지는 못하지만 귀족 칭호(Prinz, Graf, Freiherr 등)를 성명의 일부로서 사용할 수 있다. 이 때 반드시 'von'이 붙는 것은 아니다.[28] 남태평양의 통가피지에서는 지방 추장들을 귀족급으로 대우하여 의회에서 그 의석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들이 흔히 독일 성씨로 생각하는 'von'은 영어의 of로 번역되며, 귀족과 평민들의 성의 유래가 다르다. 귀족들은 프랑스 귀족들이 de +(영지명으로 자신의 성씨를 나타내는 풍습을 그대로 옮긴것으로, 원조는 프랑스다. 이 풍습이 유럽 각지로 확산되어, 이탈리아(De, Di)나 스페인(de)에서도 비슷한 풍습이 생겼고, 마침네 독일인들도 따라했다. 평민들의 경우 어디서 온 누구라는 성씨의 성격이 강했다. 귀족의 경우에는 주로 가문의 영지나 작위의 이름에서 성이 유래했다. 유명한 합스부르크 가문의 경우 현 스위스에 위치한 합스부르크 성에서 유래했고, 후술할 비텔스바흐 가문의 이름은 저지 바이에른에 위치한 비텔스바흐 성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몇몇 명문 가문은 그냥 시조가 되는 사람의 이름을 성씨로 삼아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1919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독일 공화국 체제가 귀족 작위를 인정하지 않자[29] 내로라 하는 명문 왕공귀족은 소수만 아는 자신들의 성씨를 쓰느니 자신들의 영지의 이름을 쓰기로 결정했다. 가령 대대로 바이에른의 왕족이었던 비텔스바흐 가문은 독일 제국이 몰락하고 독일 공화국이 수립되고 나서는 성씨를 다 von Bayern 즉 '바이에른의'로 바꿨다. 2013년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인 프란츠는 자신의 성씨를 아예 Herzog von Bayern, '바이에른의 공작'으로 바꿨다. 그래서 가주인 프란츠 비텔스바흐의 법적 성명 Franz Herzog von Bayern을 그대로 번역하면 바이에른의 공작 프란츠가 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비텔스바흐 가문은 굉장히 큰 가문이라서 von Bayern 성씨를 쓰는 사람들이 많다.

4. 승계[편집]

작위는 아버지로부터 장남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다만 영국이나 남유럽의 경우에는 여자의 작위 계승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 작위를 물려주는 것이 허용되기도 하였다.[30]

영국의 경우에는 여자의 작위 계승을 허용 여부가 가문마다 다르다. 연합왕국이 성립(1707년)되기 이전부터 내려온 전통적인 귀족의 경우에는 여자의 작위 계승을 허용하는 가문이 꽤 있으나, 근대 이후에 만들어진 공훈귀족의 경우에는 여자의 작위 계승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공훈귀족이라 할지라도 작위를 수여받는 사람이 딸밖에 없다면 칙허장을 통해 그 다음 대만은 맏딸이 계승할 수 있게 해 주고, 3대째부터는 딸들이 낳은 남자 자손들만 계승권을 가지게 해 주는 경우도 많았다. 참고로 영국 공작가의 경우에는 말버러 공작가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여자의 작위계승을 허락하지 않으며, 2012년 현재 영국에는 여공작과 여후작이 없다. 말보로 공작가의 경우에도 초대 말버러 공작 존 처칠에게 아들이 없어 2대 공작위를 딸이 물려받았으나 3대는 외손자가 물려받았고, 그 이후에는 여자가 실제로 작위를 계승한 적은 없었다.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에 법률이 개정되어, 아들이건 딸이건 가장 먼저 태어난 자녀가 작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한편 독일어권이나 러시아에서는 작위가 마치 성씨처럼 자녀들에게 물려진다 할 수 있는데, 이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나 동양의 귀족제와 비교했을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백작이면 큰아들뿐만 아니라 작은아들도, 심지어 딸들도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백작이라 칭할 수 있었다. 단 딸들은 자기의 백작 칭호를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없었고 단지 귀족과 결혼한 경우에만 남편의 귀족 칭호를 물려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남계 자손들이 늘어나는 만큼 귀족의 수가 계속 증가하므로, 어느 정도 귀족의 숫자를 조절할 필요가 생기기에 귀천상혼 같은 제도도 생겨났을 것이다.

5. 군대의 경우[편집]

귀족이 군대에 입대할 경우 평민과는 다른 신분임을 표시해 뒀는데 이를 위(尉)라 하며 이는 오늘날 위관급 장교의 유래가 된다.

현대 군대의 경우는 위계서열과 명령체계가 중요한 집단인 관계로 어쩔 수 없이 귀족과 평민을 구분해 두고 귀족의 지휘하에 평민이 움직이는 시스템을 남겨두었는데 그래서 그 귀족을 군대에서는 장교라 칭한다. 하지만 이러한 신분제 사회에 민주주의를 가미한 것이 현대의 군대이기 때문에 과거와는 달리 귀족 신분인 장교는 자기가 원하면 임관할 수 있다. 대부분 따로 시험을 응시해서 합격한 이후 소정의 훈련을 거쳐 임관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사병에서 하나하나 진급해 올라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현대의 군대에서 장교란 능력만 받쳐주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귀족이다.

영국에서는 귀족들이 영국군 장교로 지원하면 일반인 지원자들보다 우선적으로 합격 및 선발되는 혜택을 받는다. 단 군종장교는 예외로 각 종파별 군종장교 지원 자격에 따라 선발될 뿐 신분 상의 혜택이나 이런 것들은 없다.

6. 창작물에서의 모습[편집]

보통 대한민국에서 '귀족'이라 하면 떠올리는 것은 근대 이후 유럽 문화의 그것이며, 만화판타지 소설 등 서브컬처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특권 계층이라는 의미가 게임상에서 사용되면 던파같은 게임에서 캐릭터, 직업의 강약에 따라 매겨지는 등급이기도 하며 이 등급이 붙은 직업은 인식이 좋은 만큼 파티에 끼기가 쉽다. 보통 하기 힘들지만 욕은 얻어먹기 쉬운(…), 혹은 플레이하는데 재미가 없다거나 모양이 안 나오는 힐러탱커 같은 보조역할 캐릭터가 귀족인 경우가 많다. 파티 플레이가 필요한 경우에 저런 역할을 할 캐릭터가 필요한데, 정작 대부분의 유저들이 여러 이유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전쟁에서는 마을을 점령하는 용도로 쓰인다.

부정적인 캐릭터로 빠질 경우 십중팔구 고루한 사고방식과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보수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스스로의 신분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타인에게 오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남성향 배틀물이나 양판소에서는 높은 확률로 유약한 이미지가 붙는데, 현장에서의 업무에 서툴다거나 폭력이 관련된 일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 경우 '경험 많고 노련한 평민 출신의 주인공에게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조연급 이상의 비중을 가진 캐릭터라면 외모가 출중한 경우가 많아서[31] 주인공의 연인이 되거나 하렘, 역하렘에 편입된다. 다소 질이 떨어지는 작품 등에서 맨날 찌질한 이유로 왕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에서의 귀족계급은 전사집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유약한 이미지는 맞지 않는다. 특히 서구에서 귀족사회가 지금과 같은 문벌화를 이루는 것은 르네상스절대왕정을 거쳐 중앙집권화를 다지고 근대국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봉건제 아래에서 창칼을 들고 스스로의 영지를 지키는 합법적인 무력집단에 가까웠다. 유럽 이외의 사회에서도 귀족이라 불릴만한 지배계층은 대개 무기를 들고 피지배계층을 통제하는 전사들이었다.그러니까 고증에 맞게 그리려면 귀족들은 뇌까지 근육으로 찬 무식쟁이 마초남이 되어야 한다.[32] 다만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찍부터 고도로 발달된 관료제를 바탕으로 체계화된 중앙집권화를 이뤘기 때문에 지배계층의 문인화가 훨씬 빨랐다. 한국, 일본 등의 서브컬처에서 묘사되는 문약하고 지적인 이미지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교적 많지는 않지만 긍정적으로 묘사되거나 미화되기도 한다. 순정만화여성향에서 상류사회에 대한 동경의 일환으로 전근대 귀족들의 화려한 삶을 묘사한다. 단 유럽의 중세 이전까지 내려가면 말 그대로 갑옷 입은 야만인들이 튀어나오게 되기 때문에(고증에 충실한다는 전제 하에서) 보통 배경으로 잡는 시대는 르네상스 이후의 바로크 ~ 로코코가 된다. 이를 시대상과 결부시켜 극적으로 그려냈다고 평가받는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베르사이유의 장미. 그 밖에 현대에까지 잔존해 있는 귀족이 등장하는 사례도 많다. 아무래도 동시대를 묘사하는 것이 더 쉬우니까... 그 외에도 귀족은 귀족이되 몰락한 귀족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한국산 창작물의 경우 라이벌(?)인 양반에 비하면 매우 취급이 안습하다. 양반의 경우 현실에서도 픽션에서도 '가난한 양반'이 드물지 않고[33], 학자나 사상가 이미지가 강하며, 과거를 위해서 피똥 싸게 공부하는 이미지가 매우 강렬하여 상대적으론 취급이 괜찮다. 한국인들은 공부의 고통을 잘 이해하거든 특히 관료들의 경우 높은 확률로 과거급제자이기 때문에 적어도 '놀고 먹는 놈' 이미지는 일단 피해간다. 솔직히 과거제의 경쟁률을 보면… 한편 귀족 중에서도 음서제도라는 치트키로 유명한 고려 문벌귀족의 경우 취급이 거의 시궁창이다. 유럽 귀족들은 잘만 놀고 먹는데 왜 우리만 ㅠㅠ[34]

6.1. 귀족 캐릭터[편집]

7. 관련 문서[편집]

[1] 귀족들 위주로 돌아가는 귀족 과두정은 Aristocracy.[2] 고전적 의미에서 민주정은 다수(데모스)가 다스린다는 의미이기에, 다수 인민이 1인 권력자에게 힘을 몰아줘서 '다수의 지지를 받는 독재자'를 탄생시킬 수 있다는 치명적 문제점이 있었다. 게다가 20세기 이후 현대인의 관점이라면 모를까, 불과 나폴레옹 시대만 하더라도 데모크라시라는 말은 1인 독재자와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였고, '자유'라는 말이 절대군주와 모순되는 개념도 아니였다.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인민의 지지로 독재를 누린 사례도 있다. 결국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 굵질굵직한 독재자들을 겪어가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권력의 집중화는 안된다"라는 수정을 가한 것이 오늘날의 민주정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계보를 정리해보면 꽤 재미있는 사실이 있는데, 오늘날 독재 방지를 위해 필수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권력 분립 개념은 다름아닌 로마 귀족들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카이사르의 공화정 파괴에 맞서서, 로마 귀족들은 로마 특유의 혼합정 체제를, 곧 민주정 요소를 지닌 민회, 귀족정 요소를 지닌 원로원, 군주정 요소를 지닌 집정관으로 권력을 분리시킨 체제를 매우 열심히 옹호했다. 그런데 이게 당대의 문장가인 키케로를 통해서 후대인들에게 전해지고, 여기에 살이 붙은게 바로 근대적 의미의 권력분립인 삼권분립이다. 따라서 현대 민주정의 독재자 견제 요소를 보면, 의외로 로마 귀족들의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3] 사실 이런 면은 근대 유럽 귀족사회에서도 근근히 이어져서, 귀족들 중에는 군인으로 출세하는 사람도 많았고, 게르만족 문화에서 유래된 결투 등의 풍속도 오랫동안 잔존해있었다.[4] bethleni는 봉작지 이름이다. 헝가리 바깥에서는 István gróf Bethlen de Bethlen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 경우에는 de Bethlen이 봉작지가 된다.[5] 영국 영어미국 영어가 약간 발음이 다른 것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데, 흔히 우리가 "유어"라고 한글로 표기하는 Your를 영국에서는 "jɔ:(r)", 즉 "요~"에 가깝게 발음한다. 미국 영어의 발음도 사실은 "요어"에 가까운 발음이다.[6] Ma'am은 Madam의 단축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담"으로 발음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예전에 사창가의 여주인을 Madam으로 불렀기 때문에 "여왕 폐하께 같은 발음으로 대답할 수는 없다"라는 이유라고 한다.[7] 하지만, 그 특권이라는게 귀족에게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특권인 영국군 장교로 우선 선발 혜택을 받는 것 외에는 상원 의원직에 우선적으로 임명 될 수 있는 것 같은 별 의미없는 것들 뿐이라서 현재의 영국의 귀족제도는 타국과 다른 것이 없다. 애초에 실권을 하원이 쥐고 있어서 상원의 존재감이 미미한데다, 원래 귀족만 임명할 수 있는 자리도 적합한 자질의 평민에게 세습 불가 작위를 내려서 귀족으로 만들고 임명하기 때문에 특권은 있으나마나 한 상황이다. 단 유일하게 얻는 제대로 된 특권이라면은 영국의 귀족들은 누구던 가문 상관없이 영국군 장교로 지원시에 일반인 지원자보다 우선적으로 선발되는 특혜를 받는다. 즉 영국의 귀족들은 영국군 장교로 빠른 입대가 가능하다.[8] 이들 가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황의 의전행사에 참여하고 있다.[9] 일부 귀족들은 이에 반발해 성 비오 10세회 쪽으로 넘어가기도 했다.[10] 기사단 훈장이라는 기사단의 형식만 갖추었을 뿐, 최고 등급 훈장을 받는다고 해도 'Sir'과 같은 칭호가 붙지 않는다.[11] 바테를로 공작, 회스던 후작위가 있긴 한데 둘 다 공을 세운 외국인에게 내린 작위이다.[12] 이건 어느 나라나 다 똑같다. 애시당초 귀족이라는 개념부터 어디어디의 부족장 내지는 속국의 군주들에게 중앙정부가 지위에 걸맞는 예우를 하느라고 만들어 낸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당시의 중국의 제후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13] 귀족들은 상원을, 평민들은 하원을 구성하는 식이다.[14] 아니, 애초에 오세아니아 국가들의 대다수는 다 이런 케이스다.[15] 영어의 '하이 소사이어티'(high society)에서 온 말인데, 귀족말고도 유서깊은 재벌 및 지주, 정치인 가문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참고로 하이쏘의 반대말은 '로쏘'라고 불리는데, 역시 영어 단어인 '로우 소사이어티'(low society)에서 온 말이며, 일반적인 평민들을 가리키는 말이다.[16] 참고로 태국중동이나 일본도 쌈싸먹는 계급사회의 끝판왕인지라, 아직도 수상이 왕을 알현하려면 바닥에 엎드린 채로 기어가서 절을 해야하며, 절대로 왕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고 한다. 북한[17] 힌디어라자(Rajah)라고 한다.[18] 카스트 제도크샤트리아브라만에 해당하는 이들이다.[19] 하이데라바드 왕국같은 경우는 이 같은 인도 공화국 정부의 방침에 분개하여 파키스탄 편입을 선언하고 인도 정부에 반기를 들었으나, 인도군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이용해 반란을 진압하고 하이데라바드 왕실을 축출해버렸다.[20] 다만, 지역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예를 들면,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지역의 번왕은 현지 관광 산업을 꽉 잡고선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영향력을 불려서, 주 정부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지역 유지로 군림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시골 지역의 번왕은 자신의 거대한 궁전을 고급 호텔로 개조해서 생계를 잇고 있는데, 명색이 그 지역의 번왕이라는 사람이 인건비가 없어서 자기가 직접 손님한테 서빙하러 다니고, 모후는 아들과 함께 하인도 없이 궁전 청소를 직접 도맡아 하는 안습한 신세이다.[21] 세계적으로 장수마을로 알려진 그곳 맞다.[22] 욕야카르타가 이게 매우 심해서 지금 현재의 욕야카르타 주지사도 욕야카르타의 번왕이 겸하고 있다. 물론, 현지에서의 절대적인 영향력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가 건들지 않는 것뿐이지, 욕야카르타의 번왕에게 무슨 법적 지위가 인정된 건 아니다. 다만, 2012년에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욕야카르타의 주지사 직위는 세습직임을 인정해서 사실상 욕야카르타 번왕의 지위가 인정되었다. 물론, 이것이 인도네시아가 자국 내 귀족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욕야카르타 현지의 관습을 명문화해서 인정해준 것일 뿐이다.[23] 대표적으로, 기네스 맥주기네스 북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이 있다.[24] 왕정 시절의 그리스의 왕세자는 공식적으로 스파르타 공작의 작위를 겸했다.[25] 특히, 오스만 제국술탄가톨릭교황과 유사한 성격의 세습 작위인 칼리프 지위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터키 공화국이 선포되어 술탄의 지위에서 폐위된 뒤에도 이 작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으나, 1924년에 터키 정부가 칼리프 직위도 폐지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군주들의 작위가 모조리 소멸했다.[26] 이쪽은 귀족이라 하기엔 미묘한 감이 없지 않아있다. 원래 양반이라는 계급은 세습으로 얻어지는 건 3대손까지만이고,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야만 양반이 되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태어날 적에는 평민이었다고해도 과거 시험에 합격만 하면, 바로 신분이 양반으로 격상되었다. 그래서 당대에 양반을 보는 관점은, 흡사 지금의 고학력자들을 보는 관점과도 비슷했다. 즉, 양반을 귀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양반이 오직 혈통에 의한 세습으로만 얻어지는 신분이 된 건 과거 제도가 없어진 일제 강점기부터였다.[27] 대한민국 헌법 2장 제11조 2항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에서 강력히 부정하고 있다.[28]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아들인 베르톨트 폰 슈타우펜베르크 소장은 Graf von Stauffenberg, 현 독일연방군 정보총감인 카를에른스트 슈트라흐비츠 대령은 Graf Strachwitz. 두 사람 모두 성 앞에 'Graf'가 표기된 명찰을 정복 상의에 패용하였다.[29] 법적으로만 인정하지 않을 뿐이고 성명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은 허락한다. 오스트리아 공화국은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30] 제정 러시아의 경우에도 그리고리 라스푸틴의 암살자로 유명한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은 그 어머니가 공작가의 마지막 혈육이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성씨를 따랐다. 단 아버지의 작위인 수마로코프-엘스턴 백작위도 보조적으로 칭하긴 했다.[31] 한편 피지배층의 고혈을 빨아먹는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고도비만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32] 물론 중세 시기에는 지식과 행정은 교회가 담당했고 봉건 귀족들은 전쟁을 담당했기 때문에 성직자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무식했고, 또 무식해야 육체적 능력이 향상된다고 생각(...)해 일부러 무식해지려 노력하는 이들도 있었다지만, 이런 건 일시적인 풍조에 가까우며 실질적으로는 영지를 다스리고 관리해야 하므로 일정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건 필수적이었다. 또 당대의 분업이란 게 딱딱 나눠지는 것도 아니어서 성직자라도 영지를 가지고 무술을 익혀 기사로서 나서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었으므로 봉건 귀족과 성직자를 완벽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어찌되었든 당대의 평민들보다는 훨씬 지식도 전투력도 높았을 것이다.[33] 당연하지만 가난한 귀족도 존재한다. 하지만 봉토에 경제적 기반이 있는 봉건 귀족과, 그렇지 않은 양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분명히 있다.[34] 이는 핏줄 좋게 태어나거나, 레전드급 국가 유공자여야만 귀족이 될 수 있는 유럽과 달리, 조선과거 시험에 합격만 하면, 누구나 양반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양반 계급도 세습은 가능하나, 3대손까지만 세습이 가능하고 그 외에는 과거 급제자가 3대 중에 1명도 없을 경우에는 양반 신분이 박탈되었으므로(!), 한국인들이 양반을 사실상 귀족 취급하지 않고 그냥 상류층 내지는 지식인인 고위 평민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사극이나 소설에서 김 선달이니, 허 생원이니, 김 첨지니 하는 이름이 왜 그리도 많이 나오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물론 핏줄이 좋아서 '양반으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건 과거 제도가 없어져서 평민들이 양반이 될 길이 없어져 버린 일제 강점기 때의 일이지, 조선 시대의 경우가 아니다.[35] 사실 이건 명예직이고, 실제로 하텐그라쥬는 아라짓 왕국과 싸우는 나가 사회의 도시다.그리고 나가 사회에는 귀족이 없다.[36] 작품 마지막에 칼라일 영지를 대신해 다스릴 백작 작위를 받는다.[37] 죽은 뒤 닥터 헬백작 칭호를 내렸다.[38] 일단 폰 루비스타인 가문이 뭐하는 가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39] 아이젠슈타인이 사칭[40] 남작 작위가 있었지만 약혼녀를 혼자 구하러 가느라 작위를 버렸다.[41] 원래 이브 자체가 나소드의 여왕이지만 (기본전직 기준으로) 이브는 귀족보단 최후의 생존자에 가까운 느낌이기에 전직 중 여왕이미지가 강한 코드: 엠프레스만 기제.[42] 몰락한 귀족이며, 전직인 노블레스에서 힘을 되찾아 귀족, 여왕의 느낌이 더욱 강해진다.[43] 물론 낮은 지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다. 티란데, 마커스 조나단[44] 은하제국 측 인물들은 귀족들이 많다.[45] 아이저 규리하, 정우 규리하, 이이타 규리하, 시카트 규리하[46] 락토 빌파, 스카리 빌파[47] 홀빈 퍼스, 마진 퍼스, 레데른 퍼스, 지키멜 퍼스[48] 앤더슨 백작가의 후계. 이쪽은 레반투스 대공의 가신에 가깝다.[49] 대표적인 예로 탈라사르 대공인 카토 시카라우스.[50] 북한의 계층중 하나로 이들은 김씨왕조의 적극 추종자 집단이다. 과거의 귀족 포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