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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연방 공화국
ပြည်ထောင်စု သမ္မတ မြန်မာနိုင်ငံတော်‌
국기
국장
공식명칭
미얀마 연방 공화국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면적
676,578km²
인구
55,123,814명 (2017년 통계)
수도
네피도(Naypyidaw)[1]
최대 도시
정치체제
대통령
틴쩌 (ထင်ကျော်)
국가고문
GDP
723억 6800만$ (2017년 추정)
1인당 GDP
1,375$ (2017년 추정)
통화
(kyat, 챠트)
공식 언어
종교
불교 87.9%, 그리스도교 6.2%, 이슬람교 4.3% 등[2]
종족구성
버마족 68%, 샨족 9%, 카렌족 7%, 라카인족 4%, 몬족 2%
HDI
0.556(2015)
국제 전화
+95
도메인
.mm

미얀마어: တ나무파일:attachment/미얀마/burmaname.png ​နိုင်​(삐다운주 산머다 며마 나인응안도),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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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국호3. 인구 및 민족4. 분리주의5. 지리6. 역사7. 경제
7.1. 마약 수출국
8. 군사9. 외교
9.1. 중국, 미국9.2. 러시아9.3. 영국9.4. 동남아9.5. 일본9.6. 한국, 북한과의 관계
10. 문화
10.1. 언어10.2. 종교
11. 과학12. 스포츠13. 여행 정보14. 국가 상징
14.1. 국기14.2. 국가
15. 대중매체에서의 미얀마

1. 개요[편집]

정식 국명은 미얀마 연방 공화국이다. 미얀마 군사 정권이 20년 만에 2010년 11월 7일에 실시하는 총선거를 앞두고 국기, 정식 국명을 변경했다. 이전의 국명은 '미얀마 연방(삐다운주 며마나인응안도)'. 1988년 미얀마(며마삐 혹은 며마나인응안)로 개칭하기 전인, 버마(버마삐)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현재의 수도인 네피도(Naypyitaw)의 원래 이름은 핀마나(Pyinmana)로 내륙의 작은 지방 도시였다. 네피도의 뜻은 황도(皇都), 즉 '제국의 수도'.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양곤(Yangon, 1989년 이전엔 랑군)은 예전의 수도다. 2005년에 먼저 판미라로 행정 수도를 옮기고, 2006년 판미라를 네피도로 이름을 바꾼 뒤 공식적으로 네피도로 수도를 옮겼다.

2. 국호[편집]

이 나라에 대한 공식 호칭은 아직도 뜨거운 감자인데, 이는 현 미얀마 정부에 대한 인정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영국 등 꽤 많은 국가가 지금도 주야장천 버마(Burma)라고 부르며, BBC World News는 버마라고 부른다. 한편, 미국 CNN International은 미얀마(Myanmar)라고 부른다.

과거의 명칭이었던 '버마'는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민족인 버마족의 나라라는 의미였다. 여러 민족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미얀마라는 단어의 어원이 결국 버마이기 때문에, 다민족성을 표방한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는 지적이 있다. 무엇보다, 1989년 미얀마 연방 공화국으로 국호를 개칭할 때 그에 관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군부에서 지정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군부의 독단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버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 산 수 지 여사는 버마라는 단어를 사용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는 입장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미얀마라고 안 부르고 그냥 버마로 부르고 있다. 이는 정통성에 관한 논란에서 비롯된 것인데, 미얀마가 군부가 임의로 개칭한 국호라는 이유로 군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언론들이 주로 버마라고 부른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버마와 미얀마로 부르는 언론사들이 따로 있다. 아웅산수지 여사가 방한했을 때, 국내 언론사들에게 미얀마를 버마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참고로, 버마로도 여기에 들어올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꽤나 오랫동안 버마라고 부르다가 미얀마로 고쳤고,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는 국내 체류 미얀마인들은 현재의 공식 명칭인 미얀마는 독재 군사정권이 일방적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버마라고 표기해 달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국기를 사용할 때도 옛날 국기(아래의 버마 연방 국기)를 사용한다. 경향신문2007년부터 국내 언론사 중 최초로 미얀마의 표기를 버마로 바꿨다.#어느새 다시 미얀마로 바꿨지만

그런데 이게 어느 쪽이 옳다고 하기가 애매한 면이 있는 게, 원래 이 나라의 이름은 미얀마였는데,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버마족의 이름을 따와 버마라고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재정권이 바꾸었기 때문에 미얀마라는 호칭을 부정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 하겠다. 또 버마 민족의 민족주의를 거세하는 이름이란 점에서도 양날검이라 하겠다. 그러나 미얀마 또한 어원은 버마족에 두고 있다. 오히려 영어판 위키피디아 해당 문서에 서술된 바에 의하면 버마(Bama)가 myanma에서 변성된 것으로, '버마'든 '미얀마'든 버마족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일본에서는 '버마'를 표기시 비르마(ビルマ)라고 쓴다. 한때 한국에서는 일본 매체의 영향으로 버마를 '비르마'라고 표기한 사례 역시 숱했다고 한다. 또, 인하대학교 사학과 최병욱 교수의 저서 『동남아시아사』에 따르면 1102년 버마족의 이웃이었던 몬족의 비문에 버마족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Mirma'란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서에는 이를 음차한 것으로 보이는 '면전(緬甸)'이란 표기가 등장하고.

몇몇 맞춤법 검사기는 버마라는 국명이 예전의 이름이라 하여 일괄적으로 미얀마라고 수정하기 때문에, 정작 버마와는 상관없는 '버마재비(사마귀)'까지 졸지에 '미얀마재비'가 되기도 한다(...). 거기다가 '재비'를 따로 보고 '제비'로 수정해 버리면 미얀마제비 완성(...) 참고로 '버마재비'의 어원은 + 아재비.

결국 수 지 여사가 집권했지만 미얀마든 버마든 상관 없다 밝히면서 국호는 그대로 유지될 듯 하다.

3. 인구 및 민족[편집]

국토 면적은 약 677,000㎢(남한의 약6.7배)이며 인구는 약 5,149만 명(2014). 미얀마인의 종족 구성은 버마족이 약 68%, 샨족이 9%, 카렌족이 7%이며 기타 소수 민족도 16%에 이른다(2008). 나라크기에 비해 민족 구성이 대단히 다양하며 100여개가 넘는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중국보다 더 많다.) 공용어는 버마어이지만, 소수민족들의 언어들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식민지였던 영향으로 영어도 주요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지방행정은 일곱 주(states, ပြည်နယ်)와 일곱 성(regions, တိုင်းဒေသကြီး: 과거에는 divisions)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省) 지역은 버마족이 중심인 지방들이고, 주(州) 지역은 소수민족이 중심인 지방들이다. 주는 카친, 카야, 카인, 친, 몬, 라카인, 샨 주가 있고, 성은 양곤, 사가잉, 타닌타리, 바고, 마과이, 만달라이, 아예야와디 성이 있다.

4. 분리주의[편집]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그러듯이 소수 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극심하다.[3] 버마족과 소수민족들 간의 갈등이 폭발한 계기는 영국의 식민 통치 시기의 소수민족 우대 및 민족, 종교 간 분열 정책이다. 미얀마 인구의 다수를 점하고 있음에도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버마족이 독립 이후 미얀마 사회의 주도층으로 부상하면서 소수민족들에 대한 차별과 보복이 자행된 것이다. 이에 각지의 여러 민족들이 버마족에 대항해 무기를 집어들었고 곧바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미얀마의 독립과 함께 시작된 내전은 아직 현재진행중이기는 하나, 미얀마 정부와 굵직한 반군들 사이에 개별적인 휴전 협정이 타결된 이후로는 차츰 잦아들고 있다. 2010년대 현재 어느 정도 민주화된 미얀마에서는 라카인족, 샨족, 몬족, 카친족, 카렌족 등의 전통적인 반군 조직들과의 예전처럼 큰 교전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버마족과 여러 소수민족들 간에 증오와 앙금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이들은 미얀마 역사의 오랜 부분을 부대껴 살아왔고, 같은 상좌부 불교 문화권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부 카렌족과 카친족의 기독교계열 반군과는 여전히 대립하고 있지만 8,90년대에 비하면 매우 완화된 수준이다. 하지만 일부 소수민족에 대해서는 미얀마 정부에서 아직도 매우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무슬림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청소 문제가 있다.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족을 아예 인도, 방글라데시로 추방시키거나 자국 내에서 완전히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삼고 있다. 처우 개선은 전혀 없이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불교 사찰로 개조하는 등의 행위로 국제사회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고 있으며 무슬림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차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시킨다. 그런데다가 무슬림인 로힝야족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러다보니 로힝야인들에게서 불교와 미얀마 정부에 대한 증오는 깊어져 가고있다.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로힝야 무장단체들이 결성되어 테러가 벌어졌다. 이렇게 헬게이트가 열렸음에도 미얀마 정부는 그저 군대투입과 같은 강경책으로만 나가며 억압만 일삼으며 각종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여기에 무슬림들의 추방을 강행하고 있는데, 여기 거주하는 무슬림들은 반발하고 있으며 반군들의 보복으로 불교도 버마족들을 공격, 살상하면서 당연히 이주하려는 사람이 뚝 줄었다.

2012년에 일어났던 무슬림과 불교도 간의 폭력 사태도 로힝야족 남자들이 불교도 여자 어린이를 집단 성폭행하고 산 채로 불태워 죽였고 당시 피해자 가족 등은 가해자들을 처단하겠다고 가해자를 내놓으라고 로힝야족에게 요구했지만 그걸 거부하고 모욕을 준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또 로힝야 족은 영국이 버마를 식민지화한 후 영국의 보호 아래에서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버마 족 입장에선 영국에 빌붙어 이득을 취하는 민족으로 앞잡이 같은 인식이였고 당시에는 로힝야가 버마 족을 차별을 하는 입장이였다.[4] 그리고 로힝야 무장단체가 이슬람 과격 단체의 지원을 받고서 최근에 결성된 것도 아니다. 시작은 1948년에 미얀마가 독립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수천 명의 불교도들을 축출하면서 발생한 반란이였다. 또 이후로도 1994년 한 마을을 습격하여 폭탄을 설치하여 주민에게 부상을 입힌 사건, 2014년 국경 경찰 4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고 2016년에는 수백명의 로힝야 족 남성들이 칼과 화기류로 무장하고 국경 경찰 초소를 공격하여 9명을 살해하고 2명을 사로 잡고 상당수의 화기와 탄약을 탈취해간 사건 등등 지난 몇 십 년동안 로힝야 족 무장 단체는 계속해서 존재해 왔고 말썽을 부려왔다.

비이슬람 계열인 카친족, 카렌족 등의 일부 반군 조직도 여전히 미얀마 정부와 투쟁하고 있으며 유혈 사태를 일으키고 버마족들을 보복 살해하며 저항할 정도로 원수지간이긴 마찬가지이다. 다만 카친족과 카렌족은 미얀마 정부군에게 탄압 받긴 해도 최소한 미얀마 정부에서도 자국 국민으로 인정하기라도 하지만 로힝야족은 그마저도 없다.

5. 지리[편집]

국토의 중앙을 2,170km 길이의 에야워디 강이 관통하고 에야워디(이라와디) 강 유역에 평원이 펼쳐져 있으며, 그 주변을 아라칸 산맥과 샨 고원 등 산지가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으며, 최북단엔 해발 5,881m의 만년설로 덮여 있는 동남아 최고봉인 카까보라지 산이 있다. 그러나 2013년 미국인 앤디 타이슨이 이끄는 등산대는 근처에 있는 감랑라지 산이 11미터 정도 더 높다고 발표하면서 카까보라지를 성스러운 산으로 받들던 미얀마에서 난리가 난 바 있다.[5] 현재도 감랑라지 산이 더 높은지, 아니면 종전처럼 카까보라지 산이 더 높은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산이 워낙 험해 제대로 측정이 어렵고 감랑라지 산을 1970년 처음 오른 러시아 등산대는 여길 5691미터로 측정했다가 나중에 재측정하니 5870미터가 나오기도 하고 5892미터가 나오는 등, 측정할때마다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아직은 카까보라지 산이 동남아 최고봉으로 인정받고 있다.

동쪽엔 길이 2,815km의 살윈 강이 흐르지만 워낙 절묘하게 산 속만 흐르는지라 에야워디(이와라디) 강만큼 중요하진 않다.

옛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양곤은 남부에, 행정수도인 네피도는 중부에, 역사도시인 만달레이는 북부에 있다. 그 북쪽은 동남아시아의 일반적인 풍경과 전혀 다른 티베트에서 이어지는 고산지대며, 반대로 남쪽의 길쭉하게 말레이 반도 입구까지 내려가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어디 가도 안 꿀릴 맑은 인도양의 해변이 아직 덜 개발된 채 산재해 있다. 옆나라 태국을 보면 세계적 관광대국의 조건은 갖추고 있지만 정권이 못 받아줘서 지금 같은 상태인 것.

버마의 기후는 건기와 혹서기, 우기로 나뉘며 여타 동남아지역과는 비슷하나 비교적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 한국의 겨울 즈음인 건기엔 밤엔 춥고 낮엔 따뜻하며 건조하고, 한국의 봄 무렵엔 극도로 뜨거운 날씨가 이어지다 5월에서 6월쯤 오면 우기가 찾아와 적게는 한국의 여름과 비슷한 800mm 정도부터 많게는 5,000mm를 넘는 많은 양의 비를 뿌린다.

에야워디 강 상류 지역은 열대가 아닌 아열대 기후를 띄고 있기에 건기의 밤엔 온도가 0도 가까이 내려가며 혹서기 때 같은 때도 그렇게 온도가 높진 않다. 만달레이 등의 중류 지역은 강수량이 1,000mm가 안 되는 곳도 흔할 정도로 건조한 지역으로, 혹서기엔 극도로 뜨거우며, 뻐꼬꾸처럼 강수량이 620mm까지 떨어지는 지역도 있다.

양곤이 있는 에야워디 강 하류 지역은 강수량이 2,500mm 정도로 많고 1년 내내 더운 편이다. 이 지역은 삼각주가 펼쳐져 있어 인구가 밀집해 있다.

서북부 해안의 시뜨웨 등의 라카잉 지역과 남동부 해안의 드웨 등의 뜨닝다이 지역은 바람과 산맥의 영향으로 강수량이 아주 많아 5,000mm를 넘긴다. 마지막으로 따웅지 같은 고산 지대는 1년 내내 온화한 고산기후를 띈다.

6. 역사[편집]

7. 경제[편집]


1930~40년대에는 아시아 최대의 생산국이었으며, 1960년대까지도 이런 위치에 있었다. 쌀 외에 티크(목재)도 수출하지만 군부 독재의 여파로 서방 국가들이 가하는 경제 제재 크리로 수출량은 매우 저조하다. 이는 쌀도 마찬가지로, 사실상 1988년 이후 수출길이 모두 끊어져 ASEAN 내부에서나 근근히 교역이 이뤄지는 형편.

놀랍게도 석유가 나는 산유국이다.(!!) 수출품목에 어엿하게 석유도 끼어있다. 해상 가스전도 현재 개발중이다. 포스코대우를 주축으로 해서 대한민국 대기업들도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각종 지하자원이 풍부하다.

지하자원 중 특이하게 보석 원석이 있다. 미얀마의 보석 생산량은 대단한 수준인데 세계에서 유통되고 있는 루비의 90%가 미얀마산이라는 통계가 있으며, 비취, 사파이어, 에메랄드 등의 생산량도 상당한 양이다. 이는 미얀마 군사정부의 주된 수입원이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미얀마에 경제 재재를 가할 때 금수 목록에 미얀마산 루비를 특별히 지정할 정도였다.

오랫동안 이어진 서방의 제재로 전반적으로 매우 낙후되어 있지만 풍부한 자원에다 인구도 6천만명에 육박하기 때문에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잠재력은 충분하다. 다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민족간의 갈등이 경제 발전의 걸림돌이다.

미얀마는 1999년부터 250만명의 자국 노동자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고 이 중 한국이 세번째로 많았고 1위가 태국이었다.#

7.1. 마약 수출국[편집]

놀랍게도 미얀마는 아프가니스탄다음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양의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고 가난한 농민들이 양귀비를 재배하고 심지어는 불교사원에서 엄청난 규모의 마약이 발견 및 적발되어서 미얀마 정부도 골치를 겪고 있지만, 마약근절상황은 아직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마약 생산 중에서도 특히 유명한 곳이 바로 골든 트라이앵글(마약). 미얀마 동부의 살윈강 유역 인근으로, 태국과 라오스, 미얀마 3국의 국경이 만나는 삼합점 부분이라서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은 1990년대까지 세계 아편 생산의 중심지였다. 이곳을 장악하던 마약 카르텔인 쿤사는 1995년 투항할 때까지 대규모 사병 조직을 가지며 지역을 장악했다. 쿤사가 투항한 뒤에는 카지노 사업과 차 재배로 업종을 바꾼 상태이다.

8. 군사[편집]


살생(殺生)을 금한 불교(상좌부 불교) 교리를 지키려는 불교 신도들의 시위로 1977년 3월 2일 징병제를 폐지하였다. 그러나 탄 슈웨의 군사 독재 정권 하에 있는 상황이라 소년 등을 상대로 불법 징병이 이루어지다가 2011년 1월 17일 경 다시 대놓고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9. 외교[편집]

국경을 맞닿은 나라와 사이좋은 곳이 없다. 라오스태국과는 카렌 족을 비롯하여 소수민족 문제랑 국경분쟁으로 갈등이 심하며 역시 방글라데시와도 해상영토 문제로 해상 무력 충돌도 여럿 벌였다. 다만 군사적, 경제적으로 압도적인 인도 공화국중국에겐 알아서 물러서고 이 두 강대국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경제적인 자원개발권같은 떡밥을 던져주면서 미국 및 해외 강대국들의 인권 및 여러 논란에 두 강대국을 잘 이용하고 있는 면도 크다.

9.1. 중국, 미국[편집]

미얀마는 친중성향이 매우 강한 나라이고 특히 군부시절에는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엔 지정학적인 이유로 미얀마는 외교에서 이득을 보고있다. 중국이 미얀마를 남중국해 지역에서 일어나고있는 미국과의 갈등에 대한 보험 또는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 중국은 남중국해 지역에서 미국과의 군사적 갈등이 더욱 심해질 경우 천연자원 수입 시 남중국해를 거치지 않고 미얀마에 내려 바로 육로로 옮길 계획이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미얀마와 중국을 잇는 파이프라인이 이미 건설되었다.# 때문에 중국은 당연히 미얀마에 잘해줄 수 밖에 없고, 이를 막기위해 미국도 미얀마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한다. 현재 미국과 중국 양대 강국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는 긍정적인 상태. 그리고 미국은 경제제재를 해제했다. 게다가 중국과 미얀마는 양국을 잇는 송유관 가동에도 합의를 했다.

9.2. 러시아[편집]

미얀마는 친중성향이 강하지만, 동시에 친러성향이 있다.

9.3. 영국[편집]

예전에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일부로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미얀마도 영어가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반영감정이 존재하고 있다.

9.4. 동남아[편집]

그나마 동남아시아 국가들중에서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캄보디아 등과는 사이가 좋은 편. 근데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와 베트남도 사이 나쁘다는 게 함정.[6] 특히 말레이시아의 경우 미얀마에게 중고 컴퓨터와 중고 버스와 택시 차량,차관까지 제공해주고 쌀,과일,맥주까지 수출,수입하는데다 두 나라 모두 인접국인 태국과는 역사적,정치적으로 사이가 나빠서 그런지 두 나라 관계가 몹시 우호적이다. 말레이시아군과 같이 태국을 협공하는 미얀마군도 나오겠다.

9.5. 일본[편집]

일본이랑 관계는 2차 세계대전을 치룬 적도 있고 기무라 헤이타로가 벌인 학살 때문에 반일감정이 매우 강한 나라였으나 현재는 비교적 일본에 우호적인 편. 원교근공의 법칙상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보험인 셈이다. 일본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1천억엔의 차관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완전히 좋은 편은 아니다. 기무라 헤이타로가 저지른 학살때문에 반일감정이 존재하며 미얀마에서 친일발언을 하면 무기징역을 받을 정도이다.

9.6. 한국, 북한과의 관계[편집]

1975년 한국북한과 동시 수교하였으나, 1983년 10월 9일 북한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때 아웅산 묘소에 테러 사건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북한과 국교를 단절하였다가, 2007년에 북한과 재수교했다. 하지만 그냥 데면데면한 사이다.

한국에는 부산외국어대학교에서만 미얀마어를 배울 수 있는 학과를 개설해 놓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산 중고 버스가 인기 있는 나라 중에 한 곳인데, 특히 미얀마에서는 한국산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히 강해서인지 아예 한국에서의 도색 그대로 운행하는가 하면, 아예 엉뚱한 버스에다가 한국식으로 새로 도색해서 운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실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이 좋고, 한류도 부는 국가다.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 영화는 물론, 뮤직비디오나 예능까지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또한 과거 한국에 미제 가게가 있었듯, 만달레이 등 대도시에도 꽤 큰 규모로 한국제 가게가 있고, 대형마트에도 한국 제품 진열대가 따로 있을 정도. 한국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관심은 꽤나 각별하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호의만 보이는 건 아니고 미얀마 노동자들이 한국이나 일부 현지진출 한국기업에서 일을 할 때 열악한 노동 조건과 동남아인 비하 분위기 때문에 고생했다는 경험담이 신문에 종종 실리기 때문에 불호를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다.

미얀마에서 한국이 알려지게 된 게 미얀마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때부터이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 알려지게 되고 인기를 끌게 된 건 2002년 가을동화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때 어떤 한국 교민이 미얀마TV를 보면서 중국드라마와 일본드라마가 방송되는 것을 보면서 한국드라마를 팔면 돈도 되고, 홍보도 되니까 일석이조라는 생각에 가을동화 테이프를 고위 간부 부인들에게 돌렸는데(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는데다가 자신도 미얀마에서 번역일이나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고위층과도 인맥이 있었다.) 고위 간부 부인들이 가을동화에 빠지면서 한국드라마의 수입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드라마가 수입되는 김에 한국 노래나 영화, 오락 프로그램도 같이 들어오면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7]특히 2010년대 검열이 풀리기 전에는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외국 드라마를 방영하는 것이 국영 방송사에서 광고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그 이유는 보도 프로그램이 막장인데다가 자체 제작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가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않았기 때문에 돈이 별로 벌리지 않아서 그랬다. 더군다나 미얀마의 주요 방송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방영할 때 비용 문제 때문에 더빙을 안 하고 자막으로 방영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안녕하세요, 사랑해요, 오빠, 언니, 누나, 아줌마, 아저씨 같은 간단한 한국말 정도는 구사하거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많다. 이는 고위층이라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현재 (명목상 외교부 장관이지만) 사실상 국가원수직을 지내고 있는 아웅산 수지나 전직 독재자인 탄슈웨도 한국 드라마를 꽤나 보고 있다는 후문이고, 탄슈웨 임기 후반기에 불멸의 이순신같은 인기드라마가 방영되었을때는 TV를 보느냐고 국무회의도 미뤄서 했을 정도였다.

여하튼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이 한국말 할 줄 모르는 줄 알고 욕을 하다가 딱 걸려서 곤욕을 치르는 한국인들도 종종 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라서 간간히 한국인들을 부자로 알아서 바가지를 씌우거나 한국을 선남선녀로 가득한 나라로 알거나 누구나 바람 한번 쯤은 피우는 성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곳으로 아는 미얀마인들도 좀 있다는 듯하다. 그래서 현지 한국 교민들과 자주 거래하는 미얀마인들은 드라마 속의 한국인들과 실제 한국 교민들을 비교해보면서 괴리감을 느끼기도 한다나 어쨌다나.(...) 그리고 미얀마 내에서도 한국드라마가 수입될때 소위 "막장드라마"가 방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편집 과정을 거쳐서 문제되는 장면들을 걸러낸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도 시청자들이 자주하는 지적인 과도한 선정성이나 폭력성, 등장인물들의 비윤리적인 행동(예를 들면 불륜이나 사기)같은것이 문제시 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볼 사람은 다 보기는 하지만(...)

10. 문화[편집]

10.1. 언어[편집]

공용어는 미얀마어로 지정되어 있다. 미얀마어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SOV어순을 띄고 있는 언어다. 미얀마도 다민족국가라서 카렌어 등의 각 소수민족언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도 예전에는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도 사용되고 있다.

10.2. 종교[편집]

기독교이슬람을 비롯한 다양한 종교가 퍼져 있지만 상좌부 불교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미얀마 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며 특히 남자들은 일생에 한 번이라도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어야 할 정도다.

종교적으로는 상좌부 불교 신자가 93~95% 이상으로 절대 다수다. 생활에서나 문화적으로 불교가 삶에 배어 있다. 거리에 나가면 아침마다 시주를 받으러 다니는 승려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절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만남장소나 공동체 모임도 많이 가진다. 미얀마의 남자들은 성인식 차원에서 몇 주에서 몇 달간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림이 문화적인 통과의례다.

근데 최근 들어서는 이런 것을 귀찮게 여겨 생략하거나 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추문에 시달리거나 소비지향주의에 많이 물든 땡중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또는 정식으로 비구계를 받으면 이런저런 계율을 지켜야 하므로, 일부러 평생 사미로 머무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한다.

불교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10계처럼 상좌부 불교의 5계를 일상적으로 지킨다. (살생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술과 마약을 삼가라) 그러나 도덕적으로 교육을 잘 받지 못 한 시골 사람이나, 가축을 도축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를 합리화하려고 각종 변명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미얀마 내 불교 종파는 선불교나 명상과 같은 일반인들도 참여하기에 어렵지 않은 특징을 내세운 신흥 종파도 두각을 드러내며, 불교계 각종 이슈는 비교적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미얀마 내에서 불교의 영향력이란 정말 어마어마해서, 드라마에서 스님이 등장하거나 왕실이 불교계 행사를 참여하는 것은 매우 보편적이다.

보통의 학교 교사들 또한 전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미얀마 문화와 불교 문화를 함께 가르치는 전인적 교육을 마땅히 해야 하는 사명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얀마인들을 어릴 때부터 깊이 있게 불교 문화에 스며든다.

절에서는 대승 불교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정통 상좌부 불교 문화가 많이 살아있다. 대승 불교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미얀마의 절에서 금박을 붙이고 연꽃을 합장 한 손에 끼우는 등의 행위가 많이 낯설 것이다.

불교가 존숭받는 나라답게 미얀마의 절들은 정말 크다. 보통 절들이 대학 캠퍼스만한 크기를 자랑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각종 역사적인 절들과 도심 곳곳에 자리한 절들 외에도, 새로 지어지는 절도 상당히 전국에 많다.

한편 미얀마 서남부는 이슬람의 세력이 전통적으로 강한 지역이다.

11. 과학[편집]

미터법을 공식 도량형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얀마는 비(非)미터법 3개국 중 하나다. (나머지 2개국은 미국라이베리아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미얀마 혼자 쓰는 (동아시아의 척관법과 비슷한) 전통적 도량형을 독자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미얀마를 식민통치한 영국의 영향으로 현재의 미얀마 단위계는 야드파운드법과 어느 정도의 호환성을 갖추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야드파운드법과도 혼용한다. 한 예로 미얀마 도로의 표지판에서 라틴 문자가 병기된 부분을 잘 보면 거리 단위가 마일로 표기되어 있다.

2013년 들어 미얀마에서도 미터법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12. 스포츠[편집]

스포츠론 다른 동남아국가와 마찬가지로 세팍타크로가 가장 인기있다.

70년대에만 하더라도 아시아권에서 축구 강호였으나 현재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약체. 자세한 건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참고할 것.

축구 인프라는 아시아에서 하위권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1년까지 AFC프레지던트컵에 참가했으며 2012년부터 AFC컵에 참가한다. 2010년 AFC프레지던트컵에서 야다나르본 FC가 키르기스스탄의 도르도이 비슈케크를 1-0으로 꺾고 우승한 기록이 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2개, 은메달1개, 동메달1개를 세팍타크로종목에서만 획득.

13. 여행 정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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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미얀마 여행경보 지도. 방글라데시중국, 라오스, 태국 접경 지역은 철수권고 지역이며 나머지 지역은 여행유의 지역이다.

치안 상황은 통제력이 강한 권위주의적 정권의 특성상 개발도상국임에도 상당히 좋은 편으로, 경범죄 발생률이 낮다. 미얀마 사람들도 불심으로 어디 가서 안 밀리는 나라답게 대체로는 온화하고 친절한 편이다. 그래도 엄연히 여행 유의 국가이며 국경 지대 등 일부 지역들은 철수 권고 지역으로 발령되어 있다. 간혹 불교이슬람교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경범죄 발생률이 낮은 건 의외는 아니라 곳곳에 사복 경찰이 깔려있다는 뜻이다.아니 대놓고 쪼리 신고 돌아다니는 제복 경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8] 무엇보다 미얀마의 경우 여행 경보가 발령된 이유는 다름 아닌 시위 때문인데,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 시위로 인해 여행객들이 휘말리기 때문에 저런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사복 경찰이 깔려 있는 것도 치안도 치안이지만 곳곳에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도 강하다. 다만 중국-태국 접경 지역은 위험하고 외국인 출입 금지 지역은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집트가 한때 그러한 시위로 인하여 국가적 위기에 빠진 것을 볼 때 내려진 조치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국경지대 마을에 한정하여 잠시 다녀오는 것 외에는 육로로 입국할 수 없으며 비행기로만 입국이 가능하였으나 2013년 8월에 태국-미얀마 간 4개의 국경을 통해 외국인의 육로 이동이 허용되었다. 에어아시아에서 방콕-양곤 구간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중. 2012년 9월 대한항공에서 인천 - 양곤 노선을 취항했고 2012년 12월에는 아시아나항공도 양곤에 취항했던 적 있지만 2016년 3월 1일부로 철수하고 만다. 여행자수표나 신용카드 등의 사용은 어렵고, 구겨진 달러는 받지 않으므로 달러 지폐는 신권을 구비해 가는 것이 좋다. 최근 미얀마 주요 도시에 ATM이 보급되었다.

과거에는 입국비처럼 강제로 일정액수를 날강도 수준이던 공식환율로 태환 을 환전해야 하는 법률이 있었지만 현재는 관광업에 악재라 해서 폐지되었다.외국인들이 많은 주요 관광지에서 환전하는 가게를 흔히 접할 수 있고(물론 가게마다 환율이 다르다!), 100달러가 제일 좋고 낮은 단위일수록 손해이므로 신중히 교환하자.달러나 짯 모두 받는 경우가 많지만 무조건 짜트로 낸다고 해서 이득인 게 절대 아닌 경우가 많다(…).

여행자들에게는 옛 수도이자 제1도시인 양곤, 제2도시이자 사가잉, 잉와 등 근교에 볼거리가 많은 만달레이, 고대 도시 바간, 소수민족인 샨족의 생활터전인 고산 지대의 인레호수 등이 유명하며, 그 외에도 북부 정글지대나 남부 나팔리해변 등이 속속 외국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도시간의 이동은 버스(주로 야간버스로 밤새 이동하게 된다)나 비행기를 통해 하게 된다. 그외 이동의 90%가 택시다. 참고로 택시비는 전부 흥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에 특히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로는 양곤크고 아름다운 황금 쉐다곤 파고다나 고대도시 바간이며 대한항공에서 밀어주고 있는 우베인 다리는 만달레이 근교인 아마라푸라에 위치하고 있다. 바간은 천년 전 바간 왕조의 유적인 100개가 넘는다는 파고다(탑)들이 장관이다. 앙코르 와트와 함께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 3대 불교유적지로 유명하다. 유적지 보존을 위해 외국인에게 지역입장료를 받는다. 미얀마 국민들은 불교를 보편적으로 믿고 이 파고다를 세우는 것을 최고의 공덕으로 여겨서 미얀마 국토 전역에 지금도 많은 수의 파고다가 세워지고 있다. 황금바위 짜익티요도 독특한 풍경으로 나름 유명한데 교통이 별로 좋지 않아서 아직은 숨겨진 보석 취급.

미얀마인들 또한 성격이 나쁘지 않고 여행자들에게 친절한 편이다. 현지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거의 없다.[9] 요약하자면 여행 인프라가 잘 되어있지 않아 다소 불편하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삼가면 상당히 안전한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다. 미얀마에는 인도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인도계를 조심하라는 말이 여행자들 사이에서 도는데 물론 전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확실히 인도계가 좀 더 대하기 불편한(...) 경향이 있다.[10]

미얀마는 특히 유럽 사람들이 선호하는 여행지다.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각종 천혜의 자연환경, 광범위한 고대유적들이 만나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태국과 달리 지역이 너무 커서 비행기로 이동해야 하며 각 지역마다 문화유적 보호를 위한 입장료를 받고 있는 점, 외국인에 대한 호텔 숙박비 등의 차별이 있어 물가에 비해 저렴하게 이용하기는 어려우나 그덕분인지 라오스태국의 저질 장기체류자가 없어 더 천혜의 여행지로 남았다고도 볼 수 있다. 육로가 개방된지 얼마 안 된 시점에서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태국에서 건너오고 있으므로 외국인에게 순수하고 친절한 미얀마 사람을 볼 날도 많이 남지 않았다.

이런점 때문인지 한때 아웅 산 수 지 여사는 외국에다 "절대 버마에 관광 오지마라, 당신들이 관광을 하면서 뿌리는 돈으로 군사독재정권의 살을 찌우는 결과가 생긴다."라고 얘기한적도 있다.

미얀마 여행시 주의사항은 아직까지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나고 그 시위에 휘말린다면 신변 안전에 보장을 신경쓰라는 것이다. 이 해당 사항은 자신이 여행도 여행이지만 여행 겸 특수 목적으로도 온 언론인들이 주로 해당된다. 일반인들의 경우는 시위 문제에서 손 떼고 여행만 하는게 미얀마 시위에 참여하는 국민들에겐 안타깝지만 낫다. 그러니 그 근처는 안 가는 것이 좋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는 해도, 한국인들도 시위에 동참한 홍콩과는 규모부터가 이미 다르다.

특이사항으로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이웃 국가인 인도, 방글라데시, 태국이 좌측통행을 함에도 1970년부터 우측통행을 하고 있다.

14. 국가 상징[편집]

14.1.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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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연방이었던 시절 사용했던 국기다. 1948년 1월부터 1974년 3월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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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부터 1989년 출범한 미얀마 연방 시절까지 사용했던 국기다. 파랑은 평화와 성실함을, 빨강은 용기와 단호 그리고 독립을 위한 혈투를, 하양은 청순함과 미덕을 상징하고 파랑 바탕에 있는 톱니바퀴와 벼이삭은 이 나라가 농업 국가임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농업을 통한 근면, 성실, 노동을 뜻하는 문장이다. 속뜻으로 농민과 농업 그리고 쌀 생산지임을 뜻하기도 한다. 얼핏보면 청천백일만지홍기와 거의 일치한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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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렇게 바뀌었다. 미얀마 군사정부가 총선을 앞둔 2010년 10월 21일에 바꾼 국기로, 1943~45년에 사용된 국기인 가로 삼색기에 꼰바웅 왕조의 국장이었던 공작새 문장 대신 오각별을 넣은 도안이다. 이전까지 사용된 국기와 공통점은 흰색 별이 유일하다.

국기의 황/적/녹 배열이 리투아니아와 같으나 리투아니아의 국기에는 별이나 문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황/적/녹 색깔이 미얀마 국기가 좀 더 밝은색이다.

14.2. 국가[편집]

'세상 끝까지(ကမ္ဘာမကျေ)'는 사야 틴(Saya Tin)이 1930년 작곡했으며 1947년에 가사를 붙여 같은 해 채택되었다. 도입부가 특이한데 미얀마 전통음악 형식이라고 한다.


00:42초부터

15. 대중매체에서의 미얀마[편집]

람보 4: 라스트 블러드에서 람보의 주요 활동 사냥터활동지로 나온다.

[1] 2006년까지는 양곤 [2] 월드 팩트북 [3] 영화 람보 4만 해도 미얀마가 저지르고 있는 소수민족 탄압의 악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4] 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 당시 카친족이나 카렌족, 샨족등도 마찬가지였다.[5] 미얀마는 세계 최초로 이 산을 등정한 게 일본인(1996년 오자키 타카시랑 2명의 티베트인 셰르파가 등정)이고 이후 외국인이 연이어 올라간 것에 불만을 품고 2014년 8월, 미얀마인으로만 이뤄진 등산대를 보냈으나 이들은 조난당 해 2명이 행방불명되어 사망처리되었고, 구조 헬리콥터까지 추락하여 조종사 1명이 죽으면서 등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장비도 개판이고 제대로 준비를 하지 않은 채로 그냥 올라간 게 드러나서 미얀마만 개망신당했다(...) [6]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와 베트남은 역사적, 외교적으로 사이가 무척 안 좋다. (자세한건 이웃나라/안 좋은 사이,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문서 참조.) 실제로 동남아시아를 여행갔던 한국인 관광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지에서 베트남에서 사온 베트남 전통모자인 농라를 쓰고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들어가려던 베트남인 관광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캄보디아인들이 욕을 퍼붓고 현지 관리인이 강력하게 저지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인들의 베트남에 대한 반감은 무척 심하다. 우리로 치면 일본을 여행갔다 배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들어간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 관광지에서 사온 카부토 투구를 쓰고 경복궁이나 세종대왕릉, 진주성등 한국 관광지를 관람하려다가 한국 현지인들에게 욕 얻어먹은 것과 비슷한 격.[7] 그 한국 교민은 번역 외주를 맡는 회사를 따로 차려서 한국드라마와 영화, 노래를 번역하는 일로 돈을 거하게 벌어먹고 있다고 한다.[8] 불교 사원은 기본 맨발 출입이고, 어차피 더워서 샌들이나 슬리퍼 류 신는 게 백배 낫다.[9] 택시 같은 경우도 일단 어디로 가면 추가요금 내야 한다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멋대로 가놓고 돈 더 요구하질 않는다![10] 실제로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시내에 돌아다니며 환전해주는 인도계 사람들이 있는데, 돈을 접어놨다가(...) 두 번씩 센다던가 하는 식으로 사기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지인이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냐고 혼낸다 환전 후 그 자리에서 직접 세보도록 하자. 사실 그냥 길거리 환전을 안 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요즘은 은행에서 환전해도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도 않고.[11] 이 때문에 예전에는 국제적인 체육대회가 열리면 대만 측에서 이 깃발을 흔들곤 했다. 왜냐하면 중국의 압력으로 자국의 깃발을 반입할 수 없자 대신에 이와 비슷한 미얀마 깃발을 들고와서 흔들면서 본인들의 애국심을 표출했다. 하지만 미얀마가 국기를 바꾸면서 이제는 모든 것이 옛일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