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 · · · · · · · · · · · ·
숫자 · 라틴 문자
· · · · · · · · · · · · ·
숫자 · 라틴 문자
火垂るの墓/Grave of the Fireflies

1. 내용2. 등장인물3. 원작과 작가4. 감독의 의도5.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관점
5.1. 다른 관점의 해석
6. 이야기거리
6.1. 7,000엔의 행방은?
7.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

1. 내용[편집]

1967년에 출간된 노사카 아키유키[1]의 단편 소설과, 1988년 개봉된 동명의 지브리제 애니메이션이 가장 유명하다. 2005년에는 실사 드라마와 2008년에는 실사영화도 제작되었다. 애니메이션 영화 감독은 타카하타 이사오. 애니메이션은 원작 소설에서 생략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사를 포함해 원작 시간순으로 98% 충실하게 옮겼다. 드라마와 실사영화는 각색이 많이 되었다.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 전 소규모 상영회에서는 반딧불의 묘가 아닌 '반딧불의 무덤'으로 번역되었다. 원제인 火垂るの墓는 '호타루노 하카'로 읽는다. 墓를 음독하면 보(ボ). 훈독해서 하카. 호타루노 보로 읽지 않고 원제가 호타루의 하카로 읽는다면 한국어 번역도 '반딧불이의 무덤'이 보다 정확한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간략한 내용은 주인공 세이타, 세츠코 남매가 태평양 전쟁 중 겪는 피난생활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남매가 태평양 전쟁통에 군인이었던 아빠를 잃고 폭격에 엄마도 잃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무모하게 자존심을 세우다가 죽는다는 이야기다. 알려진 것과 달리 주인공이 불쌍하게 나오지 않고 오히려 찌질하게 나온다. 사실 죽음의 직접 원인은 폭격보다는 친척의 집을 나오고 자존심 때문에 버틴 것이다. 한마디로 돈없이 깡만 믿고 가출하면 개고생한다.
주의! 내용 누설이 있습니다.

이 틀 아래의 내용은 이 문서/문단이 설명하는 작품의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면 이 문서를 닫아 주세요.

2. 등장인물[편집]

고베 출신으로 중학교 3년생. 작중 14살. 이 만화/소설의 주인공. 아버지는 일본 해군 장교(대위)로, 과거 회상씬이나 숙모의 말로 비추어 볼 때 원래부터 상당히 부유한 집안으로 묘사된다. 1945년 6월 5일의 '고베대공습'에서 먼저 대피한 어머니와는 니혼마츠(二本松)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이 지나가고 집합 장소인 세이타가 졸업한 국민학교#에서 재회한 어머니는 상반신에 큰 화상을 입고 이윽고 사망. 세츠코와 니시노미야에 있는 먼 친척 아줌마네 집을 찾아간다. 하지만 친척 아줌마한테 구박을 받다가 집을 나와 근처 방공호으로 옮겨 산다. 사실 모질다고 해봐야 친척 남매들과 식사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부분과 잔소리를 듣는 수준이었다. 그냥 전쟁통에 얹혀 사는 대우로써는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정도.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기여도가 없는) 세이타 남매에 대해 차등 대우는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다. [2]

처음 얼마 동안은 남매끼리 보금자리를 꾸려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곧 생활비가 떨어지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된다. 세츠코가 영양실조에 걸리자 어떻하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도둑질을 하다가 들켜서 실컷 얻어맞고 파출소에 끌려 가기도 한다. 그래도 반성 못하고 공습 상황에서 빈집털이를 한다. 세츠코가 죽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고, 고베로 가서 어머니가 남긴 저금을 찾아와서 세츠코에게 수박을 먹이고 계란죽을 끊여주려고 한 날 세츠코는 영양실조로 죽는다. 원작에서는 이미 가진 돈은 다 떨어지고, 연못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돌아와 보니 세츠코는 죽어있었다.

세츠코를 화장(火葬)하고 방공호를 떠나, 이후 1945년 9월에는 산노미야역안에 사는 부랑아 신세가 되었다. 역내에 있으면 배는 고파도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행인들이 거지꼴[3][4]이 되어 역 구내에 앉아 있는 세이타를 불쌍히 여겨 주먹밥을 놓고 갔으며 그걸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돈이 없다보니 계속 굶주림에 시달렸고 영양실조로 인한 지독한 설사까지 계속되었다.[5] 나중에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그냥 기둥에 기댄 채 꼼짝달싹 못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전신쇠약으로 객사한다. 이후 다른 죽은 부랑아들과 함께 매장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여동생 세츠코와 함께 유령이 되어 높은 빌딩이 들어선 현재의 도시 풍경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작중 히로인. 오빠인 세이타를 따라다닌다. 세이타는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을 세츠코에게 숨겼는데, 니시노미야 친척집으로 가서 살고나서부터 어느샌가 왠일인지 어머니를 찾지 않는다. 세이타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된다[6]. 어머니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유골함이 클로즈업된다. 그러다 결국 방공호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만다. 방공호에서 살고 있던 당시 세츠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눈에 생기가 사라진 상태. 세이타가 방공호로 돌아왔을 때 세츠코는 사탕 대신 하지키(御弾き)#을 빨고 있었다. 그리고 돌멩이를 내놓으면서 오하기,오카라타이탄(콩비지 완자 튀김)이라며 먹으라고 권한다. 원작에서는 의사가 영양분이 있는 것을 먹이라고 하니, 세이타는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서 피를 마시게 할까? 손가락 하나쯤 없어도 괜찮으니까 손가락을 잘라서 그것을 구워서 먹일까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향년 4세.

세이타가 서리를 하다가 붙잡혀 실컷 두들겨 맞고 파출소에 끌려갔을 때, 어떻게 따라왔는지 파출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이타를 보고 "어디가 아파? 의사 선생님 불러서 주사 맞아야겠네."는 어머니가 평소 하던 말투를 흉내낸 것이라 세이타는 더 서럽게 운다.

참고로 세츠코(節子)라는 이름은 돌아가신 작가의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왔다. 일본판 성우는 5살 소녀가 연기했다. 타카하타 감독은 이 소녀가 있어서 제작이 매우 편해졌다며 고마워하고 높이 평가했다. 먼저 목소리를 녹음하고 거기에 맞춰 작화를 했다.[7]
  • 어머니
세이타에게 세츠코를 맡기고 니혼마츠 역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공습으로 부상을 당한다. 나중에 세이타와 대피소에서 만나지만 이미 상반신에 전신화상[8] 입어 온 몸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결국 얼마 안 되어 파리 떼와 구더기가 들끓는 체로 사망하고 만다. 세이타의 언급으로 봤을 때 원래부터 심장이 약했던 듯. 어머니의 유골함은 세이타 남매가 사는 곳을 옮길 때마다 옮겨서 소중히 보관했다.
  • 아버지
일본 해군 대위. 원작에서도 대위. 관함식(観艦式) 장면에서 아버지가 경례하는 장면에서 옷소매에 새겨진 계급을 확인할 수 있다. 원작자의 아버지가 모델. 전쟁에 출전해 있기에 회상 씬과 사진으로만 출연. 애니메이션만 보면 순양함의 함장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세이타와 세츠코의 나이와 아내의 나이를 봐도 아버지가 그 나이에 함장급(적어도 대좌)의 높은 계급일 수가 없다. 패전후에 세이타는 아버지가 승선했던 연합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아버지가 죽었다고 절망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타고있던 순양함은 침몰했지만 구조된 인원도 있어서 정확히는 생사불명[9].
  • 아주머니
공습후 집합장소인 국민학교에서 만난 아주머니. 세이타 남매의 어머니랑 친분이 있는듯. 잠깐의 등장이지만 남매를 걱정하고 챙겨준다.
고베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니시노미야 시에 사는 촌수로 따지면 먼 친척 아줌마. 세이타에게는 아버지의 사촌 형제의 부인. 사촌 형제는 죽어서 지금은 미망인. 원작에는 미망인. 또는 소모(小母)로 표기된다. 일본에서는 친척 관계를 일일히 따지지 않고 친척 아줌마는 '오바상'으로 부르고, 작중에도 오바상으로 부른다. 원작에서는 만약의 경우 공습으로 집이 불타거나 피난을 가야 할 경우 서로 신세를 지기로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다. 세이타는 몰랐지만, 어머니가 기모노, 모기장, 등 피난 살림을 옮겨놓았다.

왜인지 나쁜 숙모라고 서술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작중에서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를 구타하기는 커녕 특별히 학대한 적이 없다. 남매의 어머니가 처녀때 입던 기모노를 쌀로 바꿔서 흰 쌀밥을 며칠 주다가 곧 남매들에게는 멀건 죽만 준다. 남매를 은근히 구박하면서도 밥을 다 준다. 오히려 주인공 가족이 남긴 돈[10]을 가로채지도 않았고, 남매가 독립하려고 하자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였는지 남매를 붙잡지는 않고, 애당초 진심으로 걱정했으면 뒹굴거리는 세이타에게 돈 벌어오라거나 잔소리는 할지언정 다른 친척들에게 가라는 식으로 비아냥대진 않았을 거다.[11]

물론 시대상을 감안했을 때 숙모의 행동 중 비난받을 이유는 없는 건 맞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남매들하게 잘 대해줬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살게 해주는 것만으로 눈칫밥을 먹여도 할 말 없는 얹혀 사는 입장이라도, 애들 엄마가 죽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너무 대놓고 짐덩어리 취급이 심하긴 했다. 거기다 극중에선 명확히 악역 포지션에 있긴 했다. 세이타는 어머니의 죽음을 동생에게 숨겨달라 부탁하지만 그녀는 세이타가 없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말해버린다. 게다가 그 사실이 드러나는 게 세츠코가 울면서 죽은 반딧불을 묻어주는 장면인지라 빼도 박도 못하고 나쁘게 보일 수 밖에 없지만 당시 일본 제국은 거의 패망하기 직전인데다가 도쿄 대공습과 같이 곳곳에서 공습이 일어나 물자도 보급도 힘든 상황이 작중에서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현실에서 살아가야하는 서민들과 숙모 입장에서는 막막할 뿐더러 라디오와 대중매체에서 홍보하던 것과 달리 일본이 점점 패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허탈함도 느껴 앞으로 닥쳐올 미래에 대한 걱정에 아직 철부지인 두 남매가 아니꼬울 수도 있다. 거기다 약간의 변호를 하자면 세츠코는 아직 어린애이긴 하나 앞으로 이런 막막한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현실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어서 어머니의 죽음을 알릴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12]. 결국은 이 숙모님도 세이타의 어머니의 부탁에 남매를 맡고 있지만 그렇다고 인플레이션에 물자보급도 힘든 데다가 어머니를 잃었음에도 아직 철부지인 둘을 보살피려는 부담감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13], 그저 그 당시의 보통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작에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과 하숙인이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딸과 하숙인만 출연.
여학생. 세츠코에게 게다를 사주고, 세이타 남매를 걱정하는 듯한 말도 한다. [14] 어머니가 국밥을 나눠주면서 하숙인과 자신한테는 냄비에서 밥과 건데기가 가득한 국밥을 떠주고, 세이타와 세츠코에게는 위에서 국물만 떠주는 것을 알아채고 얼굴을 붉힌다.
  • 친척 아줌마네 집의 하숙인
세이타 남매를 가엽게 여기기는 하지만, 하숙인이라는 입장이라 내색을 안한다.
원작에서는 고베 세관에서 근무한다. 암시장 사정을 잘 알아서 쇠고기, 물엿 등을 아주머니에게 선물하면서 호감을 사려한다. 친척 아줌마의 딸에게 연애감정(짝사랑)이 있는 것으로 나온다.
세이타 남매에게 반찬거리가 될 만한 야채를 (돈 받고) 파는 아저씨. 세이타 남배를 불쌍히 여겨 자신도 없는 형편에서 먹을 것을 판다. 집 나온 남매를 걱정해서 친척 아줌마집으로 돌아가서 도나리구미(隣組)에 들어가서 배급을 받으라고 충고한다. 도나리구미에 속하면 방화 예방작업 등을 하고 배급을 받을 수 있었다.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린 세츠코에게 설탕물을 먹이려고 사탕수수를 훔치려는 세이타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세이타를 마구 두들겨 패고는 파출소로 끌고 갔다. 하지만 세이타를 동정한 파출소장이 미성년자 폭행과 상해죄를 들먹이자 달아나다시피 파출소를 나온다. 원작 소설에서는 감자를 훔치려다 지키고 있던 밭 주인에게 실컷 얻어맞고 전쟁 중에 서리는 중죄라며, 돼지우리(감옥)에 갈 거라며 세이타를 파출소로 끌고 갔다.
세이타를 감싸 준 파출소장. 어깨에 달린 구(旧)일본 경찰 계급장을 보면 경부보(警部補). 세이타를 동정해서 집으로 돌려보낸다. 원작에서는 나이나 외모 묘사는 없고, 계급도 순사로 나온다. 세이타에게 설교를 하고 곧 돌려보낸다.
세츠코가 죽은 후, 구역소에 가서 신고하니 화장터는 예약이 밀려서 1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세이타에게 쌀을 배급했던 배급계 공무원 아저씨는 특별 배급한 을 주면서, 세츠코를 어디 절 한 구석에서 화장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 날씨 참 좋네."라고 말하는 무심함에서, 전쟁으로 사람의 목숨과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됐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장면이다.
  • 행인들
세이타가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 역에서 생활할 때 지나가던 사람들. 맨발에 누더기 차림인 세이타와 다른 전쟁고아[15]들이 역 구내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미군들이 보면 안 된다, 더럽다, 등등 말을 하면서 지나간다.
  • 역무원들
세이타가 죽은 뒤 등장. 역 바닥을 청소하다가 아사한 세이타를 발견하고는 또 죽었냐고 한다.[16]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들이 역 구내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한다.[17] 이후 세이타의 옷을 뒤지다가 세츠코의 유골이 담긴 사탕통을 발견, 그냥 던져버린다.
  • 기둥에 기댄 소년
세이타가 영양실조로 죽은 뒤에 역무원들이 세이타의 유품을 뒤지다가 기둥 뒷편에서 발견한다. 세이타와 비슷한 처지의 부랑아인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역 구내 기둥에 기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역무원이 다가가서 잠깐 보더니 눈빛이 흐리멍텅해서 이제 글렀다고 한다.[18]

3. 원작과 작가[편집]

소설은 1967년 잡지 올(all) 요미모노(オール讀物) 10월호에 게재, 같은 시기에 발표한 단편 <아메리카 히지키(アメリカひじき)>와 함께 제58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1980년대 초반, 2002년, 2003년, 2006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내용은 사실상 작가 본인의 자전(自傳)으로 실제로 기아로 여동생을 잃었던 체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 그 덕에 원작 소설은 애니메이션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용보다는 당시 기성세대에 대한 시니컬한 냉소주의가 더 강하다. [19] 굳이 예를 들자면 노벨문학상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비슷한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참고로 노사카 아키유키는 고베 공습으로 양아버지(어린 시절 부모의 별거 및 이혼으로 인해 다른 집안에 입양되었다)를 잃고, 이어서 피난을 갔던 후쿠이현에서 여동생을 영양실조로 잃었다. 이때 동생을 구하지 못한 속죄를 위해 소설로 쓴 것.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죽었지만, 노사카 아키유키는 살아남아 방황하다가 친아버지가 다시 거두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종의 참회록으로 쓴 소설이지만,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의 세이타는 상냥했지만,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면서 여동생(두 살(1년 4개월))의 먹을 것을 뺏어먹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잔혹한 오빠였다. 동생을 때려서 뇌진탕을 일으키게 한 적도 있다. 소설을 쓰다 보니 일기를 공개하는 것 같아, 있는 그대로 쓰지 못하고 자신을 치장(미화)하는 거짓말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지 못한다. 또 이 소설로 돈을 벌고, 애니메이션화가 되어서 인세를 받는 것이 깊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애니메이션이 완성되고 마련한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다가 감정이 복 받쳐 도중에 퇴장한 일화가 있다.

노사카의 다른 단편중에는 '고추잠자리'도 있는데 이게 일각에 도시전설처럼 와전되듯 알려진 "카미카제대원이 훈련기 몰고 자폭하려다 콕핏에 앉은 벌레를 보고 순간 생명의 귀중함을 깨달아 적함까지 갈 남은 연료를 무인도 가는 데 써서 무인도에 불시착한 뒤로 그뒤 어떻게 되었는지 모름" 이라는 일화의 원전이다.

무엇보다 노사카 아키유키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던 인물이었다. 고이즈미나 아베 등의 총리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대해서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며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원고에서는 "이 나라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시작하기 전의 시기로 다가가고 있음이 확실하다."라는 섬뜩한 경고까지 남겼다.

그에 대하여 그가 극우라고 잘못 알려졌는데 김세완은 90년대 후반, 유니텔 만화동호회에서 이러한 글을 쓰기도 했는데 당시 누이동생이 죽은 걸 미군 탓으로 여겼다든지 빵이나 서구풍 음식을 먹으면 굴욕이라는 망언을 했다고 서술한 적도 있었다.

4. 감독의 의도[편집]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반전 작품 같은 게 절대 아니다. 그런 메시지는 일절 실려있지 않다'고 했으나 반전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쩔 도리가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오누이가 둘만의 가정생활을 이뤄내는 것에 성공하지만 주변 사람과의 공생을 거절하고 사회생활에 실패하는 모습이 현대에도 통한다고 해설하고 고등학생과 20대의 젊은이들이 공감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로,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한다.
"그 시대, 미망인이 말한 것쯤은 특히 냉혹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세이타는 그것을 참지 못한다. 방공호로 옮겨살 것을 결심하고 세이타는 말한다. "여기서라면 아무도 없고, 세츠코와 둘이서 마음대로 할 수있다." 그리고 생각없이 '순수한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 그런 일이 가능할까? 가능할 수 없으니까 세이타는 세츠코를 죽게 만들었다." - 아니메쥬 1988년 5월호. 타카하타 감독 인터뷰에서 [원문]

미국판 DVD에 수록된 타카하타 감독의 인터뷰 영상. 1999년 유튜브 영상(영어 자막) 요약하면, 일본인 관객의 다수가 세이타에게 동정심을 가져서 나로서는 의의였다. 나도 전쟁 체험자이지만 당시 다들 힘들게 살아남았다. 머리를 숙여야 할 때는 숙이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돈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세이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있었더라면 좋았다.

5. 피해자 행세물이라는 관점[편집]

주인공의 대사 중 "무적의 일본 함대"라는 대사가 있다거나, 군가를 따라 부르는 장면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일본이 스스로를 피해국가로 인식시키려는 목적을 지니고 만든 홍보성 애니메이션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1990년도 당시 9시 뉴스에서 우익 애니메이션이라고 맹비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 더빙하여 방영하였다...

참고로, 주인공들이 '무적의 일본 함대~'어쩌구 하는 대사를 하는 이유는 작중 주인공들의 아버지가 일본군 해군의 순양함(타카오급 중순양함 마야) 함장이기 때문. 때문에 아버지가 다칠 리 없다는 일종의 허황된 믿음에 의지하며 아버지가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함장도 아니고 아버지는 해군 대위, '무적의 함대'라는 말은 영화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그런 탓에 한국에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정성일 평론가의 평에 따르면 영화 자체에 일본인=피해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으며, 관람자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전염시키고, 아주 감동적이기 때문에 관람자로 하여금 영화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평가했다. 수십 년간 수탈 받은 피해자가 옆에 있는데 침략국인 일본이 마치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작품이라는 게 비판론의 주된 요지. 일부 감상문에서는 어느 주부가 자신의 딸이 "일본인 아이들이 불쌍하다"라는 말에 경악을 했다고 한다.

즉, 감독이 의도한 주제와는 별개로 등장인물을 어린 아이들로 설정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미성숙함에서 비롯된 고집과 어리석은 행동들은 구 일본제국을 상징하며 이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측은함과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이 자존심 하나 지키려다 자신은 물론 어린 여동생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을 보면서 주인공을 어리석고 끔찍한 인물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보단 어떻게든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여동생과 행복하게 살길 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과거를 보며 동정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전범국에서 반드시 지양해야 하는 일이며, 이는 이 작품이 충분히 비판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그 외에도 작품의 외적인 부분, 즉 반딧불의 묘를 이용하는 방법이 문제라는 의견이 있다. 일본의 매년 8월은 원폭 희생자를 추도하는 달이며 8월 15일은 종전 기념일이다. 매년 8월 즈음에는 반딧불의 묘를 방영할 뿐 아니라 <소년A> 나 <24개의 눈동자>같은 전시를 살아가던 일반인의 시점을 다룬 작품들을 방영한다. 당시 폭주하던 시대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전범국의 국민들이 '자신들도 피해자' 라고 오판하기 충분한 내용들이며, 이는 의도한 바이기도 한 것이 그들에게 8월은 피해자 추모의 달이기 때문이다. 주변 국가를 침공했지만 우리도 같은 피해자라 주장하고 패전했지만 종전이었다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런 것을 주변 아시아 국가에 좋게 볼 수가 없다.

5.1. 다른 관점의 해석[편집]

그런데 정작 작품 자체를 보면 극우나 일본의 피해자 행세와 거리가 멀다. 특히 가장 중요한 건 주인공 남매가 죽는 직접적인 원인인데, 자존심 때문에 친척집을 나와서 죽은 것이다.(...) 친척 아주머니는 주인공 남매를 학대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매 가족의 재산을 약탈한 것도 아니다. 다만 가족의 기모노를 판 것뿐인데 당시엔 남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죽은 상태였다. 안 팔면 뭐 어쩌라고? 오히려 당시 남매 가족의 재산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자립을 하고 꽤나 쌀밥을 먹으며 버틸 만큼 상당했다. 그리고 친척 아줌마는 주인공이 자립하려 할 때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도 남매가 안 보는 데서만 보여준다는 것에서 이 아줌마가 본심으로는 주인공을 걱정했다는 걸 보여주는데 주인공 남매는 아주머니를 자신을 구박하는 적으로만 보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집을 떠났다가 죽었다. 친척집에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세이타가 거지가 되어 굶어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감독 자신도 극우가 아니다.[21] 타카하타 이사오는 '헌법 9조의 회' 결성집회에서 애니메이션 팬들이 전쟁 홍보용 애니메이션을 왜곡해서 받아들이던 일화를 언급하면서 자신의 작품이 반전 요소가 부족했던 것은 아닌가, 소수의 일본 국민들은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말하며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평화헌법을 옹호하였다. 게다가 해당 내용을 한국 블로거가 번역해서 게시해도 되는지 문의하자 "전쟁말기의 자국민의 비참한 체험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 즉 그 이전에 타국으로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와, 그것들이 타국민에게 안겨준 참상에 대해 확실하게 전달하고, 생각하게 할 수 있어야만이 비로소 <반전>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한 편의 영화로 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자국의 타국으로의 침략을 영화에서 묘사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우며,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에 진정한 <반전>은 영화에서보다, 교육 등 보다 이성적인 방법으로 끊임없이 실천해야만 할 것이다." 라는 소리를 자신이 평소 해왔는데 그 내용도 첨가해 달라고 정중히 부탁할 정도. 저 코멘트에 따르자면 본인의 입장에서도 반딧불의 묘는 불완전한 반전 영화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해석을 통해 논란이 있는 영화이며 외적으로 오용되지만 나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는 작중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의 모습이 문학적으로 당시 일본 국민과 지배층의 모습을 은유하고 있다는 것도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작품을 꼼꼼히 보면, 주인공 남매가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도 아니다. 44년에 설탕 절임 복숭아를 먹었다거나,게 통조림을 먹었다는 대목도 있고,심지어는 음식을 상한 것도 아니고, 단 게 싫다고, 냄새가 이상하다고 버렸다는 대목도 있다. 게다가 폭격을 피하기 위해 시골로 내려가면서 바리바리 싸간 것이 우메보시, 버터, 치즈, 기모노, 풍금에다가 은행에는 7,000엔의 저금이 있었다. 이것들이 모두 당시 기준으로는 대단한 사치품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불쌍하게 여기라고 만든 인물이 아니다. 작품 초반부에 나오는 맨발로 다니며 누더기 옷을 걸친 채 굶주림에시달리는 '가난한' 세이타의 모습은 1945년 8월 이후의 모습이다.[22] 즉 최소한 친척집에 있을 때까지는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남매가 겪은 고난과 빈궁은 엄밀히 말하면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평균적인 상황과는 좀 다르다. 폭격을 피해 시골로 소개되어 내려간 후, 친척 아주머니에게 천대받기 싫다는 여동생의 징징거림에, 아직 어린 오빠가 빡쳐서 우린 독립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상황이었던 것. 이 경우 문제는, 남매의 가출은 곧 토나리구미(隣組)를 비롯한 지역 조직을 중심으로 편성된 식량 배급 체계에서 이탈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부모가 남겨준 유산으로 암시장에서 식량을 사 와서 남매끼리 재미있게 살았으나, 돈이 다 떨어지고 가진 걸 다 팔아치운 뒤 더 이상 식량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후 여동생이 영양실조로 먼저 죽은 뒤 혼자 남은 오빠는 부랑아가 되어 산노미야 역전에서 부랑아로 생활하다가 죽게 된 것이다.

결국 이는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오빠가 판단력이 더 미숙한 여동생이 투정부리는 것을 적당히 달래지 못하고, 부화뇌동하여 친척집을 나가버린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2차대전 시작 이전에 일본이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여유로운 상황이었던 점이나 전쟁에 돌입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에 비추어 생각한다면 여동생 세츠코는 일본 민중을 은유하는 것, 오빠 세이타는 일본 지도부를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후 일본이 겪은 고난은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것이다. 또한 발간 당시 '전쟁은 국가지도층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고, 일본 민중은 오히려 지도층의 무모한 야욕에 희생되었을 뿐이다'라는 역사관이 유행하던 것이 비추어 생각한다면 결국 지배층은 어떤 식으로든 다수 대중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고, 전후의 참상은 결국 일본 민중들 자신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대가를 스스로 치룬 것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무적의 일본 함대 운운하는 대사 역시 세이타의 시점에 가깝게 진행되는 이야기 특성상 주인공 입장에서는 아주 당연한 대사고, 더 나아가 이것이 주인공(그리고 당시의 일본 대중)의 무지를 상징하는 대사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점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불쌍한 애들을 괴롭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쯤으로 묘사되는 친척 아주머니 역시,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리 나쁜 인물도 아니다. 어머니의 기모노를 대신 내다 팔아준다고 하더니 자기들에게는 고작 쌀 한 단지 주고 말았다고 남매가 서러워하는 부분도, 사실 암시장 거래의 위험성이나 아이들을 부양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적절한 분배 비율에 대한 이견의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기모노와 바꿔온 쌀 중에서 자기 가족 몫을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남들은 다 농사일이나 대피훈련 등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방에서 종이를 오리거나 피아노를 뚱땅거리는 여동생과, [23]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오빠를 좋지 않은 눈으로 보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고...[24]

즉, 전쟁에 돌입한 일본의 태도가 마치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는 비판으로도 해석 가능한 셈. 작중에서의 묘사에서 그러한 의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런 의도가 드러난 부분이 있다. 작중에서 숙모가 주인공 남매가 부모님 돈으로 밥을 사먹자 섭섭하게 생각하는 장면이 등장하며, 집을 떠날 때는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다. 또한 숙모가 주인공 남매의 재산을 뺏는 장면도 없다. 작중에선 물가가 극단적으로 올라가는데, 주인공 남매가 물건을 한번에 사지 않고 천천히 쓰는 장면이 나온다. 부모의 돈이 엄청났다는 증거인데, 이걸 뺏지 않은 것만 해도 과연 악당인지 의문이다.

이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세이타와 세츠코는 희생자인 동시에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고(세츠코는 아직 어린 아이니 어느 정도까진 봐줄 여지가 있지만) 무조건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기에는 석연찮은 인물임은 비교적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이 아이들이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특권계급이던 해군 고급장교의 자식들로써, 남보다 훨씬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작중에서 명확히 묘사된다.

이러한 비평적 해석과는 별개로 적지 않은 독자나 시청자가 이 작품을 일본인의 자기연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이고[25], 이는 오롯이 작가나 감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인 것 역시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아이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않는 시청자는 드물었다. 받아들이는 쪽에서 남매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연민에 빠지는 연출이 의도적이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제대로된 해석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이 영화에서 의도된 결과다. 원작에서 나오는 표현조차 생략해 가며 남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 것은 이 영화가 가진 한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 행세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감독 자신이 전쟁 개시 전부터 일본 국민들이 브레이크 없이 치달은 결과 가해자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하며 일본의 전쟁 범죄 행위에 당시 일본 국민의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주장한 바 있다는 점 역시 감안할 필요는 있다. 전쟁의 광기에 대해 그 국가 구성원인 국민 자신들 역시 명백한 책임이 있다는 전제에 따라 본다면, 이와 같은 해석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일본의 좌파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흔히 박혀있는 책임회피의식[26]에 대해서 꾸준히 비판해왔다.

아래는 이 영화가 일본을 피해자로 포장시키는 데 일조한다는 관점과 그 반대 내용의 해석을 중의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영상이다

영상의 내용은 이 영화가 잔혹한 전쟁 상황을 누가 초래하였는지 드러내지 않고 있어서 역사적인 지식[27]이 없는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며 일본이 피해자라는 판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지만, 역사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관객이라면 군인의 자식인 아이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것을 보고 그 선택을 일본의 선택에 빗대어 보며 도리어 비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평범한 농민의 자식이 아닌 군인의 자식들로 설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것 즉, 군인 신분인 아버지를 응원하고 있고 일본의 승리를 바라는 아이들이기에 그렇게 비춰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이 영화의 의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이 영화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판이 깔려 있다는 것[28]

6. 이야기거리[편집]

원제인 火垂るの墓의 火垂る는 반딧불을 뜻하는 蛍(ほたる)의 어원으로 추측되는 말 중 하나다.[29] 물론 영제가 Grave of the Fireflies이며, 작품 내에서 반딧불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원제의 火垂る도 당연히 반딧불을 뜻하는 게 맞는다.

작품의 배경이 된 도시는 고베로, 애니메이션 마지막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내려다 보는 도시도 현대의 고베다. 세이타가 아사한 곳은 고베의 산노미야역. 작중 초반의 공습장면은 고베 공습 중 피해가 컸던 1945년 6월 5일 공습을 묘사한 것이다.

한편, 제작 스탭중 안노 히데아키가 있었는데 순양함의 원화를 맡겼을 때 밀덕후답게 신이 나서 극사실주의로 원화를 그려내 왔더니 정작 작화 감독인 콘도 요시후미는 관함식 장면을 화려하게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실루엣만 보이게하고, 흑백영화처럼 어두운 색으로 처리해 버렸다. 색칠한 장본인은 안노의 절친 히구치 신지의 부인 타카야 노리코.[30]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 반딧불의 묘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스즈키 토시오 (이하 스즈키): 그리고나서, 반딧불의 묘 때에 다시 나타났었지?
안노 히데아키(이하 안노) : 그렇죠. 취직 활동이죠. 일거리가 없어서요. 미야상한테가서 뭐 일거리 없습니까 물어보니, 토토로의 오프닝을 하던지, 타카하타상 쪽의 뭐랄까 전함 그릴 사람이 없다는데, 그쪽을 하든지 어디할래? 그래서 미야상하고는 전에 (같이)해 봐서 타카하타상하고 일을 해보고 싶었죠.
스즈키 : 그래. 그랬지. 기억하고 있어. 그래서 전함에 일루미네이션(여기서 웃음 터짐)하고 불꽃.
안노 : 네. 일루미네이션과 불꽃입니다. 실은 전함이 아니라 순양함(巡洋艦)입니다. 전함이 아니라.
스즈키 : 그래서 그 다음엔가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에, "두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고있으니까 "라고 말하던데...
안노 : 한번 같이 일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압니다.

작가의 딸이 학교에서 숙제로 "'반딧불의 묘'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썼을까요" 라는 물음에, 아키유키는 "마감에 쫓겨서, 헥헥거리며 썼다."라고 대답했다고 TV방송에서 밝혔다.[31]

일본에서 첫 개봉시 같은 제작사의 이웃집 토토로와 동시상영으로 공개되었는데[32] 이웃집 토토로를 먼저 상영하고 반딧불의 묘를 뒤에 상영해버리는 바람에 이웃집 토토로를 보고 이어서 나오는 반딧불의 묘 때문에 순식간에 관객들의 기분이 암울해져, 어이없게도 이웃집 토토로의 이미지가 꽤 안 좋아진 일이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보다보면 은근히 토토로와 비슷한 구도의 컷이 나오며, 토토로와 대치되는 형태로 사용되는 이미지도 나오며(우산, 조력자)서사 구조도 대조적으로 채용하고 있었던 탓도 있다[33].

일본 대중 문화가 금지되었던 90년대초에 신촌 모처에서 애니메이션 동호회 주관으로 열린 상영회에서는 아키라와 함께 상연되었다. [34] 본편 상연 중 주인공인 애들이 죽는 장면에서 누군가가 (전쟁을 일으킨 일본놈들이니까) "꼴 좋다!" 라고 외치자 괸객들 반은 웃고 반은 화를 내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국에서는 대원방송을 통해서 더빙 방영을 했다. 세이타 역에는 김일이 맡았다. 그렇다, KBS판 세일러문에서 남주인공이라고 할 턱시도 가면을 맡은 그 성우다.. 세츠코는 김서영. 여러 케이블 채널에서 가끔씩 방영하는 편이며 성우 김일이 한국어로 읊는 "대일본제국이 졌다고요?"라는 대사는 충공깽. 덕분에 한번 방영할 때마다 시청자 게시판엔 부모로 보이는 이용자들이 왜 이런 애니를 방영하냐며 항의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다.그래서 요샌 방영을 못한다고 봐야하나? 한국에서는 원작의 지명도가 낮다 보니 원작소설의 작가인 노사카가 우익이라는 출처불명의 루머가 돌고 있다.

스웨덴의 멜로딕 데스 메탈 밴드인 아치 에너미의 곡중 The Day You Died는 이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작품 속에서 세츠코가 즐겨 먹던 캔 상자안에 든 사탕[35]은 '사쿠마식 드롭스'라는 상품으로, 1988년에는 작중 배경인 전시에 판매된 상품을 디자인과 내용물을 복각한 상품이 나오기도 하였다. 복각판은 아니지만, 2008년에는 실사 영화 공개 기념으로 세츠코가 캔 상자 안을 들여다보며 사탕을 찾는 모습이 그려진 제품이 발매되기도 했다.

세이타와 세츠코가 풍금을 연주하면서 "호니하니 호이토 호호호하니"하는 대목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도레미파솔라시를 금지하고 대신 일본어로 '이로하니호헤토'[36] 로 바꾼 것이다. 영미를 악(귀축영미 鬼畜英美)으로 규정하고 영어 사용 금지, 서양 문화를 금지한 정책이었다. [37]
반딧불의 묘는 2005년 2시간 30분 단편 드라마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요코가와 세이타 역: 이시다 호우시 요코가와 세츠코 역: 사사키 마오

6.1. 7,000엔의 행방은?[편집]

어머니가 저금해 둔 7,000엔이면 당시 가치로는 엄청난 거금이다. 1940년대 일본의 교사나 은행원 초임 월급도 100엔이 채 안 되던 상황, 2017년 기준으로 한국에서는 200만 원이 좀 안 된다는 걸 생각해보면 단순계산으로 1억 4천만 원(!)에 해당한다. 이를 감안하면 전쟁통으로 물가가 오른 걸 감안해서 보수적으로 잡아도 허름한 집도 살 수 있을 테고 두 남매가 어느 정도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데는 충분한 돈이다. 대체 세이타는 저 큰 돈을 어디다가 다 썼는지… 전시라 인플레이션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현물로 교환이 어려웠다고 쳐도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세이타가 죽은 이유가 자기 본인의 잘못도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7,000엔이라는 큰 돈을 어림잡아도 한 달 반밖에 안 되는 사이에 다 날리고 여동생 세츠코를 영양실조로 보내고 세이타도 부랑아가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죽고 만다.

그러나 세이타가 7,000엔을 아무렇게나 낭비하는 바람에 다 쓴 것은 아니다. 영화 후반부에 세츠코가 영양실조로 쓰러진 후 세이타가 맛있는 것을 사다주겠다고 은행으로 가서 남은 저금 3천 엔을 찾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전쟁 전에는 거금이었던 7천 엔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떨어졌던 것이다.

타카하타 감독도 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시절에는 아무리 돈이 있어도 물자 부족 상황이라 돈이 있어도 물품을 살 수 없었다. 특히 식량은 부족해서, 원작에 따르면 계란 1개에 3엔, 기름 1되 100엔, 쇠고기 100돈(刄 약 375g) 20엔, 쌀 1말(180리터) 25엔 패전 직전에는 더 올라 1되(升 1.8리터) 40엔 , 이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살 수 있고, 쌀은 (화폐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돈으로는 살 수 없는 상황인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해서, 국가에서도 배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극중에서도 쌀을 시장에서 사지 못하고 어머니의 유품인 옷 몇 벌을 물물교환으로 쌀 1말(180리터)을 구한다. 세이타가 은행에서 돈을 찾아와 동생을 위해 계란죽을 끊여주려고 하는데 그 계란 하나가 구하기도 어렵고 비쌌다는 사실을 알고나서 영화를 다시 보면.... 또 세츠코가 다시 먹고 싶어하던 '사쿠마식 드롭스'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이후 설탕 공급이 중지되어 사탕 생산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정비령(企業整備令)으로 1945년에는 회사가 폐업 상태였다. 즉, 아무리 돈이 있고 구하려고 노력해도 살 수가 없었던 것이다.

7. 제작 스텝 리스트(애니메이션 영화)[편집]

  • 제작, 기획 - 사토 료이치
  • 음악 - 마미야 미치오
  • 캐릭터 디자인, 작화감독 - 콘도 요시후미
  • 레이아웃, 작화보좌 - 모모세 요시유키
  • 미술감독 - 야마모토 니조
  • 촬영감독 - 코야마 노부오
  • 음량감독, 음량연출 - 우라카미 야스오
  • 원화 - 오오타니 아츠코, 안노 히데아키, 카와치 히데오, 오쿠야마 레이코, 우메츠 야스오미, 오가와 히로시 외
  • 동화 - 동화공방, 오! 프로덕션, 드래곤 프로덕션, 그룹 라이너스, 스튜디오 포켓 외
  • 배촬 - 히라타 슈이치, 히구치 노리코, 스도 에이코, 히시야마 토오루, 히라카와 에이지 외
  • 특수효과 - 카오루지 타니후미
  • 캐릭터 색채설계 - 야스다 미치요
  • 임상 - 스튜디오 키리, 스튜디오 딘, 타츠 프로덕션, IM 스튜디오, 토레스 스튜디오 M, 포비 기획, 스튜디오 OZ, 스튜디오 샤프트, 스튜디오 엔젤, 스튜디오 톰캣, 셀 아트 스튜디오 외
  • 촬영 - 럭키 모어
  • 편집 - 세야마 타케시
  • 음량효과 - 오히라 노리요시, 이토 미치히로
  • 제작비조 - 우에다 신이치로
  • 제작 데스크 - 오시키리 나오유키
  • 연출조수 - 스도 노리히코
  • 녹음제작 - 오디오 플래닝 U
  • 녹음 스튜디오 - APU 스튜디오
  • 현상 - 토쿄현상소
  • 프로듀서 - 하라 토오루
  • 각본, 감독 - 타카하타 이사오
[1] 1930년 출생, 2015년 12월 11일 타계.[2] 당시는 전시 배급 체제라 도나리구미에 속해서 방화활동 등을 하면 배급으로 쌀을 받을 수 있는데도 그것도 안하는 세이타가 얄미울 수도 있다. 원작에서는 세이타는 방화활동에 참여한다. 감독의 의도적인 생략.[3] 이때 세이타는 다 떨어진 누더기옷을 걸치고 맨발로 다녔다[4] 돈이 다 떨어지자 옷가지와 신발을 암시장에 팔아치웠다[5] 애니메이션에는 묘사되지 않지만 원작에서는 기어갈 힘조차 없어 앉은 채로 그 자리에서 설사를 했다고 나온다(...)[6] 숙모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말해준 것.[7] 애니메이션 감독이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기존의 어른 성우에게 어린이 배역을 맡기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가식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그렇다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쓰려고 하면 긴장해서 연기가 안되는 점이다. 다행히 이 소녀는 휼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수 십번이나 반복하는 리테이크에 지쳐서 칭얼대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 지친 상태의 감정이 목소리 연기에 반영되서 상승 효과가 나왔는지 모른다.[8] 3도 화상으로 추정된다[9] 다만, 작중 간간히 편지를 보냈음에도 답장이 오지 않은 것을 보면 죽은 걸로 추정된다.[10] 참고로 이 돈은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도 남매들끼리 꽤나 음식을 사서 한동안 자립이 가능할 정도로 큰돈이였다. <반딧불의 묘>가 일본의 피해자 행세물이 아니라는 증거 중 하나다.[11] 다만 그 비아냥이 나온 이유가 남매의 어머니가 입던 기모노를 판 이후에 나온 얘기인데, 기모노를 팔은 후, 쌀을 샀을텐데도 세이타 남매한테 밥을 적게 준다는 이유로 다투다 나온 것. 누나와 하숙인은 싫은 소리도 안하고 오히려 걱정해 주었고, 숙모 역시 짐짝 취급은 했을지 언정 그 어려운 시기에 자기 집에서 살게 해줬는데 밥을 적게 준다고 불평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얹혀 사는 입장인데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 남매가 상황을 안일하게 보았다는 얘기고.[12] 물론, 아직 어린아이에게 그런 사실을 가르쳐준 것은 잘못이 있긴 하다.[13] 아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그래도 숙모는 야단으로 끝냈지 남 같았으면 내쫓았을 것이다.[14] 밥을 따로 해먹는 세이타 남매를 보고, 자기 엄마가 심한 소리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는 장면.[15] 산노미야 역 구내에는 세이타처럼 부랑아들이 모여들었다[16] 그만큼 부랑아들의 죽음에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다는 뜻[17] 원작에서는 세이타도 역무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다고 묘사된다 세이타처럼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아들은 대부분 씻지 못해 더러웠고, 입고 있던 옷도 다 해져 누더기를 걸치고 맨발로 다녀 거지나 다를 바 없었다. 대부분의 부랑아들이 구걸로 연명했고 도둑질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역무원들은 내쫓으려고 했다[18]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인해 머지않아 세이타처럼 객사할 거라는 뜻이다.[19] 노사카 아키유키의 데뷔작인 '에로 선생님들' (이 소설은 이마무라 쇼헤이가 인류학 입문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다.)은 포르노 감독을 주인공으로 욕망에 충실한 전후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요컨데 냉소주의와 풍자, 골계미적 성격이 강했던 작가.[원문] 「あの時代、未亡人のいうことぐらい特に冷酷でもなんでもなかった。清太はそれを我慢しない。壕に移り住むことを決断して清太はいいます。『ここやったら誰もけえへんし、節子とふたりだけで好きに出来るよ。』そして無心に”純粋の家庭”を築こうとする。そんなことが可能か、可能でないから清太は節子を死なせてしまう」/『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の高畑監督インタビューより[21] 일본 공산당 당원이다.[22] 사실 이 때 세이타는 수중에 돈은 고사하고 팔 수 있는 것도 다 팔아치운 뒤였다.[23] 애초에 어린 아이인데다 폭격에 의한 공포로 인해 생긴 행동이니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피아노 소리도 시끄러운 데다 전시에는 공간을 차지하기만 하고 쓸 데가 없는 가구인 피아노를 동생 때문에 팔지도 못하니 짜증이 날 만한 상황이기는 하다.[24] 하다못해 공부라도 하라는 숙모의 말에 전쟁의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답했는데, 친척 형누나들은 공부하러 나갔다. 거기다가 숙모가 알아서 해먹으라고 쌀을 줬을 때도, 먹고 나서 뒷처리도 안했다. 숙모 입장에서 이 남매는 도움이 하나도 안되는 밥벌레나 다름없는데 내쫒기는 커녕 구박하면서도 식사는 꼬박꼬박 챙겨줬다.[25] 사실 주인공 남매가 상징하는 의미를 심층적으로 이해하였다 하더라도, 남매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감성적 연출이 비판론 측에서 삼는 문제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비판적 의견을 대변하는 데 평론이 인용되었던 정성일 평론가도 이 해석은 분명히 언급하고 넘어갔다.[26] 전쟁은 당시 지도자들의 책임이며 자신들은 그에 쓸려갈 뿐이었다는 논리[27] 일본이 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것[28] 정성일 평론가도 이 점을 지적했었다[29] 그 외에는 〈火照る〉〈星垂る〉〈火太郎〉 등이 어원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출처 - #[30] 안노가 나중에 감독한 톱을 노려라!의 주인공의 이름을 제공한 인물이다.[31] 野坂は執筆していた当時のことを、他にも小説やコラムなどの仕事を何本も抱え込み、ひたひたと忍び寄る締め切りと何人もの担当者とのやり取りで受けるプレッシャーに晒され、まさに地獄のような日々の中でなんとか原稿を仕上げていた大変な時期だったと振り返り、娘の学校での宿題の、「火垂るの墓の作者は、どういう気持ちでこの物語を書いたでしょうか」という問いに対し、「締め切りに追われ、ヒィヒィ言いながら書いた」と答えたと、テレビ番組で発言している。 그리고 이는 최승호 시인의 일화와 함께, 인터넷에서 문학 교육의 현실을 비판하는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있다.출처1 출처2 단, 링크된 페이지에서 언급된 소나기 관련 이야기는 근거없는 이야기이다. 소나기 항목 참고.[32] 그런 이유로 평론가 오쓰카 에이지는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작품을 세트로 비평하게 되면 반딧불의 묘는 절대로 일본 피해자설을 주장하는 작품으로 해설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문학의 죽음 오타쿠 스토리텔링을 말하다, 83~85쪽 참조[33] 자세한 내용은 이웃집 토토로 항목에서 5.2. 반딧불의 묘와의 관계를 참조할 것[34] 가정용 타이틀의 단체 상연은 따지자면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저작권 인식도 없었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참고로 두 작품 모두 반전 코드를 담고는 있지만 분위기가 워낙 달라서 보던 사람의 기분이 이상해었졌다.[35] 애니메이션 판에서는 세이타가 세츠코에게 입벌려보라고 하면서 사탕을 먹인 것으로, 실사영화 판에서는 친척 여자아이들이 캔 안의 사탕을 늘어놓으며 세츠코에게 사탕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아니메 판의 경우에는 세츠코가 좋아하고 드롭스를 다시 먹고 싶어한다.[36] 한국어로는 가나다라마바사. '가장조', '사단조'할때 '가~'가 이거다. '도레미파...' 순서대로는 '다라마바사가나(하니호헤토이로)'.[37] 당시 일제 치하인 국내에서 나온 국민학교 음악 교과서에도 일본식인 '이로하니호헤토'로 계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도레미파.. 는 영어가 아니고 이탈리아어이고, 이탈리아는 일본 제국과 동맹이었던 나치 독일과 함께 자기 쪽 편이었는데? 이유는 서양 문화 규제 및 금지 정책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