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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1. 개요[편집]

모르드바인은 볼가 강과 오카 강 사이에 거주하는 핀-우골계열 민족으로, 러시아 연방 내 거주하는 핀-우골계 민족 중 가장 인구 규모가 큰 민족집단이기도 하다. 2010년 기준 인구는 744,237명이며 모르도비야 공화국을 중심으로 거주한다. 몰도바인이랑 헷갈리는 사람이 많지만, 몰도바인은 루마니아인과 거의 같고, 모르드바인은 핀란드인, 에스토니아인과 나름 친인척 관계이다. 전혀 다르다.

2. 역사[편집]

모르드바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서기 551년 기록된 요르다네스의 연대기에서 언급된다. 서기 10세기 동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7세의 기록에 다시 Mordia라는 이름으로 이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고고학적 연구 결과 서기 6세기 당시 모르드바인 거주지역의 문화는 발트해 연안과 핀란드 남부 지역과 흡사했다고 한다. 키예프 루스의 네스토르 연대기에는 루스인들과 모르드바인들과이 전쟁에 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데, 루스인들의 계속된 침략에 맞서 모르드바인들은 거주 지역 각지에 요새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당시 모르드바인들은 한 명의 왕 아래 단결한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두 부족장들이 싸우고 있었는데 북쪽 지역의 지도자 푸르가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후에 모르드바-에르쟈인이 되었고, 남쪽의 지도자 푸레스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르드바-목샤인으로 갈라진다. 푸레스는 북쪽의 푸르가스를 물리치게 위해 루스인들과 동맹을 맺었다.

모르드바인들이 러시아인들을 끌어들여 서로 전쟁을 벌이던 상황은 13세기 말 몽골 제국이 동유럽을 침략하면서 끝장났다. 키예프 공국을 붕괴시킨 몽골인들은 모르드바인들이 세금만 많이 낸다면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했으며, 남부의 목샤인들은 이 시기 동안 킵차크 칸국의 타타르인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14~15세기 이후 킵차크 칸국이 붕괴되고 모스크바 대공국이 팽창하는 과정에서 북쪽의 에르쟈인들은 다시 러시아의 영향을 받게 되면서 에르쟈인과 목샤인은 비슷한 언어를 쓰지만 서로 조금씩 외양과 문화가 달라지게 되었다.

1552년 이반 4세카잔 칸국을 정복하면서 모르드바인들은 루스 차르국에 신민이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모르도비야로 이주해오고, 모르드바인들은 러시아 농노 제도에 편입되었다. 종종 루스 차르국의 가혹한 농노제도의 맞서 모르드바인들이 스테판 라진의 봉기에 적극 가담하였는데, 스테판 라진의 봉기에 참여한 모르드바인 중에는 알레나 아르자맛스카야라는 용감한 여장부도 있었다. 알레나는 아주 어린 나이 때 결혼했다가 남편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죽으면서 청상 과부가 되었던 여자였다. 수도원에 끌려갔다가 탈출한 그녀는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봉기군을 지휘하며 금새 유명해졌다. 그녀는 스테판 라진의 봉기군에 수백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합류하였다.[1] 아르자맛스카야가 남긴 인상은 스테판 라진의 봉기 이야기가 민요로 전래되는 과정에서도 함께 후대에 전해졌다.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 사이에는 러시아 제국에서 정교회 성직자들을 보내어 그동안 명목상으로만 기독교를 믿고 실질적으로 토속신앙을 믿던 모르드바인들을 본격적으로 정교회로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정교회로 개종하고 러시아어를 배운 모르드바인들은 상당수가 모르도비야를 떠나 타 지방에 이주정착하면서 러시아인들과 완전 동화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19세기에는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이 모르드바인들이 자신들과 언어와 문화가 비슷하다는 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들에 대해 연구조사를 하고 기록을 남긴 덕분에 모르드바인들의 민족 문화가 상당수준 보존될 수는 있었다.

[1] 농민 봉기가 흔히 그렇듯 스테판 라진의 봉기도 결국 진압되고 아르자맛스카야도 라진과 함께 붙잡혀 공개처형을 당하였지만 둘 다 고문 후 처형당하는 와중에도 목소리 하나 내는 법이 없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