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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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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고의 원인3. 화재 진압4. 피해가 급증한 이유5. 잊지 말아야 할 사실6. 사고 이후7.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

1. 개요[편집]

나무파일:external/www.civiltech.co.kr/sea_land_01.jpg

1999년 6월 30일 0시 30분경에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1] 서신면 백미리의 '씨랜드'라는 청소년 수련원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고.
야외 수영장 좌측에 있는 터가 화재가 일어났던 장소였다.
당시 MBC뉴스
국가기록원 문서

화재사건 당시 씨랜드에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소망유치원 원생 42명, 안양 예그린유치원 원생 65명, 서울 공릉미술학원 원생 132명, 부천 열린유치원[2] 원생 99명, 화성 마도초등학교 학생 42명 등 497명의 어린이와 인솔교사 47명[3] 등 모두 544명이 있었으며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하여 사망자 수 23명[4]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희생자를 낳았고 18명의 소망유치원생도 포함되어 있었다.[5]

2. 사고의 원인[편집]

일단 조사팀은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 불이었다고 발표했으며 그게 잘못 엎어지면서 가연성 소재로 된 건물 내로 불길이 번지고 그와 동시에 매캐한 독가스를 내뿜으면서 피해가 커졌다고는 했다. 이후 법원 판결에서도 모기향이 화재의 원인으로 판단되었다[6]

그 후에 불이 붙은 모기향으로 이래저래 실험을 한 결과 모기향으로 불이 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송 실험으로 입증했다. 전부터 전기가 들어왔다, 안 들어왔다 했다는 목격 증언으로 보아 전기 누전을 화재의 원인으로 보는 게 사실에 가까울 거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라서 피해자들의 부모들이 분노해서 조사팀에게 정확한 조사를 요구했다.[7]

3. 화재 진압[편집]

특히 많은 희생자가 난 이유 가운데서 가장 큰 원인은 신고가 늦었다는 점. 오산소방서에 신고가 접수된 건 사고 1시간 후였고 게다가 소방서에서 씨랜드까지의 거리는 70km나 돼서[8] 고속도로에서 질주를 해도 40분은 잡고 가야 하는 긴 시간이 걸렸다. 또한 고속도로처럼 선형 좋은 도로도 40분인데, 사고가 난 곳은 농어촌지역 산길에다가 선형도 안 좋았으니 제 아무리 소방차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고 새벽이라 교통량도 많지 않았다 하더라도 가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는 건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고 화재 발생과 동시에 소방차가 출동했다고 쳐도 결국 화재 발생 후 40분 이상 지나고 나서야 도착하게 되는데 이 쯤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9] 관련기사 결국 동원된 소방 인력만 553명[10]에 소방차 등의 차량도 70대가 넘게 동원됐지만 끝내 어린이 19명을 포함한 23명은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4. 피해가 급증한 이유[편집]

이렇게 된 이유는 그 18명의 소망유치원생들은 씨랜드 3층의 한 개 방에 다 같이 자고 있었는데, 불길이 급격히 번진 데다 인솔교사들이 무책임하게 대응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게, 해당 유치원의 인솔교사들은 그 유치원생들이 자는 반대편 방에서 투숙중이었다는 것이며 최초 발화지점도 거기였고 심지어 비치된 소화기는 쓰지도 못했고 객실 내 화재경보기마저 고장나 있었던 터라 어린이들은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희생되었다.

아이들이 몰려 자고 있었던 방에 인솔 교사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이들을 대부분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교사가 같이 자고 있던 방 아이들은 무사히 빠져 나왔을 수 있었겠지만 인솔 교사의 대부분은 밖에서 불을 피워두고 삼겹살과 "소주"를 먹고있었던 터라 불이 났어도 술에 취해 대부분의 교사들이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사실이다. 이 때 술을 마시지 않았던 교사 한 명과 이벤트강사 세 명이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가 변을 당한 비극도 있었다.

그리고 3층에서 투숙했던 소망유치원 외에도 2층에서 투숙했던 부천의 다른 유치원에서도 유치원생 1명이 희생되었다.

게다가, 수련원 측은 운영 과정에서 시공 및 감리회사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먹였으며 화성군 공무원들은 이를 묵인, 비호하였고, 충격적이게도 화성군수(!)가 불법 운영에 개입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뇌물을 먹였으니 씨랜드의 건물은 불법적인 구조로 운영을 할 수 있었고, 안전검사 그런거 다 이거 먹는 거임?하고 무시할 수 있었다. 콘크리트 건물 1층 위로 52개의 컨테이너로 가건물을 조합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건설비와 운영비 절감을 위해 가연성 소재로 인테리어를 했다. 이러니 불이 나면 쉽게 번지고 이 과정에서 유독가스까지 추가로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법 구조로 인해 불이 나도 소방차가 밖에서 물을 뿌리더라도 건물 안으로 제대로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덧붙여서 컨테이너로 만든 건물이었던데다, 화재로 컨테이너 자체가 많이 약해져 있어서 물이 있어도 물을 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11] 그리고 위에서 기술했었지만, 소화기나 화재경보기 등의 방화(防火)시설 점검도 막장 of 막장. 애초에 뇌물을 먹였는데 검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5. 잊지 말아야 할 사실[편집]

피해자들의 상당수가 체격이 작고 골격이 아직 굳지 않은 유아원생들이라서 거센 불길로 인해 시신의 상태가 안 좋아 신원을 확인하는데 5일이나 걸렸다. 결국 어른들의 욕심으로 인한 인재로 이렇게 어린 새싹들을 하늘나라로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반면에 소망유치원생이 묵었던 301호의 맞은편에서 자고 있던 마도초등학교 학생들이 대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묵고 있던 두개의 방에 각각 한명씩 인솔교사가 같이 묵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솔교사는 불이 나자 침착하게 학생들을 대피시킨 뒤 다시 들어가 다른 어린이를 구조한 덕분에 몇 명의 어린이가 더 목숨을 건졌다. 후에 두 인솔교사는 탈진해 쓰러졌고, 소방관들이 한명을 구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김영재 교사(당시 38세)는 이미 숨을 거두었다.

어쨌든 이 두 교사가 아니었으면 씨랜드 참사는 23명 이상의 피해로 번질 수 있었다.[12] 그러니 소망 유치원의 교사들은 이와 비교돼서 가루가 되도록 또 까였다... 아니, 까여야 마땅하다. 관련기사

이 외에도 당시 래프팅 강사로 투입된 이벤트업체 강사 서태용(당시 21세), 채덕윤(당시 26세), 박지현(당시 23세) 3명도 아이들을 구하러 갔다가 모두 산화했다.

당시 화재가 다 진압되고 소방관들이 유치원 아이들이 갇혔던 방에 도끼로 문을 깨고 강제로 들어갔을때, 문에는 손톱으로 긁은 자국이 수없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소름끼치는 대목. 이에 대해 소방관은 유치원생인 어린이들이 느꼈을 공포를 자신도 느꼈다고 했다.

6. 사고 이후[편집]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씨랜드 측과 화성군 사이에서 온갖 비리 사실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전국적으로 여론이 폭발했다. 사고 어린이들의 부모들은 2001년 3월 23일 화성시에서[13] 씨랜드청소년수련의집 화재사고 사상자 보상금 지급 조례가 통과되면서 보상금을 받게 되었지만 어린이들의 생명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갈음할 수 없었다. 여자하키 종목으로 올림픽에서 은메달, 아시안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까지 땄었던 김순덕 전 여자 하키 국가대표 선수는 이 사고로 아들을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후 다시 화재 사고가 나자, 대한민국에 환멸을 느껴 그동안 받은 훈장을 모두 정부에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영구이민을 했다.

그외에도 사고자들의 부모가 생업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했다고 한다. 한편, 18명의 희생자 중 13명의 가족들은 사고 이후 희생된 아이들의 동생을 낳았다.

희생된 어린이들은 그해 8월 7일에 올림픽공원에서 합동 영결식을 치뤘고, 다음날 아침에 사고 현장 반대 방향인 동해에 유골이 뿌려졌다.[14] #

해당 공무원은 물론 화성군수까지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고[15], 사건 당일 술을 처묵처묵했던 인솔 교사들도 모두 구속되었다.

그러나 정작 최고 책임자인 김일수 전 화성군수는 무혐의로 풀려난 뒤 지금은 지역유지로 잘 산다. 씨랜드 참사 당시 화성군수의 2005년 인터뷰. 잘못했다는 말은 아예 없다. 이 자는 방사능 폐기물만도 못하다. 그리고 한 때 경찰에서 몇번이나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지만 모두 기각당했으며, 무서운 것은 화성군수가 조사받던 중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하자 화성군수님을 보호하겠다는 화성농촌문제 연구회와 지역 4H 소속원들이 주축이 된 지지자 300명이 몰려가서 병실을 지키면서 기자들을 내쳤다. 그러면서 "씨랜드 사건이 비극이기는 하지만 군수님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화성 동부(병점, 동탄, 봉담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고 소외되어 있는 화성 서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주목이 덜 되는 편이다. 씨랜드 참사를 일으킨 군수를 지키는 용감한(?) 청년들에 관한 기사

이 사건 관련해서는 인허가를 담당했던 공무원 이모씨도 고초를 겪었다. 당초 씨랜드 인허가신청을 접수한 담당 공무원 이모씨는 실사결과 컨테이너를 얹은 부실하고 취약한 형태의 건물이라 허가를 내주지 않았는데 이후 씨랜드쪽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 시달린 것. 이모씨의 상급자들도 빨리 허가를 내주라고 압력을 가했고 나중에는 조폭까지 동원해서 협박했다고 한다. 또한 씨랜드 회장인 박모씨는 니까짓게 군수도 아닌데 시키는대로 하지 말이 많냐고 폭언을 행사하는 바람에 결국 이모씨는 다른 민원부서로 옮겨야 했고 허가는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해당 공무원은 이러한 전말을 비망록에 남겼으며, 나중에 씨랜드 사건이 터지고 수사를 받으면서 이 비망록이 관계자 처벌에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결국 공무원 상급자들이 그건으로 줄줄이 사법처리를 받게 되자 조직내에서 내부고발자라는 차가운 냉대을 받으며 그 다음해에 쓸쓸하게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관련기사) 말이 명예퇴직이지 거의 해임한 것과 다름없다.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정신 못 차린 정부기관에서는 끝내 내장재 관련 법안에 손을 대지 않았고, 결국 이로 인해서 4년 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참사가 발생하자마자 그제서야 건물 및 차량의 내장재가 불연재 또는 난연재로 바뀌게 되었다.[16] 만약에 정부가 내장재 관련 법안에 손을 대는 행위로 외양간이라도 고쳤다면 많은 생명을 잃는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편 이 참사로 인해 7살 쌍둥이 딸을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 대책회장 고석 씨는 2006년 <안전교육이 유아의 안전능력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해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한국어린이안전재단 CEO 인사말) 그 뒤 안전문화 유공자로 인정받아 2015년 국민포장을 받았다.
2011년 8월 17일 씨랜드 부지 옆에 불법 휴양시설이 운영중이라는 기사가 나왔는데 소유주가 화재사건 당시 씨랜드 건물 소유주이자 시설 운영자와 동일인으로 드러났다. 그냥 인간 쓰레기로 봐도 무방할 듯 하며 이후 해당 시설들은 철거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사고로 인해 어린학생들이 사망하는 사고는 1년이 지나고도 (2000년 추풍령 경부고속도로 연쇄추돌 참사), 14년이 지나고도 (2013년 태안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 15년이 지나고서도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계속되었다.

7. 대중문화계에 미친 영향[편집]

H.O.T의 4집 타이틀곡 'I Yah!'가 이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노래는 이후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사고 때 재조명 되었다. 1999년 콘서트 때는 오케스트라와 밴드와 합동공연으로 마지막 곡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초반 인트로에 이 사건 관련 뉴스 클립들이 쓰였다.

2001년 4월 11일에 발매된 자전거 탄 풍경의 1집 앨범 중 10번 트랙 '담쟁이 넝쿨별'도 이 사건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한 곡이다. 부제부터가 '씨랜드에 잠든 어린이들을 위해' 이다.

2009년 MBC 수목드라마 에서 극 초반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스토리가 전개되었으며 극 중에서는 여주인공 윤하나(임주은)가 어린 시절 화재가 발생한 수련원에서 또래 아이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후 불에 트라우마를 가진 여고생으로 나온다.

[1] 시로 승격된 건 2001년 3월 21일이다.[2] 현재도 운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3] 당연히 상기 유치원들을 다 합쳐서 47명이다.[4] 나머지는 인솔교사 1명과 이벤트업체 소속 강사 3명.[5] 희생된 유치원생 중 나머지 1명은 2층에서 투숙했던 다른 유치원생이다.[6] 출처: 2000도1858[7] 모기향 화재인 것과 전기누전 화재인 것은 사고 책임소재에서 큰 차이가 있으며 후자의 경우라면 관련된 공무원들 여럿 모가지다.[8] 어째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었냐면 당시 화성에는 소방서가 없어 옆의 오산소방서에서 왔기 때문이다. 원래 오산은 화성군의 중심지였고, 당시 화성군청도 오산시에 있었으나 오산은 화성의 동편에 치우쳐 있었으며 사고 장소는 화성에서도 서쪽 끝인데다 직선거리로도 30km가 훨씬 넘는다. 이 사건 때문인지는 몰라도 2016년 현재는 인근 송산면과 마도면에 119지역대가 있다.그야말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셈이다.[9] 게다가 소방서 소속 차량이 노후 차량이었던 관계로 출력이 낮아 제 속도를 낼 수 없었다.[10] 소방관 249명에 공무원 200명 등등... 경찰도 50명 이상이 동원되었다.[11] 결국 불타는 도중에 2층 컨테이너가 일부 주저앉았다.[12] 후에 김영재 교사의 출신고교인 목포고등학교와 마도초등학교를 주축으로 장학활동 등 김영재 교사를 잊지 않기 위한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는 확인되는 것이 없다.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현재 목포고등학교에서는 추모비를 건립하고 매년 추모행사를 통해 고인을 기린다고한다[13] 2001년에 군에서 시로 승격되었다.[14] 이후에도 매년 추모식이 끝나면 유족들이 아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의 유골이 뿌려진 동해로 갔다. 10주기 당시 동해에 찾아갔던 기사 다만 15주기인 2014년의 경우는 세월호 참사 등을 고려해 생략했다고 한다. #[15] 다만 이 관련 혐의로 잡혀갔지만 그 부분은 무혐의가 되었고 다른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16] 그러나 똑같이 불연재라 해도 해외에서 주거용으로 사용 불가능한 유기단열재(스티로폼)가 한국에서는 주거용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반적으로 주거용 건물은 내화성능이 다소 낫고 연소 후에도 잔재가 남아 붕괴 위험성을 줄이는 유리섬유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