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주의(地公主義, Georgism)란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1897)의 주장에 따라 지대조세제(land value taxation)를 통하여 토지를 국유화하자는 사상을 말한다. 이하의 설명은 한국의 기독교 지공주의자(조지스트. Georgist)들과 이에 호의적인 이들의 주장일 뿐, 희년법에 대한 보편적 해석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에 주의하여야 한다.
레위기의 전체 구성을 보면 1장의 제사법에서 시작해서 25장의 희년법으로 끝나고, 26장은 이러한 율법들을 제대로 지켰을 경우에 받게 될 복과 지키지 않았을 경우에 받게 될 벌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27장은 부록이다. 레위기 율법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25장의 희년법인 셈인데, 이 희년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성경 전체의 맥을 관통하는 엄청나게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희년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매 50년마다 토지를 골고루 나누어 받게 된다. 그리고 모든 빚도 탕감을 받게 된다. 그야말로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경제적으로 리셋되는 것. 다만 희년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기록은 없다고 전해진다.
숭실대학교 교목실장
김회권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희년법은 단순한 규정이나 법칙이 아니라,
하느님이 구현하고자 한 '대안적 세계질서' 가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 사회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러한 대안적 세계질서를 구현하기를 부르짖는 신학 계열에서는 유독 희년을 강조하고 있다. 희년을 문자적으로 지킬 필요는 더 이상 없지만, 희년에 나타나 있는
하느님의 뜻에서 의미를 찾고, 그러한 대안적 세계질서를 이 땅에 구현하고자 하는 것. 이쪽 계열의 대표적인 단체에는 희년함께가 있으며, 평화누리, 성서한국,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도 이러한 정신을 따르고 있다.
이러한 신학적 입장에 따르면, 희년에 나타난 대안적 세계질서의 원리는 크게 2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
토지 가치의 공유와
생산 수단의 공평한 분배이다.
토지 가치의 공유란, 토지는
하느님이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준 것이므로 그 가치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지 가치의 공유를 부르짖은 19세기 철학자가 있으니 바로
헨리 조지 되시겠다.
헨리 조지는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어 주는 것을 한 단계 응용하여, 토지에 문자 그대로 세금 폭탄을 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렇게 거둬들인 세금을, 마찬가지로 레위기에서 강조하고 있는
사회적 약자 보호에 활용하자는 것. 이것을
지공주의라고 한다.
또한
생산 수단의 공평한 분배는 당시 토지가 농경을 통해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생산 수단이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당시
이집트나 가나안 사회에서는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들이 토지를 독점하고, 대다수의 민중들은 그들에게 종속되어 그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경제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신앙의 기본 정신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것. 따라서 희년 율법에서는 이렇게 생산 수단이 소수의 권력자와 부자들에게 독점되어, 그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민중들을 착취하여 배를 불리고, 반대로 민중들은 뼈 빠지게 일하고도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는 경제 체제를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생산 수단으로서의 토지를 나누어 받고, 아무도 그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경제 체제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이러한 희년의 원리를 산업 사회에 응용한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의 생산 수단인 기업을 소수의 기업가들이 소유하는 것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협동조합에서는 기업 구성원들 모두가 출자금을 냄으로써 기업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다. 모든 기업 구성원들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가치를 분배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뭐 거창한 것 같지만, 썬키스트와
바르샤도 일종의 협동조합이다.)
따라서 희년에 나타난 대안적 세계질서는 소수에게 생산 수단이 집중되는
이러한 세상이나, 아무도 생산 수단을 가지지 못하는
이러한 세상 모두를 거부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뜻한다고 할 수 있겠다. 괜히 이러한 신학 노선의
최종보스인
김회권 교수가
이러한 체제나
이러한 체제를 가루가 되도록 까는 게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경제적 율법은 권력자와 부자들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사회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나마 잘 지켜진 것이
다윗과
솔로몬 시절인데, 역사서에서 다윗과 솔로몬을 극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실제로 솔로몬 시대에는 이러한 경제적 율법이 잘 지켜져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곧 자기 생산 수단을 공평하게 나누어 받았다고 한다. (열왕기 하권 4장 25절)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율법은 솔로몬 사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엘리야가 활동할 때쯤에는
희년? 그거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아모스를 시작으로
이사야,
미카,
예레미야,
에제키엘 등등의 예언자들이 이러한 사회적 불의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미카는 욕까지 하고 있다! 한편 이들은 이러한 대안적 세계질서를 이 땅에 세울, 곧 정의를 실현하고 그 정의를 통해 평화를 구현할 메시아가 이 땅에 올 것을 예언했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욕까지 늘어놓으며 이러한 사회적 불의를 규탄한 미카는 자기 책 4장에서 메시아가 가져다 줄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예언하면서, 열왕기 하권 4장 25절을 재방송하여, 모든 사람이 생산 수단을 골고루 나누어 받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그것 외에도 웬만한 예언서에는 메시아가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여 이 땅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53장에서 대놓고 메시아를 예언한 이사야서에는 61장 1~2절에서 이 메시아가 대놓고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민중들에게 희년을 선포하여 이들을 핍박과 착취의 쇠사슬에서 풀어 줄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
나중에
예수는 바로 이
이사야 61장 1~2절을 인용하여 자신이 바로 거기에서 예언한 메시아로써, 묶인 이들과 억눌린 이들에게 그러한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선포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고 눈 먼 이들이 눈을 뜨도록 해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말했다. (
루카 복음서 4장 18~19절)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3일 만에
부활함으로써 이러한 예언을 성취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어려우니까 교회 지도자들이 잔뜩 요약에 또 요약을 거듭해서 간단하게 추려 도그마를 만든데다가, 또 교회가 세속화되어 세상의 불의한 사회 구조나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상실하는 바람에 정작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현대의 교회에서 찾아보긴 굉장히 어려워졌지만, 분명히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면 이렇게 나온다. 단지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따라서 레위기 25장의 희년 율법은 단순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핵심 주제인 '대안적 세계 질서로서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압축적으로 보여 주고 있으며, 이 희년 메시지는 이사야서 61장을 거쳐
루카 복음서 4장으로 이어진다.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대안적 세계 질서를 이 땅에 구현하여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할 것을 부르짖는 사회 신학 계통에서 희년을 유독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