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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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이름
김연아(金姸兒)
국적
출생
본관
신체
165cm, 47kg, O형
성좌/지지
가족
아버지 김현석, 어머니 박미희, 언니 김애라
학력
신흥초등학교
도장중학교
수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1]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소속사
올댓스포츠
종교
무종교천주교(세례명: 스텔라)
링크
SNS

1. 개요2. 개인 신상 및 생애
2.1. 개인 신상2.2. 생애
3. 선수 생활4. 평가
4.1. 대한민국4.2. 해외
5. 기록6. 선수 은퇴 후7. 기부8. 기타
8.1. 열애설8.2. 이야깃거리8.3. 광고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Long live the Queen![2]

영원한 우리들의 피겨 여왕, 퀸 (Queen) 연아

대한민국의 전 피겨 스케이팅 선수. 현 세계 피겨 스케이팅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경기를 마치자 미국 NBC 방송의 해설진 가운데 한 명이었던 톰 해먼드[3]가 찬탄하며 했던 말이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가며, 김연아의 선수생활을 관통하는 짧고도 임팩트 있는 한 마디로 기록되었다. 외신 중계자들이 김연아 선수의 경기를 볼때 '퀸'이라는 호칭을 연달아 쓰는 것을 볼 수 있으며,"피겨 여제", "Queen Yuna"는 그 후 김연아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된다.

2. 개인 신상 및 생애[편집]

2.1. 개인 신상[편집]

한자로는 金姸兒. 일본에서는 キム ヨナ(키무 요나)라고 표기한다.

로마자 표기는 Yuna Kim을 사용하는데, 해외에서는 이름의 발음 문제를 고려하여 그냥 사용한다. 방송을 보면 거의 대부분 '유나 킴'이라고 읽는다. 사실 원래는 Yun-a라고 쓰려고 했으나 여권 표기 실수로 인해 Yu-na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고, 써놓고 보니 이쪽이 외국인들도 부르기 쉽고 본인도 좋아해서 그대로 쓰게 되었다.

본관경주이고, 종교가톨릭(세례명: 스텔라)이다. 출생지는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다닌 학교로 초등학교는 신흥초등학교, 중학교는 도장중학교, 고등학교수리고등학교(이상, 경기도 군포시 소재)이며, 대학교 학부고려대학교 체육교육학(학사 학위), 대학원고려대학교 대학원 체육학 전공(석사 과정)이다.

별명은 피겨 여왕[4] 그리고 로마자 표기인 Yuna Kim에서 비롯된 Yuna Queen[5]도 있다.

통산 커리어부터 점프와 예술적인 플레이까지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 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다. 뒤에 보면 알겠지만 세계 신기록만 10번 넘게 세우면서 여성 선수 최초로 200점을 돌파했고, 동시대 피겨 스케이터들을 20점 이상의 점수차로 따돌리는 일도 빈번한 등 대단한 실력을 갖춘 덕에 타국에서조차 최고의 선수 및 스타로 대접받았다. 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2.2. 생애[편집]

도금업체를 운영하는(관련 기사) 사업가 김현석과 주부였던[6] 박미희의 차녀. 자매로 3~4살 위의 언니 김애라가 있다. 1996년에 스케이팅에 입문하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2014년에 은퇴했는데 선수로서의 행적은 김연아/선수 경력에 정리되어 있다.

소속사는 2006년까지 IMG코리아[7]였다가 IB스포츠(갤럭시아에스엠의 과거 명칭)와 2010년 4월까지 계약을 맺었고, 이후 올댓스포츠로 소속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부상을 극복하고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과 그 이후로는 실질적으로 타 현역 탑싱들을 제외하고 미셸 콴, 카타리나 비트 등 전설적인 선수들과 비견되는 일이 잦았다. 그만큼 동시대 피겨 스케이터들 중에서는 독보적 위치. 시대를 풍미한 스케이터로 평가받는다.

출전하는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며, 빙판 위를 제대로 쓸어버리는 진정한 여왕. 일단 출전해서 경기를 했다 하면, 대부분의 대회에서 관객 전원의 기립박수를 받아내고 신기록 작성까지 해 주시며 피겨계를 주름잡던 여왕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의 유명 스포츠언론이나 해설진들은 그녀가 시니어 데뷔를 하고 은퇴하던 시즌까지의 대부분의 국제대회를 김연아가 참가하는 대회 or 김연아가 참가하지 않는 대회로 구분하기도 했다.[8]

그녀의 활약 이후로 수많은 피겨 스케이팅 유망주들이 생기고 있고, 국민적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초등부 한정으로는 피겨 유망주들이 더 많을 정도. 또한 그녀가 2014 소치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대외적으로 밝힌 컴백 이유 중 하나가 '후배들을 이끌고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어서'. 피겨계에 금전적 지원 및 여러가지로 후원을 하고 있기도 하다. 후에 한국 피겨계의 대모라고 불릴 가능성이 높다. 골프계에서의 박세리와 여러모로 위치가 비슷하다.

외국에서도 '그 전까지는 출전도 잘 못한 나라에서 어디서 이런 거물이 튀어나왔냐'고 신기해하는 말이 종종 나온다. 은퇴 이후 외국 대회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나올 때마다 '김연아가 이끌고 온', 또는 '물꼬를 튼' 선수라고 언급된다. 박소연, 김해진 등이 연아키즈로 등장했고, 현재는 유영, 임은수가 포스트 김연아로 주목받고 있다.

3. 선수 생활[편집]

3.1. 선수 경력[편집]

3.2. 수상 기록[편집]

자세한 사항은 김연아/수상 기록 참조

4. 평가[편집]

4.1. 대한민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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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불세출의 천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스포츠 영웅 중 하나이자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 중 한 사람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에 한국에서의 피겨는 말 그대로 관심없던 종목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한국은 그야말로 빙상 스포츠 중에서도 레이스에만 특화된[9] 나라였지, 피겨계에는 정부적 관심도, 국민적 관심도 없었고 당연히도 국내 후원이나 투자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만약 김연아가 없었더라면 한국은 계속 피겨 스케이팅 볼모지로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주니어 시절 김연아가 한창 두각을 나타내던 때 포털의 뉴스 댓글에는 '시니어에서 입상해야 진짜 실력이지, 설레발 치지 마라'는 악플도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는 김연아는 뭔지 모르겠지만 스포츠계에서는 갑툭튀한 인재였던 것이다. 당장, 김연아가 아니었다면 세계선수권 대회가 뭐고, 그랑프리 대회가 뭐고, 트리플 점프가 뭔지 몰랐을 국민이 대다수다. 따라서 사실 김연아를 처음으로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김연아가 뜨기 시작할 적 반응도 그냥 우리나라 선수가 메달을 따는게 좋았던 정도.

당연히 국제무대에서도 전통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던 유럽이나 미국,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던 일본과 달리 한국은 피겨계에서는 겨우겨우 올림픽 출전권만 얻어서 그마저도 최하위권만 기록하는[10] 잉여였다.[11]

여기에서 한창 국민적 열기를 불어넣은 것이 아사다 마오와의 라이벌 관계이다. 특히, 그 둘은 국가에서의 위치, 여러가지 특성들이 비슷해 한일전으로 취급되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만 놓고 보자면, 시니어 때의 경력은 사실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김연아가 우위를 점했다. 거기에다 한창의 전성기였던 2009-2010기간 동안은 거의 혼자서 모든 국제대회를 씹어먹고 다녔다. 나가는 대회 족족 신기록을 세우고, 그 시즌 동안에는 2등을 10점 20점씩의 차이로 따돌리기도 했던 것. 특히 이 시즌에는 09년도 세계선수권부터 해서 그랑프리 파이널까지 모든 국제 대회를 다 쓸어버린 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진입했다.

이 때 라이벌이라 불리던 아사다 마오는 시즌 내내 그랑프리 시리즈를 모조리 말아먹으며 그야말로 선수인생 최저점을 찍고 있었고, 일본 여론은 "과연 아사다를 올림픽에 내보내도 될까(...)" 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김연아는 잠정적으로 쉬다가 오랜만에 나온 메이저 국제 대회인 2013년 세계 선수권에서도 2년 동안 쉬었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역시 라이벌들을 20점 차로 압살해 버린다.[12] 그렇게 2009년 이후로는 김연아는 거의 대부분의 대회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인기가 절정에 이르게 된다.

정리하자면, 전혀 익숙치 않은 분야에서의 인재 등장 + 한일전 떡밥 + 그리고 그 떡밥을 소화해낼 만한 뛰어난 실력이 인기요인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인들에게 새겨진 김연아의 이미지는 동시대 피겨 스케이터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며,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아도 그것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극복하는 불세출의 천재로 정립된다.

또한 피겨 스케이팅체조싱크로나이즈 종목과 같이 예술성이 중요하게 반영되는 스포츠라는 특성 상, 비율 좋은 체형과 예쁘고 선명한 외모[13]가 부각되며 대중에게 어필되었고, 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악한 지원 + 부상 + 타국과의 비교 + 연습방해 영상 등 + 피날레로 편파판정논란까지 해서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타 이상의 존재로 자리매김 했다. 본인의 선행이나 끊임없는 기부도 많이 알려져 현재 와서의 김연아의 위치는 2000년대 등장한 스포츠 스타 중에서 인지도와 인기면에서 최고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인기를 증명하듯, 2009년 정도까진 피겨요정, 국민여동생 여러 타이틀로 불렸다. 밴쿠버 올림픽 때 금을 따면서 피겨요정보다는 피겨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고, 국민여동생 타이틀도 여왕이라는 타이틀의 위엄내 여동생으로 하기엔 김연아가 너무 대단(...)때문인지 사그라들고 연느로 대체되었다. 다른 국민여동생 타이틀은 자라거나, 인기가 떨어지면서 떨어지는 데에 비해 진화한 특이케이스.

실력이 제대로 피어난 2009-2010 때는 김연아가 광고한 제품만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자동차, 가전제품(ex. 에어컨), 핸드폰, 화장품, 악세사리, 금융광고 등등)로 광고계를 휩쓸어, 피겨 프로그램 보면서 김연아를 보고, 잠시 광고타임동안 김연아를 보고, 다시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김연아를 보는 것도 드물지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인기가 신기했는지 외신에서도 "피겨 스케이터가 아닌 록스타 같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또 그것과는 별개로 꾸준히 한국 피겨계에 기여하는 인물이다. 일단, 국민적 관심도가 김연아를 계기로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것에 더해, 김연아 본인 역시 잠정 은퇴수준이었던 공백기를 끊고 다시 돌아온 이유도 한국 피겨계를 위해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김연아 은퇴 이후에도 주목받는 후배 유망주들을 보도할 때 '포스트 김연아'라는 말이 항상 나오고, 인터뷰 질문에서 빠지지 않고 김연아가 언급했다는 것만으로도 기사가 나기도 한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한 것도 그렇고, 전국 피겨대회에서 수상자로 나서기도 하고, 유스 올림픽을 홍보하기도 하고, 빙상장 건설을 요청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한국 체육계의 빈곤한 환경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은 듯 하다.

4.2. 해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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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피겨 스케이팅의 간판 급 선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케이터 들 중 하나

현대 피겨계의 먼치킨 급인 인물 중 하나라, 이에 대해서 논하면 빠지지 않는다. 김연아의 연기 스타일에는 북미 쪽 취향이 상당히 반영되어 있고 아예 김연아가 출전했던 2008 스케이트 아메리카는 그전까지 최대 판매량 2002년의 티켓 판매량 28,664장을 제치고 29,477장을 팔아 최고 판매량을 세우기도 했다.

2010년 10월 2~3일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아이스쇼는 1주일 뒤에 미국 방송국 NBC를 통하여 전국에 녹화중계되었다. 자국 선수인 에번 라이서첵의 아이스쇼조차 1년 후에 방송했다. 아이스쇼 표 역시 2일치가 전부 매진되기도 했다. 또 NBC 여성피겨 방송을 들어보면 김연아에 대한 언급이 매우 자주 나오는 걸 알 수 있다.[14]

피겨 스케이팅 자체가 한국에서 워낙 불모지였던 지라 국내에서 주목을 못 받았을 때 아사다 마오의 대항마로서 제일 먼저 김연아에 주목한 것도 일본이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마오의 우승을 가로막는 포지션이 포지션인지라 우호적이진 않지만,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프리 스케이팅 때를 비롯한 시니어가 많은 경기에서 아사다가 실력과 멘탈에서도 김연아에게 밀려 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김연아의 우위를 인정하고 있다.[16] 일본 방송을 들어봐도 김연아를 여왕(죠오)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구도는 이미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되었다. 한일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라이벌 구도가 더욱 흥했고, 순정만화 《유리가면》에 빗대어 마야와 아유미로 VS놀이를 하면서 비교떡밥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언론보도 및 교양프로그램 등을 통해 마오를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며 또래들과 해맑게 웃으며 행복하게 스케이팅을 하는 타고난 천재"로, 김연아를 "하루 종일 연습만 하면서 친구도 없는 음울한 기계"처럼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도 하며 "예술(예쁘고 밝은)의 마오 vs 기술의 연아"로 구도를 만든 바 있다.

그러다 시니어에 올라와서는 김연아가 <록산느의 탱고>와 <종달새의 비상>으로 충격을 안기자, 마오를 "트리플 악셀을 구사하는 기술의 천재", 김연아를 "표현력의 천재"로, "기술의 마오 vs 예술의 연아"로 새로운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실상은 마오는 플러츠와 온전하지 못한 트리플 악셀로, 기술에서조차 김연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게 이후 점수로도 드러나, 2008년까지만 해도 둘의 전적은 아사다 마오가 근소하게 앞섰었으나 2009년부터는 라이벌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김연아가 크게 앞서게 되었다. 2009년부터 은퇴하기 전까지, 즉 2009년 사대륙선수권대회부터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둘의 상대전적은 김연아 7승 1패, 아사다 마오 1승 7패다.

중국에서는 바이두의 2010년 스포츠스타 검색어 순위 1위를(야오밍 2위) 기록하였다. 실제로 유튜브를 들어가 보면 김연아 응원 댓글 중 중국어로 쓰여 있는 것도 꽤 많이 찾아 볼 수 있으며, 추천수도 상당히 달려 있다.

금메달 수상 이후 자신이 동경하던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과 교류가 많다. 콴은 김연아의 아이스 쇼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우정을 과시했다. 김연아는 밴쿠버 올림픽 이후 훈련 장소를 콴의 훈련지인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적이 있으며, 김연아의 새 코치였던 피터 오퍼가드는 콴의 언니인 캐런 콴의 남편이자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미국의 어린이 대상으로 나오는 백과사전 2010년 판에서는 저스틴 비버와 나란히 표지를 장식했으며, 힐러리 클린턴과 편지를 주고받은 적도 있다. 세계적인 할리우드의 배우 세라 제시카 파커와 가수 리애나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김연아를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 소재를 둔 '여성 스포츠 재단(Women's Sports Foundation)'[17] 에서 주는 '2010 올해의 여성 스포츠선수 상(2010 Sportswoman of the Year)' 을 수상했다. 이는 아시아인 여성 운동선수로서는 사상 최초이다(개인 스포츠 부문).[18]타임스에서 뽑은 '2010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영웅 부문 (Hero)에 선정되기도했다.
국제구호단체인 유니세프의 홍보대사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에 이어 2번째로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UNICEF International Goodwill Ambassador)로 선정되었다. 이는 전세계 스포츠 선수 중에서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에 이어 4번째인데, 최연소, 아시아 선수 최초, 동계 종목 최초, 여성 선수 최초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로저 페더러가 빠지고 세레나 윌리엄스가 추가된 채로 4명이 활동하고 있다.#

유로스포츠가 선정하는 '가장 위대한 여성 선수 20인'에 등재되었다. #

IOC 공식 페이스북에서 한국어로 김연아 생일을 축하하는 맨션을 올렸다. #

해외 피겨 스케이터 중에서는 미국의 그레이시 골드와 중국의 리쯔쥔이 공인된 김연아의 열성팬. 그 외 김연아가 호스트가 되어 주최한 아이스쇼에 참가했던 선수들 중에서도 관심과 호감을 표하는 선수들이 많다[19]. 그 외에도 발표하는 프로그램마다 관심을 모으고 화제가 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선수들이 동작을 따라하는 경우가 잡히기도 한다.[20]

한국인 최초로 올타임 레전드 클럽에 가입되어 마이클 펠프스, 나디아 코마네치 등과 함께 도하 골스 포럼에 참석하였다. #

5. 기록[편집]

  • 역대 올림픽에서 제일 큰 점수차로 우승한 선수[21]
  • 여성 피겨 선수 중 역대 최초로 쇼트+프리 스케이팅 합산 총점수가 200점을 넘은 선수
  • 역대 세계선수권에서 제일 큰 점수차로 우승한 선수[22]
  • 국내, 국제 대회를 막론하고 어떤 경기에서도 포디움(메달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은 선수(All Podium)[23][24]
  • 쇼트 프로그램 세계신기록 수립자[2007~2014][25]
  • 프리 스케이팅 세계신기록 수립자[2007~2016][26]
  • 총합 세계신기록 수립자[2009~2017][27]
  • 쇼트프로그램 올림픽 신기록 보유자[28]
  • 프리스케이팅 올림픽 신기록 보유자[29]
  • 종합 올림픽 신기록 보유자[30]
  • 올림픽 쇼트프로그램에서 최초로 3Lz+3T를 성공시킨 여자 싱글 선수[31]
  • 3Lz+3T 컴비네이션 점프에서 가장 높은 수행점수를 받은 여자 싱글 선수[32]

6. 선수 은퇴 후[편집]

IOC에 올라온 김연아의 인터뷰 중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관련 인터뷰가 왜곡되어 기재되어서 IOC가 욕을 먹고 있다. # 김연아는 그냥 "난 클린 연기로 그동안 준비해온 내 할 일을 다했고 심사위원 판정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 이라고 했을 뿐인데 이게 어느 새인가 "기술이 뛰어난 소트니코바가 잘해서 이기기 어려웠다" 로 왜곡된 것.

해당 부분에 대한 항의를 받은 IOC는 영 리포터의 실수라면서 해당 부분을 삭제했다.

체육훈장 최고등급 기준이 올라갔는데, 아델리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논란이 있는 판정으로 놓친 것 때문에 76점이 모자라 1500점이 되어야 받는 청룡장을 받지 못하게 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는 웬만한 세계구급 선수도 받기 힘들 정도로 높아졌다는 것. 그런데 정치인은 잘만 받더라 체육계는 기준 원복을 촉구하였다.

결국 체육분야 서품 기준이 지나치게 상향 조정됐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안전행정부가 기준을 재조정하겠다고 뜻을 밝힌 데 이어 문체부는 '체육분야 유공자 서훈 기준' 특례 조항 등을 적용해 김연아에게 청룡장 수여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었으나, 당시 훈장을 못 받고 있던 박태환과 같이 묶여서 "박태환은 안 주는데 왜 김연아만 특별규정으로 주느냐"며 까였다.

그러나 이건 수영연맹이나 빙상연맹의 행정이 거지 같아 생긴 문제로, 청룡장의 경우 해당 점수를 넘을 경우 연맹이 추천하면 100% 지급해왔다고 한다. 김연아는 점수를 상향조정하려는 걸 빙상연맹이 알고 있었고, 2012년 이후부터 쭉 대상자였는데, 2013년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추천했으면 명예롭게 받을 수도 있었는데도, 일처리 안 하는 빙상연맹 때문에 특별규정으로 받게 되어 특혜라며 욕만 먹고 아직 청룡장을 받지는 못하였다... 일 안하고 빈둥거리는 빙상연맹도 답이 없다.[33]

올댓스케이트 2014를 끝으로 공식 은퇴하였으며, 기념 주화가 한국조폐공사를 통해 발행되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합격하여 2014년 9월부터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학교를 다니면서 후배 선수들도 도와주고 있다고 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2016 릴레함메르 청소년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든 것도 유스올림픽 홍보를 위해서라고.

그리고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와중에 김연아가 이 스캔들의 피해자 중 하나라는 주장이 KBS를 통해 제기되었다. 한창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로 바쁠 때 늘품체조 시연을 거절한 적이 있는데, 이 늘품체조는 차은택의 주도로 개발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장시호의 측근이 "김연아는 문체부에 찍혔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2015년 스포츠영웅상에서 나이 기준으로 탈락할 위기에 처했지만 팬들의 항의로 겨우 수상한 적이 있었는데, 배후에 이런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또한 2016년 12월에 제작된 평창 올림픽 기념주화와 발행 예정인 이천원권 지폐에 김연아의 종목인 피겨 스케이팅만 누락되었는데 위의 이유 때문인 게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같은 시기에 # 김종[34]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박태환에게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의 수영 종목에 출전하지 않는 대신 후배들의 멘토로 나서서 대기업의 후원을 받을 것"을 제안하면서 "나는 김연아를 참 안 좋아한다."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출처 보도 직후 김연아는 2016년 11월 23일에 스포츠영웅 헌액 대상자로 선정된 자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불이익을 느끼지 못하였다고 발언하였다. 이에 대해서 박근혜 정권이 김연아에 미칠 영향력은 거의 없어서 불이익 느낄 일도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으로 이미 은퇴하여 국가대표 선발로 협박할 수도 없고,[35] 피겨 대표스타를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에서 배제할 수도 없고, 여전히 CF 모델로 입지가 강해 기업에 압력을 넣을 수도 없다는 것. 결국 스포츠영웅 같은 정부 포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강릉시에서 열린 2017 4대륙 선수권대회 시상식에 깜짝 출연했다. 미하라 마이(일본, 1위), 가브리엘 데일먼(캐나다, 2위), 미라이 나가수(미국[36], 3위)에게 축하 꽃다발을 주었다.

7. 기부[편집]

김연아의 역대 기부 행적과 금액:
  • 2007년 1월, 피겨 꿈나무들에게 1천 2백만 원의 장학금 기부
  • 2007년 5월, 피겨 꿈나무 김현정 선수에게 LG생활건강 광고모델 수익금의 일부인 장학금 1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 2007년 9월, 아이비클럽 CF출연료 중 1억 원을 가정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부
  • 2007년 12월, 기름유출 사고로 시름에 잠긴 태안 지역 학생들에게 2천만 원 상당의 교복 100여 벌 기부
  • 2008년 5월 14일 The Daishin Investment Forum, 2008 행사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피겨 꿈나무 선수를 후원하기 위한 5천만 원 상당의 기부금 전달
  • 2008년 5월, 매일우유와 협의, 4천만 원 상당의 유제품을 소년소녀 가장들에게 1년간 지원
  • 2008년 5월, 1억 원 상당의 교복 기부
  • 2008년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팬들에게 받은 인형 1,000여 개를 김연아 선수가 직접 선정한 곳에 기부(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국립암센터, 적십자병원, 동천의 집, 송죽원, 서울특별시 동부아동상담소, 이화여자대학교 해외건축봉사단, 거제도 애광원, 고려대 봉사단)
  • 2008년 12월, 피겨 꿈나무 일일클리닉 행사를 마친 후 '피겨 꿈나무 장학금 전달식' 을 갖고 적립된 행복기부금을 유망주 1인당 5백만 원씩 총 5천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부
  • 2008년 12월 24일,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 중 2009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 1억 원 상당의 동절기 교복 기부
  • 2008년 12월 25일, 아이스쇼 Angels on ice를 개최. 공연 수익금 약 1억 4천만 원을 소아암 등 희귀병에 걸린 어린이들에게 전액 기부
  •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가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인세 불우이웃돕기 지원
  • 김연아 아이비클럽 출연료 1억+아이비클럽 측 1억, 총 2억 상당의 금액 기부
  • 김현정 선수 해외 전지훈련 비용 3천만 원 지원
  • 어려운 주변환경에도 피겨의 꿈을 키워나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매년 1인당 수천만 원을 지원
  • '꿈을 키우라' 는 의미로 김연아의 의상 등을 무상 제공.
  • 2009년 4월, 소년소녀가장들에게 1억 기부
  • 16일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에소년소녀 가장들을 지원하기 위해 1억 원 상당의 유제품을 기부.
  • 2009년 5월, 6일 오전, 국민은행 여의도본점 4층 강당에서 강정원 행장과 함께 만든 '아우인형' 과 후원금을 유니세프에 전달.
  • 2010년 1월- 아이티에 1억 원 기부[37]
  • 2010년 4월- 천안함 희생자 위로 성금 5천만 원 기부
  • 2010년 4월-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식 개선 라디오 출연료 전액 기부 (4천만 원)
  • 2010년 7월- 삼성하우젠 제로 피겨꿈나무 지원 2천만 원 기부
  • 2010년 7월 26일- 연아사랑적금 백혈병어린이 후원금 1억 원 기부
  • 2011년 5월 - 2위 은메달 상금을 유니세프에 기부하였다. 2만 7,000달러(한화 약 2,920만 원).
  • 2011년 12월 -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바보의 나눔'에 1천만원 기부
  • 2011년 12월 -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함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다문화가정 어린이 후원금 천만원 전달
  • 2011년 12월 - 피터 유릭(Peter Jurik)이 그린 초상화의 로열티를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 기부
  • 2012년 1월 - '얼음꽃’ 음원수익을 피겨 스케이팅 국가대표팀에 전달
  • 2012년 2월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 5명에게 후원금 전달
  • 2012년 4월 - KB국민은행 '피겨퀸 연아사랑 적금'으로 조성된 기부금 1억원을 한국 백혈병 어린이재단에 전달
  • 2012년 6월 - 남수단 학교 건립을 위해 살레시오 수도회[38]에 7천만원 기부
  • 2013년 1월 -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를 통하여 난치병 어린이 5명에게 후원금 전달
  • 2013년 4월 - 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2013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상금 전액 기부
  • 2013년 11월 - 태풍 하이옌 피해를 입은 필리핀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달러 전달
  • 2014년 4월 -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을 위해 유니세프를 통해 1억 원 기부
  • 2015년 4월 - 지진 피해를 입은 네팔 어린들의 구호기금으로 유니세프에 10만달러 기부
  • 2016년 2월 - 김연아 공식 팬카페에서 그녀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지 6주년,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지 2주년을 기념하여 유니세프에 기부를 위한 모금 활동을 진행하던 중 조용히 나타나 5천만원을 기부

현재까지 총 기부내역을 합산하면 유니세프를 통한 기부금은 총 20억 원, 유니세프 외 기부금은 총 20억 원, 합쳐서 40억 원이다.

8. 기타[편집]

8.1. 열애설[편집]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직후인 2014년 3월 6일. 디스패치에 의해 아이스하키 선수인 김원중과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열애설 보도 기사.

디스패치에서는 빙상연맹 관계자의 제보를 통해 사진을 찍으러 근 6개월간 김연아를 몰래 쫓아다녔다고 한다. 파파라치 사진은 화보처럼 포장되어 공개되었다. 디스패치에서는 "김연아가 소치 올림픽에 집중하도록 배려하여 공개를 늦추었다"고 주장하지만, 올림픽 전이나 진행 중 열애설을 터뜨렸을 때 국민들의 반응을 상상해보면 당연한 처세에 불과하다.

이후 2014년 6월에 김원중이 국군체육부대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한 사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또한 김원중이 소치 동계올림픽 직전에 밤샘파티를 했다는 기사가 올라오면서 열애설이 돌 때부터 대체로 좋지 않았던 팬들의 김원중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졌다.[39] 그리고 11월 7일에 두 사람이 결별한 상태라는 기사가 올라왔다.(기사) 그리고 2015년에 재결합설이 돌았으나(기사)(기사 2)[40]후속 기사는 2017년 6월 시점에서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다.

8.2. 이야깃거리[편집]

  • 2012년 에듀모아에서 초등학생 6,397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서 48%로 1위를 차지했다.[41][42]
  • 어릴 적부터의 기부선행과 동시에 어려웠던 시절도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맞는 스케이트화를 살 형편이 안 되어 투명테이프로 스케이트화를 감아 신는 사진이 그것. [43] 김연아 선수는 1~2주만에 발목이 무너진 스케이트를 테이프를 감아 가며 1달을 신었다고 했다. 심하면 2일밖에 못 신고 새 스케이트로 교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유독 김연아 선수의 스케이트 발목이 잘 무너졌던 이유는, 높고 강한 점프 때문으로 생각된다. 거기다가 열악한 지원 때문에 전용 빙상장도 아니고 일반인이 많은 태릉선수촌 빙상장에서 훈련하기도 했다. 심지어 2007~2008년(!!)까지도... 무명시절도 아니고 김연아가 국제대회에서 많은 상을 타서 인지도가 높을 때였다! 아이돌로 비교하자면 레드벨벳이나 트와이스급 걸그룹의 안무 연습을 일반인들 들락거리는 연습실에서 시켰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마디로 사람들이 와서 소리지르고 구경하는데 연습한 것이다. 게다가 이 때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 때문에 물리치료를 받으며 훈련을 하고 경기에 참여하던 상황이었다. 김연아는 이후 2010년 2월에 출간된 자서전인 <김연아의 7분 드라마>에서 이 일을 언급하며 '내가 이러고 있을 때 다른 선수들은 훈련장에서 편하게 훈련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복받쳤다'고 밝혔다.
  • SBS <일요일이 좋다>의 영웅호걸 후속 예능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서 메인 진행과 심사를 맡아 고정 출연했다. 1회와 4회에서 출연진들의 연기를 보기 전에 오프닝 공연으로 자신의 연기를 선보였다. 아이유와 함께 키스 앤 크라이의 주제가인 <얼음꽃>을 불러 화제가 되었다.
  • 가창력이 준가수급[44]이다. 방송이나 팬미팅에서 웬만한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무리 없이 소화할 정도. 중저음이 풍부하고 고음역도 잘 넘긴다.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실력이다. 가수 아이유와 듀엣곡으로 부른 <얼음꽃>은 정식 음원 발표까지 되었다. 음원 수익금 전액은 피겨꿈나무들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 김연아의 아버지인 김현석은 위에서도 설명이 있지만 사업가로, 훈련비를 포함한 금전적 지원을 하며 기러기 아빠생활을 했다. 2009년 기사)다른 참고글 국내에서 김연아 안티들이 가족간에 불화가 있다. 이혼했다는 날조된 정보를 퍼뜨리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니며 82쿡에서 어느 회원이 날조된 내용을 믿은 댓글을 달았다가 다른 회원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인 일도 있었다.
  • 박미희의 저서인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에 따르면 언니인 김애라도 노래에 재능이 있어서 음악 전공을 희망했으나 둘 다 지원할 여유가 없었고, 박미희 자신 또한 큰딸이 음악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탓에 설득해서 음악 전공을 포기하게 했다고 한다. 같은 책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같이 노래방에 갔다가 진짜로 재능이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음악을 전공할 것을 설득했지만 이미 김애라는 간호학과로 진로를 결정한 뒤였다. 같은 책에서 박미희는 딸의 진로를 바꾸게 한 일을 후회하며 미안함을 밝혔고 김연아 또한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45]
  • 국내에서 연습한 곳 중 롯데월드 링크 빙질이 좋았다는 얘길 하였는데, 그 이유는 따뜻하기 때문이라고. 난방조차 제대로 안 되는 국내 링크장의 사정을 보여주는 웃픈 이야기다. 역시 빙신연맹 사실 실내 유원지 안이라 얼음위에 물이 한 겹 덮힐 만큼 녹아 있는 롯데월드 링크 상황을 안다면 의아한 얘기인데, 선수들이 연습하는 건 영업이 끝나고 밤 11시, 12시부터 새벽이기 때문이다. 녹았던 빙판이 다시 얼어붙어 있고 온기는 남아 있기 때문. 이런 열악한 상황은 2017년 현재도 일반인 공개 영업을 안 하는 연습 전용 링크가 거의 없는[46] 형편상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 건강 상태가 영 좋지 않다. 발이 심하게 혹사당해 하이힐을 신는 게 어려울 정도이다. 또한 각종 근육 질환에 시달리면서, 말 그대로 온 몸 중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김연아는 은퇴하게 되면 그로부터 2~3년 동안은 선수 시절 혹사시킨 몸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해야만 할 수밖에 없었다. 종목을 불문하고 프로 스포츠 선수들은, 겉으로는 멀쩡해보여도 온몸에 부상을 달고다니는 경우가 많다.[49] 거친 종목들은 탈골, 골절, 인대 파열 등등 그냥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수준이 많다. 수술이나 장기간 치료를 받아야 되는 부상들은 은퇴 후로 미루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현역 선수시에는 간단한 진통제나 교정으로 악화되지 않게만 관리 받는다.
  • 2008년 12월엔 대회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산타복으로 원더걸스의 Nobody에 맞춰 피겨 댄스를 추고 태연의 <들리나요>를 불러 화제가 되었다. 이때의 노래 부르는 영상을 미국 NBC에서 가져다 경기직전에 틀어주기도했다.
  • 여행했던 곳 중 가장 아름다웠다고 생각한 곳은 파리라 했는데 가고 싶은 여행지도 프랑스라고 한다.
  • 가톨릭 신자이며 세례명스텔라. 대회에 출전하면 경기 시작 전에 항상 성호를 긋는다. 2008년 세계선수권 부상 여파와 편파 판정 등 여러 불미스러운 사건들로 인해 신체적 정신적으로 힘들 때 신앙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머니인 박미희도 안나라는 세례명을 받고 함께 입교했다. 기사
  • 살레시오회 소속 원선오 신부가 2011년부터 벌이고 있는 수단 공화국 학교 짓기 운동의 취지에 동참해 7천만 원을 기부하여 현지에 '스텔라 김연아 학교(STELLA YUNA KIM SCHOOL) 가 지어졌다. 김연아, 편지 한통에 거금 7000만원을
  • 2011년 12월 TV조선 개국기념 김연아가 9시 뉴스 '날'에서 1일 앵커로 출연한다고 조선일보에서 홍보하여 공지영 등 진보적 인사, 누리꾼과 김연아 안티들의 설전이 있었으나 실제 방송분은 스튜디오에서 이뤄진 인터뷰성 출연으로 밝혀졌다.
  • 2015년에 조사한 광복 70년 이후 '非 정치인 최고의 인물' 부문에서 33.2%로 1위를 차지하였다. 관련 기사.
  • 비율이 좋아, 키에 비해서 훨씬 더 커 보인다. 하이힐까지 신으면 웬만한 연예인들 옆에서는 꿀리지 않는다.(#1, #2) 키 자체도 한국 여성 평균 신장보다 크다.
  • 군포시 군포소방서 건너편 철쭉 동산 인공 폭포 옆에 시에서 만든 김연아 비스무리하게 생긴 피겨 스케이터 동상이 있다. "기둥의 동그라미는 빙판을 형상화한 것이고 김연아의 올림픽 제패를 기념하는 동상"이라고 기단 명패에 박아 놓았다. 그런데 얼굴이 안 닮았지만 김연아가 모델인 건 확실하고, 동상 자체도 조악한 느낌이다. 김연아 동상이라고는 안 써 있다. 그거나 그거나 이를 무단으로 김연아의 이름을 붙여 홍보해 논란이 인 바 있다. 심지어 기념 동상 건립을 둘러싼 비리 혐의까지 있으며, 김연아 측에 약속했던 빙상장 건립은 안 해 주고 김연아 거리 조성이라든지 다른 사업까지도 무단으로 추진해 김연아 측과 갈등이 있었다. 심지어 2011년에 군포시의 당시 모 의원이 는 모 시의원이 "솔직히 이제는 김연아라는 이름 자체가 싫다. 김연아가 군포시에 해 준 게 뭐가 있냐?"며 적반하장, 막말을 한 일로 구설수에 오른 일도 있었다. 김연아가 군포를 떠난 데는 그런 것도 이유가 되었을 듯하다는 주장이 있다.
  • 혐한초딩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한 혐한초딩이 "김연아보다 아사다 마오가 더 예쁘다"고 했다가 같은 혐한초딩한테 "그건 아니다"라고 까였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 '빵순이', '빵연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을 좋아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팬미팅 등의 이벤트 때 소품이나 선물로 빵 종류가 자주 등장할 정도. 실제로 어렸을 때 '밥 먹을래, 빵 먹을래?'하면 빵을 먹는다고 자신의 자서전에서 언급했다.
  • 한때 네이버 도전만화에 그녀를 소재로 했던 명탐정 코난의 팬픽인 <코난과 키드와 서울의 별>이 연재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저작권 침해 우려로 인해 삭제된 상태.
  • 밴쿠버 올림픽 당시 착용했던 스케이트를 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 한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있는 상태.
  • NDS 게임인 <빙글빙글 프린세스 -노려라 벤쿠버->의[52] 캐릭터 '김소연'의 모델이다.[53]
  • 2014년에 출간된 다산북스의 학습만화 Who? 시리즈의 한국사 위인전에 등재되었다. 초판에는 뒷면에 카롤리나 코스트너의 사진이 잘못 실려 있어서 책을 산 구매자, 독자들과 김연아 팬들의 항의를 받았고 이후 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김연아의 일러스트로 교체되었다.
  • 2014년 3월에 승마협회 회장에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취임하고 7개월 뒤에 승마협회에서 ‘중장기 로드맵’ 보고서를 냈는데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로드맵은 정유라의 2020년 도쿄 올림픽 메달 획득을 겨냥해 만들어진 것으로 내용 중에 “승마의 국민적 우상(예: 골프 박세리, 피겨 김연아) 탄생에 적극 후원하여 국내 승마산업 대중화 및 국산 승용마의 해외 수출 계기 마련”이라고 밝혔다. 애초 "승마의 국민적 우상 탄생에 적극 후원한다"는 보고서에서 ‘메인 후원사 선정(안)’ 항목에 장애물과 종합마술 등 다른 종목과 달리 마장마술 분야에 대해서만 “승마협회의 회장사인 삼성에 후원을 요청”이라고 못박았다는 점에서[54] 보고서의 '승마의 국민적 우상'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 답이 나오는데, 언론에서는 이 보고서를 두고 최순실(그리고 삼성)은 정유라를 '승마계의 김연아', '제2의 김연아'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는 표제로 비틀어 기사를 냈다.##신성모독이다 TV조선강적들 163화에도 이 일이 소개되었다.#

8.3. 광고[편집]


시니어 데뷔 후 그랑프리에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한 후, 국민은행과 첫 CF 계약을 맺었다.

첫 시작이 어려웠을 뿐 좋은 성적과 스타성이 합쳐 이름가치가 올라 광고하는 제품마다 연아우유, 연아신발, 연아커피 등 '연아XXX''라고 이름 붙여지며 긍정적인 이미지 효과를 보여줬다. 반대로 하이트 맥주 CF 출연은 논란이 되기도 하였는데 한국 정신중독의학회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 출연이 청소년의 음주문화를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올댓스포츠는 김연아의 맥주 광고가 비난의 대상이 될 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학계의 조언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또 김연아의 광고 모델 활동을 못 마땅해 한 개신교 체육계 원로를 자처하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김연아의 맥주 광고 모델 출연을 제재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벌였다.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력을 가진 스포츠 스타가 주류 광고 모델을 함으로써 청소년들의 무불별한 음주 문화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대었다. 당시 김연아의 나이가 24살로 본인이 음주를 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미성년자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를 폈다.커피 광고 출연하면 국민적으로 카페인 중독 조장할 수 있다고 해 보시지 왜? 그런데 정작 입법 과정을 거친 후 실제로 법 적용될 당시 이 법의 짱돌을 맞은 것은 김연아가 아니라 생뚱맞게 다른 연예인이었다. 아이유, 술 광고 못한다

이어서 임신 사실이 공개된 연예인이 맥주 광고 계약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힘으로써 임산부가 맥주 광고 모델을 하는 것과 스포츠 스타가 주류 광고 모델을 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산부 전지현이 맥주 모델이라고?

2009년, 2010년, 2013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발표한 소비자가 뽑은 최고의 광고 모델로 선정되었다.(#)

한참 광고 출연이 절정을 찍던 때엔 인터넷상에서 김연아를 "하라는 운동은 안 하고 광고만 찍는다"고 비판하던 부류도 있었고, 광고를 많이 찍는 이유를 돈벌이에 집착한다고 '돈연아'라고 음해했는데, 정작 본인은 무릎팍도사에서 기분은 나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고 쿨한 태도를 보였다. 어떤 인터뷰에서는 "광고는 하루만 찍으면 되는 건데?" 라고 반문하기도.

당시 <무릎팍도사>에서는 광고출연이 훈련비 때문만은 아니라며 쿨하게 말했지만, 한국 빙상종목 선수들의 실태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피겨 스케이팅은 김연아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대한빙상경기연맹에서 쇼트트랙스피드 스케이팅에 훨씬 못미치는 지원을 받고[55] 대회 상금도 종목 특성상 매우 적었다.[56] 김연아 선수는 본인 훈련비용 뿐만 아니라 피겨계 후원까지 본인이 직접 지출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를 오래 보아온 국민들은 오히려 CF출연을 반기기도 한다. 그런데 연맹은 대회 상금 받으면 떼어간다.

그리고 전세계 대부분의 현역 피겨 스케이터들은 선수 생활에 들어가는 돈에 비해 "피겨 선수"로서의 활동으로만 벌 수 있는 돈[57]이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대부분 어느 정도 국제대회 상위권에 오를 수 있는 실력의 선수만 되어도 광고를 많이 찍는다. 이렇게 안 하면 정말 금수저가 아닌 이상에야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김연아는 본인이 CF를 선택할 때 기업의 피겨 후원을 조건으로 걸고 있다. 실제 김연아가 CF 모델로 출연하고 있는 KB국민은행, 잇츠스킨, 뉴발란스 등이 한국 피겨 스케이터들의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

9. 관련 문서[편집]


[1] 진선여자고등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했다.[2] NBC에서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 "대관식이 끝났습니다. 여왕 폐하 만세!(The coronation is complete. Long live the Queen!)" 라고 한 멘트이다. 영상 쇼가 마무리 된 후 6분 부터 보면 된다.[3] 산드라 베직이 아니다.[4] 그 전에 어릴 때부터 있었던 별명은 피겨요정. 팬미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둘 다 오글거리는데 자기는 항마력이 딸려서 싫단다. 하지만 이건 국제적인 별명이었다. 외국방송에서도 밴쿠버 대회를 대관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구글에서도 Yuna Queen로 검색하면 김연아로 연동되며, 일본에서도 피겨 스케이팅 방송에서 여왕의 일본식 발음인 '죠오(女王)'라고 칭하는 걸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녀의 스케이팅 후에 한번은 미국 스포츠신문에 "Long Live the Queen!" 이라는 영자 헤드라인이 올라오기도 했을 정도.[5]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 구글에서 김연아를 검색할 경우 Yuna Kim 대신 Yuna Queen으로 표제어가 출력되었다.[6] 2010년에 올댓스포츠가 창립되자 대표 이사로 취임했다.[7] 미국에 본사가 있는 다국적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로 한국에도 지사가 있다.[8] 김연아가 참가하면 해당 대회의 수준이 높아진다는 해설부터 시작해서, 김연아의 존재는 다른 선수들이 빡세게 훈련하게 되는 계기라는 해설 등, 온갖 찬사란 찬사는 다 받았다. B급 대회도 김연아가 출전하면 해당 시즌에 한해 A급 승격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9] 특히 김연아가 나타나기 직전에는 쇼트트랙 말고는 메달권에 근접하는 종목조차 없었다. 2010 밴쿠버 올림픽 이전까지 쇼트트랙 외의 종목에서 메달을 따본 건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은1 동1.[10] 1968년 이현주 및 김해경, 1972년 장명수, 1976년 윤효진, 1980년 신해숙, 1984년 김해성, 1988년 변성진, 1992년 이은희, 1994년 이윤정(한국계 미국인), 2002년 박빛나 등이 참가한 바는 있다.[11] 사실상 전 피겨 스케이팅 역사를 통틀어봐도 김연아는 상당히 이레귤러이다. 우선 피겨라는 종목 자체가 지원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잘하던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스타급 선수가 배출되며 투자에 따라서도 성과가 많이 달라진다. 밴쿠버 부진 이후 갑자기 여자 싱글 피겨강국으로 떠오른 러시아만 봐도.. 전통적 피겨 스케이팅 강국이었던 미국이 심각한 침체기를 맞아 예정대로라면 2000년대 이후 떠오른 일본 선수들과 유럽 선수들/북미선수들이 경합을 벌여야 할 자리에 미국은 명함을 내밀지도 못하고 김연아가 갑툭튀해버리면서 그 다음으로 잘하던 일본 선수들과 함께 아시아권이 석권해버린 것. 그전까지는 올림픽 출전권도 못 땄고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던 나라가 다음 번에는 금메달을 따고 있으니, 이레귤러도 이런 이레귤러가 없다.[12] 사실 앞에서는 너무 당연한 듯 서술해서 그렇지, 2년 동안 쉬다 나온 선수에 대해 세계에서도 국내에서도 제법 불안 또는 회의의 시선도 있었다. 일본 언론에서 대놓고 복귀 전에 외국 피겨 스케이팅 관계자들에게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 중 승리를 점쳐달라고 했는데,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가 반반으로 갈렸다 일단 그들이 인터뷰가 일본 언론의 것임을 몰랐을 리 없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아사다 마오의 승리를 점친 이들은, "공백기가 너무 길어 김연아의 상태를 확신할 수 없다"고 답했을 정도.[13] 한국적이면서도 서구에서도 인정받는 외모로, 커트 브라우닝 등 외국 피겨 스케이터나 캐스터들이 김연아의 외모를 "gorgeous"하다고 발언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14] 유망주들의 경기에 "어렸을 때의 김연아를 연상케 하는군요." 등의 언급도 쉽게 들을 수 있고[15] 라이벌들이 경기할 때도 언급이 꽤 나오는 편.[15] 대한민국 선수는 거의 100%, 타국 선수들마저도[16] 물론 립서비스일 수는 있으나 이에 대해 비정상회담에서 테라다 타쿠야가 언급하기도 했다.[17] 라우레우스 재단과는 다르다.[18] 바로 다음 연도에 대만의 쩡야니가 받았다.[19] 2013년 세계선수권 페어 스케이팅 우승조의 남자 선수 막심 트란코프는 김연아의 2014년 종합선수권 우승 영상을 '걸작' 이라는 코멘트와 함께 트위터에 링크한 적이 있다.[20]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시즌 때는 쇼트 프로그램 007 메들리의 마지막 총 쏘는 동작을 일본 피겨 스케이터들이 따라하는 장면이 잡힌 적이 있다. 아사다 마오가 교사 노릇을 했다.[21] 벤쿠버 올림픽 23.06점차 우승[22] 2013 세계선수권 20.42점차 우승[23] 올포디움 기록은 남자 싱글 선수였던 딕 버튼이 최초였으며(1944~1952년 노비스, 주니어, 시니어 포함), 여자 싱글에서는 김연아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다.[24] 다만 국제 대회 기준으로 하면 2017년 6월 기준 세계선수권 우승자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선수도 올포디움 기록에 들어간다.[25] 2007 세계선수권 ~ 2014 세계선수권(아사다 마오 경신)[26] 2007 컵 오브 러시아 ~ 2016 세계선수권(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경신)[27] 2009 세계선수권 ~ 2017 유럽선수권(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 경신)[28] 2010 밴쿠버 올림픽 ~ 현시점[29] 2010 밴쿠버 올림픽 ~ 현시점[30] 2010 밴쿠버 올림픽 ~ 현시점[31] GOE(Grade Of Execution, 수행등급) 2.0[32] 2009 스케이트 아메리카 GOE 2.2, 2010 세계선수권 GOE 2.2-채점제가 변경되어 트리플 점프군에서 받을 수 있는 최대 가산점은 2.1이므로 앞으로도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33] 해당 기사를 보면 점수 충족 시 연맹추천의 경우 거의 대부분 지급됨을 알 수 있다.[34] 김연아 측에서 2010년에 올댓스포츠를 세우고 소속사를 IB스포츠(갤럭시아에스엠의 전신)에서 옮겼을 때 김연아를 디스한 적이 있었다.[35] 설령 은퇴 전부터 김종이 김연아를 싫어했다 해도 김연아가 국가대표에서 탈락한다는 건 그 누구도 납득 못할 일이므로 역시 불가능했다. 박태환은 어쨌든 본인의 도핑 문제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있어 협박을 할 수 있었는데, 그런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도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결국 막지 못하였다. 당연히 그런 약점조차 없던 김연아를 국가대표에서 탈락시킬 수 있었을 리 없다.[36] 일본계 미국인이다.[37] 참고로 대한민국 정부가 1천만 원을 기부했다.[38] 돈 보스코 성인이 설립한 수도회로,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 소속 수도회이다.[39] 열애설이 돌 때부터 여러 커뮤니티에서 김연아 팬들이 김원중에 대해 보인 반응은 "연느가 아깝다"가 다수였다.[40] 두 번째 링크에서는 두 사람이 착용한 악세사리가 같다는 것을 재결합설의 근거로 들었으나, 김연아는 09-10 시즌 무렵부터 묵주반지를 착용하였다. 기사에서 주장한 김원중이 착용한 악세사리의 종류는 불명.[41] 2위는 유재석 19%, 3위는 반기문 14%.[42] 실제로 초등학생 중에 김연아 선수를 보고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으며, 김연아 선수의 팬들 중 어린 팬도 많다.[43] 선수용 스케이트화는 수제품이다. 스케이트 값만 해도 아마추어 선수들이 신는 스케이트만 30~50만 원 하며, 선수용은 100만 원을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데 피겨용은 부츠를 대부분 천연 가죽으로 만들기 때문에 얼마 못 쓰며, 유소년 선수들은 성장에 맞춰 발도 커가기 때문에 스케이트를 계속 바꾸어야 하는데, 중간 단계거나 맞는 사이즈를 구하지 못하면 쿠션을 넣거나 테이프를 감아 맞춰 가며 쓰는 일이 많다.[44] 정확하게 판단은 할 수 없지만 음역대랑 대충 따져보면 못해도 걸그룹으로 쳤을 시 리드보컬~메인보컬 감. 태연 노래 중 어려운 들리나요도 커버 가능한 수준이니. 이를 두고 이승기가 사기캐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45] 출처는 박미희,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 212~217페이지.[46] 한체대 링크 같은 교내 링크 뿐.[47] 답변을 보면 '파라노말 액티비티' 문장 뒤에 느낌표가 9개나 붙어있다. 상당히 인상 깊게 본 것으로 보인다.[48] 미국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Arthur Ned Maxwell로, <Olympiad>라는 교향곡의 제1악장 제목이 Skater Yu-Na Kim이다 [49] 상대방과 몸싸움이 없어서 그렇지, 피겨 스케이팅도 빠르게 달리다 공중에서 몇 회전을 하고 한 발로 착지하고. 단단한 얼음판에서 넘어지면서 연습한다. 다만 운동을 해보면 알겠지만 몸싸움의 유무차이는 엄청나다. 피겨도 부상이 잦다는거지 몸싸움이 있는스포츠들은 그 빈도가 훨씬 크다. 미식축구나 럭비의 경우에는 퇴행성 뇌질환을 달고사는경우가 많고 아이스하키나 농구의 경우에도 거구들끼리 몸싸움을 하다보니 쉽게 부상을 당하는편이다. 투기종목의 경우에는 펀치드링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고 견갑골이나 슬개골의 경우 으스러져있는경우가 많다.[50] 피겨 여왕 김연아, 역사적인 라이온즈 파크 첫 시구(네이버 스포츠, '16.4.1.)[51] 2011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 SK vs 삼성(@서울 잠실야구장) - 김연아 시구(네이버 스포츠, '11.10.31), 2008 프로야구 섬성 라이온즈:LG 트윈스(@서울 잠실야구장) - 김연아 시구 '피겨 요정의 강속구를 받아라'(연합뉴스, '08.4.1.), 김연아 시구장서 진땀 뺀 두 사람(SBS, '08.4.2.)[52] 한국판 제목은 '피겨 프린세스 ~두근두근 스케이팅☆금메달을 노려라!~'. 참고로 이 게임의 한국 퍼블리셔는 이 종교단체회사.[53] 밴쿠버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과, '한국의 절대여왕'이라는 캐릭터 설명을 보면 김연아가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54] 보고서가 나오기 한 달 전인 2014년 9월에 정유라는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땄고, 보고서가 나온 그 달에 삼성은 독일에 있는 코레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으로 최순실이 정유라의 전지훈련 지원을 위해 독일에 설립한 스포츠컨설팅 회사) 외환은행(합병 후 KEB하나은행) 지점으로 35억 원을 송금했다.[55] 그나마 앞의 두 종목도 제대로 지원 못 받는다. 왜냐고? 연맹 이름을 다시 한번 보자.[56] 실제로 다른 종목의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대회상금이나 연봉금액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김연아가 한해 수익이 가장 높았던 2014년 당시 포브스 기록을 보면, 다른 선수들은 못해도 200만 달러씩은 대회상금으로 수익을 얻는데 비해 김연아는 대회상금 수익이 30만 달러밖에 안 됐고, 그 외 방송과 CF같은 부수입이 대부분이었다. CF도 안 찍으면 선수 유지도 힘들었던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일단 대부분의 고수익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테니스골프, 카레이싱, 종합격투기 같은 프로선수들이었기에 애초에 대회상금이나 계약금 연봉면에서는 김연아를 훨씬 웃돌았다고 보면 된다.[57] 대회 상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