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김정기의 일러스트.
오늘날 독립문 앞에서 만세삼창

1. 개요2. 상세3. 노래4. 이야깃거리5. 신조어

1. 개요[편집]

三一節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날.

2. 상세[편집]

3·1절. 혹시나 삼점일절이라고 읽는 일이 없도록 하자.

3월 1일, 한국의 법정 공휴일하나며 이날에는 태극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그 다음 날은 개학날 아님 입학날 근데 어떤 해축빠다른 걸 게양한다. 카탈루냐 독립운동?

대한민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대한민국의 기념일과 같은 의미인 명절이 아니며 공휴일도 아니다. 북한에서도 3.1 운동을 기념하지만, 다른 국경일에 밀려 공휴일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단계론의 단순도식적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민족대표 33인이 중상계급 이상의 부르주아지이자 종교인이라는 점, 그리고 김일성이 안 했다는 점 김일성이 지나치리 만큼 게릴라식 항일무장투쟁에 경도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평가절하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3.1 운동은 일제강점기 당시부터 지나치게 평화주의적이며 자치주의적,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 바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운동을 시작한 날이다. 이 3.1 운동은 세계에서도 비슷한 예가 많지 않은 대규모의 집단적 저항 운동으로 광복에 대한 한국인의 염원과 일본의 만행을 만천하에 알린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복절건국절이 아닌 이유가 삼일절과도 관련이 있다. 3.1 운동을 계기로 하여 한반도를 비롯하여 해외 각지에서 존재하던 독립운동 구심체가 통일된 임시정부 수립운동으로 이어져, 서울의 한성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가 상하이 상해정부가 합쳐지는 형태로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것이다. 즉, 3.1 운동의 중요한 의의 중 하나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기에 건국절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 삼일절을 국가가 기뻐하는 국경일로서 기념하는 것이다.

이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 민족대표를 자청한 33명의 사람이 '태화관'이라는 음식점에서 기미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서를 발표하고 잡혀갈 예정이었으므로, 실제 시위를 주도할 15인이 더 있었다고 한다. 다만 여기에는 14인설과 16인설도 있으며 정노식을 제외하느냐, 김세환을 추가하느냐에 따라서 나뉜다.

어쨌거나 실제 시위를 15인까지 모두 합쳐서 민족대표 48인이라고 불린다. 이 중 1인만 빼고 모두 변절했다는 암울한 헛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으나, 사실은 서너명 정도만 친일파로 변절했고, 나머지는 끝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 감사하자. 구체적으로 33인 중 3인인 박희도, 정춘수, 최린이 변절한 사람들이고, 48인 중에서는 최남선이 포함되어 4인이 된다. 이들이 작성한 독립선언서가 바로 기미독립선언서다.

3. 노래[편집]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2]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3]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정인보 작사, 박태현 작곡 '삼일절 노래'

4. 이야깃거리[편집]

광복절과 삼일절은 대통령이 축사를 하기 때문에, 이때 연설이 대일외교의 기조를 강하게 드러낸다. 강경이냐
온건이냐... 그래서 일본의 정계/외교가/언론이 주목하기도 한다. 다만 탄핵정국 이후 대통령 선거가 3월로 옮겨가면서, 신임 대통령과 새 정부의 대일외교 기조는 삼일절이 아니라 광복절에 드러나게 되었다.

광복절과 더불어 자신들의 애국심을 표출하겠다며 질주하는 폭주족들을 쉽게 볼 수 있는 날이다.(...) 애국심이랍시고 태극기 망신시키며 깽판피우는 것보다 폭주족 짓을 그만두는 게 훨씬 애국적이라는 것을 모르는 걸까? 애초에 저들이 애국이라는 의미를 알고 애국 운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2009년경부터는 이런 폭주족들을 보기 힘들어졌고, 2013년부터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경찰이 강력한 단속 의지를 표출한 이유도 있고, 세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3.1 폭주를 선배로부터 대물림 받아 전통처럼 뛰던 세대가 나이를 먹고 폭주를 관두면서 그 자리를 대신 채울 신세대 폭주족이 적어진 것도 있고 위험한 오토바이 폭주를 즐기기보다는 그냥 게임하는 걸 더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 ???:ㅂㄷㅂㄷ 불경기의 영향이라는 분석도 있다.

참고로 이 날은 한국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가 모두 해당한다. 물론 삼일절 당일은 공휴일이므로 실제 등교일은 바로 다음에 오는 평일(2~4일[4])이다. 모 고등학교는 아예 삼일절을 기리기 위해 당일을 입학식 날로 정하는 모양이지만. 그래서 공휴일 치고는 묘하게 긴장된 분위기 때문에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아예 이날이 개교기념일이다. 이제 개학이라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안 좋다 카더라.

다만 고등교육법에서는 예외를 인정해서 학교에 따라서는 2월에 개강 및 입학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편 고등교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학교의 경우, 카이스트는 2월 초 개강, 5월 말에 종강으로 석달이 넘는 길고 아름다운 여름방학을 자랑한다.

한국의 스키장들은 삼일절에도 개장하기 때문에 삼일절에는 막바지 스키를 즐기려는 스키어들과 보더들로 스키장이 북적인다고 한다.

유준상홍은희의 결혼기념일은 삼일절이다. 유준상과 홍은희가 결혼식을 올릴 때 결혼식장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은 것만 봐도(...)

모 마트 문화센터에게는 지루한 날이라서 공룡체험을 해야 되는 날이다(...). 유관순 누나가 통곡할 듯한 지루함

나무파일:external/i2.media.daumcdn.net/20140301141705953.jpg
2014년 3월 1일 맨체스터 시티 FC에서 구단 트위터에 95주년을 기념하는 트윗을 올렸다.(사용자 지정으로 한국 지역에 사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글. 즉, 외국인은 못 보는 글이다.)

실제로는 저 시기에는 대한독립만세와 조선독립만세가 혼용되었다. 대한제국이라는 나라 이름보다 식민지 조선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서 그런지는 몰라도.[5] 현재 모든 역사교과서에서는 대한독립만세로 부른 것처럼 표시하고 있다. 뭐 실제로 대한독립군도 나중에 생겼고.

삼일절을 독립절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다. 경향신문 논설을 스크랩한 블로그 그도 그럴 것이 미국만 봐도 최대의 명절 인디펜던스데이(독립기념일) 7월 4일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날이 아닌 영국에게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날이다. 여담으로 미국에서는 영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한 9월 3일은 기념하지 않는다. 미국뿐만아니라 세계 일부국가들이 독립선언일 혹은 독립전쟁개시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위키백과 링크 잠깐, 그럼 광복절에는 못 쉬는 거 아니야? 근데 광복하고 독립하고의 의미는 살짝 다르다. 광복은 빛을 되찾는 거이고, 독립은 선언할 때 바로 이루어지는 것. 결론은 독립절이 되어도, 광복절에 쉴 수 있을 것 같다.

위의 주장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도 2019년 3월 1일, 대한민국 독립선언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기 위한 국민준비위원회가 발촉되었다.

2015년 3월 1일, 미 국무부 정무차관인 웬디 셔먼이 한·중·일 과거사 문제는 세 나라 모두 책임이 있다는 발언을 하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기사

5. 신조어[편집]


"3(삼) 1(일)세까지 취업 못하면 망적이다!" 의 준말.

이태백과 함께 청년실업 문제를 의미하는 말이다.

전문직에 속하는 의사, 변호사 또는 박사 등의 경우는 예외로, 일찍 자리잡는 케이스가 오히려 희귀하다.

예를 들어 의사의 경우 의대 6년(예과2년+본과4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이며, 군의관을 포함하면 14년이 걸린다. 박사의 경우 학부 4년 석사 2년 박사 5년에 11년이 소요된다. 변호사의 경우 학부 4년 로스쿨 3년에 군법무관 3년을 포함해 11년이 소요된다.

자리잡는 게 다소 늦다는 것이 흠. 그래도 30대 중반 이후를 생각하면...

2000년대 이후로 경제난과 함께 취업하기가 힘들어짐에 따라 평균 취업 연령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남자 같은 경우는 학벌 좋고 전문직 자격증이 있거나 본인의 능력이 된다면 나이가 좀 걸림돌이 되긴 하겠지만 31세 넘어서 취업하기도 한다. 나이 제한이 예전보다는 조금 완화된 듯.

[1] 단, 당시에는 "조선 독립 만세!"를 좀 더 많이 불렀다고 한다.[2] 사실 이 구절은 고증오류.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의 한반도 인구는 2천만이 채 되지 않았다.[3] 오타가 아니다. '하'는 '~이시여'라는 뜻의 옛말이다. 용비어천가의 '님금(임금)하 아라쇼셔(임금이시여 알아주소서)'나 정읍사의 '달하 노피곰 도다샤(달님이시여, 높이 돋으시어)'를 생각해보면 될 듯. 다만 현대에는 안 쓰는 표현이라 선열아라고 가사를 표기한 경우도 많이 보이는데, 이렇게 부르면 안 된다. 선열분들과 친구 할 기세[4] 4일일 경우는 삼일절이 금요일일 경우이다.[5] 독립선언문에서는 '조선의 독립'으로 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