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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국장
공식명칭
나우루공화국(Republic of Nauru, Ripubrikit Naoero)
면적
21㎢[1]
인구
10,303명 (2017년 통계)
수도
사실상 야렌[2]
정치체제
바론 와카 (Baron Waqa)
임기
의회 대변인
시릴 부라만 (Cyril Buraman)
공용어
영어, 나우루어
국교
그리스도교
화폐단위
시간대
(UTC+12)
국제전화
+674
국가 도메인
.nr
1인당 GDP
PPP 2,500$(2006)
국제연합(UN) 가입
1999년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수교 (남한 1979, 북한 1982)



1. 개요2. 역사
2.1. 근대사2.2. 황금기2.3. 몰락
3. 경제4. 정치5. 자연6. 항공편7. 외교
7.1. 대한관계7.2. 호주와의 관계

1. 개요[편집]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섬에 있는 공화국. 섬 면적 21제곱킬로미터로 서울 용산구 정도 크기인, 매우 작은 나라다. 적도의 바로 아래, 남위 1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기가 그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노란 선이 적도, 별이 나우루. 별이 12갈래로 빛나는 것은 나우루 토착 12부족의 단결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서 한 때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자나라였다. 게다가 이 수치는 1980년대의 3만 달러이다! 당시에는 미국이나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대였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룩셈부르크급의 포지션이었다고 보면 된다.

인구는 경상북도 울릉군과 거의 비슷하다.

2. 역사[편집]

2.1. 근대사[편집]

나우루의 존재는 1798년 발견되기 전까지 그저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지내는 오세아니아의 여느 섬과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존 피언(Johm Fearn)은 섬의 모든 것이 사람 살기에 쾌적하다고 생각해 섬에 이름을 기쁜 섬(Pleasant Island)이라고 지었다. 그 후 30~40년 간 유럽인들이 이 섬을 지나쳤고, 이들에 의해 무기와 술의 전래로 섬의 평화는 파괴되고 10년 동안 씨족 간의 전쟁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70년대에는 섬에 있던 독일 무역상들이 자신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독일 정부에 무기를 요청해 많은 무기들이 원주민들에게 대량으로 거래된다. 그후 전쟁과 질병으로 40년 간 인구가 1/3로 감소했고, 독일에 점령당한 1888년 당시에는 여자 인구가 남자 인구보다 30%나 많이 있었다고 한다. 나우루는 1914년까지 독일의 식민지배 하에 있었다.

1899년 영국의 한 회사가 나우루에서 인광석을 발견해 나우루섬은 자원적으로 중요해졌다. 이 때문에 호주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가장 먼저 독일로부터 배 한 척을 몰고 나우루를 빼앗는다. 별다른 공격도 없었다고. 이후 나우루 지역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통치하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편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기간에는 일본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고.

나무파일:LKNpXrt.jpg

미 육군 항공대일본군 비행장을 폭격하는 모습(1943년).

2.2. 황금기[편집]

독립, 황금의 땅

부정적 의미에서 '극과 극'의 현대사를 경험한 국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나우루는 영연방과 합의하에 1968년 독립했다. 1970년에는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나우루에 넘겨주었다.

그리고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되는데,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양은 백만 2천 톤에서 2백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의 인광석을 채굴하는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천만 달러로 추정된다.

당연히 국민들은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3,000명) 부의 분배도 공평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 오일머니 저리가라 급으로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았다. 예를 들자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피지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 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도로가 나라에 딱 한 개, 그것도 길이 18㎞, 제한속도 40㎞/h 짜리만 있는 데도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같은 고가의 자동차를 타고 다녔고, 그것도 두 대는 기본.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지정한 물건을 들고 나왔다.

물론 집에는 각종 가전제품, 심지어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가질 수 있던 컴퓨터게임기도 있을 정도다. 채굴산업엔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자본가, 외국인 노동자만 있었는 데도 이 정도였다.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때웠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었다. 세금도 없고 주택도 학비도 유학 경비도 병원도 모두 국가에서 대주었기 때문에 그냥 공짜였다.

어찌됐든 이들은 이렇게 생각없이 돈을 탕진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2.3. 몰락[편집]

장래에 대한 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반면교사.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 광산이 감소하면서 인광석이 바닥을 드러낼 조짐을 보였다. 이때부터 몰락 전설이 시작된다. 이를 대비해 정부는 바닷가에 어항을 만들어 국민들을 일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왜냐면 고기잡이 같은 생활문화는 없어지고, 농사지을 땅도 인광석 채굴로 없어졌을 뿐더러 농사짓는 법도, 낚시하는 법도, 심지어는 빨래나 요리같은 인간적인 삶을 위한 필수 스킬도 옆나라에 가서 배워야 될 정도로 잊어버렸다. 당장 경작지도 닥치는 대로 채굴했기 때문에 국토의 80%가 남은 바위덩어리만 있는 황무지. 현재도 식료품은 수입된 가공식품만을 구할 수가 있으며 생산되는 작물 자체가 없다. 엄밀하게는 일부 과일이나 채소가 나우루에 재배되고 있고, 돼지를 키우는 가정도 있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텃밭에서 채소 기르는 수준이어서 산업이라 말하기 민망할 수준이다. 사실상 농업이 없다해도 무방한 상태이다.

사태를 인식한 나우루 정부는 채굴량을 줄이고, 채굴해간 나라에 대금을 요구하고, 해외 유명 휴양지에 빌딩을 지어 임대업을 하는 등 힘을 썼으나 국내 소비를 감당할 수가 없고, 국민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껴 일할 의지가 없었다.

그래도 자산운용이라도 제대로 했다면 최빈국 수준까지는 안갔겠지만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보니 국가 자산 운용도 개판이라서 엄청난 재산을 까먹었다. 정부 예산을 횡령하는 일이 자주 있었고 투자한 사업도 사업성 검토가 부실해 줄줄이 말아 먹었다. 게다가 부동산 구입도 바가지 쓰면서 적정가격의 몇배로 구입하는 병크가 번번했다. 국제 거래 및 투자에 대한 전문가가 없어 국가예산의 회계 및 감리할 담당자가 없었다. 심지어는 국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냥 넘어갔다. 이래저래 상당히 막장이었는데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정부관리들이 국고의 돈을 개인자금과 동일시한 건 예삿일이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 있는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빌딩 꼭대기층에 대통령집무실이 있었으며, 나우루의 경제부 장관은 경제에 대해 어떤 교육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1993년도에는 한 개인적인 뮤지컬 작품에 400만 호주달러를 투자하고, 초연이 공연되자 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런던으로 당일치기로 공연을 관람하고 본국으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그리고 투자한 뮤지컬은 망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부동산에 투자한게 어디가지는 않았는지 인광석이 거의 바닥날 때 쯤에는 투자해두었던 부동산을 담보로 세계의 은행에서 돈을 융통하였다. 하지만 외국인 마피아들을 상대로 국적을 팔고, 스위스를 흉내내서 세계의 검은 돈을 보관해주는 은행업을 시작한것이 화근이었다. 검은 돈 전략으로 국제기관으로부터 욕을 먹기도 했지만 이 전략이 어느정도 먹혀들었기 때문에 90년대 중반에 자원이 고갈된 상태에도 한 동안 나우루는 부유한 국가에 속해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자 상황은 급변하여 나우루는 검은 돈으로 벌어들이는 수입 때문에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나우루 은행에서 예금이 대량인출되고 국제적으로 제재조치를 먹는 바람에 나우루의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으며 최빈국으로 굴러떨어지게 된다. 사실 나우루 국민들은 지금도 통장 장부상 가진 돈으로는 부자라고 한다. 하지만 나우루 은행은 지금 한 달에 딱 한번, 임금 지급 때만 업무를 본다. 예금된 돈은 당연히 마음대로 찾을 수도 없고, 허공에 떠 버린 상태라서 거지신세인 것. 돈이 많은데 왜 쓰지를 못해! 은행 하나 망했다고 이렇게 심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나우루 은행이 유일한 국립은행이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대한민국의 한국은행이 무너졌다는 것. 미국이 나우루 은행을 파산시켰으니...

결국 금고가 바닥난 나우루 공화국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시리아 등지에서 오는 보트피플을 수용해주는 조건으로 난민을 받아주지 않으려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지원을 받아 겨우 연명했다. 덕분에 나우루 원주민보다 난민 숫자가 더 많아졌는데, 난민을 받을 여유도, 그럴 형편도 아니면서 받은 탓에 제대로 관리도 못했다. 당연히 난민들이 무슨 돈이 있어서 나우루에 온 건 아니고 일단 기초적인 생활은 해야되니까 당연히 나우루 정부에게 일자리를 요구했는데 돈이 바닥난 나우루 정부에서 나몰라라[6]하니 섬 분위기는 험악해졌고 나우루 정부는 자기들도 찔리는지 기자와 인권운동가들의 입국을 막아버린다. 이윽고 2003년 12월 경 난민들에 의해 시위가 벌어져 관광비자 발급이 갑자기 중지되고, 항공, 통신이 완전히 끊기는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 1월에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파견된 구조팀이 왔을 때는 대통령 청사가 불타고 있는 등 개막장 상태였다고. 그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인데, 급격한 사회구성원의 변화가 망해가는 경제상황과 합쳐져서 대규모 사태를 불러왔다는 것이 주 원인으로 파악된다. 결국엔 나우루도 단 두 명의 난민만 입국이 허용될 정도로 난민의 입국을 기피하게 되었다고.

나무파일:external/www.iisd.ca/IMG_5375.jpg
2013년 새로 선출된 대통령인 바론 와카. 구글 검색에 Baron Waqa라고 쳐 보면 이 사람의 사진들이 나오는데 심히 파오후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러한 특징은 사모아 특유의 정서에 기반한 체형이지만...

2013년에는 호주로부터 보상금을 받고 설치한 난민수용센터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로부터 받은 보상금은 7년 만에 은행이 다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2015년에 벤디고 앤드 애들레이드 은행의 나우루 지사 개설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설 이후 나우루가 다시 조세피난처화 될 수 있으니 폐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호주 내에서 있었지만,[7] 2017년 6월에 개설 2주년 기념식을 갖는 등 현재까지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다.

현재 국민의 90퍼센트가 실업자인 상태이며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근로자의 95퍼센트가 공무원이다.

사실 태평양 군도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광석만 없다면 나우루는 그저 관광업과 어업을 하는 그 동네 관점에서 그저 그런 국가였을 것이다. 그러나 인광석에 너무 의존한데다 이후의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나머지, 다른 태평양 군도의 국가들과는 달리 관광업이나 어업 등의 기반산업이 쇠퇴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이런 파국을 맞게 된 것이다.

3. 경제[편집]


뭐 경제랄 것도 없다. 가장 큰 수입원이 해외 원조니까. 그 밖에 자국 영해 근처에서 참치를 잡을 수 있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고 있다. 참치를 잡아다가 팔면 될 것이라고 쉽게 말하는데 이것도 참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하도 많이 잡아서 서서히 수가 줄어든다고 하여 참치 어획 제한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래도 제한적이 될 지 몰라도 이거라도 일하는 게 없는 걸 보면 여전히 노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어쨌든 결론은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는 건 아직 조금씩 나오는 약간의 인광석 말고는 거의 없는 셈.

4. 정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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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해버린 인광석 폐광. 사진출처: 미 에너지부(Courtesy: U.S. Department of Energy's Atmospheric Radiation Measurement Program.)

5. 자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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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년간 인광석 채굴을 해왔기 때문에 고도가 낮아져 투발루 섬과 마찬가지로 지구온난화로 가라앉을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마 나우루 주민 모두 호주가 지정해준 곳으로 단체 이주하고 나우루라는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채 막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망하는 건 시간 문제인 셈이다. 그러니까 인광석을 채굴하지 말고 다른 방법대로 모색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6. 항공편[편집]

이 나라에 취항하는 항공편은 나우루의 국적사인 Our Airline이 유일하다. 이 항공사는 인광석 호경기 중이었던 1970년 2월 14일에 '에어 나우루'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것인데, 한때 , 키리바시, 누벨칼레도니, 일본, 피지, 홍콩, 대만, 싱가폴, 캐롤라인 제도, 마셜 제도, 하와이, 파푸아뉴기니, 미크로네시아, 솔로몬 제도, 바누아투, 사모아, 통가, 팔라우, 북마리아나 제도, 왈리스 퓌튀나 제도, 뉴질랜드, 호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오세아니아의 섬들을 이어 주는 엄청난 항공사였다. 이것은 나우루가 작지만 오세아니아를 이어 주는 나라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연하지만 이렇게 수익성도 검토하지 않고 마구 취항하는 바람에 경영은 엉망이었다. 좌석 점유율은 20%를 넘지 못했고, 항공사 운영에만 년 국가 수입의 절반 가량을 탕진할 정도였다고 하니 어지간한 막장운영은 명함도 못 내밀 지경.

결국 인광석이 고갈된 이후로는 적자 누적을 견디지 못하고 전성기에 다섯 대에 달하던 보잉기도 하나 둘 팔아치우는 신세가 되었다. 마지막 남은 보잉기마저도 2005년 채권자에게 압류되어 외부와의 항공교통이 두절되는 등 곡절을 겪다가 현재는 대만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름을 바꾸고 근근히 운항하고 있다.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나우루가 대만의 몇 안 되는 수교국이기 때문. 주 1회, 일요일 호주 브리즈번 국제공항에서 나우루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수요가 적어서 항공료는 꽤 비싼 편.

다만, 나우루에 입국하려는 외국인들은 피지대만, 브리즈번 등지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왕복 항공권 발권시 입국비자 가능.

7. 외교[편집]

7.1. 대한관계[편집]

남북 동시수교국으로 대한민국과는 1979년에 수교하였다. 한국은 원래 주(駐) 뉴질랜드 대사관이 겸임하였다가 현재는 주(駐) 피지 대사관으로 이임하여 겸임한다.
1990년 대통령 베르나르드 도위요고가 방한하였던 적이 있었으며, 2014년 열린 제2회 한-태평양도서국 외교장관 회의에 와카 대통령(겸 외무장관)이 방한하기도 했다.

7.2. 호주와의 관계[편집]

나우루와 호주의 경우 오랫동안 유대 관계를 펼쳐 왔지만 인광석 소유권을 뉴질랜드, 영국과 함께 나우루에 이양시켰던 후 나우루는 훗날 호주와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나우루가 오세아니아의 최빈국이 되면서 발전을 꾀할 가능성이 큰 아프리카, 지진 후유증을 겪고 있는 네팔이나 아이티보다 더 열악한 생활환경이 되어 나우루 정부 측이 호주에 이민을 허용하려고 하자, 호주가 발끈한 것도 있다. 호주와 나우루의 불편한 관계는 그것만이 아니다. 어린이를 노예로 팔아 넘겨서 하는 것이라든가, 인권을 유린하는 불행도 지속되기도 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재 나우루에 호주 고등판무관 사무소가 설치되어 있다.

[1] 얼마나 작은지 짐작이 가는가? 흑산도, 영흥도, 외나로도 등과 비슷한 면적이다.[2] 수도 기능을 하는 곳이 야렌 지구이다. 나우루 법으로 정해진 수도는 없다. 흑산도 만한 섬에 수도를 두려면 어디 두려고?[3] 2013년 초부터 도입[4] 후루타 야스시 저.[5] 출처: Glenn, Craig, et al., eds. (2000). Marine Authigenesis: From Global to Microbial. Tulsa, OK.[6] 2006년 뉴스위크 지 보도에서 인터뷰한 난민은 기자에게 "생활보조금은 고사하고 가끔 먹는 거 주는 수준이니 이대로 굶어죽을테니 일거리, 그래 물고기라도 잡겠다고 하니까 여기 나우루 공무원들이 뭐란지 아세요? 알아서 배 마련하랍니다.세상에, 그럴 돈이 어디 있어요? 이러니 난민들도 분노하여 폭동일으켰던 거죠..."라고 하소연했다. 더 기가막힌것은 난민들의 분노가 무색하게, 나우루 정부도 그럴 돈이 없었다. 게다가 조업권은 거의 전부 외국에 팔린 상태.(...)[7] 선진국의 은행들에서는 감시가 심하다보니 돈세탁이 어렵고, 돈세탁을 위해 법망이 부실한 후진국들에 있는 은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이런 여론이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