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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신학적 해석3. 현재4. 폐해

1. 개요[편집]

glossolalia, gift of tongues(영어)

성경에서 성령의 은사로 얻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 언어이다.

사도행전 2:1~14에서 예수 승천 후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이 강림하면서 성령의 힘으로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방언의 사전적의미는 '여러지방의 언어'이다.[1] 하지만 당시 사람들의 반응이 '저놈들이 술이 취해서 저러는 거다'라는 걸 보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라는 것으로 보이며, 이를 기반으로 모든 방언이 외국어 능력인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애초에 자기네들 말이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으니 이상한 소리를 지껄인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다.

현재 (특히 개신교 내에서) '방언'으로 언급되는 현상은 외국어가 아닌 '알 수 없는 말'이다. 이러한 '방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그리스도교 성립 초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 전서 14장에서 방언은 현재의 형태처럼 '알 수 없는 말'로 나타나며 이를 알아듣는 자가 없다고 표현한다. 또한 방언을 해석할 필요가 있어 방언 해석의 은사에 대해 언급한다.

학계에서는 외향적이고 신경성이 낮을수록 방언을 하지만, 정신병리적인 문제와는 의외로 관련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며[2] 트랜스 상태가 항상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3]

신학적 해석이나 인문학적 해석이야 그렇다치고, '기독교'에서 '종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면 The[4] God - 하나님에게 Gift - 능력선물로 받았다는 개념이다. [5]

2. 신학적 해석[편집]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개정개역)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것도 굳이 막지는 마십시오.(공동번역)

고린도전서 14장 39절
방언을 성령의 은사로 보는 것은 모든 기독교 신학에서 동일하다. 다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가톨릭은 혼합론, 정교회·성공회·장로교는 부정론, 오순절교회(순복음)는 긍정론.

신비주의 기독교 신학에서 방언의 의미는 성령이 임하신 표적이다. 그렇기에 성령의 은사를 중요시하는 교단에서는 방언이 필수인가 하면, 상대적으로 성령의 은사를 덜 중요시하는 교단에서는 즉 방언이 성령이 임한 증거인 것은 확실히 인정하나, 구원을 받아 성령이 임했다고 해서 무조건 방언의 은사가 생긴다고 보진 않는다.[6] 그 외에 코린토 1서 14장 2절을 근거로 방언이 천사언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설이지 정설은 아니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라.(개정개역)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공동번역)

고린토전서 14장 2절

흔히 복음주의나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개신교 교단에서는 다 하나같이 방언을 권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개신교의 실제 신학적 분포를 잘 몰라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오해라고 할 수 있다. 장로교등의 칼뱅주의 교단에서는 예장 고신 같이 보수 성향을 강하게 띌수록 방언을 경계하고 있으며, 실제로 기도 중에 누가 방언을 하는 게 보이면 일부러 툭툭 쳐서 눈치를 주기도 한다.[7]
또한 기독교 전통에 의한 예식이 많이 남은 성공회 및 일부 루터교회에서도 방언을 성경에 써있으니 존중하는 정도이지 중요시하지는 않는다.[8]

이처럼 개신교 내에서 방언에 회의적인 교단은 일부 이단 수준이 아니며 실제로는 상당히 세계구급의 입장이다. 이름하여 은사 중지론.[9] 아마도 대한민국에서는 무당의 푸닥거리와 나름 유사한 측면이 있어서 방언이 강조된 듯도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음의 책들도 참고하자. 옥성호[10]의 저서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는 굉장히 과격하게 방언을 비판하는 책이다. 보다 온건하게 비판하는 책으로는 고신대학교 신학교수의 저서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을 추천.

천주교에서는 방언이 아니라 신령한 언어 또는 이상한 언어라고 부른다. 뭔가 이름이 이상하지만(?)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현재와 같은 방언 형태에 대해서는 이에 심취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주로 전통 가톨릭 등 교회의 전통적 내지는 보수적인 이들은 신령한 언어를 믿지 않거나 크게 경계하고 있다.[1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개신교(특히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성령기도회[12] 등 같은 주로 '성령' 신심을 깊이 중시하는 기도모임 등에서 행하기도 한다. 본래 천주교에서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성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 때 (본래부터 '성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던)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 성령쇄신운동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성령'이라는 용어가 들어와 자리잡게 되었다.
천주교의 성령쇄신운동은 과도하게 은사를 받기 위한 신비 체험 목적의 기도를 하지 않도록, 그리고 조용하게 하나의 올바른 신심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개개인이 하는 방언을 모두 은사며 은총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며, 방언을 한다는 사실만으로 신앙의 지표나 모범이 될 수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각 교구마다 성령쇄신모임에 담당 신부를 배정해 절대 일정선을 넘지 않도록 지도하도록 한다. 올바른 신심의 토대 없이, 단순히 신비로운 체험을 원하는 이유로 이러한 기도를 접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데, 이는 '신령한 언어'가 천주교의 전통적인 영성이 아니라 20세기에 도입된 일종의 신비체험인 만큼 가톨릭 정통 교리를 벗어나 신비주의적 신앙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13] 일례로 90년대 말에 성령쇄신운동회를 통해 국내 천주교 내부에 가계치유가 신학적 비판 없이 확산되어 신자들 사이에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고 심지어 사상자까지 나오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긍정적인 요소도 없지는 않겠지만, 은사를 쫓아다니고 거기에 매달리는 기복적 사고를 갖거나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서 내적 탐욕과 교만에 빠지거나 봉사자들끼리 상처를 주고받아 물의를 빚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래서 성령쇄신운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교회 내부로부터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3. 현재[편집]

19세기까지는 교회에서 방언을 잘 하지 않다가 20세기 초부터 폭발적으로 재개되기 시작하더니, 현재 들어서는 많은 기독교 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은사가 되었다. 특히 은사주의 운동, 그 중에서도 신사도 운동이 퍼지면서 더더욱 널리 확장되었다. 방언을 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마지막 때에 성령이 만인에게 부어진다는 요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한다.[14]

미국과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방언을 처음 한 사람이 19세기 스코틀랜드의 목사였던 에드워드 어빙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습게도 이 사람의 주장을 그대로 이어받은 Catholic Apostolic[15]계열 교파들[16]방언을 인정하지 않는다. 현대 개신교에서 본격적으로 방언현상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1906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생겨난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운동의 영향이라고 본다.

대부분은 패턴화되어 있는데, 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루후으으후루꾸꾸…같은 느낌의 소리나 옛날 테이프 5배속급의 속도로 말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상당히 빠르게 말이 나오기 때문에 몬데그린 현상이 심하다.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같이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외국어는 아닌 경우도 있고, 묘하게 불경 암송을 듣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특히 그 조음 원리가 너무 뻔히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사회자가 아예 대놓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일부 종교 연구가들은 동일한 단어를 빠르게 반복하는 것, 특히 그 발음 속에 ㄹ 발음이나 ㅁ 발음 등이 많이 들어있는 경우는 종교를 막론하고 다양한 주술적 진언들 속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심지어 사이비 종교인 신천지의 추수꾼 교육에선 방언의 은사를 중요시 하는 곳에 가면 방언을 따라할 수 있어야 한다며 요즘 대세인 방언 타입까지 나누어 훈련시킬 정도다. 하지만 방언을 자주 사용할수록 점점 이러한 패턴화를 벗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기독교계 이단으로 취급받는 예수중심교회에서 1박2일간 수련회를 가본 비(非)신자가 새벽기도회때 목사가 방언을 가르쳐준다고 나오라고 한 경우가 있다고 증언했다. 아마 총회장 이초석 목사로 추정된다.

얼떨결에 기도회나 부흥회에 끌려간 비기독교인이 제대로 겁먹거나 쫄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 1순위. 그래도 기왕 교회에 갔으니 경건하게 기도나 해야겠다 마음먹는 순간 사방에서 저런 소리가 왁자하게 들려온다면 언뜻 생각하기엔 황당함이나 기분이 더럽다거나 할 것도 같지만, 막상 기도시간에 저런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공포감이 먼저다. 특히 주변에 알던 사람이 이러거나, 앞에서 기타나 드럼의 쿵쿵거리는 소리까지 합쳐지면 정말 무섭다.

방언을 내뱉는 상태에 들어가면 시간감각이 사라져, 10분 정도 기도한 것 같지만 알고보니 1시간이 넘어가는 경우가 있는데, 극도의 흥분이나 격양 상태가 되면 주위를 인지하는 기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의 오리지널이 아니라 토속종교 등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무당(셔먼)의 트랜스 상태와 거의 동일하다. 환시, 환청, 환각 등의 현상도 동일하다. 고행이나 약, 명상등을 통해 종교적 무아지경을 경험하는 기타 다른 종교들과 비슷한 부류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가끔씩 불교 승려도 방언을 하는 경우가 있기에 어떤 사람이 하는 방언이 실제로 기독교에서 믿는 그 신에 관련된 현상이 맞기는 맞는 건지 확정해서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실제로 기독교 관련 현상이 아니라 보편 종교적 체험의 일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녹음해서 나중에 들어보려고 해도 녹음한 걸 틀어보면 소리가 안 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 영상으로도 입증되는 헛소리다. 애초에 소리는 사방으로 전파되는 파이므로 귀가 들었다면 녹음기도 캐치하는 게 당연하다. 방언이 입술로[17] 내는 목소리가 아니라 텔레파시 파동인 거라고 주장하지 않을 이상에야.

야매적인 입장에서 설명하면 교회에서 정해주는 기도시간을 때우기 위해 사용된다. 기도제목은 몇 개 안 떨어지는데 기도시간이 한 시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성령영성교회 서모세 채널러 외계어 목사 방언집회

조용기 채널러의 외계어 목사의 방언 아무리 봐도 원고 같은 걸 읽고 있는 거 같다

바로 위 영상에도 있지만 간혹 성령이 임하셔서 하는 말이라며 어떤 예언이나 정보 등을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성경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18] 냉정히 말해서 무당이 신들려서 내뱉는 소리들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다른 영혼이 말을 해 준다는 경우에는 이단이라고 취급해도 좋다.

특히 검증에 깐깐한 천주교의 경우, 천주교에서 흠숭(하느님)하거나 공경하는 존재(천사들과 성인들)의 이름을 대고 나오는 계시들을 사적 계시로 간주하고, 설사 교황청에서 인정한 것이라도, 못 믿겠으면 안 믿어도 전혀 잘못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하물며 아예 인정받지 못한 것이라면, 한술 더 떠서 하느님이나 성인들, 천사들이 아닌 다른 영적 존재와 소통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4. 폐해[편집]

은사의 특성상 심지어 1~2세기의 초기 기독교에도 폐해가 있었다. 기독교 내에서 이런 방언의 폐해가 발생하는 것은 방언 그 자체보다는 방언으로 인한 인간관계에서 오는 것들이 이 주를 이룬다. 실제로 방언에 대해서 성경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최초의 언급이 "방언 하는 거 잘된 일이긴 한데 막 자랑하고 다닐 일은 아니다~"였음을 보자면 이는 명백하다.

우선 가짜 방언을 말하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많은 경우 신앙심과 관련되어 있다.[19] 물론 방언과 신앙심은 관계가 없지만, 다들 방언하는 분위기라서 방언을 못하면 신앙심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질까봐 방언을 하지 못하는데도 방언을 하고 있는 양 따라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난 방언을 받을만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다.'라고 자신의 신앙심을 자랑하기 위하여 방언을 하는 사람도 있다.[20]

이러한 문제는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초기 기독교에도 있었던 심각한 문제였으며, 특히 코린토스 지방에 있던 교회가 이러한 폐단이 심했다.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코린토스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바울로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몇가지 방언 사용의 원리와 원칙을 정해주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은 성령의 힘으로 신비한 일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키워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도울 뿐이지만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은 교회에 도움을 줍니다. 나는 여러분이 모두 이상한 언어로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만일 이상한 언어를 해석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이 교회의 이익이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이 더 위대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2~5(공동번역)
그러면, 형제 여러분,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함께 모일 때에는 찬송하는 사람도 있고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하느님의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상한 언어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지만 모든 것은 교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상한 언어를 말할 때에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말해야 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해석해 주어야 합니다. 해석할 사람이 없을 때에는 교회 안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말고 혼자서 말하거나 하느님하고만 말하십시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26~28(공동번역)'''

이러한 바울로의 편지에서 드러난 바울로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방언 은사를 가진 자들은 방언 해석의 은사를 겸하여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킴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
2. 공중 예배시 초신자들을 포함한 예배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기도함으로 방언의 은사를 소유하지 못한 신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3.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방언의 은사를 남용하거나 자신의 신앙을 과시하려는 유치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또한 바울로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끼리 있는 곳에서는 되도록이면 방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형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가서 이상한 언어로 말한다고 하더라도 만일 어떤 계시나 지식이나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나 가르침을 전해 드리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피리나 거문고 같은 생명 없는 악기도 소리는 납니다. 그러나 악보대로 분명하게 연주하지 않으면 무슨 곡이 연주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나팔부는 사람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누가 전투 준비를 하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이상한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누가 알겠습니까? 결국 여러분은 허공에다 대고 말하는 셈입니다. 세상에는 갖가지 말이 있지만 뜻 없는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나는 서로 외국인이 됩니다. 성령의 선물은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이니 되도록 풍성하게 받으십시오. 그러나 그것은 교회를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6~12(공동번역)

즉 같은 언어를 사용하여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하는 것이 더 이롭다고 본 것이다. 이 또한 어디까지나 '방언 은사를 가진 자들은 방언 해석의 은사를 겸하여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그것을 삶에 적용시킴으로 교회의 덕을 세워야 한다.'의 원칙에서 방언을 사용하지 않을 것을 권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방언이 애초에 성령의 임재하심의 증표인 만큼 바울로는 방언 그 자체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21] 오히려 자신이 방언 말함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다만 현대 기독교에서는 바울로가 세운 원리와 원칙을 잘 지키지 않고 있다. 특히 개인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감리교단이나 순복음교단이 이런 경향이 심한 편이다. 애초에 방언 자체가 성경의 기록과 많이 달라지기도 했고, 당연히 위에서 언급한 폐해들이 발생했으며 이미 2000년 전에 했던 삽질을 또 하고 있다. 방언이 성령이 임재하신 표징으로 해석될지라도 이에 지나치게 집착해 신앙생활을 왜곡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요는 비단 방언 뿐만 아니라 소위 '은사'로 분류되는 모든 행위들이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이한 거 좋아한다는 게 문제로 신사도 운동과 같은 현상적인 것에 집중하는 것이 뜨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이 현상에 정말 집중을 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쓰러짐 현상이라든가 울부짖음이라든가, 치아가 금으로 변한다던가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면 십중팔구는 이 신사도 운동과 관련된 것이다. 문제는 각 교단에서는 비성경적인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알파코스와 G12, 경배와 찬양의 형태로 이런 것들이 교회 내부에 엄청나게 침투해 들어오는데도 막지를 않는다. 방언도 이 과정에서 딸려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1] 사도행전 2:10에 따르면 그리스어(프뤼기아, 팜필리아 사투리), 이집트어,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 여러 언어로 말하는 장면이 분명하게 묘사되어 나오며 7절에는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들 분명 갈릴리 출신들인데 왜 우리 고향에서 쓰던 말을 하는 거지?"라고 궁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여러 속주의 표준어+지방 사투리로 말했다고 볼 수 있는 것.[2] Francis & Robbins, 2003.[3] Hood, Hill, & Spilka, 2009.[4] 상황에 따라 표기가 다름[5] 그래서 Gift가 초능력으로 해석되는 근간이 여기에 있다.[6] 순복음교회에서 "방언 못 받았으면 구원도 못 받았다"식의 발언을 했다가 이단 아니냐는 다른 교회의 지적을 받고 철회했다.[7] 방언과 같은 신비주의를 지양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장 칼뱅 항목 참고[8] 신학적으로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 예장 고신과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을 듣는 대한성공회 및 루터교회가 방언을 곱지 않게 본다는 것이 흥미롭다.[9] 더 나아가 아예 오늘날의 기적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도 소위 근본주의라고 불리는 교단 내의 엄연한 신학적 학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B.B.Warfield, 《기독교 기적론》에 나와 있다. 참고로, 이거 절판된 지 오래이니 도서관을 잘 뒤져보자.[10] 뉴스에 종종 나오는 사랑의교회의 설립자인 옥한흠 목사의 아들이며 논지가 과격하기로는 개신교 저술가들 사이에 꽤 유명하고, 예전에 소위 "팔복 논란" 때에도 태풍의 눈에 있었기도 했다. 또한 이 사람이 2014년에 그 대형 교회를 비판하기 위해 쓴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에서도 방언을 풍자하는 묘사가 나온다.[11] 성령쇄신운동의 너무 많은 요소들이 개신교와 공유되어 있기 때문이다.[12] 개신교의 오순절 운동가인 데이비드 윌커슨(David Wilkerson) 목사의 책 「십자가와 튀어나오는 칼」(The Cross and The Switchblade)과 존 쉐릴(John Sherril)의 책 「그들이 다른 방언으로 말한다」(They Speak With Other Tongues)가 천주교 신자들에게 소개되었고,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13] 극단적인, 그리고 조금 다른 예이긴 하지만 신비체험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기 시작하면 나주 성모동산, 베이사이드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14] 그러나 방언에 비판적인 신학자들은 이것이 지엽적인 해석일 뿐이라고 본다. 부연하자면, 요엘의 예언은 사도행전 2장에서 성취되었다고 본다. 신사도 운동에서는 요엘의 예언에 나오는 '마지막 때' 혹은 '말세'가 지금이라고 해석하는 것이지만(그래서 사도행전 2장은 부분적인 성취, 신사도 운동은 최종적 성취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원문의 의미는 '나중에' 혹은 '그 때에' 정도인데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이게 요엘의 예언의 성취다!'라고 대놓고 말했기 때문에 주류 신학계에서는 현대에 요엘의 예언이 재현될 이유가 없다고 본다.[15] 어빙은 오순절 운동과 신사도 운동의 먼 시조격 인물이라며 근본주의 진영에서 자주 까이는 인물이지만, 단순히 사도직이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 정도를 넘어서서 선지자, 복음 전하는자, 교사, 제사장 등의 직분을 다시 세분화시키고 가톨릭처럼 계급으로 나눠야한다고까지 주장하여 당시에도 스코틀랜드 국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고 추방당한 전적이 있었다. 그 직후 추종자들과 함께 만든 교단이 가톨릭 사도교회(...)이다.[16] 대한민국에서도 간혹 가다 볼 수 있는 새사도교회(NAK, 파도모양 위에 십자가가 겹쳐져 있는 마크를 사용한다)가 이 계열이다.[17] 실제로 개신교에서 기도나 찬송 등등을 '입술로' 올린다고 많이 표현함.[18] 구약에서 믿을 만한 선지자의 예언에서는 야훼의 엄중한 말, '주의 말이니라(Thus saith the LORD)' 등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한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도 마찬가지로 계시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맞다는 보안장치를 확실히 해 놓는다.[19] 현대에서는 그 외의 가장 큰 요인으로, 방언이 단지 아무렇게나 주절대고 말하는 걸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성령집회에서 방언 받으라 해서 따라하다가 집회 도우미가 방언을 받았다고 하니까 진짜 그런 줄로 아는 경우도 많다. 나는 평범하게 기도하는데 발음이 안좋아서 방언취급받기도 한다[20] 어느 교회에 새로 부임한 목사가 방언을 할 줄 몰랐는데, 전임 목사의 방언에 깊은 인상을 받은 신도들의 압력 때문에 헬라어 성경을 마치 방언인 척 읽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21]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은혜를 간절히 구하십시오. 그리고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것도 굳이 막지는 마십시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