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분류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베를린
1989년
파리
베를린
Berlin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Berlin.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Coat_of_arms_of_Berlin.svg.png
깃발
휘장
베를린의 위치
행정
[ 펼치기 · 접기 ]
국가
시간대
UTC+1/+2
하위행정구역
12구
인문환경
[ 펼치기 · 접기 ]
면적
891.68km²
인구
3,664,088명(2021년)
6,195,632명(2021년, 대도시권)
인구밀도
4,109명/km²
정치
[ 펼치기 · 접기 ]
시장
미하엘 뮐러[1]
주의회
여당
38석 / 160석
27석 / 160석
27석 / 160석
야당
31석 / 160석
22석 / 160석
11석 / 160석
4석 / 160석
연방하원
6석 / 28석
6석 / 28석
5석 / 28석
4석 / 28석
4석 / 28석
3석 / 28석
연방상원
4석
ISO 3166-2
DE-BE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
2.1. 고대와 중세2.2. 근세2.3. 근대2.4. 분단기: 잃어버린 40년2.5. 통일 이후
3. 정치4. 관광과 문화
4.1. 동베를린
5. 교통
5.1. 주요 도시 이동 소요시간
6. 주민7. 행정구역8. 브란덴부르크 주와 통합 떡밥9.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베를린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abends.jpg

독일연방공화국수도이자 도시주. 브란덴부르크주에 둘러싸여 있다. 독일의 나머지 도시주들인 함부르크브레멘의 정식 명칭이 자유 한자[2]인 데 반해, 베를린의 정식 명칭은 베를린 [3]이다. 다만, 하위 행정구역은 여타 도시주처럼 구(Bezirk)로 구획되며, 단체장의 직함도 시장[4]이다. 맨 위의 사진은 예전의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의 검문초소 중 하나였던 브란덴부르크 문.

파일:external/travelhdwallpapers.com/Rotes-Rathaus-10.jpg

베를린 시청사

'베를린'은 독일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것이고 실제 발음은 한글로 표기하자면 베얼린(/bɛɐ̯ˈliːn/, 표준 독일어 기준)[5]에 가깝다. 한자 가차로는 백림(伯林)이라고 읽는다.[6] 한국의 활자매체에서 동백림, 서백림하면 각각 독일의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을 지칭하는 것이다.

‘베를린(Berlin)’이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에 살던 서슬라브계 민족인 폴라브인의 언어로 ‘물기가 많은 땅’을 가리키는 ‘Birlin’ 또는 ‘Berlin’에서 유래했다.[7] 하지만 오랫동안 ‘새끼곰’을 뜻하는 말로 잘못 알려져 왔던 탓에 이미 1280년부터 쓰였던 도시 문장에도 새끼곰이 들어가게 되었다.

http://www.newrepublic.com/sites/default/files/u166888/121614352.jpg

독일이 현대 미술과 디자인의 중심지로 떠오르고 클럽 문화의 중심이 되면서 유럽 각국의 예술가들과 젊은이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야말로 유럽에서 가장 쿨한 도시. 이 때문에 베를린의 몇몇 낙후 지역은 뜨는 동네가 되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등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파리나 런던에 비하면 주거 부담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해서 여전히 역동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경제 중심지에 세계에서도 물가 비싸기로 악명 높은 파리, 런던과 다르게 베를린은 경제력이 독일 평균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15년을 기점으로 베를린이 쿨함을 잃고 있다는 둥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래도 독일의 수도답게 치안은 상당히 좋다.

파일:external/www.telegraph.co.uk/berlin.jpg
파일:external/www.guiadealemania.com/Catedral-de-Berl%C3%ADn.jpg

베를린 대성당(Berliner Dom). 뒤편에 TV타워와 붉은색의 베를린 시청사가 보인다.

파일:external/ebnwu.com/1280px-Reichstag_building_Berlin_view_from_west_before_sunset.jpg

독일 연방하원의원(Reichstag 라이히스탁: 구 제국 의회 건물을 재건하였다.)

파일:external/img07.deviantart.net/berlin___potsdamer_platz_by_modi1985-d4dknrj.jpg

포츠담 광장(Potzdamer Platz). 분단 당시에는 베를린 장벽이 서있던 곳이다. 오른쪽의 초고층 유리궁전 건물은 독일철도공사의 본사인 반타워이며 그 옆에 붙은 기념관 같은 건물은 베를린 장벽 기념 박물관 건물로서 해당 자리에 장벽이 있었다는 표시이자 기념관으로서 세운 것이라 한다.

파일:external/blog.radissonblu.com/friedrichstrasse-street-berlin.jpg
프리드리히 거리(Friedrichstraße)

2. 역사[편집]

2.1. 고대와 중세[편집]

기원전 7~8세기경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이 남하하여 현 독일을 중심으로 한 게르마니아 일대에 퍼져 살게 되었다. 베를린을 위시한 브란덴부르크 지역은 롬바르드족, 수에비족 등이 살았다.

375년 훈족이 유럽이 당도하자 잔혹한 훈족을 피해 100여년에 걸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일어났다. 대이동의 결과 원래 엘베강 동쪽에 살았던 게르만족들은 대부분 엘베강 서쪽으로 이동했다.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지역에 살던 수에비족과 롬바르드족 등도 훈족을 피해 각각 이베리아 반도와 이탈리아 반도 등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 정착했다.

453년 훈족의 지도자 아틸라가 죽고 훈족이 갑자기 멸망하자 엘베강 동쪽의 드넓은 동유럽 지역은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 그러자 5 ~ 6세기에 걸쳐 그자리에 슬라브족들이 내려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브란덴부르크와 베를린 일대는 벤드족을 비롯한 슬라브족들이 이동해 들어와 정착했다.

10세기 독일 왕국신성 로마 제국이 잇달아 세워진 후, 오토 대제가 마자르족의 침공을 종식시켰고, 이후 작센 공국,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 등을 중심으로 당시 슬라브인들이 살고 있는 엘베강 동쪽을 수복하려는 동방식민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1100년대에는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알브레히트를 위시한 독일인들이 벤드족이 살고 있는 엘베강 동쪽 지역을 공략했다. 이때 베를린이 형성되었으나 초기에는 하나의 작은 어촌 마을에 지나지 않았고, 슈프레 강의 북동쪽 둑에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때에는 슈프레 강의 섬에서 쾰른이라는 마을이 형성되었고, 통상의 중심지였기에 쾰른이 1237년 도시가 되었고, 1244년 베를린 또한 도시법으로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1307년에는 베를린과 쾰른이 그들의 공동 방어를 위한 연합을 설립, 공통의 시청사를 지었다. 그뒤 한자동맹에 가입하여 상업도시로 발전하였고, 다른 한자동맹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상거래의 자유, 도시자치를 위해 영주와 싸우면서 14세기에는 통상과 제조업의 중심지로서 브란덴부르크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1415년 호엔촐레른가의 프리드리히 1세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된 뒤부터 변경백의 권력이 약화, 프리드리히 2세 때 베를린-쾰른은 자치도시로서의 특권을 빼앗기고 다시 분리되어 군주의 행정 아래 들어갔다. 그 뒤 베를린과 쾰른은 상업도시로서의 지위는 떨어진 반면, 쾰른 북부에 호엔촐레른가의 성이 세워짐으로써 왕궁·관청도시로 발전하였다. 종교개혁시기인 1539년에 호엔촐레른 왕조개신교로 개종했다. 이후 서부 독일의 그리스도교도 및 유대인 등을 받아들였고, 상공업이 진흥되기 시작했다.

2.2. 근세[편집]

그러나 30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베를린은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 스웨덴 군대의 점령기를 거치며 도시 건물의 1/3이 파괴되었고, 시민의 절반 이상이 도망가거나 사망했다. 30년 전쟁이 끝나고 베를린은 인구가 6,000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30년 전쟁 말기에 즉위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브란덴부르크 대(大)선제후[8]는 전쟁으로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선제후는 슈프레 강과 오데르 강 사이에 운하를 건설하여 함부르크와 브레슬라우 등의 상업도시와의 사이에 수송로가 열려 상공업이 진흥되고 인구수는 5만 5천명으로 증가했다. 대선제후 치세 말기인 168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위그노에 대한 재산 몰수령을 내리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선제후는 이것을 기회로 여겨 즉시 위그노에게 종교와 언어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칙령을 내렸고, 위그노들이 대거 베를린으로 이주하게 된다. 우수한 새로운 시민을 합친 베를린은 상업·공업이 급속히 발전하여, 동부독일의 지도적인 도시로서 문화적으로도 개화의 기운이 넘치는 신흥 도시가 되었다.

이후 1700년 선제후(변경백) 프리드리히 1세프로이센 왕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국왕이 되었다. 베를린은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로서 더욱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바로크 건축 양식의 궁전과 귀족들의 저택 등이 건설되고, 고전주의 양식으로 된 도시경관이 갖추어졌다. 또 중상주의 정책에 입각한 국왕의 산업보호에 힘입어 모직, 면직, 견직 등의 직물업과 은행업이 크게 일어났다. 지금도 여러 일화, 심지어 성문기본영어에도 등장한 프리드리히 1세는 비록 다른나라들로부터 병정놀이에 심취한 괴짜왕 취급을 받았지만,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고, 베를린시를 주기적으로 시찰하면서 근무가 태만한 공무원을 직접 매질하는 등 공직 기강을 바로 잡아 그의 아들대에 이룩한 프로이센과 베를린의 번영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프리드리히 2세)이 즉위하면서 프로이센과 베를린은 번영기에 접어들었다. 물론 초창기에는 말도 안되는 시련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프리드리히 2세가 황위계승 전쟁에 딴지를 걸면서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및 후속전인 7년 전쟁이 일어났고, 7년 전쟁의 와중에 한때 크게 수세에 몰려 1757년 오스트리아군, 1760년 러시아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때 프리드리히 2세는 잡히기전 자살하려고 독약까지 지니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프리드리히 대왕은 두 전쟁에서 연속으로 승리를 거두었고 프로이센은 비옥한 슐레지엔을 획득하여 번영하기 시작한다. 전쟁이 잦아든 프리드리히 대왕 재임기 중반 이후 베를린은 크게 발전하기 시작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에 의해 베를린 교외에 상수시 궁전 등이 건축되었으며, 또 프랑스식으로 개조된 프로이센 학사원이 자리잡았다.[9] 또한 문화적인 특색으로 프랑스에서 전파된 계몽주의적인 경향으로 프리드리히 2세의 개인적인 취향에 의한 궁정문화로 시작되어, 극작가 레싱 등의 활약으로 시민 사이에 뿌리를 내렸는데, 그 새로운 문화경향은 가톨릭적이고 복고적인 경향이 짙은 남부 및 서부 독일의 문화에 비해 이색적으로 작용하면서 통상의 중심지이면서 예술과 과학이 번창하는 도시가 되었다.

2.3. 근대[편집]

프리드리히 대왕 사후 프랑스 혁명기를 거쳐 나폴레옹전쟁으로 접어들게 된다. 1806∼1810년에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에 의해 점령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나폴레옹 전쟁 와중인 1810년 훔볼트 남작 등의 노력으로 베를린 대학이 세워졌는데, 당대의 일류 석학들을 모아 독일 각지의 역사깊은 대학들을 능가하는 명성을 얻음으로써 나치 이전까지 독일의 학문·예술의 중심지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후 빈 체제하에서 전화의 피해를 복구하기 시작,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인구 20만에서 1861년에 55만이 되었고 이에 따라 30년 전쟁 직후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구축했던 성벽을 해체하고 더욱 급속하게 성장하였다.

1871년 프로이센 왕국을 주축으로 한 독일 제국이 세워지면서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인구 826,000명이 되었다.



1910년대 독일 제국의 수도 베를린의 모습.



1936년 나치 독일 시기와 패망 직후 연합군 군정 시기의 모습.

1910년에 2,076,200명으로 늘어났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패전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지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들어섰다. 1920년 10월 수도 대확장을 통해 원래 면적의 12배가 넘는 면적으로 확장되었다. 관련 영문 위키백과 문서 베를린 대확장 법령 독일어 원문[10][11]

1920년대 초 독일과 베를린은 막대한 배상금으로 큰 고통을 받았고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렸지만 20년대 중반부터 빠르게 회복해 나갔다. 1920년대말 베를린은 이전처럼 유럽 문화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되찼았다. 이 시기 베를린에는 지식인과 예술가, 소수자들이 모여들었다. 베를린에 수백개가 들어선 카바레는 전후 도발적인 문화의 상징이었고, 성소수자들이 잡지를 내는 등 양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2.4. 분단기: 잃어버린 40년[편집]

나치 독일이 일으킨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베를린 또한 드레스덴이나 쾰른같은 독일의 다른 도시들처럼 연합군의 공습을 받고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선의 최후의 전투인 베를린 공방전(1945년 4월 16일 ~ 5월 8일)에서 소련군과의 치열한 시가전을 통해 베를린시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12]

파일:Berlin_1949-1990.png
서베를린
동베를린
시기(市旗)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Flag_of_Berlin.svg.png
면적
479.9㎢
409㎢
인구(1946)
1,996,250명
1,174,582명
인구(1989)
2,130,525명
1,279,212명
점령국
구(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노이쾰른(Neukölln)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쇠네베르크(Schöneber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슈테글리츠(Steglitz)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템펠호프(Tempelhof)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첼렌도르프(Zehlendorf)
파일:영국 국기.svg 샤를로텐부르크(Charlottenburg)
파일:영국 국기.svg 티어가르텐(Tiergarten)
파일:영국 국기.svg 빌머스도르프(Wilmersdorf)
파일:영국 국기.svg 슈판다우(Spandau)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png 라이니켄도르프(Reinickendorf)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png 베딩(Wedding)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미테(Mitte)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프리드리히스하인(Friedrichshain)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헬러스도르프(Hellersdorf)[13]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호헨쇤하우젠(Hohenschönhausen)[14]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쾨페니크(Köpenick)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리히텐베르크(Lichtenberg)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마르찬(Marzahn)[15]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판코(Pankow)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프렌츨라우어 베르크(Prenzlauer Berg)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트렙토(Treptow)
파일:소련 국기 (1936-1955).png 바이센제(Weißensee)

이후 독일 본토와 별도로 베를린시 자체가 수도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연합국 4개국, 즉미국·영국·프랑스·소련에 의해 분할되었다. 냉전기 동서 베를린은 각기 미국과 소련의 원조로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단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옛 베를린의 모습들이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1949년 두 개의 독일 정부가 세워지면서, 소련 점령지구인 동쪽 지구(동베를린)는 사실상 동독에, 나머지 3개국 점령지구(서베를린)는 사실상 서독에 속하게 되었다. 사실상이라고 표기한 것은, 연합군 군정기를 벗어나 서독과 동독이 세워진 이후에도 베를린은 연합군 점령지대로 취급되어 공식적으로는 서독의 영토도 동독의 영토도 아니었다. 다만 서베를린의 행정권을 서독이, 동베를린의 행정권을 동독이 행사했을 뿐이다. 동독은 동베를린을 '독일민주공화국의 수도(Hauptstadt der DDR)'라고 칭했지만, 서방 연합국들은 공식적으로는 동독의 사칭 취급했다. 소련을 포함한 제2세계 국가들은 그냥 동독 영토로 간주했다. 소련이 동독더러 '동베를린은 너희 게 아니라 우리 거다' 그러진 않았단 말이다.

이 때문에 당시 서베를린에서는 독일 연방의회 의원을 선출하지만 직접 뽑는 게 아니라 서베를린 지방의회의 간선으로 선출될 뿐더러, 이들은 표결권이 없었고, 서독 기본법이나 연방헌법재판소의 판결도 서베를린에서는 그 효력이 제한되었다. 그리고 징병제였던 서독 본토와 달리 서베를린에서는 징병제가 적용되지 않아 병역을 피하려는 젊은이들이 유입되기도 했다. 심지어 동독 집권당이던 사회주의통일당서베를린 지부가 존재했다. 이 상황은 1990년에 연합군이 철수하고 통일과 함께 정식으로 서베를린과 동베를린이 합쳐져 베를린 주가 세워지고 나서야 해소되었다.

한편 서독에 속한 서베를린은 동독 영토에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섬'이 되었다. 1948년 독일의 전후 처리 등을 두고 소련과 미국의 갈등이 고조되던 상황에서 소련은 서베를린까지 완전히 먹어버릴 요량으로 서베를린을 소련제 탱크로 완전히 둘러싼 채 베를린 봉쇄를 감행했다. 몇 주 지나지 않아 아사 위기에 처한 서베를린이 스스로 항복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미국의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베를린 공수작전으로 인해 소련의 베를린 봉쇄는 실패하고 말았고 서베를린은 계속 서방 자유주의 세계의 도시로 남게 되었다. 한편 당시 서독과 비교 대상이었던 동독을 육성하기 위해 소련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고, 동베를린은 동구권 국가의 도시 중에서는 가장 발전된 도시에 속했다.

그러나 냉전의 긴장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서방과 동구권의 경제적 격차가 점차 벌어지고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동베를린을 통해 서독으로 탈주자가 늘어나자 동독 정부는 1961년 야밤에 기습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웠다. 베를린에서 다시 군사적 긴장감이 증대하자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Ich bin ein Berliner(나도 베를린 시민입니다)" 연설을 하여 서베를린 시민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받기도 했다. 베를린 장벽은 이후 냉전의 상징이 되었다.

세계 정복을 꿈꾸던 베를린이었으니만큼, 서베를린만으로도 서독 제1의 인구를 가진 큰 도시였다. 그러나 분단기는 베를린을 크게 쇠퇴시켰다. 동독 한가운데 콕 박힌 서베를린에서 기업의 중추 업무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자연히 베를린에 있던 지멘스와 알리안츠의 본사가 뮌헨으로 떠나갔다. 축구라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전쟁 전까지만 해도 꽤나 강팀으로 먹어주던 헤르타 BSC 역시 분단으로 인한 접근성 저하가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 비실거리는 약팀으로 몰락하고, 대신 바이에른 뮌헨이 독일을 대표하는 거의 유일한 강팀으로 군림하게 된다. 그리고 뮌헨에 이사간 알리안츠는 바이에른 뮌헨알리안츠 아레나라는 선물을 안겨주게 되고... 아무튼 간에 이런 식으로 냉전 시기 서베를린에는 제대로 된 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동베를린은 공산주의 정권의 수도가 되어 온갖 삽질과 병크의 희생양(...)이 되었다. 분단 전에는 베를린 곳곳을 이어주던 베를린 지하철 또한 동과 서로 분리되어 무정차 통과하거나 유령역이 되는 역이 나오는 등, 파행운행되었다. 지하철망은 통일 후에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서베를린 지역에 있던 노면전차는 아예 폐선되어버리고 동베를린 지역의 노면전차만 남아있다.

이후 1989년 동베를린 시민들에 의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0년 동서독 통일이 이루어지면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또한 분단된 지 45년만에 재통합하게 된다. 이후 1991년에는 서독의 임시수도 에서 환도해 통일 독일의 수도로 컴백, 이후 지금까지 통일 독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나치독일 시절과 현재의 베를린 비교.[16]

2.5. 통일 이후[편집]

통일 후 25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베를린은 수도임에도 다른 독일 도시들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2018년 기준 1인당 GRP가 40,600유로로 독일 전체 평균 40,900 유로보다 낮다.

베를린의 구(區)는 2001년 1월 1일부로 개편을 통해 대거 통합되었다. 베를린의 구는 1920년 베를린 대확장 당시 20개였고, 동베를린에서 3개가 늘어 개편 직전인 2000년에 23개(구 서베를린 12, 구 동베를린 11)였으나, 통폐합을 거쳐 현재의 12개로 줄였다.

2000년대 들어서 베를린은 잃어버린 40년을 되찾기 위한 대규모 개발계획들이 속속 추진 중이다. 크고 아름다운 스케일의 수도 이전부터 시작해서, 베를린의 잡다한 공항을 다 긁어모아 새 공항을 지었으며, 중앙역 또한 벌써 다 짓고 영업 중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동쪽 파리광장에서 슐로스다리까지의 베를린의 중심축 거리인 운터 덴 린덴(보리수나무 아래)거리 양 옆으로 훔볼트 대학을 비롯해 왕궁, 도서관, 오페라하우스가 있었지만 분단되면서 소련식으로 마개조당했는데, 제 모습을 찾기 위해 열심히 공사 중.

베를린 왕궁도 현재 복원공사를 진행 중인데 (2019년 9월 14일 완공 예정이었으나 2020년으로 연기.), 크기로서는 파리의 루브르급에 달할 정도로 큰 프로이센 왕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기간에 연합군의 폭격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 이후 동독에서 봉건주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라며 복구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킨 뒤[17] 그 자리에 공화국 궁전(Palast der Republik)이라는 건물(동독 정부청사 및 문화공연장)을 세웠다. 베를린 시민들은 밤에도 번쩍번쩍한 이 건물을 보고 '램프 가게'라는 별명을 붙였다.

파일:external/si.wsj.net/BN-EB632_0815sc_G_20140812131454.jpg
파일:external/www.judgmentofparis.com/064.jpg

2차대전 전 베를린 대성당과 베를린 왕궁의 모습

파일:external/dic.academic.ru/Palast_der_Republik_2003.jpg

공화국 궁전의 모습

파일:external/blog.acis.com/042613-blog-f.png

복원 후 조감도

통일 후 정부에서는 기존 공화국 궁전을 정부청사로 사용하지 않고 청사를 새로 신축했으며[18] 공화국 궁전 자리에 있던 프로이센 궁전의 복원을 추진하려고 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의 향수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화국 궁전의 철거에 대한 반대가 심했다. 대신 없어진 공화국 궁전을 국회도서관이 재건축 형식으로 대체했다. 결국에는 호엔촐레른 왕조 종친회의 로비사업과 서독시민들의 성금으로 복원하게 되었다. 복원 후에는 훔볼트포룸(Humboldtforum)란 이름으로 세계민속박물관으로 사용될 듯하다. 근데 사실상 신축에 가깝다. 여러 모로 한국인에게는 경복궁조선총독부 청사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인데, 실제로도 베를린왕궁 복원협회 이사인 빌헬름 폰 보딘이 유사하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19]

독일 슈피겔은 2016년 7월 21일에 베를린의 인구가 350만명을 넘었고 동시에 주택난도 동반되고 있다고 밝혔다. # 2017년 기준으로는 371만이다. 이와 동반하여 월세 및 부동산값 또한 유럽 주요도시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상승중이다. 독일은 주택 소유율이 50% 이하이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임대주택에 거주한다. 동베를린을 포함한 구 동독 지역은 주택 대부분이 통일 후 민영화 과정에서 수만채 단위로 민영 임대업체에 매각되었다. 결국 보다 못한 베를린 시 정부가 2020년 2월부터 2014년 이전에 건축한 집은 5년간 월세를 올리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 독일 안에서도 상당히 찬반이 갈리는 정책 중 하나로, 당시 시의회 야당이었던 기독교민주연합은 이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반대파들은 위헌심사를 제기한다고 한다. 결국 14개월 만에 위헌 판결을 받았다.#

3. 정치[편집]

연방정부의 14개 부처 중 외무부와 재무부를 포함한 8개 부처가 베를린에 소재하고 있다. 나머지 6개의 부처는 구 서독의 임시 수도였던 에 소재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사민당에 대한 지지가 강하게 나타나는 곳인데, 1946년부터 1989년까지 서베를린 시절 진행된 13번의 선거 중 1975년부터 1985년까지의 4번의 선거를 제외하고는 사민당이 1당 지위를 가져간 곳이었다.[20]
독일 재통일 이후인 1990년부터 1999년까지 3 차례의 베를린 주 총선에서는 기민련이 압승했으나 통일의 부작용으로 기민련에 대한 지지가 시들해진 뒤인 2001년부터는 다시 사민당의 지지세가 강해졌다.

2001년 이후 주의회 의석은 항상 사민당이 제1당을 차지하는 구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데 그렇다고 완전 과반은 아니라서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하고 있다.

또한 구 동베를린을 중심으로 좌파당 지지율이 어느정도 나온다.

현재는 사민당이 좌파당동맹 90/녹색당과 연정을 구성하고 있다

4. 관광과 문화[편집]

베를린은 영어가 상당히 잘 통하는 도시 중 하나다. 한국인이 식당이든 매장이든 가면 처음부터 영어로 질문하는 경우도 있으며, 어지간한 버스기사들, 택시기사들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편.

명소로는 베를린을 대표하는 브란덴부르크 문과 그 근처에 있는 국가의회의사당, 소련군 전승기념비,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다국적기업 유럽지사들의 빌딩들이 있는 포츠담 광장, 동서 베를린 경계의 연합군-소련군 초소중 가장 유명한 체크 포인트 찰리, 티어가르텐, 그리고 연합군의 폭격으로 유명한 베를린 초역(Zoologischer Garten) 앞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교회 등이 있다. 시내에서 빤히 보이는 TV타워(Fernsehturm)는 독일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다. 위치는 알렉산더 광장에 있다. 티어가르텐에는 보오전쟁, 보불전쟁 승전, 독일제국 수립 기념으로 1873년에 지은 전승기념탑 및 독일제국 수립의 주역 3인방(룬, 비스마르크, 몰트케) 동상이 있다. 100번 버스를 타면 전승기념탑 앞에 세워 준다. 매년 2월에는 베를린 영화제도 열리며, 수여되는 상은 황금상. 종교시설로는 베를린 대성당(베를리너 돔)이 웅장하다.

박물관이 굉장히 다양하고 볼거리가 풍성하다. 대표적으로는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 구 박물관, 신 박물관, 구 국립미술관, 이집트 박물관이 한 데 모여있는 박물관 섬이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은 근동의 유적들을 통째로 옮겨온 것으로 유명하다.바벨론의 이슈타르 문과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대가 가장 유명한 유물. 하지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내부수리+정문 일대 수리로 페르가몬 박물관 일부 구획과 유물이 관람 불가능하다. 구 국립미술관에 대응하는 신 국립미술관은 박물관섬이 아니라 포츠담광장 남쪽의 쿨투어포럼(Kulturforum)에 위치해 있다.

박물관 섬 건너편에 있는 훔볼트박스는 2019년 초에 철거되었다. 철거되기 전에는 베를린 성 복원 공사 홍보관처럼 사용되었다. 2018년 5월 당시 박스 겉면은 스폰서인 삼성의 로고로 랩핑되어 있었다. 물론 이 광고비 중 일부는 베를린 성 복원 공사 자금으로도 사용되었다.

베를린 성을 기준으로 슈프레 강 건너편에 냉전시대의 동독 시절 생활상을 인터랙티브 전시를 통해 체험할 수 있는 DDR 박물관이 있다. 전시 내용이나 체험방식등이 상당히 참신하고 재미있다. 베를린의 상징적인 음식이 되어 버린 커리부어스트 박물관도 있으며 호모섹슈얼 미술관도 있다. 유대인 박물관은 독특한 건축으로 유명하다. 좁고 어둡고 날카로우며 묘한 경사 때문에 어지럽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고통을 건축에서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구 게슈타포 본부가 있던 위치에 지은 '테러의 지형(Topography of terror)'은 나치의 만행을 아주 자세하게 전시했을뿐만 아니라 베를린 장벽을 가장 진지하게 관람할 수 있는 곳으로 이름이 높다. 베를린 장벽 아래 1933년 나치의 집권과 그 과정에서의 만행이 기록되어 있다. 더구나 위의 박물관들과 달리 무료이며 화장실이 다소 외진 곳인 지하 1층에 있어서 그렇지 편하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박물관은 아니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건물 근처에 T-4 프로그램 기념물이 있다.

파일:external/www.stadtentwicklung.berlin.de/museumsinsel_titel_470.jpg
박물관섬과 베를린 대성당(베를리너 돔)

파일:external/www.eurocheapo.com/pergamon.jpg
페르가몬 박물관

파일:external/talestoldfromtheroad.com/JM-Fallen-Leaves-Walking-IMG_2507.jpg

http://www.dw.com/image/0,,6624969_4,00.jpg
유대인 박물관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베를린 박물관 패스'(Museum pass Berlin)라는 것도 판다. 공항에서 구입하지 못했다면 베를린 중앙역이나 TV타워에 있는 인포메이션에서 구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베를린과 포츠담 소재 국립, 시립 박물관들을 3일간 무제한 이용가능한 티켓이다. 심지어 학생은 50퍼센트 할인까지 되니 젊을 때 많이 돌아다니자. (구입 후 패스 뒤에 이름과 사용시작 날짜를 꼭 기록해두자.) 박물관을 세 군데 이상 다닌다면 박물관 패스를 사는 편이 이익이다. 다만 사설박물관은 박물관 패스가 적용이 안되는 곳도 더러 있다.(이를테면 '전쟁반대 박물관' 같은 곳) 베를린 박물관 패스를 구입할 때 아예 적용가능한 박물관이 표시된 소책자를 주니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이밖에도 여행자 전용 투어카드인 '베를린 웰컴카드'도 필히 이용하자.

음악적으로도 매우 주목할 만한 도시인데, 세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베를린 도이치 교향악단,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관현악단관현악단들이 활동하고 있다. 오페라 쪽도 만만찮아서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 도이체오퍼(독일오페라극장), 코미셰오퍼(코믹오페라극장) 세 개 극장에서 경쟁적으로 수많은 오페라들을 상연하는 등 시즌마다 음악팬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가고 있다. 구 서베를린 지역의 베를린 예술대학과 동베를린 지역의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등의 정평있는 음악예술 교육 기관에서는 수많은 음악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파일:external/manchesterhistory.net/philharmonie1.jpg 파일:external/i1.wp.com/berlin.gif 베를린 필의 상주 공연장인 필하모니의 외부와 내부 모습. 독특한 내부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이는 자리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음향이 크게 차이 나는 과거의 공연장에서 벗어나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형태의 구조를 고안하면서 이런 독특한 형태의 내부 구조가 설계되었다. 실제로 어느 자리에서나 좋은 음향과 괜찮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영국런던과 쌍벽을 이루는 클럽 문화의 중심 도시인데, 베르크하인(Berghain)과 워터게이트 클럽이 유명하다. 또한 세계에서 제일 큰 테크노축제인 러브퍼레이드의 탄생지이다. 지금은 없어졌다.

1980년대 테크노 음악, 유럽 일렉트로니카의 중심지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서베를린은 인구 감소로 인해 큰 골치를 앓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인구의 유입은 지상과제가 되었다. 결국 서베를린 정부는 서베를린에서 음악, 파티, 마약에 관한 단속을 어느정도 완화하는 초법적인 조치를 취했다. 독일은 연방국가이기 때문에 이런 조치가 가능했다. 물론 당시 서베를린은 공식적으로는 독일의 주가 아니었지만(연합군 점령지대이므로) 시장은 서베를린 주민들이 뽑았고 서독 연방의회에 표결권 없는 의원도 보내는 등 주처럼 취급받았다. 결국 여름만 되면 서베를린으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많아졌고, 이 광란의 분위기에 취해 아예 눌러 사는 젊은이들도 등장했다. 게다가 당시 서베를린은 인구 감소로 인해 빈 건물이 많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스쿼팅을 하여 빈집에서 멋대로 사는 경우도 많았다. 악기와 사운드 시스템을 철저하게 갖춰야 하는 록 음악과 달리, 일렉트로니카는 어느 정도의 사운드 시스템만 갖춰 지면 어느 곳에서든 연주가 가능했다. 결국 젊은이들은 차 한대에 믹서와 샘플러, 스피커를 싣고 다니면서 이곳 저곳에서 파티를 열 수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서베를린은 유럽 일렉트로니카의 수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 당시 상황을 다룬 다큐멘터리 예고편. 후방주의[21]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서베를린에 거주하던 나이 많은 독일인들은 "그야말로 세기말 적이고 광란이 가득한 도시"였다고 회고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스쿼터(스쿼팅하여 사는 사람들. 주로 펑크족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았다)들과 경찰 사이에서 충돌이 벌어지곤 했고, 도시 전반적으로 먹고 살 길은 막막한데 다들 어떻게든 이상한 짓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인근에는 포츠담 회담으로 유명한 포츠담이 있다. RE(레기오날 익스프레스)로 약 30분 거리. 포츠담까지 가기 위해서는 C구간 티켓을 끊어야 한다. S반 타지 말자 기차로 한두 시간 안에 폴란드도 갈 수 있다. 오더강 부근에 있는 폴란드와의 국경 도시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Frankfurt an der Oder) 역은 폴란드 바르샤바로 가는 열차의 필수 정차역이자 국경역이다. 독일 서부에 있는 흔히 프랑크푸르트 하면 생각나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과는 전혀 다른 도시이니 주의할 것. 베를린을 비롯한 독일 동부에서는 아무 말도 없이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표를 달라고 하면 십중팔구 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행 표를 끊어 주니 주의할 것. 프랑크푸르트 오더 역에는 ICE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행 ICE 표 달라고 하면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으로 가는 걸 주겠지만 확인해서 나쁠 건 없다.

도시 위치가 서유럽의 동쪽 경계에 위치하기 때문에, 서유럽을 중심으로 배낭여행일정을 짤 때 빠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광하기 좋고, 인상적인 근현대 유적지가 많기 때문에 동유럽이나 북유럽까지 여행할 사람들은 꼭 들리도록 하자. 배낭여행 갔다와보고 "독일 별 것 없더라"고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베를린을 빼고 몇몇 랜드마크 빼면 볼 게 없는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 혹은 쾰른 등에만 갔다 온 사람들이다. 함부르크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할레 같은 특색있는 도시가 얼마나 많은데...

베를린 동물원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쿠담 거리라고 부르는 명품거리가 있다. 독일어 정식 명칭은 Kurfürstendamm이며, U반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명품거리가 약 1km 길이로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데, 베를린에서 쇼핑한다면 필수. 독일에 몇 개 없는 애플 스토어도 여기에 있다. 마약과 매춘으로 유명한 Kurfürstenstraße와는 전혀 다른 거리이니 유의할 것. 동물원역 기준 쿠담거리와는 반대 방향인 동쪽에 있는 유서 깊은 카데베 백화점도 쇼핑에 좋다. 특히 식품관이 볼거리가 많다.

알렉산더 광장에 갤러리아 백화점도 있는데, 특색이 있진 않으나 나름 쇼핑할만한 게 있는 편이다.

메세 베를린이라는 전시장IFA가 개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4.1. 동베를린[편집]

구 동베를린 지역엔 스쾃 공동체, 지역 시민단체가 만든 농장 등이 있다. 공산주의자는 창문에 사파티스타 포스터를 걸어놓고 성소수자 친화적인 바엔 6색 무지개 깃발을 걸어놓는가 하면, 자기 카페는 스킨헤드 손님을 거절한다며 "선인장 금지"(스킨헤드를 조롱하는 의미로 선인장을 쓰는 듯 하다) 포스터가 붙어있는 등 자기의 정치적 사안을 주장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는 도시다. 극렬 반이슬람 정당에서부터 해적당, 트로츠키블라디미르 레닌의 얼굴을 그려넣은 포스터의 사회주의 정당까지 정치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하지만 앞서 자기 카페에 스킨헤드 손님을 거절한다는 내용대로 구 동베를린 지역에는 분위기가 우중충해서 멀리 가고 싶지도 않지만 극렬 나치즘 스킨헤드들이 있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요한다! 독특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다면 큰 길을 중심으로 다니자. 참고로 대머리+검은색 구두+흰색 신발끈이면 100% 스킨헤드라고 보면 된다. 습격당한다면 바로 경찰에 신고하자. 독일 경찰의 킬순위 1위가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네오 나치 극우주의자들이다.

5. 교통[편집]


베를린 S반, 베를린 U반, 전차와 페리까지 매우 다양한 교통수단이 있으며, 모두 표 한장이면 탈 수 있다. 일회권의 경우 이용기간은 2시간. KTX처럼 표는 구입을 하지만 개찰구가 없으며, 정기권이 아닌 경우에는 플랫폼에 있는 기계에서 스탬핑을 해야한다. 가끔 검표원이 다니면서 검표를 하는데 들키면 60유로의 벌금을 내야한다. 정기권으로는 1주일치, 한달치 패스가 있다. 대중교통은 A B C존으로 구획이 나뉘어 있는데, AB구역은 베를린 시 경계 내를, C구역은 베를린 근교 도시까지 커버한다.

베를린 지하철, 베를린 버스만 타도 이 문서에 적힌 웬만한 관광명소는 한번에 데려다 준다. 특히 대놓고 관광객 타라고 만든 듯한 티가 나는 100번, 200번 버스만 타면 굳이 관광버스를 타지 않아도 싼 값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다.

일본특정도구시내구간처럼, 베를린 시내에서 Berlin ABC 승차권을 구입하면 시계외인 Potsdam AB구역에서도 쓸 수 있다. 일반 승차권 뿐만 아니라 패스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쇠네펠트에서 포츠담까지 단돈 3유로! 그리고 시내버스로 6정거장 이내나 S/U반으로 3정거장 이내를 환승 없이[22] 이동할 때에는 일반 승차권의 반값인 Kurzstrecke가 특례운임으로 적용된다. Kurzstrecke로 이동할 수 있는 정류장의 범위는 버스정류장에 표시되어 있거나, VBB 홈페이지#에서 경로검색으로 찾을 수 있다.

항공교통은 수도답지 않게 상대적으로 미약한 편인데, 가장 큰 이유는 냉전 때문이다. 냉전의 여파로 베를린에 취항할 수 있는 항공사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베를린으로 가는 항공 노선 자체가 클 수 없어서다. 그래서 독일의 항공교통은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중심으로 발전한 것. 오랜 공사 끝에 2020년 10월 말에 신 공항인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이 개항하여,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의 유일한 관문 국제공항이 되었다. 이전까지 사용하던 베를린 테겔 국제공항은 폐항 후 연구단지로 재개발, 베를린 쇠네펠트 국제공항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국제공항 제5터미널로 변경.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직항편은 없고, 베를린으로 가려면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이나 뮌헨 국제공항을 통해 독일에 입국한 뒤 환승하거나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23], 이스탄불 공항 등 유럽 다른 도시에 먼저 입국한 뒤 환승하거나, 카타르 항공이나 미아트 몽골항공 등으로 아시아에서 환승하던지, 아니면 ICE를 이용해야 한다.

또한 독일의 수도답지 않게 지하철 내에서는 무선 인터넷이 끊기고 전화나 문자만 가능하다(..) 독일의 대부분의 대도시들은 지하철 내에서도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나 유독 베를린과 뒤스부르크만 지하에서 무선 인터넷이 불가능하다. 뒤스부르크 지하철은 지하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하에 있는 구간이 얼마 되지 않고(4역 뿐이다!) 지상에서 다니는 게 대부분이라 그렇다 치지만 베를린은 수도에다가 지하철이 도시 전체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다.. 보통은 상단 바 통신 상태에 서비스에 따라 3G, H(+), 4G, LTE가 뜨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얼마 있지않아 그냥 G로 바뀐다(..) 물론 지상으로 나오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2017년 현재 독일 주요 통신사인 텔레콤, 보다폰, O2 중 O2만 지하철에서 원활한 사용이 가능하다. 지상에서는 LTE보다 3G, H+가 뜨는 경우도 많지만 지하철 대부분 구간에서 LTE, 4G로 잡힌다. O2가 VBB와 독점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를린을 방문해 선불심을 구입할 예정이면 O2 선불심이나 같은 망(E-Plus, O2가 인수했다.)을 사용하는 알디톡(Aldi-Talk) 선불심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 알디톡은 독일 대형 체인마트인 Aldi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다. 2017년 7월부터 법이 개정되어 유심 구매 시 본인 인증 절차가 까다로워졌다. 마트에서 선불 유심을 구입하였을 경우 화상채팅이나 우체국 방문 등을 통해 본인 인증을 해야 하나, 대한민국 여권은 인증이 되지 않고 있다. 화상 채팅을 하면 우체국으로 가라고 하지만, 우체국에서도 인증이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미리 유심을 구매하자. 현지에서 구매해야할 경우는 saturn 매장이나 대리점에서 바로 매장에서 등록이 가능한 지 물어보고 구매하자. 알디톡은 화상통화로 인증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5.1. 주요 도시 이동 소요시간[편집]

베를린에서 독일 내 주요도시로 이동할 때의 평균 소요시간이다.
도시명
소요시간(시:분)
소재지(주)
비고
0:35
브란덴부르크의 주도
1:07(철)
구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주의 지청
1:25(IC)
니더작센의 주요 도시/폴크스바겐 본사 소재지
1:25(ICE)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주도
1:33
작센-안할트의 주도
1:45
작센-안할트의 주요 도시
1:39(ICE)
독일 제 2의 도시 및 주요 항구 도시
1:39(ICE)
니더작센의 주도/ICE 주요 경유지
1:42
구 프로이센 포메른 주의 주도. 할양 전에는 베를린의 외항(外港).
1:47(철)
니더작센의 주요 도시
1:56
작센의 주요 도시
1:58
작센의 주도
2:12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의 주요 도시
란츠베르크 안 데어 바르테[25]
2:17
구 프로이센 브란덴부르크 주의 주요도시
2:31(ICE)
튀링엔의 주도
2:31(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2:32
작센의 주요 도시
2:37
헤센의 주요 도시/구 프로이센 헤센-나사우 주의 주도[26]
2:42
구 프로이센 포젠 주의 주도
2:53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최대 도시[28]
리그니츠[29]
2:53
구 프로이센 슐레지엔/니더슐레지엔 주의 지청
3:05(철)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주도
3:20(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쾨슬린[30]
3:20
구 프로이센 포메른 주의 지청
3:32
독일의 주요 항구 도시
3:33(철)
구 프로이센 베스트팔렌 주의 주도
3:33(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3:33
구 프로이센 슐레지엔/니더슐레지엔 주의 주도
3:45(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티센크루프 본사 소재지
3:50(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3:58(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4:05(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4:06
바이에른의 주요 도시 및 주 내부 프랑켄 지방의 최대 도시
4:14
구 프로이센 포젠 주의 지청
4:15
구 프로이센 오버슐레지엔 주의 전기 주도
4:16(ICE)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도
4:11(ICE)
독일 제 5의 도시/유럽중앙은행, 도이체방크 본점 소재지
4:20(ICE)
독일 제 4의 도시/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최대 도시/루프트한자 본사 소재지
4:35
바이에른의 주요 도시/아우디 본사 소재지
4:43(ICE)
구 서독의 임시수도 및 현 중요행정도시/도이체 텔레콤,도이체 포스트 본사 소재지[34]
4:54(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
4:57
구 프로이센 오버슐레지엔 주의 후기 주도
5:05(철)
헤센의 주도
5:13
라인란트-팔츠의 주도/ZDF 본사 소재지
5:16
독일 제 3의 도시/바이에른의 주도/BMW 본사 소재지
5:31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요 도시[36]
5:32
구 프로이센 라인란트 주의 주도
5:32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요 도시
5:43
바덴-뷔르템베르크의 주도/포르쉐, 벤츠 본사 소재지
5:44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주요 도시[37]
6:07
구 프로이센 베스트프로이센 주의 주도
6:25
자를란트의 주도
6:55(ICE)
독일의 유명 대학 도시
7:08
보덴제(콘스탄스 호)변의 중요 관광-휴양도시
7:11
구 프로이센 오스트프로이센 주의 지청
8:09
구 프로이센 오스트프로이센 주의 주도

6. 주민[편집]

이곳의 주민은 베를리너(Berliner)라고 한다. 동명의 도넛도 있다. 존 F. 케네디 방독 당시 했던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인이다)라는 말이 유명하다. 단 부정관사 ein을 붙인 바람에 나는 베를리너빵(위에서 말한 동명의 도넛)이다가 되어버렸다. 졸지에 도넛이 되어버린 케네디 안습(...).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농담이니 케네디의 해당 항목을 같이 읽어보기를 권한다. 정작 이 발언이 그의 죽음을 몰고가긴 했지만

베를린은 2차 대전 이후 유입된 터키인들로 인해 터키 문화가 상당히 많이 정착되어있다. 어느 정도냐면 터키에서 반쯤 장난삼아 하는 농담 중에서 터키인의 3대 주요 도시는 이스탄불, 앙카라, 그리고 베를린이라고 할 정도(…). 오죽하면 터키 인기축구팀인 갈라타사라이 SK가 베를린 갈라타사라이라는 자매팀을 만들 계획[41]도 있었을 정도이다. 그만큼 터키인들이 많다는 뜻. 이렇게 된 까닭은 1950년대에서부터 60년대까지 노동력을 위해서 임금이 싼 사람들, 특히 가깝고 싸고 숫자 많은 터키인들을 선호했기 때문이다.[42]

다만 터키계 독일인들은 희한할 정도로 원주민인 게르만 계열 독일인들과의 문화가 분리되어있다. 이유는 터키계 이민자들 대다수가 세속화되던 터키에 실망하여 건너온 보수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터키는 2차 대전 이후 혼란을 정리하고 터키를 장악한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주도하에 세속화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보수주의자들이 반발하였지만 아타튀르크를 몰아낼 방법도 없다보니 차선책으로 자유(...)를 찾아 독일로 이주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서독의 자유로운 분위기속에서 마음껏 터키 정부와 세속주의를 욕했고 당연히 서독에 와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집하였다. 이 때문에 현재도 독일 지역의 터키인들은 본토의 터키인들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고 종교적이다. 2016년에 재외교포의 투표권이 허용된 이후 집계된 해외교포 투표를 보면 거의 대부분이 보수정당인 정의개발당을 찍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다만 이 것 때문에 당연히 문화적 충돌이 존재했다. 보수주의자들이니만큼 당연히 이슬람 전통 율법에 집착하다보니 익숙치 않은 원주민들을 불쾌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 대표적으로 전통 이슬람 방식으로 길거리에서 도축을 하다보니 원주민들 입장에선 원치 않게 송아지 공개 해체쇼를 강제 관람해야 했고 이 것 때문에 마찰이 심해서 결국 도축은 정해진 장소에서만 하도록 강제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로 인해 베를린에는 터키 문화가 많이 유입되었고 이 덕분에 베를린은 터키 못지 않게 케밥이 널리 퍼진 지역이기도 하다. 런던에서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커리를 추천해주는 것(...)처럼 베를린에서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케밥을 추천해줄 정도. 실제로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난민들이 어마어마하게 유입되었을 때 베를린 주민들은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거나 환영 집회를 갖는 등 난민 친화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다.[43]

독일이 분단되었던 1945년부터 80년대까지 베를린 시민들은 병역이 면제[44]되었는데 이 점 때문에 징집연령대의 서독 남성이 병역을 피하기 위해 동서독 국경을 넘어 동독 영토를 지나 서베를린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7. 행정구역[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729px-Berlin_Subdivisions.svg.png
1920년 베를린 대확장 때 20개 구가 설치되었고, 독일(그리고 베를린)이 분단되면서 서베를린에 12개, 동베를린에 8개 구가 귀속되었다. 동베를린에서는 1979년 마르찬(Marzahn), 1985년 호헨쇤하우젠(Hohenschönhausen), 1986년 헬러스도르프(Hellersdorf)구를 신설하여 통일 베를린에는 23개 구가 있었으나, 2001년 1월 1일부로 구를 통폐합하여 12개로 줄였다. 12개 구 중 6개는 구 서베를린, 4개는 구 동베를린, 베를린의 중구 격인 미테를 포함한 2개는 구 동/서 베를린 지역을 혼합했다.

베를린은 총 12개의 행정구(Bezirk)와 94개의 구역(Ortsteil)으로 이루어져 있다.
  • 미테 (Mitte) (혼합)
    • 미테 (Mitte) (동)
    • 모아비트 (Moabit) (서)
    • 한자피어텔 (Hansaviertel) (서)
    • 티어가르텐 (Tiergarten) (서)
    • 베딩 (Wedding) (서)
    • 게준트브루넨(Gesundbrunnen) (서)
  •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 (Friedrichshain-Kreuzberg) (혼합)
    • 프리드리히스하인 (Friedrichshain) (동)
    • 크로이츠베르크 (Kreuzberg) (서)
  • 팡코 (Pankow) (동)
    • 프렌츠라우어 베르크 (Prenzlauer Berg)
    • 바이센제 (Weißensee)
    • 블랑켄부르크 (Blankenburg)
    • 하이너스도르프 (Heinersdorf)
    • 카로 (Karow)
    • 슈타트란트지들룽 말호 (Stadtrandsiedlung Malchow)
    • 팡코 (Pankow)
    • 블랑켄펠데 (Blankenfelde)
    • 부흐 (Buch)
    • 프란최지슈 부흐홀츠 (Französisch Buchholz)
    • 니더쇤하우젠 (Niederschönhausen)
    • 로젠탈 (Rosenthal)
    • 빌헬름스루 (Wilhelmsruh)
  • 샤를로텐부르크-빌메르스도르프 (Charlottenburg-Wilmersdorf) (서)
    • 샤를로텐부르크 (Charlottenburg)
    • 빌메르스도르프 (Wilmersdorf)
    • 슈마르겐도르프 (Schmargendorf)
    • 그루네발트 (Grunewald)
    • 베스트엔트 (Westend)
    • 샤를로텐부르크-노르트 (Charlottenburg-Nord)
    • 할렌제 (Halensee)
  • 슈판다우 (Spandau) (서)
    • 슈판다우 (Spandau)
    • 하젤호르스트 (Haselhorst)
    • 지멘스슈타트 (Siemensstadt)
    • 슈타켄 (Staaken)
      • 독일 내에서도 자주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슈판다우 구의 하위 구역인 서 슈타켄은 한때 동독령이었다. 영국군이 이 구에 있었던 가토(Gatow) 비행장 전역의 관할권을 얻기 위해서 비행장에 인접한 영토를 얻는 대신 서 슈타켄을 1951년에 동독에 넘겼다. 동독에서는 1952년까지는 동베를린 미테 구의 월경지로 관리하다가 이후에 독립시켰다. 독일 재통일 이후 슈판다우 구에 합쳐졌다. 카타리나 비트가 동독으로 넘어간 서 슈타켄에서 태어났다.
    • 가토 (Gatow)
    • 클라도프 (Kladow)
    • 하켄펠데 (Hakenfelde)
    • 팔켄하게너 펠트 (Falkenhagener Feld)
    • 빌헬름슈타트 (Wilhelmstadt)
  • 슈테글리츠-첼렌도르프 (Steglitz-Zehlendorf) (서)
    • 슈테글리츠 (Steglitz)
    • 리히터펠데 (Lichterfelde)
    • 랑크비츠 (Lankwitz)
    • 첼렌도르프 (Zehlendorf)
    • 달렘 (Dahlem)
    • 니콜라스제 (Nikolassee)
    • 반제 (Wannsee)
  • 템펠호프-쇠네베르크 (Tempelhof-Schöneberg) (서)
    • 쇠네베르크 (Schöneberg)
    • 프리데나우 (Friedenau)
    • 템펠호프 (Tempelhof)
    • 마리엔도르프 (Mariendorf)
    • 마리엔펠데 (Marienfelde)
    • 리히텐라데 (Lichtenrade)
  • 노이쾰른 (Neukölln) (서)
    • 노이쾰른 (Neukölln)
    • 브리츠 (Britz)
    • 부코 (Buckow)
    • 루도 (Rudow)
    • 그로피우스슈타트(Gropiusstadt)
  • 트렙토-쾨페니크 (Treptow-Köpenick) (동)
    • 알트-트렙토 (Alt-Treptow)
    • 플렌터발트 (Plänterwald)
    • 바움슐렌베크 (Baumschulenweg)
    • 요하니스탈 (Johannisthal)
    • 니더쇠네바이데 (Niederschöneweide)
    • 알트글리니케 (Altglienicke)
    • 아들러스호프 (Adlershof)
    • 본스도르프 (Bohnsdorf)
    • 오버쇠네바이데 (Oberschöneweide)
    • 쾨페니크 (Köpenick)
    • 프리드리히스하겐 (Friedrichshagen)
    • 란스도르프 (Rahnsdorf)
    • 그뤼나우 (Grünau)
    • 뮈겔하임 (Müggelheim)
    • 슈뫼크비츠 (Schmöckwitz)
  • 마르찬-헬러스도르프 (Marzahn-Hellersdorf) (동)
    • 마르찬 (Marzahn)
    • 비스도르프 (Biesdorf)
    • 카울스도르프 (Kaulsdorf)
    • 말스도르프 (Mahlsdorf)
    • 헬러스도르프 (Hellersdorf))
  • 리히텐베르크 (Lichtenberg) (동)
    • 프리드리히스펠데 (Friedrichsfelde)
    • 카를스호르스트 (Karlshorst)
    • 리히텐베르크 (Lichtenberg)
    • 팔켄베르크 (Falkenberg)
    • 말쇼 (Malchow)
    • 바르텐베르크 (Wartenberg)
    • 노이-호엔쇤하우젠 (Neu-Hohenschönhausen)
    • 알트-호엔쇤하우젠 (Alt-Hohenschönhausen)
    • 펜풀 (Fennpfuhl)
    • 루멜스부르크 (Rummelsburg)
  • 라이니켄도르프 (Reinickendorf) (서)
    • 라이니켄도르프 (Reinickendorf)
    • 테겔 (Tegel)
    • 콘라드스회에 (Konradshöhe)
    • 하일리겐제 (Heiligensee)
    • 프로나우 (Frohnau)
    • 헤름스도르프 (Hermsdorf)
    • 바이드만스루스트 (Waidmannslust)
    • 뤼바르스 (Lübars)
    • 비테나우 (Wittenau)
    • 메르키셰스 피어텔 (Märkisches Viertel)
    • 보르지히발데 (Borsigwalde)

8. 브란덴부르크 주와 통합 떡밥[편집]

애초에 베를린이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수도였고 여러 모로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주가 엮여 있는 경우가 많아 아예 베를린-브란덴부르크 주라는 하나의 주로 통합하자는 떡밥이 있다. 일부에서는 러시아폴란드에 갈라 먹히고 사라진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살려 통합 주를 프로이센 주로 명명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1995년에 브란덴부르크 주와 베를린의 두 주 정부는 합병을 추진하기로 하고 이듬해 주민투표가 실시됐는데 부결돼서 무산되었다. 구 서베를린 시민들은 찬성했는데 구 동베를린 시민들과 브란덴부르크 주민들이 반대했다고 한다.

9. 대중매체에서 등장하는 베를린[편집]

제2차 세계 대전 혹은 IF 가상물 나치 독일이 등장하는 대중매체엔 거의 대부분 등장한다. 그리고 묘하게도 대체역사물에서 원자폭탄의 표적으로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범죄자들의 거래처로 많이 등장한다.
  • 서양권에서 2차 세계대전을 다루는 게임, 영화 등의 매체는 열에 아홉은 최종막에 베를린을 배경으로 한다. 예외라면 나치 독일의 패망까지 다루지 않는다거나, 일본이 나와서 역사대로 일본 패망까지 가는 것 정도.
  • 대한민국의 대체역사 SF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에서는 1945년 베를린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단, 이 영화의 원안복거일대체역사소설 비명을 찾아서에서는 드레스덴브레멘에 각각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뭐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 그렇게 묘사한거겠지만 독일은 이미 45년 이전에도 이미 망했다 라는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핵폭탄을 베를린 같은 역사와 전통이 있는 유럽 대륙 한복판에 떨어트릴 일은 가상역사라도 상식적이라면 없었을 것이다. 일본이 핵폭탄을 쳐맞은 지구상 유일한 국가가 된 것은 당시 일본제국이 그만큼 비상식적인 야만족속이었기 때문이다.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3에선 베를린을 배경으로 러시아 대통령의 딸이 납치된 걸 확인한 델타포스가 구출하러 나온다. 독일연방군 또한 전차 3대로 나오는데 그냥 잉여다.
  • 데이비드 보위브라이언 이노와 함께 70년대 후반 이곳에서 Low, "Heroes", Lodger 세 장의 음반을 녹음해 '베를린 3부작'이라고 불린다. 그중 하나인 "Heroes" 앨범의 동명의 곡에서 베를린 장벽에 관한 노래를 쓰기도 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 베를린 문서의 r525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_white.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나무위키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베를린 문서의 r525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Michael Müller[2] Freie (und) Hansestadt[3] Land Berlin[4] Regierender Bürgermeister. 영어로는 Governing Mayor. 도시주가 아닌 타 주들의 단체장 직함은 Ministerpräsident이다.[5] 사실 강세가 'ber'가 아닌 'lin' 부분에 오기 때문에 베얼린보단 '벨린' 내지 '벌린'에 더 가깝게 들린다.[6] 중국어로는 발음은 동일하게 Bólín이지만 한자 표기가 다른 柏林으로 표기한다.[7] Niemeyer, Manfred(2011), Deutsches Ortsnamenbuch, de Gruyter, p. 60.[8] 대왕, 대제에 해당하는 용례로 위대한 군주였다는 의미다.[9] 멤버가 오일러, 라그랑주,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 등등 개쩌는 사람들이 많이 근무했다.[10] 이걸 이해하려면 1963년 1월 서울 대확장을 생각해봐도 될 듯하다.[11] 지금의 서울시 경계가 이때 거의 완성되었고, 이후의 추가 편입은 1973년에 이뤄진 구파발 일대에 불과하다.[12] 당시 베를린 사람들의 증언 따르면 재래식 무기로 공격한 소련군보다는 미 공군의 공습이 훨씬 두려웠다고 한다.[13] 1986년 승격[14] 1985년 승격[15] 1979년 승격[16] BGM은 나치독일 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다운폴의 엔딩곡이다.[17] 다만 1918년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독일자유사회주의공화국'을 선언했던 4번 현관(Portal IV)은 파사드만 보존해 동독국무회의 청사에 붙였다.[18] 덕택에 수도이전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는 후문이 있다. 하지만 당대 서독정부 입장에서는 공화국 궁전을 정부청사로 쓰지않았던 데에는 공화국 궁전 건축에 대량의 석면이 사용되어서 정부청사로 이용할래도 상당한 개보수비가 들어갔던데에다가 무엇보다도 상징성 문제때문에 정부청사로 쓰기가 참으로 뭐했다.[19] 중앙선데이 2010-09-25 “역사를 모르는 나라는 미래를 결정할 수 없다”[20] 1989년 서베를린 선거 역시 기민련의 득표율이 사민당보다 높았지만 두 정당의 의석 수는 똑같이 55석으로 공동 제1당이었다.[21] 영상에서 볼 수 있듯 닉 케이브같은 뮤지션들은 이런 자유분방한 베를린의 분위기가 좋아서 아예 이주하기도 했다.[22] S반/U반과 시내버스를 환승할 때만 환승으로 친다. [23] 비행 경로상으로만 보면 헬싱키나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경유해서 오는 게 최단 경로에 가깝긴 한데, 헬싱키를 경유하는 루트는 프랑크푸르트나 뮌헨을 거쳐 오는 것에 비해 실제 소요시간(환승대기 시간 포함)이나 가격 면에서 크게 차이가 안 나서 더 낫다고 보기 힘들고, 모스크바에서 환승하는 방법은 요금이 저렴하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식으로 평판이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바르샤바를 경유하는 방법도 있을 법도 한데 스카이스캐너에서 검색해보면 바르샤바 경유 노선은 안나오며, 프라하 경유 노선도 마찬가지로 잘 안나온다.[24] 폴란드식 이름은 슈체친.[25] 폴란드식 이름은 고쥬프 비옐코폴스키.[26] 매년 9월 독일의 만화행사 Connichi를 개최한다.[27] 폴란드식 이름은 포즈난.[28] 사실 함부르크, 브레멘처럼 독립된 지위의 도시주였으나 그 놈의 히틀러에게 밉보인 탓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으로 흡수당해버린 곳이다(...).[29] 폴란드식 이름은 레그니차.[30] 폴란드식 이름은 코샬린.[31] 폴란드식 이름은 브로츠와프.[32] 폴란드식 이름은 비드고슈치.[33] 폴란드식 이름은 오폴레.[34] 매년 독일의 만화행사 AnimagiC을 개최한다.[35] 폴란드식 이름은 카토비체.[36] 덤으로 아인슈타인의 고향이기도 하다.[37] 독일의 서쪽 끝에 있다. 즉슨 독일 끝에서 끝까지 자동차로 가봤자 하루 안에 닿는다는 이야기.[38] 폴란드식 이름은 그단스크.[39] 폴란드식 이름은 올슈틴.[40] 러시아식 이름은 칼리닌그라드.[41] 사실 이런 게 많다. AFC 아약스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케이프타운 아약스라는 팀을 가지고 있는데 보어(네덜란드계 이민자)인들이 많이 환영했다든지 비스무리한 게 많다.[42] 한국의 파독 광부 / 간호사들도 이 시기에 주로 파견되어 외화를 벌어들였다.[43] 독일인들이 이슬람 이민자들을 적대한다는 관념이 퍼진것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영향이 크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히트한 먼나라 이웃나라로 인해 이 책에서 소개된 내용들이 모두 정설인양 퍼져버렸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온대로 독일인들과 이슬람 이민자들이 서로 적대한다는 내용도 퍼진 것이다.[44] 서베를린은 서독군이 주둔할수 없어 미군, 영국군, 프랑스군이 주둔해 서베를린 주민들은 병역이 면제되었고, 동베를린은 제도적으로 병역이 면제되었다.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