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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沈守峰
본명
심민경 (沈玟卿)[1]
출생
혈액형
가족
아버지 심재덕, 어머니 장형복의 무남독녀[3]
직업
가수, 아티스트
자녀
자녀 슬하 2남 1녀[4]
소속사
라이트웨이브 엔터테인먼트
데뷔
1978년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
종교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데뷔하기까지2.2. 운명의 소용돌이 10.26 사건과 그 이후
3. 음악성4. 매체에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 트로트와 발라드 그 중간의 간극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메운 트롯발라드의 선구자.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데뷔하기까지[편집]

1955년 7월 11일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5]

그녀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음악을 했던 집안이었고, 아버지, 큰아버지, 고모 등도 모두 음악을 했을 정도로 후덜덜한 음악가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의 환경 속에서 그녀도 음악인의 삶을 걷게 된다. 주 전공은 재즈였는데, 최고의 음악가들만 설수있다는 미8군 무대에 로큰롤 밴드 "논스톱"의 드러머로 서기도 했었다. 그녀를 트로트 가수로만 아는 사람들은 그녀가 드럼을 치는 모습에 깜놀하기도 했는데 이런 뒷배경이 있었기 때문. '드럼을 치는 여성 보컬리스트'로 카펜터즈의 캐런 카펜터와 함께 이야기되기도 한다.

한편, 심수봉은 당초 서산초등학교를 다녔으나, 그녀의 어머니가 이혼[6] 후 이사하게 되자, 어머니를 따라 2학년 때 서울 은로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후, 영등포에 있던 여중에 입학했으나 입원 치료를 위해 또다시 2년 휴학을 했다. 뒷날 인천 인화여자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만 19세인 1974년에 고교 졸업을 했다.

1975년박정희가 청와대 연회에 심수봉을 불러서 노래를 시킨 일이 계기가 되어 음반을 내게 된다. 심수봉은 음악적인 재능이 매우 뛰어나서 여러 악기에 능통했으며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일을 했는데, 청와대 연회는 이러한 일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심수봉은 그 연회에서 나훈아의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을 가수 나훈아 본인[7]이 듣고 감탄하여 음반작업을 주선해준다. 이듬해인 1975년에 신세계 레코드를 통한 음반 작업을 진행하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결국 음반 작업은 취소되었다.

한편, 대학교육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졌던 심수봉은 같은 해 만 20세의 나이로 대입준비를 하여 숙명여자대학교 작곡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결국 후기 대학이었던 명지대학교경영학과로 입학했다.

1978년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 MBC 대학가요제에 참여했다.당시 영상 보기[8] 당시 대부분의 대학가요제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의 음악적 성향이 포크 아니면 그룹사운드이던 시절에 심수봉은 자신의 주 전공인 재즈가 아닌 트로트로 도전장을 던졌으나 상을 받지는 못했다.[9] 그러나 그녀는 이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노래가 히트하면서 가수로서 입지를 굳히게 되었으니 바로 그 노래가 그 유명한 "그때 그 사람"이다. 여담이지만 이때 그녀와 겨뤘던 출연자들이 후덜덜한데 임백천, 노사연, 배철수 등이다. 이들은 대상은 못 탔으나 다들 이후에 가수로 데뷔했다(...)[10]
"이 바닥이 어떤 곳인줄 알고 왔느냐.. 이 험한 곳에서 잘 버텨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가수 나훈아. 심수봉이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노래가 인기를 끌며 정식으로 데뷔하자 건넨 말.

그때 그 사람이 히트를 하면서 그녀는 인기 연예인으로 발돋움했고 박정희도 그녀를 좋아해서 궁정동 안가에서 열던 술자리에 그녀를 불렀다.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박 대통령이 심수봉이 못 생겼다며 병풍 뒤에서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 허나 이후 본인이 90년대 초반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 했을 때 허무맹랑한 소문이라고 직접 해명하였다. 하지만 박정희와 만난 뒤부터, 심수봉은 온갖 시련에 휩싸인다.#

2.2. 운명의 소용돌이 10.26 사건과 그 이후[편집]

운명의 1979년 10월 26일, 심수봉은 모델 신재순과 함께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박정희의 술자리에 불려갔다. 이날도 평소와 별 다를 게 없었을 술자리였을지도 몰랐으나... 김재규차지철과 박정희를 살해 하면서 엄청난 사태가 일어났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41340816.1.jpg

10.26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심수봉(모자를 쓴 여자). 오른쪽은 함께 증인으로 출두한 신재순.

위의 사진과 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뒷모습 사진. 신재순이 심수봉보다 키가 확연히 큰 것을 알 수 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합동수사본부가 박정희 암살 사건을 강도 높게 조사하면서 그녀도 조사를 받았고 현장에 있던 것 뿐 이었던지라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시대는 그녀를 파란으로 몰고 갔다. 방송 활동이 금지되고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던 그녀는 잠시 영화배우로 활동해 "아낌없이 바쳤는데"라는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기도 했지만 가수로서는 활동할 수 없었다.

1984년이 돼서야 방송 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그녀의 또 다른 대표 곡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가 히트 치면서 다시 재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발표한 《무궁화》가 국민을 선동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11] 방송된 지 단 하룻 만에 금지곡이 되는 사태를 겪기도 했다. 1987년에는 "사랑밖엔 난 몰라"가 히트했고 이후 꾸준히 콘서트와 음반 발매를 하면서 2011년까지 가수로서 활동하였다.

1993년 SBS 주병진 쇼에 출연해 암살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얘기한 적 있다. 영상을 보면, 박정희에 대해서는 좋게 묘사하지만 본인이 이래저래 수모를 겪은 시절의 대통령인 전두환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언급을 강하게 하는 편이다.[12]
심수봉 주병진쇼 출연

3. 음악성[편집]


  • Mnet Legend 100-보컬_Legend 심수봉
서정적인 가사에 더해진 애절한 단조의 창법.
흔들림 없이 선율을 장악하는 비음 섞인 떨림. 구슬픔이 담겨있는 애진한 음색.
한국적인 한이 깊이 담겨있는 목소리, 최고의 여성 트로트 싱어송라이터, Legend 심수봉

비음을 잘 쓰는 가수로 유명하다.

피아노 연주 실력이 상당하며, 방송에서도 곧잘 솜씨를 선보이곤 했다.

트로트 가수이지만 보기 드물게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가지고 있는 가수로 그녀의 히트곡들은 거의 대부분 그녀가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들이다. 보통 유명한 트로트 가수더라도 자기 스스로가 곡을 써서 부르기 보다는 유명 작곡가의 곡을 받아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심수봉은 상술됐다시피 이미 악기를 다루는 능력부터 먼치킨스러우니 자기 스스로가 곡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된다. 그러다보니 심수봉의 곡은 단순 트로트 곡이 아닌 것이다. 여타 트로트 가수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아티스트'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심수봉에 비견할만한 남자 트로트 싱어송라이터로는 설운도가 있다.)

11집에 수록된 '여자라서 웃어요'는 에픽하이와 같이 작업하기도 했다. 심수봉의 노래와 랩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편.

대표곡으로는《그때 그 사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미워요》, 《비나리》, 《무궁화》 등이 있다. 후배가수들도 심수봉의 곡을 많이 리메이크 하지만, 아무리 다른 가수가 리메이크 해도 심수봉의 원곡을 뛰어넘는 것은 무리라는데에 모두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또한 리메이크도 간혹 하는데, 《백만송이 장미》는 러시아 가요[13]번안하여 히트를 쳤고, 조성모의 히트곡인《후회》도 심수봉 특유의 스타일로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10.26 사건 때 박정희와 술자리를 가졌던 이유로 80년대 정치적으로 탄압받으면서 그녀의 인생은 파란으로 점철되었고 그런 이유인지 그녀의 노래들은 애절하기 이를데 없는 노래들이 많다. 이런 이유인지 그녀의 애절한 노래들은 나올 때마다 히트하면서 그녀를 국민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불후의 명곡 2 첫방송때 첫번째 전설로 등장했다.[14] 당시 이창민, 종현, 예성, 효린, 양요섭, 아이유리메이크에 도전했다.

이후 7년 동안 음반 활동을 간간히 하다가 2018 (내삶은 빛나기 시작했다)라는 신곡 앨범을 냈다. 그 앨범 중 "'엄마 사랑해요'''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을 발표하고 1년 후 심수봉의 친모가 돌아가셨다. 그 외 (알이랑 With god), (Love of to night), (울어라/헤세드), (아빠) 라는 곡을 선사하여 LP판은 333개 한정으로 신곡을 발매하였다.

2019년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 성탄절 특집에 출연하였고 여전히 고운 목소리를 이용해 명불허전의 공연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트로트 예능에서 많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많은 원로 트로트 가수들이 트로트 예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대조되는 부분.
심수봉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유희열의 스케치북 / 2019. 12. 20.)

위 영상에서 유희열이 얘기했듯이 매체에서 보기 힘든 분인데 2020년도 6월달 개인방송 플랫폼인 트위치에서 당시 어버이날 특집으로 스트리머들이 서스스(서울 스트리밍 스테이션)채널을 통해 특별 무대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깜짝등장으로 시청자 모두를 놀래켰으며 노래는 '백만송이 장미'와 '엄마 사랑해요'를 라이브로 불렀다. 아래 영상에서 심수봉님과 같이 노래부르는 남자는 스트리머 조매력이며 뒤에 같이 연주한 세션도 전부 스트리머이다.(피아노 니네언니, 기타 쓰라쓰라, 드럼 뷘뷘, 베이스 장베, 신디사이저 숑아)

4. 매체에서[편집]

신재순과 더불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인 10.26 사건의 목격자이자 증인이다 보니 현대사를 다룬 시대극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단역 배우가 맡는 경우가 많다.

[1] 가수로써 성공하려면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권유로 어릴 때 스님이 지어준 법명인 심수봉으로 예명을 정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대학가요제 때에는 심민경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므로 데뷔 후에 예명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2] 1950년 8월 24일 출생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건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다. 무엇보다 이것이 맞다면 적어도 1949년 이전에 심수봉의 부모가 만났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 인터뷰에서는 심수봉의 모친이 1.4 후퇴 즉, 1951년에야 월남했다고 나온다. 월남하자마자 만나서 임신했더라도 최소한 1952년 생이다. 또한 2011년에 85세이던 모친이 26세 때 부친을 처음 만났다고 증언했다. 이것을 계산하면 첫 만남 시기가 빨라도 1952년이다. 그리고 심수봉은 1978년 대학가요제1979년 10.26 사건 당시에 대학생이었다.[3] 아버지는 심수봉 출생 직후에 사망했고, 어머니가 재혼을 해 이부 남동생과 (이부)여동생이 각각 하나 씩 있다.[4] 이 중 차남은 친자가 아닌 재혼 이후에 얻은 남편과 (남편의) 전처 사이에서 얻은 아들이다. 딸의 이름은 심민경으로 본인과 동명이인이다.[5] 심수봉의 모친이 1.4 후퇴 당시 월남하여 이후 충남에서 부친을 만나게 되었다.[6] 심수봉의 생부 사망 후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 재혼을 하였었다. 이것은 새로 한 결혼의 파경.[7] 나훈아 역시 연회에 참석했음.[8] 단, 이 동영상의 음향은 왼쪽만 재생되니 감상시 참고하시기 바람. 좋은 음질은 여기 에서. 그러나 동영상은 나오지 않음. 사족으로, 이 동영상의 MC이수만임예진이다.[9] 심사위원이 좋은 점수를 안 준 이유는 '너무 프로스러워서'였다. 지금이야 이해하기 힘든 평이지만 당시 대학가요제의 심사기준은 대학생의 풋풋함이었기 때문에 심수봉의 세련된 음악과는 상당히 간극이 컸던게 사실이다. 음악을 들어보면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빅밴드를 압도할 뿐 아니라 밴드는 화성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굴욕을 보인다.[10] 그런데 정작 대상은 이들중에서 아무도 못 탔다. 대상팀은 부산대학교 중창단 썰물이 수상했고, 노사연이 금상, 배철수가 소속된 그룹 활주로가 은상.[11] 실제로는 본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곡이다.[12] 영상에 MISS 신으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은 신재순.[13] 사실 라트비아 가요 《마라가 준 삶》이다. 그게 러시아에서 가요로 번안되고, 심수봉이 다시 리메이크한 것.[14] 이후 97회에서 한번 더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