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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 나고르노카라바흐 자치주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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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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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노가다? 끼워 맞추면 아르메니아[1]

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 (아르메니아어, 레르나인 가라바그)
Dağlıq Qarabağ (아제르바이잔어, 다글르그 가라바그)
Нагорно Карабах (노어, 나고르노 카라바흐)

1. 소개2. 역사
2.1. 소련 붕괴 이전2.2.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2.3. 휴전 이후
3. 주민4. 상징물
4.1. 국기4.2. 국가
5. 현황과 전망6. 관광과 출입국

1. 소개[편집]

이란러시아 사이, 캅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 임시 수도는 스테파나케르트(Ստեփանակերտ, Xankəndi). 소련 시절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면적은 4,400㎢였으나 전쟁으로 영토확장에 성공하여 현재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레르나인 가라바기 한라페투튠)이 통치하는 영역은 11,500㎢이며 인구는 약 14만 1천명(2010)이다. 카라바흐 고원 지대(Нагорный Карабах), 또는 역사적인 지명인 아르차흐(Արցախ)라고도 불렸으며, 2017년에 국호를 고쳤다. 사실상 독립국이나 국제사회에선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2. 역사[편집]

2.1. 소련 붕괴 이전[편집]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멋대로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준 것이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는 아제르바이잔에 우호적 조치를 취함으로써 같은 민족인 신생 터키 공화국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정치적인 고려이자 동시에 매우 강경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결정이었다.[2] 그렇게 1923년에 자치구가 들어섰다.

2.2.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편집]

1988년 2월 20일부터 1994년 5월 16일까지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1988년 2월 20일, 카라바흐 고원 지방의 아르메니아계 인민 대표들이 아르메니아로의 귀속 동의를 천명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없애고 카라바흐 지역을 공화국의 직할 통치 하에 두었으며, 숨가이으트(Sumqayıt)에서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일어난다.[3]

1989년 12월 1일, 아르메니아의 최고 소비에트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에 합병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서는 17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아제르바이잔에서는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추방당했다.

1991년 소련의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공화국들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졌다. 이에 나고르노카라바흐는 9월 2일 독립을 선언하였고, 11월 4일,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경제 봉쇄로 대응했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이미 카라바흐 지역의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예레반에서 수 차례 터진 터라 두 나라의 분위기는 더욱 나빠졌고, 결국 소련이 무너진 뒤 1992년에 전쟁이 터지고야 말았다. 2월 25일에는 호잘르(Xocalı) 시에서 아르메니아인 과격파와 소련 군대가 아제르바이잔인을 학살한 호잘르 학살사건(Xocalı soyqırımı)이 벌어졌다.

1993년, 아르메니아 군대가 아제르바이잔을 쳐들어와 캘배재르(Kəlbəcər), 아그담(Ağdam), 퓌줄리(Füzuli), 재브라이을(Cəbrayıl), 잰길란(Zəngilan) 같은 아제르바이잔 남서부 주요 도시를 잇달아 무력 장악했으며, 카라바흐 고원 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국경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까지 점령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하여 이 때 차지한 땅은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20%에 이르렀다.

당시 이츠케리아 체첸군과 아프가니스탄무자헤딘까지 아제르바이잔 편에 서서 싸웠지만,[4] 아제르바이잔은 전투에서 잇달아 패배했고, 애꿎은 대통령만 계속 바뀌었다.[5] 막판에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했던 것처럼, 16세 이상이면 무조건 동원하는 인해전술까지 펴기 시작했다[6].

이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에 크게 고전을 했는데, 첫 째로 아르메니아 군은 경험이 풍부한 보병이 위주였던 반면에 아제르바이잔 군대는 바쿠의 유전에서 석유를 캐던 공병 출신들이 많았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적극 지원했으며, 이란은 자국 북부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분리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르메니아편에 가까운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은 사실상 고립된 상태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아주 잠깐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으로도 진격한 적이 있었는데, 터키 국경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보니 아제르바이잔의 혈맹인 터키가 아르메니아에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에서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 경고하며 터키군을 국경 쪽으로 이동시키자 바로 아르메니아 군대가 철수하였다. 그래서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이 전쟁의 포화에서 별 피해가 없었던 것.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터키의 개입으로 전쟁의 포화는 면한 대신 사실상 아르메니아편에 선 중립국 이란 탓에 본국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동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아제르바이잔으로서는 1993년, 남부 소수민족인 탈리쉬족이 한때 일방적으로 자치를 선포했던 악재도 겹쳤다.

1994년 러시아와 프랑스가 중재에 나섰다. 그 뒤 로베르트 코차리얀이 아르메니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5월 5일 비슈케크 조약으로 정전(停戰)하였다. 전쟁은 아르메니아의 승리라는 게 중평. 동원된 총병력은 아르메니아 측이 2만(아르메니아군 8000, 나고르노카라바흐군 1만), 아제르바이잔 측이 4만 2천(아프간, 체첸 의용병, 터키 장교 등 1500~2500명 제외)으로 아제르바이잔이 훨씬 많았지만, 오히려 전사자는 아르메니아 측 4,592명, 아제르바이잔 측 2만 5천~3만으로 아르메니아가 훨씬 적었다. 민간인 사망자 수는 아르메니아인이 1500여 명, 아제르베이잔 700여 명이며 아르메니아 난민은 50만 명 가량, 아제르바이잔 난민은 70만 명 가량 발생했다.[7]

2.3. 휴전 이후[편집]

양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2년 이래 러시아, 미국, 프랑스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틀 안에서 회합을 거듭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양쪽 모두 타당한 요구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설정되어 있던 자국 영토의 온전성 회복을, 아르메니아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아르메니아 민족의 통일성 회복을 요구했기에 이 두 가지 요구가 평행선을 달려 타협이 불가능했다.

전쟁 때 아제리인 주민이 빠져나간 아그담(Ağdam) 같은 도시는 여전히 유령도시로 있다.

2014년 8월, 이 지역에서 또다시 두 나라의 충돌이 시작되었다.#

2017년에 아르차흐 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꿨다. 기사

3. 주민[편집]

2010년 현재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방의 인구는 약 14만 1천 명이며,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의 인구는 5만 3천 명이다.

민족별 구성은 소련 붕괴 이전에는 인구의 약 74%가 아르메니아인, 25%가 아제리(아제르바이잔)인으로 집계되었으나, 전쟁 때 이 지역의 아제리인은 모두 난민이 되어 떠나고, 지금은 아르메니아인 95%, 기타(쿠르드인, 아시리아인) 5%이다.

4. 상징물[편집]

4.1. 국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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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2일에 제정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의 국기를 기반으로 도트 노가다 하얀색 V자 모양이 계단처럼 그려져 있는 것은 아르메니아의 전통 융단에서 나왔으며, 아르메니아의 영토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분리된 지역임을 뜻한다.

4.2. 국가[편집]

기악판
보컬판
제목은 "아르차흐[8]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아르메니아어: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아자트 우 안카흐 아르차흐)"
아르메니아어 가사
한국어 해석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Քո տուն-ամրոցը կերտեցինք,
Պատմությունը մեր երկրի,
Մեր սուրբ արյամբ մենք սերտեցինք։
아르차흐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
우리 모두가 지은 요새가 있네.
우리의 피와 우리의 조국은,
역사 속에서 남으리라.
Դու բերդ ես անառիկ,
Բարձունք սրբազան, վեհ անուն,
Մասունք աստվածային,
Քեզնով ենք հավերժանում։
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니,
신성한 봉우리이자, 고귀한 이름의
신이 내리신 은총이요.
너로 하여금 우리는 존속하노라.
Դու մեր լույս հայրենիք,
Երկիր, հայրենյաց դուռ սիրո.
Ապրիր դու միշտ խաղաղ,
Մեր հին ու նոր Ղարաբաղ։
너는 하늘이 주신 조국이자
우리의 고향, 우리의 사랑이다.
평화 속에서 살아가리라
우리의 오랜 카라바흐에서.
Քաջերն ենք մենք հայկազուն,
Մռավ ենք, Քիրս ենք ու Թարթառ,
Մեր վանքերով լեռնապահ՝
Անհաղթելի մի բուռ աշխարհ։
우리는 자랑스러운 하이크와
므로브, 키르스, 타르타르의 후예이다
높은 산 속 수도원 아래
우리에게 맞설 자 그 누구도 없나니.

5. 현황과 전망[편집]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은 독립국, 또는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추진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격렬한 반대와 지역의 질서 붕괴를 우려하는 이웃 나라들 및 강대국들의 염려 때문에 현상 유지 중이다. 최악의 가능성은 아제르바이잔이 이 지역에 대한 무력 탈취에 나서는 것인데, 실제로도 아제르바이잔은 언젠가 무력으로 되찾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9][10] 아르메니아에 주둔하고 있어 진짜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나히체반을 비롯하여 아제르바이잔의 여러 지역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이 또한 러시아의 반발로 실현 가능성은 낮다.

아르메니아와 맞닿게 된 현재의 영토는, 1994년 정전 협정을 맺은 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쟁 중에는 공항이 부숴져 하늘길이 막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복구 되었으며 국영항공사까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항공기 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비행기를 격추시키겠다고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아르차흐 공화국은 국제적인 미승인국으로, 러시아와 아르메니아부터 이 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11] 미승인국인 탓에 세계은행의 투자도 막혀 제대로 된 공업시설이나 여러가지 인프라를 갖추기도 어려운 실정. 더불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보복으로 원유 및 가스 파이프와 철도 노선이 아르메니아를 빗겨가 조지아를 지나가게 건설되면서 아르메니아 또한 막대한 이득을 날려버렸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를 도운 댓가로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을 장기간 주둔시켰으며, 자연히 아르메니아의 군사적, 경제적 대러시아 의존도 또한 높아졌다. 노골적인 친러정책 강요에 아르메니아에서도 2012년 반러 시위가 일어났으나, 아르메니아는 현재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에 둘러싸인 상황(조지아도 두 나라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기대는 터라 아르메니아에게 선을 긋고 있다)이라 유로마이단과 같이 러시아에 대놓고 반기를 들기는 커녕, 할 말도 못하는 처지이다.(아르메니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탈영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강간하고 죽이는 일이 벌어졌지만 러시아 군사재판으로 고작 징역 5년을 때리고 사건을 끝내거나, 러시아가 독점하는 전기의 요금을 갑자기 16%나 올리거나 하는 등의 행패에 시민들이 반발하여 시위까지 벌어졌으나, 아르메니아 정부는 시위를 필사적으로 뭉개버렸다. 아르메니아로서는 러시아가 없으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를 상대할 수 없기에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다.)

아제르바이잔에는 항구도 있고 무안단물석유도 나오지만, 아르메니아는 뱃길도, 자원도 없는 데다가 사방이 적에게 둘러싸여 있어 상황이 몹시 암울하다. 또한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미국의 성공한 동포들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가난한 나라이다. 그리고 위에 서술한 대로 러시아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행패를 부리는 상황. 이 지역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2016년 4월 2-5일, 아르차흐의 영유권을 놓고 접촉선에서 아르메니아 군과 아제르바이잔군의 충돌이 일어나 아제르바이잔군 95명이 사망하고 헬기 1대가 격추당했으며, 아르메니아 군 역시 200여 명의 사상자가 나고, 전차 6대와 야포 15문을 손실했다.

사실상 남오세티야압하스 같은 캅카스 지역의 미승인국가들과 비슷한 처지.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남오세티야와 압하스는 그 뒤를 봐주고 있는 러시아가 정식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공식 수교관계까지 맺고 있지만 아르차흐 공화국은 그 뒤를 봐주는 아르메니아조차도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비공식적이지만 아르차흐를 지원하고 있는 게 아르메니아이다.

6. 관광과 출입국[편집]

아르차흐 공화국은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입국 전 사전비자를 요구한다. 비자는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있는 아르차흐 공화국 대사관에서 당일치기로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착비자 제도를 운영 중이라 할 수 있는데, 유효한 여권을 들고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신청서를 쓴 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거주등록 절차를 밟으면 비자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입국해서 여권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스탬프가 찍히게 되면 사전에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이상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평생 불가능하다고 한다. 여권을 바꾸면 어떨까? 동일 여권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출입할 일이 있을 경우 비자 발급시 반드시 별지에 받고 싶다고 요청하여야 한다. 그것말고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쌍방에서 상대국 입/출국 스탬프만 찍혀 있어도 국경에서 눈빛이 달라진다

아르메니아를 통해서만 출입국이 가능하며, 아르메니아 예레반 - 고리스 - 스테파나케르트 노선의 미니버스(6시간 30분 소요)만이 유일한 국제선 대중교통이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하루 1대, 오전 7시에 예레반 버스터미널에서 마슈르카를 운행한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를 중심으로 각 지방도시 행 버스가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버스티켓을 살 때 국내선임에도 비자를 검사한다.) 스테파나케르트 내에선 시내버스가 야간까지 활발히 있는 편이다.

미승인국인 만큼 아르차흐 내에서 국제로밍이 되는 통신사는 거의 없으며 현지 통신사인 KT(Karabakh Telecom)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여행경보제도에 의해 철수권고 지역으로 지정되어있다. 대한민국은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나고르노카라바흐 및 인근 7개 지역이라는 이름으로 아르차흐 공화국이 통치하는 지역을 철수권고로 지정해놨다.

[1] 사실 아래 국기 문단을 보면 이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2] 상당히 강성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소련 해체 이전까지 소련 국내 주요 민족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이는 스탈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라라트산을 터키 영토로 인정할 정도였다.[3] 당연히 두 나라의 사건에 대한 평이 판이하게 다르다. 아르메니아 쪽에서는 아제르바이잔이 자행한 잔악한 학살이라 비난하였으며,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의 폭동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의 인명 피해가 생겨 진압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4] 병력 한 명 한 명이 아쉬웠던 아제르바이잔은 찬 밥 더운 밥 안 가리고 지원을 받아들였다.[5] 외부의 눈에는 그 게 그 거 같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보다 인구와 영토가 2배나 큰 나라이다.[6]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대대적인 반격으로 퓌줄리와 호자밴드(Xocavənd) 시를 되찾기는 했다. 하지만 캘배재르 탈환 작전은 실패[7] 출처 : 위키피디아, The Caucasian Knot: The History and Geopolitics of Nagorno-Karabagh,Gefährliche Töne의 "Frozen War" 등.[8] 나고르노 카라바흐[9] 1995년부터 규므리(Гюмри)에 제 102기지를 설치하고 S-300, MiG-29과 함께 5000여 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주둔해오고 있다. 원래 25년 기한이었지만, 2010년 메드베데프의 방문 때 49년(만료기간 2044년)으로 연장했다.[10] 소련 이후 아르메니아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은 철수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양면 봉쇄를 돌파할 방법이 없던 아르메니아와, 반러로 돌아선 조지아를 견제하고 CIS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보존하려던 러시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니 아제르바이잔의 러시아에 대한 감정은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아제르바이잔 가발라 지역의 러시아군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기지도 주둔 기한 연장을 거부당하고 2012년 말 운용을 정지했다.[11] 압하스,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만 이 나라를 인정한다. 아르메니아로서는 아르차흐를 승인하려니, 아르차흐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구소련권 내 미승인국 나라들(압하스, 남오세티아, 트란스니스트리아, 노보로시야등)도 승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는 코소보, 압하스, 남오세티아 등은 물론 팔레스타인도 승인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또는 사설1(영어), 관련기사2(영어), 팔레스타인의 국제승인문제(영어위키백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