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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檀君紀元

1. 개요2. 단기 원년의 진실3. 현실의 용례

1. 개요[편집]

서기 2021년은 단기[1] 4354년.
대한민국에서 한때 쓰던 연호, 단군원호(檀君元號)라고도 한다.

단군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2333년[2]을 단기 1년으로 헤아리는 방법이다. 서기 연도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3] 반대로 단기 연도(2334 이상)를 서기 연도로 바꿀 때는 단기 연도에 2333을 빼면 된다.

2. 단기 원년의 진실[편집]

단군기원을 사용하려면 당연히 원년으로 삼을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단군이 신화적 인물이라 관련된 기록마다 단군이 있었다는 시기가 서로 다르다.

고려 공민왕 재위 10년(1361) 11월, 홍건적의 난 때 홍건적이 압록강을 건너 개경을 점령하자 공민왕은 남쪽 안동까지 파천했다가, 이듬해(1362)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탈환하자 환도하였다. 고려사 백문보(白文寶) 열전과 담암일집(淡庵逸集: 백문보 문집)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12년(1363) 8월, 백문보는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렸다.

상소에서 백문보는 임금이 난리를 만나 먼 남쪽으로 파천해야 했음을 한탄하고 나라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 수단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을 다독이고 유교의 가르침대로 나라를 다스리며 불교를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상소를 척불소(斥佛疏), 즉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라고 부른다. 그런데 백문보는 척불소에서 단군을 언급하였다.
且天數循環周而復始. 七百年爲一小元, 積三千六百年爲一大周元. 此皇帝王覇理亂興衰之期. 吾東方自檀君至今已三千六百年, 乃爲周元之會. 宜遵堯舜六經之道, 不行功利禍福之說. 如是則, 上天純祐, 陰陽順時, 國祚延長.

또한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여 돌고 다시 시작합니다. 700년이 하나의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여 하나의 대주원(大周元)이 됩니다. 이는 황제(皇帝)⋅왕패(王覇)와 이난흥쇠(理亂興衰)의 주기(週期)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檀君)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미 3600년이 되었으니, 곧 주원(周元)의 기회입니다. 마땅히 요순(堯舜)과 육경(六經)의 도(道)를 쫓되 공리화복(功利禍福)을 논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하늘(上天)이 진실로 돕고 음양(陰陽)이 때를 맞추어 국운이 길어질 것입니다

담암일집인용출처, 고려사 백문보 열전[4]
백문보는 척불소에서 공민왕에게 상소를 올리며 당시(1363)가 단군으로부터 3600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백문보가 생각한 단군원년은 기원전 2238년(계묘), 또는 기원전 2237년(갑진)이다. 하지만 백문보가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했는지는 모른다.[5]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단기의 원년인 '기원전 2333년'은 조선 성종 16년(1485) 편찬된 《동국통감》의 해석을 따른 것이다.
동방(東方)에는 최초에 군장(君長)이 없었는데, 신인(神人)이 단목(檀木) 아래로 내려오자 국인(國人)이 세워서 임금으로 삼았다. 이가 단군(檀君)이며 국호(國號)는 조선(朝鮮)이었는데, 바로 당요(唐堯) 무진년(戊辰年)이었다. 처음에는 평양(平壤)에 도읍을 정하였다가 뒤에는 백악(白岳)으로 도읍을 옮겼다.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다.

(신 등은 살펴보건대) 고기(古紀)에 이르기를, '단군이 요(堯)와 더불어 무진년(戊辰年)에 함께 즉위하여, 우(虞)나라와 하(夏)나라를 지나 상(商)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乙未)에 이르러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神)이 되었는데, 1천 48년의 수명을 누렸다.'고 하였으니, 이 말은 의심스럽습니다. 지금 살펴보건대,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 갑자(上元甲子)인 갑진년(甲辰年)에 있었는데, 단군의 즉위가 그 후 25년 무진년에 있었다면 '요와 더불어 함께 즉위하였다.'라고 한 것은 잘못입니다.

인용문 2차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가 제공하는 《국역 동국통감》(세종대왕기념사업회 편)링크
임금 시절 무진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세워 임금이 되었다고 했는데, 요 임금 역시 사실 신화 속 인물이므로 정확한 생몰연대가 전할 리 없다. 그래서 중국의 고서에서도 요 임금이 언제 사람인지를 두고 서로 말이 달랐다. 예를 들어 죽서기년은 요 임금이 병자년(기원전 2145년)에 즉위했다는 설을 주장했다. 11세기 북송 사람 소강절(邵康節)이 쓴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는 요 임금이 갑진년(기원전 2357년)에 즉위했다는 설을 주장하여 동아시아에 널리 퍼졌다.

고서들이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시기를 요 임금 즉위년과 비교하여 설명하였으므로, 요 임금 즉위년을 언제라고 보느냐에 따라 당연히 단군의 연대도 함께 엇갈릴 수밖에 없다. 동국통감이 "요 임금이 즉위한 것은 상원 갑자인 갑진년"이라고 설명했는데 바로 황극경세서의 설을 인용한 것이다. 동국통감은 황극경세서의 해석을 따라 요 임금이 기원전 2357년(갑진)에 즉위했다고 보고, 단군이 즉위한 해가 60갑자로 무진년이었다는 설을 절충해서 해석하였다. 갑진년으로부터 24년 뒤가 무진년이므로, 요가 기원전 2357년(갑진)에 즉위했고 단군이 무진년에 즉위했다면, 기원전 2357년에서 24년을 더하여 기원전 2333년이 된다.

동국통감의 해석을 받아들여 18세기에 씐 《동사강목》 또한 단군 즉위년을 '당요 25년 무진'이라고 설명했다.[6]

세간에는 기원전 2333년이 단군 즉위년도인 듯 착각하기 쉽게 알려졌지만,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이라는 단서를 붙이며 사실이라고는 절대 명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단기를 쓰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기와 비슷하게 일본에서 진무 덴노의 즉위기원을 근거로 한 황기(皇紀) 역시, 진무 덴노가 실존인물이 아닌 신화 속 인물이라는 점에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애당초 고대의 기년법이란 이렇게 국가의 정통성을 위해 끼워맞춘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심지어 우리가 평상시에 사용하는 서기의 원년도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나름대로 추정한 것이지만, 현대 역사학자들은 그 추정이 몇 년 정도 오차가 있다고 본다.[7]

3. 현실의 용례[편집]

  • 1909년, 홍암 나철이 창교한 대종교에서 동국통감의 기록에 근거한 단기 사용을 적극 주장하였다. 이후 꼭 대종교인이 아니더라도 민족의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종종 단기를 몰래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일본 연호를 따라 썼기 때문이다. 이후 대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만주에서의 무오독립선언서에 '檀君紀元(단군기원)'이라는 명칭으로 단기가 사용되었으며, 역시 이 영향을 받아 3·1 운동 당시 기미독립선언서에도 '朝鮮建國(조선건국)'이라는 명칭으로 단기를 사용하여 연도를 표기하였다. 다만,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수립 당시부터 단기 대신 3.1 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을 원년으로 하여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하였다.
  • 1948년(단기 4281년) 제헌 국회에서 새 정부의 연호로 단기를 채택하여 처음으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단기를 사용하였다. 이때 이승만을 포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신 정치인들은 대한민국 연호[8]를 쓰자고 주장한 반면[9] 국회의원들은 단기 연호를 쓰자고 하였다. 대한민국 연호는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채택한 연호였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단기를 새 나라의 연호로 채택했다. 이 시기 법률문서나 반민특위 관련 문서 등에서 단기로 연도를 적었음을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때는 호적 기록도 죄다 단기로 적었다. 당시엔 단기 사용이 당연했으므로 굳이 단기라고 명시하지 않고 숫자만 적은 경우도 많다. 지금 서기에 따라 연도를 적을 때에 굳이 서기라고 명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서기와 단기는 무려 2333년이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1961년 12월, 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는 동안 연호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1962년(단기 4295년) 1월 1일부터 단기를 폐지하고 서기를 채택하기로 하여 현재에 이른다. 공문서 등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서기만 사용하지만, 민간에서는 단기를 함께 쓰는 경우도 나름대로 있다. 예를 들어 불교 달력에 서기와 함께 불기와 단기를 병용하거나, 신문 날짜란에 서기와 같이 쓰는 식. 사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졸업 앨범 등에 서기와 병기하여 쓰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다.
  • 70대 후반 이상인 어르신들이 중,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국사 교과서에 3009년 삼국통일, 3925년 임진왜란, 4278년 광복 등으로 써져 있는 걸 배웠는데, 이것이 단군기원이다. 또한 이들의 졸업장에도 연도를 단군기원으로 표기했다. 대략 1948년생까지는[10] 이런 단기 졸업장을 받았다고 한다.
  • 옛날 건물을 복원할 때 대들보에 이것을 써넣는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옛날식(?)으로 하고자 하는 것 같다.
[1] 단군기원의 준말이다.[2]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하는 연도는 기록에 따라 다르다. 기원전 2333년은 조선서거정이 쓴 동국통감에서 처음 주장하였다.[3] 단, 서기에는 0년이 없기 때문에 기원전을 단기로 헤아릴 때는 2334를 더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천문학계에서는 기원전까지 헤아릴 때 기원전 1년을 0년으로, 기원전 2년을 -1년으로 간주하고 계산한다.[4] 척불소 내용은 고려사 백문보 열전과 담암일집에 모두 있지만, 고려사에는 백문보가 척불소를 언제 썼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공민왕 12년(1363) 8월에 썼다는 내용은 담암일집의 부록에 있는 편년(編年)에 나온다.[5] 서기 1363년은 만약 백문보의 단군원년이 서기전 2238년(계묘)이라면 단군 3601년, 원년이 서기전 2237년(갑진)라면 단군 3600년이다. 백문보가 원년 개념으로 말을 했는지 주년(周年) 개념으로 말을 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1363년이 60갑자로는 계묘년이었으니 아마도 백문보의 단군원년은 서기전 2238년(계묘)이 맞을 것이다.[6] 즉위년을 재위 원년(1년)으로 보므로 24년 뒤는 25년째가 된다.[7] 주류 의견은 예수의 탄생을 기원전 4년 정도로 본다.[8] 김구백범일지와 같은 임정 요인들의 기록물에서 '대한민국 XX년'이라는 식으로 자주 쓰였다.[9] 이에 따라 1948년은 대한민국 30년이 된다.[10] 유치원은 1949~1954년생도 포함하나, 그 당시 유치원에 다닌 아이들은 매우 드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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