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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영등포구 CI.svg 영등포구법정동
파일:영등포구 CI.svg
대림동
大林洞
Daerim-dong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
행정표준코드
11560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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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1동 : 3180061
● 대림2동 : 3180062
● 대림3동 : 3180063
관할 행정동
대림1동, 대림2동, 대림3동
하위 행정구역
96통 837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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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1동 : 26통 231반
● 대림2동 : 31통 270반
● 대림3동 : 39통 336반
면적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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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1동 : 0.49㎢
● 대림2동 : 0.55㎢
● 대림3동 : 0.95㎢
인구[1]
50,12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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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1동 : 14,859명
● 대림2동 : 12,413명
● 대림3동 : 22,854명
인구밀도
25,213.0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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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1동 : 30,255.10명/㎢
● 대림2동 : 22,534.54명/㎢
● 대림3동 : 24,163.15명/㎢
1. 개요2. 역사3. 주민 구성4. 기타5. 교통
5.1. 버스5.2. 철도
6. 출신 인물

1. 개요[편집]

영등포구의 남부에 위치한 법정동이다. 대림동은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조선족상점들이 많이 밀집해 있고 성업 중이다. 중국시장 느낌이 많이 나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고 특히 양꼬치, 마라탕 등 중국 동북요리를 맛볼 수 있어 중국인(조선족포함)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맛집탐방을 다니는 핫플이 되었다. 과거 몇몇 영화에서 우범지역으로 표현되었지만 현재 치안 수준은 서울의 다른 지역과 놓고 봤을때 매우 안전하지는 않지만 예전보다는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법정동 대림동은 행정동상 대림 1, 2, 3동으로 나뉜다. 대림 1동은 신길5동, 6동과 붙어 있고 신길뉴타운이 가까워 조선족 비중이 가장 낮고 조용한 주거지역이다. 최근 재건축아파트가 완공되면서 상당히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변에 2호선 대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7호선 신풍역, 보라매역이 있으며, 신안산선 대림삼거리역이 이곳에 세워질 예정이다. 학교는 신대림초등학교, 대림중학교 등이 있으며 한림대학교 강남성심병원, 대림성모병원이 대림삼거리 근처에 있다. 또한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 태양의집 (백화점)이 있다.

대림 2동은 조선족이 가장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으로 대림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많은 중국식당 및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영등포구의 최남단으로 도림로, 대림로, 시흥대로, 도림천에 둘러싸여 있으며, 구로디지털단지역, 대림역과 접한다. 대동초등학교, 영림초등학교가 있으며 BYC 본사가 구로디지털단지역 5번 출구 근처에 있다.

대림 3동도 조용한 주거지역으로 남쪽으로는 대림역에서 북쪽으로는 신도림역 근처까지 해당한다. 도신초등학교, 신영초등학교, 영남중학교, YDP미래평생학습관, 대림도서관, 대림운동장 등이 있다. 전반적으로 노후화된 주택지역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으며 재개발이 추진되는 지역도 많다.

다리건너 구로공단은 과거와 달리 IT산업이나 설계 등 사무실들이 밀집한 초고층 오피스텔과 아파트형 산업시설로 바뀌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근무하는 오피스지역으로 바뀌었고 부근에 술집, 음식점 등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다.

2. 역사[편집]

구한말까지는 경기도 시흥군 상북면 원지목리[5]였고 원래 지금의 대림동 일대는 대림(大林)이라는 지명에 걸맞지 않게 도림천변의 풀밭이나 목장지대였다고 한다.(한자 자체의 뜻과는 무관한 합성 지명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기도 시흥군 북면 도림리[6]가 되었다.
1895
금천현 상북면 구로이리
衿川縣 上北面 九老二里
금천현 상북면 원지목리
衿川縣 上北面 遠芝牧里
금천현 상북면 도야미리
衿川縣 上北面 道也味里
금천현 상북면 사촌리
衿川縣 上北面 沙村里
1911
시흥군 상북면 도림리
始興郡 上北面[ 道林里
1914
시흥군 북면 도림리
始興郡 北面 道林里
1936
시흥군 동면 도림리
始興郡 東面 道林里
경성부 도림정
京城府 道林町
경성부 사옥정
京城府 絲屋町
1943
경성부 영등포구 도림정
京城府 永登浦區 道林町
경성부 영등포구 사옥정
京城府 永登浦區 絲屋町
1946
서울특별자유시 영등포구 도림동
永登浦區 道林洞
서울특별자유시 영등포구 문래동
永登浦區 文來洞
1949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도림리
永登浦區 新道林里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동
永登浦區 道林洞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永登浦區 文來洞
1950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도림동
永登浦區 新道林洞
1980'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동
九老九 新道林洞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
永登浦區 大林洞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도림동
永登浦區 道林洞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문래동
永登浦區 文來洞

1936년 대방천 좌안 지역을 경성부로 편입하면서[7] 시흥군 동면으로 이관되었다가, 1949년에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었다. 서울 편입 이후에는 법정동 신도림동이었으나 서울 편입 직후인 1955년경에 대방동의 '대'와 도림동의 '림'에서 따와 행정동 대림동을 만들었다. 당시 행정동 대림동은 법정동 도림동(지금의 영등포구 도림동과 대림동)과 법정동 대방동(지금의 동작구 대방동과 신대방동)[8]을 관할했다.[9] 이후 행정동 대림동 중에서 법정동 신대방동 지역이 따로 행정동 신대방동으로 분동되었다.(대림동의 '대'에 해당하는 지역이 떨어져나간 것이다.) 행정동 대림동이 대림1~2동으로 분동된 것은 1977년이며, 법정동 대림동은 1980년 4월 구로구 분구에 따라 신도림동 중 영등포구 잔류지역을 행정동 '대림동'의 이름을 따와서 명명한 것이다.

1960년대만 해도 논밭과 자연마을, 공장, 군부대가 혼재했던 변두리였으나 1970년대부터 지금과 같은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1999년경부터 중국식자재점포가 하나둘 들어서더니 2000년대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조선족 밀집지역이 되었다.
2000년대 중반 들어서 가리봉동 재개발 계획이 등장하고 한국에서 어느 정도 돈을 모은 중국인들이 열악한 가리봉동 쪽방 밀집지역인 벌집촌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주거지역을 찾아 이동하면서 대림2동에 중국인 체류자가 급속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대림역 12번 출구와 대림중앙시장차이나타운으로 변화되었다.

3. 주민 구성[편집]

파일:attachment/대림동/top_neighbourhoods_in_the_number_of_foreigners.jpg

2015년 통계에서는 대림2동의 외국인비율이 105.2%를 기록했다. 특히 주변의 구로동, 가리봉동, 가산동, 봉천동처럼 조선족(중국인)이 많은 것으로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흔히 일반인들에게 차이나타운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하며, 그 중에서도 대림역 7호선 주변이 가장 밀집도가 높다.

그래서 관광지로 성공한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서울의 차이나타운으로 대림 일대를 개발하자는 의견도 있는 듯. 하지만 대림동에 원래 살던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인데, 대림동은 시장이라던가 대중교통 수단이 의외로 편리하고[10] 과거 넓은 정원이 있던 집의 주인들이 그 집을 다세대주택으로 바꾸어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11]

파일:attachment/대림동/daerim-neighbourhood-change-1.jpg
대림2동의 변화상. (좌) 2009년[12] / (우) 2013년.
사실 2009년 당시에도 주요 대로변(지금의 도림로, 디지털로 주변)은 이미 어느정도 연변타운화된 상태였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런 동네 구석까지 중국화가 된 것. 대림2동이 고향인 사람이 지금의 대림2동을 본다면 어린시절의 문방구, 슈퍼, 미용실, 빵집 등이 죄다 중국 관련 점포로 상전벽해된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참고로 대림2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대림2동 구립 어린이집은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관인 유치원이었다.[13]

같은 대림동이라도 도림천과 인접한 남부지역(대림 2동)은 가리봉동과 함께 대표적인 조선족 거주지역으로 변모했지만, 영남중학교와 우성아파트를 위시한 동·북부 지역(대림 1동, 대림 3동)은 대림동의 예전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2015년 기준으로는 대림3동 상당부분(특히 영남중학교 이남 지역)도 학교의 가정통신문을 중국어로 나눠줄 정도로 전교생의 반 이상이 중국인, 혹은 중국계 한국인이 될 정도로 연변화되었다. 대림동 중에서 중국계가 잘 안 사는 지역은 최북단쪽과 동부의 대림1동 정도다. 차이나타운으로서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곳은 대림 2동이다.[14]

그런데 이곳도 임대료 상승을 피해가지는 못했는지 2016년 4월 20일 방송된 "취재파일 K"를 비롯한 여러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대림2동 중심가의 경우 임대료가 대단히 높아져서 거의 강남[15]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유동인구 기준으로는 강남과 비교하기 어렵지만 일단 상당히 임대료가 오른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가보면 도로가에 수입차들이 많이 보인다. 예전의 낙후된 분위기와 달리 다른 지역의 중산층~상류층 화교나 조선족들도 많이 모여들고, 저층 주택들도 고층 건물들로 재건축되고, 한국인들도 많은 음식점 같은 데에 많이 방문해서 유동인구가 늘고 매출도 좋아지다보니 과거에 비해서 치안을 비롯해 여러모로 많이 개선되었다.[16]

대림역 12번 출구와 대림중앙시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중국인들의 중심 상권화된 상태다. 심지어 한국에 지점이 각각 4개 밖에 없는 중국은행중국공상은행이 대림역을 사이에 두고 직선거리 250m 내 지점을 내서 영업하고 있을 정도. 바로 윗 문단에서 임대료가 대단히 높아진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림2동 대림차이나타운이 한국 체류 중국인들의 중심 상권으로 확실히 자리잡으면서 임대료가 크게 상승한 것. 밤 늦게까지 중국인들이 여기저기에서 몰려오다 보니 식당들도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꽤 있는 편이다. 치안은 CCTV 설치로 인해 과거보다는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한국 체류 중국인들의 유흥가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하는 편이다. 대림동에서 조심해야할 점은 짱깨등 중국인/조선족 비하발언을 무심코 하지 않는 것이다.

4. 기타[편집]

  • 영화 청년경찰에서 대림동의 조선족 폭력조직을 소재로 다뤘다. 그 영화가 대림동을 우범지대로 인식시켰다며 조선족은 물론 동네 이미지 악화가 집값에 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결국 법정소송까지 갔으며 2심 법원 권고에 따라 제작사측이 사과하였다.
  • 백화점 태양의집은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1동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9,570㎡ 규모의 철근콘크리트조 쇼핑센터다. 1979년 김중업이 설계해 1982년 준공했다.

건축가 김중업은 이 건물을 부담 없이 들어가 구경할 생각이 드는 곳이 되길 바라며 설계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선 모습일지 모르나 상품이 보는 이의 감정을 윽박지르는 서울 거리에 이런 집이 기다려진 지 오래다”라고 건축가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 건물에는 원형 모티브, 램프, 곡면의 사용 등 다양한 김중업의 건축 언어가 종합적으로 병치 되어 있다. 현재 ‘썬프라자’라는 이름으로 슈퍼마켓 등 상업 시설이 입점해 있다.

김중업은 대한민국 탄생시기 활동한 대표적인 건축가로 50년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건축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사사했고, 서울대·홍익대 교수를 지냈다. 의미있는 건축물들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질 것이고 보존이 필요하다. 건축물은 가장 오랜시간 인간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인류유산이기 때문이다.

그가 남긴 건축물 가운데 ‘부산 유엔기념공원’, ‘부산대 구 본관’, ‘부산대 무지개문과 구 수위실’, 서울 '서산부인과’가 등록문화재가 됐으나 서울에 있는 것들 가운데 '태양의 집' '올림픽 세계평화의 문', '성북동미국제일은행지점장주택'과 그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아직 문화재로 등록되지 못했다.

5. 교통[편집]


영등포역 KTX

서울지히철 1호선 신도림역(GTX B 환승역 예정)
서울지하철 2호선 대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서울지하철 7호선 대림역, 신풍역
신안산선 구로디지털단지역, 대림삼거리역

도림천로, 대방천로, 도림로, 도신로, 도영로, 대림로, 신길로, 디지털로, 가마산로, 시흥대로, 경인로가 있음

5.1. 버스[편집]

5.2. 철도[편집]

6. 출신 인물[편집]

[1] 2021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2] 디지털로 441 (대림동 899-2)[3] 대림로23길 25 (대림동 705)[4] 대림로 197 (대림동 740-4)[5] 원지목리의 기원이 되는 '원지막'이 지금의 대림1동 지역에 있었다고 하니 대림동 일대를 옛 원지목리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애초에 옛 지도들을 봐도 원지목이라는 글자는 지금의 대림동에 해당하는 도림천 우안에 박혀있었지, 지금의 신도림동에 해당하는 도림천 좌안에 있지 않았다. '하원지목'은 지금의 도림동 일대로 추정.[6] 도야미리(신도림동)+원지목리(도림동, 대림동)+사촌리(문래동).[7] 한 마을이었던 대림동과 도림동이 이때 갈라졌다.[8] 1975년에 법정동 신길동에 편입된 현재의 신길6동 일부도 포함했다.[9] 당시 이들 지역은 미개발지(일제강점기부터 타이어 공장이 있던 지금의 구로구 신도림동은 제외)로 인구가 얼마 없었다. 따라서 여러 개의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 생긴 건 당연한 것.[10] 서울의 다른 곳으로 뻗어가는 버스 노선들이 많고, 서울 지하철 2호선과 7호선이 지나간다. 그리고 광명, 안양 심지어 수원 방면으로 가는 버스들도 다닌다.[11] 하지만 그분들의 편한 노후를 책임지는 이들이 조선족이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덕분에 늘 월세가 상당히 잘 나가고 간혹 1층이 상가화되기 시작하면 상당히 큰 돈을 벌게 된다. 주택일 때 월세 30만 원이던게 상가화되고 300만 원이 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12] 저 사진에서 보이는 부동산 점포는 1990년대에는 문방구였다.[13] 그 당시에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건물 3층에 청소년 독서실(새마을문고)이 있었다. 현재는 폐쇄된 듯. 도서실로 중학생(1992~1994)에 시험공부를 했다.[14] 재미있게도 조선족 밀집지역은 모두 서울 지하철 2호선서울 지하철 7호선이 만나는 환승역(대림역, 건대입구역) 일대다.[15] 다만 대림역 근처 역세권은 실제로 상당히 비싸진 편이다.[16] 국내 거주 중국인 기준으로 대림2동 쪽 거주자라면 꽤 성공한 축에 든다. 크게 성공한 중국인들은 마포 쪽으로 생활 반경을 넓혀가는 추세. 반면 과거 90년대 중국 노동자들의 밀집 거주지였던 가리봉동은 슬럼화되어 중국인들도 돈을 벌면 금방 떠나가는 동네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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