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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의미의 변질3. 대처법4. 특징

1. 개요[편집]

어떤 일이 실패하면 그것에 대한 구체적인 원인이나 이유를 묻지 않고, 너의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서 생긴 결과 라고 비난하는 꼰대들을 비꼬는 단어이다

2. 의미의 변질[편집]

2015년 들어서는 모든 걸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물론, 어떤 일을 해내거나 성공하는데 있어서 노력이 필요함은 사실이나,무한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거나 자리가 한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노력 드립을 써 가면서 노력의 중요성만 강요하며 그러하지 못한 사람들을 의지박약이나 정신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라고 말하면서 매도한다. 또한 남들에게 그렇게 노력을 강요하면서도 정작 노력충 본인은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거나 배려하고 고려하지 않는 이중적인 성향도 덤으로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강해진 것은 당연히 청년실업 의 급증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갑질과 수저 계급론, 착취, 채용 비리 문제, 당한놈 잘못, 갈수록 적폐만 쌓이는 대기업 중심 경제 구도 및 무전유죄 유전무죄 등등 대한민국 경제가 외면한 적폐의 결과물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한국의 경제구도는 소수의 대기업이 흥할 수밖에 없고, 흔히 좆소,좆소기업이라고 불리는 중소기업은 복지는 개판인데 요구하는 것은 많은 언밸런스가 이어져, 청년층은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중소기업 자연스럽게 소수의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을 지원하는데 이런 직장은 당연히 일자리가 부족하다. 결국 요구하는 경쟁력은 점점 높아져서 너도나도 노력을 하기에 단순한 노력만으로 해결되는 사례는 점점 줄어드니, 자연스럽게 대다수의 노력이 보상을 못받게 되어 노력이 비꼬는 대상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사회 구조가 노력해도 성공할수 없는 불평등한 구조라는 사실이며, 개인의 열악한 상황이 노력의 부재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심지어 노력이나 의지조차도 시간이 지나며 각종 연구 결과들에 의해 유전적인 요인과 삶의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사실상 타고 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즉 노력이나 의지도 운과 재능, 부모의 재산처럼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노력도 재능이다라는 옛말은 사실이었던 것.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노력과 의지와 정신력을 심각하게 강조하는 사회이기에 실패한 사람들을 노력 부족, 의지 박약, 정신병자로 몰고 가며, 상류층들은 자신의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 혜택과 지위를 불굴의 정신력과 끝없는 노력과 굳건한 의지로 일구어 낸 감동적인 성공가도라고 포장하고 있다. 그래서 선진국 중에서는 다양한 재능발휘를 보장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존엄을 지키게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특정한 재능과 환경만을 갖춘 사람들만을 우대하고 나머지는 의지 박약아 정도로 천대하는 문제가 있다. 저학력자/저소득층은 자신의 학력이나 소득이 낮은 것을 두고 자신이 못난 탓으로 자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남의 노력까지 비웃는 단어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모두 늘려서 쓰다가 "이런 현시창 속에서도 그 분들이 노오오오오오력 해준 덕분에"처럼 칭찬인지 농락인지 알 수 없는 대사까지 나올 수 있다.

노력도 방법이 잘못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다시 말해, 제대로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가운데 노력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력을 하고는 있는데 잘못된 방향으로 노력하면 그건 개선(改善)이 아니라 개악(改惡)이다. 거인의 별 같은 스포츠 만화 문서에 이미 나와 있지만, 주인공의 근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신체에 무리를 주는 잘못된 훈련법이 일반 대중들에게 전파되기도 했다. 이처럼 노력만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방법의 효율성을 냉정히 검토하지 않으므로 잘못된 방법으로 노력만 하다가 자신의 재능을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적은 노력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노력을 안 했는데 성공하는' 예외가 될 수도 있다(물론 노력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예외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열정은 쓰레기다'에서 언급된 '시스템'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발언 중 하나다.

3. 대처법[편집]

주변에서 이러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절대 반박하지 말고 무시하는 것이 답이다. 알다시피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간 게 아니라면 사실상 변화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는 것이 명확하다. 이들에게 사고 방식을 바꾸라고 말 하는 거 자체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 뿐이니 그냥 이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1]

4. 특징[편집]

불황과 청년실업 문제가 지속되면서 경쟁의 중요성이 두드러졌고, 그 와중에 노력과 비하적 의미의 충(蟲)을 합성한 노력충이라는 신조어가 빈번히 쓰이고 있으나, 노력충은 원래는 노력하는 자를 비하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현재의 의미로 변질되었지만, 처음에는 의지드립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을 비꼬려고 쓰였다. 자조적 의미의 갓수가 자부심의 표현으로 쓰이는 것도 비슷한 사례다.

최초 발생지(?)는 (구)주식 갤러리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만물일베설의 영향을 받아 일베 용어와 취급되는 상황이다. '노'자를 길게 늘려 말하는 게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성을 따 비꼬는 듯한 어감 때문인 듯 하다. 하지만 최근 그런 인식은 많이 없어졌다.

본래 의미의 노력충에 한하여, 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간과 혹은 무시한다. 이런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문제도 모두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곤 한다.
  • 사회적 구조의 문제 때문에 받는 피해에 반발하는 사람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 한다, 이렇게 되버리면 반대측의 주장은 묵살되고 따라서 항의나 논쟁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해지게 만든다.
  • 자신이 한 노력을 다른 이들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환경적 차이를 무시하고 노력을 강요한다. 주로 지적 엘리트 중에서 이런 이들이 많다. 사실 고시를 패스하거나 한 등의 사람들이 기울인 정신적 노력은 일반인들의 갑절을 훨씬 넘는데, 이들은 평범한 사림들도 이런 노력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재능, 집안환경 등을 모두 무시하고 이를 강요한다.
  • 층간소음 가해자들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데 같은 집에서 사니 층간소음 그 까짓 꺼 별거 아니니까 피해자 본인이 견디거나 노력해서 참으라고 강요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2]
  • 노력충이면서 정작 타인의 노력을 제대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력충들은 보통 자만심은 높은데 식견은 좁아서 자기 기준으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노력하지 않은 사람으로 간주하고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예를 들어 운만 따라준다면 단기간에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주식, 펀드, 부동산 투기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만 오로지 제대로 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원인이나 과정 따위는 관심도 없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주의의 광신도라고 봐도 무방하다.
  • 심정주의에 자연스럽게 경도되어 있다,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무조건 얻는다는 보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내 말대로 행동하면 언젠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며 헛된 착각을 심어준다.

어떤 사람이 노력을 하든 안 하든, 사회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아니한다. '그 사람이 노력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방해하는 것은 엄연한 논리적 오류이다.

사회가 공급할 수 있는 재화와 일자리는 한정되어있으며, 이를 얻기 위해 국민들끼리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미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를 제외한 미생들의 경쟁이 특히 심화하고 있고, 흔히 486세대로 일컫는 기성세대가 취업했을 때처럼 대학만 나와도 취업이 되는 세상은 이미 지나간지 오래고 앞으로도 대학만 나왔다고 취업을 할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을 포기한 탈락자들을 책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사회는 성공한 소수만이 아닌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하므로, 노력을 종용하기보다도 사회구조적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사회만 책망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이 평균 이상의 삶을 누리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하며, 이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더 좋은 삶을 누린다는 것은 즉 그 사람이 더욱 사회에 많은 가치를 창출했다는 의미이고, 역으로 이 기여->보상 구조가 정확히 잘 동작해야만 사람들에게 사회 발전에 대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즉, 사회적인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향의 논의도 반드시 필요함은 사실이다. 그런데 의지드립이나 꼬북이를 주로 읊어대는 사람들은 경쟁에서 뒤쳐진 이들이 도태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창시절의 성적은 이 연속적인 도전의 시작 단계일 뿐이고, 물론 이 단계애서의 결과에 따라 각자가 받는 보상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학창 시절의 성적 만으로 평생 꼬리표를 달고 사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데다가, 계층이동의 문조차 닫아놓는다면 결국 사회는 침체될 뿐이다.

학창 시절은 학창 시절이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그와 관계 없이 새로운 경쟁이 개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학창 시절에 노력하여 한 발 앞서 능력을 키우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 평균적으로 볼 때 차후의 경쟁에서도 유리하겠지만, 비록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차후에 노력하여 좋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홀대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사회 구조상의 문제는 분명히 존재하므로 이런 부분은 개선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달리 말해, 당사자는 물론이고 사회도 노력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
[1] 상대방이 본인에게 시기심이나 열등감과 같이 건강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으면 왠만해선 안 바뀔 가능성이 더더욱 높다. [2] 특히 명절이나 연말 오밤중까지 술 먹고 노래를 크게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중장년층이나 노년층, 일부 무개념 부모들이 애들이 어리면 집 안에서 장난을 치거나 뛰어다닐 수도 있는 거지 뭘 그런 거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하세요? 라고 민폐라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윗집이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하면 아랫집 입장에서는 이사를 가거나 윗집과 작정하고 싸우지 않는 한 진짜 답이 없다. 설령 항의를 하더라도 보통은 오래 가지 않으며 윗집은 절대 반성하지 않고 아랫집을 보면 아는 척을 하면서 또 다시 소음을 내기 일쑤이고 아랫집의 고통은 더 심해진다 특히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에 거주하면 소음이 어디서 일어나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 속터진디. 게다가 층간소음의 강도는 층이 낮을 수록 심한데 구식 아파트 저층 거주자라면 그야말로 스트레스가 쌓이기 딱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