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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Tigris_river_Mosu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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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الموصل‎ (al-Mawṣil)
북부 메소포타미아 방언: el-Mōṣul
쿠르드어: مووسڵ (Mûsil)
아시리아어: ܢܝܢܘܐ (Nînwe)

1. 개요2. 역사3. 이라크 내전4. 관련항목

1. 개요[편집]

이라크 북부 제일의 도시이며, 인구 약 180만이다. 바그다드에서 북쪽으로 400km 떨어져 있다.[1]

2. 역사[편집]

티그리스 강의 서쪽에서 발달했으며, 강 동쪽에는 옛 아시리아의 니네베(니느웨)가 있었던 곳이다. 그러나 도시화에 따라 강 양쪽으로 도시가 확장됐다. 쿠르디스탄의 중추 지역으로써 오토만조가 사파비조를 찰디란 전투에서 처발르고 쿠르디스탄 및 메소포타미아를 획득하여 투르크의 통치를 받았다. 1차 대전 이후 아랍 이라크가 영국의 보호하에 독립하고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터키 공화국[2]과 국경을 정할때, 모술을 포함한 북부 이라크지역(구 오스만 제국 당시 모술 주)의 다수 민족이 튀르크멘과 쿠르드임을 들어 민족자결주의원칙에 따라 터키에 속한다는 사실을 확인받았으나, 영국측에서는 이 지역에서 채굴되기 시작한 석유에 욕심을 들이고 있었고, 터키측에서도 튀르크 민족국가를 형성하는데에 이 지역이 혼란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미적지근하게 나서면서 결국 1923년 로잔 조약당시 터키측에서 영유권을 포기했다. 로잔 조약당시 터키 공화국측이 영유권을 포기한 지역이 이 외에도 이집트키프로스가 있는데, 둘 다 당시에는 사실상 독립상태이고 명목상 종주국만 오스만 제국이었던 상황이었음에 비해 모술은 1923년까지도 오스만 제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예외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 들어서 모술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터키인들이 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군 자이툰 부대가 비전투병으로 파병간 지역이기도 하다.

작물 모슬린이 도시 모술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 지역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나무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Women_in_Mosul_Spring_Festival_-_1977.jpg

이랬던 시절도 있었다. (1977년 모술의 봄 축제 모습)

3. 이라크 내전[편집]

2014년 6월 9일 이후 다에시(ISIL)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그들이 지배하는 지역 가운데서는 가장 큰 도시이다.

다에쉬는 제일 먼저 모술의 감옥에 갇혀있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범들을 전면 석방(!)하고 지하디스트로 포섭했으며, 차량 퍼레이드를 벌인 직후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 형상의 동상들과 조각들을 파괴하고, 기독교 교회를 때려부수고 이슬람 센터로 개조하는가 하면, 샤리아를 전면 시행하여 공포 정치를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성들은 부르카를 강제로 착용해야 하며 그렇지 않은 여자들이랑 비무슬림 여인들은 대놓고 성노예로 만들어버렸으며, 공개 투석형과 도둑질에 대한 손목 절단형을 대놓고 시행하고, 모술의 동성애자를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죽이기도 했다.

모술의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지만,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에시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내야 한다. 문제는 전쟁통에 그런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으므로(...) 사실상 200만 가까운 시민들이 다에쉬에 인질로 잡혀있는 신세나 다름없는 것. 거기다 이라크 정부군은 모술을 탈환하기에는 너무나 무능하고, 쿠르드족은 자기들의 영역이 아니라고 봐서 모술 탈환에 소극적이라[3] IS 점령 이후 1년이 넘은 상황인데 장기적으로 탈환 전망에도 답이 없다.

부수고 죽이고... IS 모술 정복 1년

2016년에 들어 이라크 정부군을 필두로 한 반 다에쉬 세력의 공세에 다에쉬가 밀리고, 이제는 다에시 측에서 주요 거점이었던 모술의 함락까지 걱정하며 수비전을 준비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군의 모술 탈환의 가능성이 계속 점쳐지고 있고, 다에시 지도부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지하드 전사들의 사기 저하와 공습으로 인한 자금 손실에 고민하고 있으며, 심지어 13살 여자 아이들까지 위안부으로 무장시켜 모술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칼 같이 집행되었던 복장 규제나 잔혹한 샤리아 형벌도 최근엔 자금이 궁해져서 직접 형벌 대신 벌금 거두기로 대신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보석금을 많이 내면 샤리아를 위반해 감옥에 들어가도 쉽게 나올 수 있다고 한다.

2016년 5월 30일, 이라크 쿠르드족 세력인 페쉬메르가 측에서 5500명의 군대를 동원해 소수 민족들이 주로 살고 있는 동부 모술의 9개 마을을 다에시로부터 탈환했다. 이들은 다에쉬 지하디스트 140명을 사살하고 차량폭탄 14개도 파괴했다.

현재 갈수록 패색이 짙어가는 모술에서 다에시가 최후의 발악으로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이번엔 성노예가 되기를 거부한 비무슬림 여성 19명을 불태워 죽이는 짓을 저질렀다.

6월 19일 현재 이라크군이 팔루자를 탈환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제 이라크 내 다에시의 거점은 이곳 하나만 남았다. 이라크군이 이제 모술에 전력을 집중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이곳의 다에시 또한 몰락을 피하기는 불가능할 듯.

7월, 전황은 다에시에게 계속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7월 9일 이라크 정부군은 모술 부근 공군 기지를 탈환했으며, 7월 13일에는 모술 부근 마을 하나를 더 탈환했다. 앞선 7월 11일에는 미국이 모술 탈환 작전을 대비해 미군 560명을 추가 파병했다.

8월 4일 미 국방부가 모술의 다에쉬 세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다에쉬는 전투 실패시 처형하는 극강수를 두고 있다고 한다. 적어도 2016년 하반기에 모술 탈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10월 17일, 다에쉬로부터 모술을 탈환하기 위한 작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고 한다. 모술 주민들은 음식을 사재기하고 있으며, 다에쉬는 긴급히 지하 땅굴을 파고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주민들을 처형하며, 부상한 대원들은 시리아라카로 피신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라크 정부군 약 6만, 페시메르가 4만, 준군사조직 1만의 병력이라고 한다. 약 5천으로 추측되는 다에쉬 전사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지만, 도시 곳곳에 지뢰와 폭발물을 설치함으로 인하여 수주에서 수월에 달하는 전투가 될 것이라는 예상.

# 미 지상군이 투입이 확인되었다. 대규모 육군병력은 아니고 수백명 정도가 작전 지원을 위해 투입되었다. 정밀폭격 유도를 위한 Joint Terminal Attack Controller 병력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2016년 11월, 2년 4개월만에 이라크군이 입성하였으며, 다에시와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다.# 다에시는 이라크군이 탈환한 모술 지역을 포격하고 있다.#

2017년 1월 18일, 이라크군이 모술 동부(티그리스 강 동부)를 완전 탈환했다.# 그리고 2월말. 모술 동부를 이라크군이 탈환하며 타격을 입은 다에시 쓰레기 왕초 자칭 칼리프 알 바그다디이라크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이라크내 잔존 병력들에게 자결하거나 도주해서 게릴라전을 하라고 지시했다. 다에시들이 거둔 점령지 가운데 가장 큰 도시이자 본거지나 다를 거 없던 모술을 도로 빼앗겼다는 점은 크나큰 타격일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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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MOSUL GREAT AGAIN!"

앞으로 모술 북서부 지역만 탈환하면 되는데, 다에시의 마지막 발악으로 피해가 심할 것으로 예상이 된다. 다에시는 2017년 6월 21일 자기들이 칼리프 선언을 했던 모술의 명물 알-누리 모스크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이미 해방되었던 모술 서부 일부 지역 및 티그리스 강가 일대의 병원 지역을 다에시들이 갑자기 장악하는 일이 벌여져,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다행히 6월 31일 현재 지지부진하던 구시가지의 장악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일단, 다에쉬가 모술에서 축출이 되면 이라크의 모든 주요 근거지를 상실하고 시리아로 쫒겨나게 되며 하위자 등의 땅이나 시리아 국경 일부를 점유중인 잔당들을 제외하면 이라크 내전이 사실상 종료를 맞게 된다.

해방된 모술 화보 - 2017.5.29.

물론 시아파민병대가 수니파를 문제의 원인으로 보고 보복행위를 하려 들 가능성도 있는 등 여전히 시아-수니간의 종파분쟁소지가 있을수 있으나, 이라크 정부가 2016년 이후로 통제력을 되찾으면서 진정될 기미가 보이고 이라크 쿠르디스탄이 문제가 될 소지는 있으나 애초에 이라크의 쿠르드인은 후세인 축출 이후로 미국에 의해 광범위한 자치권을 보장받았고 정부에 협력중이었으므로 전후 다에쉬를 2년동안 탱킹한 공로로 자치권이 확대되는 사실상의 분리 독립선에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4]


드디어 이라크 정부군이 모술 탈환 작전 1년만에 모술을 IS로부터 사실상 탈환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라크군의 이라크내 IS 최대거점 모술 완전 탈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IS가 모술에서의 패배가 짙어지자 자폭테러와 도주로 이라크군에게 저항하고 있다.

작전개시 9개월만에 이라크군의 모술 완전 탈환이 마침내 임박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모술 완전 탈환으로 이라크와 IS와의 전쟁이 완전 끝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이라크 북,중부의 탈아파르와 하위자, 이라크-시리아 국경 지역의 IS의 점령지들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모술 탈환 후 이라크 내전의 전세는 탈 아파르와 하위자, 이라크-시리아 국경 지역의 IS 세력들에 대한 이라크군의 토벌 공세로 시작 될 것으로 보여진다.

2017년 7월 9일, 모술 탈환이 공식 선언되었다. 작전개시 9개월 만에 값진 승리를 이루어낸 것. 하이델 알 아바디 이라크 총리가 직접 모술에 방문하여 승리를 선언했다. 다만 IS가 도망치거나 섬멸되면서 남긴 부비트랩이나 탈환 과정에서의 전투로 인해 도시가 폐허가 되어 인프라 재건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모술 탈환 이후 현재 이라크 정부군의 통제 아래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고 있다.

4. 관련항목[편집]

[1] 그러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2] 정확하게 말하면 공화국 수립 이전의 일로 '터키 대국민회의'(Türkiye Büyük Millet Meclisi)라고 불리었다.[3] 그런데 이걸 욕할 수만은 없는 게, 이라크처럼 부족주의/종파주의가 극심한 나라에서 쿠르드 군사조직이 수니파 최대 도시인 모술을 점령하려고 시도했다가는 전투 과정에서의 피해는 둘째치고, 점령에 성공한다고 해도 극심한 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시아파들은 이라크 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 가능성이 있지만, 순니 아랍보다 더 소수인 쿠르드가 모술을 차지했다가는 순니, 시아 양쪽의 반발과 경계심이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도 있다.[4] 다만 이라크 쿠르디스탄은 신자르 일대를 텃밭으로 삼고 시리아의 로자바 정부와 밀접한 PUK와 현 자치주 통령의 소속세력이자 터키와 밀접한 PDK로 이라크 쿠르드자치주의 정치지형, 군 전투서열까지 양분되어있어서 상황에 따라 쿠르드자치주간 내분이 벌어질수도 있으며 덤으로 자국의 고토라며 호시탐탐 모술을 노리던 터키가 개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