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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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창단
법인 설립
팀명 변경
법인명
㈜두산베어스
상장유무
기업규모
구단 사무실
구단명
OB 베어스 (1982~1998)
두산 베어스 (1999~ )
모기업
연고지
충청도[3] (1982~1984)
파일:서울특별시 휘장.svg 서울특별시 (1985~)
구단주
구단주 대행
전풍
사장
단장
감독
주장
영구결번
홈구장
마스코트
파일:attachment/bears_mascot.png
킷 스폰서
워드 마크
파일:external/oi65.tinypic.com/osvk05.png
홈페이지
★★★★★★
최종 우승 (6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82.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OB1995.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01.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2015.png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fkcw24qrh1sqk8veo5_r1_540.png
파일:2019두산우승.png
페넌트레이스 우승 (4회)[10]
[ 펼치기 · 접기 ]
단일 리그
전, 후기 리그
1982년 전기, 1986년 후기
양대 리그
1999년 드림
포스트시즌 진출 (23회)
프랜차이즈 팀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700
1982년 80경기 56승 24패
최저 승률
.304
1990년 120경기 35승 80패 5무
최다 승
93승
2016년 144경기 93승 50패 1무
2018년 144경기 93승 51패
최다 패
80패
1990년 120경기 35승 80패 5무
최다 관중
1,291,703명
2012년[11]
최소 관중
137,385명
1984년[12][코로나19]
최고 FA 계약
7년 85억원
2021년 허경민

1. 개요
1.1. 상징색 일람
2. 상세3. 팀 컬러4. 역사
4.1. 연표
4.1.1. OB 베어스 시절4.1.2. 김인식 체제(1999년 ~ 2003년)4.1.3. 김경문 체제(2004년 ~ 2011년)4.1.4. 김진욱 체제(2012년 ~ 2013년)4.1.5. 송일수 체제(2014년)4.1.6. 김태형 체제(2015년 ~ 현재)
5. 선수단 및 등번호
5.1. 2021 시즌 배번 현황5.2. 영구결번
6. 유니폼7. 마스코트8. 홈 구장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9. 2군 구장 - 이천 베어스 파크10. 관련 기록
10.1. 역대 감독10.2. 역대 주장10.3. 역대 성적
10.3.1. 역대 개막전 성적10.3.2. 역대 개인 성적(통산)10.3.3. 역대 개인 성적(단일 시즌)10.3.4. 타이틀 홀더
10.3.4.1. 타자10.3.4.2. 투수
10.4. 역대 신인 드래프트
10.4.1. 지역 연고 학교10.4.2. 역대 2차 드래프트
10.5. 역대 외국인 선수10.6.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11. 응원단12. 응원가13. 응원문화14. 팬
14.1. 여성 팬덤14.2. 시구14.3. 먹산 베어스14.4. 네임드 베어스 팬
15. 라이벌전
15.1. 잠실 더비15.2. 싸대기 매치
16. BearSpotv(베어스포티비)17. 두런두런18. 스폰서 및 제휴사19. 두산 전광판 영상
19.1. 선발 라인업 및 플레이 볼
20. 사건 사고21. 관련 커뮤니티22. 관련 문서23. 기타2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TEAM DOOSAN! 2021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으로 대한민국 최초로 창단된 프로야구단[초대]. 연고지는 서울특별시. 홈구장은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LG 트윈스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을 연고지로 삼는 3개의 프로야구단[15] 중 한팀이며, 한국 프로야구 원년 우승팀이기도 하다.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등과 마찬가지로 KBO 리그 원년에 창단된 프로야구단 중 하나로 1982년 두산 OB BEARS 프로 야구단이 창단 당시의 구단명이었다.[16]
창단 당시 연고지는 대전시를 포함한 충청남북도 였으나 3년 뒤 서울로 연고지를 변경한다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17] 3년 후 서울로 연고지를 이전했으며 이전 직후인 1985년엔 서울 동대문야구장을 주로 홈 구장으로 사용하다가 1986년부터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18]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스코트는 팀 이름에서 보듯 이다.

역대 우승년도는 1982년, 1995년, 2001년, 2015년, 2016년, 2019년으로 총 6회이며 준우승은 2000년, 2005년, 2007년, 2008년, 2013년, 2017년, 2018년, 2020년으로 총 8회. 삼성 라이온즈 다음으로 준우승 횟수가 많은 구단이다.[19]

1.1. 상징색 일람[편집]

팀의 메인 상징색은 남색과 흰색이며 보조 컬러로 빨간색을 사용한다.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보조 컬러로 빨간색 대신 노란색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2010년 팀 엠블럼을 변경하면서 원년 OB 베어스 시절 상징과도 같은 짙은 남색과 빨강색의 조합으로 돌아왔다.[20]

TV 매체나 스카우팅 리포트 등의 서적에서는 남색을 사용하며 응원막대, 풍선, 깃발 등 응원도구는 모두 흰색을 사용한다.[21] 구체적인 색상정보는 다음과 같다.
두산 베어스의 상징색 일람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의 상징색 일람
상징색
헥스 코드
CMYK값
RGB값
#ffffff
C0 M0 Y0 K0
R255 G255 B255
#131230
C93 M90 Y48 K62
R19 G18 B48
#ed1c24
C0 M100 Y100 K0
R237 G28 B36
#c7c6c6
C22 M17 Y18 K0
R199 G198 B198
#839484
C51 M42 Y42 K6
R131 G148 B132
#b2b2b2
C0 M0 Y0 K30
R178 G178 B178
#000000
C0 M0 Y0 K100
R0 G0 B0

2. 상세[편집]

3. 팀 컬러[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두산 베어스/팀 컬러 문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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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엠블럼
파일:attachment/OB_Bears.png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png
두산 베어스 역대 심볼 마크
파일:OB 워드마크_small.png
파일:두산 워드마크(00~09).png
파일:external/s20.postimg.org/doosanbears_icon.png
1982 ~ 1998
1999 ~ 2009
2010 ~

4.1. 연표[편집]

4.1.1. OB 베어스 시절[편집]

OB 베어스 문서 참고.

4.1.2. 김인식 체제(1999년 ~ 2003년)[편집]

김인식 감독 체제(1995 ~ 1999 ~ 2003)
새로워졌습니다-두산 베어스
승리의 두산
감동의 베어스
승리의 두산 베어스!
팬과 함께 V3!
우리 두산! 멋진 베어스!
감동의 V4!
승리-감동의 두산 베어스!
팬과 함께 V4

1999년 1월 5일 구단 명칭을 OB 베어스에서 두산 베어스로 바꾼다. 그동안 두산 구단은 1982년 원년부터 두산 프로야구단 OB 베어스란 정식 명칭으로[22] 리그에 참가했었지만 두산그룹의 인지도보다 소비재인 맥주를 취급하는 그룹 자회사 OB맥주의 인지도가 높았기 때문에 OB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었다.[23] 하지만 IMF 사태 이후 두산그룹은 중공업 위주의 기업구조 개편을 시도했고 그에 따라 소비재 계열사의 매각을 시도했다. 두산은 OB맥주, 버거킹 등의 매각을 추진했고 이때부터 두산이란 이름을 전면으로 내세우게 되었다.[24] 물론 원년 이후 무려 17년간 쓰면서 귀와 입에 익어온 OB라는 정든 이름 대신 두산이라는 낯선 명칭을 새로 써야 했기에 팬들의 반발도 꽤 있었다. 팀명을 바꾸면서 반달가슴곰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유니폼과 로고를[25] 새롭게 공개했다.

1999년 시즌, 지난 시즌 엄청난 데뷔를 했었던 외국인 선수 타이론 우즈는 건재했고 여기에 더하여 3할 20홈런의 김동주, 3할3푼5리의 타율에 31홈런을 친 심정수(일명 우동수)의 활약으로 마지막날 롯데와의 단두대매치를 이기고 드림리그/전체 승률 1위를 차지했다. 그에 따라 매직리그 2위팀인 한화 이글스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지만 무기력하게 4연패로 탈락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감했다. 사실 이 시즌은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하긴 했으나 최하위 쌍방울에게 무려 16승 1무 1패의 성적을 거뒀고, 하위권인 LG에게도 13승 5패[26]를 하는 등 하위권에게는 굉장히 강했지만 상위권인 삼성과 롯데에게는 상대 전적이 열세였다. 그에 따라 포스트 시즌에 대한 우려가 있었는데 이러한 우려는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게 4연패를 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파일:external/www.donga.com/200410140265.jpg
V3
2000년 시즌, 우동수 트리오는 99홈런 308타점을 기록했고 마무리 진필중이 구원왕 2연패에 성공했으나 현대의 91승에 밀려 드림리그 성적은 2위. 전반기에는 10연승을 거두는 등 현대와 나란히 6할대 승률로 잘 나갔지만 선발진의 한계로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격차가 벌어지고 말았다.[27][28] 삼성에 잠시 2위자리를 빼앗겨 매직리그 2위 팀과의 준플레이오프를 치를 위기였으나 9월초 8연승으로 반등하여 플레이오프 직행에는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매직리그 1위 옆집 양반 LG에게 4승 2패로 승리하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고, 한국 시리즈에서는 1~3차전을 통틀어 3점 밖에 내지 못했으나 4~6차전을 모두 쓸어 담는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한국시리즈 리버스 스윕이 일어날 뻔 했으나 결국 7차전에서 톰 퀸란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패배.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 당시 두산의 준우승에 대한 반향은 상당해서 많은 야구팬들이 베어스의 플레이를 일컬어 미라클 두산으로 불리웠고, 팀컬러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29]

2001년 시즌, 심정수선수협 사태로 심재학과 트레이드 되었으나 심재학은 그해 3할4푼4리에 24홈런 88타점, WAR로 봐도 약물의 힘을 빌린 펠릭스 호세 바로 다음인 2위로 대폭발하면서 심정수의 빈틈을 메운다. 페넌트레이스 3위를 기록했지만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한화 이글스를 2승으로 가볍게 제치면서 1999년의 한을 풀어버린 데 이어 플레이오프에서 전년도 우승컵을 내준 현대 유니콘스원년 상대인 삼성 라이온즈를 연달아 꺾고 팀의 세번째 우승을 이룩한다. 이것은 92년 롯데 자이언츠와 함께 시즌 3위 팀이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를 전부 승리하고 우승한 두번째 사례이며 .508[30]의 승률은 역대 한국시리즈 우승팀 가운데 최저 승률 기록이기도 하다.[31] 덤으로 10승 이상의 투수가 한 명도 없는 팀의 유일한 우승이기도 하다. 그 해 두산의 최다승 투수는 마무리투수인 진필중의 9승. 이 해 극적인 우승으로 김인식 감독이 한때 두산의 종신 감독 보장설까지 돌기도 했다.

2002 시즌, 전년도와 달리 부진했던 외인 빅터 콜이 PS의 활약을 바탕으로 재계약을 했고 정규시즌에서도 활약하였다. 그리고 2년간 개점 휴업한 박명환도 다시 돌아와 에이스 역할을 해 주었다. 그 덕에 전년도의 막장 선발진은 온데간데 없었고 10승 투수를 세 명 배출하여 전반기 2위로 순항 중이었으나 전년도 주포였던 우즈와 심재학이 영 시원찮은 성적을 거뒀고, 월드컵 이 후 팀도 후반기 9연패를 포함해 추락하여 결국 LG에 정규시즌 4위를 내주고 5위로 추락한다. 이게 좀 싈드를 치자면 우즈가 속한 당시에 스트라이크 존 자체가 너무 심해 우즈가 한동안 경기 중에 성격이 양아치가 되어 꽤나 좋지 않는 태업 플레이를 일삼았다.

2003년 시즌, 구단이 자금난에 시달려서 외국인 선수 타이론 우즈마저 구단의 섭섭한 대우에 계약을 거부하고 일본에 진출하였고, 외인 원투펀치도 팀을 떠나고 마무리 진필중마저 KIA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32] 게다가 그나마 있던 홍성흔 등의 주전선수들도 부상으로 초반에 팀을 이탈하자 개막 8연패를 포함, 1승 12패를 하였고 시즌 극초반에 사장과 단장이 전부 교체되고 팬들은 ‘성적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플랜카드를 걸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 해 첫 50경기에서 그 백골퍼의 롯데한테도 밀려서 무려 11승 39패라는 충격과 공포성적을 거둔다.[33] 후반기에 그나마 살아나서 정상적인 승률로 시즌을 마치기는 했지만 전반기에 워낙 까먹어서 7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당시 지도자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선동열에 대한 각 구단의 영입 전쟁에 말려들어 김인식 감독은 9년간 이끈 두산 베어스 감독을 사임했다. 하지만 두산은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는데 실패했고[34] 내부 승격으로 배터리 코치였던 김경문을 새 감독으로 맞이했다.[35]

4.1.3. 김경문 체제(2004년 ~ 2011년)[편집]

김경문 감독 체제(2004 ~ 2011 시즌 중)
투혼!
승리!
감동!
아자!
허슬두!
파일:2006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스피두!
파워두!
허슬두!
파일:2008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파일:2009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파일:2010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파일:2011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2003년 시즌 7위에 그친 뒤, 무려 9년 동안 지휘봉을 잡았던 김인식 감독이 물러났고, 두산은 원래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받던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영입에 실패하면서 그 대안으로 1군 배터리코치였던 김경문을 감독으로 승격시켰다.[36] 김경문의 경우 딱히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 코치였는데다가 거기에 정수근의 이적 등으로 인해 2004년 시즌 시작 전만 해도 약체로 분류받았으나 이런 평가를 뒤엎고 두산은 정규 시즌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 KIA에 2연승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선동열의 삼성에게 1승 뒤 3패연로 탈락한다. 2005년에는 정규 시즌 2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서 한화에 3연승하여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만 또 선동열의 삼성에게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문다.

2006년 시즌에는 간판 타자 김동주가 시즌 시작 직전 WBC에 참가했다가 어깨 부상을 입어 8월 중순에야 1군에 복귀했고,[37] 그나마 투수진에서 외국인 원투펀치 다니엘 리오스맷 랜들, 마무리 정재훈이 활약했으나 팀은 시즌 막판까지 KIA 타이거즈와 4위 싸움을 벌이다가 KIA가 후반기에 신용운-한기주를 엄청나게 굴리는, 이른바 '신한카드 카드깡' 을 마구 긁어서 4위를 기록, 두산은 5위로 밀려나버리면서 결국 우승했던 2001년보다 높은 페넌트레이스 승률(.512)을 기록하고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72680_STD.jpg
2008년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 후
2007년 시즌 두산은 22승을 거둔 다니엘 리오스와 12승을 거둔 맷 랜들의 원투펀치의 활약으로 정규 시즌 2위로 한화와의 플레이오프를 3연승으로 가볍게 이기고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SK 와이번스에게 2연승 뒤 4연패로 준우승했다.

2008년 시즌 두산은 일본으로 리오스를 떠나 보내고 선발진에 약점을 드러냈고 정규 시즌 2위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1승 뒤 4연패로 2년 연속 준우승에 머물면서, 한때 콩산 베어스라고 불리기도 했다.

김경문의 시대에 두산은 가을야구는 단골로 나가는 꾸준함을 보여줬지만[38], 정작 가을야구에서 우승은 단 한번도 하지 못했고, 그 기간 동안 자행된 KILL라인의 혹사는 팀에 큰 후유증을 남겨서, 김경문이 런한지 5년이 지난 2016년 시점에도 두산의 불펜은 리그에서 손에 꼽히게 약한 편이다. 거기다가 김경문은 마지막에 팀의 뒤통수를 치고 NC로 이적했기에, 그가 두산에서 쌓은 공적 또한 같이 버리고 떠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총평하자면, 과거 롤러코스터 팀의 이미지가 강했던 팀을 꾸준하게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팀으로 쇄신하는데 성공했지만 끝내 우승은 이뤄내지 못했고, 자신의 혹사 후유증이 리바운딩 되기 전에 팀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감독이었다. 그 혹사 후유증은 후임 김진욱 감독이 고스란히 떠안아서 선발진 정상화까진 성공했지만, 불펜진은 김진욱, 송일수, 김태형 3감독을 거치는 동안에도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상태이다. 다른 팀들이라면 불펜의 주축이 되어줘야 할 30대 초반의 불펜 에이스급 투수가 두산에서는 김경문이 다 갈아버려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불펜진 리빌딩이 상당히 더디게 오래 걸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 기간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수도권 인기 구단으로 급성장했고 전체적인 시장 규모도 상당히 커졌다. 관중수에서도 앞서는 등 두 팀의 상황이 슬슬 역전되는 분위기. 이제 두 팀의 인기는 적어도 동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인기가 많아진 편이다. 이웃 팀인 LG가 비밀번호를 찍을 당시에 두산은 꾸준히 상위권을 유지하며 강팀으로 도약함에 따라 팬의 신규 유입이 LG보다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특히 여성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4.1.4. 김진욱 체제(2012년 ~ 2013년)[편집]

김진욱 감독 체제(2012 ~ 2013)
파일:2012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파일:2013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김진욱 호는 출범부터 산적한 과제가 한가득이었는데,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혹사 끝에 완전히 해체되버린 KILL 라인을 대신할 불펜진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김경문은 재임 기간 내내 단 한명의 토종 선발 투수도 키워내지 못했기에, 김진욱은 불펜진, 선발진이 모두 답이 없는 최악의 투수진을 받아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파일:혼열일체두산.png
2013년 포스트시즌 하얀 물결 응원의 순간[39]
2012년 시즌, 일단 불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용병 투수 하나를 마무리 투수인 스캇 프록터로 영입해서 뒷문을 메웠고, 그 앞에 김경문은 선발로 정착시키려 했지만 끝내 실패했던 홍상삼을 기용해서 1점대 철벽 셋업맨으로 만들어내는 성공을 거두었다. 선발진은 재계약한 용병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와, 11년 시점까지는 토종 에이스였지만 12년부터 노쇠화가 시작된 김선우를 주축으로, 역시 김경문은 끝내 키워내지 못했던 노경은, 김승회를 선발 투수로 투입, 마찬가지로 김경문이 마무리로 쓰던 이용찬을 선발 투수로 투입해서 10승 투수로 만들어내면서, 두산도 5선발 체제가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에 힘입었는지 2012년은 두산 역대 최다관중 기록을 갈아치운 해로 기록되었다.[40] 그러나 정반대로 이 해 두산의 타격력이 역대 최악을 찍으면서, 두점 베어스라는 달갑지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고 이는 괜찮은 투수진을 가지고도 3위에 그치는 가장 큰 원인이 됐다.[41] 2012 시즌을 앞두고 팬들이 만들어준 영상이 있다. 두산 베어스 - 기적을 믿으시나요?[42]

2013년 시즌에는 김승회가 FA 홍성흔의 보상선수로 롯데로 가게 되었지만, 그 자리에 갑툭튀한 유희관[43]이 좌완 선발 자리를 꿰차면서 또하나의 솔리드한 선발을 가지게 되었다. 이 니퍼트-유희관 라인은 13년부터 17년까지 두산의 선발 라인을 떠받치는 기둥이 되어주었다. 타격에서는 경찰청에서 제대한 민병헌이 각성하고 기존 타자들이 작년의 부진을 떨처내며 1년만에 환골탈태, 잠실을 쓰면서도 팀 타율과 OPS 1위를 찍었다.[44] 이를 바탕으로 시즌 내내 상위권을 마크했으나, 스캇 프록터이용찬이 빠진 투수진, 특히 불펜이 전체적으로 헐거워져 압도적인 타격 성적에도 불구하고 치고나가지 못했고, 게다가 이 해는 4위까지 상위권 경쟁이 역대급으로 치열했기에 최종전에서 분패하면서 4위로 시즌을 마치며 작년과 마찬가지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넥센을 상대로 또 한번 리버스 스윕을 보여주며 준플레이오프의 진출 LG를 3승 1패로 꺾으며 5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3승 1패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도 내리 3연패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게 되었다. 선수들의 누적된 피로와 프록터가 빠져나간 불펜진은 두산의 아킬레스건이 되었고 준우승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후 김진욱 감독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경질을 당하게 된다.

4.1.5. 송일수 체제(2014년)[편집]

송일수 감독 체제(2014)
파일:2014 두산 캐치프레이즈.jpg

김진욱 감독이 전격적으로 경질되면서 2군 감독이자 1군 감독 경험이 전혀 없었던 송일수 감독이 1군 감독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이는 팀이 프런트 야구와 일본식 세밀한 야구를 지향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고 결과적으로 이도저도 아닌 최악의 한수가 되고 말았다.
파일:2014 개막전 두산.jpg
2014년 개막전 칸투의 역전 스리런 후
2014년 시즌에 앞서 손시헌, 이종욱, 최준석이 FA로 팀을 떠났고 미래 4번타자 역할을 수행 할 것으로 기대됐던 윤석민도 넥센으로 트레이드 됐다. 김선우와 임재철은 LG로 떠났고 이혜천은 NC로 떠났다. 대대적인 선수단 정리와 바뀐 감독, 많은 걱정 속에 시즌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이번 시즌 초반 새롭게 영입한 타자 용병 칸투와 김현수, 홍성흔 등의 중심 타선이 시범 경기부터 폭발하면서 5월까지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러나 노경은[45] 등 선발진이 무너지고 그에 따라 오현택, 윤명준 등 불펜이 혹사당하기 시작하며 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급해진 초보 감독은 주자가 출루하기만 하면 번트를 대며 스스로 선수들의 타격감을 망쳐놨고 시즌 초 폭발한 타격감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타선은 1점 짜내기에 급급했고 망가진 선발진과 혹사당한 불펜진은 짜내고 짜내서 얻어낸 1점을 지킬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은 6위까지 추락해버렸다. 상대적으로 약한 마운드를 강력한 타선과 빠른 발, 견고한 수비로 지켰던 두산의 팀 컬러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흔히 일수강점기로 불리는데, 강점기라는 문구대로 두산 베어스와 두산팬에게 2014 시즌은 없는 시즌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잠실 라이벌 LG보다 최종 순위가 뒤쳐졌는데 이는 무려 11년 만의 일이었다.[46]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송일수 감독은 취임 1년 만에 전격적으로 경질되었다. 심지어 송일수 감독은 경질 당일날까지 마무리캠프를 구상중이었다고 하여, 전년도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을 이지경으로 망쳐놓고 계속 연임할 생각이었냐는 뻔뻔함의 극치를 보여주었고, 감독체제 바뀌고 두산 베어스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자 그의 행동이 다시한번 비판을 받고 있다.

4.1.6. 김태형 체제(2015년 ~ 현재)[편집]


김진욱 감독 선임 당시 감독 후보 하마평에 올랐던 전 두산 배터리 코치이자 SK 배터리 코치인 김태형 코치가 송일수 감독의 후임으로 베어스 제10대 감독으로 선임 되었다. 김태형 감독은 팀 컬러를 되살리겠다고 선언했고 이기는 야구가 베어스의 야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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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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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6
2015년 시즌 송일수 감독 이후 두산 베어스가 다시 예전의 전력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보았으나, 불과 한 시즌만에 이전보다 한층 발전된 전력과 팀 컬러를 보여주며 14년만에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였다. 외국인 선수 니퍼트, 마야, 루츠 모두 좋지 못했는데 니퍼트는 부상으로 시즌 반 이상을 못나왔으며 노히트 노런을 보여준 마야는 대기록 이후 부진 끝에 결국 스와잭으로 교체되었으며, 스와잭 역시 인상적인 모습은 아니었고 포스트시즌에선 태업까지 했다. 루츠는 최악의 타격으로 시즌 1호로 퇴출당했고 대체선수 로메로도 그냥 저냥 애매한 활약을 펼쳤다. 결과적으로 외국인 선수 없이 시즌을 치른것과 마찬가지였다. 국내 선수도 비슷했는데 시즌 초 낙점된 마무리 윤명준은 불안했고 홍성흔의 타격감은 최악이었으며 노경은은 부상과 개인사로 좋지 못했다. 하지만 새로 영입한 장원준은 18승을 거둔 유희관과 함께 투수진의 주축이 되었고, 포스트 시즌에 부활한 니퍼트의 완벽투, 새 마무리 이현승의 폭발, 가을남자 허경민의 활약, 새로 취임한 김태형 감독의 뚝심으로 3위부터 치고 올라왔다. 이어서 팀 상태가 말이 아니던 정규시즌 1위 삼성을 격파하며 업셋 우승, 14년 동안 염원했던 V4 달성에 성공했다.

2016년 시즌은 가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시즌으로 불릴 만한 완벽한 시즌이었다. 볼티모어로 떠난 김현수의 공백을 박건우김재환이 완벽하게 매웠고 15시즌 후반기부터 조짐이 보이던 오재일이 기어코 폭발했으며 민병헌, 양의지도 연이어 정상급 활약을 펼치면서 매서운 타선을 보여줬다. 니퍼트, 장원준, 보우덴, 유희관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은 판타스틱 4로 명명되어 KBO 역사상 최초로 한 구단에서 15승 투수가 4명 배출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또한 93승으로 현대가 가지고 있던 정규시즌 최다 승 기록을 경신하며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 한국시리즈에서도 NC를 상대로 4연승으로 스윕하며 21년 만의 통합 우승이자 V5를 달성했다.

2017년 시즌은 시즌 전 국가대표로 9명이나 차출되면서 시즌 출발이 좋지 못했다. 특히 대체 선수로 두산 선수들이 차출이 많이 되면서 국가대표에서도 스프링 캠프에서도 질 좋은 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여파로 인해 두산은 지난해 압도적인 성적에 못미치는 초라한 전반기 성적을 보여줬다. 시즌 초반에는 7위, 8위에 랭크됐던 날도 있었을 정도로 최악의 길을 걸어갔다. 하지만 후반기 완벽한 반전에 성공한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 두산은 후반기에만 무려 승률 7할을 기록하며 1위 KIA를 뒤쫓았다. 두산의 약진과 KIA의 부진이 겹치면서 시즌 마지막 날 순위가 결정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KIA가 최종전을 승리하면서 1위 탈환에 실패했다. 결국 플레이오프에 직행, 오재일의 홈런쇼로 NC를 꺾고 3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을 이겨놓고도 내리 4연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쳤다.[47]

2018년 시즌은 출발부터 좋았다. 한 마디로 정리하고 시작하자면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는 정규시즌이였다. 용병 전원 교체와 맞물려 걱정이 앞섰지만 그 걱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린드블럼니퍼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팀의 1선발로 우뚝 솟았으며, 파트너인 후랭코프는 데뷔 첫 해 다승왕과 승률왕을 거머쥐며 리그 최고의 외인 원투펀치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국내 토종선발중에는 장원준유희관이 예년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보직전환이 신의 한 수가 된 이용찬과 영건 이영하가 토종 선발진을 책임졌고 불펜에서도 베테랑과 영건들의 신구조화가 남달랐다. 베테랑 김승회, 이현승 그리고 영건 곽빈, 박신지, 박치국, 함덕주등이 허리를 단단히 지켜냈다. 타선 부분에서는 용병타자 2명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한 활약을 하였지만, 두산 베어스는 정규시즌 역대 최고 팀타율 0.309를 세우며 KBO 리그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타선을 구축했다. 외국인 타자 없이 7명의 3할 타자를 배출했다.[48] 정규시즌 거의 모든 타자가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KBO 한시즌 최고 팀 타율, 팀 최다 안타, 팀 최다 득점, 팀 최다 타점을 경신했다. 시종일관 정규시즌을 압도한 두산은 최다 승 타이기록인 93승을 거두며 2위 SK와 14.5경기차의 압도적인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통합 우승 달성의 기대 속에 맞이한 2018 한국시리즈. 우승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정규시즌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두산의 모습과 좀처럼 이해를 할 수 없는 감독의 선수 운용으로 SK에게 역대 최다 경기차 업셋을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박건우·김재호 등 부진+김재환 부상+집중력 부족, 두산베어스 '불운의 끝'

2019년 시즌은 2년 연속 준우승 + 양의지의 FA 이적으로 암울하게 출발하였다. 하지만 양의지의 보상선수였던 이형범이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지난 한 해 도움을 받지 못했던 외국인 타자 쪽에서도 페르난데스가 지난해 악몽을 잊게 할 만한 뛰어난 활약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3월, 4월 초중반까지는 SK와 1위 싸움을 하였다. 그러나 SK가 승승장구 했던 거와 다르게 두산은 부진하기 시작하며 1위에서 멀어져 나갔고 결국 키움에게 2위까지 빼앗기며 1위 SK와 9게임차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키움과 치열한 2위 쟁탈전으로 결국 2위를 탈환하고. SK와의 경기차를 좁히며 9월에 들어섰다. 9월에 두산은 SK와의 더블헤더를 다 잡는 등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며 부진에 빠져 있던 SK와 끝내 0게임차 공동 1위를 만들어냈지만, SK가 한화전을 싹쓸이하며[49] 결국 두산이 NC를 꺾어야 했다. 10월 1일, NC가 와일드카드를 위해 주전을 빼고 1.5군으로 플레이 할 것이다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NC는 불펜을 총동원시키며 두산을 강하게 압도하였고 8회에 2:2동점 상황에서 3득점을 하며 5:2로 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렇게 2위로 끝날것 같았으나.. 기적이 일어났다. 두산은 허경민 등의 주축타자로 끝내 5:5를 만들었고, 9회에 박세혁의 끝내기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더니, 한국시리즈에서도 1,2차전을 모두 끝내기로 승리하고 4차전에서는 5점차를 뒤집고 4연승을 거두며 V6을 이루어냈다! 그야말로 미라클 두산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2019시즌을 찬란하게 마무리지었다.

김태형 감독이 지휘하는 현재, 두산은 전력만 향상된 것이 아니라 구단과 팬 사이의 의사소통 측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다. 즉 성적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구단 역사상 최대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대세이자 필수가 된 마케팅으로써의 SNS와 유튜브 활용이 시작됐는데 가히 전 구단 중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50]특히 구단 자체 채널인 베어스포티비의 컨텐츠는 다른 구단 유튜브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다.

2020년 시즌 들어 모기업인 두산중공업의 자금난으로 인해 매각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때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카카오를 많이 거론하기도 했지만 정작 카카오는 야구단 운영에 관심이 아예 없고[51] 인수 자체를 부정하면서 단단히 못을 박았다.카카오 '베어스 인수' 야구팬들 기대…카카오 "검토 안해" 2020년 7월 9일에는 OB맥주의 인수 제안을 두산이 거절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OB맥주 측에서 즉각 '검토‧논의조차 없었다'며 반박했다. 그리고 훗날 이때 실제로 접근한 기업이 있었다는 사실이 조선일보 기사를 통해 공개되었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이 SK 와이번스 인수 전에 키움 히어로즈두산 베어스에 먼저 접근 했으며, 후속 기사로 신세계 외 2개 그룹이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두산 팬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두산베어스 매각설이 나돌자 신세계뿐만 아니라 2개의 그룹사가 더 인수를 타진했다는 사실이 27일 밝혀졌다. 2개 그룹사는 D사와 H사였다. D사는 현금 동원력에다 탄탄한 재무구조로 업계 신용도가 있었고, H사는 최근 수년 동안 활발한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해 왔다.

그러나 두산과 채권단이 결국 2023년까지 경영 정상화가 되지 않으면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을 제외하고 두산밥캣, 두산인프라코어 등과 같이 매각하겠다는 특별약정체결을 진행해 매각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위에도 전술했듯이 야구단 인수를 할 만한 기업이 현실적으로 없기에, 만일 인수 기업이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면 키움 히어로즈처럼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없어서 자체적인 야구단 운영으로 연명하는 중소기업'으로 전락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그마저도 유지하지 못한채 구단 자체가 해체되고 선수들은 해체 드래프트를 통해 9개 구단으로 뿔뿔히 흩어지는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 모기업은 두산 중공업을 제외한 모든 자산권을 매각한 상태이며, 2군 구장 베어스 파크를 매각 후 재임대하였다.

한편 2021년 1월 25일 SK 와이번스신세계그룹에 매각된다는 소식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샀으면 좋았다는 말도 있었는데, 사실 신세계는 원래 와이번스가 아닌 베어스를 사려고 했었다. 가장 큰 서울이라는 시장과 강한 구단 전력, 그리고 대형 팬층이 있어서 메리트가 있었고, 위에 나와있듯이 모기업이 자금난에 빠졌는지라 말 그대로 천재일우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박정원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절대 구단만큼은 못 판다." 태세인지라 두산그룹이 매각을 거절했다.

두산 팬들은 이 소식에 대체로 부정적인데, 모기업도 구단도 힘든 상황에 자기만족을 위해[52] 구단을 붙잡고 있는 모양새이기 때문. 같은 이유로 두산그룹 관련인들도 좋게 보지 않는다.[53] 금번 SK의 인수액이 1,352억인데 두산의 최근 성적, 인기, 연고지 등을 감안하면 그 이상의 금액이 책정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를 감수하고 인수 의사를 밝힌 기업이 나타났는데 그 기회를 걷어찬 것. 팀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몰라도 그렇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고, SK라는 굴지의 대기업도 야구판에서 발을 빼는 마당에 탄탄한 대기업이 1,000억 이상을 들여 구단을 사는 일이 앞으로 얼마나 있겠는가. 만약 두산이 더는 팀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엔 팀을 매각해야 하는데 당장 현대도 인수가 안 돼서 화려한 역사를 포기해야 했고, 두산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2021년 1분기 두산그룹두산중공업의 영업이익이 각각 403%, 558% 증가로 두산중공업은 11분기 만에 흑자전환에 성공했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5. 선수단 및 등번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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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2021 시즌 배번 현황[편집]

두산 베어스 2021 시즌 선수단 배번 현황
[ 펼치기 · 접기 ]
색상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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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40
60
80
100
120
-
볼드체 : 전년대비 등번호가 변경된 인물
기울임 : 신인선수 및 외부 영입선수
21.03.30 기준 등번호가 확인되지 않은 선수/코칭스태프
투수 : 박성환, 추종민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코칭스태프 :

5.2. 영구결번[편집]

두산 베어스 영구결번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5px-DoosanBearsRetired21Flag.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5px-DoosanBearsRetired54Flag.svg.png

베어스의 영구결번은 총 2명인데, 불사조 박철순 선수의 21번과, 1986년 사망한 포수 김영신 선수의 54번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 하고자 영구 결번된 김영신의 영구 결번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최초의 영구결번이다. 박철순을 상징하는 등번호 21번은 잠실 야구장 두산 홈 경기시 우측 외야 가운데 깃대에 계양된다.

1989년, 원년인 1982년부터 1989년까지 뛰었던 윤동균의 10번이 윤동균의 은퇴식과 함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94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영구결번이 해제되고 말았다. 윤동균 이후 처음으로 10번을 달게 된 선수는 1998년의 문희성이다.

6. 유니폼[편집]

두산 베어스 2021 시즌 유니폼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2021 시즌 유니폼
파일:2018 두산 홈 유니폼.jpg
파일:2018 두산 원정 유니폼.jpg
파일:2018 두산 올드 홈 유니폼.jpg
파일:2018 두산 올드 원정 유니폼.jpg
파일:2018 두산 스페셜 유니폼.jpg
파일:2018 두산 밀리터리.jpg
HOME
AWAY
OLD HOME
OLD AWAY
SPECIAL
MILITARY

두산 베어스 2019 시즌 유니폼 패치
파일:밥캣로고.png
파일:external/www.doosanbears.com/logo_sponcer10.gif
파일:애큐온 저축은행.png
파일:애큐온 캐피탈.png
대화제약
애큐온 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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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스코트[편집]

회색곰
반달무늬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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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 2009년
2010년 ~
원년 마스코트는 아기곰이었다. 간혹 갈색곰, 회색곰 등의 여러가지 마스코트가 많았다. OB 베어스 문서 참조.

1999년 구단 이름을 두산 베어스로 바꾸고 BI가 달라짐에 따라 마스코트도 바뀌었다. 역대 마스코트 중 웅장하고 가장 강력한 포스를 자랑했던 마스코트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전 아기곰 마스코트에 익숙해져있던 당시 팬들은 "우리 귀여운 곰돌이를 돌려주세요!"라고 격하게 항의했다고 하며, 결국 OB 시절 사용하던 회색곰과 병행 사용하기로 했다.

이후 다시 한번 BI를 바꾼 두산은 2010년 2월 11일 새 마스코트를 공개했다. 이름은 철웅이. 배번은 V. 기존의 곰에 나사로 철판을 연결한 것처럼 보이는 사이보그 로봇 곰이다. 공식 홈페이지 마스코트 소개에 의하면 철웅이는 두산의 상징 동물인 곰을 역동적으로 형상화한 로봇 캐릭터로 이는 강인함과 미래지향적인 두산의 이미지를 강조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두산 그룹의 도전과 혁신을 상징하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정상을 향해 언제나 과감한 변신을 추구하며 한 단계 앞으로 도약하는 명문구단 베어스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일단 유니폼을 입은 마스코트니 그래도 온통 퍼런색에 벌거벗은 곰보다 나은 듯. 그런데 캐릭터 디자인이 마스코트를 그리다가 실수로 오른쪽 손가락을 하나 더 그리는 바람에 육손곰이라고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찾으려 들지 말자. 금방 수정되었기 때문. 하여간 못생긴 편이라서 두산팬들 가운덴 만화가 최훈의 두산 곰 캐릭터가 차라리 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담으로 여자 버전 마스코트도 있는데 이름은 철웅희(...). 요새 안보이는 걸로 봐서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듯하다.

그런데 철웅이 인형탈 알바(?)가 적재적소에 터져나오는 깝을 시전하면서 이걸 살렸다(!) 아래와 같은 짓들을 하는데, 매일 매일 베어스포티비에 올라오는 철웅이 영상을 찾아보는 깨알같은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카메라에게 과자를 건네고 공연에 난입해서 브레이크 댄스 추는 철웅이
뜬금 드립 시전하다가 친구에게 얻어맞는 철웅이
올스타전 철웅이

외국인들의 시구, 시타가 많다 보니 어느 정도 얼굴도 알려져 있어서 IZ*ONE 시구 때는 5ch에서 마스코트인 철웅이가 징그럽다(キモい)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8. 홈 구장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편집]

파일: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1.jpg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Seoul Jamsil Baseball Stadium)
두산 베어스
위치
개장
1982년 7월 15일
크기
좌우펜스 100m
좌우중간 120m
중앙펜스 125m
펜스높이 2.6m
잔디
천연잔디[54]
좌석규모
25,553석[55]
덕아웃
1루(홈) / 3루(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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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2군 구장 - 이천 베어스 파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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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dn.mydaily.co.kr/201407011229572221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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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dn.mydaily.co.kr/201407011205322224_1.jpg
베어스 파크
(Bears Park)
두산 베어스 2군
위치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 174-3
개장
1983년 1월
잔디
천연잔디
좌석규모
400석
명칭
베어스 필드 (1983~2005)
이천 베어스 필드 (2005~2013)
베어스 파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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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관련 기록[편집]

10.1. 역대 감독[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역대 감독
초대
2대
3대
4대
5대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10070201033633169001_b.jpg
파일:external/img.kbs.co.kr/07.jpg
파일:OB 이광환 감독.jpg
파일:OB 이재우 감독.jpg
1982.01.15~1983.10.14
1983.12.24~1988.09.08
1988.09.09~1990.06.19[56]
1990.06.19~1991.08.01[57]
1991.08.02~1994.09.14[58][59]
1982.01.15~1983.10.14
1983.12.24~1988.09.08
1988.09.09~1990.06.19[60]
1990.06.19~1991.08.01[61]
1991.08.02~1994.09.14[62][63]
180전 100승 79패 1무
534전 274승 250패 10무
166전 69승 93패 4무
153전 45승 103패 5무
419전 198승 210패 11무
0.559
0.522
0.428
0.310
0.486
감독대행
6대
7대
감독대행
8대
파일:돡인식감독님.jpg
파일:두산 김경문 감독.jpg
파일:두산 김진욱 감독.jpg
최주억
1994.09.15~1994.09.27
1994.09.28~2003.10.09
2003.10.10~2011.06.13[64]
2011.06.14~2011.10.08
2011.10.09~2013.11.27
6전 3승 3패
1168전 579승 556패 33무
960전 512승 432패 16무
76전 38승 38패
261전 139승 116패 6무
0.500
0.510
0.542
0.500
0.545
9대
10대
파일:두산 송일수 감독.jpg
2013.11.27~2014.10.21
2014.10.21~(현재)
128전 59승 68패 1무
861전 514승 338패 9무
0.465
0.603
  • 두산 베어스의 역대 감독으로는 초대 김영덕부터 현 10대 감독인 김태형까지 총 10명의 감독들이 있다. 노란 글씨는 우승 감독.
  • 감독 대행 체제로 시작해서 정식 감독이 될 때까지 그 사이의 전적도 포함.
  • 이 팀의 감독 선정기준이 약간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처럼 순혈주의로 가는 편이지만 요미우리처럼 그리 빡세게 가는 편이 아니다. 유일하게 순혈주의를 깬 감독이 바로 송일수이다.

10.2. 역대 주장[편집]

10.3. 역대 성적[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성적
[ 펼치기 · 접기 ]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두산 베어스 역대 성적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
순위
팀명
경기
승률
득점
실점
타율
안타
홈런
도루
ERA
OB 베어스
1982
전기 1위
후기 2위
우승
OB
80
56
24
0
0.700
399
318
0.283
778
57
106
3.20
1983
전기 6위
후기 5위
5위
100
44
55
1
0.444
418
432
0.259
863
50
60
3.52
1984
전기 2위
후기 2위
3위
100
58
41
1
0.586
382
298
0.256
816
53
111
2.53
1985
전기 2위
후기 5위
4위
110
51
57
2
0.472
473
416
0.260
954
67
107
3.14
1986
­전기 5위
후기 1위
3위
108
56
48
4
0.538
369
341
0.249
880
38
78
2.61
1987
전기 2위
후기 4위
4위
108
55
52
1
0.514
415
405
0.261
927
30
73
3.26
1988
전기 3위
후기 5위
5위
108
54
52
2
0.509
418
447
0.258
923
44
87
3.73
1989
5위
5위
120
54
63
3
0.463
447
481
0.247
970
42
135
3.70
1990
7위
7위
120
35
80
5
0.313
404
616
0.231
901
62
83
4.72
1991
8위
8위
126
51
73
2
0.413
501
593
0.250
1054
59
136
4.21
1992
5위
5위
126
56
66
4
0.460
547
582
0.259
1096
110
96
4.22
1993
3위
3위
126
66
55
5
0.544
473
405
0.258
1066
59
86
2.89
1994
7위
7위
126
53
72
1
0.425
477
507
0.246
1013
75
81
3.46
1995
1위
우승
126
74
47
5
0.607
629
500
0.266
1154
106
121
3.42
1996
8위
8위
126
47
73
6
0.397
446
520
0.242
1008
82
78
3.69
1997
5위
5위
126
57
64
5
0.472
511
551
0.254
1070
84
143
3.84
1998
4위
4위
126
61
62
3
0.496
520
506
0.256
1080
102
123
3.60
두산 베어스
1999
드림 1위
3위
두산
132
76
51
5
0.598
721
657
0.285
1305
141
136
4.58
2000
드림 2위
준우승
133
76
57
0
0.571
694
616
0.269
1325
150
115
4.22
2001
3위
우승
133
65
63
5
0.508
732
733
0.276
1266
130
132
4.96
2002
5위
5위
133
66
65
2
0.504
587
562
0.261
1173
130
106
3.93
2003
7위
7위
133
57
74
2
0.435
563
619
0.276
1251
90
58
4.24
2004
3위
3위
133
70
62
1
0.530
606
560
0.268
1200
89
71
3.88
2005
2위
준우승
126
72
51
3
0.585
596
465
0.270
1147
63
103
4.42
2006
5위
5위
126
63
60
3
0.512
455
467
0.258
1068
55
132
3.36
2007
2위
준우승
126
70
54
2
0.565
578
480
0.263
1103
78
161
3.44
2008
2위
준우승
126
70
56
0
0.556
647
542
0.276
1198
68
189
3.89
2009
3위
3위
133
71
60
2
0.534
722
662
0.280
1286
120
129
4.60
2010
3위
3위
133
73
57
3
0.549
731
669
0.281
1276
149
128
4.62
2011
5위
5위
133
61
70
2
0.466
614
619
0.271
1221
92
130
4.26
2012
3위
3위
133
68
62
3
0.523
524
519
0.260
1139
59
116
3.58
2013
4위
준우승
128
71
54
3
0.568
699
625
0.289
1271
95
172
4.57
2014
6위
6위
128
59
68
1
0.465
687
733
0.293
1299
108
111
5.43
2015
3위
우승
144
79
65
0
0.549
807
776
0.290
1436
140
111
5.02
2016
1위
우승
144
93
50
1
0.650
935
682
0.298
1504
183
85
4.45
2017
2위
준우승
144
84
57
3
0.596
849
678
0.294
1499
178
69
4.38
2018
1위
준우승
144
93
51
0
0.646
944
756
0.309
1601
191
96
4.98
2019
1위
우승
144
88
55
1
0.615
736
756
0.278
1364
84
140
3.51
2020
3위
준우승
144
79
61
4
0.564
816
695
0.293
1476
125
88
4.40
KBO 통산
(39시즌)
V6
4915
2532
2287
96
0.525
23072
21589
0.270
44961
3638
4243
3.98

10.3.1. 역대 개막전 성적[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개막전 성적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및 팀 전적
1982년[65]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9:2,
7:0,
4:1,
4:8,
3:3, [66]
11:2,
4:0,
5:1,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김상진
김상진
2:7,
3:4,
3:4,
4:5,
3:4,
12:3,
7:3,
4:2, [67]
13:7,
0:7,
2000년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68]
2009년
1:2,
5:6,
4:1,
6:7,
9:7,
5:14,
1:3,
7:8, [69]
4:1,
5:7,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3:8
0:4,
6:2,
9:4,
4:5,
4:9,
5:1,
0:3,
6:3,
4:5,
2020년
2021년
2:8,
4:1,
위에서 부터 선발투수, 상대팀, 결과, 세이브 순서

두산 베어스 역대 개막전 선발 라인업
연도
선발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좌익수
중견수
우익수
지명타자
2021
2020
2019
2018
2017
2016
2015
2014
2013
2012
2011
2010
2009
2008
2007
2006
2005
2004
2003
2002
2001
1982
이근식

두산 베어스 역대 개막전 달성 기록
개인 기록
최다 선발 투수 등판
9회[70]
최다 연속 선발 투수 등판
6년[71]
최다 승리 투수
6승 2패
최다 완봉승
2회[72]
최다 완투승
3회[73]
최초 노히트 노런
1988년 개막전[74]
최다 홈런 2위
4개[75]
최다 타점 2위
17타점[76]
팀 기록
개막전 승률 역대 1위
24승 12패 1무, 0.648
역대 최다 개막전 연승
5연승
1983년 ~ 1988년[77]
2013년 ~ 2017년
역대 최소 개막전 연패
3연패
1991년 ~ 1993년
2002년 ~ 2004년
최장 경기 시간
5시간 21분, 1997년[78]
최단 경기 시간
2시간 11분, 2000년[79]
한 경기 팀 최다 안타
21개, 1998년[80]

10.3.2. 역대 개인 성적(통산)[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개인 성적(통산 기록)
[ 펼치기 · 접기 ]

OB-두산 베어스 투수 기록
부분
이름
기록
OB-두산 소속 시즌
등판경기
652경기
1998~2008
2011~2013
선발등판
230경기
1983~1995
완투
79완투
1983~1995
완봉
17완봉
1989~1998
평균자책점
2.95
1982~1996
승리
109승
1983~1995
패전
110패
1983~1995
세이브
157세이브
1995~2002
홀드
84홀드
2003~2014
2016~2017
이닝
1805이닝
1983~1995
탈삼진
1214개
1996~2006
피안타
1680개
1983~1995
피홈런
139개
2009~현재
볼넷
626개
1983~1995
사구
86개
1983~1995

OB-두산 베어스 타자 기록
부분
이름
기록
OB-두산 소속 시즌
출장경기
1716경기
1992~2008
타율
0.318
2006~2015
출루율
0.406
2006~2015
장타율
0.544
2008~현재
타석
6592타석
1998~2014
타수
5540타수
1998~2014
안타
1710안타
1998~2014
2루타
293개
1998~2014
3루타
65개
2009~현재
홈런
273개
1998~2014
타점
1097타점
1998~2014
득점
851득점
1998~2014
도루
373도루
1995~2003
볼넷
814개
1998~2014
사구
147개
1998~2014
삼진
906개
2007~현재
병살
186개
1998~2014

10.3.3. 역대 개인 성적(단일 시즌)[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개인 성적(단일 시즌)
[ 펼치기 · 접기 ]

OB-두산 베어스 투수 기록(단일 시즌)
부분
이름
기록
시즌
등판경기
84경기
2001
선발등판
33경기
2006
2007
완투
17완투
1992
완봉
8완봉
1995
평균자책점
1.11
1993
승리
24승
1982
패전
17패
1983
세이브
42세이브
2000
홀드
28홀드
2005
이닝
234.2이닝
2007
탈삼진
189개
2019
피안타
228개
2017
피홈런
27개
2010
볼넷
112개
1998
사구
22개
2018

OB-두산 베어스 타자 기록(단일 시즌)
부분
이름
기록
시즌
타율
0.366
2017
출루율
0.473
2001
장타율
0.657
2018
타석
668타석
2020
타수
586타수
2020
안타
199안타
2020
2루타
40개
2017
2020
3루타
12개
2007
홈런
44개
2018
타점
133타점
2018
득점
110득점
2017
도루
57도루
1999
볼넷
101개
2015
사구
24개
2015
삼진
154개
2020
병살
26개
2020

10.3.4. 타이틀 홀더[편집]

10.3.4.1. 타자[편집]
OB-두산 베어스 역대 타격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2003
3루수
.342
2008
외야수
.357
OB-두산 베어스 역대 출루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2007
3루수
.457
2008
외야수
.454
OB-두산 베어스 역대 최다안타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83
외야수
117
1993
외야수
147
2000
외야수
170
2004
포수
165
2008
외야수
168
2009
외야수
172
2019
지명타자
197
2020
지명타자
199
OB-두산 베어스 역대 홈런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95
외야수
25
1998
1루수
42
2018
외야수
44
OB-두산 베어스 역대 타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95
김상호
외야수
101
1998
1루수
103
2001
1루수
113
2018
외야수
133
OB-두산 베어스 역대 득점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2007
2루수
89
2008
외야수
98
OB-두산 베어스 역대 도루왕
연도
이름
포지션
기록
1998
외야수
44
1999
외야수
57
2000
외야수
47
2001
외야수
52
2006
외야수
51
2011
2루수
46
10.3.4.2. 투수[편집]
OB-두산 베어스 역대 다승왕
연도
이름
기록
1982
24
2004
17
2007
22
2016
22
2018
18
2019
20
2020
20
OB-두산 베어스 역대 평균자책점왕
연도
이름
기록
1982
1.84
1984
1.58
2004
2.50
2007
2.07
2016
2.95
2018
2.88
OB-두산 베어스 역대 탈삼진왕
연도
이름
기록
2004
162
2005
147
2016
160
2019
189
OB-두산 베어스 역대 세이브왕
연도
이름
기록
1983
14
1984
25
2000
42
2001
23
2002
31
2005
30
2009
26
OB-두산 베어스 역대 홀드왕
연도
이름
기록
2001
18
2002
17
2003
16
2005
28
2010
23

10.4. 역대 신인 드래프트[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신인 드래프트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역대 신인 드래프트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장호연, 정선두, 박종훈, 이선웅, 한대화, 정구선, 송일섭
한오종, 장훈, 김성호, 윤석환, 김남수, 기세봉, 김수남, 홍희섭, 사인상, 김영하, 이광국,배원영, 오덕환, 김광림
김명구, 김진욱
임재준
김형석, 김영신, 이승희, 윤수봉, 김문수, 이종융, 천성호, 이종원, 박상석, 김일중,권광운, 탁재원, 계동식, 도이석
박기수
박노준, 박형열, 임채섭, 이복근, 조석신, 김희식, 김현찬, 정광식, 차재택, 박상익
김강익, 박칠성, 임동구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조재환
김경남
김태진
박희종, 진상봉, 박병준
이석재
김원식
정삼룡
박상국, 김용희, 길홍규, 김태형, 정형진
이진
김동현
김보선
구동우, 이명수, 김진규, 곽연수, 하득인, 안종호
서준룡, 조정수, 김상진, 한형탁, 김만조
황일권
김익재, 정효형, 노춘섭, 권영일, 구교록, 이병우, 박천유
손경수
이상현, 권명철, 안경현, 박철홍, 장원진, 허영철, 한국일
박상근, 김종성, 김덕칠, 김종신, 염상엽
홍우태, 김광현, 한태균, 윤기수
송재용
문희성, 진필중, 서석영, 박성균, 이보형, 최윤승, 장보성
연도
1차 지명
고졸
우선 지명
2차 지명
강영수, 정원석, 박찬협, 임봉수, 이정주, 박상언, 강봉규, 김규식, 표성대, 이기승, 홍재호, 김용혁
장건희, 윤준호
최경훈
김성환
김덕용
진갑용, 김영수, 강규철, 김도형, 김환조, 김도균, 김원섭, 윤태수, 강신창, 박수현, 이용우, 장인규
이경수
유재웅
윤상무
송원국, 이혜천, 김지훈, 김주용, 이영일, 오세학, 박세훈, 조은진, 유병목, 이재우, 구판진
정종수, 장성진, 이승준, 이광오, 정재훈, 노기환, 백대운, 김성배, 김호영, 백승훈, 김성균, 박종유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문상호
구자민, 방승재, 성민국, 장원영, 정재훈, 홍마태, 정진용, 홍석균, 맹진영
황규택
김상현, 김태구, 김용영, 이대현, 배광진, 임창섭, 이범석, 손제민, 최홍진, 채태인, 이수
고영민, 박종섭, 이경환, 황덕균, 이민택, 이승엽, 박훈범, 최종군, 오주헌, 이상원, 하정인, 김명효
전병두, 나주환, 김만윤, 김영준, 김승회, 김영진, 허도환, 최영주, 오재원
이원희, 이경민, 윤석민, 남찬섭, 구명환, 김수훈, 오현근, 용덕한, 김무학
서동환, 조현근, 이호성, 금민철, 윤형관, 박정배, 이윤호
김용성, 민병헌, 박성남, 송영찬, 유상우, 최주환, 홍병오, 양의지, 박진원
이원재, 이두환, 권영준, 김강률, 이정민, 이병용, 조영민, 장동우, 문준용
김재환, 고창성, 홍상삼, 김용의, 윤요한, 윤도경, 박민석
허경민, 박건우, 조승수, 배상현, 정수빈, 유희관, 김진형, 민정후
연도
전면 드래프트
장민익, 이재학, 정대현, 김상훈, 김준호, 문상철, 강백산, 김건효, 조윤성, 김선민
윤명준, 변진수, 이규환, 류지혁, 박세혁, 박민정, 유민상, 신동규, 장우람
김인태, 이우성, 정혁진, 장승현, 함덕주, 천영웅, 송주영, 홍성은, 고동현, 계정웅
연도
1차 지명
2차 지명
채지선, 김민혁, 사공엽, 방건우, 박종욱, 박성민, 고봉찬, 정진철, 정인석, 이윤후
  • 선수 이름은 지명 라운드 순서
  • 취소선은 입단하지 않았거나 지명권을 포기한 선수
  • 1982년 드래프트에 OB 베어스는 참여하지 않았다.
  • 2014년 드래프트부터 표기된 1차 지명 선수 이름 옆의 숫자는 서울팀 1차 지명 순서를 의미한다.

10.4.1. 지역 연고 학교[편집]

2014년 이후 부활한 1차 지명은 서울 연고 야구팀인 키움 히어로즈,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가 지역 연고 학교를 통합 관리하며 순번에 따라 1차 지명을 실시한다. 순번은 2012년 성적의 역순인 LG-넥센(키움)-두산이 기준이며 2014년 드래프트에 적용되었다. 다음해에는 넥센(키움)-두산-LG의 순서, 그 다음해에는 두산-LG-넥센(키움)의 순서로 지명한다.

서울 연고 세팀은 서울 지역 15개 학교와 특이하게도 새롭게 배정된 제주 지역 1개 학교를 통합 관리 하는데 이 때문에 같은 학교 출신 선수가 중복으로 1차 지명에 뽑히기도 한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서울 팜이 우수하기 때문에 지방 구단 팬 위주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며, 매년 드래프트 때마다 1차지명 폐지 및 전면드래프트 주장이 대두되기도 한다. 따라서 형평성에 맞게 서울권도 3개의 권역으로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미 고졸 우선 지명 제도가 있던 당시 서울 지역 고등학교를 두산과 LG가 합의 하에 임의로 선택하여 지명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연도별로 선수 편차가 심했기 때문에 서울 연고 세 팀은 서울 지역을 세 개의 권역으로 나눌려고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안에 대한 보완은 어느 정도 필요할 것으로 보이나 이는 KBO와 서울 연고 세 팀의 의지에 달렸다.

서울 연고 구단의 1차 지명 합동 관리 학교는 다음과 같다.

2019년 7월 19일, KBO 이사회에서 2022년 시행되는 2023년 신인드래프트 부터 다시 전면드래프트로 돌아가기로 함에 따라 지역 연고 학교는 2022년 부터 다시 폐지될 예정이다.

10.4.2. 역대 2차 드래프트[편집]

단일 리그의 특성상 트레이드가 빈번하지 않고 그에 따라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기회를 얻지 못한 선수들을 위하여 메이저리그의 룰5 드래프트와 유사한 2차 드래프트가 2012년 부터 시행되었다.

화수분이라고 불릴만큼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는 두산은 이성곤, 오현택 등이 털리고 최대성, 김도현이 궤멸적인 활약을 보여주면서 2차 드래프트에서 많은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구단이다. 지금까지 모든 드래프트에서 지명 당할 수 있는 최다의 선수들을 지명 당했고 그에 따라 화수분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하지만 두산도 2차 드래프트에서 무작정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2014년 제2회 2차 드래프트에서 1번으로 지명한 허준혁은 2015년, 2016년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하는 동안 5선발로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2016년 제3회 2차 드래프트에서 전체 마지막으로 지명되어 두산으로 다시 돌아온 정재훈은 2016년 두산이 정규시즌을 우승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두산 베어스 역대 2차 드래프트 IN
연도
1라운드
2라운드
3라운드
2012
오장훈
(롯데, 내야수)
김강
(한화, 내야수)
오성민
(SK, 투수)
2014
허준혁
(SK, 투수)
최영진
(LG, 내야수)
양종민
(롯데, 내야수)
2016
박진우
(NC, 투수)
임진우
(삼성, 투수)
정재훈
(롯데, 투수)
2018
최대성
(kt, 투수)
김도현
(SK, 외야수)
패스
2020
패스
패스
패스
두산 베어스 역대 2차 드래프트 OUT
연도
선수명
선수명
선수명
선수명
선수명
2012
최승환
(한화, 2순위)
이두환
(KIA, 5순위)
김성배
(롯데, 6순위)
유재웅
(SK, 7순위)
이재학
(NC, 17순위)
2014
김태영
(KIA, 3순위)
이혜천
(NC, 4순위)
임재철
(LG, 8순위)
서동환
(삼성, 11순위)
정혁진
(LG, 27순위)
2016
장민석
(한화, 5순위)
김응민
(삼성, 9순위)
양현
(넥센, 14순위)
박종욱
(SK, 26순위)
김상훈
(넥센, 27순위)
2018
이성곤
(삼성, 2순위)
신민재
(LG, 24순위)
박진우
(NC, 26순위)
오현택
(롯데, 27순위)
2020
변진수
(KIA, 4순위)
강동연
(NC, 6순위)
정진호
(한화, 10순위)
이현호
(한화, 17순위)

10.5. 역대 외국인 선수[편집]

두산 베어스 역대 외국인 선수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역대 외국인 선수
연도
투수
타자
국적
선수명
성적
비고
국적
선수명
성적
비고
1998
파일:미국 국기.svg
126경기, 0.305, 42홈런, 103타점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113경기, 0.250, 2홈런, 36타점
1999
파일:미국 국기.svg
124경기, 0.297, 44홈런, 101타점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62경기, 0.250, 3홈런, 17타점
2000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크 파머
27경기, 10승 9패 1홀드, 4.54
파일:미국 국기.svg
127경기, 0.315, 39홈런, 111타점
2001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크 파머
3경기, 1승 2패, 9.00
5월 퇴출
파일:미국 국기.svg
118경기, 0.291, 34홈런, 113타점
파일:호주 국기.svg
5경기, 5경기 2패, 7.32
6월 입단
파일:미국 국기.svg
17경기, 0.193, 1홈런 3타점
5월 퇴출
파일:러시아 국기.svg
21경기, 6승 9패, 5.04
2002
파일:러시아 국기.svg
27경기, 12승 6패, 4.01
파일:미국 국기.svg
119경기, 0.256, 25홈런, 82타점
파일:미국 국기.svg
31경기, 16승 8패, 3.87
2003
파일:일본 국기.svg
39경기, 7승 11패 5세이브, 3.74
파일:미국 국기.svg
44경기, 0.215, 10홈런 24타점
5월 퇴출
파일:미국 국기.svg
14경기, 4승 3패, 3.55
7월 입단
2004
파일:미국 국기.svg
29경기, 17승 8패, 2.60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37경기, 0.265, 6홈런 25타점
7월 입단
파일:미국 국기.svg
19경기, 7승 9패, 4.69
7월 퇴출
2005
파일:미국 국기.svg
29경기, 12승 7패, 3.25
파일:미국 국기.svg
척 스미스
16경기, 4승 6패, 4.55
파일:미국 국기.svg
13경기, 9승 2패, 1.37[82]
7월 입단
2006
파일:미국 국기.svg
30경기, 16승 8패, 2.95
파일:미국 국기.svg
34경기, 12승 16패, 2.90
2007
파일:미국 국기.svg
28경기, 12승 8패, 3.12
파일:미국 국기.svg
33경기, 22승 5패, 2.07
2008
파일:미국 국기.svg
28경기, 9승 9패, 4.48
파일:미국 국기.svg
6경기, 3승 2패, 2.84
5월 퇴출
파일:미국 국기.svg
저스틴 레이어
12경기, 6패, 5.66
5월 입단
7월 퇴출
2009
파일:미국 국기.svg
-
시범경기
중 방출
파일:미국 국기.svg
맷 왓슨
10경기, 0.184, 2홈런 6타점
5월 퇴출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후안 세데뇨
28경기, 4승 7패, 5.70
파일:미국 국기.svg
19경기, 4승 8패, 4.71
7월 입단
2010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27경기, 14승 5패, 3.32
파일:미국 국기.svg
29경기, 7승 9패 1홀드, 4.95
2011
파일:미국 국기.svg
29경기, 15승 6패, 2.55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
시범경기
중 퇴출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25경기, 3승 6패 6세이브, 6.09
2012
파일:미국 국기.svg
29경기, 11승 10패, 3.20
파일:미국 국기.svg
57경기, 4승 4패 35세이브, 1.79
2013
파일:미국 국기.svg
19경기, 12승 4패, 3.58
파일:미국 국기.svg
10경기, 1승 1패, 6.52
7월 퇴출
파일:미국 국기.svg
12경기, 3승 3패, 6.23
7월 입단
2014
파일:미국 국기.svg
30경기, 14승 7패 1홀드, 3.81
파일:멕시코 국기.svg
111경기, 0.309,18홈런, 72타점
파일:미국 국기.svg
17경기, 5승 7패, 6.21
7월 퇴출
파일:쿠바 국기.svg
11경기, 2승 4패, 4.86
7월 입단
2015
파일:미국 국기.svg
20경기, 6승 5패, 5.10
파일:미국 국기.svg
8경기, 0.111, 1홈런, 3타점
5월 퇴출
파일:쿠바 국기.svg
13경기, 2승 5패, 8.17
6월 퇴출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76경기, 0.253, 12홈런, 50타점
6월 입단
파일:미국 국기.svg
20경기, 5승 7패 1홀드, 5.26
6월 입단
2016
파일:미국 국기.svg
28경기, 22승 3패, 2.95
파일:미국 국기.svg
118경기, 0.308, 24홈런, 81타점
파일:미국 국기.svg
30경기, 18승 7패, 3.80
2017
파일:미국 국기.svg
30경기, 14승 8패, 4.06
파일:미국 국기.svg
138경기, 0.296, 27홈런, 90타점
파일:미국 국기.svg
17경기, 3승 5패, 4.64
2018
파일:미국 국기.svg
26경기, 15승 4패, 2.88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21경기, 0.138, 1홈런, 4타점
6월 퇴출
파일:미국 국기.svg
28경기, 18승 3패, 3.74
파일:미국 국기.svg
12경기, 0.128, 1홈런, 4타점
6월 입단
9월 퇴출
2019
파일:미국 국기.svg
30경기, 20승 3패, 2.50
144경기, 0.344, 15홈런, 88타점
파일:미국 국기.svg
22경기, 9승 8패, 3.61
2020
파일:미국 국기.svg
21경기, 8승 4패, 3.01
파일:아이티 국기.svg
144경기, 0.340, 21홈런, 105타점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31경기, 20승 2패, 2.54
2021
파일:쿠바 국기.svg
파일:아이티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10.6.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편집]

두산 베어스 포스트시즌 팀간 상대 전적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포스트시즌 팀간 상대 전적
상대팀
개별 시리즈 전적
포스트 시즌 총 전적
1982 KS: 4승 1무 1패
1986 PO: 2승 3패
2001 KS: 4승 2패
2004 PO: 1승 3패
2005 KS: 4패
2008 PO: 4승 2패
2010 PO: 2승 3패
2013 KS: 3승 4패
2015 KS: 4승 1패
PO 1승 3패, KS 3승 2패
개별 경기 총 전적: 24승 1무 23패
1987 PO: 2승 3패
2004 준PO: 2승
2017 KS: 1승 4패
준PO 1승,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5승 7패
1993 준PO: 1승 2패
1998 준PO: 2패
2000 PO: 4승 2패
2013 PO: 3승 1패
2020 준PO: 2승
준PO 1승 2패, PO 2승
개별 경기 총 전적: 10승 7패
1995 KS: 4승 3패
2009 준PO: 3승 1패
2010 준PO: 3승 2패
2012 준PO: 1승 3패
준PO 2승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11승 9패
1999 PO: 4패
2001 준PO: 2승
2005 PO: 3승
2007 PO: 3승
준PO 1승, PO 2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8승 4패
2000 KS: 3승 4패
2001 PO: 3승 1패
PO 1승,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6승 5패
2007 KS: 2승 4패
2008 KS: 1승 4패
2009 PO: 2승 3패
2018 KS: 2승 4패
PO 1패, KS 3패
개별 경기 총 전적: 7승 15패
2013 준PO: 3승 2패
2015 준PO: 3승 1패
2019 KS: 4승
준PO 2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10승 3패
2015 PO: 3승 2패
2016 KS: 4승
2017 PO: 3승 1패
2020 KS: 2승 4패
PO 2승,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12승 7패
2020 PO: 3승 1패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3승 1패

포스트시즌에서 KBO 리그에 현존하는 모든 팀을 만나본 유일한 팀이다. 사라진 구단까지 합해도 쌍방울 레이더스를 제외한 모든 팀을 만나봤다.

11. 응원단[편집]

2021 시즌 두산 베어스 응원단
응원단장
장내 아나운서
치어리더

12. 응원가[편집]

13. 응원문화[편집]

OB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하얀 막대 풍선과 깃발은 두산의 팀컬러를 잘 반영한 응원도구이며, 응원도구의 메인 컬러로 흰색을 사용하는 구단은 현재까지 두산이 유일하다. 또한 한재권 응원단장 부임 이후 생겨난 LED 응원팔찌 또한 인기다.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응원가에 따라 불빛이 일제히 바뀌면서 작동한다.
파일:돡응원현장1.jpg
파일:두산깃발응원11.jpg
깃발 응원
파일:최강두산클래퍼.png
파일:두풍응.jpg
파일:두산원정풍선응원.jpg
클래퍼 응원
풍선응원 펼치는 두산 응원단

종종 흰색 풍선을 가지고 응원을 펼치기도 한다. 야구 팬들은 이 응원 장면을 보고 HOT 콘서트에 온 것 같다는 말도 하였다. 두산의 최주환도 같은 말을 하였다. # 이 응원은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 두산 베어스 시절 때부터 유명했던 응원으로, 막대 풍선과는 다른 하얀 풍선을 들고 응원하는 것인데, 이 응원의 장면이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두산이 하얀 풍선응원을 하는 날에는 잠실이나 원정 경기장은 그야말로 하얀 물결이다.

한동안 이 응원이 주춤하더니 2018 시즌 개막전, 2018 정규시즌 우승 확정 경기, 2018 정규시즌 홈 최종전과 2018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이 하얀 풍선응원과 함께 했다. 2019 시즌은 개막전과 어린이날 당일 경기, 한국시리즈에서 이 응원을 펼쳤다.

14. [편집]

KBO의 첫번째 심장과 원년 우승구단이라는 메리트 등으로 프로야구 원년 OB 베어스 시절부터 꾸준히 인기를 누려오고 있다. 이러한 베어스의 팬덤을 지칭하는 용어는 바로 최강 10번 타자 이다.[84]

지역 연고의식이 강하고 팬들의 목소리가 높은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등의 팬들과 달리 두산 팬덤은 팬들이 그리 시끄럽지 않고 베어스라는 팀 자체를 사랑하는 분위기이기에 인기가 없어 보였던 것 뿐이지, OB 베어스 시절부터 꾸준한 성적에 힘입어 꾸준한 큰 인기를 누려 오고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85] 82년 불사조 박철순의 인기는 어마어마했고 OB 베어스 당시 어린이 회원증을 가지고 있던 어린이 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서울로의 연고 이전 이후인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 OB가 꼴찌를 3번이나 하던 암흑기였고, 동시기에 서울 라이벌인 LG 트윈스는 "신바람 야구"라는 팀컬러로 우승도 2번이나 하는 등 OB에 비해 잘 나가던 시기였다. 게다가 1994년 시즌 말미에 터진 OB 베어스 항명사건도 있어서 그나마 있던 팬층이 떨어져나가는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다음 해인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명승부를 연출하면서 우승을 하자 그동안 숨어있던 OB팬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기 시작했다.[86] 1995년 한국시리즈 당시의 영상을 보면 OB의 팬 수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87] 오너캐에 옛날 OB 모자를 그려 넣을 정도로 유명한 OB팬인 최의민도 레전드 열전 김용수 편에서 "학교에서 OB 좋아하면 매우매우 아웃사이더 냄새 나는 그런 시절로 기억된다"라고 말했을 정도. 코어 팬층의 충성도는 최강이다. 특히 원년부터 1980년대 말 암흑기가 찾아오기 전까지 어린이 팬들이 많았던 구단 중 하나로, 이 때의 어린이 팬들이 장성하여 두산 베어스의 오래된 팬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팬이 서장훈.

두산 베어스의 두터운 팬층은 2000년대 중후반에 들어와 올림픽 및 WBC에서 야구 국가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둘 때 야구라는 스포츠를 처음으로 알게 된 수도권의 젊은 팬들 + 수도권으로 상경한 지방 출신 팬들로 구성되어 있다.[88] 실제 국제 경기에서 국가대표 팀이 훌륭한 경기를 펼칠 때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선수들이 대개 베어스 출신이었다.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많이 뽑혀나갔고[89], 김현수, 민병헌, 오재원 등나갔다 하면 유독 미쳐서 활약해대는 선수들의 스타성은 물론, 베이징 올림픽에서 야구 금메달을 이끌었던 김경문 감독도 당시 베어스 감독이었다. 게다가 이런 게 한두 번도 아니다. 올림픽, WBC, 프리미어 12 모두 베어스 선수들이 주축으로 활약한 일이 많다 보니 타 팀 팬들도 베어스에 대한 인식이 괜찮은 경우가 많고, 야구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에게 어필하기에도 좋다.

또 전체 인구의 20% 가량이 서울에 살고, 반절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한국 지리의 특성상 야구에 입문하려는 새로운 팬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팀은 대부분 서울 및 수도권 연고의 팀이다.

팬층은 LG와 마찬가지로 서울특별시를 기준으로 인근의 인천광역시와 경기도 부천시, 성남시 및 경기도 전체로 퍼져 있으며, 잠실야구장을 자주 찾는 편이다.

수도권 이외에도 옛 연고지였던 대전광역시가 포함된 충청도에도 극소수 팬들이 있으며, 중공업, 인프라코어두산그룹의 핵심 사업장이 몰려있는 경상남도 창원시에도 팬들이 소수 있다.[90]

가장 중요한 건 과거 82 & 95 OB 베어스 시절 아재들 및 01 두산 베어스 시절 청소년 및 대학생 층을 넘어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함께 여성팬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성팬들은 주로 서울특별시와 인근의 인천광역시에 많으며, 부천시성남시에서도 잠실을 하얀 물결로 덮으면서 여성응원의 떼창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의 시점으로 두산은 결정적인 입문 포인트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이미 김인식 감독 시절인 90년대 중후반부터 상위권 성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고, 지상파 중계가 이뤄지는 포스트시즌에서 가을 사기단, 미라클 두산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명경기를 많이 배출했기 때문에 대중에게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일 기회도 많았다. 여기에 2015년에는 드디어 우승을 차지하면서 주역으로 오르기도 했다. 최근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 3번 우승이라는 새로운 왕조 시대를 열었고 19년, 정규시즌 9경기의 승차를 따라잡으면서 기적적인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면서 팬들의 유입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토록 탄탄한 팬들과의 랜선 소통도 또 하나의 장점. 또한 팀 자체가 젊고, 팀내에 잘생기고 야구까지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CIX,워너원의 배진영을 닮은 황경태도 있다. 이 점은 여성팬들에게 충분히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선수들의 팬 서비스 또한 해가 거듭할수록 개선이 되면 개선이 되었지 나쁜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팬서비스로 팬들에게 말이 나오는 게 김태형 감독.
파일:두산 10년 연속 홈관중 1백만 달성.jpg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10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
두산 베어스 역대 관중 수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역대 관중 수
2019년
983,474
2018년
1,112,066
2017년
1,094,829
2016년
1,165,020
2015년
1,120,381
2014년
1,128,298
2013년
1,152,615
2012년
1,291,703
2011년
1,253,735
2010년
1,070,673
2009년
1,053,966
2008년
929,600
2007년
786,054
2006년
726,359
2005년
616,679
2004년
456,726
2003년
425,782
2002년
469,080
2001년
620,094
2000년
510,862
1999년
497,409
1998년
427,227
1997년
737,392
1996년
690,258
1995년
914,638
1994년
700,914
1993년
700,869
1992년
504,100
1991년
436,026
1990년
386,968
1989년
431,352
1988년
275,061
1987년
272,217
1986년
293,357
1985년
252,731
1984년
137,385
1983년
184,536
1982년
163,822
굵은 글씨는 당해년도 1위 기록

야구 인기의 반등과 서울 팀의 이점이라는 호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팀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화끈한 강공 스타일로 야구 입문자들을 금방 빠져들게 할 수 있는 팀 컬러를 지니기도 했다. 2006년에 두산은 처음으로 KBO 관중 동원력 1위를 기록했고, 이후 2007년부터 2014년까지는 8시즌 연속으로 동원력 2위를 기록하다가[91] 2015년에 다시 동원 순위 1위를 탈환했고, 2016년에는 2년 연속으로 관중 동원 1위를 달성했다. 이후 2017년에는 다시 LG에게 관중 1위를 내주었다가 2018년에 다시 한번 관중 동원 1위를 달성했다.[92] 더불어 2018년에는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처음으로 KBO 최초 10년 연속 1백만 관중을 돌파했다.[93][94] 이러한 누적세는 단순히 두산이 성적이 좋고 인기팀과의 경기가 주말에 몰려있어서 가능한 것만은 아니고 어느 정도 팬덤이 안정화 단계로 접어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두산, 프로스포츠 사상 첫 10년 연속 100만 관중 돌파

사실 위에서 서울 팀이 대체적으로 제일 접근하기 쉽다고 했는데, 이를 뒤집어 보면 서울 연고 팀들은 기본적으로 팬 유입을 위해 다른 팀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게 된다. 지방 팀들이 연고지 팬층이라는 엄청난 이점을 달고 있는 데 비하면, 서울 인구에게는 상대적으로 연고지가 팬이 되는 데 끼치는 영향이 적다. 게다가 본가가 지방에 있다면 그 지방 팀의 팬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95] 설령 연고지를 선택지의 중요한 부분에 두더라도 서울에만 팀이 3개나 되는 데다 가까운 인천에도 홈팀이 있고, 2015년에는 수원에도 신생팀이 생겼기 때문에 선택지도 많다. 이러한 불리한 점들을 뚫고 두산 팬덤이 기존보다 커진 것은 말 그대로 2000년대 중후반에 주어진 신규 팬층을 확보할 기회를 타 팀과의 경쟁에서 한 발 앞서며 확보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2000년대에 입문한 팬들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어 있다 보니 OB 시절부터 응원하던 최의민같은 골수 OB팬들과는 좀 상이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골수팬들과 새로운 팬들 사이에 갈등이 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암흑기를 겪어본 올드팬들은 새로운 팬이 생기는 걸 아주 환영한다. 한 올드팬은 "베어스를 좋아한 기간과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베어스 한 팀만을 좋아할 마음가짐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진정한 팬"이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하셨다.

두산 야구를 오래 본 정통 OB아재들은 경기장에 와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중하게 보고 가거나 집관하는 편이다.[96] 하지만 김인식 감독 시절에 이어 기나긴 김경문 감독 시절, 김진욱 전 감독 2년, 금지어 1년, 이제는 김태형 감독 시절까지 흘러오면서 WBC 및 베이징 올림픽으로 유입된 팬들도 야덕질을 한 지 최소 10년차 이상이 되었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한 야구 정보의 접근성 증가로 인해 꽤나 경험 있는 야덕들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 새로 부임한 응원단장 한재권이 엄청난 능력을 보여주면서 무려 외야석 관중들까지 응원에 참여하게 유도해내며[97] 타 팀 팬들까지 놀라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신생팬이 꾸준하게 많이 유입된다는 것 자체는 장기적으로 좋은 현상이다.[98]

제일 고무적인 것은 2015시즌의 기적같은 우승에 힘입어 2016년 현재 부모님과 같이 오는 두린이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오는 10대 청소년 팬들, 20대 대학생 팬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30대 ~ 40대 위주로 팬층이 형성되어 있는 LG와 달리 두산은 뉴비팬들의 유입이 많으며 그 중 젊은층의 유입이 상당히 많다. 특히 10대 ~ 20대에서는 두산팬 비율이 압도적이다. 물론 OB 시절부터의 골수팬 40대 이상이신 팬분들도 상당수 있다. 직관을 가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게 원년 구단임에도 팬덤 연령층이 낮다는 점[99]인데 두산이 몇 년간 이 기세를 유지한다면 최소한 향후 20년간 팬덤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다. 오래전부터 OB-두산을 응원해온 골수 올드팬들과 함께 이 어리고 젊은 팬들이 어우러져, 두산 홈의 잠실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베어스를 응원하는 열정적인 팬들을 만날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유입 팬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증명하듯, 2010년대 이후 프로에 입단하는 선수들 중에서도 두린이 출신 선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중 두산에 지명되어 덕업일치를 이룬 경우로는 류지혁, 이영하, 박신지, 김민규, 전창민 등이 있으며, 두산에 지명받지 못해도 두산팬임을 밝힌 선수가 늘어나고 있다. 그 이전 세대, 즉 학창시절을 일명 "꼴찌오비" 시대에 보낸 선수가 두린이 출신이었다고 하면 "아니 그 시절 OB한테 대체 어떻게..." 라면서 두산 팬들도 신기해한다. 차라리 엘린이 출신이라고 하는 걸 더 납득할 지경이니.. 참고로 김승회가 골수 옵린이 출신이다.[100]

그러나 아무래도 신규 유입 팬들이 많다보니 그 반대로 팬들의 충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두산 팬층의 불안 요소이다. 실제로 2014년, 2017년에 두산이 부진하자 흔히 KBO의 인기구단이라 불리는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가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을 때에도 인기는 최상위권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팬이 급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야구를 처음 접한 사람들이 단순히 두산이 성적이 좋아서 응원을 하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야구에 대한 관심을 끊는 등 팬심이 상대적으로 끈끈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101] 하지만 5월에 살아나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증가세(...).

2015년 페넌트레이스까지만 해도 평일에는 응원석 쪽과 1루 외야석 쪽에만 관중들이 있었지만,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2016년에는 응원석은 물론이고 응원단상에서 떨어져 있는 내야석에도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직관 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102] 그러나 한국시리즈의 경우, 시청률이 낮아 직관 관중을 제외한 전체적인 두산 팬층이 얇다는 지적도 있다.[103]
파일:두산풍선.png
파일:두산풍선2.png
두산의 시그니처 응원이라고 할 수 있는 풍선응원

2017년 개막전 예매는 한국시리즈와 맞먹을 정도로 예매 전쟁이 치열했다. 2014년 응원단장 교체와 2015, 2016년 한국시리즈 2연패로 팬들도 많이 유입되었고 예매도 굉장히 어려워졌다. 두산은 매년 새로 모집하는 유료회원에 한해 선예매+예매수수료 감면 혜택을 주는데[104], 회원 모집이 1주일만에 조기종료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2016년에만 해도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뒤까지 모집했었던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폭발이다. 게다가 이러는 바람에 가입을 못 한 팬들도 엄청나게 많았으니(...) 그리고 개막전 예매 날에는 무려 같은 날 검찰에 소환된 그 분을 제치고 '두산 베어스'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일이 일어났으며 # 접속자 폭주로 인해 구단 홈페이지의 서버가 마비되어 몇 시간이 지날 때까지 접속이 되지 않았다. 구단 측에서 긴급히 홈페이지 서버를 확충한 뒤 그 다음 날 진행된 개막시리즈 토요일 예매는 선예매만으로 1루 내야를 전멸시키는 화력을 보여주었다. 1루 블루석&레드석&네이비석은 물론 중앙네이비A(!)까지 쓸어버렸다.[105] 이제 주말 경기 1루 내야석은 선예매 광클이 아니면 못 구할 수도 있다.

팬들의 행동력과 구매력도 대단한 것이, 국내 구단 중 팬들의 머릿수가 제일 많은 팀도 아닌데 각종 시상식 및 자선호프나 이벤트 경기 등 야구 관련 행사만 했다 하면 두산 팬들의 참여율이 제일 높으며[106] 2016년 응원단장 자선호프에서 김주일 kt 응원단장이 항상 두산, 한화 팬들이 제일 많이 온다고 인증하기도 했다. 무슨 굿즈가 나왔다 하면 아주 심각하게 디자인이 구린 게 아닌 이상 품절시키는 화력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팬심이 끈끈하지 않다는 평가와 별개로, 일당백 급으로 활동하는 상코어팬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팬덤의 주축 연령대가 20대인지라 활발히 활동할 체력도 된다.[107] 최훈 카툰 캐릭터 피규어가 출시됐을 때도 두산 피규어가 제일 먼저 품절이 되고, 10개구단의 라커룸과 버스 모양로 만들어진 레고가 나왔을 때도 두산이 제일 먼저 품절되었다. 누군가의 말로는 모기업인 두산이 소비재를 파는 기업이 아니라서 아쉽다고(...) 두산 굿즈를 담당하는 회사인 위팬(WeFan)이 조금만 더 디자인에 신경을 쓰고, 재고를 더 많이 쌓아놓고 팔았으면 떼돈을 벌었을 거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하며, 네포스는 마감 등으로 인해 욕을 먹는다. 밑에 나올 먹산 항목 역시 이와 상통한다.

프로야구 올드팬들의 말을 들어보면 두산은 희한하게도 8~90년대부터 외국인 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의 상당수가 서울에 모이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야구장에 들렀다가 경기장 문화[108]에 반해 팬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는데, 특히 유튜브 등지에 한국의 야구장 문화를 소개하는 외국인들의 영상을 보면 팬들이 열광적이기로 유명한 팀과 함께 두산의 영상이 상당히 많은 걸 볼 수 있으며 두산 팬임을 자처하는 업로더도 자주 보이는 편이다. 이러한 흐름에 힘입어 2016년 구단 측에서도 '인터네셔널 데이'를 신설하여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109]를 시구자로 초청하고 두산 외국인 선수들의 팬사인회를 여는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국내 팬들도 미야자키현 시범경기까지 원정응원을 가서 일본 사설응원단과 대등한 화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금융계에서도 2010년대 후반 들어 인기스타로 떠오르고 있는데, 2018년 출시된 신한은행 KBO리그 적금에서도 두산 베어스 통장 가입자 수 비중이 10구단 가운데 약 62%를 기록하며 독보적 1위를 자랑한 바 있다.[110] # 2019년에도 신한은행 프로야구적금 판매좌수 중 두산이 50%를 차지하여 2위 SK(23.9%)를 더블스코어로 눌러버리면서 금융계에서도 압도적인 화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최근 팬들의 수가 늘어난 만큼 몰지각한 무개념 팬들의 수도 늘어났고 또 그만큼 안티가 급속도로 늘어났다.[111] 2016년 압도적인 페이스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하고 한국시리즈 4전 전승 우승을 이뤄낸 뒤 거만해진 두산팬들 사이에서 어우두라는 말이 나와 유행하며 타팀 팬들의 어그로를 끌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2017년, 2018년 모두 한국시리즈 우승 자리를 다른 팀들에게 내주곤 오히려 조롱과 비판을 받고 있다.[112][113] 또한 민감할 수밖에 없는 김재환의 도핑문제에 관해서도 일부 몰지각한 팬 또는 지능적 안티들이 김재환을 과도하게 치켜세우는 말들을 한다던가, 이런 행태를 비판하는 타팀 팬들에게 대놓고 "두산이 부러워서 저런 소리를 한다.", "잘나가는 두산에 대한 열등감이다." 등의 망언을 하여 오히려 무고한 두산팬들만 더 욕을 먹는 계기만 마련해주고 있다.[114][115]

여담으로 구단이 공식적으로 주최하는 팬 환담회 '곰들의 모임'이 매년 11월께 잠실 야구장에서 열리는데 역사가 상당히 길다. 현재 기록된 바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성인 회원들을 대상으로 곰들의 모임 환담회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과거에는 서울 명일동 두산그룹 연수원이나 이천 베어스 필드에서 모임을 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잠실 야구장으로 장소가 고정됐다. 물론 사정에 따라 잠실실내체육관 등 실내로 장소를 옮겨서 치르는 경우도 있다.

14.1. 여성 팬덤[편집]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60422185336316224.jpg
남성 팬들을 위한 행사도 치를 정도로 여성 팬이 많다.

KBO 구단들 중 여성 팬들이 많은 팀은 어딘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 두산이라고 답할 것이다.

2015 시즌 KBO 리그의 여성 관중 비율은 43.1%였는데, 두산 베어스의 여성 관중 비율은 리그 평균보다 약 10% 높은 53%를 기록했다. 즉, 두산 홈 경기에는 실제로 여성팬이 남성팬보다 더 많이 온다.[116] 두산 응원석만 한정했을 땐 남자 20 안쪽 : 여자 80 이상이라는 현장 평도 있다. 관중 수가 적은 평일에는 여팬이 압도적으로 많은 경우도 허다하며, 수도권 원정 팬도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으며 의 경우에는 남성의 비율이 더 높다.[117] 외국인 팬과 마찬가지로, 원년부터 박철순 선수, 김진욱 선수처럼 여성팬 인기를 끌 만한 선수가 많은 편이었어서 이전부터 여성팬 비율이 여타 구단들보다는 꽤나 높은 편이었다고 한다.

양의지 응원가와 예전 정수빈 응원가처럼 KBO에서 유일하게 남/녀 파트가 따로 있는 선수 응원가가 있는데 원래는 일반적인 응원가였다가 점차 여성 팬 전용으로 특화되자 나중에는 팬들이 암묵적으로 남/녀 파트를 나눴다. 가끔씩 여자 파트의 목소리가 앰프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반주는 응원가 전체가 남자 목소리로만 나온다. 반주가 꺼지고 무반주로 하는 타임에만 들어도 앰프는 절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다. 위 영상에서 정수빈 응원가는 3절이 무반주로 북소리에만 맞춰서 하는 파트고, 양의지 응원가는 북소리도 없는 100% 육성이다.[118]

실제 응원 영상에서 두산측 관중들의 응원소리를 들어보면 야구 붐 초반인 2008년까지는 타 구단과 마찬가지로 남자 목소리가 압도적이었는데,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여자 목소리가 남자 목소리를 뚫고 나올 때가 많아졌다. 하지만 15년부터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신규 팬들의 유입이 매우 늘어나면서 젊은층에서는 다른 구단[119]에 비해 선호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행사들도 많으면서[120] 프런트도 여성 팬서비스에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한다.

또한 공교롭게 옆나라 일본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도 두산과 같이 여성 팬이 더 많고 2010년대 중후반에 전성기를 구가하며 리그를 폭격했다.[121][122] 한재권 응원단장이 오면서부터 남성팬들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20대는 물론 10대 여성팬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편이다.

14.2. 시구[편집]

파일:2017 박철순 시구.jpg
불사조 박철순의 시구[123]
파일:2017101602109919040018[1].jpg
박철순, 김경문, 그리고 김우열
시구 행사를 하고 포옹하는 모습
[124]
서울을 연고지로 하는 팀인 특성상 접근성이 용이하기 때문에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시구를 한다. 대통령 시구도 많은 편인데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125]이 시구를 했고, 2013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시구를 했다.[126] 2008년 개막전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이 시구를 할 예정이었으나 사전 유출과 우천 취소로 인하여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구를 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시구는 KBO 주관이기 때문에 구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며, 두산 팀 시구로 취급되지 않는다.

구단 레전드들의 시구도 종종 펼쳐진다. 특히 두산의 영구결번 불사조 박철순의 시구가 많은 편인데, 김경문 전 감독과 같이 배터리를 이뤄 시구를 하기도 했고, 2011년에는 김우열 전 코치 까지 시타로 포함하여 시구를 하기도 했다. 가장 최근의 시구로는 2017년 플레이오프 1차전이었는데, 박철순은 은퇴식때 했던 멘트를 똑같이 하며 두산 올드팬의 향수를 자극했다. 뿐만 아니라 김유동, 김상호 등이 마운드에 올라 팬들 앞에서 멋진 시구를 보여줬다. 특히 김상호OB 베어스 항명파동 당시 주장이였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었다.[127] 정재훈의 경우 은퇴식에서 시구를 했다. 최근 2020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더스틴 니퍼트의 시구가 이루어졌다.

여자 연예인 시구가 많은 편이다. 여자 연예인 중 절반 이상은 이 팀 홈경기에서 할 정도. 특히 SM 엔터테인먼트[128], JYP 엔터테인먼트, DSP미디어[129] 소속 연예인[130]들이 시구를 많이 했으며 최근에는 야구 인기의 증가와 함께 3대 기획사 외에[131] 소속사 라인업이 다양화되었다.[132] 야구 인기 증가로 야구장 시구가 효과적인 프로모션 수단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연예인 시구가 전체 구단 사이에 증가하였는데, 두산은 특히 그 시구자 라인업이 화려하다. 연예인들이 지방까지 시구하러 가는 일은, 그(또는 그녀)가 해당팀의 팬이 아닌 이상 드물었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 홍보팀에 항상 시구를 희망하는 제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개념 시구로 이름 높은 홍드로 홍수아. 근래에는 비교적 자주 오는 소녀시대, 2011년 잠실에서 개막식 시구를 한 시크릿전효성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서 말했듯이 시구를 자신의 인기 상승을 위하여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연예인, 준연예인들이 더러 있다. 대표적인 예가 클라라. 2013년 눈을 사로잡는 쫄쫄이 레깅스 복장으로 시구했는데 이 시구로 인지도가 확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그녀는 두산 유니폼을 입고 화보까지 찍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렇게 자신들의 홍보를 위해 연예인들이 몰리고 구단 홍보팀 입장에서도 경기 사전 행사로 연예인 시구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에 두산팬들의 질타를 받는 시구자도 간혹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앞서 언급한 클라라. 클라라는 두산과 LG의 경기에 리폼한 두산 유니폼 상의와 LG를 연상하는 줄무늬 레깅스를 하의로 입고 시구했는데 이는 시구의 기본적인 매너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 시구에 초청을 받았다면 자신을 초청한 팀의 승리를 기원하는 멘트를 해야하고 그 팀에 맞는 복장을 입는 것은 당연한 매너인데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그걸 지키지 않았다. 심지어 이날 경기는 LG와의 어린이날 시리즈 경기였다.

그 이전 사례로는 2012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등번호 1015를 달고 시구한 수지가 있는데 1015는 야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컴백일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2차전에 초청된 이특은 두산의 초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양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마운드에 올랐다. 이는 준플레이오프 나아가 가을야구 전체가 야구팬들에게 가지는 의미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였다. 이 후 구단에서도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이 후 시구자들은 대체로 두산의 선전을 기원한다.

여자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JYP 소속 여자 연예인이 시구를 하면 진다는 징크스가 있다.[133] 초아는 JYP 오디션 참가자 출신이다. 그리고 초아는 2015년 개막전에도 시구했는데, 이 날은 이겼다. 2013년 승리의 여신(&남신) 라인업은 조정석, 신수지[134], 미란다 커 등이다.

2015년에 시구한 신수지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백일루전 시구를 보여줬는데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기존의 시구 패러다임을 완전히 벗어난 시구였고 MLB.COM에 소개되기도 했다. 같은 해 태미는 공중 회전 발차기 시구를 보여줬는데 이 역시 많은 화제가 되었다. 또한 중앙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김환(방송인) 시구가 130km를 찍으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연예인들의 시구 이외에도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의 취지로 시구가 펼쳐지기도 한다. 사회공헌 프로젝트 소원성취 두잇포유(Doo It For You) 활동[135] 그리고 바보의 나눔 베이스볼 Day 행사의 일환으로 희귀 난치병 환자나 장애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소원을 이뤄 주기도 한다.

공익캠페인의 경우엔 정규시즌 중에도 두산 유니폼을 입지 않고 시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례가 2015년 불법스포츠도박 추방 캠페인 일환으로 시구를 한 EXID하니.[136]

2019년 개막시리즈에서는 드라마, 영화 흥행계의 쌍두마차인 배우 김서형, 진선규가 시구를 맡는다.

14.3. 먹산 베어스[편집]

2015년 들어서는 팬들의 먹성이 좋아서 '먹산 베어스'라는 별명도 생겼고, 매 시즌마다 이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심지어 이런 포스팅도 있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먹방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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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점(賣店) - 매점을 털러가기 위해
매석(買席) - 좌석을 산다
먹산의 명성이 굳어진 계기는 2015년 9월 28일 kt wiz와의 경기로, 이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관중석이 매진되지 않았는데도 매점의 음식을 매진시키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참사(?)의 여파로 마르테밥버거를 못 먹었고, 옥스프링의 딸은 핫도그를 못 먹었다고 한다(...) "추석이라 주변 식당이 문을 닫아서 그렇다", "kt wiz 팬들도 먹성이 좋다"는 등의 원인분석도 있지만 두산 팬들이 너무 잘 먹어서 그렇다는 게 야구팬 대다수의 의견.

이후에도 그 명성은 이어져서, 목동 야구장에서도 음식을 매진시켰고 NC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는 마산 야구장매점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두산 팬들에게 NC팬들이 플레이오프 기간에 어시장 축제를 한다고 알려주기도 했었는데, 당시 마산 어시장의 횟집 사장님이 "회 뜨다가 세상 뜨겄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당시 회강두산이라는 드립이 흥해 기사까지 나기도 했다.

잠실 야구장의 매점도 두산이 홈경기를 할 때의 매상이 LG 때보다 많다고 한다. 잠실구장에서 알바를 했던 경력이 있는 모 야구팬의 말로는 술과 안주거리는 아재팬이 많은 LG 홈일 때 더 잘 팔리고, 그 외 먹거리는 두산 홈일 때 더 잘 팔린다고 한다. 원인을 두산 팬층의 연령대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머릿수도 딸리지 않으면서 워낙 전체적으로 팬덤이 젊다보니, 돌도 씹어 먹을 나이들인지라 잘 먹는다는 것인데 나름 일리가 있다.

두산의 전 응원단장인 먹산억제기가 두산 팬들에게 욕먹는 원인 중 하나가, 응원석 주변의 두산 팬 앞에서 치킨 먹지 마십쇼!, 햄버거 먹지 마십쇼!라고 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후임 응원단장인 한재권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아예 뭐 먹지 말라는 소리를 안 한다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이토 쓰토무 치바 롯데 마린스 감독이 2015년 낸 책에서는 두산 수석코치 시절에 선수들도 식탐이 많았다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2015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리츠칼튼 호텔[137]에서 열린 축송회 때 호텔 음식을 잔반 하나 없이 싸그리 먹어치운 것도 모자라 2차에 가서 더 먹었다는 걸 보면... 이건 2군이나 용병도 다를 바가 없다고. 선수들도 원정경기 가면, 경기 후 맛집 다녀온 인증이 꽤 자주 보인다. 동래구의 야구선수들 가는 모 양곱창집은 두산 선수들이 롯데 선수들 다음으로 많이 보일 정도.

2016년 4월에 두산이 kt와 3연전을 할 때, 두산 팬들의 습격(?)에 대비해서 단기 알바를 모집한 식당도 나왔다.(...) 2016년 5월 15일 고척돔 원정경기에서는 막대풍선 대신 땅콩크림빵을 들고 응원하는 팬이 목격되기도 했다. 2016년 9월 17일에도 어김없이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매점을 습격, 먹산의 위엄을 보여주었다. 2017년 3월 18일 시범경기에서는 고척돔 3루 뉴욕버거 매장의 재료를 경기 시작 전에 소진시켰다. # 2017년 4월 23일행복드림구장을 습격해[138] 경기 한시간 전부터 연잎훈제오리 도시락을 털어갔다. 2018 한국시리즈 문학에서 열린 3,4,5차전 동안 경기장 앞에 푸드트럭이 섰다. 두산 인스타나 블로그등을 보면 푸드트럭의 음식 매진은 당연하고, 3루 쪽 매장 파파존스까지 연일 매진을 시키며 먹산베어스는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2019년에도 행복드림구장을 처음으로 매진시켰다.

대전 원정 경기가 있을 땐 대전 명물 빵집인 성심당이 두산 유니폼으로 꽉 채워지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데, 2018년 6월 16일 토요일~17일 일요일 대전에서 두산과 한화의 경기가 열리는 양일간 성심당 측에서 원정팀, 홈팀 관계없이 야구 유니폼을 입고 오면 튀김소보로를 무료로 증정한다는 이벤트를 열었다. 참고로 금요일부터 이미 성심당 빵이 스윕당했다는 인증글이 올라오기도 했다.야구는 먹빵과 함께

정작 잠실야구장 먹거리 중 일부 점포는 가격 면에서 악평이 나와서 두산팬들도 욕을 하는 편인데, 일부 메뉴는 배달의민족이나 잠실새내역 등을 이용하는 편이다.

야구장에 들고 갈 먹을거리로는 깻잎닭강정, 족발, 보쌈 등이 유명한 편. 선수단 및 직원들이 많이 가는 맛집으로는 <대호갈비>[139] 등이 있다.

14.4. 네임드 베어스 팬[편집]

알파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합니다.

가나다순으로 정리

15. 라이벌전[편집]

15.1. 잠실 더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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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싸대기 매치[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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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BearSpotv(베어스포티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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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페이스북

두산 베어스와 SPOTV의 제휴로 만들어졌다. 경기 외적인 콘텐츠가 별로 없었던 한국프로야구에 새로운 콘텐츠 모델이 되고 있다. 방송 카메라로 볼 수 없었던 경기장 비하인드 스토리, 경기 준비 과정, 여러 캠프에서의 모습들을 퀄리티 있는 영상으로 가장 빠르고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2020년 현재 한·미·일 프로야구단 유튜브 채널을 통틀어 2번째로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148]하고 있으며 실버 버튼 기준인 1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한국 프로야구 전 구단 역대 최초로 유튜브 구독자 수 10만명을 달성했다. 이처럼 독보적인 소통채널으로 도약한 베어스포티비는 두산 베어스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이자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2018 시즌 후반과 2019 시즌 초반 논란이 생겨났는데, 채널 콘텐츠 진행 중 발생한 채널 담당자의 자팬들을 향한 경솔한 발언, 타팀에 대한 다소 자극적인 제목등으로 논란이 되었고, 두산팬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해 논란이 꽤 있었으며 현재는 피드백을 통해 이같은 행보를 자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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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두런두런[편집]

두산 베어스의 공식 블로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글들을 볼 수 있다.

홍보팀 직원, 치어리더, 각 언론사들의 두산 담당 기자들, 베어스포티비 담당자∙리포터, 대학생 마케터 등 다양한 구단 사람들의 시선으로 팀을 바라보는 글들이 올라온다. SNS, 사진, 영상에 이어 글로도 두산 베어스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기존 두산 베어스 공식 홈페이지에 한 코너로 있던 두런두런이 2.0으로 리뉴얼되어 단독 홈페이지로 리뉴얼되었다.

18. 스폰서 및 제휴사[편집]

19. 두산 전광판 영상[편집]

19.1. 선발 라인업 및 플레이 볼[편집]

2016년
2017년
2018년
야구 경기 시작 5분 전에 나오는 선수 입장 곡. The Final Countdown을 편곡했다. 야구장 가면 설레게 하는 그 곡 맞다. 2015년에는 주전 포수 양의지가 영상의 주인공으로 나왔는 데 양의지가 프로텍터를 착용하는 동안 팬들은 야구장에 입장하는 모습이 번갈아 가면서 영상에 표현됐다. 2016년 영상에서는 비장함을 표현한 선수들의 컨셉 영상과 지난 시즌 활약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2017년 영상은 두산 엠블럼으로 시작하여 선수들의 활약상을 편집하여 영상으로 표현했다. 2018년 영상은 팀의 역대 우승 장면을 편집하여 넣었다.

20. 사건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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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관련 커뮤니티[편집]

22. 관련 문서[편집]

23. 기타[편집]

  • 미라클 두산이라고 불리는 만큼 가을야구 성적이 좋지만 유독 SK 와이번스에 약하다. 창단 이후 4번 맞붙어서 4번 다 졌다.[149] 심지어 2018시즌에는 14.5G 차이, 플옵 5차전 연장 혈투를 치르고 온 SK를 상대로 근 한 달간 체력 보충을 하였으나 1차전부터 이상한 흐름으로 흘러 가더니 결국 6차전에서 SK에게 패배하며 우승을 넘겨주었다.
  • 1982년 프로야구 창단부터 야구선수를 등장하는 OB맥주 광고를 적극적으로 내보냈다. "시원한 홈런 시원한 OB" 5분 11초부터 두산으로 이름 바뀐 이후에도 야구선수를 등장시키는 광고를 계속 내보냈다.
  • 옆집과 마찬가지로 모그룹 오너일가의 야구 사랑이 지극정성인 것으로 유명하다. 두산 오너일가에서 내려오는 말로 '두산그룹이 망하지 않는 한 프로야구단은 반드시 운영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150] 실제로 베어스 창단 구단주였던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151]은 프로야구 창단에 직접 참여했고 직관도 엄청나게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52] 하지만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이 구단주를 맡은 시절 야구 외적인 일에 치중하느라[153] 구단 지원에 소홀하기도 했는데, 이 당시 외국인선수라고 사다준 선수가 세데뇨일 정도로 안습한 적이 있기도 했다. 물론 진짜로 외국인 선수를 키워서 쓰는 곳은 도미니카에 유망주들을 대상으로 야구학교를 연 히로시마 도요 카프. 어쨌든 이 가문의 야구 사랑은 박용만 전 회장을 거쳐 두산가(家)의 4대 경영인인 박정원 現 구단주와 박 구단주의 동생인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에게도 그대로 전수됐다.
  • 前 응원단장 오종학이 꽤 미남인 것으로도 유명. 클릭비 오종혁의 사촌형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가수 오종혁이 라디오에서 해명하기도 했다. 원빈 닮은 꼴로 TV에 출현한 적도 있다.
  • 다른 구단에 비해 충암고 출신 야구선수가 비교적 많다.충암고 따까리 라인업! 최근에는 한화 이글스가 충암고 출신들이 많아지고 있다.
  •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첫 8년 연속 100만 홈관중 달성 구단.#
  • 역대 감독들중에 김광수 감독대행을 재외한 김씨 성을 가진 감독. 초대 김영덕, 2대 김성근, 6대 김인식, 7대 김경문, 8대 김진욱, 10대 김태형은 모두 포스트시즌 진출 경력이 있는 반면, 김씨 성을 가지지 않은 감독들이 있었던 시즌에서 두산은 단 한 번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154] 이광환, 이재우, 윤동균, 최주억, 송금지어 이들 모두가 김씨가 아니다. 또한 다섯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모두 김씨 감독이[155] 이루어냈다.
  • 선수협 활동을 적극적으로 한 심정수 등을 보내버리며 레전드 대우가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였다. 2012년 FA자격을 다시 얻은 김동주와 재계약하며 17년 연속 두산맨으로서 해외진출 없이 국내에서만 100억 이상의 수입을 보장받아 신인들에게 '야구만 잘하면 레전드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좋은 선례를 남기나 했다. 하지만 2014년에 김동주 1군 기용 여부를 두고 김동주 본인과 코칭스태프간에 마찰이 생겨 이적 파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역시 두산은 레전드 대우를 거지같이 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56][157]
  •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한국 대 프랑스의 경기 직후 한국 선수단과 응원단이 서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에서 태극기치우천왕기 사이에 뜬금없이 두산 베어스 깃발이 걸려 있어서 화제가 되었다. 나중에 두산 구단 측에서 이 소식을 듣고 두산 깃발을 내건 사람을 시구자로 초청하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관련 기사
  • 2018년까지 한국시리즈 5번 우승 모두 영남 연고 팀을 상대로 기록했다.[158] 그러다 2019년 같은 서울 연고팀인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승리하면서 첫 비영남 연고팀 상대 우승을 달성했다.
  • 팀을 상징하는 메인 컬러가 붉은색인 팀과 붙어서는 한 번도 한국시리즈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역대 7번의 준우승 중에 4번이나[159] 붉은색을 메인 색깔로 쓰는 팀과 붙었다가 졌다.[160][161]
  • OB 시절부터 배트걸이 아닌 배트보이를 고집해왔다. 이에 대해 구단은 "야구는 야구다워야 한다. 그라운드는 선수들을 위한 신성한 공간이어야 한다는 게 구단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팬을 위한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그라운드가 아닌 스탠드에서 하면 된다" 라고 하며, 이는 창단 때부터 고집해온 철학이다. 주로 사회인 야구를 즐기는 두산 팬 휴학생들을 모집하는데 경쟁률이 자그마치 50:1에 육박한다고 하며, 상의에 BAT BOY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기 때문에 경기장에서 금방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볼보이는 BALL BOY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고 있다. 사진
  • LG 트윈스와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는 관계로 한 시즌에 두산과 LG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경우 최종 순위에 따라 2년 후 홈개막전의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만약 포스트시즌에서 LG가 두산보다 잘 하게 될 경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2년 후 개막전을 어웨이로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 미국 NFL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팀 컬러가 비슷하다. 마운드는 시원찮은데 공격력이 굉장히 짜임새가 높은 팀이다. 그야말로 선발타자부터 9번까지 마음놓고 던지기가 힘든 편이고 민병헌이 이적했으나 두산의 공격력은 여전히 강하기로 정평나 있으며 이때문에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시리즈 우승후보 0순위에서 빠지지 않는다.
  • 야구 카툰에서는 주로 깡패곰, 두목곰, 대감집, 회장님 등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아마도 인터넷 카툰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던 2007년즈음엔 두산이 강팀이었고, 2021년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구카툰으로 유명한 최훈 작가는 LG팬이며 두산이 2000년대에는 LG에게 정말 무자비할 정도의 상대전적을 자랑했기 때문에 눈에 칼자국이 난 깡패나 팀의 레전드였던 두목곰 김동주의 이미지로 많이 그려졌다. 현재의 야매카툰 등이 등장할 때에는 두산이 KBO를 지배하는 강팀으로 군림중인 시기라 '어차피 우승은 두산' 을 읊조리며 썬글라스를 끼고 탐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회장님이나 수많은 무기를 보유한 마피아 두목등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 코로나19로 모든 시즌권자, 회원권 구매자와 상의없이 일괄 환불시켜준다 연락이 왔다고 한다.
  • 구단 식당은 아워홈에서 위탁 운영을 하는것으로 보인다.

2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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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우승팀
우승 횟수
파일:attachment/OB_Bears.png

1회

1회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1회
파일:samsung_lions_logo_1982.png

1회

5회

1회

6회
파일:attachment/lottegiantsoldlogo11.jpg

2회

7회

2회
파일:attachment/OB_Bears.png

2회
파일:32zZQzk.png

9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1회
파일:Hanwha_Eagles_Logo_1994.png

1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2회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1999~2009).png

3회
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

2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Hyundai_Unicorns_Logo.png

4회
파일:samsung_lions_logo_1995.png

4회

2회
파일:external/s20.postimg.org/KIAtigersold.png

10회

3회

8회

5회

11회

4회

6회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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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1루 측[2] 3루 측엔 LG 트윈스의 구단 사무실이 위치해있다.[3] 리그 출범 당시 광역 연고제 였고, 충청남북도 전역이 연고지였다. 대전은 당시 충청남도 대전시. 1989년 직할시 승격, 1995년 대전광역시로 명칭이 개칭.[4]두산그룹 회장[5] 2021년 1월 18일 오재원은 라이브에서 2021 주장은 박세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김태형 감독의 주작으로 밝혀졌다. 2021년 1월 29일 두산은 오재원이 작년에 넘겨줬던 선수단 주장 자리를 다시 맡게 되었다고 밝혔다.[6] 제2구장[7] 아마추어 야구계의 반발로 이듬해부터 잠실야구장으로 옮겨갔다고 알려져 있으나 1985년에 9경기를 치루었다.[8] 두산의 전신인 OB 베어스때부터인 1994년부터 킷 스폰서로 두산 베어스와 인연을 맺고 있다. 2021년 3월에는 2024년까지 연장계약했으며 두산과 휠라는 30년 동행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는 한국의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긴 킷 스폰서 계약기간이며 현재 진행중이다.[9] 헬멧은 2019년부터 미즈노에서 협찬받는다.[10] 단일리그 기준[11]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19,571명.[12] 정규시즌 기준. 경기 당 평균 2,748명.[코로나19]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들은 열외.[초대] 단장은 박용민 전 두산사장이다.[15] 나머지 2개 구단은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16] 베어스는 삼성, 롯데와 마찬가지로 창단 이래 계속 두산그룹 산하에 있다. 쉽게 말해서 두산의 OB 브랜드만 사용한 것. 현재 팀명으로의 변경은 1999년에 이뤄졌다.두산그룹이 OB맥주 지분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팀명을 바꿨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두산그룹의 OB맥주 지분 매각은 2003년으로 팀명 교체 이후의 일이다.[17] 실제로 OB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서울지역과 충청지역을 모두 1차 지명 지역으로 갖고 있었다.[18] 그래서 구장 근처 강남구에도 팬이 많은 편이고 사회공헌 행사를 구룡마을 등에서 치르는 편인데, 구단사무실이 당시 대치 은마아파트에 있어서 동네 꼬마들이 전부 OB 팬이 되었다고 한다.[19] 참고로 준우승을 모두 2000년대에 했다.[20] 공교롭게도 이 3가지 상징색이 스폰서인 휠라와 컬러가 똑같아서 조화가 더 잘 된다는 평이 많은 편이다.[21] KBO 리그에서 응원 도구를 흰색으로 모두 사용하는 팀은 두산이 유일하다.[22] 이웃집 LG 트윈스도 1994년까지는 '럭키금성 프로야구단 LG 트윈스'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썼다.[23] 똑같은 원리로 구단 작명에 나선 사례가 빙그레 이글스였다. 그 당시 한국화약그룹은 방위 산업 중심의 기업으로서 대중적 인지도가 낮았기에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식품 계열사 빙그레를 구단 명칭에 넣은 것이다. 물론 훗날 김승연-김호연 형제의 분쟁으로 한화그룹빙그레는 따로 살림을 차리게 된다.[24] OB맥주가 매각된건 2003년의 일이다.[25] 이 유니폼과 로고를 디자인한 사람이 훗날 국회의원이 되는 손혜원이다.[26] LG는 롯데엔 사직에서 4연전을 모두 이기고 LG의 마지막 홈경기에서 또 롯데에 승리하는등 10승8패로 앞서 두산이 드림리그 1위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줬다.[27] 데뷔 13년만에 처음으로 10승투수가 된 만 35세의 노장 이광우가 1선발이었다. 좌완 외국인 투수 마이크 파머는 전반기 9승을 했지만 후반기에 기나긴 아홉수 끝에 1승만 올려 간신히 10승에 그쳤다. 규정이닝과 10승을 채운 투수는 둘 뿐이었고 현대 쓰리펀치에 비해 이닝 소화력이나 내용이 떨어졌다. 현대는 정민태-임선동-김수경이 190이닝 이상+18승을 올렸다.[28] 이러한 문제로 인해 현대, 삼성, LG, 롯데 등 5할을 넘긴 상위권 팀들과의 상대전적에서 모두 열세를 기록했다. 대신 투수력이 약한 하위권팀인 해태와 한화, SK를 미친듯이 두들기며 승패마진을 메웠다. SK에 17승2패, 한화-해태에 13승6패를 했다.[29] 1995년 시즌 말미 두산의 전신인 OB가 잔여 경기 14경기중 8연승 및 12승 2패를 하며 당시 선두 LG를 반게임차로 꺾고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하면서 부터 기적의 OB라고 불리워지게 된다. 그리고 1998년 당시에도 5위였던 팀이 똑같이 8연승을 하면서 가을 야구에 진입하였었다.[30] 심지어는 포스트시즌을 탈락한 2006년의 승률(.512)보다 낮다! 우승한 이듬해 2002년 두산은 66승 65패 2무로 5위(승률 .504)에 그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는데 사실 승률은 우승한 전년도보다 고작 .004가 낮을 뿐이었다(...).[31] 다만 정규시즌 3위는 꽤 이른 시점에서 확정했는데 아래 5팀의 시즌 막판 페이스가 좋아서 경기차가 적어 보이는 것이다.[32] 진필중은 사실상 이 때부터 하락세가 시작되었다.[33] 무려 원년 삼미와 같은 전적이다. 참고로 18연패를 찍은 20한화의 첫 50경기 성적이 12승 38패이다.[34] 선동열은 스승인 김응룡 감독의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석코치로 1년간 지내다가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승격된다.[35] 원래 베어스 창단 멤버였다. 말년에 잠시 태평양 돌핀스에서 뛴 것과 삼성 베터리 코치를 역임이 전부였고 97년 이 후 친정 팀으로 찾아온다.[36] 이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2003년 당시 선동열 KBO 홍보위원이 일본에서 코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상태였고, 당연히 그 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잠실 라이벌 LG와 두산 역시 기존에 감독을 맡고 있던 이광환김인식 감독을 퇴진시키면서까지 선동열을 감독으로 영입하려고 준비를 해 두었으나, 정작 선동열은 스승인 김응용 감독이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가버리고 만다. 결국 멀쩡한 감독을 내친 셈이 되었고, 이에 두산은 김경문을, LG는 주루코치였던 이순철을 감독으로 내부 승격시켜 급한 불을 껐다. 그리고 그 결과는...[37] 원래 김동주는 2006년 시즌이 종료되고 FA가 될 예정이었는데 이해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날린 탓에 FA 취득일수가 1년 뒤로 밀리고 말았다. 당시 시즌 시작 전만 해도 일본 진출 이야기가 나왔을 정도였는데, 이 정도로 2006년은 김동주에게 상당히 아까운 해였다.[38] 다만 김인식 감독 시절의 두산도 98~01까지 승률 1위 한번(99년)을 포함하여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이미 강팀 대우는 받는 팀이었다. 김경문 감독 시절에야 두산이 약팀에서 강팀으로 부상한 것은 아니라는 것.[39] 이 당시 포스트시즌 이벤트 캐치프레이즈가 혼연일체, 최강두산! 으로 방문하는 팬들에게 흰색 유니폼과 응원도구를 가져와 줄 것을 부탁했다. 감동의 흰색물결로 혼연일체되어 우승을 쟁취하자는 취지.[40] 리그 전체적인 흥행 요인으로는 박찬호, 김병현, 김태균 등 해외파의 대거 국내 복귀도 있었는데 박찬호가 잠실에서 등판했을 때 평일임에도 매진을 이루기도 했다.[41] 사실 2012년은 KBO에서 투고타저가 가장 심한 해였다. 그러나 그를 감안해도 이 해 두산은 OPS 0.673으로 팀 타격 꼴찌였다. 이 해 두자릿수 홈런 타자는 윤석민 딱 하나였으며 김현수가 각성한 2008년 이래 3할에 실패한 유일한 해이다.[42] 2019년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그 당시 두산의 주축 멤버들이 많이 등장하는 팬의 헌정영상이다.[43] 원래는 잠시 부상으로 이탈한 니퍼트의 대체 선발이었지만 첫 경기부터 승리투수가 되며 로테이션을 꿰찼다.[44] 이 해부터 다시 다져진 강력한 타선은 이후 2018시즌까지 리그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으며 베어스 최강의 무기가 된다.[45] 100이닝을 넘기면서 이닝보다 자책점이 많은 최악의 시즌을 치렀다.[46] 가을야구 탈락이 확정된 경기가 LG전이었다. 하지만 3년 뒤 LG를 상대로 승리해 LG의 가을야구 실패를 확정지으며 똑같이 설욕했다.[47] 그것도 5차전에서 김주형의 실책으로 동점 및 역전 찬스까지 맞았으나, 후속 타자들의 범타로 득점에 실패하며 당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른 것이다.[48] 민병헌의 공백으로 인한 우익수 자리, 시즌 초 부진 오재일 제외[49] SK는 한화한테 1경기만 패했어도 두산이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확정짓는다.[50] 단순히 KBO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프로야구 구단 유튜브 채널 중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였으니 이것만으로도 말 다한 셈.[51] 창업주 김범수는 골프에 관심이 더 많다.[52] 박 회장은 야빠로 유명하고 팀에 대한 애정도 깊다. 사정이 여유로우면 NC의 김택진처럼 최고의 구단주가 될 수 있었겠지만....[53] 두산그룹 이해관계자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지는 한참 됐다. 장원준과 수십억 계약을 하고 1년이 채 안되어 20대 직원도 명퇴시킨 시점에서 이해관계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나빠질대로 나빠진 상황이다.[54] 단, 2012년부터 포수자리 뒤 홈플레이트 뒷부분 및 파울 존 부근 워닝트랙은 인조잔디 적용.[55] 휠체어전용 40석 포함,최대 26000명 수용 가능[56]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이재우 감독대행[57]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윤동균 감독대행[58] 프로선수 출신 1호의 감독.[59]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인해 중도 사퇴. 잔여 경기는 최주억 감독대행[60]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이재우 감독대행[61] 시즌 중 사퇴. 잔여 경기는 윤동균 감독대행[62] 프로선수 출신 1호의 감독.[63] OB 베어스 항명파동으로 인해 중도 사퇴. 잔여 경기는 최주억 감독대행[64] 시즌 중 사퇴[65] 공식 개막전 경기는 MBC와 삼성의 1경기 밖에 치러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 기록은 공식 개막전 다음날 열린 OB와 MBC의 잠실 경기 기록이다. OB의 입장에서는 개막 경기가 맞다.[66] 연장 12회[67] 연장 13회[68] 2008년 3월 29일 열릴 예정이던 우리와 두산의 잠실 경기는 우천으로 취소되었다. 이 결과는 3월 30일 경기 결과[69] 연장 10회[70] 1983, 1985, 1986, 1987, 1988, 1989, 1990, 1992, 1995[71] 1985~1990[72] 1983, 1988[73] 1983, 1988, 1990[74] OB와 롯데의 사직 경기[75] 1위 한대화, 7개[76] 1위 한대화, 19타점[77] 82년은 공식 개막전이 아니다, 86년 무승부[78] OB와 한화의 대전 경기[79] 해태와 두산의 잠실 경기[80] OB와 해태의 무등 경기[81] 특성상 타 지역 전학생이 많아서 큰 의미를 두기는 어렵다.[82] 트레이드 이후 두산에서의 성적, 합산 성적은 15승 12패, 3.51[83] 쿠바 출신, 아이티 국적[84] 타구단에서도 가끔 쓰지만 '최강 10번 타자'의 대표주자는 당연히 두산.[85] 마산 출신 황정민의 사례처럼 베어스의 팬베이스인 서울, 수도권 외 지방에서도 베어스 팬이 종종 보이는 편이다.[86] 1995 시즌 당시 'OB+엘롯해'가 1위부터 4위까지 차지했는데, 이는 크보의 대표적인 인기팀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던 유례없던 시즌이었다. 특히 김상진이상훈의 서울라이벌 에이스 대결이라든가, 빅마켓 간의 대결이었던 1995년 한국시리즈경부선 시리즈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87] 1995 시즌 이후 가을야구의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한 1998년 이후의 OB-두산의 가을야구 영상 역시 살펴보면 팬들이 정말 많았다는 걸 알 수 있다. 2001년 한국시리즈 때도 두산 팬들이 정말 많았다.[88] 지방권 구단들의 낮은 성적에 실망하여 두산으로 팀세탁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89] 최근 국제대회에서 두산 선수들의 비중이 가장 높아 '국대베어스'라고도 불리는데, 시즌만 끝나면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소집되느라 투구컨디션 및 타격사이클에 지장을 받는 경우도 많다.[90] 참고로 베어스도 창원하고는 꽤 인연이 깊은데, 프로야구 초창기에 전용 야구장까지 창원에 지으면서 전지훈련지로 활용한 적이 있다.[91] 2007, 2013~2014년은 LG가, 2008~2012년은 롯데가 1위.[92] 2018년 관중 동원 2위를 한 LG는 오지환 병역사태+급격한 DTD로 관중 감소를 겪었다.[93] 이 기록은 2019년에 종료되었다.[94] 이 기록은 어느 정도 이상의 팬층과 팀의 꾸준한 성적이 없었다면 생겨나지 못했을 기록인지라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95] 특히 부모님이 그 지방 팀의 팬인 경우.[96] 물론 매년 시즌권 끊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분들도 당연히 있다. 참고로, 시즌권까지 끊는 올드팬들은 말 그대로 상코어다. 구단에 힘든 일이 있거나 팀 성적이 좋지 않을 시기에 선수들 기 죽어서 경기 뛰면 안 된다며 야구장에 더 많이 가서 자리를 지킬 정도로 큰 팬심을 지니신 분들이다.[97] 2016년 kt wiz와의 원정경기에선 평상복 차림으로 경기 관람하다가 단상에 올라가기도 했다.[98] 그 어떤 분야든 덕질이라는 것에 조금이나마 발을 담가봤다면 팬덤은 일단 크고 봐야 한다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팬덤이 커지려면 유입층이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다. 또한 집단이 고인물이 되어도 좋을 게 하등 없는데 팬덤이라고 다를 바 역시 없고.[99] 예시로 2003년 출생인 김단율 군, 2007년 출생인 박민수 군이 열렬한 두산 팬이다.[100] 더 놀라운 건 우규민이 OB 어린이 회원 출신이다. 팬심은 LG에 지명을 받자마자 식었다고 한다.[101] 사실 단순히 성적이 좋아서 입문한 팬들의 경우에는 변심하여 야구에 대한 관심 자체를 끊을 수밖에 없다.[102] 2016년 정규시즌 우승 확정 경기였던 9월 22일 kt wiz와의 경기는 평일 경기 중에서도 제일 관중 동원이 힘든 목요일 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석, 응원석, 1루 및 3루 외야석은 물론이고 3루 내야에까지 두산 팬들이 전부 포진했었다. 원래 두산 팬들은 원정팀 응원단의 민폐로 인해 3루 내야는 잘 가지 않는 성향이 있었고 지금도 그 성향이 없어진 건 아니지만, 이젠 1루만 고집하기엔 자리가 없으니 "우리 팀 홈구장인데 뭐 어때?" 하며 마음을 고쳐먹고 3루 내야에 앉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103] 다만 16 한국시리즈는 NC가 너무 못하기도 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들의 관심이 거기에 쏠린 것도 있다. 심지어 사이가 평소 안 좋은 서울 연고 3팀과 프로야구 10개 구단 팬들이 팀 깃발을 들고 국정농단을 규탄하러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기도 했을 정도.[104] 연간권과는 다르다! 일반예매는 경기 10일 전날 오전 11시에 인터파크에서 예매 시작, 선예매는 그로부터 1시간 전인 오전 10시에 구단 홈페이지에서 예매 시작[105] 테이블석의 경우 선예매 때 오픈하지 않는다. 또한 중앙 테이블석과 3루 테이블석은 시즌권으로 판매되는 자리이다.[106] 야구 행사에서 두산 유니폼이나 점퍼는 눈만 돌리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중계 카메라에도 제일 잘 잡힌다.[107] 20대 팬이 많음에도 오히려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화력이 더 강하다. 일례로 2016년 올스타 투표 기간에 팬들이 득표 현황 시트까지 파서 투표 독려를 하던 중 허경민 선수의 허슬두데이가 걸렸는데, 이 날 클리닝 타임에 응원 멘트를 하게 된 팬이 단상에서 투표 홍보 멘트 한 번 하자 당일 득표수가 쭉 올랐고, 그 뒤로 허경민, 박건우의 팬 투표 역전을 이뤄내기도 했다. 온라인 상에서는 다른 팀 팬들에게 치여서 드러내지 않는 듯 하다.[108] 열성적인 팬들, 단체 응원 등[109] 2014년 10월부터 2017년 1월까지 주한 미국대사관 대사였다. 야구 자체를 좋아하는 야구광이자, 특히 두산과 오재원 선수의 열렬한 팬. 대사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었을 때 오재원 선수는 송별회에 초청되었고 # 베어스포티비에 짧은 작별인사를 남겼다. # 돡갤에서 불리는 호칭은 미국호갱, 명예돡붕이 등등(...).[110] 한국시티은행에서 2010년 프로야구 통장을 발행한 때에는 SK 와이번스의 가입률이 높았지만, 2018년에는 엘롯기 팬들도 승률 연동 이율로 인하여 두산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11] 사실 팀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그에 비례해 무개념들의 유입과 안티팬들의 숫자 역시 늘어난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옆나라의 어느 우승 많이 한 구단.[112] 두산 팬들도 자조적으로 "어머니 우동 두그릇이요"라고 자학개그로 쓰기도 하는데, 2019년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엔 어느 정도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으나 아직도 두산팬들 사이에서 '어우두'에 대한 트라우마는 있다. KIA 역시 2017년에 우승을 이루어냈지만, 팬들은 아직도 타어강에 민감해하며 설레발을 경계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113] 2018년은 더 심각했던 게, 팬층이 상대적으로 많이 얇고 정규시즌 14.5게임차로 2위를 기록한 SK를 팬덤 규모나 야구 실력으로 조롱하고 무시하다가 준우승을 당했다보니 두 구단을 제외한 타 구단 팬들에게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까임을 당하며 안그래도 좋지 못한 이미지에 비호감을 추가로 적립하게 되었다.[114] 이는 비단 두산의 문제만이 아니라, 최진행, 헥터 노에시펠릭스 호세 등의 약쟁이들에 대해서도 무개념 팬들이 쉴드를 치다가 욕을 먹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KBO 팬덤 전체가 함께 경각심을 가져야 할 문제. 다만 김재환은 약물 자체만으로 까이는 것 보다도 봉인 해제, MLB에 도전하고 싶다는 등 경솔한 발언과 MVP수상(이는 김재환 본인의 잘못은 아니지만)에 따라 사실상 약물을 한 국내 프로스포츠 선수들 중에선 가장 논란이 많은 선수인 건 사실이다. 반대로 그만큼 감싸주는 팬들도 매우 많아 늘 뜨거운 감자일 수 밖에 없는 것. 이젠 두산 팬들도 내려놓고 잘 치면 드신날, 못 차는 날은 안 드신날약차차!이라며 자조섞인 드립을 하는 걸 보면 두산팬들도 이젠 놓은 분위기.[115] 이러한 몰지각한 팬들 대부분은 과거 OB시절부터 이어온 아재팬이 아닌 2000년대 후반에서 2010년대에 유입된 일명 뉴비팬들이라고 보면 된다. 이들은 OB가 하위권을 전전하며 'OB바보'라고 조롱을 받는 시절을 겪지 않아 팀의 성적에 대한 컴플렉스를 전혀 느껴본적이 없기 때문에 타팀팬을 쉽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타팀팬들 눈에는 이들이 아니꼬울 수 밖에 없고 결국 이들 때문에 무고한 올드팬들까지 싸잡아서 욕을 먹는 것이다.[116] 이걸 잘 생각해보면, KBO 전체의 여성 관중 비율을 두산 팬덤이 캐리했다고 볼 수도 있다(...).[117] 대개 팬덤에서 남녀비율이 비슷하면 여성팬들이 더 열정적으로 덕질하는 경우는 어떤 장르를 가든 꽤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118] 당시 우천 지연으로 인해 경기가 늦어져 경기 시간이 10시를 넘겼고, 잠실에서는 구장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10시 이후로는 앰프와 북을 쓰지 못해 완전 육성으로 응원을 진행했었다.[119] 특히 옆집 LG[120] 2009년부터 시작된 '퀸즈데이'. 본래 특정 달 목요일에 감독 이하 선수단 전원이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나와 경기했으나 그러고서 이긴 경기가 하나도 없는데다 팬들의 반응도 그리 좋지 않아서 현재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이벤트는 사라진 상태다.[121] 그러나 또 공교롭게 두 팀 모두 리그를 씹어먹을지언정 각각 일본시리즈, 한국시리즈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다. 카프의 경우 2016, 2018 일본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였고, 두산의 경우 2017, 2018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그리고 2018 시즌이 종료된 뒤 두 팀 모두 팀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루 요시히로, 양의지와 이별했다는 것도 똑같이 닮았다.[122] 2019 시즌 이후 히로시마는 기세가 꺾이면서 과거의 약체 팀의 모습으로 돌아간 반면, 두산은 여전히 한국시리즈에 계속 진출하고 있다.[123] 2017 플레이오프 1차전[124] 2011년 개막전[125] 1994년 4월 10일 개막전 다음날 일요일 경기에도 시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경기는 8:5로 약체 쌍방울에 지고 말았고 그 시즌은 항명파동으로 흑역사가 되었다.[126] 그런데, 정작 두산 베어스는 패싱해버리고, 삼성 라이온즈만 예방하다가 갔다고 한다(...)[127] 김상호는 MBC에서 트레이드 돼서 OB에 왔고 이후 LG로 다시 트레이드 됐으나 은퇴 이후 2016년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OB맨이라고 하는 등 두산에 대한 애착이 크다. OB 소속이었던 1995년에 커리어 하이를 찍기도 했고.[128] SM은 유영진이 OB 시절부터 팬이라 많이 왔다. 그러나 슈퍼주니어의 경우 "양팀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드립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129] 이쪽은 카라 멤버들이 시구를 많이 했다.[130] 그러나 수지는 시구만 하면 두산이 패배해 두산팬들이 그만 좀 불러오라고 화낸다. 직관패배 100%, 3전 전패, 그것도 전부 포스트시즌(2010년 플레이오프 4차전, 2012년 준플레이오프 1차전, 2017년 한국시리즈 4차전)인데다 시리즈까지 내준지라 더욱 처참하다. 이외에도 수지는 JYP 측에서 두산과 상관없는 등번호를 마킹해 두산 팬들에게 까였다.[131]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은 두산에서 시구한 적이 없다.[132] 특히 러블리즈는 서지수, 류수정이 시구 시타자로 나서 사상 최초로 선수에게 싸인받는 시구자가 되었으며 경기 당시 열정적인 응원으로 두산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반대로 트와이스는 두산팬들 사이의 인기와 별개로 LG 트윈스 시구를 많이 가서 '쥐와이스'라고 불리며, 정작 박진영이 두산 시구를 오자 형이 왜 거기서 나와 급 반응을 보였다.[133] 다만 TWICE는 같이 잠실 야구장을 쓰고있는 LG 트윈스에서 시구를 했다. 그러나 모모 나온 날인 2019년 4월 14일은 두산이 이겼는데 직캠에서 앞자리 두산팬 어린이가 울었다(...).[134] 이후로도 신수지 시구 또는 직관시 미칠 듯한 승률을 자랑한다.[135] 비슷한 사례가 공익목적의 시구와 행사를 많이 하는 SK 와이번스가 있다.[136] EXID는 멤버들 대부분이 키움 히어로즈 팬이다.[137] 2017년부터 운영사가 바뀌면서 르메르디앙호텔로 이름이 바뀌었다. 2021년 2월 28일 호텔 영업을 종료하였다.[138] 이로 인해 돡갤솩갤은 먹거리 떡밥이 끊이지 않는다.[139] 오재원한겨레신문 2015년 한국시리즈 인터뷰에서도 회식장소로 언급되었는데, 옛날에는 고박사 찰떡생고기도 많이 갔다고 한다. 다만 고박사 찰떡생고기는 이 팀보다 옆집 팀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주로 이용하는 가게로 알려져 있다.[140] 참고로 이때는 민주당계 정당(당시 더불어민주당, 민주평화당)이 전성기를 이룬 때여서 몇몇 팬들은 그를 향해 정치 야구라고 거세게 깠다.[141] 여담으로 2012년 한화 이글스에서의 시구는 JT 마블러스 시절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던 박찬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142] 후임 해리 해리스 대사는 kt wiz 시구를 맡았으며, 잠실시리즈 직관 인증을 올리기도 했다.[143] 롯데 자이언츠에서 두산팬으로 갈아탄 것으로 보인다.[144] 출처는 씨네21 인터뷰. 그간 야구중계 권유를 받았으나 야구를 중계하기 위해서는 2년 동안의 준비가 필요하며, 축구 중계에 집중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한다.[145] 참고로 시구날 시구시타를 가르쳐준 함덕주, 박치국의 싸인을 받아갔다. 시구자가 먼저 요청해 싸인을 받아간 사례는 두산 구단 사상 최초며, 열정적인 응원으로 두산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후 함덕주는 뉴이스트JR, 민현 싸인을 받아갔다.[146] 이 덕분에 전임 TV 동물농장 MC였던 한승연에 이어서 두산 시구를 하게 되었다.[147] 부작용으로 KBO 운영에서 삽질할 때마다 돡운찬이라고 까인다.[148] 2019년 초까지만 해도 1위였으나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무서운 속도로 역전했다.[149] 2007년 & 2008년 KS 패배. 2009년 PO 패배. 2018년 KS 패배.[150] 2020년 두산중공업의 자금난을 필두로 두산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됐고 결국 두산그룹 측이 "팔 수 있는 자산은 모두 내다팔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베어스 야구단은 팔 생각이 없다고 한다. 야구단을 팔아봐야 큰 돈도 안되는데다 현재 상황에서 프로야구단을 인수할 대기업도 없고 팬 충성도가 높은 서울특별시 연고팀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두산이 계속 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151]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장남이자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의 손자. 박정원 現 두산그룹 회장 겸 두산 베어스 구단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152] 두산 홈경기 때 잠실야구장 중앙출입문 옆에 박용곤 명예회장을 위한 주차공간이 따로 있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로 직관을 자주 왔다고 한다.[153] 대표적인 것이 대한체육회 회장 재임.[154] 1993년 윤동균 감독 시절.[155] 원년 김영덕, 1995년과 2001년 김인식, 2015/2016/2019년 김태형.[156] 다만 김동주의 경우 본인의 자업자득이라는 평이 많다. 자세한 건 김동주 문서 참조.[157] 멀리 볼것도 없이 롯데에 다시 없을 레전드 투수와 사이를 보면 답이 나온다!![158] 삼성 3회(1982, 2001, 2015), 롯데 1회(1995), NC 1회(2016)[159] 2007년, 2008년, 2017년, 2018년[160] 나머지 3번 중 2번은 파란색이 메인 컬러인 삼성 라이온즈이고 1번은 초록색-노란색을 메인 컬러로 썼던 현대 유니콘스.[161] 1995년 한국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뒀던 롯데 자이언츠도 그 당시 붉은색을 썼으나 이 당시는 소위 '스머프 색깔'이라 불리는 짙은 하늘색이 롯데의 상징 컬러였고 붉은색은 서브 컬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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