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이 문서는 나무위키 정치·외교학 프로젝트에서 다루는 문서입니다.
해당 프로젝트 문서를 방문해 도움이 필요한 문서에 기여해 주세요!


변증법적 유물론의 스탈린 주석판.
Диалектический материализм
Dialectical materialism
Der dialektische Materialismus
弁証法的唯物論
Διαλεκτικός υλισμός
사회주의 사상의 분파
[ 펼치기 · 접기 ]
이상적(공상적) 사회주의
노동 시온주의
페이비언주의
길드사회주의
과학적(혁명적) 사회주의
개혁적(개량적) 사회주의
교양사회주의
카우츠키주의
정강주의
아나코 생디칼리즘
크리스천 아나키즘
아나코 패시피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탈리즘
내셔널 아나키즘
아나코 콜렉티비즘
아나코 프리미티즘
아나코 생태주의
사회생태학
후기 좌파 아나키즘
후기 아나키즘
소요 아나키즘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아나코 파시즘
아나코 코뮤니즘

1. 개요2. 변증법과 유물론과 사적유물론3. 비판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이자 그 자체의 근원적 사상.

1. 개요[편집]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해석하면 의식의 외부가 의식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주관의 외부가 주관의 방향성을 결정한다는 유물론적 관점변증법을 도입해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대립과 투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은 더 큰 종합을 향해 나아간다는 관점이다.

개념 자체는 그래서 그렇게 특이한 것이 아닌데, 예를 들어 종이의 발명이 관료제의 발전을 더 촉진하느냐(사적 유물론) 민족국가의 성립이 관료제의 발전을 더 촉진하느냐(사적관념론)는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어떤 것이 더 우선적인 변수가 되어 실체에 직접적으로 작용하게 되는 지는 각각의 대립된 조건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의 결과물로서 변증법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엥겔스의 발견과 이들이 전개한 논리 자체는 굉장히 보편적인 것이었는데, 이는 순수하게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의식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제반 조건을 파악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2. 변증법과 유물론과 사적유물론[편집]


변증법은 게오르기 헤겔이 말한 시대정신(혹은 세계정신)이란 대명사로 풀이할 수 있는데, 독일고전학파는 형이상학의 시대정신이 존재하여, 역사의 변화는 곧 시대정신의 변화라고 설명하였다. 허나 마르크스는 관념적인 시대정신이 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영향을 받아 지식과 과학, 그리고 물질적(또는 경제적) 생산구조의 변화에 따라 시대가 바뀐다고 설명하였다. 즉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형이상학적인 정신이나 이념등의 관념론적인 상부구조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경제적 생산력과 사회계층의 변화를 비롯한 하부구조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렇다고 상부구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움직인다는 이론이며, 이는 영혼같은 정신이나 관념등을 부정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이 세상을 이루고 결정한다는 종래의 유물론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에 덧붙여서 헤겔의 변증법을 일부 접목시키면서 변증법에서의 관념적인 요소를 물질적인 요소를 치환하였다.

즉 헤겔은 역사와 사회의 발전은 당대의 인민들이 원하는(정확히 풀이하자면 무의식중에 바라는) 시대정신으로 나아간다고 풀이하였는데, 마르크슨느 여기에다가 유물론을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사회는 변증법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단 앞으로 미래에는 공산주의 공동체가 '반드시'도래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역사변화의 과정에 적용한 사적유물론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이론을 독재자들이 교조적으로 비판없이 해석하거나 악용하면서 시작되었다. 일견 당시에는 특출한 것으로 보일 수는 있었어도 이상할 건 없었던 개념을, 당위로서의 필연성으로 이끌어낸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공산당 독재를 합리화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던 순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하게 되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는 경험에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원인은 다음과 같다.

역사의 발전을 실체로서 파악하는 것까지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개념이었다면, 이 기본 개념을 확장시키면서 이것을 그럼 이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발상이 출현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동시에 공산주의라는 매우 오래된 기원을 가진 개념을 끌어오게 되었다. 공산주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 역사는 고작 수 백 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대 세계에서부터 진행되어 오던 매우 원시적인 사고방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진행된 많은 대안 공동체 운동들은 공산주의적인 모티프에 기반을 두어 이뤄졌는데, 그 기원은 기독교가 탄생했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민주주의가 그랬던 것처럼 마르크스주의 또한 활용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해볼 수도 있겠지만, 민주주의가 처음부터 완전하게 거듭나는 것을 불가능한 목표지점으로 삼아 교조화를 막은 것[1]에 비해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는 그렇지 않고 처음부터 완결된 원리와 법칙성을 가진 것으로 시작했다.

역사의 발전 단계를 유물론적으로 해석한 사적 유물론은 19세기 놀랍고 비약적인 생산성의 증대를 이룬 벨 에포크 시대의 영향을 받아 종국에는 모든 인간이 자기가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능력만큼 생산하는 공산사회로 귀결한다는 오류적 사상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는데, 그리하여 이를 당위로서 여기고 곧바로 현실정치에 대입 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면서 자신들의 이념을 교조주의의 무오류로 만들게 된다. 이렇게 교조주의적인 이념이 자리 잡게 되면 무오류의 공산당 외에는 다른 이념이나 정당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 이로 절대 권력이 출현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말이었다. 일당 독재를 지속해왔던 공산국가의 공산당은 사적 유물론에 맞추어 역사의 진행단계를 일일이 판단하려고 들었고, 이것이 무오류라 여기면서 그걸 하려고 했다.

요컨대 당이 하는 일은 절대 옳다는 신념은 바뀔 수가 없는 기본 전제였던 것인데, 문제는 이것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할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건 틀린 것이 될 수 없었고 당 지도부의 결정 아래에서 이뤄진 일들은 자신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우선적으로 배제하게 만들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마구잡이로 밀어붙여도 그걸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으며, 급기야 공산당은 실제로 공산주의를 이룩할 수 있느냐 라는 비이성적인 믿음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당의 지도부에서 자기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올라오는 보고에 근거해 개혁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했는데, 무오류의 공산당은 절대 틀릴 수가 없으므로,그 당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반동행위이기 때문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걸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가 없었던 것.(오늘날 종교단체에서 종교의 무오류적 성격을 빙자 혹은 남용해서 내부비판을 차단한 것과 비슷하다.)

쉽게 말하자면 19세기 러시아의 급진혁명가들은 공산주의를 성서에 등장하는 새 예루살렘과 같이 결국 역사의 종착점에는 하늘에서 내려올 새 예루살렘 말쿠타 디스마이아의 이상사회처럼 " 반드시 " 공산주의 사회가 이룩할 것이라며, 실제로도 볼셰비키는 러시아 정교회에 익숙한 러시아 인민들에게 새 예루살렘이라는 표어로 쉽게 공산주의 이념을 선전했다. 그런 교조적인 이념이 존재하지 않는 공산주의사회를 있는 것처럼 세뇌시켰고 이 때문에 인민들에게 각자 희생을 통해 공산주의 유토피아 건설을 완성해야한다는 명목으로 교조주의적 입장에 따른 이분법적 사관으로 인권탄압과 무산자독재주의로 표방되는 독재정치를 합리화시켰던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사적 유물론을 만들어냈지만, 사적 유물론은 보편적으로 보이는 법칙성을 교조화함으로써 실패하였고 결국 공산당 창당 120년이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반드시 도래할 것이라던 공산주의는 단 하나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실현되지 못하였다.

3. 비판[편집]


변증법적 유물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위에서 열거한 지독한 도그마에 있다. 대부분의 공산주의국가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한 이데올로기를 무조건적인 독트린으로 간주하였고, 결국에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이데올로기 민주정이 아닌 이데올로기를 위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정이 펼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후에 제2인터내셔널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은 아예 공산주의의 핵심 교조주의강령인 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을 부정하였고, 사유재산과 자본주의를 종속시키면서도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그로 그는 자칭 정통주의자인 레닌주의자들에게 완전한 이단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2]

이런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공산주의계열에서 수정주의자라 불리며 경멸과 멸시를 받았고 사적유물론과 국가무신론, 그리고 전면적인 국유화 및 국가통제경제의 수용 여부에 따라서 지금까지 두 진영은 100년이 넘어가도록 반목하고 있다.

그러나 계보로 보나 이론의 발전정도로 보나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고 보는것이 그나마 맞고, 마르크스의 이론을 입맛에 맛게 뜯어 고치고 마구 수정한 레닌-스탈린계열이 오히려 수정주의자에 가깝다고 보는게 맞다. 특히 레닌과 스탈린이 즐겨 이야기한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은 자신들의 정치적 행위를 비판한 자들에 대한 정치적인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심지어 스탈린은 후에 공산주의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차리즘을 결합한 스탈린주의라는 사이비 사상을 만들었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단점인 교조주의적이고 폐쇄적인, 타의견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론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더욱 심화시켜서 결국 20세기 전반에 걸쳐서 수천만이 적색테러와 대량학살에 희생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1] 알다시피 민주주의는 견제의 원리를 깔아두고 있으며, 이상은 존재하되, 완성될 수는 없음을 전제한다[2] 오히려 마르크스의 친구였던 엥겔스는 말년에 사민주의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공감하고 이론의 수정을 내세웠다. 마르크스 역시 자기 자신의 이론을 과학이라고 불렀다며 레닌주의적인 무비판적, 교조적 수용보다는 비판적이고 발전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수용하기를 원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