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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나온 모큐멘터리에 대한 내용은 C.S.A.: 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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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미연합국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미승인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Confederate_National_Flag_since_Mar_4_1865.svg.png
국기
문장
1861년 ~ 1865년
표어
Deo Vindice
(하나님은 우리의 대변자이시다)
국가
주여, 남부를 지켜주소서
위치
최대도시
정치체제
공화제
국가원수
대통령
주요사건
1861년 11개 주 미합중국 탈퇴
1861년~1865년 남북전쟁
1865년 해체
통화
달러, 남부연합통화
성립 이전
멸망 이후

1. 개요2. 국가 상징물
2.1. 국호2.2. 국기2.3. 국가
3. 역사4. 남부연합의 명분5. 인구6. 군사
6.1. 남부 육군
6.1.1. 남부 육군의 미화된 전설들
6.2. 남부 해군
7. 대중문화


1. 개요[편집]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 선언을 하고 만들어졌던 북아메리카 동남부의 미승인국. 전 세계 단 한 곳에게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현대적인 국제법도 없었지만

노예제 문제를 놓고 노예제를 지지하던 미국 남부 11개 주가 북부와 갈등 끝에 연방 정부의 주의 자치권 침해를 명분으로 연방국인 미국으로부터 탈퇴 선언을 하였다. 이후 아메리카 연합국을 결성하여 연방 탈퇴를 무효라고 주장한 미국과 남북전쟁을 벌였으나 패망했고 이후 아메리카 연합국은 해체, 연합국을 구성하던 주들은 다시 미국의 일원이 되었다. 종전 뒤 남부에 가담했던 각 주는 러더퍼드 B. 헤이스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군정이 해제되고 1877년 완전한 자치권을 회복하였다.

2. 국가 상징물[편집]

2.1. 국호[편집]

북부와는 달리 아메리카 연합국에서는 '연합'을 나타내는 말로 Confederate States을 사용하였다. 줄여서 부를 때에는 CSA 혹은 The Confederacy로 부른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당시 아메리카 연합국을 남부맹방, 남부연맹, 남부연합으로 일컫는다. 이는 Southern Confederacy를 번역한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정부에서는 남부연맹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고 연맹을 결성해서 연방과 대적하는 행위를 반역으로 간주했다. 그래서 공식적인 칭호는 언제나 반군(Rebel)이었다. 이에 편승해서 북부인들은 남부인들을 반역자, 반군으로 호칭했다.

속어로 미 북부인은 양키(Yankee) 연방(Union, Federal), 남부인은 딕시(Dixie) 또는 반군(Rebel) 등으로 불린다. 북부 돈은 양키 달러, 남부 돈은 딕시 달러 이런 식으로.

2.2. 국기[편집]

파일:아메리카 연합국 국기(1861–1863).sv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900px-Confederate_National_Flag_since_Mar_4_1865.svg.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Confederate_Rebel_Flag.svg.png
1861년 ~ 1863년[2]
1864년 ~ 1865년[3]
현대에 쓰이는 깃발[4]

국기보다는 1863년부터 쓰인 해군기가 더 일상적으로 쓰이며 실질적인 국기의 지위를 가졌고, 많은 이들이 해군기를 남부동맹의 국기라고 여기고 있다. 아예 나중엔 국기에 해군기를 넣어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부 남부 주 출신 참전자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성조기 대신 피아식별용으로 쓰기도 했다. 현재도 앨라배마 주기에는 남부기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에는 조지아 주기나 미시시피 주기에도 남부연합기가 들어가있었으나, 각각 2003년과 2020년을 기해 폐기했다.

현재 남부기는 인종차별의 상징이라며 시선이 좋지 않다. 일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애용하기도 하며, 특히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에서 대두되면서 미국 전역에서 퇴출 운동이 벌어졌다.[5] 결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공공장소에 남부기를 게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부 시민들 중에서는 이 깃발을 남부 자치와 독립 정신의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적지 않아 여전히 뜨거운 감자와 같은 주제이다. 어떻게 보든간 남부 국기는 미국 역사의 일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부 국기가 들어간 주기를 철거한 곳에서도 이 깃발을 없앤 게 아니라 박물관으로 보냈다. 또한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도 앨라배마 주지사의 인장처럼 남부기 문장이 포함된 경우가 있다. 이는 역사적인 이유가 큰데, 해당 지역을 지배했던 국가나 정부의 상징을 모두 넣은 것이다.

2015년도 전 미국인 상대 여론조사 결과에선 57%가 이 깃발이 인종주의보다는 남부의 자부심을 상징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미국 흑인들은 72% 이상이 이 깃발을 인종차별주의의 상징이라고 답변했는데, 비교하자면 백인은 25%만이 이 깃발을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보고 있다. 남부에만 한정하면 흑인들은 75%가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깃발이라고 답했고 백인은 11%에 그쳤다.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갈라져 나온 결정적인 이유가 노예제의 사수였기에 흑인들 입장에서는 좋게 봐주기 어렵다. 여러모로 현재까지도 흑인들과 백인들이 이 국기에 대한 인식에서조차 차이를 보이는 모양새라 분쟁의 대상이 되기 딱 좋은 소재. 같은 이유로 보수적인 백인들의 모임에 많이 보인다. 가령 도널드 트럼프 지지집회, 총기 관련 모임, 오프로딩 모임 등...

2014년에 타일러 라쉬가 이 문제를 주제로 트윗을 한 적이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2017년 버지니아 샬러츠빌 폭동에서도 남부 육군기를 들고 다니는 폭도가 많이 목격되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에 반대하는 인종주의자 세력들이 다시금 남부연합기를 내세우며 이전 그 어느때보다도 반대 여론이 거세졌다.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에서도 금지했다. # 이어 전 미군에 금지하였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때 한 폭도가 이걸 국회안에 들고 가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노보러시아 연방의 전 국기와 상당히 유사하지만, 노보러시아 국기는 러시아 제국 해군기의 도안에 붉은색을 추가했을 뿐이니 유래적으로는 연관이 없다.

2.3. 국가[편집]

공식 국가는 "주여 남부를 지켜주소서"였다.

비공식적 국가이자 남군의 애창곡이었던 I Wish I Was in Dixie's Land는 항목 참조.

3. 역사[편집]

미국 건국 이래 남부는 북부와 분위기가 달랐다. 면화재배로 영국계가 남쪽으로 많이 이주해 영국식 귀족문화도 유행했고 노예제도 횡행했다. 이민자들의 대다수가 북부의 뉴욕 등지로 들어와 다민족 구성에 공업화가 진행 중인 북부와는 딴판이었다. 남북은 노예제 외에도 대립요소가 많았는데 가장 주도적으로 나선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였다. 노예제 반대의 대표주자였던 공화당 출신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사우스캐롤라이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텍사스 일곱 개 주가 미 연방을 탈퇴했다.

남부 측에서 내세운 명분은 각 주의 자치권이었고, 이들은 헌법이 각 주가 폐기할 수 있는 협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연방 측은 이들을 반역자로 간주하였고 북부 출신 정치가들은 연방의 영구 존속이라는 조상들의 가치를 짓밟는 행동이라며 이들을 비난하였다. 그러자 북부 측의 연방주의자들은 노예제의 철폐를 주장하며 전쟁 초반 남부에게 연패하다가 기세를 전환함과 동시에 바로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하여 자신들의 명분을 '악습 철폐를 위한 성전'으로 내세워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나설 여지를 봉쇄하였고 이는 남부의 철저한 고립을 굳히게 된다.

1861년 2월 4일 앨라배마의 몽고메리[6]에서 남부의 주요 정치인들이 모여 남부연합을 결성했다. 이들은 노예무역은 금지하지만 이미 들어온 노예들은 유지한다고 결정하였다. 헌법은 전체적으로 미국 헌법과 비슷했다. 대통령으로 제퍼슨 데이비스를 선출했고 부통령은 알렉산더 스티븐슨이 뽑혔다. 1861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추가로 버지니아,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가 연방을 탈퇴하여 남부에 가세했다.

다만 남북전쟁 문서에 나오듯이 노예제를 시행했던 모든 주가 남부에 가담한 것은 아니다. 노예제를 시행했던 주 중 버지니아 서부(웨스트 버지니아)[7] 지역, 델라웨어 주, 켄터키, 미주리, 메릴랜드는 연방에 잔류했다. 이를 경계 주(Border States)라고 부른다. 물론 이곳들도 조용하게만 넘어가진 않아서 연방으로부터 분리하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이를 연방군이 진압하거나 주 측에서 자발적으로 해결하고 연방에 합류하였다.

초기에는 남부가 전투에서 승리하며 연방의 수도인 워싱턴 DC를 위협할 정도로 밀어붙였으나 앤티텀 전투에서의 무승부를 계기로 북부가 일어서기 시작한다. 거기다 국력의 차이가 컸던 탓에[8] 시간이 지날수록 남부가 북부에게 밀리고 여기에 북부가 외교전을 잘 펼쳐 해외에서는 남부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가 이들을 교전권이 있는 교전집단으로 본 게 고작이었다. 결국 1865년에 남부가 패하면서 아메리카 연합국은 소멸된다. 연합국의 공직자들은 추방당했으나 곧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흑인에 대한 폭력이 나타나자 1867년에 연방정부는 군정을 남부에 설치하고 공직자들을 재추방한다. 허나 이후 공화당 내에서 급진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면서 흑인 문제는 순식간에 사그러들게 된다. 이 배경은 영화 링컨(영화)에 잘 나온다. 1877년에 연방정부는 미군정을 폐지한다.

아메리카 연합국을 세운 권력자들은 만약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경우, 멕시코와 쿠바를 합병하여 노예 제도에 기초한 대제국을 세우겠다는 구상인 이른바 '블러디 드림'을 갖고 있었다. 다만 남북전쟁에서 아메리카 연합국이 패망함으로써 블러디 드림은 완전히 사라졌다.

4. 남부연합의 명분[편집]

미국 북부와 남부가 단순히 노예제 존속만을 두고 전쟁을 한 게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기 이전 남부 주들의 지도자와 명사들이 주의 자주권을 언급했을 때는 오로지 노예제와 백인의 절대 우위를 사수할 권리를 두고 말했지, 인종 문제와 상관 없이 헌법적 관점에서 주의 권리를 주장했던 것이 아니다.[9]

남북전쟁 발발 당시 인종차별과 노예제에 대한 권리헌법적 의미에서 지방 자치와 주의 권리를 억지로 떼어서 보려고 하는 시각은 이른바 더닝 학파가 내세웠던 주장으로 이미 폐기된 학설이다. 더닝 학파란 20세기 초반에서 흑인 민권 운동의 부상까지 미국 내 초보수주의, 강경 우익 역사학을 주도했던 콜롬비아 대학 교수 윌리엄 아치볼드 더닝을 필두로 한 학파(Dunning School)이다. 더닝 학파의 이 주장은 당시 흑인민권운동에 대한 역풍, 부상하고 있는 반공 우익 매카시즘, 본격 제국주의 열강으로 등극한 미국의 자국 내 패권주의와 사회다윈주의적 시각을 혼합하여 전쟁 전 남부에 대한 일방적 미화를 기반으로 한 주장이다. 대중문화 같은 매체에 나오는 코드로 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국가의 탄생이 대표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북부 자본가가 무시무시한 양키 군대를 끌고 와서 목가적 낙원에서 우리끼리 잘살던 남부 농민들을 유린하니 마니 하는 내용들이 더닝 사관에 입각한 역사적 인식의 전형이고, 이렇기 때문에 저런 소위 남북전쟁 전후 재건기(Reconstruction) 시기 남부 낭만물이 20세기 초중반, 즉 흑인민권운동의 부상과 이에 따른 극우성향 백인들의 반발과 시기적으로 딱 맞물렸던 것이다.

1950~70년대의 수정주의 논쟁을 겪으며 성장한 현대 남북전쟁 관련 학계는 이러한 시각을 전적으로 논파하고, 더닝 학파의 주장을 완전히 폐기된 학설로 밀어넣으며 발전한 분야로, 에릭 포너, 케네스 스탬프, 유진 제노비즈 등 현대 남북전쟁 학계의 큰 골격을 만든 인물들은 대부분 이 더닝 학파의 주장을 논파하며 학자적 기반과 명성을 쌓았으며, 이들의 주장에 기본이 되는 건 다름아닌 19세기 중반 남부동맹의 당사자들에게서 나온 1차 사료들이다. 단적인 예로 성 안드레아 십자가를 기반으로 한 그 유명한 남부동맹기를 디자인한 서배너 기반 아침 일보(Daily Morning News) 사장이자 주 필진이었던 윌리엄 톰슨 (William Tappan Thompson)이 밝힌 디자인 취지 원문을 읽어보자.
국가의 상징으로서 이 깃발은 무지, 불충, 미개함에 맞서 싸우는 더 우월한 인종, 더 고등한 문명의 숭고한 대의의 표지다. 이 깃발의 또 다른 장점은 이제 악명높은 그 양키 반달들의 깃발과 닮은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데일리 모닝 뉴스, 1863년 5월 4일자 논평[원문1]
인민으로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열등하거나 유색인 인종에 대한 백인들의 우월성을 지키기 위해 싸우며, 따라서 흰색 깃발은 우리의 대의를 상징하기에 적합하다...[11] 이 깃발은 곧 세계 만국의 자랑스러운 깃발 중에서도 높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며, 백인의 깃발로서 문명화된 세계에서 환영받을 것이다.

-데일리 모닝 뉴스, 1863년 4월 23일자 논평[원문2]

어구 하나하나에서 인종주의적인 내용이 묻어나온다.

이런 수정주의적 시각은 남부동맹 초대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본인부터 패전 이후 전범으로 수감 중 현대 남부동맹 옹호 세력처럼 은근슬쩍 전쟁 전에 그리 부르짖었던 인종주의적 주장은 중화하고, 자신들의 대의가 마치 헌법주의적 측면에서 주의 자치권을 위했던 것으로 포장했을 만큼 오래된 주장이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고 남부가 연방 정부의 공업력과 군사력에 의해 참교육당하기 이전 남부 주들의 분리와 독립을 주장했던 정치인들과 문필가들이 봤으면 인종주의적 측면을 빼려는 인간들을 두들겨 팼을 법한 핵심적인 요소였다. 노예제 문제와 하등 관계 없었던 관세 문제로 터졌던 앤드루 잭슨 시절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무효화 사태(Nullification Crisis)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측이 주의 자치권을 주장했을 때는 본인들 빼고 남부건 북부건 아무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측의 주장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비슷하게 관세 문제로 촉발된 1812년 영미전쟁 당시 뉴잉글랜드 주들의 관세권 갈등에 비슷한 주장이 터졌을 때도 아무도 주의 권리 운운하며 동참하지 않았다. 오직 노예제의 문제가 결부되었을 때만 주의 자치권이란 주장이 남부 전역을 통틀어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남부동맹의 설립자 본인들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노예 소유주들이었다.
윌리엄 A.잭슨은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의 마부 노예였다.

당시 남부의 노예주 백인들은 흑인 노예를 마치 살아있는 가구처럼 여겨, 그들 앞에서도 마치 가구 앞에서처럼 백인 앞에서는 못 할 아무 이야기나 마구 늘어놓는 습관이 있었다. 제퍼슨 데이비스도 그랬지만, 그는 특히 정도가 심했던 모양이다. 그는 잭슨이 바로 곁에 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남부연합군 사령부와 군 기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무식한 니그로가 그런 거 들어서 어쩌겠냐고 생각했는지도 몰라도, 잭슨에게는 남부연합의 작전계획과 보급로에 대해 들을 좋은 귀와 날카로운 집중력, 달달 외울 암기력이 있었다.

1862년 5월 3일, 천신만고 끝에 버지니아 프레데릭스버그 근처의 연방군 진영으로 탈출에 성공한 잭슨은 그동안 데이비드가 남부연합군 사령부와 나눈 대화 내용에 대해 낱낱이 보고했다.

남부연합군의 부대 배치와 보급로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는 것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이라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부연방군의 어빙 맥도웰 소장이 에드윈 스탠턴 국방장관에게 즉시 전보로 그 내용을 보고했으며 "제퍼슨 데이비스의 마부가 큰 공을 세웠다."고 언급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북군이 패하긴 했지만, 1862년 중반의 <반도 전역> 작전에 잭슨의 정보가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1년 후, 남부연합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조차도 "적군에게 우리의 정보를 빼돌린 주요 정보원들은 흑인들 중에 있었다." 고 한탄했다.

윌리엄 잭슨은 교수형을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자유를 위해 북군에 협조했던 수백 명의 흑인 첩보원들 - "Black Dispatches" 중 한 사람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대단한 공적을 세우고도 "니그로"이기에 오랫동안 역사에서 잊혀져왔으며, 그 후의 삶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 마조리 간(Marjorie Gann) & 재닛 윌렌(Janet Willen) 저, 끝나지 않은 노예의 역사(Five Thousand Years of Slavery)

그렇게 인종차별주의에 뼛속까지 물든 작자들이었기에, 현대적이고 정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아주 심각하게 멍청한 짓들도 종종 저질렀다. 대표적으로 남부동맹 고위층들은 흑인을 사람이 아니라 가축이나 가구로 생각했기에 "어차피 가축이나 가구 같은 것들인데 걔들이 사람 말을 알아듣겠어? ㅋ" 라는 생각으로 흑인들 눈앞에서 태연하게 민감한 기밀사항들을 주절대는 짓(...)을 굉장히 자주 저질렀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기밀들을 들은 흑인 노예들은 이렇게 듣게 된 기밀들을 고스란히 연방정부 측에 넘겨주면서 남부의 패배에 일조했다(...). Slave in Jefferson Davis' home gave Union key secrets

하지만 어찌되었든 남부 백인들 사이에서는 남북전쟁을 "주의 자치권을 짓밟은 연방정부의 횡포" 따위 식으로 보는 시각이 널리 퍼져있으며, 남부연합기의 사용도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는 이게 백인우월주의 집단의 상징이 아니라 남부의 단결, 레드넥 소울 등을 상징하는 깃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남부주가 노예제라는 민감한 사항 때문에 갈라져 나온 반군인데다 저렇게 백인우월주의에 뼛속까지 물든너무 뼛속까지 백인우월주의에 물들어서 멍청함까지 보여주던 집단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여기서 남부주가 가지는 정치적인 유대감 등이 얽히기 때문에 2014년 퍼거슨 소요, 찰스턴 교회 총기 난사 사건 같은 2010년대 현재의 굵직한 인종 갈등 문제의 재부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게양하던 깃발이었다.

2015년까지만 하더라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정부 건물에 위치한 남부동맹 기념비 위에 당당하게 휘날리고 있었고, 조지아 주는 구형 남부기에 문장을, 미시시피 주는 아예 좌상단에 남부기가 대놓고 들어간 주기를 1894년에 채택된 이후로 2020년까지도 썼다. 미국, 특히 남부 주에서 남부맹방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은 널리 퍼져 있었고 어물슬쩍 넘어갈 만큼 광범위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2010년대 현대 들어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가 다시 굵직한 전국적 사회적 의제로 재부상하면서 이 깃발과 이것이 상징하는 역사관 또한 큰 지각변동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다.

5. 인구[편집]

남부연합 성립 직전인 1860년의 인구를 보면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조지아, 앨라배마,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아칸소, 텍사스, 플로리다 등 11개 주를 모두 통합해 910만 명이 거주하고 있었고, 이 중 39%(...)에 해당하는 352만 명이 노예였다. 주별로 보았을 때 노예 비율이 가장 높은 주는 사우스캐롤라이나(57%)와 미시시피(55%)였다.

당시 남부 지방의 경우 인구 절대다수가 농촌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1860년 기준 인구 5만 명을 넘기는 도시는 미국에 16곳이 있었는데 그 중 남부에 있는 도시는 뉴올리언스 하나였다(인구 16만 명).

전쟁 후 사상자는 질병 및 전사를 포함해서 25~30만 정도였다.

남부가 농업이기에 승리했다면 인구가 늘어났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그럼 노예를 더 들여옴으로써 노예인구만 더 많았을것이다.

6. 군사[편집]

남부의 군대는 육군과 해군, 해병대로 구성되었다.

6.1. 남부 육군[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Battle_flag_of_the_US_Confederacy.svg.png
남군 육군기 (Confederate Battle Flag)
Confederate States Army. 1861년에 북부가 반역의 진압을 얘기하자 민병대를 중심으로 군을 조직했다. 남부의 육군 장교들은 귀족적인 명문가 출신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남부가 탈퇴하자 미 육군에서 전역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들 장교단의 구성은 지휘자질이 상당히 우수한 편이라 초반에 북군을 고전케 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영관급 이상 고위층은 대부분 북군에 남았고, 버지니아 군사 아카데미 출신 하급장교들만 일부 남군으로 넘어갔다. 초전에서 북부 연방군의 고전은 준비부족 탓으로 봐야 한다. 남군도 준비가 부족했지만, 1850년대부터 꾸준히 연방 탈퇴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마다 군사조직을 준비했고, 전쟁이 터지기 직전인 1860년에는 이미 준비가 되어 연방요새, 연방조폐국을 털고 있었다. 이런 불법적인 사건들에도 임기말이라 레임덕이던 뷰캐넌은 연방의 해체를 우려하여 노예주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고, 전쟁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연방군을 링컨에게 물려주게 된다. 대표적으로, 1825년에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로버트 E. 리 장군이 있지만 이 사람도 초전에는 패전했다. 대다수의 웨스트포인트 미국 군사 아카데미 출신들은 연방군에 가담하였으며, 초기 남군의 영웅은 P.T. 뷰리가드[13]와 토머스 잭슨[14]이었지 리가 아니었다.

총 동원인원은 불분명하나 약 120만에서 최대 200만까지 본다. 1861년엔 의용군 10만이었으나 이듬해인 1862년에 40만까지 늘었고 같은 해 4월 16일에 징병령을 내려 18세에서 35세의 백인 남성을 징병하였다. 같은 해 9월 27일엔 징병 상한선을 45세로 늘렸고 1864년 2월 17일엔 50세까지 늘렸다. 그리고 1865년 3월에 급했는지 흑인 징병령을 내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노예 해방 조항은 주인이 허락해야 한다는 식이라 인기가 없었는데다가 몇 일뒤 수도인 리치먼드가 함락될 정도로 이미 이 즈음에 가면 남부의 정부 기능은 맛이 가서 얼마 징병하지 못하고 패했다. 그러니까 남군에도 흑인 전투병이 있었다는 것은 거의 전설에 가깝다.[15] 1890년에 남부의 재향군인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에 3,273명의 남군 출신 흑인이 살아있었지만, 이건 전쟁이 끝나고 남군의 미화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신뢰할 수 있는 조사가 아니며, 남군 출신 흑인병사란 곧 주인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 같이 참여한 노예나 노예로써 참호를 파는 등 공병이었지 정식 군인은 아니었다. 오클라호마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 일부도 남군에 가담했으며 북군에 가담한 아메리카 원주민과 교전을 치렀다. 왜냐면 남부에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일부는 흑인 노예를 뒀기 때문이었다. 이는 자신들도 백인들과 동등하다는 상징성을 두기 위한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북부 연방군의 남색 군복에 대비되는 차분한 톤의 회색 군복을 입었다지만 제각각이었다. 남군은 전쟁 내내 물자보급이 원활하지 않았고, 자비로 군복을 맞추는 등 민병대적인 성격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색이 거의 통일되지 않았다. 남부 문화 자체가 전시대 유럽의 전근대적 귀족 문화를 숭상하는 성향이 강해서 장교들만 하더라도 개인 각자 마련한 잘 빠진 맞춤형 제복을 입었기 때문에 군복 보고 남부연맹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지만 이건 후대 "미화"된 제복이며 사실 제복은 미 연방군 디자인과 다를게 없었다. 반면 소수의 귀족적 상류층 플랜테이션 지주들이 노예제와 제도적 백인 우월주의, 인종차별의 이데올로기로 인구상 다수였던 노예 없는 소규모 영농민을 동원한 남부연맹의 정치 사회적 기반을 상징하듯이 사병들은 제대로 된 군복도 지급받지 못해 대충 회색 색깔 톤만 맞춘 집이나 농사용 작업복 등을 그대로 걸치고 나온 경우가 많았다. 이미 북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였던 남부의 몇 안되는 전시 공업은 당장 필수적인 무기 생산에도 한창 부족했기 때문에 전반적이고도 규격화된 군복 지급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이런 민병대스런 비주얼은 전쟁 끝까지 유지됐다. 따라서 영화나 드라마에선 대부분 규격화된 남색 군복을 입은 북군에 맞선 때깔 좋은 광택나는 연회색 제복의 장교들+중구난방 때묻은 회색스런 샤스 걸치고 나온 사병이란 기묘한 조합으로 구성된 남군이 시각적으로 미국 문화사상 유구한 전통의 이미지이다. 이때문에 나름 리인액트먼트계에서는 전반적인 회색 테마로만 맞추면 대충 19세기 작업복스럽게 주워 입고와도 충분히 고증에 맞다고 나름 각광받는 분야기도 하다.

해군기와 달리 정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기념품 등으로 파는 손수건은 대부분 정사각형이라, 해군기가 아닌 육군기를 모티브로 해서 제작된다.

계급은 아래와 같다. 사병 계급장의 색깔은 병과를 나타냈다.

6.1.1. 남부 육군의 미화된 전설들[편집]

"승자가 패자의 역사를 쓴다"고 하는 속설이 있지만, 역사로써 반쯤 정설화된 남부연맹 혹은 아메리카 연합국 육군의 미화된 전설들은 저 속설에 정확히 반대가 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1. 불패의 명장 로버트 E. 리
생각보다 꽤 많이 졌다. 전쟁 초반, 공업지역이고 비교적 노예숫자가 적은 버지니아의 서부지역, 지금의 웨스트 버지니아가 단체로 연방에 붙겠다고 선언하자 남군은 서부 버지니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군대를 보냈는데, 이 부대를 로버트 E. 리가 이끌었다. 그러나, 리는 치트 산의 전투(Battle of Cheat Mountain)에서 자신의 부대와 비교해 절반 정도 되는 연방군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고 털린다. 이 때문에 알짜 공업지역인 서부 버지니아를 남부가 전쟁 초반에 잃게 되며, 이 전투가 끝나고 리는 한직인 해안수비대로 좌천된다.

매클레런의 반도전역에서 리가 "이겼다"는데는 역사학자들도 동의하지만, 피해를 너무 많이 입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비슷한 숫자가 붙은 반도전역에서 아군 지역인 버지니아, 그것도 수도인 리치먼드 앞에서 지형적으로 유리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닥돌을 계속하다가 너무 많은 피해를 봤다. 특히, 7일 전투(Seven Days Battle)의 마지막인 말번 고지 전투(Battle of Malvern Hill)에서 같은 숫자[16]가 격돌하였으나 잘 구축된 적의 화망으로 돌격하다가 2배 이상의 피해를 입었다. "전략"적으로 이 전투 이후 매클레런이 연방군이 남군보다 숫자가 적고, 수도인 리치먼드[17]를 함락시키기에는 물자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후퇴하였기 때문에 리의 "승전"이지, "전술"적으로 일부 전투들은 확실히 패전이었으며 더 많은 피해를 입었다.

메릴랜드 전역같은 경우 사람들은 앤티텀 전투를 많이 이야기하면서, 리가 어찌저찌 했으면 남군이 승리할 수도 있었다고 많이 언급하지만, 실제로 리는 메릴랜드 전역에서 앤티텀 전투에 앞서 사우스 마운틴 전투(Battle of South Mountain)에서 북군에게 결정적인 패배를 당했기 때문에 사실상 메릴랜드 침공이 실패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앤티텀에서 도박했다가 실패한 것은 명령서 분실 이딴거 없이도 이미 예정된 일이었다.

챈슬러스빌 전투는 로버트 E. 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지만, 이것도 따지고 보면 사상자는 더 많이 냈으며 일부 초기에 빨리 포위당해 항복한 연방군을 제외하면 최종적으로 피해도 남군이 더 많이 봤다. 참고로 이때 남군은 슬슬 만성적인 장병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티스버그 전투는 아예 전술적, 전략적으로 둘 다 패배.

브리스토 전역에서는 크게 보면 무승부지만, 전술적으로 또 다시 미드에게 당한다. 특히, 라파하녹 역 전투(Battle of Rappahannock Station)에서 연방군의 공격이 따른 기동을 위한 기만적인 공세라고 생각하고 다른 지역에서 강을 건너려던 연방군에 집중하러 라파하녹 역을 지키던 남군을 보강하지 않았지만 이는 착각이었고 연방군은 포격 뒤에 보병대를 보냈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공격 때문에 남군은 연방군에게 참호를 빼앗기고 엄청난 혼란과 패닉 끝에 약 2천여명의 남군 병사들이 기차역과 함께 그냥 항복하는 추태를 보인다.

오버랜드 전역에서는 리 자신처럼 장병들을 희생해서라도 적의 군대를 밀어내고,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성향의 장군(U.S. 그랜트)를 만나서 전술적인 재미를 봤으나, 그랜트가 뛰어난 공병대와 훌륭한 전략기동으로 제임스 강을 건너 수도인 리치먼드의 목숨줄인 기차역이 있는 피터스버그를 위협하자 어쩔 수 없이 피터스버그로 돌아가 수성전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완벽"에서 거리가 먼 로버트 E. 리였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노예제를 긍정하던 남부 특유의 인종 이데올로기가 부정당하고, 가장 커다란 재산이던 노예가 해방됨으로써 엄청난 재산이 공중분해되어 빈털털이가 되었기 때문에 '패전'한 남부측은 남은건 전쟁터의 영광(국뽕)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전투를 많이 이긴 로버트 E. 리 및 남군의 장군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신격화가 진행되었고, 리와 남군을 상대로 승리한 북부 자유주들의 백인들은 이를 방관 혹은 백인들간의 통합을 위해서 협조하면서 미화된 전설들이 후대에 "역사"처럼 전해지게 된다.

6.2. 남부 해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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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federate States Navy.

상술했듯 1863년부터 쓰인 해군기가 사실상 남부연합의 상징기가 되었다. 아무래도 뭔가 어정쩡한 국기나 정사각형인 육군기보다는 그럴 듯하게 생겨 보여서 그런 듯.

주요 임무는 북부의 무역선과 연방해군의 보급선 등을 막는 것이었다. 전쟁 초기에 남부의 함정은 10척이었고 북부의 함정은 90척이었는데, 사실상 북부에서 제대로 돌아가는 배는 14척이 전부라 비등비등했다. 전쟁 초기엔 남부 해군의 활약으로 남부연합이 우수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북부의 미합중국 해군에 역전당해 헌리 같은 육군이 만든 잠수정이 등장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남북전쟁 초기에 미 해군에서 사직한 인물들이 남부로 내려가 조직했다. 해병대미합중국 해병대에서 한 명도 넘어오지 않고 연방 정부에 충성을 맹세했기 때문에 전부 신규 인력으로 재조직해야 했다.

계급은 아래와 같다. 각 병과별 계급 명칭이 다르며, 현대보다는 범선 시대의 계급 체계에 가깝다.
계급
영문
모장
정모 테두리
항해 장교(Sea Officers)
제독
Admi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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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제독
Flag Officer
함장[20]
Capt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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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함장[22]
Comma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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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uten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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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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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후보생[25]
Passed Midship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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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shipm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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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장교(Medical Officers)
12년 근속 군의관
Surgeon of 12 years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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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이하 근속 군의관
Surgeon of less than 12 years service
파일:external/usnlp.org/hat_surgeon_less12years.png
파일:external/usnlp.org/Cuff-1stripe.jpg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합격보조군의관
Passed Assistant Surgeon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보조군의관
Assistant Surgeon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재정 장교(Pay Officers)
12년 근속 재정관
Paymaster of 12 years service
파일:external/usnlp.org/cuff_surgeon12.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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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이하 근속 재정관
Paymaster of less than 12 years service
파일:external/usnlp.org/hat_surgeon_less12years.png
파일:external/usnlp.org/Cuff-1stripe.jpg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보조재정관
Assistant Pay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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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장교(Engineering Officers)
12년 근속 기관장
Chief Engineer of 12 years service
-
파일:external/usnlp.org/engineer12_shoulder_strap.png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12년 이하 근속 기관장
Chief Engineer of less than 12 years service
파일:external/usnlp.org/hat_ChEngineer_less12years.png
-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1등기관사
1st Assistant Engineer
-
-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2등기관사
2nd Assistant Engineer
-
-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3등기관사
3rd Assistant Engine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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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시설관(Naval Constructors)[28]
12년 근속 해군 시설관
Naval Constructor of 12 years service
-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12년 이하 근속 해군 시설관
Naval Constructor of less than 12 years service
-
파일:external/usnlp.org/stripe125.png
부사관(Petty Officers)[29]
영문
갑판, 장포, 목공, 무장, 급사, 조리
Boatswain’s Mate, Gunner’s Mate, Carpenter’s Mate, Master at Arms, Ship’s Steward, Cook
파일:external/usnlp.org/CSN_PO_FaceRight.jpg
파일:external/usnlp.org/CSN_PO_BU_FaceRight.jpg
조타, 상갑판 포, 장루장, 상갑판조장, 견시장, 병기, 통장이, 수병장, 중앙갑판조장
Quartermaster, Quarter-Gunner, Captain of the Forecastle, Captains of the Tops, Captain of the Afterguard, Armorer, Cooper, Ship’s Corporal, Captain of the Hold
파일:external/usnlp.org/CSN_PO_BU_FaceLeft.jpg
수병(Seaman)
계급장 없음


7. 경제와 산업
총, 대포, 철도 등을 찍어낼 공업력은 그렇다 쳐도 농업지대 주제에병사들이 먹을게 부족해서 버릴 옥수수를 뜯어먹고 넘쳐나는 면화를 가공할 방직산업도 허접해서 제복 대신 사복 걸쳐입고 다녔다. 당시 북군 병사들이 '오늘은 커피 베이컨 빵, 내일은 베이컨 커피 빵 모레는 빵 베이컨 커피' 를 먹는다며 투덜거릴 때!(물론 이건 북군의 쇼미더머니라 봐도 무방하다. 이건 유럽 중산층 식단이다.) 애시당초 남부의 원자재->북부, 영국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경제체제였기 때문. 남부의 농업과 영국의 자본으로 국가를 운영한다! 는 행복회로를 돌리기도 잠시, 이미 노예제 철폐 정책을 확고히 밀던 영국에게 손절당하고, 미국이 내전을 벌이는 동안 멕시코를 식민화하려던 프랑스에게도 손절당하며 경제는 폭망.
(여담이지만 남북전쟁 종결 후 아메리카에서 꺼지라는 경고를 들은 나폴레옹3세는 부들거리며 꺼진다.)

7. 대중문화[편집]

대체역사물 등 대중문화에서는 다양한 떡밥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하여 미국 전 지역을 지배한다는 대체역사, 남아메리카를 침공하는 설정 등 여러 미국과 관련된 대체역사들 중에서 빠지지 않는 편이다. 호이4 창작마당에서도 관련 아이템이 있다 본격적인 대체역사소설의 시작인 희년을 선포하라를 비롯해, 타임라인-191 시리즈, Guns of the South 등이 대표적이다.

그외에도 아메리카 연합국이 쓰던 화폐인 남부연합 통화는 전쟁 당시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남북전쟁 이후 1900년대까지 사실상 화폐로서의 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이어서 사람들이 보물인줄 알고 이 화폐를 찾을 때나, 혹은 상속의 형태로 자손에게 전해질 때 가져봤자 짐이니 이 화폐들을 파괴하였지만, 이후 21세기가 지나고 역사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화폐가 거의 전부 훼손된 것으로 인한 희소성, 그리고 그것을 가지려는 수집가들의 수요까지 갖추어져서 표기상 100~500$로 표기되는 지폐의 실질적 가치는 10배에서 100배까지 치솟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다.

스타크래프트테란 연합은 이름도 Confederate으로 같고 연합국 해군기를 자기네들 깃발로 쓰는데, 그 이유가 상당히 우습다. 타소니스에 불시착해 살던 초창기의 1세대 죄수 중 하나가 자기들 우주선에 탑재되어 있었던 슈퍼컴퓨터인 아틀라스를 뒤져보다가 아메리카 연합국에 관한 내용을 찾아내는데, 해군 깃발이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자기들 깃발로 쓰고 이름까지 똑같게 지어버렸다.(...) 그래서인지 지명도 남북 전쟁과 관련된지명들을 일부 차용했는데, 연합 수도성 타소니스에는 뉴 게티스버그라는 장소도 있다. 참고로 테란 연합도 몇년 못가 망했다.

BBC에서 만든 모큐멘터리 C.S.A.: The Confederate States of America가 있다. 남북전쟁에서 이긴 이후의 대체 역사 세계관에서 외국의 방송국 B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는 설정이다.[30] 캐나다의 역사학자와 인종차별주의적인 미국의 인물, 학자들의 시각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준다. 남부인 아메리카 연합국이 확장하고, 경제 대공황을 노예무역으로 극복한 뒤,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고[31] 독자적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일본을 점령하는 등 말 그대로 백인 우월주의를 우회적으로 비꼬아 보여준다. 미국은 현실보다 더한 가부장적, 기독교적, 백인우월주의적인 국가가 되었고 캐나다는 흑인들의 도피처가 되어 미국과 대립하게 된다.[32]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차별이 2000년대까지 이어져온 오늘날을 문제의 다큐 중간중간에 나온 광고들을 통해 생생히 느끼게 하고 있다. 놀랍게도 이 영상의 몇몇 광고들은 진짜로 있던 상품들이었다. 모큐멘터리의 끝은 스스로가 100% 코카서스 백인이라고 여기는 정치인이 흑인 스캔들에 시달리다가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33]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리인액트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종종 너무나도 빠져든 나머지 아메리카 연합국빠가 된다든지 리인액터 행사에서 똥군기 잡으니 생쇼하다가 비웃음을 사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리인액트를 하며 흑인들에게 남군 정당성을 부르짖다가 이뭐병 소리 듣기까지 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서도 이걸 언급하며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할 정도. 키 앤 필이를 풍자한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심슨 가족에서는 텍사스 부자의 할아버지가 속해있던 것으로 암시된다. 바트 심슨이 (사고로) 성조기에 엉덩이를 까는 모습이 연출되자 화를 내며 "저 국기는 우리 할아버지가 저항했던 국기"라고 언급한다.

욕심쟁이 오리아저씨에서는 론치패드 맥쾍의 조상이 남군 지휘관이었는데, 멍청한 지휘 때문에 패했다고 남군 후손들에게 조롱을 듣지만 휴이, 듀이, 루이의 도움으로 남북전쟁 라인액트에서 남군의 승리를 이끌게 된다.

사우스 파크에서는 에릭 카트먼이 알콜중독자가 된 남군을 이끌고 백악관까지 진군한 적도 있다.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에서는 독립 가능한 국가로 등장한다. 일본으로 미국을 항복시키면 일본의 괴뢰국으로 독립하기도 한다. Hearts of Iron IV에서 Man the Guns DLC가 있다면 1936년 11월 대선에서 공화당의 알프 린든을 뽑고 나서 파시즘으로 갈아탄 뒤, 관련 중점을 모두 찍으면 결정 사항을 통해 국호를 미연합으로 바꾸고 리치먼드로 천도한다.

Victoria II에서는 역으로 미국 플레이시 노예제 유지 쪽으로 이벤트를 맞춰주면 이에 반발한 북부가 남부 대신 반란을 일으켜 The Free States of America (FSA)를 건국하고 역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북부가 승리할 경우 미국은 아메리카 연합국으로 바뀐다.
[템플릿이미지출처] #, #, # [2] 깃발의 명칭은 성건기(The Stars and Bars)[3] 깃발의 명칭은 혈조기(The Blood-Stained Banner)[4] 깃발의 명칭은 연합기(The Confederate Flag)로 아래서 설명했듯이 이건 국기가 아닌 해군기다.[5] 참고로 이 사건의 범인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아파르트헤이트 시절 국기와 짐바브웨의 전신인 로디지아 시절의 국기가 새겨진 옷을 입은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이 두 상징 역시 남부기와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을 연상시키는 공통점이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아파르트헤이트로디지아 항목 참고.[6] 1861년 5월에 버지니아의 리치먼드로 옮길 때까지 임시수도였다.[7] 웨스트버지니아가 기존의 버지니아 주와 분리되어서 독립된 주로 설정된 것은 남북전쟁이 발발한 이후인 1862년이다.[8] 미국 남북전쟁에 대한 저명한 PBS의 다큐멘터리 The Civil War에서는 북부가 처음에는 한손으로 뒷짐을 지고 나머지 한 손으로 싸우다가 나중에 두 손으로 싸우기 시작하자 남부에게는 희망이 없었다고 단언한다.[9] 위에서도 나오지만 남부의 주들은 헌법을 단지 주 간의 협정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원문1] "As a national emblem, it is significant of our higher cause, the cause of a superior race, and a higher civilization contending against ignorance, infidelity, and barbarism. Another merit in the new flag is, that it bears no resemblance to the now infamous banner of the Yankee vandals."[11] 톰슨 본인이 고안하고 채택 된 남부동맹 두 번째 국기는 흰 바탕에 왼쪽 상단에 익히 유명한 안드레아 십자기가 들어간 형태였다.[원문2] As a people, we are fighting to maintain the Heaven-ordained supremacy of the white man over the inferior or colored race; a white flag would thus be emblematical of our cause… Such a flag…would soon take rank among the proudest ensigns of the nations, and be hailed by the civilized world as THE WHITE MAN'S FLAG[13] 이후 그랜트에게 털린다.[14] 너무 공세지향적이었고, 그 때문에 난전속에서 아군 오인 사격으로 사망했다.[15] 양측 다 노예나 하급 노동자 혹은 공병부대로 흑인을 쓸 생각을 했어도, 정식으로 전투 군인으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16] 연방군 54,000 vs. 남군 55,000[17] 고작 몇 십 km 앞이었다.[18] 많은 국가들이, 육상에서 쓰는 국기와 해상에서 쓰는 국기를 따로 가지고 있다.[19] 두께 1.75인치[20]미 해군의 대령에 해당함.[21] 두께 1.5인치[22] 현 미 해군의 중령에 해당함.[23] 현 미 해군의 소~대위에 해당함.[24] 현 미 해군 준사관에 해당하며, 일부 합격후보생들이 정식 임관을 기다리며 이 직책에 배치되기도 했다.[25] 정식 임관 시험을 통과한 사관후보생.[26] 그냥 통짜 금색으로 되어 있다.[27] 두께 1.25인치[28] 장교라기보다는 장교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일종의 제복 착용 군무원이었다.[29] 당시엔 단일 계급이었다.[30] 그래서 영상 시작부분에 해당 영상은 본 방송사의 의도와 상관이 없으며 노예와 아이들에게 적절치 않습니다 라는 문구가 나온다.[31] 이신론이었던 나치당 성향과 히틀러의 최종 정책에는 동의하지 않고 유색인종을 노예들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었다.[32] 단순하게 흑인들의 도피처가 아니라 망명간 가수와 문화인들이 세계 문화를 선도할 정도가 된다. 작중 미국은 이를 막고자 미국과 캐나다를 차단하는 장벽을 세우면서까지 노예들의 탈출을 막았다. 그러나 캐나다로 도망간 흑인들이 올림픽에서 압도적으로 금메달을 휩쓸자 부랴부랴 흑인들로 팀을 만들고, 여성 참정권 운동이 일어나면서 케네디가 당선되어 약간의 희망이 생기는가 했다. 하지만 원래의 역사처럼 케네디가 암살되면서 다시 암흑기로 빠지게 된다.[33] 해당 정치인은 대체역사의 미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안 출신이었고 히틀러를 흠모하고 있었다. 조상부터 히틀러와 만날 정도였으며 아버지는 아예 미국과 냉전중인 캐나다를 선제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암살당했다. 그리고 이 사람은 미국을 개신교의 성경적 가치관으로 되돌리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동성애자들에 대한 관용을 무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소유한 노예가 주장한 혼혈주장 때문에 자살한 것과 다르게 DNA 결과는 음성이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