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新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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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신라 국호 | ||||
신라(新羅) 나라 이름의 의미는 '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두 글자를 취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 말 뜻은 다음과 같이 풀이된다.
다만 실제로는 '신라'라는 이름은 지증왕 때 뜻풀이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고구려와 함께 '신라'가 전진 시기인 377년과 381년에 등장해 <자치통감> 등에서 기록되어 있고, 당대 사료인 광개토왕릉비에도 신라가 이미 등장하고 있다. 이 의미 풀이는 원래 존재하던 고유어를 한자로 표기하려는 과정에서 음도 의미도 적절한 한자를 찾아서 유교적인 해석을 끼워 맞춘 것이며, 이전부터 사용되던 '신라'라는 이름을 유일한 공식 명칭으로 규정한 것으로 추정되며, 지증왕 대에 국호를 통일하기 이전까지는 사로국, 사라 등 다른 표기를 혼용했다. 신라 이전에 불렸던 이름들은 시라(尸羅), 사라(斯羅), 시림(始林), 유계(有鷄), 계괴(鷄怪), 계림(鷄林)[35], 서야벌(徐耶伐), 서라벌(徐羅伐), 유잠국(有蠶國) 등으로 불렸는데, 이들 모두 가운데 일부가 누에치기와 관련된 이름들이라는 특이점이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민정문서에서도 유달리 뽕나무 재배 수량이 많아 신라가 전통적으로 누에치기와 관련이 컸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닭에 관한 이름도 많은데 실제로 신라 건국설화에는 계룡이 등장한다. 불교계 일부에서는 신라가 계(戒)를 나타내는 시라(Sila)에서, 서라벌을 부처님 당시 코살라국의 수도였던 슈라바스티(Sravasti)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특성상 어느것이 맞다 아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병도나 환빠들이 그렇듯 성운의 유사성을 가지고 하는 주장은 딱히 근거랄게 없으며 억지스러운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근거라고 내미는 것이 도올 김용옥의 생각이다. 신라의 또 다른 이름으로 걸의식국(乞衣食國)이 있다는 정보도 인터넷상에서 많이 떠도는데 이는 중국의 기담집 유양잡조(酉陽雜俎]) 방이 설화의 한 구절을 띄어쓰기가 없는 한문을 제대로 끊어 해석하지 않고 오역한 것이다. '(방이가) 옷과 음식을 빌어먹고 살았는데(乞衣食), 나라 사람들(國人) 중에 남는 땅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에서 걸의식과 바로 뒤에 나오는 국인의 국을 '걸의식국'이란 한 단어로 오역한 것이다. | ||||
신뤄(Xīnluó) | ||||
시라기(しらぎ) 혹은 신라(しんら) 초기부터 일본과 거리가 가깝고 서로 많이 얽혔던 관계라 백제를 쿠다라로 읽는 것과 같이 신라를 읽는 법이 따로 존재한다. 시라기는 일본서기의 훈을 따른 것이다. 때론 しんら, 즉 한국어 독음과 유사한 '신라'로 읽기도 하는데 이건 한자 新羅를 현대 일본어식으로 음독한 것으로 다만 한국어에서 신라를 읽을 때는 자음동화 현상으로 실제로는 저절로 '실라'라고 읽게 되지만 일본어로 しんら를 읽을 때는 실라가 아닌 '신'라 그대로 읽는다. 신라에 대해서는 新羅라 적고, "シラギ(< シラキ)"(시라기/시라키)로 읽는데, 이건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신라의 본래 이름인 斯羅를 그대로 일본식으로 읽은 シラ에 キ(城의 뜻)를 더한 것이다. 마쿠라고토바에서는 "栲衾新羅(タクフスマシラキ)"(타쿠후스마시라키)라고도 하는데, 이는 특산물인 종이의 원료 "닥(タク(타쿠))"과 "シラ"에서 연상되는 백색의 이미지가 이불(フスマ(후스마))과 연상되어 이루어진 명칭이다. | ||||
알실라(Alshillaالسيلى)[아랍어] | ||||
SELLA[37] | ||||
구구탁예설라(矩矩托禮說羅) |
서열 | 관직명 | 4두품 | 중시령 | 시랑, 경 | 도독 | 군 태수 | 현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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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 촬영된 천마총 기마 인물도와 서조도(瑞鳥圖) |
사진의 출처는 histopia, 사진의 원출처는 일본 정창원 홈페이지 |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
절에서 박탁(餺飩, 밀떡 종류의 음식)과 병식(餠食, 쌀, 보리, 떡 종류의 음식) 등을 마련하여 8월 15일 명절을 지냈다. 이 명절은 여러 다른 나라에는 없고 오직 신라국에만 유독 이 명절이 있다. 노승 등이 말하기를 “신라국이 발해국과 서로 싸웠을 때 이날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이 날을 명절로 삼아서 음악과 춤을 추며 즐겼다. 이 행사는 오래도록 이어져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온갖 음식을 마련하고 가무와 음악을 연주하며 밤낮으로 이어져 3일 만에 끝이 난다. 지금 이 산원에서도 고국을 그리워하며 오늘 명절을 지냈다. 그 발해는 신라에 토벌되어 겨우 1천명이 북쪽으로 도망갔다가 후에 되돌아와 옛날대로 나라를 세웠다. 지금 발해국이라 부르는 나라가 바로 그것이다.입당구법순례행기 2권 개성4년 8월 15일
부대명칭 | 옷깃 상징색상 | 출신지 | 창설 시기 |
녹금서당(綠衿誓幢) | 녹자(綠紫)색 | ||
백금서당(白衿誓幢) | 백청(白靑)색 | ||
자금서당(紫衿誓幢) | 자록(紫綠)색 | 신라 | 문무왕 |
황금서당(黃衿誓幢) | 황적(黃赤)색 | ||
흑금서당(黑衿誓幢) | 흑적(黑赤)색 | 신문왕 | |
벽금서당(碧衿誓幢) | 벽황(碧黃)색 | 보덕국(고구려계) | 신문왕 |
적금서당(赤衿誓幢) | 적흑(赤黑)색 | 보덕국(고구려계) | 신문왕 |
청금서당(靑衿誓幢) | 청백(靑白)색 | 백제 | 신문왕 |
비금서당(緋衿誓幢) | 신라 |
주둔한 주 | 10정 부대명 | 옷깃 상징색상 | 부대 주둔지의 현재 지명 | 만보당 부대의 상징색 |
남천정(南川停) | - | 황흑·황록(黃黑黃綠) | ||
한주 | 골내근정(骨乃斤停) | 황색(黃) | 황흑·황록(黃黑黃綠) | |
벌력천정(伐力川停) | - | 흑록·흑백(黑綠黑白) | ||
이화혜정(伊火兮停) | 녹색(綠) | 청흑·청적(靑黑靑赤) | ||
고량부리정(古良夫里停) | - | 황자·황청(黃紫黃靑) | ||
거사물정(居斯勿停) | 청색(靑) | - | ||
미다부리정(未多夫里停) | 흑색(黑) | 백적·백황(白赤白黃) | ||
음리화정(音里火停) | - | 청황·청자(靑黃靑紫) | ||
소삼정(召參停) | - | 적황·적록(赤黃赤綠) | ||
삼량화정(三良火停) | - | 적청·적백(赤靑赤白) |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삼국(三國)의 시조(始祖)의 묘(廟)를 세우는데 마땅히 그 도읍한 데에 세울 것이니, 신라는 경주(慶州)이겠고, 백제는 전주(全州)이겠으나, 고구려는 그 도읍한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고해 보면 알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도읍한 데에 세우지는 못하더라도 각기 그 나라에 세운다면 될 것이다."
하였다. 이조 판서 허조(許稠)가 계하기를,
"제사 지내는 것은 공을 보답하는 것입니다. 우리 왕조(王朝)의 전장(典章)·문물(文物)은 신라의 제도를 증감(增減)하였으니, 다만 신라 시조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삼국이 정립(鼎立) 대치(對峙)하여 서로 막상막하(莫上莫下)였으니, 이것을 버리고 저것만 취할 수는 없다."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9년 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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