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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1.1. 선박 개조
2. 인어할머니와 선장에 등장하는 어선

1. 청해진해운의 여객선[편집]

현재 세월호 인양 진척상황: 미수습자 고창석 교사 유골 일부 수습 및 조은화, 허다윤양 이별식 거행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이 항목의 배가 침몰한 선박 사고에 대해서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종류
카페리선
선급(검사기관)
한국선급(Korean Register)
명칭
세월(한국)
건조
하야시카네선거(林兼船渠)
화물 수송능력
승용차 130대, 화물차(5톤) 60대,
10피트 짜리 컨테이너 200개
기타 정보
2014년 4월 16일 침몰


청해진 해운에서 제작한 세월호 홍보 영상. 세월호의 외관과 내부 시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
정상 운항시의 세월호 모습 참고
청해진해운 소속의 여객선. 대한민국 최악의 해난사건을 일으킨 선박.

1994년 6월, 일본 나가사키의 하야시카네선거에서 건조한 카 페리선으로, 건조 후 일본 마루에이 페리 사에서 약18년간 'Ferry Naminoue' 라는 이름으로 가고시마~오키나와 나하간 운항하다가 2012년 10월 1일을 나하발 운항을 마지막으로 퇴역하였다. 중고 선박 시장 매물로 올라온 이 선박을 청해진해운이 2012년 10월에 매입하여 개수작업을 거친 후 세월호(歲月號)라는 이름으로 2013년 3월부터 인천-제주 항로에 투입하였다.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는 세월호와 오하마나호[2] 뿐이었다. 인터넷에서 세월호나 오하마나호의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이다. 그러나 청해진해운이 취득했던 제주-인천 간 면허가 취소되고 사실상 회사가 사라지게 되어서 더 이상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는 없다. 만약에 제주를 갈때 차를 가지고가고 싶다면 목포, 완도에서 운행되는 카페리를 이용해야 한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그리고 인천은 수도권이며 김포국제공항도 가깝기 때문에 김포-제주 비행기를 타면 된다.[3]

명칭인 세월호는 일부 언론에서 상을 넘는다(초한다)(世越)는 의미라고 보도하면서 대부분 언론에 퍼졌으며, 이름을 유병언 회장이 직접 지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구원파의 정정보도에는 흘러가는 시간을 뜻하는 단어 세월(歲月)이라고 밝혔다.(정정보도)

당초에는 정확한 한자 표기가 알려지지 않아 가장 흔한 단어로 음차한 명칭인 歲月號라는 명칭으로 일본, 중국, 대만 등지에서 보도되었으나 일부 언론에서 나온 한자 명칭으로 확정되면서부터 수정 보도되고 있다. 중국 방송의 수정 보도(중국어 링크): 한국 조선일보를 인용하였다고 되어 있다. 원래 중국어권에서는 표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는 특성상, 외국 고유명사를 표기할 때 정확한 한자 표기를 알아내기 전까지는 음이 같은 한자를 이용하여 그럴 듯하게 가칭을 지어서 쓴다. 하지만 상술했듯 처음에 가칭으로 썼던 歲月號가 진짜 정식 표기로 밝혀졌다.

세월호를 건조한 하야시카네선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 공장으로 다수의 조선인이 강제동원 되었던 카와나미 공업 후카호리 조선소를 전신으로 1965년 설립된 일본의 조선회사이다. 일본 조선업계의 불황에 따른 경영 악화로 1992년 타이완에버그린 그룹에 인수되어 초에이 조선으로 개칭되었다가 2004년 다시 후쿠오카 조선에 인수되어 현재는 후쿠오카 조선 나가사키 공장이 되었다.

간혹 한국 언론들이나 일본 자료에서 이 선박을 미쓰비시 나가사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것으로 혼동한 경우가 많은데, 마루에이 페리사(당시 오시마운수)에서는 1994년 하야시카네선거에서 건조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를 청해진해운에 세월호로 매각 전, 2012년 미쓰비시 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 새로운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를 주문하였다. 신형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는 현재 세월호가 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와는 다른 선박으로, 이전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와 비슷한 모습을 가졌으나, 많은 부분이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인터넷에 フェリー波之上 또는 Ferry Naminoue 라고 검색 했을때 미쓰비시 중공업 홈페이지에서 개재된 나미노우에호는 세월호가 된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가 아닌 신형(5대)이다. 결론적으로 하야시카네선거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 구형 페리 나미노우에호-4대(일어) 신형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일어)
신형 페리 나미노우에호-5대(영어)

참고 링크1 참고 링크2 해외 정보 위키피디아 참고정보
자매선 오하마나호 참고1 참고2

청해진해운은 2003년에도 마루에이 페리(당시 오시마 운수)의 또 다른 구형 카페리선인 'Ferry Akebono'(페리 아케보노호-1대)를 도입하여 인천-제주 노선에 운용하였는데, 이 배가 바로 '오하마나호'다. 페리 아케보노호(1대)는 1989년 미쓰비시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하여 마루에이 페리(당시 오시마 운수)에서 운항하던 카 페리선이며, 건조 후 약 14년간 운항하다가 2003년 퇴역후, 동년 청해진해운이 중고선으로 도입하여 오하마나호로 개명했다. 아니나다를까 이 선박도 문제가 있었는데, 2011년 4월과 2013년 2월 두 차례 바다 한가운데에서 항해 중에 엔진이 고장으로 인하여, 5시간 동안 표류하여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선장이 바로 이준석이다. 이때도 수학여행을 떠나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배 엔진이 고장났을 때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만 했다고 한다.

1.1. 선박 개조[편집]

페리 나미노우에 시절
세월호 시절
승객 더 태우려 선박 개조?.."구명보트 오작동" 결함 의혹이란 기사에 따르면, 원래 600명 정도[4]가 타는 배였는데 300여 명 정도를 더 태우기 위해 배 뒤쪽에 객실을 추가하였다. 선수부 우현 사이드 램프 도어(램프웨이) 제거가 되었으며, 배 뒤쪽을 개조했다는 전직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이 나왔다고 한다. 또한 객실을 증축하면서 세월호의 무게는 페리 나미노우에(4대) 때와는 달리 239톤이 증가했다. 이게 첫 개조가 아니였는데 일본에서도 이미 1994년 건조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589톤이 증가했었다. 결국 맨 처음 개수했을 당시 5,997톤이였던 선박은 개조로 인해 6586톤으로 증가했고, 개조한 세월호의 순수 선박의 무게가 일본 당시 239톤 + 한국에서 589톤 총합 828톤 증가하여 6,825톤에 달했다.

2. 인어할머니와 선장에 등장하는 어선[편집]

나무파일:cU7OOy0.jpg
나무파일:RF94q1f.jpg
나무파일:Ej8ypN5.jpg

다큐멘터리 영화 인어할머니와 선장의 주인공 '김화순' 할머니와 '양숭길' 선장이 사용하는 어선이다. 둘이 10년 전부터 수산업 파트너를 해왔을때부터 사용한 배이다. 본래 양숭길 선장이 처음 배를 받았을때 이름은 '창성호'였는데 이후 '세월호'라고 개명을 했다. 양숭길 선장이 세월호라고 이름을 개명한 연유에 대해서 설명할 때 많은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이에 대해선 후술)

참고로 청해진해운의 세월호보다 더 먼저 세월호라는 이름을 사용한 최초의 세월호이다. 청해진해운이 페리 나미노우에를 매입한건 2012년이며 '세월호'라는 이름을 달고다니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이지만 양숭길 선장의 세월호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이름이 등록되었다. 양숭길 선장이 세월호라는 이름을 달고 다닌 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다큐멘터리 중엔 밝혀지진 않았으나 인어할머니와 선장의 방영 날짜가 2011년인걸 생각하면 최소한 청해진해운의 세월호보다는 더 먼저인 셈이다. 참고로 어선의 이름일지라도 해양사무소(혹은 해양수산부)를 통해 '선박등록'을 해야하며, 이는 엄연히 국가에서 공인하고 있는 상표이다. 물론 어선 중에서도 굳이 선박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다큐멘터리 중에서 양숭길 선장이 직접 세월호에 대한 '선박 개명 신청'을 하였다고 밝혔다. 사실상 세월호의 상표를 최초로 가지고 있는 것이 양숭길 선장인 셈이다. (참고로 배 이름이기에 '세월호'라고 뒤에 호를 붙여 부르긴 하지만 사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나 양숭길 선장의 세월호나 둘 다 배 명칭 자체는 그냥 '세월'이다.)

양숭길 선장이 세월호로 개명한 이유에 대해서는 본래 배의 이름이였던 창성호가 '창성하다'라는 의미인데 다른 사람들은 배 이름이 너무 거창한 걸 좋아하는것 같다고 자신은 욕심스러운 이름은 안 되겠다 싶어서 적당히 여유가 있는 이름 같아서 '세월호'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영상 참고 세월호의 의미는 말 그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의미하는 '세월(歲月)'이다. 욕심스러운 이름이 싫어서 세월호라는 이름이 된 양숭길 선장의 어선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들 기억 속에 따듯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는데, 같은 이름의 세월호가 결국 끔찍한 재앙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끔찍한 기억으로 남게된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쓴 웃음나는 내용이다.

KBS 뉴스에서도 취재하기도 했다.#

[1] 배경음악은 시카고의 If You Leave Me Now 연주곡.[2] 1박 2일 시즌1의 시청자투어 제2편 제주도행 배/비행기 결정 복불복으로도 나왔다[3] 김포국제공항 항목을 보면 인천행과 일산행 버스가 정말 많은 게 보인다.[4] 2014년 4월 17일 일본 아사히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일본에서 운용시에는 약 800여명이 정원이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