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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社會主義 / Socialism

1. 개요2. 사상적 근간
2.1. 플라톤의 이상국가2.2. 초기 기독교 공동체2.3. 토머스 모어유토피아2.4. 장자크 루소의 이상사회
3. 분파
3.1. 미하일 바쿠닌아나키즘3.2. 프랑수아 바뵈프의 블랑키즘3.3.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3.4.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사회민주주의3.5. 슘페터의 사회주의3.6. 카를 마르크스공산주의
3.6.1. 소련의 사례3.6.2. 쿠바의 사례3.6.3. 중화인민공화국의 사례3.6.4. 북한의 사례3.6.5. 버마중동의 사례
3.7. 소집단의 시도
4. 사회주의로 오인, 혼동하는 경우
4.1. 전체주의(파시즘, 나치즘)
5. 영향6. 미래의 사회주의?7. 관련 사이트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왜 사회주의인가? (Why Socialism?)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

사회주의는 굉장히 의미가 다양하게 쓰이는 말로, 좁게는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개념으로 사용되지만 그보다 광범위한 뉘앙스를 가진 말이다. 두산백과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회주의란 말은 다음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①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 제도를 수단으로, 자유·평등·사회정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는 사상과 운동을 뜻하는 경우(고전적 사회주의의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
②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와 계획경제라고 하는 제도 자체만을 가리켜 뜻하는 경우
③ 사회주의의 목적만을 가리키는 경우(자본주의보다 한층 훌륭한 사회를 뜻하는 경우)
④ 공산주의의 첫째 단계 또는 보다 낮은 단계를 뜻하는 경우(공산주의자 특유의 반논리적 용법)
⑤ 민주사회주의적 용법(민주주의적 방법에 의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완성함으로써 사회를 개조하려는 사상 및 운동 또는 민주주의의 최고의 형태를 뜻하는 경우) 등이다.

두산백과, 사회주의 항목 中

아주 넓게는 '사회주의'라는 말이 개인주의와 반대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공동체주의와 혼동될 우려가 있고 특히 공동체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공화주의자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를 자칭하지 않는다. 보통은 사회민주주의 정도를 광의의 사회주의가 가진 마지노선으로 잡는다.

1753년 프랑스베네딕토회 수도원의 레제 마리 데샹(Léger Marie Deschamps)이라는 수도자가 인간에게 본성적으로 사회성이 있음을 가정하는 자연법의 근대 이론가들(계몽주의자)을 지칭하는 의미로 처음 사용했다. 물론 오늘날의 사회주의와는 별로 상관없는 의미고, 오늘날과 같은 의미로 사용한 것은 프랑스피에르 르루가 처음이다. 정확히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연대는 알려지 있지 않으나 1826년 이전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에서는 흔히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용어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나 실제로는 애초에 개념적 영역 자체가 다르다.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이며 사회주의는 '경제 체제'이다. 즉,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권위주의 체제가 된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수립된 사회주의 국가(제2세계 공산국가)들이 일당 독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대신에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국가들 중에도 독재 체제가 존재했으며 반대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국가에도 민주주의가 뿌리내렸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전자의 예로 1987년 이전의 대한민국,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권 시기의 필리핀, 수하르토 정권 시기의 인도네시아. 후자의 예로 카네이션 혁명 이후 설립된 포르투갈 제 3공화국, 영국 독립후의 인도,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시기의 칠레.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식민지 상태에서 풀려나 새로이 등장한 많은 신생국가들은 대체로 각자의 형편 혹은 외국에 의해 사회주의(공산주의) 혹은 자본주의 진영을 택하였다.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국가들은 근대적 경제성장이나 산업발달을 이루지 못하고, 오랜 민주주의적 전통이 부재하는 등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었으며, 자본주의 진영에서도 신대통령제 등의 독재정으로 이행한 사례들이 있으니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남한북한1970년대까지 사실 비슷한 체제였듯이. 물론 현재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경우라 해도 상당수는 자본주의와 절충된 형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선진국들에서는 자본주의와 절충/융합한 형태의 사회주의 정당(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당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으며, 분명한 정치세력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와 대립하는 개념으로 놓는 것은 세계 최초로 실현된(그리고 가장 성공한) 현대적 민주공화정의 모델이 바로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며, 그바로 그 미국에서 매카시즘 광풍이 불었던 것에서 오는 선입견이 강한 영향을 끼치는 듯 하다.

2011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중심이 되어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2011년 9월 국감 진행중) 이때 격렬한 논쟁이 된 것이 바로 이 부분.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양쪽의 요소를 각각 담은 조항이 있다.[2]

나무파일:external/photo.hankooki.com/pjy0424201109212309370.jpg

대한민국에서는 공산주의 문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단체주의와 공산주의와 혼동하여 이 단어를 민주주의의 반대 의미로 아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민주주의의 상대 개념은 독재주의이지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가 아니다. 특히 독재정권 시절에 교육을 받은 보수적인 사람들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모두 독재주의 개념으로 혼동하여 주장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가 필요한데,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반공주의의 폐해다. 또한 독재정권을 민주주의로 포장하기 위해 상대 개념으로 사회주의를 설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반대로 북한 같은 경우엔 독재정권을 민주주의로 포장하기 위해 상대 개념으로 제국주의 등을 설정하기도 했다.

사적인 욕망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생산수단의 개인 소유, 개인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생기는 부작용, 예를 들자면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폐단인 부의 극단적 독점, 인간의 소외, 비인간적 노동환경 및 금권정치 등의 반대급부로서 생겨났다. 각 이론이나 계파, 계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반대를 기본적인 골자로 한다.

또한 사회주의가 사유 재산의 철폐를 주장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을 기억하자, 생산수단과 사유 재산은 다른 개념이다.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를 주장한다. 이 두 가지를 오인하여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을 갖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사회주의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열심히 일하지 않고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버는 것에 의문을 던지고 그에 반대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입장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생산수단 사적 소유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사유권의 침해라고 주장하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옹호한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이견과 방식이 있기에 19세기 전후로 200개가 넘는 분파가 생성되었다. 세세한 차이점이 있으나 대다수의 사회주의는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바탕으로 생성된 마르크스주의를 그 뿌리로 한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가장 큰 비판 중 하나로는 개인의 이기심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사회를 위한 개인의 양보 및 절제를 강조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지나친 개인적 이익의 추구를 막기 위한 개인적인 희생을 강제하는 체제인지라 개인의 노력이 평가절하되어 태업이나 태만에 젖어들기 쉽고, 발전의 중요한 동력 중 하나인 경쟁을 억제한다는 것. 경쟁 환경에 놓이지 않은 조직은 공기업이나 공공기관들에서 볼 수 있는 비효율과 부패를 방지하기 어렵고,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근로의지나 기업가 정신이 퇴조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울러 이러한 개인의 이기심을 억제하고 양보와 절제를 '강요하려면 강대한 권력으로 개인을 억눌러야 할 필요가 있다. 공산권 국가들 대부분이 독재정 및 경찰 국가로 귀결된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가 대표적인 민주적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비판하고, 그들과 맞서 싸웠다.

마르크스주의는 크게 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로 나뉘게 된다. 공산주의는 패배했지만 사회민주주의는 현재도 서유럽 및 북유럽 등지에서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주의의 큰 줄기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2. 사상적 근간[편집]

2.1. 플라톤의 이상국가[편집]

플라톤이 쓴 책인 『국가』에서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에 대해서 나온다. 플라톤이 생각한 이상 국가는 크게 생산자, 수호자, 통치자 세 부류로 구성된다. 수호자 계급과 통치자 계급은 사유재산을 가지는 것이 금지되며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한다. 이렇게 주장한 이유는 상류 계급의 사람들이 가족과 재산이 생기면 이기적으로 변하기 때문.

2.2. 초기 기독교 공동체[편집]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행전 2장 44~47절, 공동번역)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행전 4장 32절~35절, 공동번역)

기독교의 경우, 사도행전에 묘사된 서기 1세기경의 공동체 모습은 사회주의와 통하는 면이 많다. 특히 기독교가 서양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사유재산이 없는 이러한 초기 공동체의 모습은 이후 유럽인들에게 "와.. 겁나 훈훈하게 살았네"라는 식의 이상향적인 이미지를 주었다..[3][4]

현대에는 '기독교 사회주의'가 이런 정신을 계승한다.

2.3. 토머스 모어유토피아[편집]

모어의 저서인 『유토피아』에서 유토피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유토피아'란 “어디에도 없다”라는 의미로 그가 만든 말이다.

제1권은 저자 모어, 베타 힐테스, 라파엘 퓨트로에우스 등 3자의 대담으로 당시 영국 사회의 악폐를 지적한다. 즉 사회의 현실에 맞지 않는 엄격한 법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다수의 귀족, 전쟁을 좋아하는 군주, 양털 값이 올라가 밭과 땅과 목장까지 넓혀 가는 지주 및 사유재산제도를 비판하고 있다. 제2권에서는 라파엘이 여행 중에 본 이상국과 '유토피아'섬의 도시ㆍ인간ㆍ풍습ㆍ제도ㆍ법률 등이 씌어 있다.

이 나라의 기본은 농업이고 이것에 모두가 종사한다. 게으른 자는 추방된다. 노동시간은 6시간이고 여가는 각자의 자유이나 대부분은 학문이나 음악 등으로 보낸다. 화폐는 다른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고, 금은 경멸되어 변기나 노예의 족쇄, 전과자의 귀에다는 귀걸이를 만드는 데 쓰인다. 결혼은 여자 18세, 남자 22세에 달하지 않으면 허가가 안 되며, 이혼은 원칙적으로 허가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공유이며, 법률의 조문은 매우 적고 변호사는 추방된다. 타국에서 전쟁을 걸어오지 않는 한 전쟁을 피하며 자국이 침략당하지 않는 한 출병하지 않는다.

2.4. 장자크 루소의 이상사회[편집]

루소는 빈부의 차이가 거의 없는 소농으로 구성된 공동체에 의한, 직접민주주의 사회를 주장하였다. 가히 낭만주의의 선구자 답다.

3. 분파[편집]

아래는 사회주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상 몇 가지만을 선별하여 서술한다.

3.1. 미하일 바쿠닌아나키즘[편집]

무정부주의(Anarchism)라는 말은 정부나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그리스어 'an archos(ἀν ἀρχός)'에서 유래하였다. 이는 모든 정치 조직, 규율, 권위를 거부하고 국가권력의 강제수단을 철폐하여 진정한 자유,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려는 운동이다. 이 이데올로기의 근간은 국가나 정부 기구는 해롭고 사악하며 인간은 그것들 없이도 올바르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무정부주의자들은 만약 인간이 법과 사회 체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상호부조의 원리를 실천하게 된다면 진정한 의미의 정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무정부주의의 내용은 다양한데 바쿠닌은 무정부 집산주의(아나코-콜렉티비즘)이다.

3.2. 프랑수아 바뵈프의 블랑키즘[편집]

블랑키즘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Louis Auguste Blanqui)라는 프랑스 사회주의자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혁명전위(엘리트)들의 봉기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바뵈프가 대표적 인물. '혁명전위'니, '프롤레타리아 독재' 등의 용어가 익숙해보이는 건 기분 탓 후일 레닌이 이들의 사상을 일부 수용하여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수정하였기 때문이다. 근데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은 베른슈타인 보고 수정주의자라고 욕한다.

3.3. 페르디난트 라살레의 국가사회주의[편집]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타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개량적 사회주의로 정의된다. 합법주의, 의회주의, 점진주의적 사회주의를 주장했으며 오늘날 독일 사민당의 전신인 전독일노동자연맹을 설립했다. 국가사회주의는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3.4.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사회민주주의[편집]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국가사회주의와 수정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켜 확립한 사회주의 및 민주주의 이념의 한 갈래이다. 폭력 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대표되던 혁명적 사회주의의 폭력성을 배격하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이루어진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적 평등도 달성하자는 사상이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사회주의 이념을 말한다. 현대에 와선 중도좌파 이념으로 분류된다.

3.5. 슘페터의 사회주의[편집]

슘페터의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와는 전혀 다르다. 슘페터의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혁신에서 시작되며, 공장의 경우, 물건의 필요한 사람과 개수를 국가가 조사하여 공장에 통보하고 그 만큼 불황이 없어지는 것이다. 저서로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있다.

3.6. 카를 마르크스공산주의[편집]

마르크스가 꿈꾼 공산사회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소멸하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평등한 사회다.

마르크스는 궁극적인 목표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주장한다. 골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발생하는 지점, 다시 말해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가로막는 지점에서 혁명이 일어나 다음 시기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중세를 예로 들어볼수 있다. 일단 중세 봉건제에서 근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단계는 마르크스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분석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르크스는 모든 시대의 이행 양상을 서술하지는 않았고 중세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만을 설명하고 그 외의 이행기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일반론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데서 서술을 마쳤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후일 마르크스에 대한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뉘고 아직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에 대한 투쟁을 하기도 바쁠 시간에 서로의 해석을 비판하며 물고 뜯고 싸우는 병크를 저지르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 중세 봉건제에서 지주-농노 관계의 봉건적 생산관계하에서 생산력이 점점 증대하다가 봉건제가 충분히 무르익으면 지주-농노라는 생산관계가 더 이상의 생산력 발전을 저해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이 때 부르주아 혁명이 발발하여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하고 부르주아들이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쥠으로써 자본주의가 성숙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여 다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자본가-임금노동자)가 생산력을 저해하는 순간이 오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 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한다. 자세한 내용은 공산주의 문서 참조.

마르크스가 정리한 시대 구분인 '원시 공산제 - 고대 노예제 - 중세 봉건제 - 근대 자본주의'는 아직도 역사와 관련된 학계에서 폭넓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지만, 이를 대체할 보편적인 정리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5] 마르크스의 이 시대구분과 정치적/사회적 투쟁 중심의 방법론, '공산주의'라는 명확한 이상으로 사회에 큰 불만을 갖고 있던 노동자, 소농민 등에게 쉽게 파고 들었다. 19세기 후반 이후에는 각국이 마르크스 주의 당파를 무시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으며,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건설되기까지 했다. 이 시기는 특히 식민지 국가의 의식 성장으로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반발도 커지는 시기였고, 소련이 마르크스주의의 보급을 위해 이를 지원하면서 식민지에도 마르크스주의가 널리 퍼졌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상당히 의외로 여겼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곳에서 혁명이 제일 먼저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념을 설파했다고 알려졌기 때문. 실제로는 당시 러시아 수도이던 상트페테르부르크(당시 지명은 페트로그라드)에서 백군과 싸워 점령한 것뿐이지만... 하여튼 적백내전을 겪고, 이후 1922년 5개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연합하여 소련이 결성되어 사회주의 국가의 거두 역할을 하게 된다. 20세기의 마르크스주의자들 중 일부는 바로 이렇게 충분히 자본주의가 무르익지 않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가 발발한 것, 즉 마르크스의 예측과 다른 양상으로 사회주의가 전개되는 이유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문화연구, 구조주의 마르크시즘, 프랑크푸르트 학파 등.

사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를 더 주의 깊게 설명했으며, 그의 예리한 분석은 자본주의의 비판에 집중되어 있지, 그가 사회주의 건설 매뉴얼 따위를 만든 적은 없다. 공산당 선언은 공동저작이면서 비교적 간단한 가이드라인 정도였고. 일단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쓴 자본론이나 "경제비판요강"이 무엇을 다루는 책인지 생각해보자. 결국,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수립 이후 현실적 한계들이 부딪히면서 정책 및 기조가 '정부가 원하는대로' 잡혀버린 경향이 크고,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 왕정 국가/소수 귀족 국가', '자본주의 억압 체제'를 무너뜨렸더니 자본과 정부가 결합한 사회주의 억압 체제가 출현했는데, 경직된 일당독재체제와 계획경제의 허점, 국제적으로 배짱을 부리며 버티기 힘들어지는 국제정세 등이 결국 부패와 몰락을 낳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자유진영도 흑역사를 겪었다는 게 함정

정리하자면, 마르크스가 암시한 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각국 사회주의 정부들이 도입한 방법론들이 결과적으로 공산주의라 불린다. 현실사회주의라 불리건, 마오이즘이라 불리건, 스탈린주의라 불리건.

3.6.1. 소련의 사례[편집]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 소련은 모든 교육비와 의료비 등이 전부 무상이었기에 가난해서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소련에는 소프호스(sovkhoz)와 콜호스(kolkhoz)라는 집단 농장이 있었다. 소프호스는 농업기업으로서의 대규모 국영농장이었으며 그 종업원은 노동자로 간주되었다고 한다. 콜호스는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공동노동으로 생산하고 노동량에 따라 분배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억 덕분에 소련 시절을 기억하는 러시아인은 최소한 그들이 기억하는 자신들의 국가 모습은 조금 불편하긴 해도 '최소한 국민들 먹고 사는 문제는 보장해주고 국민 복지는 확실하게 맡아 나가려는 국가'였다고 회술하기도 한다. 극한 기후에서 각 호마다 연료, 난방시설을 공급하고 국민 고용을 보장하고 무상 의료와 교육지원을 제공하며, 심지어 여름되면 바닷가에 휴가 갔다오라고 비행기 태워서 흑해까지 보내줘, 교수나 과학자, 예술가 등 전문직을 맡은 인물들은 금전적, 사회적 제약 없이 국책으로 활동에 전념하게 하였다. 이는 통독 후 동독 체제에 대한 몇몇 독일인들의 평가와도 유사하다.

다만 에스토니아 출신 고려인의 경험담에서는 러시아 CCP로 모든 생산품들이 집중되어 주위 공화국들은 그리 넉넉하게 살지 못했다는 말도 있다.

3.6.2. 쿠바의 사례[편집]

쿠바는 '순환형 사회'를 정착시킨 것으로 국제 사회에서 높게 평가되는 국가다. 쿠바는 식품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은 배급제로 공급되고 있다.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고 대학까지 무료다. 쿠바는 문맹률이 미국(1%)이나 한국(2.1%)보다도 훨씬 낮으며 사회보장제도가 발달되어 모든 계층에게 의료혜택이 무료로 이루어진다. 유아사망률이 1000명당 5.93명으로 한국(5.94)과 미국(6.3)보다 낮으며, 평균기대수명이 77.27세로 칠레(77.15세)나 아르헨티나(76.52세)보다도 높다.

3.6.3. 중화인민공화국의 사례[편집]

사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본래 소련식 마르크스-레닌주의라고도 하기 힘든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고, 애초에 도입 단계에서부터 "대체 서구적 산업사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농민위주의 전형적인 농업사회의 끝물인 상황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는가" 부터가 숱한 이론투쟁의 중심적인 논제가 되었다. 결국, 마오쩌둥이 주도한 일련의 이론들을 통해 '객관적 조건이 없어도 절대다수의 농민들의 의지를 통해 사회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라는 마오주의로 귀결이 된다. 바로 유물론적 역사관을 버린 것으로 마르크스이론의 기초를 부정했다는 말이다. 이 마오주의를 과연 마르크스계열의 이론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니면 전혀 상관이 없는 일종의 '이단'으로 봐야 하는지는 두고두고 논쟁거리. 어쨌든 국제적으로는 1960년대 이후 소련과 잦은 분쟁 이후로 상당히 독자적인 길로 들어서게 된다. 국제 관계의 문제에서는 이랬고 지도 체제로 보면 러시아 1원 체제에서 마오쩌둥 중심 체제로 돌아선 것에 불과하다. 1970년대 후반 이후 덩샤오핑 등이 집권하면서 중국은 자본주의권에 대한 경제 개방과 협력을 시도하였으며, 이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현재는 20세기 최강국이었던 미국의 지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미국과 달리 중국의 주변국들이 상당한 국력을 유지하고 있고 그 수도 적지 않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단 정치 체제는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의 부정적 산물이었던 소수의 독재 정치를 유지하고 있으며, 천안문 사태로 대표되는 민주화 운동은 무력으로 진압되어 아직도 굳게 닫혀있던 독재 정치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티베트, 위구르 등의 독립 문제와 종교 탄압 문제는 중국에 대한 국제적 비판을 부르고 있다.

중국에는 1958년에 만든 '인민공사'라는 대규모 집단 농장이 있었다. 이는 1958년에 대약진 운동에 들어가면서 조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인민공사는 행정·경제·사회·군사 조직이 일체화된 중국 농촌의 사회생활 및 행정조직의 기초단위로, 농촌에서는 인민공사를 하나의 단위로 한 사회 속에서 모든 주민이 생산, 소비, 교육, 정치, 상업, 군사 등 생활의 모든 기능을 해결하는 구조였다고 한다. 생산 기능도 농업뿐만 아니라 임업·목축업·부업(副業)·어업까지 광범위하게 영위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공동식당·유치원·양로원·병원 등 복지시설이 설치되었다. 모택동이 젊은시절 베이징대학 사서로 일하면서 공산주의를 접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단순히 공산주의에만 영향을 받은것이 아니라 조제프 프루동이나 미하일 바쿠닌의 아나키즘에도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민공사는 바쿠닌의 집산주의에 영향을 받은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문제는 바쿠닌의 집산주의는 해당 지역의 해당 위원회에 모든 권력을 일임한 반면, 마오이즘은 그 권력을 중앙당/중앙정부에서 독점했다는 것이다.

1978년에 생산책임제의 도입에 의해 인민공사는 실질적으로는 폐지되었다. 또한, 1982년에 채택된 중국의 신헌법은 인민공사를 단순한 집단경제조직으로 후퇴시켰다고 한다.

3.6.4. 북한의 사례[편집]

망했다.

1960년대까지 스탈린 체제를 모방하던 북한은 중소분쟁 속에서 (자칭) '우리식 사회주의'를 내세웠다. 현재는 주체사상이 국가 이념이다.
그리고 지금 북한에서 사회주의는 명목상 존재하는 헌법에서나 찾을 수 있을 뿐이지 사회주의적 정책 그런 거 없으며 공산당 1당 독재를 넘어선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이다. 즉, 사회주의가 아니다. 정확히는 왕권신수설에 입각한 절대군주제 국가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3.6.5. 버마중동의 사례[편집]

버마(미얀마)의 네윈 장군은 쿠테타를 일으키고 미얀마를 장악한뒤 버마사회주의계획당을 창설하면서 "버마식 사회주의"를 주창한다.그러나 기존의 마르크스-레닌주의나 사민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는데 이는 공산주의의 계급투쟁이나 유물사관, 프롤레타리아 국제연대 등의 요소를 거부하면서도 사회주의식 계획경제를 차용하고 반제국주의를 강조해 세계에서 일찍이 볼수없었던 색다른 독재정책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외교적으로 버마를 궁핍하고 고립된 나라로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또 저편 중동에서는 사담 후세인등의 아랍 민족주의자들이 아랍사회주의부흥당을 창설해 저 편의 버마와 비슷한 노선을 걸었다. 이 두 사회주의의 공통점은 기존의 공산주의사회민주주의가 아닌 그 민족,그 국가스타일의 사회주의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보통 아랍 사회주의라고 통칭하는데 이 안에서도 대체로 둘로 갈린다.
  • 나세르주의 - 이집트와 리비아 등이 차용. 원류에 가까운 사상이며 후세인의 바트당파 사상과는 흡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카더라. 둘 다 아랍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정책적으로는 제도적 평등과 국유화.계획경제 등의 사회주의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 아랍사회주의 개량주의파 - 바트당 등이 지지.
  • PLO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팔레스타인 해방민주전선 등 팔레스타인의 좌파 단체

3.7. 소집단의 시도[편집]

소규모 공동체 차원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려한 시도가 꾸준히 있었고,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다. 외부와 고립된 시골마을이나, 수도원 형식의 기도 공동체 단위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초기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이 이상촌 '뉴 하모니'를 건설하려 시도한 적 있으나 실패한 바 있으며, 이러한 초기 사회주의자들의 실패는 마르크스주의의 보급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현재 미국의 아미시(Amish)파나 이스라엘의 키부츠(kibbutz) 등이 있다.

4. 사회주의로 오인, 혼동하는 경우[편집]

4.1. 전체주의(파시즘, 나치즘)[편집]

전체주의(파시즘, 나치즘)도 관점에 따라 사회주의의 한 방향으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결론적으로 전혀 별개다. 나치(Nazi)의 이름 자체가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줄임말이라는 것. 하지만 나치가 말하는 사회라는 개념은 사회주의자들이 의미하는 것과는 다르다. 나치즘은 민족사회주의로, 비스마르크 시절의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과는 엄연히 다르다. 피폐화 된 국가의 재건을 위한 기치로서 국가를 향한 개인의 희생과 계획경제 등을 주장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은 상당수가 사회주의 전력이 있었고 사회주의자들의 대중동원력에 주목해 여러가지를 차용했다. 애초에 파시즘의 상징은 로마식 권표인 '파스케스'부터가 원래는 이탈리아 광산노동조합의 상징이었다. 그러한 주요 상징 및 개념들을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불펌을 했고, 그 파시즘을 다시 써먹은 것이 독일의 나치즘인 셈. 나치당은 초기에 자본가들과 은행가들의 탐욕을 비난하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요구했으며 상당수는 사유재산제의 폐지와 생산수단의 국유화까지 주장했다. 이는 어느정도 사회주의자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파시즘과 사회주의와 다른 점은 그 방향성과 지향성에 있다.

대개 사회주의 이론은 노동자의 계급성을 국가적 귀속보다 상위의 개념으로 보았으며, 이에 개별 민족과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은 결국 그 국가를 통제하는 기득권력에 놀아나는 것이라 보았다. 실제로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는 상당한 반민족주의적 성향을 띈다. 반면, 나치즘에 있어서 가장 상위의 개념은 민족과 국가이며, 생산수단의 국유화 주장은 최상위 개념으로서의 국가의 통제를 위한 것이다. 실제로 히틀러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마르크스주의를 매우 혐오했다.

파시스트들은 대중의 상당수가 사회주의에 동조하면서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같은 고정관념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에 대해서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던 것에 착안, 사회주의의 개념을 대중에게 더 잘 먹히도록 개선해 "하지만 우리는 국가와 민족도 중시한다"라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통해 사회주의 세력의 지지기반을 잠식해나갔던 것.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는 공산당 지지층이 나치당으로 대거 옮겨가 히틀러의 집권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을 추구하기 위해서 상류층이나 소상공인들의 지지도 필요했는데, 이들에게 있어 사유재산을 폐지하자는 나치당 일각의 주장은 공산주의와 같은 위협이었다. 히틀러는 당내에서 이런 주장의 핵심이었던 룀과 그의 SA장검의 밤에서 해체함으로서 사회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그럼에도 나치 집권 이후에도 국가 주도의 노동조합을 만든다거나 조직화를 통해 산업 전반에 대해 국가의 계획과 통제를 강요한다거나, 여러 복지 정책들을 실시해 집권 전의 입장을 어느 정도는 이어나갔으며, 히틀러는 립서비스로나마 자본가들에 대한 비난을 심심찮게 반복했다.

5. 영향[편집]

과학적 사회주의가 아닌 '개량적'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완전히 양립불가능한 체제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사회주의는 19세기 무렵부터 노동운동의 발달사와 함께 발달했으며, 어느정도 노동법과 같은 부분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8시간 노동시간, 아동의 노동 방지, 주5일 근무제 등은 사회주의적 이념의 확대, 이에 영향을 받아 나타난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격렬한 노동운동의 결과물로 나타났다.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운동 등을 통하여 노동자의 교섭력을 강화하고 노동자에게 유리한 규제를 만들고자 노력해 왔고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6]

영국의 노동당, 독일의 사회민주당, 프랑스의 사회당은 모두 사회민주주의를 당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거나 적어도 사회주의에 강한 영향을 받은 정당들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은 특히 복지국가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반론이 많긴 하지만, 최소한 사회 민주주의적 풍토가 강한 북유럽 국가에 자유주의적 정책이 상당부분 적당히 조화가 되어, 현재의 북유럽 모델이 탄생했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편이다. 반면, 그리스 등 남유럽과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서도 사회주의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나 경제를 더 악화시켰다거나 대중의 인기에만 영햡한다는 비판 등 그 효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의 기표를 무한히 확장시켜서, 단순히 사회적 요소만 들어간 것만으로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고 주장한다거나, 케인즈주의나 중상주의와 같이 국가의 경제 개입을 찬성한다는 이유로 사회주의의 영향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식으로, 사회주의의 영향력을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소위 우파적 이데올로기로 간주되는, 사회주의 그 자체보다도 훨씬 역사가 오래된 중상주의나 공화주의적 맥락에서도, 국가의 번영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최소한의 온정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기 때문이다.

6. 미래의 사회주의?[편집]

사회주의를 옹호하는 관점에서는 최근의 몇 가지 흐름에서 사회주의에 유리한 동향들을 찾아내기도 한다.(이와 관련한 전문적 글을 링크에서 볼 수 있다. 관련 글 링크)
  • 미래에 모든 생산을 기계가 담당하게 되고 인류의 저출산 기조가 가속화되어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자가 풍부하게 공급된다면 미래 사회는 사회주의 체제를 채택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자원의 희소성 하에 생산요소를 투입해서 이윤을 내기 위한 것인데 그럴 유인이 사라지기 때문. 애초에 모든 재화가 시장에서 굳이 거래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남아돈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전제부터가 훼손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소비자는 제한된 상황에서 합리적 선택을 할 필요도 없고, 시장이 형성되지도 않는다. 자연스럽게 생산과 소비의 영역은 사회주의 체제에 맡기고 인간은 그보다 훨씬 창조적이고 예술적, 학문적인 활동에 몰두하게 되리라는 전망. 다만 이것이 현실화되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한 번이라도 지체되거나 파괴되어서는 안 되며 꾸준히 지구적 저출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간에 핵전쟁이라도 일어나서 과학기술의 기반이 무너진다면 이러한 사회는 몇백 년은 뒤로 밀려날 것이다.
  • 위의 낙관적인 전망과 다르게 기술의 발전과 생산력의 증가가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증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일자리의 위협으로 나타난다. 없어지는 일자리만큼 새로운, 더 좋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낙관주의도 있지만 일반인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경제학자들 중에서도 로봇 등 인간을 대체하는 기술이 고실업과 그로 인한 수요 부진, 불황과 양극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들이 있다. 반면 기업 입장에서도 점점 새로운 수익 원천을 찾기가 어려워지고 있고 한계이익이 0으로 수렴함에 따라 플랫폼의 독점을 통한 진입장벽에 의존하지 않고는 영업을 해나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관점에서의 대안은 엄청난 생산력을 더이상 사적 소유에 맡겨 두지 말고 사회의 소유로 하는 것이다.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듯, 구글이나 애플, 아마존 같은 기업들의 주식을 국가가 국민에게 양도불가능한 주식으로 무상배분하고 국민들은 그 배당금으로 기초적인 생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대안일 수 있다. 남아도는 시간은 추가적인 소득을 제공하는 고급일자리를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거나 공공일자리나 인공지능이 못하는 잡일을 하면서 소소한 부수입을 얻거나 아니면 소득과 무관하게 스스로 의미를 둘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 - 예를 들어 취미 활동이나 예술 활동, 자원봉사나 스스로 의미있다고 여기는 공적인 가치에 기여하는 활동을 하면서 지낼 수 있다. 물론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공상일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에 대해 기업들의 저항과 국민들의 거부감을 극복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국가 간의 무한경쟁의 상황에서 특정 국가가 이와 같은 정책을 단독으로 취한다면 국가 경제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몇 가지 그런 움직임들은 나타나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의 예로, 젊을 때 짧고 굵게 돈을 벌고 경력을 쌓은 후에 소득과 관계 없이 자신이 의미를 둘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정책적인 차원의 예로, 전국민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정책은 사회의 높아진 생산력의 혜택을 전 국민에게 배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도 있다. 부결되긴 했지만 스위스에서 전국민에게 무조건 300만원씩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친 일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이상이 전혀 비현실적인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을 주었다. 핀란드는 실제 매월 71만원의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 반면 민영화의 확대, 법인세의 인하와 같은 흐름도 있어서 하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예단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극화를 심각한 도전으로 여기고 이에 대처하려는 여러 노력들은 부분적으로 사회주의적 처방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보수주의적 관점에서는 체제에는 문제가 없고 규제 완화, 창조 경제 등으로 기업들이 더 잘 돈을 벌 수 있게 도와주면 일자리도 많아지고 경제도 성장하고 격차는 커질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과 중산층의 소득도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늘어나게 될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아직 문제의식은 많지만 사람들에게 납득이 되는 방향성은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여겨지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960년대 나온 SF물 스타 트렉이 이미 이런 미래를 다뤘다. 원료만 있으면 뭐든지 만들 수 있는 물질재조합장치라는 치트급 기술력의 등장으로 인해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처럼 잉여생산물이 썩어넘치게 되고 결국 자본주의가 붕괴한 미래상이다. 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세계구급 전쟁도 벌어졌지만 작중에서 다루는 시점은 주로 그 이후 사회가 안정화된 때로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싶은 일을 하며 풍요롭고 편하게 살고 있다. 다만 물질재조합장치에도 여전히 한계는 있고 경영/자산/노동 등의 개념과 사회적 갈등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완전한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7. 관련 사이트[편집]

8. 관련 문서[편집]

[1] 실제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자였다.[2] 현재 이 기사를 클릭하면 이 기사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 '뉴스제휴 및 제재 심사 규정'에 따라 노출 중단된 기사입니다. 라는 문구가 뜬다. 삭제된 걸로 추정 당신 누구야? 읍읍[3] 현재도 많은 수의 그리스도교 수도회가 재산의 공동 소유 또는 제한적 소유만을 인정하고 있다.[4] 사실 마냥 훈훈한 것만은 아니었다. 횡령하다가 베드로에게 딱 걸려서 신벌을 받아 죽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아울러 공동체 내에 거듭된 분열과 반목은 신약성서 내내 나온다.[5] 당장 가까운 예를 들자면, 역사 교과서만 해도 저 구조를 따르고 있다.[6] 물론 이에도 반론이 있다. 이러한 노동자의 권익 향상의 과정을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고 볼 수는 없으며, 오히려 자유주의적 맥락에서 이루어져 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이클 샌델은 『민주주의의 불만』에서, 8시간 노동법이 제정되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기존의 노사관계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닌 이유를 설명할 때, 고드킨은 자유방임적 보수주의자들이 제시한 자발주의적 혹은 계약적 자유관을 수용했다. 하지만 그는 현실의 임금노동이 계약의 자유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의 자기만족적 가정은 거부했다. 노동자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생존의 극한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노동을 임금과 진정으로 교환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 (중략) 고드킨은 노동자들의 진정한 동의에 필요한 교섭 조건을 만들어내느 많은 조치들을 지지했다. 그 중 첫째는 노동자들이 자본의 시장 지배력과 균형을 이루고 '고용주와 평등한' 위치에서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이었다." 샌델은, 이러한 입장이 사회주의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보다 이전의 중세의 시민적 공화주의에서부터 엄밀한 현대의 권리중심적 자유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본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회주의 이념 역시 상당한 역할을 한 것 역시 사실일 수는 있겠지만, 이념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이처럼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단언하기는 힘든 일이다.[7] 마르크스 외 기타 마르크스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의 문서가 엄청나게 방대한 양의 문서가 보관되어있다.# 본인이 사회주의자라면 한번쯤 들어가보는것도 나쁘지 않다.[8] 미국의 몇 안되는 사회주의 언론이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미국 사회주의 계열 언론중에선 가장 크다. 이 잡지는 스스로 민주사회주의자,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로 다양하게 묘사되어왔다. 이 잡지의 성향을 가장 잘 드러낸 기사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