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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러시아의 주에 대해서는 레닌그라드 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러시아어: Санкт-Петербург[1]
영어: Saint Petersburg[2]
독일어: Sankt Petersburg
핀란드어: Pietari
이름
한글
영어
프랑스어
국가·위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등재기준
(i)[6], (ii)[7], (iv)[8], (vi)[9]
지정번호
540bis
상트 페테르부르크
Санкт-Петербург/Sankt-Peterburg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문장
국가
행정구역
상트-페테르부르크 연방시
면적
1,439㎢
인구
5,281,579명 (2017)
인구밀도
3,764명/㎢
시간대
UTC+3
한국과의 시차
-6시간

1. 개요2. 상세3. 역사4. 지리5. 기후6. 인구7. 교통
7.1. 치안
8. 관광 명소9. 기타10. 출신 인물11. 대중매체 속에서의 상트페테르부르크12.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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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치 보기

러시아 북서부의 도시.[10] 모스크바에 이은 제2의 도시이며, 과거 러시아 제국의 수도로, 과거 열강에서도 손꼽혔던 제국의 유산이 산재해 있어 지금도 러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11] 모스크바세바스토폴과 더불어 러시아에 3곳뿐인 연방시 중 하나다. 인구는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4,848,700명, 주변 도시를 포함하는 연방단위의 면적은 1,439㎢이다. 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이기도 하다. 레닌그라드 주에 둘러싸여 있다. 1924년부터 1991년까지 도시명이 레닌그라드였고 이 이름으로도 상당히 유명했다.

2. 상세[편집]

러시아 서북부 발트 해의 오른쪽 끝부분인 핀란드 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네바 강을 품고 있다. 핀란드, 에스토니아와의 지리적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12]특히 핀란드 헬싱키와 가까운 편인데 고속철 '알레그로'가 개통된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헬싱키를 3시간 30분 ~ 4시간 사이에 오갈수 있기 때문에 인적 교류가 크게 늘어났다. [13] 덕분에 한국에서도 기존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항공 직항노선 뿐 아니라 핀에어를 이용하여 헬싱키에 도착한 후 고속철을 타고 헬싱키와 탈린[14],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동시에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늘어났다.[15] 모스크바로부터는 북서쪽으로 700 km 정도 떨어져 있다. 러시아 땅 크기를 생각하면 멀리 떨어지진 않은 편. 두 도시는 UTC+3이라는 같은 시간대에 속해서 서로 간에 시차도 없다.[16]

3. 역사[편집]

전통적인 러시아의 영역은 아니었으며, 스웨덴령 핀란드에 속한 지역이었다.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제국차르 표트르 1세가 전쟁으로 스웨덴에게서 새로 얻은 이 발트해와 통하는 교통의 요지를 서구화정책의 일환으로 새로운 수도가 될 땅으로 선정, 늪지대를 매립[17]해 1703년 5월 27일 도시가 건립되었다. 표트르 1세는 이 도시를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의미의 상트페테르부르크라 이름지었는데,[18] 독일식 이름[19]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대한 반감으로 페트로그라드[20]로 개칭되었고, 1924년 소련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하자 그의 이름을 본따 '레닌의 도시'라는 뜻의 레닌그라드로 개칭되었다.[21] 그러다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 연방이 수립되면서 원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을 되찾았다[22]

다만 소련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는 중년 세대에게는 아직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듯하다. 박노자의 고향도 이곳인데, 그도 이곳을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지 그렇게 부른다. 사실 세대를 막론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레닌그라드가 별개의 도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0세기 초에 태어나 소련 해체 시점까지 살았던 노인들은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페트로그라드에서 보내고 죽을 때까지 레닌그라드에서 살 줄 알았는데,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종하게 되었다"라는 농담을 즐겼다.[23]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싸고 있는 행정구역인 레닌그라드 주에 아직 남아 있다.[24] 모스크바에도 이곳으로 오는 열차가 발착하는 역의 이름은 여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아닌 레닌그라드 역이다. 풀코보 국제공항IATA 코드도 ULLI로, 레닌그라드 시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풀코보 공항을 비롯한 많은 곳에서 레닌그라드 시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소련에서는 이 도시를 기려 레닌그라드 수방메달[25]레닌그라드 250주년기념메달을 만들었다.

4. 지리[편집]

주변 도시를 제외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자체만의 면적은 605.8 km2. 지형적으로는 핀란드 만에 접한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저지대에 위치해 있다. 모스크바에 비하면 약 4도 정도 북쪽에 위치해 있다. 위도가 북위 59°57로 북유럽권의 노르웨이 오슬로스웨덴 스톡홀름과 비슷한, 절대적으로 봐도 북쪽에 있는 도시다. 위도가 높다보니 낮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비록 북극권처럼 낮만 있거나 밤만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낮 길이가 짧으면 5시간 53분, 길면 18시간 50분일 정도로 계절별로 낮의 길이가 많이 차이난다. 도시 일부는 해발 4미터 밖에 안 될 정도로 도시가 낮은 곳에 위치해서 홍수가 잦았다. 특히 1824년의 홍수는 해발 4미터가 넘게 차오르는 큰 규모의 홍수로서 이로 인해 300개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
운하가 많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늪지대에 세워진 곳이기 때문에 도시를 계획할 때부터 운하가 건설되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북유럽의 베네치아. 덕분에 운하와 바다를 통한 유람선 관광이 크게 발전해 있다. 여름궁전이 있는 페테르고프와도 수상버스로 연결되며 네바강 강투어도 있다.

5. 기후[편집]

쾨펜의 기후 구분[26] 상으로는 습윤 대륙성 기후(Dfb)에 속한다. 온난하고 습도가 높은 여름과 길고 추운 겨울이 특징이다. 7월의 최고 기온의 평균은 23 °C, 2월의 최저 기온의 평균은 −8.5 °C. 그래도 북위 60도에 가까운 위도를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편인데, 같은 위도의 시베리아와 비교하면 넘사벽으로 기온이 높고, 위도가 훨씬 낮은 극동블라디보스토크보다도 겨울철에 훨씬 따뜻한 편이며, 위도가 약간 낮은 모스크바와 비교해도 겨울철 평균기온이 높다. 다만 같은 위도의 스칸디나비아핀란드보다는 추운 편이다. 러시아에서는 온화한 편이라지만, 북쪽 도시다 보니 최저 기온의 기록은 −35.9 °C(1883년)에 이르고, 도시에 흐르는 네바강도 겨울에 대부분 얼어붙을 정도다. 그리고 도시 외곽은 더 춥다. 다만 겨울철에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면 영상권의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기도 하며, 실제로 2011년 12월의 이상고온때는 한국서울보다도 평균기온이 높기도 했다! 여름철은 대체로 지내기 좋은 쾌적한 기온 분포를 보이지만, 가끔 폭염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러시아를 강타한 2010년 대폭염때는 37도까지 기온이 오르기도 했다.

6. 인구[편집]

현재 인구는 약 484만명 정도인데, 20세기 초/중반에는 인구수의 급격한 변화가 여러번 있었다. 1916년에 240만이었던 인구가 러시아 혁명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불과 4년 후인 1920년에는 74만명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후 인구가 늘어 1941년~1943년 300만명에 이르렀으나 독소전쟁으로 인한 차출/인명피해가 있었고, 그리고 특히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많은 수가 굶어죽거나 피난을 갔기 때문에 인구는 60만명 이하로 다시 격감했다. 종전 후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자로 인해 인구가 늘어났고 80년대에는 500만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다 90년대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구도 같이 줄어들었다.

도심지 주민 대부분은 아파트에 거주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아파트 거주는 역사가 좀 길다. 20세초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소련 정부는 주택건설을 국유화했고 주민들이 공동거주 아파트에서 살도록 강제했었다. 1930년대에는 68%의 주민들이 그런 아파트에서 거주했다. 레닌그라드 당시에는 소련에서 공동아파트가 가장 많은 도시였다. 1950년대 들어서 공동아파트의 숫자가 크게 줄고 흐루숍카가 대거 건설되면서 주거방식에 변화가 생겼지만 아파트라는건 마찬가지이며, 현재에도 저소득층은 공동아파트에서 사는 경우가 꽤 있다.

제2의 도시치고는 초고층 건물이 없어서 전체적으로 나지막한 도시 경관을 보이는데, 도심지의 높은 빌딩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심지의 역사적 건축물들은 주로 18세기, 19세기 건축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스크바와는 달리 잘 보존되어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수도에서 밀려난 것이 역사적인 건축물의 보존에는 상당히 많은 보탬이 되었는데, 공산정권의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현대 건축물들은 주로 수도인 모스크바에 건설되곤 했기 때문이다. [27] [28] 이렇듯 보존된 건축물 덕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36개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4000여개의 역사적 문화적 기념물의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즈프롬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400m가 넘는 마천루(일명 라흐타 센터) 건설을 추진 중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시 당국과 시민들은 격렬하게 반대했고 크렘린도 반대 의견을 내비쳤으며, 유네스코는 "초고층 빌딩 건립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가즈프롬은 건설 장소를 원래 예정했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부에서 시 외곽으로 위치를 변경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지역을 연고로 하는 축구 구단으로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다.

7. 교통[편집]

러시아 북부의 여러 노선들이 모이는 러시아 철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참고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이 없고 대신 목적지 방향 이름을 딴 역들이 있다. 정작 이 도시의 (옛) 이름을 딴 레닌그라드 역은 모스크바에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주요 철도은 다음과 같다.

시내 교통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이 있다. 다만 웬만한 곳에서는 조금만 걸으면 지하철역이 있는 모스크바 지하철과는 달리 역간 간격도 넓을 뿐더러 도시 전체를 커버하기에는 선로가 무리가 있다. 지하철이 뚫리지 않은 곳에서도 트롤리버스와 일반버스를 통해 관광지로 접근할 수 있으니 배낭여행객들이 있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단 버스의 경우에는 노선이 임시/상시 폐쇄되는 경우가 많아 구글 지도만 보고 기다리다가는 수십 분을 기다려도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다반사. 조금 정류장이 멀어도 지하철 이용을 추천한다. 트램도 있으나 중심가로 들어가는 노선이 제한적이고 교통정체에 발이 묶이는 경우가 잦으니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마르쉬루트카"라고 불리는 소형 버스도 있는데 이는 일반 관광객이라면 이용할 일이 거의 없다.(여름궁전이 위치한 페테르고프로 가기 위해서 탈 수도 있다.)

풀코보 국제공항이 있으며, 여기서 세계 각지를 연결한다. 대한항공은 이 공항에 계절편으로 취항한다.

7.1. 치안[편집]

러시아가 전체적으로 혼란스러웠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심각했었는데, 요즘은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시의 범죄율은 러시아의 전반적인 치안상황과 연관이 깊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에 범죄율이 치솟았는데, 이는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변혁을 겪으면서 러시아 전반에 사회적 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행정력이 무력해진 틈을 타서 러시아 마피아들이 판치고 다녔다. 19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부시장인 미하일 마네비치, 국회부의장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 등이 살해당하는 등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치안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내에서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범죄의 도시로 인식이 되어 버렸다. 최근에는 구 CIS 공화국 출신 외국인들이 불법적으로 체류하면서 범죄를 저질러서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늘어나는 중이며, 인종 차별에 의한 범죄까지 증가 추세였다.

위에 서술한 내용도 이제는 도시의 옛날 이야기로 남게 될 것이다. 최근 치안 관리와 IS의 테러 위협을 이유로 시내 주변에 2인 1조로 순찰하는 경찰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소매치기 같은 경범죄는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난다. 치안이 좋아졌다 하더라도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늘 휴대폰이나 지갑 등의 관리를 잘해야 한다.

2017년에 센나야 광장 근처 지하철 역에서 알카에다에 가담한 키르기스스탄 남성에 의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8. 관광 명소[편집]

9. 기타[편집]

모스크바와 더불어서 러시아의 양대 제조업 중심지이자 경제 중심지이며, 다수의 문화, 예술관련 기관과 시설이 들어서 있어서 학술적, 문화적으로는 러시아의 No. 1도시이다. 오죽했으면 19세기 러시아에선 '러시아의 심장은 모스크바이며 러시아의 머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의 지갑은 니즈니 노브고로드[32]이다.' 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이니...

그리고 부시장을 지냈던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해서 현재 러시아 정계를 주도하는 이들 상당수가 이쪽 출신이다. 이들을 피제르츠라고 부른다. 참고로 푸틴이 나온 직장인 구 KGB와 현 FSB 출신도 정권의 실세인데 이들은 실로비키라고 부른다.

1989년 잉베이 맘스틴라이브 공연을 했다. 당시에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 앨범도 있다.

1997년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2008년 대한민국 부산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었다. 그리고 제주도측(!)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자매결연을 추진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발트해에 접한 러시아 최대의 항구도시지만 대양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다. 발트해에서 또 북해, 대서양으로 나가려면 덴마크스웨덴 사이의 좁은 해협을 또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33][34] 또 안보에서도 러시아에 많이 불편한 동네다. 이 지역은 러시아 제2의 중심지로 상당히 중요한 지역이었고 소련 시절에는 최전방인 동독과는 수백km가 떨어져 있던 안전한 지역이었다. 그런데 소련이 망하고 200km도 떨어지지 않은 발트 3국NATO에 가입하며 갑자기 최전선이 되어 러시아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칫거리다.

관광 수요가 많은 만큼 대한항공인천국제공항과 상트페테르부르크 풀코보 국제공항을 오가는 하절기 한정 노선을 운항한다.

세계 최초이자 가장 큰 종자은행들 중 하나인 파블롭스크 실험국이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크레스토프스키 스타디움유로 2020의 개최지중 하나이다. 여기에 오게 될 팀은 일정이 지옥이겠지만, 위안 여기보다 더 한곳도 있으니 위안 삼을 수 있을지도? 두 군데 다 연속으로 간다면 거리상으론 괜찮으므로 상관 없다.하지만 이 두 곳 사이에 더블린이나 글래스고빌바오가 껴 있다면? 그때부터 지옥 확정

이 도시의 예전 이름인 레닌그라드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의 별칭이다. 작곡가가 직접 붙인 이름이 아닌 별칭이지만 흔히 이 이름으로 불린다.

10. 출신 인물[편집]

11. 대중매체 속에서의 상트페테르부르크[편집]

애니메이션 사이키 쿠스오의 재난 4화의 배경으로 나온다. 사이키 쿠스오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이 곳으로 도피하지만 카잔 대성당 앞에서 깨달음을 얻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월드 오브 워쉽에서 무료배포한 항구 중 하나로 등장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보드게임)은 문자 그대로 표트르 대제가 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소재로 한 경제/경영 보드게임이다. 석기시대의 제작자로 알려진 베른트 브룬호퍼의 2004년작이며 독일 게임상(Deutscher Spielpreis)를 수상했을 정도로 게임성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러시안 레일로드의 세 주요 노선 중 하나는 모스크바와 이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다.

12. 관련 문서[편집]

[1] 실제 발음은 '산끄뜨삐찌르부르크'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싼크뜨-뻬쩨르부르그'라고 적는다.[2]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 트로피카나 필드가 있는 플로리다주의 도시와 똑같은 이름이다. 다만 미국에서도 이쪽은 그리 크고 유명한 도시는 아니라서 플로리다가 아닌 곳에서는 플로리다를 뒤에 붙이지 않고 세인트 피터스버그라고 하면 보통은 러시아의 도시를 뜻한다.[3]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지구와 관련 기념물군[4] Historic Centre of Saint Petersburg and Related Groups of Monuments[5] Centre historique de Saint-Pétersbourg et ensembles monumentaux annexe[6]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7]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8]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9]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10] 러시아를 동유럽으로 흔히 보지만, 상트의 위치는 북유럽 국가들과 더 가깝다. 북극에 가까워 한여름엔 새벽에도 어두워지지 않는다.[11] 관광산업도 페테르부르크가 모스크바보다 더 발달해 있어서, 현재 모스크바 지하철은 러시아어 안내만 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은 영어 안내도 있다.[12] 시내 중심에서 두 나라 국경까지의 거리는 150km 정도인데, 외곽 지대의 경우 국경과 10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도 있다.[13]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람들의 십중팔구는 다 한번씩은 핀란드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정도다.[14] 헬싱키와 탈린의 거리도 매우 가까운 편이다. 배타고 두 시간 거리.[15] 다만 인천 - 헬싱키 노선 개통 이후 인천 - 상트페테르부르크 노선이 승객 감소로 피를 보고 있는 중. 인천 - 헬싱키에 비해 상당히 비싸기 때문.[16] 다만 원래 상트페트르부르크는 UTC+2 시간대를 쓰는 게 맞다. 다만 모스크바와의 편의성을 위해 모스크바와 같은 시간을 쓰는 것.[17] 매립이라고 말은 간단한데, 보통은 늪지대에 도시를 세우려는 미친 놈은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저 매립 작업에 희생됐다고 한다. 일명 '뼈 위에 세워진 도시'. 그중에서도 북방전쟁 때 사로잡힌 스웨덴군 포로들의 희생이 매우 컸다.[18] 베드로=피터(영어)=페테르(독일어)=표트르(러시아어)인 걸 생각해 보면, 사실상 이 새로운 수도에 자기 이름을 갖다붙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다른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간혹 오늘날 프랑스 최대의 항구도시 가운데 하나인 르아브르의 경우 평범한 어촌이었던 것을 국왕 프랑수아 1세가 완전히 재설계한 사례인데, 그의 생전에는 르아브르가 아니라 '프랑수아의 도시' 라는 뜻에서 '프란시스코폴리스' 라 불렀다.[19] ~burg(부르크)로 끝나는 지명은 독일어권 지역에서 많이 붙이는 이름 중 하나이다. 이름 뿐 아니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식 건물이 많다.[20] 페테르부르크와 이름의 뜻은 같다. 성 베드로의 도시.[21] 레닌의 후계자인 스탈린의 이름을 본딴 스탈린그라드도 있었으나 1953년 스탈린이 죽고 그의 지위까지 격하되면서 일찍이 소련 시절인 1961년 지금의 볼고그라드로 지명이 바뀌었다.[22] 이 때, 이름을 아예 러시아식 이름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성 베드로의 도시'라는 원래 뜻을 살려 '스뱌토페트로그라드'로 바꾸자는 의견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바 강에서 이름을 따 '네보그라드'로 바꾸자는 의견이 꽤나 힘을 얻었던 모양. 하지만 결국 옛 명칭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결정되었다.[23] 1914년 6월 이전에 태어나 1991년 12월 이후에 임종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페트로그라드와 레닌그라드를 거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임종하게 된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두차레의 격변기를 거치며 인구가 급감한 바 있고, 러시아의 평균 수명 상승이 오랜 기간 지체되었기 때문에 저 테크를 실제로 이룬 사실은 많지 않다.[24] 비슷한 사례로 우랄 산맥의 도시 스베르들로프스크도 소련 붕괴 후 원래 이름인 '예카테린부르크'로 돌아갔지만, 예카테린부르크가 속한 주의 이름은 소련 시대 이름인 스베르들로프스크 주로 남아 있다. 단 예카테린부르크와는 달리,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는 레닌그라드 주에 속하지 않는 독립된 행정구역이다.[25] 2차 대전 당시 레닌그라드 공방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만든 메달.[26] 사실 블라디미르 쾨펜도 이곳 출생이다. 20세부터 독일로 이주해 활동했고 말년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보냈으므로 독일 기후학자라 해도 틀린 소리는 아니지만(출처)[27] 공산당이 과거에 정교회의 건물이라는 이유로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완전히 박살낸것을 보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많은 성당들이 파괴됐을지도 모른다.[28] 물론 또 하나의 이유도 있는데 모스크바의 인구가 1950년대 들어서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덕택에 공동아파트로도 주거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질 지경이 되자 도심 중심지의 목조건물들을 대거 철거하거나 재개발해서 그 자리를 고층아파트로 채웠기 때문이다.[29] 상트 근처의 도시 페테르고프에 있다.[30] 상트 근처의 도시 차르스코예 셀로(푸시킨)에 있다.[31] 상트 앞의 핀란드 만의 코들린 섬에 위치한 곳. 상트 서쪽으로 약 30km 떨어져있다. 발트 함대의 군항이 위치한 것과 해군 교회로 쓰이는 성 니콜라스 교회가 유명하다. 소련 초기 정권에 대하여 수병들이 일으킨 크론시타트 반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32] 무역 중심도시로서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33]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 해역을 거치지 않고도 대양으로 나갈 수 있는 부동항을 갖기를 원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항구도시는 다른 곳도 모두 이런 식이다. 흑해보스포루스 해협지브롤터 해협,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대양으로 나갈 수 있으며 북극해북해로 나가는 방향 외에는 연중 얼어있으므로 역시 반쪽짜리 바다. 블라디보스토크가 있는 동해 역시 대한해협이나 쓰가루 해협 등 해협을 통과해야 대양으로 나갈 수 있다.[34] 이 해협에 대한 통과세를 받아먹었기 때문에 30년 전쟁 시기쯤 덴마크 왕실 재산은 전 유럽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았다. 지금은 이 해협을 통과하는 대신에 독일 북부의 발트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킬 운하로 빠지면 거리도 단축되고 더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어 운하를 주로 이용한다. 대신 독일이 운하세를 받아먹고 있다[35] 당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레닌그라드는 "서방을 보는 창"이라는 별명으로 여러가지 문물을 접할 수 있는 도시로 유명했다. 그래서 외국 음악을 접하기 쉬운 도시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최초의 "레닌그라드 록 카페"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빅토르 최의 밴드 "키노"가 활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