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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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원인3. 조약 서명국
3.1. 열강 대표3.2. 청나라 대표
4. 내용5. 결과6. 여담

1. 개요[편집]

한자: 北京議定書(辛丑條約)
일어: 北京議定書(ぺきんぎていしょ)、辛丑和約(しんちゅうわやく)

신축 각국 화약, 베이징 의정서, 의화단 의정서로도 불린다. 1901년 9월 7일 체결된, 청과 열강 11개국(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 독일 제국, 미국, 러시아 제국,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스페인, 벨기에, 네덜란드) 사이의 조약으로, 베이징 조약이 그냥 커피라면 이쪽은 TOP다.

2. 원인[편집]

1899년 청나라에서 부청멸양(扶淸滅洋:을 도와서() 이들을 하자)[1]을 슬로건으로 앞세운 의화단 운동이 일어난다. 이러자 실권자인 서태후는 의화단 운동을 이용해서 서양 세력들을 혼내줄 계획을 세운다.[2]아니 이것들이 양무운동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렸네. 그리고 곧 선전포고를 한다! 그에 대항하여 서양은 8개국 연합군을 결성하여 청나라 군대와 의화단을 개박살내고 베이징을 점령한다.[3]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청나라에서 리훙장아이신기오로 이쾅이 전권대표로 나서서 서양의 요구대로 체결한게 바로 베이징 의정서이다. 이 조약으로 청나라는 사실상 서구열강들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껍데기만 남게 된다.

3. 조약 서명국[편집]

3.1. 열강 대표[편집]

3.2. 청나라 대표[편집]

4. 내용[편집]

  1. 배상금 원금 4억 5천만냥, 연리 4%로 1902년부터 1940년까지 39년간에 걸쳐 총 9억 8200여만 량을 지불할 것.
  2. 의화단 운동의 주모자를 처벌할 것.
  3. 외국군의 베이징 주둔을 허가할 것.
  4. 대고포대를 비롯하여 북경에서 해안가에 이르는 통로에 방해가 되는 각 포대를 모두 철거할 것.
  5. 베이징과 산해관 에 걸친 철도연변의 주요 지역 12곳에 열강 군대가 주둔하도록 할 것.
  6. 청나라는 총리아문 대신 외무부를 설치해 6부의 위에 둘 것.

5. 결과[편집]

청나라의 시한부 인생 스타트. 청은 망해가기 시작하고 결국 1911년 신해혁명으로 뒤집어진다.

6. 여담[편집]

체결에 1년 가량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자기네들이 보다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였다고.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1] 조선의 동학 농민 운동때도 척양척왜 구호를 썼다.[2] 당시 광서제는 서양세력과의 타협을 주장했으나 서태후에 묵살당한다.[3] 서양은 아니지만 일본도 있다.어차피 중국어에서 동양은 일본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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