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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 공화국
프랑스어: République du Sénégal
국기
국장
지도
면적
196,723km²
인구
14,320,055 명(2016)
수도
국가
모든 국민이 그대의 콰라 팔라퐁을 친다네
(프랑스어: Pincez tous vos koras, frappez les balafons)
공용어
프랑스어 그외 월로프어, 세렐레어등 각민족언어
정부형태
대통령
마키 살
임기
총리
무함마드 디온
임기
민족구성
월로프족(43.3%), 풀라르족(23.8%), 세레르족(14.7%) 등
종교
이슬람교(94%), 기독교(5%), 토착신앙(1%)
국제연합(UN) 가입
1960년 9월 28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62년 10월 1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72년 9월 12일

1. 개요2. 수도 다카르3. 역사
3.1. 고대사3.2. 현대사
4. 사고5. 경제6. 정치7. 사회8. 문화
8.1. 스포츠
9. 한국과 세네갈10. 창작물에서의 세네갈

언어별 명칭
세네갈
세네갈공화국
Senegal
Republic of Senegal
セネガル
セネガル共和国
Senegal
República do Senegal
塞内加尔
塞内加尔共和国
सेनेगल
रिपब्लिक डू सेनेगल
السنغال
جمهورية السنغال
Сенегал
Респу́блика Сенега́л

1. 개요[편집]

아프리카 대륙 최서단, 대서양과 맞닿아있는 국가. 북으로는 모리타니, 동으로는 말리, 남으로는 기니비사우기니와 인접하고 있다. 위 지도에서 뭔가 국토 가운데를 으로 파낸것 같이 생긴 나라는 감비아. 수도는 다카르(Dakar)로, 다카르 랠리의 종착점으로 유명하다.

2. 수도 다카르[편집]

나무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Dakar_districts.svg.png

사진을 봐도 수도라고 믿기어려울 정도로 3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있는 반도이다. 이 곳은 아프리카의 최서단에 위치하고 3면이 바다라 대서양 횡단 무역 및 유럽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항만이기 때문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래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래서 독립이후에 이곳을 수도로 결정한것이다.

다카르는 프랑스에 의해 도시를 이루었다. 1902년에 생루이로 바뀌었고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세네갈 식민지는 비시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에, 1940년 9월 드골의 자유 프랑스군이 다카르를 공격했지만, 실패에 끝났던 적이 있다(다카르 해전). 1959년부터 1960년까지는 말리 연방의 수도였고 나중에 세네갈의 수도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프랑스 영향을 많이 받아 유럽풍 건물이 있고, 식민지때 남은 노예수용소도 위치하고 있다. 유럽-아프리카-아메리카 3개의 대륙을 해양교역로의 중요한 요충지로도 불리고 있다. 많은 배가 여기서 기항한다.

3. 역사[편집]

3.1. 고대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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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경에 풀라 족의 타크루르 왕국이 존속하였으며, 가나나 말리 등의 왕국들의 땅이 되기도 하였다. 이후 동남부 지방은 말리에 이어 송하이의 지배를 받았으나, 서북쪽 지역은 월로프족의 졸로프에 이어 카요르 같은 왕국이 들어섰고, 서남쪽 지역에는 세레르 족의 시네 왕국이 들어섰다. 이 때 동쪽 지방엔 풀라 족들이 데낭케(大풀로 왕국) 같은 큰 나라를 세웠고, 이들의 후신인 푸타토로가 19세기 세네갈 북부에 존재했다. 한편 유럽인들은 16세기경부터 세네갈의 해안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세기 프랑스가 이 지역을 침략해 식민지로 만들었다.

세네갈 지역에서 유래한 무라비트 왕조모로코스페인을 지배하기도 했다.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인이 유럽을 정복한 경우는 이게 유일하지 않을까…

3.2. 현대사[편집]

이후 1960년 프랑스식민지에서 독립했다. 독립 이후 말리와 함께 연방을 구성하였다가 정치적 대립으로 같은해에 해체하고는 단독으로 공화국을 선포하였다.

감비아는 모든 국경이 세네갈과 맞닿아 있는 나라로서, 위의 지도에서 보면 가운데 빈 곳에 해당하는 나라이다. 1982년 세네감비아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합병한 적이 있지만, 7년 만에 다시 분리독립했다.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나[1]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두 지역이 다른 나라가 된 건 아무래도 식민지배의 영향이 컸다. 세네갈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지만, 감비아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거기에는 프랑스감비아 지역까지 먹으려 들었지만 주도권을 잃었다는 비극적인 서막이 있기도 하고(…)[2]

4. 사고[편집]

세네갈 주민들이 남북지방을 오갈 때 육로를 이용하려면 감비아를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선박을 많이 이용한다. 그 배경 속에서, 2002년 9월 26일 르 줄라호 침몰사고로 1,863명이 사망한 참사가 벌어졌다.

5. 경제[편집]

세네갈은 건조기후[3]에 토질이 나빠 수수조(식물)를 재배하였으나 프랑스 식민지 이후 땅콩을 재배하게 되었고, 주식은 아시아산 로 바뀌었다. 따라서 현재 세네갈은 베트남, 태국 등의 동남아에서 을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남부 까자망스 지역은 지역명의 유래가 된 까자망스 강을 끼고 있고,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우기로 풍족하게 쌀을 재배하고 있으며,[4] 이 외에 과일들 역시 매우 다채롭고 풍부하다.[5]

한국은 주로 갈치를 많이 수입하고 있다.[6]

요약을 하자면 경제력이 좋은 나라는 결코 아니지만 아프리카 나라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있어서 자국민들의 식량에는 크게 문제가 없이 그럭저럭 먹고 사는 나라다.

6. 정치[편집]

감비아·기니비사우와 맞닿아 있는 남부 카자망스 지역에서는 1980년대 부터 지속적으로 분리독립 요구가 있었다. 남부 카자망스 지역은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슬람 중심의 세네갈에서 이슬람화를 반대하며 주민의 대다수가 그리스도교(약 5%), 토착종교(약 1%)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세력이 종교적 차이로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무장 반군 단체인 MFDC(카자망스 민주 운동단체)를 결성하고 정부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외교부에서는 세네갈 남부 카자망스 지역을 2단계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7. 사회[편집]

독립 이후 쿠데타나 큰 분쟁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는 아프리카 국가중에선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문 케이스다. 의외로 의료 수준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중에선 가장 높은 편이다.

8. 문화[편집]

아프리카 최초로 장편 영화를 만들어 아프리카 영화의 선조로 불리는 우스만 셈벤이 이 나라 출신이다. 원래 소설가였다가 소련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영화 감독이 되었다고. 때문인지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 영화업계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를 비롯한 서구 영화 감독들도 찬사를 보낸 지브럴 좁 맘베티투키 부키가 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영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태.

8.1. 스포츠[편집]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프랑스를 1:0으로 물먹이고 8강에 진출하면서 아프리카 축구 강호로 유명해졌다(그 유명한 세네갈 쇼크). 국대에 대해 자세한 것은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또한 아프리카 내에서는 여자 농구의 강호이기도 하다. 1960년대~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프리카 농구선수권 대회 (Africa Championship)에서 이집트와 더불어 우승을 다투며 서로 결승에서 여럿 대결을 벌이고, 이집트와 같이 역대 5번 우승 동률을 거뒀다. 그러나 1989년 우승을 시작으로 앙골라 농구가 우승을 마구 독점하여 2013년 11번째 우승을 거두면서, 세네갈과 이집트가 각각 거둔 역대 5회 우승(10번)을 넘어섰다. 세네갈은 1992, 1995, 2005년 대회에서 앙골라에게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첼시 FC에서 활약했고 현재 상하이 선화뎀바 바가 세네갈 출신이고, 뉴캐슬 유나이티드파피스 시세도 세네갈 출신이다. 최근 므흣한(?) 이름 때문에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파피 질로보지도 세네갈 선수이고 리버풀사디오 마네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의 없어선 안될 존재이다.

9. 한국과 세네갈[편집]

한국과는 1962년에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무역협정, 문화협정, 경제기술협정, 투자협정을 체결하였다. 일반인들에게는 갈치를 주로 수입하는 나라로 알려져있다.[7]

북한과는 1972년에 수교하였고 2010년에 세네갈 독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상"이라는 거대한 조각상을 국제입찰을 통해 만들었지만, 국민들은 이 조각상이 우상숭배라며(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이다.)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대북제재에 따라서 북한 노동자들의 비자 발급을 중단된 상태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레소토, 보츠와나, 스와질란드, 라이베리아와 함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한국인이 비자 없이 무비자로 방문 할 수 있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6개 국가들중 하나이다. 본래는 비자를 발급받아야지만 입국이 가능했으나 2015년에 한국과 세네갈 간 비자면제협정을 맺으면서 비자 발급 없이 무비자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체류기간은 90일.

10. 창작물에서의 세네갈[편집]

이 나라의 수도 다카르는 기동전사 Z건담에서는 지구연방 연방의회소재지다. 에우고의 지도자였던 블랙스 포라 준장의 암살이나, 그립스 전역 시대의 분기점이 된 샤아 아즈나블의 다카르 연설은 여기서 일어난 일로 돼 있다.

쿠로코의 농구에서는 해당 국적의 유학생이 출연한다.

[1] 두 나라 모두 만딩카, 풀라, 월로프, 졸라 족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구성비는 꽤 차이가 있다. 감비아는 만딩카 족이 42%, 풀라 족이 18%로 월로프 족은 16% 정도지만 세네갈은 월로프 족이 43.3%, 풀라 족이 23.8%로 만딩카 족은 3%에 불과하다.[2] 사실 프랑스식민지 경쟁 과정에서 영국에게 깨진 적이 많이 있었다. 캐나다는 말할 것도 없고, 인도도 플라시 전투에서 깨져 영국에게 빼앗겼고, 팔레스타인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식민지 세력 다툼에서 영국에게 깨져 차지하지 못했다.[3] 7~10월의 우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건기다. 남부 카자망스 지방의 우기는 6~11월 정도로 중북부에 비해 우기가 2개월 정도 더 길다.[4] 주식이 쌀이라고 해도 중북부 지역은 주로 점심식사에서만 쌀을 먹는 것에 반해(아침은 바게트와 커피를 마시는 프랑스식, 저녁은 수수나 조를 이용한 꾸스꾸스를 먹는다), 까자망스 지역의 주민들은 한국인처럼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쌀을 주식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5] 세네갈 현지인에게 따르면 망고 수확철의 남부에서는 망고가 넘쳐나 상품성이 높은 것들만 수확하고 나머지들은 방치해두는데, 떨어진 망고들이 길가에 즐비하다고 한다. 심지어 동네에 돌아다니는 소, 양, 염소 등의 가축들조차 맛있는 망고만 먹고 그저그런 망고들은 길가에서 그냥 썩어간다는.....[6] 아프리카의 기상인지 국산 갈치보다 크고 길며, 먹을것도 많아서 인기라고...[7] 특히나 세네갈산 갈치는 같은양의 제주은갈치에 비해 살이 매우 많으며 값도 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