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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사상·이념2.2. 헌법2.3. 소련 최고회의와 장관회의2.4. 소련 공산당과 서기국2.5. 역대 국가수반

1. 개요[편집]

이 문서는 소련정치에 대해서 다룬다.

2. 상세[편집]

2.1. 사상·이념[편집]

  • 소련의 이념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이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우리에게 흔히 알려져 있고 또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널리 전파된 공산주의 이론의 원형이다. 이 이론은 카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이론과 블라디미르 레닌의 경험론(혁명론, 전술)을 융합함으로써 더욱 더 공격적이고 급진적으로 혁명을 달성하자는 것이 주된 논리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적에 대한 시위, 테러, 전쟁 등이 대의라는 미명 하에 정당화할 수 있으며, 초고속 공업화와 급격한 집단농장화 등도 여기에서 출발하게 된다.
  • 이것이 초극단적으로 변질된 것이 스탈린주의이지만, 사실 이는 이론적 실체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대숙청과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 등에 대해 이오시프 스탈린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논리이기 때문이다. 시기상 스탈린의 집권기 전후로 한정되어 이러한 논의되며, 그 성격은 전체주의적 성격이 짙다. '빨간 파시스트' 정도의 포지션이라고 보면 되겠다.
  • 스탈린 사망 이후에는 흐루쇼프브레즈네프가 스탈린주의를 개량해서 만든 현실사회주의가 중·후반기의 중요 이념이 되었다
  • 기본 이념 : 사회주의, 공산주의

(2) 혁명론 (초기: 세계혁명주의 → 중기: 일국사회주의)
  • 세계혁명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확산을 위해서 소련이 주도가 되어 대대적으로 지원하자는 주의이다. 소련 결성 초기에 레닌과 레프 트로츠키와 같은 소련의 권력자들은 사회주의의 확산을 위해서 전 세계의 약소국식민지를 상대로 일종의 '로비'를 했다. '돈 더 얹어줄게. 너도 사회주의를 수용하렴.' 이 지원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중화민국쑨원이었고, 이게 종국에는 잘못 되어서 중국 공산당이 급성장하였고[1] 마오쩌둥중국대륙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를 채택한 국가가 차츰 확산되었다. 이론적으로 무식한 사람들까지 뒤섞이면서 말이다.
  • 세계혁명주의는 스탈린의 집권,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숙청, 독소전쟁(대조국전쟁)의 개시로써 폐기되고, 스탈린이 주창한 일국사회주의가 전면으로 등장하였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일단 소련부터 잘하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대외적 상황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소련 자체가 너무 낙후되어 있던 터라 그들의 이념적 기반(유물론, 혁명론 등)을 들춰 보면 절대로 그들의 '혁명'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집단농장도 만들고, 곳곳에 대형공장이랑 발전소 짓고... 제2차 세계대전에 시작 직전에 접어들었을 때에는 소련은 농사나 짓던 후진국에서 탈피하여 이미 독일의 경제력을 올라서는 공업강국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또한 소련 내부 단속도 강화되어, 구성국들의 가입, 탈퇴가 자유롭지 않게 되었다. 이때부터 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궁극의 목표인 '세계 혁명'보다는 소련의 파이를 키우는 데에 더 열중하기 시작했다.

(3) 개혁·개방주의 (페레스트로이카 - 글라스노스트)
  • 양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소련을 중심으로 피 말리는 경쟁이 시작되었다.(냉전) 하지만 소련은 끝내 미국을 이길 수가 없었다. 우주경쟁에서 스푸트니크유리 가가린 등 살짝 앞섰지만, 1983년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스타워즈'[2]를 언급할 때쯤이면 이미 소련은 골로 가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과도하게 중화학공업, 군수산업, 우주산업에 집중된 경제구조에서 문제가 생긴 상황이었다. '길고 큰 전쟁'도 더 이상 없는데 저 거대한 군수공장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그러다가 레이건의 낚시질에 딸려갔고, 소련은 경제적인 능력을 싹 날려버리고 말았다. 사실 가장 결정적이었던건 1985년부터 1986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진행된 사우디와 영국간의 석유전쟁이었다. 이 시기 석유전쟁으로 인해 1985년 상반기만해도 30달러대였던 유가가 1986년 10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이후에 유가가 회복되었지만 국가재정의 상당한 부분이 줄어드는 바람에 막대한 재정적자가 유발되었다. 결국 마지막 소련의 집권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래서 등장한 것이 개혁·개방이다. 개혁·개방주의는 순수계획경제를 포기하고 시장경제의 부분적 도입을 하고, 전 세계에 대한 문호를 개방하며, 브레즈네프 때부터 나타난 무능한 공산귀족(노멘클라투라)들을 제거했다.

(4) 기타

2.2. 헌법[편집]

소련 헌법은 총 4개가 있다. 이 중 제헌 헌법은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하기 전인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시절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철의 장막을 규정한 헌법은 2차 개정 헌법(스탈린 헌법)부터이다.

헌법 전문(前文)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을 필두로 하는 공산당의 지도 아래 러시아의 노동자와 농민에 의해 완수된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은 자본가와 지주의 권력을 타도하고 억압의 사슬을 분쇄하여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확립하고 새로운 유형의 국가, 즉 혁명적인 업적을 수확하며 사회주의공산주의를 건설하는 기본적인 도구인 소비에트의 국가를 창건하였다.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전 세계적 역사적인 인간성의 전환은 시작되었다... (후략)
소련 헌법(3차 개정) 전문(前文)

소련 헌법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기본으로 한다.[3] 각 개정 헌법 간 차이가 있다면, 초기 헌법들은 '세계혁명주의'에 규정했으나 2차 개정 헌법부터는 '일국사회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는 소련 구성국들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웠지만, 2차 개정 헌법(스탈린 헌법)에서는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겠지만 나갈 땐 아니란다로 바뀐다는 점.[4] 이제 소련에는 스탈린의 파놉티콘이 건설된다.

소련 최고회의에서의 의결에 의해서만 개헌이 가능하다.

2.3. 소련 최고회의와 장관회의[편집]

각각 국회정부에 해당한다. 소련 최고회의[5]소련 장관회의 항목 참조.

2.4. 소련 공산당과 서기국[편집]

소련은 소련 공산당[6]의 일당독재체제였기 때문에, 국가 권력기구와 별도로 당내 권력이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소련 공산당의 최고의결기관은 소련공산당 대회(Съезд КПСС/Congress of the CPSU)이다. 여기서는 당의 기본 노선을 설정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Центральный Комитет КПСС/Central Committee of the CPSU) 위원과 중앙위원 후보를 선출한다. 당 대회는 1년에 4회 정도 개회되며, 개회되지 않을 때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상무를 전담한다. 중앙위원의 임기는 5년이다.

당 중앙위원회는 보다 실권을 가진 인원들로 압축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7]을 구성하며, 이 정치국의 실제적인 업무를 전담할 추리고 추려 10여 명의 서기들로 구성된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국(Секретариат ЦК КПСС)이 구성된다. 한마디로 이 서기국의 수장인 서기장당연 소련 내 서열 1위라고 할 수 있는 것. 이런 소련의 정치 구조를 벤치마킹이라고 쓰고 '그냥 베낀'이라고 읽는중국이나 북한 같은 국가의 시스템도 사실 똑같다.

대강 당 중앙위원회 위원 이상의 실세들이 소련의 국가 권력기구인 소련 최고회의나 장관회의의 직책을 알아서 권력순대로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게 그거다. 브레즈네프 시대부터는 서기장이 최고회의장을 겸임했다. 그 이전인 스탈린 시대나 흐루쇼프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만일 소련 최고회의장인데도 이 정치국에 속한 인물이 아닌 경우, 권력은 한없이 0%에 수렴한다.

2.5. 역대 국가수반[편집]

명목상 통치자를 제외한, 실질적 통치자들의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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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쑨원과 중국 국민당 입장에서는 잘못된 거겠지만,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호재다.[2] 우주급 규모로 전쟁을 하는 개념[3] 오늘날 중국 헌법에도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명시했다. 다만 조금 추가된 게 있다면, 중국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사상'이라는 것.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대신 '주체사상'을 명시했다.[4] 그러나 들어간 것도 마음대로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940년에 편입된 발트 3국.[5] 최고 평의회로 번역되기도 한다. 평의회란 노동자, 농민, 병사들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자치회의를 뜻한다. 평의회를 소비에트라고 부르며, 이러한 평의회의 연방 체제가 바로 소련인 것이다.[6] 소련(СССР/USSR)이라는 말을 붙여야 한다. 소련을 구성하는 각 공화국들도 각자 공산당을 가졌다. 즉, 소련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각 공화국의 공산당과 구분할 수 없다.[7] 원래는 '상임이사회' 정도의 뜻인 'Президиум(Presidium)'를 썼으나, 1966년부터 정치국(Политическое бюро, Полибюро)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