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 창세기 1장 1절(공동번역성서)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분은 '나다.'하고 말씀하시는 그분이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러라."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일러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선조들의 하느님 야훼시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이름이 되리라. 대대로 이 이름을 불러 나를 기리게 되리라." - 출애굽기 3장 14~15절(공동번역성서)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 요한 복음서 1장 1절(공동번역성서)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 드려야 한다. - 요한 복음서 4장 24절(공동번역성서)
가톨릭 성경 | 개신교 개역개정 | |
보라, 나의 종은 성공을 거두리라. 그는 높이 올라 숭고해지고 더없이 존귀해지리라. 그의 모습이 사람 같지 않게 망가지고 그의 자태가 인간 같지 않게 망가져 많은 이들이 그를 보고 질겁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수많은 민족들을 놀라게 하고 임금들도 그 앞에서 입을 다물리니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을 그들이 보고 들어 보지 못한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던가? 주님의 권능이 누구에게 드러났던가?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받은 자, 하느님께 매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털 깎는 사람 앞에 잠자코 서 있는 어미 양처럼 그는 자기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구속되어 판결을 받고 제거되었지만 누가 그의 운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던가? 정녕 그는 산 이들의 땅에서 잘려 나가고 내 백성의 악행 때문에 고난을 당하였다. 폭행을 저지르지도 않고 거짓을 입에 담지도 않았건만 그는 악인들과 함께 묻히고 그는 죽어서 부자들과 함께 묻혔다. 그러나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가 자신을 속죄 제물로 내놓으면 그는 후손을 보며 오래 살고 그를 통하여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리라.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가 귀인들과 함께 제 몫을 차지하고 강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리라. 이는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 가운데 하나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또 그가 많은 이들의 죄를 메고 갔으며 무법자들을 위하여 빌었기 때문이다. |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전에는 그의 모양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의 모습이 사람들보다 상하였으므로 많은 사람이 그에 대하여 놀랐거니와 그가 나라들을 놀라게 할 것이며 왕들은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그들에게 전파되지 아니한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 |
이사야 52장 13절-53장 12절[19] |
당시에는 많은 신이 있었다. 그래서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다. 실제로 하느님은 다른 신들과 비교해 특별한 권위를 지닌 분으로 당신의 신분을 밝히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이름이라는 관념은 일차적으로 다신교를 믿는 세계에서 통용되는 관념이다. 그러니 이런 세계에서는 모세의 하느님도 당신의 이름을 말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모세를 부르신 하느님은 여느 신이 아니고 진짜 하느님이시다. 본래 참된 의미의 하느님이란 여럿일 수 없다. 하느님은 본질상 한 분 뿐이시다. 그러기에 그분은 신들의 세계에 있는 신들 중 하나로 등장하실 수 없다. 그분의 이름이 다른 신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일 수는 없다. 이와 같이 하느님이 주시는 응답은 모세의 물음에 거절하는 답이기도 하고 그 물음에 응하는 답이기도 하다. 그분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나는 있는 나다."하고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그분은 단순히 '있는 분'이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느님이 당신의 신원을 몸소 밝혀주신 이름, 곧 '야훼YHWH'라는 이름을 소리내서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했다. 그것은 그분의 이 이름을 다른 신들의 이름 가운데 하나로 격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성경을 새로 번역하면서 이스라엘에게는 언제나 신비에 차 있고 함부로 발음해서는 안 되었던 이 이름을 여느 이름처럼 적어놓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그분의 신비를 일반적인 종교사의 평범한 사례로 끌어내리게 되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하느님께는 그분을 그려 보일 수 있는 어떤 그림도, 그분을 부를 수 있는 어떤 이름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자렛 예수> 국역번 1권 221~222p에서 인용 |
하느님께서 당신의 본성에 모순되지 않는 한 하고자 하시는 것을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능력. 하느님의 작용적 속성에 속한다. 하느님께 있어서 지성과 의지와 능력은 하나이며 서로 명확히 구별되지 않는다. 이 능력은 하느님이 지니신 최고 권위의 표현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마태 28:19)고 하신 말씀에서 그 권위가 나타나 있다. 이 능력으로 세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전능은 세상의 창조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식되었고(창세 2:7, 이사 29:15-16, 예레 18:1-6, 로마 9:19-24), 지혜와 관련되었다(지혜 7:24-25, 욥기 37:14). 하느님의 전능은 또한 당신의 구원능력을 통하여 나타났고(출애 4:1-5, 예레 16:21, 이사 50:2),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루었다(마태 8:1-27, 골로 1:10-12). 그리스도의 강생, 기적, 부활 등은 그리스도가 지닌 능력의 표현이며(루가 1:35, 사도 2:22-24), 그리스도 자신은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지니신 전능의 표현이다(1고린 1:18-25). 이 전능에서 성령이 참여하고(1고린 2:4-5, 에페 3:16, 로마 1:4, 15:13:19 ), 사도계승을 통하여 교회 안에 전달되며(사도 1:8, 1데살 1:5, 2디모 1:7-8), 성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들에게 전해진다(에페 6:10-13, 골로 2:12).가톨릭 대사전, '전능' 항목
우리가 모시는 신은 전지전능하셔서 확실히 현재와 미래와 과거를 다 알고 계신다. 허나 그는 시공간을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에 시간이 우리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우리가 너비와 길이, 깊이를 보듯이 동시에 볼 수 있기에, 그에게 과거나 미래는 없고 그저 한없는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가 보는 우주는 우리가 보는 우주와 완전히 다르며, 따라서 자유 의지와 전지전능함은 충돌하지 않는다.[62]
하느님께서는 결코 인간의 모습이 아니시다. 그분께서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시다. 하느님께서는 성을 구별할 여지가 없는 순수한 영(靈)이시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의 ‘완전성’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어떠한 완전성, 곧 어머니의 완전성, 아버지와 남편의 완전성을 반영한다- 가톨릭 교리서 370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