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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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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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emblem 2020.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KOR
축구 협회
대륙 연맹
지역 연맹
홈 경기장
마스코트
백호[1] (번호: 105)
별명
감독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파울루 벤투 (Paulo Bento)
주장
C
손흥민 (Son Heung-Min)
부주장
C
김영권 (Kim Young-Gwon)
라이벌
랭킹
39위
(2021년 5월 27일 기준 / #)
32위
(2021년 6월 21일 기준[3] / #)
[ 대표팀 기록 보기 ]
A매치 최다 출전
홍명보 (136경기)
A매치 최다 득점
차범근 (56골)
월드컵 최다 득점
첫 국제경기 출전
최다 점수차 승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vs 파일:네팔 국기.svg 네팔 16:0
(대한민국 인천 / 2003년 9월 29일)
최다 점수차 패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vs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0:12
(잉글랜드 런던 / 1948년 8월 5일)
* 자세한 내용은 역대 축구가대표팀의 항목을 참고하십시오.
[ 대회별 성적 보기 ]
세계대회
[출전] 10회[4]
[최고] 4위 (2002)
[출전] 1회
[출전] 3회[5]
[최고] 파일:트위터_동메달_3위_이모지.png(2012)
대륙대회
[출전] 14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56, 1960)[6]
[출전] 12회[7]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70, 1978, 1986, 2014, 2018)
[출전] 8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2003, 2008, 2015, 2017, 2019)
[출전] 2회
[최고] 4위 (2002)
기타 대회
[출전] 1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87)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90)
[출전] 23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71, 1974, 1975, 1976, 1978, 1980, 1981, 1982, 1985, 1987, 1991, 1997)
[출전] 10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69, 1970, 1971, 1973, 1974, 1975, 1998)
[출전] ?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60, 1965, 1970, 1972, 1975, 1977, 1978)
[출전] ?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1981)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2000, 2001, 2006)
SNS


1. 개요2. 특징3. 상징4. 플레이 스타일5. 라이벌6. 現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7.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7.1. 랭킹7.2. 감독7.3. 명단7.4. 기록
8. 출처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Korea Republic National Football Team emblem 2020.pn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소개 영상 (FIFA)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아시아의 호랑이, 세계를 삼켜라(TIGERS OF ASIA, CONQUER THE WORLD)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출전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슬로건
대한축구협회 산하의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아시아에서 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또한 아시아 대회 뿐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으며, 많은 우승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종목 국가대표팀 중 하나이다.

슬로건<아시아의 호랑이>. 별명<태극전사> 또는 <붉은 악마>[RD]이다. 유니폼 스폰서는 나이키가 담당하고 있다.

2. 특징[편집]

  • 명칭
    태극전사[9]라는 호칭이 있다. 한편, 붉은 악마라는 별칭은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룩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 팀을 현지 언론에서 붉은 악령(Red Furies)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는데, 이걸 번역하는 과정에서 악령이 악마가 되었고 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서포터즈가 결성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붉은 악마'로 이름을 내걸었다.[RD]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의 마스코트는 '하얀 호랑이 백호'다.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인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팀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 팀 중 하나로 인식된다.[15]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FC 국대''라고도 하는데, 국가대표 팀 못지않게 프로축구 리그의 인기 또한 엄청난 남미, 유럽과는 다른 특성 때문에 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야구vs축구 논쟁이 자주 벌어진다.

    이런 국가대표팀의 인기에 힘입어 대한축구협회는 국내 스포츠 협회중 유일하게 스폰서만으로 자급자족이 되는 기관이다. 세금은 1,000억이 넘는 예산중 10억 정도밖에 받지 않는다. 그마저도 명목을 위해 사실상 강제로 국가에서 받는 돈이다.

  • 아시아의 호랑이
    1948년 축구 국가대표팀이 창설된 이후 세계무대와의 격차를 꾸준히 좁혀왔다. 1980년대, 1990년대 국제대회에서는 동네북 신세였다.[16] 2000년대 전까지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동아시아 골목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 골목대장이라는 하는 이유는 아시아권 내에서 최대 규모의 축구 대회인 AFC 아시안컵에서 초대 대회 1956년, 제 2회 1960년 우승으로 2연패를 달성한 이후 무려 63년간 우승을 하지 못했지만,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서는 1970, 1978, 1986, 2014, 2018에 금메달을 5회 따냈으며, 아시아 게임 참가 국가들 중에서 최다 우승 국가이기도 하다.[17] 하지만 더 큰 대회인 올림픽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해서 본선 진출조차도 쉽지 않았다. U23 대회가 된 이후가 오히려 더 성적이 좋다. 이런 면을 종합해서 보자면 한국 국가대표팀은 긴 세월 동안 동아시아 골목대장 노릇을 할 수 있지만 프로화가 진행된 다른 구기 종목들과 비교한다면 축구는 세계무대와의 격차가 상대적으로 좁은 편에 속하기도 한다.

    흔히 쓰이는 아시아의 맹주라는 수식어는 아예 못 쓸 정도의 수식어는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 축구의 1인자는 한국 - 이란 - 사우디 - 일본 정도라고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경쟁국들 사이에서 가장 기복이 없이 꾸준히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던 것이 한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맹주를 굳이 하나 뽑자고 한다면 한국이 가장 알맞을 수도 있다. 약점이 있다면 1인자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 너무 오래됐다는 것이고[18] 경쟁국인 이란, 사우디, 일본이 1위를 할 때만큼의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시아의 맹주보다는 동아시아 골목대장 정도가 더 확실하고 온건하지만 아시아 맹주도 아예 못 쓸 정도의 수식어는 아니다.

  • FIFA 월드컵 아시아 최다 출전국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월드컵 진출을 이뤄냈다. 그 월드컵이 1954년 스위스 월드컵.[19] 이후 32년을 내리 예선탈락하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두 번째로 출전한 뒤로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9회 연속 진출, 총 10회 월드컵 본선진출을 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에 오른 것이 최고로 높이 올라간 기록이다. 최고순위, 연속진출, 최다 진출 횟수 세 가지 모두 아시아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월드컵 조별리그나 최종 예선에서 다른 나라의 도움으로 탈락을 모면하고 진출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20]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만냑 일본이[21] 이라크를 승리했다면 우리는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이라크와의 무승부로 인해 골득실이 앞서 월드컵에 진출하게 되었다.[22]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 덕분에 조별예선 탈락의 위기를 모면하고 16강에 진출했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이란 덕분에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 위기에서 벗어나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3차전에서 한국이 독일을 잡아준 덕분멕시코가 스웨덴에 대패를 함에도 불구하고 멕시코가 조 2위로 16강에 간신히 올라갔다.
아시아에서 FIFA 월드컵 전적 랭킹이 꽤 높은 편이다. 유럽과 남미를 제외하면 멕시코, 미국에 이어 3위, 전체적으로 따지면 26위에 랭크되어 있다. FIFA 랭킹은 2014년 8월 57위에서 2014년 12월~2015년 1월 69위까지 하락했던 적이 있었다. 2018년 6월에는 57위. 월드컵 예선 및 러시아 월드컵에서의 삽질이 워낙 심해서 축협이 그나마 아시안컵 준우승은 하고, 아시아권 하위권 팀들 상대로도 양민학살을 좀 하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개최 직전쯤 되어야 30위권으로의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대회까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월드컵에서 34경기를 치러 6승 9무 19패 34득점 70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한 경기에서 3골 이상 넣은 적은 없으며, 멀티 골을 기록한 선수도 없다.[23] 그리고 1998년 네덜란드전과 1954년 두 경기를 제외하고는 5점 차 이상의 패배 기록도 없다.
FIFA 월드컵 3개 대회에 연속 출전하여 연속 득점한 선수가 있는데, 바로 대한민국의 레전드 박지성이다. 3개 대회 연속 골 기록은 아시아에서 박지성유일했다.[24][25][26]

  • 독이 든 성배
    대한민국의 스포츠 국가대표팀 중에서는 가장 관심도가 높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독이 든 성배라고 표현한다. 또한 여론과 언론의 영향이 매우 강해 몇몇 어그로성 여론이 좌우하려는 시도도 많았다. 그리고 언론의 적당한 입김은 축구 국가대표팀을 쇄신할 수 있지만 지나친 입김으로 인해 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경기장에서의 실수와 성적부진으로 인해 그 동안의 공헌도와는 상관없이 축구선수와 감독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예를 들어 경기중에 실수를 하면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하거나 성적이 좋지 않으면 도중에 감독이 해임되기도 했다.

    그러나 또 동시에 성공만 한다면 한국에서 이만큼 달콤한 보상이 따라오는 스포츠팀도 없다. 대표적으로 2002년 4강 멤버는 은퇴 후 그야말로 예능의 단골손님이자 항상 나오기만 하면 찬사를 받는다. 테리우스 안정환은 본인의 자질도 있지만 은퇴 후 오랜 시간 동안 연예인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풍운아 이천수도 은퇴 후 반 축구인, 반 셀럽의 인생을 살고 있다. 또한 어지간한 2002 주요멤버들은 K리그 무대에서 비교적 쉽게 감독직에 취임하고 있다. 감독인 히딩크조차도 국빈이자 전국민이 알아보는 귀인 대접을 받고 있다. 박항서, 고트비, 베어백 등 주요 스태프들도 유명하다고 할 수 있으며 다른 스태프들도 2002년 스태프였다고 하면 꽤 관심을 받는다. 이만큼 한 번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명예가 뒤따라오기도 한다.

  • 개방성
    대한민국은 일본과는 달리 귀화 선수는 전무하다.[27] 혼혈이 국가대표로 발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28][29]

    귀화 선수는 과거 신의손이나 샤샤 드라쿨리치, 마시엘[30]를 상대로 시도되긴 했다. 신의손은 타지키스탄 대표로 1경기 뛴 전적이 있어 실패했다.[31] 샤샤는 귀화 의욕이 높았지만 정작 발이 느리다고 히딩크가 거부했다. 마시엘은 2중 국적 유지 여부를 물으며 브라질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2003년 이성남이싸빅이 실제 대한민국으로 귀화를 했으나, 이성남은 러시아 국가대표로 A매치 2경기를 뛴 경력이 있었고, 이싸빅은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로 유럽 올림픽 예선 경기에 출전했던 이력이 있어 국가대표에 선발될 수는 없었다. 이후 최강희호 출범 당시 최강희 감독이 전북에서 잘 알고 지도했던 에닝요를 발탁하려 했지만, 당시 에닝요는 귀화 요건이 맞지 않아 실패했다.[32] 이후 조나탄이나 말컹 등이 귀화 의사를 보인 적도 있지만, 적극적이지 않기도 했고 귀화 요건도 맞지 않았다. 현재 대구에서 뛰는 세징야가 상당히 강력한 귀화의사를 보이고 있으며[33] 실력도 K리그 탑급이라 귀화만 성공한다면 일단 몇 경기라도 대표팀에서 뛸 가능성은 높다.

    혼혈 선수로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차범근호의 수비수로 활동한 장대일[34]이 있으며, 2003년 김준[35]이 U-17세 대표로 발탁되었다. 최근에 유명했던 혼혈 선수는 강수일이지만, 슈틸리케호에 발탁되어 화려하게 재능을 꽃피우려는 차에 발모제(...) 사건과 음주운전으로 커리어가 박살났다. 강수일 이후 젊은 선수들로 포항 출신의 골키퍼 김로만[36], FC 에르츠게비르게 아우에의 골키퍼 케빈 하르[37]가 있으며, 꼬꼬마 유망주로 영재발굴단에도 출연한 원태훈-원태진 형제[38], 온예카 오비 존[39] 등이 있다. 2017년에는 U-20 월드컵을 앞두고 야스퍼 테르 하이데가 화제가 되었고[40],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스웨덴과 한 조가 된 것을 계기로 스웨덴 리그에서 활동하는 요한 램혼과 세바스티안 램혼 형제 센터백이 축구팬들 사이에 알려지기도 했다.[41] 최근 레알 마드리드 1군에 데뷔하며 이슈가 됐었던 마빈 박 또한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선수로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차출이 가능한 선수다. 특히 이 선수의 포지션이 현대 축구에서 귀한 측면 수비기 때문에 팬들의 관심을 끌었다.[42]

    해외 교포 선수으로는 허정무호에 발탁된 바 있는 재일교포 3세 박강조가 있으며, 이충성도 청소년 대표까지는 한국에서 뛰었다. 재미교포로는 버지니아 주립대학에서 재학하던 유지영이 1999년 울산 현대에 입단해서 뛰기도 했다.[43] 교포 출신 선수의 경우 이충성의 경우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있을 때 '반쪽바리' 소리를 들으며 멸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정작 이충성을 대표팀에 추천한 오장은은 그런 일은 없었다고 밝혔다.[44] 축구협회에서도 일단은 해외에서 활약 중인 교포나 혼혈 선수를 지켜보고는 있다고 한다.[45] 최근 팬들 사이에선 재일교포 골키퍼인 박일규 선수의 J리그에서의 활약이 좋자, 박일규 선수의 대표팀 가능성 여부에 대한 토론이 있기도 했다.

    이렇게 귀화 선수나 혼혈 선수, 교포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에 쉽사리 발탁되지 않는 건 이들의 기량이 한국 선수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거나, 귀화 요건[46] 등이 맞지 않거나, [47] 또는 이성남이나 신의손처럼 기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이미 다른 나라 국가대표로 뛰었기 때문에 못 뛰기 때문이다.

3. 상징[편집]

3.1. 역대 응원가[편집]

3.2. 역대 엠블럼[편집]

3.3. 역대 유니폼[편집]

4. 플레이 스타일[편집]

  • 개요
    히딩크의 토탈 풋볼, 홍명보의 점유율 축구, 신태용의 두 줄 수비 등 감독이 바뀔 때마다 변화는 있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주로 스피드와 활동량에 기반한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취했다.

  • 신체 조건
    AFC 소속 국가들 중 이란, 호주와 더불어 손 꼽히는 피지컬 축구를 구사하며 세계적인 기준으로도 체격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한국 선수들의 체격이 서양선수들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했다[48]. 그리고 한국의 역대 주요 스트라이커들을 살펴보면 최정민-이회택-김재한-최순호-황선홍-김도훈-최용수-이동국-조재진-박주영-김신욱-황의조 모두 육체적으로 약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선수들이다.
체격이 큰 편이지만,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이 한국이 빠른 팀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K리그의 전통적인 스타일도 그러할 뿐더러 세계적인 강팀들 상대로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떨어지기 때문에[49] 스피드와 활동량으로 투지있게 밀어부치며 경기를 해나가는 것이다.

  • 전통적 팀 컬러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늪 축구가 한국 축구의 특기라 알려지기도 했다. 경기를 주도하는 강팀들을 상대로 중원부터 거칠게 부딪치며 공격 흐름을 끊어버리고 위험 지역에서는 몸 던져서라도 볼을 차단하는 처절하디 처절한 늪 축구인데, 이게 상대의 체력과 평정심을 갉아먹으며 의외의 변수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대한민국의 역대 월드컵 출전 역사를 보면 월드컵에서 대패한 사례가 많지 않다. 그나마 대패한 사례인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여러 모로 대패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대회였다. 휴전된지 1년도 안 되어 출전한 월드컵 본선이었고, 선수들이 처한 상태도 극히 열악했다. 게다가 당시 한국과 상대팀, 특히 헝가리와의 격차는 현대 한국 대표팀과 다른 축구 강국들과의 차이보다 한참 더 컸다. 오히려 당시엔 '겨우 그 점수만 나왔다고?'라며 놀라는 반응이 많았다.
선전한 사례를 보면 투지와 활동량이 주효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게 제대로 먹힌 대표적 사례가 바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독일전이다. 전반 3실점을 통해 얼마나 대패를 당할지에나 시선이 집중되던 후반, 댈러스의 가혹한 더위에 지칠대로 지친 독일 선수들을 상대로 20여분 동안 2골을 만회했다. 결과적으로는 2-3 석패였지만 당시 위르겐 클린스만"한국이 전반부터 저런 플레이를 보였거나 후반전이 5분만 더 늦게 끝났더라면 무승부 혹은 역전패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한국의 왕성한 활동량이 위협적이었다. 디펜딩 챔피언인 독일 입장에선 어느 정도 망신이긴 했다.
그리고 한국 축구는 역사적으로 약팀과 강팀을 가리지 않고 투박하게 경기를 운영하는 경향이 컸다. 단지 약팀 상대로는 공격수를 늘려 시원하게 공격하고 강팀 상대로는 미드필더를 늘려 수비적으로 임했다는 차이만 있을 뿐.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롱패스로 좌우 방향을 빠르게 전환하거나 공격수들에게 다이렉트하게 전진 패스를 뿌리고, 사이드 라인을 타고 이 전진하며 크로스하면 전방의 가 슈팅으로 연결하는, 뛰고 또 뛰는 선 굵은 축구에 능하다 보니 월드컵 예선, 본선 가리지 않고 진흙탕 축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월드컵 본선에서는 예선과 차원이 다른 팀 레벨 차이, 상대 팀의 대응 전술 등으로 위에 서술한 그대로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웠고 오히려 세트피스와 중거리 슛, 상대의 수비 미스 등으로 더 많은 골을 기록했다. 우선 타겟형 스트라이커의 머리를 노리는 롱볼 전술은 2006년의 조재진이나 2014년의 김신욱같은 제공권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면 유럽 리그에서 뛰는 수비수들을 상대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상대 수비 라인 뒷공간으로 다이렉트하게 뿌리는 전진 패스는 넓은 시야와 준수한 패스 능력, 과감한 도전성을 지닌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가 주로 시도했으며[50], 그마저도 공격수의 기량 부족과 상대의 호수비로 슈팅으로조차 연결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압박의 강도가 높은 중앙 대신 측면 선수들의 전진과 크로스로 골 찬스를 만드는 것이 그나마 주효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까지 평가전에서 크로스로 어시스트를 기록한 사례가 종종 있고, 잘만 통하면 월드컵 본선에서도 한 선수가 한 대회에서 크로스로만 2개의 결승골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충분히 위협적이니 말이다. 이처럼 롱패스, 크로스 위주의 전술로 뻥축구라는 비아냥도 많았지만 그간의 실적 자체는 괜찮은 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4위의 성적을 기록한 히딩크의 초빙 이후 한동안 네덜란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이식해 네덜란드의 아시아판, 마이너 카피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세계적 유행 이후 역시 세계 유행을 따라가는 한국팀 전통의 기조를 벗어나지 않고 스페인 식의 티키타카를 받아들이려고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조광래, 홍명보, 울리 슈틸리케 등 국대에서 점유율 축구를 구사했던 감독들의 성적은 다소 좋지 않은 편이었고, 세계 축구도 티키타카의 유행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면서 짧은 패스 신앙에서 벗어나게 되긴 했다[51].

  • 득점력
    국제무대에서는 언더독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라 월드컵 본선에서의 다득점이 드문 편이고, 득점 양상도 세트피스/중거리 슈팅/루즈볼 슈팅 등 선수들 간의 합이나 개인 기량, 운 등이 중요한 루트로 많이 이뤄졌다. 90년부터 2010년 월드컵까지 무려 6회 연속 프리킥 득점을 기록했고[52], 98년 유상철, 02년 안정환, 10년 이정수의 2골은 프리킥 및 코너킥이 어시스트로 연결된 골들이다. 그리고 중거리 슛은 거의 매 대회에서 꾸준히 기록한 득점이다. 86년 박창선, 90년 황보관, 94년 홍명보, 02년 유상철, 송종국, 06년 안정환, 14년 이근호, 18년 손흥민. 상대 수비가 놓친 루즈볼을 바로 연결한 득점도 종종 있다. 02년 설기현, 10년 이청용의 2골, 18년 김영권.

  • 에이스 윙어
    상기한 내용을 토대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윙어가 꾸준히 출현했다[53]. 특히 소속 클럽에서 좋은 활약을 하며 대표팀에서도 에이스로 손꼽히는 윙어들이 꾸준히 배출되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축구 레전드로도 평가받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이 대표적인 예로, 셋 다 국가대표에서 주전 윙어로서 한국 축구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자세한 내용은 윙어 항목 참조.

5. 라이벌[편집]

5.1. 일본[편집]

  • 전통적인 라이벌리즘
    대부분의 한국 스포츠와 마찬가지로[54], 일본과의 라이벌리즘이 강하다.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기 때문에 국가대표 창설 초기부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과 라이벌 의식이 매우 강했다.

  • 1990년 이전
    역사적으로 한국 국가대표팀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일본을 몇 수 아래로 여겨왔다.[55] 한일전은 서로의 실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양국관계 때문에 1950년대부터 서로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친선전이건 전력승부건 큰 스코어로 지거나 굴욕을 당하면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축구팬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분노하는 사람이 많으며, 축구팬들은 말할 것도 없다.

  • 1990년 이후
    1993년 일본이 J리그를 창설하며 여러 가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등 한국 축구에 대한 연구와 엄청난 투자로 인해 일본 축구의 실력이 차츰 향상되기 시작한 이후로 서서히 격차가 좁혀졌고, 2002년 월드컵에 일본이 16강에 진출하는 등 일본의 실력도 아시아 정상급으로 올라왔다. 또한 90년대까지만 해도 홍명보가 국가대표 경기에서 일본을 못 잡으면 은퇴한다는 충격발언을 하는 등 죽을 각오로 일본을 상대하곤 했지만 00년대 이후에는 한국 선수들에게 있어서 그 전과 같은 간절함이 사라졌는데, 오히려 한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올라가고 여러모로 한국 내의 반일감정이 알려졌는데 앞선 세대와는 달리 젊은 일본 선수들에게는 반일감정의 이유가 잘 와닿지도 않아서 오히려 일본의 대항의식은 크게 작아지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들 때문에 2000년 이후의 한일전 전적은 5승 7무 5패로 호각을 다툰다.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 초반까지는 국내파로만 무장해 친선전에 가까운 동아시안컵이나 연령별 대표팀 외에는 만난 적이 없다. 두 팀 모두 상위 시드를 배정받아 월드컵 예선이나 아시안컵 본선 조별리그에서 다른 조에 배치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A급 대표팀 경기는 양측 모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서로가 꺼린다고 한다. 그러나 1년마다 하는 한일 정기전도 꽤 많이 했던 만큼 역사적으로 보면 두 나라의 축구는 교류가 많았다.[56] 현재의 한일 친선전이 열리지 않는 것은 일본 입장에서 고사하는 비중이 더 높은데, 그것은 이제는 일본에서도 한국전 패배가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다.[57]

  • 팬들의 관점
    이런 상황이라 각 대표팀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국가대표 팬들은 자주 논의를 벌이곤 한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 일본이 우위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일본은 92년, 2000년, 2004년 AFC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하고, 2011 AFC 아시안컵에서도 우승하여서 아시안컵 최다 우승국으로 도약하기도 하고 월드컵에서의 성적도 괜찮은 편이라 매우 기세가 좋기 때문이다.
반면 아직까지도 한국이 더 우위라고 주장하는 팬들은, FIFA 월드컵 연속 본선 진출 기록과 FIFA 월드컵 최고 성적이 좋고 양팀이 직접 맞붙은 상대 전적에서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우위라고 주장한다. 일본과 상대전적(한일전)은 기준 80전 42승 23무 15패로, 역대 전적으로 따지면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압도적이다.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경우 월드컵 6회 연속, 총 6회 진출이다. 최고 성적은 16강 3차례에 올랐다. 이런 부분에서 최고 성적을 기준으로 일본보다 낫다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은 한국이 가장 많이 A매치에서 맞붙은 나라이기도 한데 한일 정기전 같은 걸로 많이 실력을 겨뤄왔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전적으로는 한국이 2연승을 달리는 것은 맞으나, 그 두 번의 경기가 모두 동아시안컵 대회에서였다. 동아시안컵은 한일 모두 유럽파를 동원하지 않고 치르는 대회이다. 반면 그 이전의 두 경기는 유럽파를 다 동원한 경기였음에도 한국이 일본에게 경기력으로도 밀렸고 결과도 가져가지 못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어쨌건 우리가 2연승이고 2017년 대승을 거뒀다는 입장을 취하는 한국 축구팬들이 있는가 하면, 일본에서는 그것은 전력승부가 아니었고 두 나라의 전력승부에서는 우리가 경기력 결과 다 가져갔으니 한국보다 낫다고 말하는 일본 축구팬들이 있다. 현재 이런 부분에서도 묘한 갈등관계가 있다.

  • 외국의 관점
    이 라이벌 관계는 유명하기 때문에 세계의 축구팬들도 아시아 축구 최고의 라이벌전으로 한일전을 뽑는 팬들이 많다. 2014년에는 영국 가디언지가 선정한 "국가대표팀 더비 TOP 10"에 한일전이 5위에 오르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어떻게 보건 관계없을 정도이다.

5.2. 이란[편집]

  • 지긋지긋한 악연
    전통의 아시아 축구 최강자 3국 중 하나로, 국제무대에서 죽을 쑤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내전에서 가히 최강의 면모를 보여준다. 한국에 강하고 일본에 약한 편으로, 한국 일본 이란 3개국 사이에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한국과는 각종 국제대회 및 지역 예선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만나게 되어 우리나라가 월드컵에 무난하게 진출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팀이다.
특히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이 이끌던 시절에 한국은 이란을 상대로 승리는커녕 골 넣는것도 힘겨워했다. 한국 기준 2011년 아시안컵 8강전 이후 현재까지 승리가 없다. 허나 케이로스 감독이 떠난 후 그 위세가 많이 죽은 편이었지만 최근들어 이란의 유망주들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사르다르 아즈문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알리레자 자한바크슈에레디비시에서 득점왕을 해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어 대한민국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에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6. 現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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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국가대표 경기에 대한 내용은 벤투호/2021년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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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편집]

7.1. 랭킹[편집]

    • 최고 순위: 17위 (1998년 12월)
    • 최저 순위: 69위 (2014년 11월 ~ 2015년 1월)
    • 현재 순위: 39위 (2021년 5월)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인 5월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FIFA 랭킹은 40위였고 2002년 월드컵 끝난 직후인 7월에는 22위였다.

2017년 10월에는 러시아, 모로코와의 친선경기에서 연달아 패하면서 사상 최초로 중국보다 순위가 낮아진 적이 있었다. #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2017년 11월 랭킹에서는 3계단 상승하여 중국을 다시 앞질렀다.

    • 최고 순위: 15위 (1980년 9월, 2020년 6월)
    • 최저 순위: 80위 (1967년 8월)
    • 현재 순위: 32위 (2021년 6월 21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 57위 대한민국이 1위 독일을 이기는 대이변을 일으켰는데, 때마침 월드컵 직후부터 FIFA 랭킹 산정방식이 한국에 유리한 Elo 레이팅으로 변경되었다. 20위권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설레발이 나오면서 스포츠계와 팬들이 떠들썩했지만, 예상과 매우 다르게 한국은 8월에도 57위로 동일했다.

이는 계산 방식 때문이다. eloratings.net처럼 지역에 따른 유불리 없는 Elo 레이팅으로 월드컵 이전 모든 경기까지 계산하고 골득실도 감안하면 20위귄이 되지만, 피파 랭킹처럼 월드컵 이전은 아시아에 불리한 기존의 방식을 쓰고 골득실도 감안하지 않으면 57위가 된다.

7.2. 감독[편집]

  •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명단

  •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별 전적
[ 펼치기 · 접기 ]
감독
수석코치
경기 수
승률
비고
?
-
2
1
0
1
50.0
?
?
?
-
?
?
?
?
?
?
?
?
?
?
0
0
0
0
0
6
3
1
2
50.0
8
5
3
0
62.5
0
0
0
0
0
15
10
3
2
66.7
-
6
4
2
0
66.7
-
5
4
0
1
80.0
4
1
1
2
25.0
27
17
2
8
63.0
-
4
1
0
3
25.0
5
1
2
2
20.0
17
10
2
5
58.8
19
11
3
5
57.9
29
22
5
2
81.5
9
3
5
1
33.3
14
8
2
4
57.1
21
14
1
6
66.7
김정남 (대행)
-
5
2
0
3
40.0
21
18
1
2
85.7
8
7
1
0
87.5
김정남 (대행)
김호곤 (트레이너)
35
23
4
8
67.6
3
1
2
0
33.3
6
4
0
2
66.7
2
1
1
0
50.0
10
4
3
3
40.0
-
26
15
7
4
57.7
9
4
1
4
44.4
30
19
5
6
63.3
2
2
0
0
100.0
4
3
0
1
75.0
10
8
2
0
80.0
2
1
0
1
50.0
6
5
0
1
85.0
37
14
15
8
37.8
16
8
4
4
50.0
1
0
0
1
0
2
1
1
0
50.0
1
0
1
0
0
0
0
0
0
-
16
8
3
5
50.0
정해성 (트레이너)
41
22
8
11
53.7%
김평석(대행)
-
1
0
1
0
0%
34
18
5
11
52.9%
박항서 (대행)
-
1
0
1
0
0%
※ 자세한 사항은 각 감독 문서 참조.
[ 펼치기 · 접기 ]
감독
수석코치
경기
승률
비고
38
16
11
11
42.1%
김호곤(대행)
-
1
0
0
1
0%
18
8
3
7
44.4%
박성화(대행)
-
4
2
1
1
50.0%
25
11
8
6
44.0%
20
10
5
5
50.0%
17
6
6
5
35.3%
33
21
5
7
63.6%
21
12
6
3
57.1%
12
6
2
4
50%
19
5
4
10
26.3%
신태용(대행)
-
2
1
0
1
50.0%
39
27
5
7
69.2%
21
7
6
8
33.33%
25
15
8
2
60.00%[75]
※ 자세한 사항은 각 감독 문서 참조.

7.3. 명단[편집]

  •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명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역대 스쿼드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4. 기록[편집]

7.4.1. 개인 기록[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역대 축구 국가대표팀 개인 기록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4.2. 국제 대회별 기록[편집]

7.4.3. 국가별 전적[편집]


  • 월드컵 우승팀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거나 비긴 전적
[ 펼치기 · 접기 ]
축구 국가대표팀
승리하거나 비긴 내용
월드컵 우승 횟수
8
1
1
6
1982년 02월 20일 친선경기 2 : 2 (무)
2018년 10월 12일 친선경기 2 : 1 (승)
2회[76]
6
1
0
5
1999년 03월 28일 친선경기 1 : 0 (승)
5회[77]
6
0
2
4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0 : 0 (무)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2 : 2 (무)
1회[78]
4
2
0
2
2004년 12월 29일 친선경기 3 : 1 (승)
2018년 06월 27일 조별리그 2 : 0 (승)
4회[79]
3
0
1
2
2006년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1 : 1 (무)
2회[80]
3
0
0
3
전패
2회[81]
2
1
0
1
4회[82]
1
0
1
0
2002년 05월 21일 친선경기 1 : 1 (무)
1회[83]
※ 호사가들의 재미를 위한 기록일 뿐 별 의미는 없는 기록이다.

8. 출처[편집]

9. 관련 문서[편집]

10. 둘러보기[편집]




[1] 2001년에 엠블럼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호랑이가 너무 순해 보인다는 둥, 고양이 같다는 둥, 예전 해태 타이거즈의 엠블럼의 호랑이가 간지 넘치니 훔쳐오자(…)는 둥, 시끌벅적했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며 유야무야 정착되었다.# 오히려 2020년 19년 만에 변경된 엠블럼이 호랑이인지 사자인지 고양인지 분간이 안 되는 해괴한(...) 디자인이라서 팬들은 다들 "우리 호랑이가 이렇게 징그러울 리가 없어!"라고 실시간으로 절규를 시전 중이며, 기존 엠블럼은 그래도 무난했다고 재평가받는 실정이다.[2] 스포츠를 떠나 양 국가간의 사이가 상당히 나쁨에 따라 아주 과격한 라이벌 매치이다.[3] Elo 레이팅스는 상시 나오는 것이므로, 가장 최근 A매치와 그 직전 A매치 사이의 순위변동을 기입함.[4]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이후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까지 연속 9회 출전[5] 참가 연령 변경으로 1992년 이후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6] 이때 이후로 60년 넘게 아시안컵 우승과 인연이 없다.[7] 참가 연령 변경으로 2002년 이후 기록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RD] 8.1 8.2 사실 붉은 악마벨기에 축구 국가대표팀이 원조이다.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를 참조.[9]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국가대표를 이렇게 호칭한다.[11]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90년대 응원구호에서 따 온 것이다.[12] 다만 음원은 신해철의 ‘In to the Arena’다. 신해철 소속사에서는 공공재로서 저작권을 열어놓은 상태. 공교롭게도 함께 녹음한 서포터즈는 당시 안양 LG...[13] 부천 SK의 응원곡 '나의 부천 영원히'에서 따온 것이다.[14] 빌리지 피플Go West 번안곡[15] 국가대표 야구팀의 인기도 상당하지만 국가대표 축구팀에 비할 바는 아니며, 야구는 국가대표 경기보다 오히려 한국시리즈 등의 리그 경기가 인기가 많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대표 성격상 국민 대다수는 팬덤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기에 그다지 대립이 크지 않다.[16] 다만, 1986년 월드컵과 1994년 월드컵때는 운이 안 따라주었던 것도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승점자판기는 아니기는 했다.[17] 이 중에 1970년과 1978년은 공동 우승. 한편 라이벌 일본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만 금메달을 획득했다. U23 게임이 된 이후 모든 팀들이 그렇듯 일본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성인대회였을 때는 그렇지만도 않았다.[18] 물론 2002년으로부터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으나 아시아 대회 우승이 없던 가운데 툭 튀어나온 대회 하나이기 때문에 애매하다면 애매하고 할 수 있다. 아시안게임도 성인대회였던 시절인데 88년 우승 이후 U23 대회로 바뀐 2014년에야 우승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도 아시안컵도 2개의 대회 우승이 없이 2002년 4강만으로 확고한 1인자였던 시기라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 애매하다.[19] 여담으로, 첫 번째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네덜란드령 동인도(現 인도네시아)로, 독립국으로서는 우리가 최초이다. 1938년에는 예선 그룹에 동인도와 일본만 포함되었지만 일본이 기권해 동인도가 자동으로 본선에 진출한 관계로, 지역예선 경기를 치러 통과한 것도 역시 대한민국이 처음이다.[20] 한국 대표팀만 그런게 아니라 토너먼트 대회의 조별리그에서 간신히 올라간 모든 팀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축구 강국에서도 흔한 케이스다.[21] 일본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최종 예선 조별리그 1위였다.[22] 도하의 기적[23] 대한민국이 다 득점으로 승리한 경기는 2002년 대 폴란드 전 2대 0, 2006년 대 토고전의 2:1, 2010년 대회의 대 그리스 전의 2대 0,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2 대 0이다.[24] 2002 한일 월드컵 조별예선 3차전 포르투갈전 1골, 2006 독일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프랑스전 1골,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예선 1차전 그리스전 1골로 3개 대회 연속 골 기록이다.[25] 어려운 이유는 8년 이상 국대 실력을 갖추고 골도 3~4경기만에 다른 나라 톱클래스 선수를 상대로 골을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26] 이 기록이 과거형인 이유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일본의 혼다 케이스케가 세네갈전 골을 넣어 2010-2014-2018 월드컵 본선 3연속 득점 타이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27] 1997년 도쿄 대첩 시절 브라질 출신 귀화선수 로페즈 와그너가 있었고,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으로 뛰었던 알렉스 산토스 등이 있었다.[28] 일본 대표 선수는 어머니가 이탈리아계 브라질인인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어머니가 독일인인 사카이 고토쿠, 미국인 아버지를 둔 슈미트 다니엘 등이 있다.[29] 부모가 모두 네덜란드 본토인 출신이지만, 집안 전체가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에서만 자란 마이크 하프나같은 케이스도 있다. 종목은 다르지만 우리나라 육상 기대주로 손꼽히는 비웨사 다니엘 가사마와 같은 케이스다.[30] 2000년대 초반 전남의 브라질 용병 수비수. 김태영, 강철로 이루어진 마태철 3백은 당시 알아주는 빗장수비였다.[31] 그 한 경기가 바로 대한민국과의 1997년 평가전이었다.[32] 당시 기성용이 주어를 밝히지 않았지만 매우 뻔한 욕설 섞인 반대의사를 SNS를 통해서 밝히며 아주 강력한 반발을 보이기도 했다.[33] 특별귀화가 불발되어도 일반귀화를 할 것이라 밝히며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34] 부친이 영국인이다. 홍명보 대타로 활약했는데, 의외로 프랑스 월드컵 미남 선수 베스트11에 뽑혔고, 실제로도 잘생겼다. 선수 생활 은퇴 후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MBC 드라마에도 출연한 바 있다.[35] 부친이 주한미군 상사였다고 한다. 수원 삼성에 2006년까지 있었고, 2012년까지 K3리그에서 활동했다.[36] 어머니가 러시아인인 러시아계 한국인이다.[37] 한국명 최민수. 2017, 2019 U-20 대표로 선발된 바 있으며 독일인 아버지를 둔 독일계 한국인이다.[38] 아버지가 모로코인이다.[39] 나이지리아계 아버지를 두었다. 아버지는 현재 한국인으로 귀화한 상태.[40] 이 선수는 좀 복잡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는 인도네시아-네덜란드 혼혈이시고, 아버지는 3살때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입양온 한국계 네덜란드인이다. 따라서 혈통은 한국계 혈통이 맞지만, 법적으로 네덜란드 단일국적인 상태로, 선수가 한국인이 되기 위해선 일반귀화를 할 수 밖에 없다. 다만 2021년까지도 SNS 게시물로 한국 귀화 의지가 드러난 게시물을 여전히 올리고 있는 등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41] 아버지가 스웨덴인,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둘 다 칼마크 FF 1군 선수였다. 스웨덴 U-17 국가대표로써 2013년 FIFA U-17 월드컵에 스웨덴 대표로 형제가 모두 출전해 스웨덴의 3위 입상을 이끌었다. 그러나 동생은 2018년 인대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했고, 형 또한 같은 해 칼마르 FF를 끝으로 프로 생활을 접었다.[42] 이 선수는 어머니의 국적인 대한민국, 아버지의 국적인 나이지리아, 태어나고 자란 스페인 등 3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3개국 국가대표 중 한 국가를 선택할 수 있다.[43] 당시에 허정무 감독도 그를 살펴보긴 했지만 딱히 특출나진 못했다고 한다. K리그 등록명은 미국 이름을 그대로 발음한 제프 유였다고 한다.[44] 당시 공격진에 박주영, 심우연, 신영록, 김승용 등이 있고 경쟁이 치열해서 일본 대표팀 쪽으로 돌아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45] 혼혈 선수의 경우 앞서 언급되었던 장대일이나 김준도 있고, 강수일이 대표팀 근처까지 갔을 때 환영하던 여론이 대다수였던 것도 있으니 한국에서 자랐거나 한국인으로서의 의식이 좀 있는 경우라면 한국팬들도 많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46]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특별귀화를 해주지 않는다.[47] 아직 귀화자는 병역의무가 없다.[48]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 대표팀 평균신장은 183.8cm로 본선 참가국 32개국중 5위였다. 물론 엄청난 장신인 김신욱이범영의 덕을 봤다고는 하나, 이 둘을 제외하고 평균을 구하더라도 182.5cm, 전체 13위이다. 웬만해서 한국을 상대로 높이로 승부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역대급 졸전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는 2014 브라질 월드컵 홍명보호조차도 헤더 실점은 없었을 정도.[49] 비슷한 이유로 한국 선수들은 양발 활용 능력이 대체로 좋은 편이다. 기술적인 부분이 떨어지는 대신 후천적으로 양발을 만들어 선택지를 늘리는 방법을 과거 학원 축구계에서 택했기 때문이다.[50] 물론 홍명보는 백3의 스위퍼 포지션, 기성용은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대체 불가의 플레이메이커로 장기간 활약해서 그렇지, 수비 라인을 높게 올린 팀을 상대로 속공을 전개할 때 제법 괜찮은 전진 패스를 선보인 선수들은 종종 있었다. 2002년 프랑스와의 평가전과 2018년 월드컵 본선 독일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한 김남일, 주세종이 그 예이다.[51] 현 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는 짧은 패스를 통해 이뤄지는 후방 빌드업을 중요시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상대의 압박을 풀어나가며 공격을 준비하는 단계로, 공격 전체를 티키타카로 전개하진 않는다. 대신 센터백 위치까지 내려간 수비형 미드필더의 롱패스로 공격 전개를 시작하며 양측 풀백들이 활발한 오버래핑과 크로스로 공격을 지원한다는 점, 상대가 라인을 높게 올릴 경우 롱패스로 수비 뒷 공간을 빠르게 공략한다는 점에서 기존 팀컬러를 부분적으로 계승하는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멕시코처럼 팀 단위의 수준 높은 압박을 구사할 경우 후방 빌드업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 상대가 빈틈없는 텐백으로 페널티 박스 내외에서 공간 자체를 내주지 않을 경우 공격이 무력화된다는 점, 빈약한 선수풀로 좌우측 풀백과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확실한 주전이 없다는 점, 플랜 B의 부재 등이 꾸준히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벤투호 항목 참조.[52] 90년 황보관, 94년 홍명보, 98년 하석주, 02년 이을용, 06년 이천수, 10년 박주영[53] 축구 전술의 변화로 과거에는 측면 돌파와 크로스가 장점인 정발 윙어, 현대에는 주로 중앙 침투와 슈팅이 장점인 역발 윙어로 교육받는다. 하지만 발 빠르고 킥 좋은 유소년 에이스 선수들이 윙어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패스 축구를 추구하는 일본이 공격 지원에 강점을 보이는 미드필더와 풀백을 꾸준히 배출하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54] 예외가 있다면 양궁, 농구, 쇼트트랙, e스포츠 정도. 이들은 일본의 주력 종목이 아니고 중국이 잘 하는 편이라 최대 라이벌이 중국이다.[55] 가마모토 쿠니시게가 뛰던 시절에는 한 수 아래 정도로 생각했다.[56] 일제강점기 시절은 뭐 말할 필요도 없다.[57] 총력전에서 2번 연속으로 경기력과 결과를 가져간 이후 내부적으로는 한국을 뛰어넘었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안방에서 4-1로 대패하고, 런던 올림픽 3,4위 전에서 패한 전적이 있는 등 1군 드립을 치기엔 모양새가 그리 좋진 않다. 그리고 과거보다 유럽, 남미의 강팀들과의 A매치 협상도 쉬워진 터라 굳이 양측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는 한일전을 성사시킬 필요도 많이 사그라들었다.[58] 1948년 5월.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대표팀 감독.[59] 대한민국 최초 올림픽 진출 국가대표팀 감독. 1948년 런던 올림픽 국가대표팀 감독. 당시 조선야구협회 시찰단 자격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는데,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박정휘가 건강상의 이유로 런던 출국 3일전 사임하자 엉겹결에 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대회 첫 8강 진출 감독이자 대한민국 대표팀 역사상 처음으로 FIFA 공인대회 한경기 5득점을 만들어낸 감독이다. (이 기록은 이후 2016 리우 올림픽 조별예선에서 피지를 8:0으로 꺽으며 갱신 되었다.[60] 참고로 고교야구에서 유명한 이영민 타격상이 바로 이 감독의 이름을 따온 상이다.[61] 대한민국 최초의 월드컵 진출 국가대표팀 감독.[62] 대한민국 최초의 FIFA 월드컵 첫 승점을 획득하고 FIFA 월드컵 첫 골 기록을 얻은 감독[63] 1994년 7월 24일 ~ 1995년 2월 26일. 러시아 국적 감독.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국가대표팀 감독.[64] 차범근이 국가대표팀을 맡기 바로 직전의 국가대표팀 감독.[65] 대회 중 경질되었다.[66] 조별 리그 3경기 중 남은 1경기의 감독 대행을 수행했다.[67] 임기 중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대표팀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 감독직을 겸임했다.[68]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후 차기 대표팀 수석 코치로 임명되어 한일 정기전의 감독 대행을 수행했다.[69] 핌 베어벡이 수석코치였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는데 이 때의 수석코치는 박항서였다. 물론 핌 베어벡 또한 히딩크를 보좌하면서 많은 역할을 했지만 이는 히딩크가 데려온 코치들을 대표하는 정도였고 실제 히딩크와 선수들 중간에서 이어주면서 히딩크를 전반적으로 보좌한 건 박항서이다. 히딩크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울 경우에는 박항서가 감독대행 역할을 했고 결정적으로 2002 월드컵 당시 D조 포르투갈-미국 경기를 전력 분석차 관전하러 갈 때는 통역사를 제외하면 박항서 혼자 동행했었다. 또한 히딩크호의 8강전 상대가 될지도 모를 스페인-아일랜드의 16강전 전력 분석을 위해 히딩크가 직접 관전하러 갔을 때는 박항서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을 대비한 훈련을 지휘했었다.[70] 오만 쇼크[71] 중국 쇼크[72] 레바논 쇼크[73] 신임 감독 선임 전까지 코치로서 지휘[74] 핌 베어벡 감독 이후 7년만에 다시 외국인 감독 선임.[75] 12월 19일 일본전 기준.[76] 1930, 1950[77] 1958, 1962, 1970, 1994, 2002[78] 2010[79] 1954, 1974, 1990, 2014[80] 1998, 2018[81] 1978, 1986[82] 1934, 1938, 1982, 2006[83]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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