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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의 국가정보
국기
공식명칭
에리트레아국(티그리냐 : ሃግሬ ኤርትራ[1], 아랍어 : [2]دولة إرتريا)
면적
117,600km²[3]
인구
5,481,906명(2017년 통계)
수도
아스마라(ኣስመራ, Asmära)
정치체제
임시 대통령제 공화제, 일당제
대통령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ኢሳይያስ ኣፈወርቂ)
임기
민주주의수준
권위주의 정권, 독재정권
명목 GDP
42억 5600만 $(2015)
1인당 GDP
630$(2015)
36억 2500만 $(2011)
1인당 GDP
720$
6억 4,400만 $(2004)
6억 2,200만 $(2004)
공용어
티그리냐, 아랍어, 영어
민족구성
티그리냐족 55%, 티그레족 30%
화폐단위
국가(國歌)
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ኤርትራ ኤርትራ ኤርትራ)
목록에 없음 (2014년 2월)[4]
상비군 수
32만 명 #
GDP 대비 군사비 비중
20.9%(2009)

1. 개요2. 역사3. 사회4. 군사5. 문화6. 외교 관계7. 기타

1. 개요[편집]

아프리카북한.

언론자유지수에서 다른 나라도 아닌 북한을 제치고 최하위를 기록한 나라.[5]
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한 신생독립국의 가장 최악의 전개[6]

아프리카 홍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 1993년 건국된 나름 신생국가. 수도는 아스마라. 전체 종족 구성에서 티그라이족(티그리냐)이 55%로 압도적인 우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30%에 이르는 티그레족을 포함한 기타 민족도 포함되어 있다. 티그레족은 에티오피아에서는 2004년 기준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폭압적인 독재자의 독재 정치와 잔혹한 인권 탄압 행위로 인해 아프리카의 북한이라고 불리며, 실제로 세습이나[7] 우상화[8], 핵개발, 자국 독재 정권을 보호, 지원하는 동맹관계의 이웃 국가[9]가 없다는 것을 빼면 북한과 거의 판박이, 복사판 이상으로 동일하다. 그럼에도 대량살상무기 개발이나 테러 지원국 등으로 국제사회에 어그로를 끌지는 않아서 에리트레아의 인권 문제는 거의 국제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게다가 군사력도 매우 약해 리비아카다피파나마노리에가, 세르비아밀로셰비치처럼 강대국의 군사개입만으로도 충분히 현재 집권하고 있는 독재자 아페워키가 축출되고도 남지만 자원부국도 아닌 에리트레아를 건드려봐야 나올만한 실익도 없고 설사 붕괴시켜도 나라꼴이 민주화는 커녕 산업화 이전 한국수준이라 그다음 이라크 시즌2. 그리고 무엇보다 고립주의 성향이 되어가는 미국이나 국제사회에서도 거의 관심이 없는 상황이다.

2. 역사[편집]

에리트레아는 4세기에서 6세기 동안 번영한 고대 악숨 왕국의 주요 항구가 있던 지역이다. 950년경에 에리트레아는 초기 에티오피아 왕국과 연합을 이룬 자치국이었다가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7세기 부터 19세기에 에리트레아의 통치권을 놓고서 에티오피아, 오스만 제국, 티크라이 왕국, 이집트, 이탈리아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홍해의 소유권도 이탈리아의 소유가 되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기지로 사용되었던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6개 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가, 1941년부터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에리트레아는 1952년 경에 에티오피아의 1개 주로 병합되었다. 1962년 11월 14일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를 합병하자 이슬람 중심의 에리트레아 해방전선(ELF)과 기독교도 중심의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Eritrean People's Liberation Front) 등은 민족주의 분리운동 독립 전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ELF의 조직원들이 1977∼1978년, 1985년에 대거 에리트레아 해방전선-인민해방군(ELF-PLF)이나 EPLF에 합류함으로써 ELF의 군사조직은 와해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ELF-PLF도 EPLF로 거의 흡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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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에티오피아군과 교전하는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게릴라 병사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에티오피아군과의 전쟁을 중단하지는 않았고 계속해서 독립전쟁을 한 결과 결국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1952년 에티오피아의 주가 되었지만 1962년부터 무려 30년에 걸친 독립투쟁 끝에 1993년 독립했다. 에리트레아가 독립하면서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 되었고 에티오피아에게 항구 이용비를 엄청 올리고 에티오피아 돈을 받지 않으면서 에티오피아와 갈등이 생겼으며, 결국 항구를 차지하고자 에티오피아와 1998년~2000년까지 이사야스 아페워키의 지도 하에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이 전쟁에서 에리트레아는 혼란에 빠진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크게 선전했지만 결국 스케일에서 밀려 전쟁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스라엘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에게 밀리면서 안 그래도 열세였던 공군 전투기 다수를 상실하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반대로 러시아아랍 동맹의 지지 및 에티오피아 내부 여론의 반발을 잘 활용하여[10] 외교적으로 영토를 잃지 않고 에티오피아를 물러나게 함으로서 일단 전쟁은 휴전으로 종료되었다.

당시 전쟁에서 에티오피아를 지원하던 이스라엘에 대하여 극렬한 증오를 가져서인지 나치 깃발을 흔들면서 분노하던 시위대까지 있었다. 더불어 이슬람교와 에티오피아 정교회가톨릭, 그리고 루터교회를 제외한 다른 종교는 일절 선교를 금지하며 적발되면 사형까지 당하도록 법으로 정해졌다. 다른 종교 및 종파와 달리 극소수 신도를 가진 루터교회를 인정해준 것이 바로 전쟁 당시 중립을 지켜주면서도 미국과 이스라엘 지원에 딴지를 걸던 북유럽 나라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한다. 하지만 루터교회조차 탄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도들이 정부로부터 강제징집을 당했었다는 2003년도 기사)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악감정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1993년에 이스라엘과 수교하여 공식 외교관계도 유지하고 있고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대신, 서안지구와 요르단을 통합, 가자지구이집트에 통합하는 식의 대안[11]을 지지하고 있다. 같잖은 해결법

그렇게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폐위와 멩기스투 정권이 붕괴되고, 에티오피아 반란 연합세력이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는 등의 혼란을 틈타 EPLF는 1991년 5월 수도 아스마라를 탈환한 뒤 에리트레아 독립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1993년 5월 24일 독립을 선포하였다. 4년 이내에 새 헌법을 제정해야 하는 국회는 1993년 6월 초대 대통령으로 EPLF의 사무총장인 이사야스 아페워키를 선출했다. EPLF는 1994년 유일 합법정당인 민주정의인민전선(PFDJ, People's Front for Democracy and Justice)으로 개편되었다.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인한 전쟁은 유엔의 중재로 2000년 12월 종전되었고, 유엔 평화유지군은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국경지대에 폭 25Km의 임시안전지대(TSZ)를 설치하고 양측을 감시하고 있다. 2005년 10월 에티오피아가 국경분쟁 해결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TSZ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공중비행활동 금지조치를 취한 이후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 양국간에 군사적 긴장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이 벌어진 이후 2003년 3월 국경위원회(EEBC, Eritrea-Ethiopia Boundary Commission)가 양국간 국경의 소도시인 바드메(Badme)를 에리트레아 영토라고 결정하자, 에티오피아는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양국간 국경 획정작업이 중단되었으며, 양국 간의 대화는 끝나고 말았다. 2005년 10월에도 국경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에티오피아는 TSZ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공중정찰을 금지시켰고 또다시 국경지역에는 군사적 긴장상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군사적 긴장상태로 인해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의 국경분쟁으로 재정수입은 감소하고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여 오랜시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10만명에 달하는 수단 국경지대의 난민과 7만 5천명의 에티오피아 추방난민은 에리트레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04년 4월에 에리트레아 내에서의 인권상황이 악화되었고, 다당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성장촉진법(AGOA, Africa Growth Opportunity Act) 수혜대상국에서 에리트레아를 제외시켰고 현재까지도 에리트레아인들은 하루하루를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3. 사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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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아스마라의 모습.

에리트레아의 독재자 아페워키는 PFDJ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당제 도입을 계속 연기하고 있으며, 2001년 12월 실시하기로 약속했던 국회의원 선거도 무기한 연기하였다. 따라서 국회를 통해 간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 선거도 계속 미루어지고 있어 집권층 내부에서도 민주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2001년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모든 민영 언론사를 폐쇄하고 다수의 언론인을 체포한 바 있는 악명높은 언론탄압국이다.

이러한 이유로 언론자유지수에서 북한을 누르고 최하위를 기록했다.[12] 2001년 모든 민영 언론사가 폐쇄되었다. 독립운동 때 에리트레아는 정당 수립을 요구했으나 정작 지금은 민주정의인민전선 1당.물론 민주도 아니고 정의롭지도 않으며 인민을 위하지도 않는다 정확히는 이사야스 아페워키[13]라는 천하의 개쌍놈[14] 독재자 한 명이 통치하는 1인 독재 국가이다. 선거1997년, 2003년, 2004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없다. 북한은 그래도 선거라도 한다. 물론 그래봤자 투표를 마음대로 할 권리조차도 없는 그냥 형식적인 선거일 뿐이니 북한이나 에리트레아나 거기서 거기인 셈.

에리트레아의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로 1993년 4월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후 구성된 과도정권이 집권하고 있는데, 에리트레아 의회는 150석 정원의 단원제 국회를 채택하고 있으며 PFDJ가 유일한 정당이다. 현재 에리트레아의 문맹율은 41%에 달하며 평균 수명은 52세(남 51세, 여 53세)이다.

한비야가 자신의 여행서에서 얼굴도 잘생기고 엘리트인데 덕망도 있다고 그토록 칭찬에 마지않았던 에리트리아의 지도자씨가 바로 이 인물이다. 그야말로 한비야의 흑역사. 물론 90년대 중반에 한비야가 여행할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 독립 전쟁으로 죽어라 싸우던 터에 독재를 강화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좋게 봐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15] 현재 20년 넘게 집권 중. 다만 주변국에 의도적으로 해를 끼친다거나[16] 하지는 않는 듯하다.

최근 유럽행 난민들의 상당수가 에리트레아 출신으로 밝혀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소말리아남수단,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처럼 내전중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장 전 국민이 굶어 죽기 직전도 아닌[17] 국가에서 난민이 너무 많길래 이상하게 여겼는데, 알고 보니 나라 꼴이 차라리 소말리아가 나을 정도의 헬게이트였다.소말리아보다 못할 수가 있기는 한가? 아프리카의 웬만한 다른 후진국들도 소말리아에 비하면 천국일텐데 나라꼴이 한 마디로 아프리카의 북한인데 북한만큼 극단적인 통제는 하지 못하다보니[18] 난민이 쏟아져나오는 것. 관련 기사.

해결책은 현재로서는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민주주의 의식이 약한 에리트레아는 북한과 달리 독재자 하나 잡는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니다.솔직히 북한도 김씨 일가 하나 없앤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현 독재자와 똑같은 사람이 나오거나 우간다, 리비아, 이집트, 부르키나파소, 라이베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콩고민주공화국처럼 독재자의 지배를 겪다 독재자가 축출된 여타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내분이나 내전, 쿠데타, 종족 분쟁과 같은 혼란한 상태가 일어날 공산이 크다.

4. 군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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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는 인구도 적고 경제적으로도 북한보다 한참 뒤떨어지는 빈국이나 GDP의 20%를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다. 참고로 북한은 25%~30% 정도. 그럼에도 32만 명[19] 규모의 군대를 운용하고 있어 징집 가능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군인이다. 전체 인구 대비로 볼 때 북한 다음으로 현역[20] 병력이 많은 나라가 에리트레아이다. 참고로 에티오피아군은 현역 15~18만 명에 예비군은 거의 없다.

허나 GFP 40위권의 에티오피아와 달리 GFP에 등재되어 있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에리트레아군은 전쟁을 준비한답시고 징병 기간을 10년이나 잡고 있지만 실제로는 병사들을 광산에서 노동시키는 등 소위 공짜 노동력으로만 써먹고 있기에 전투 효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북한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북한군은 기본 무장은 갖추기 때문에 전쟁터에서 소모품으로라도 써먹을 데가 있는 반면 에리트레아군은 돈벌이에만 집착하여 기본 화기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그냥 명목상으로만 30만 대군을 자랑할 뿐이다. 한마디로 형편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따라서 북한군의 남침 가능성을 우려하는 한국군과[21] 달리 에티오피아군은 에리트레아보다는 오히려 소말리아 지역의 군벌들을 더 두려워한다.[22]

5. 문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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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의 전통 춤을 추는 여자들.

에리트레아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데, 티그리냐 50%, 티그레 및 쿠나마 40%, 아파르 4%, 사호 3%, 기타 3%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리트레아 남부 고원지대에는 티그리냐어를 쓰는 기독교도, 북부 고원지대와 동부, 서부 구릉지대에는 티그레어를 쓰는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으며, 티그리냐어를 쓰는 티그라이족은 남쪽 국경 티그라이의 에티오피아 지역주민들과 동일한 인종집단으로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티그레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대부분 목축업을 하고 있다.

해안 사막평원에서는 사호어와 아파르어, 서부 평원지대에서는 베자어와 나일 제어를 사용한다. 해안과 수단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랍어, 아스마라 주변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공용어는 티그리냐어와 아랍어인데, 티그리냐어도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 즉 아랍어와 같은 어족 같은 어파에 속하는 친족 관계의 언어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다수파는 아니다. 다수 티그리냐 족이 에리트레아 정교회를 많이 믿으며 인구 50%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가톨릭이 12%를 차지해 기독교 인구가 총 62%이고 수니파 이슬람교도(티그레족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가 36%를 차지한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오순절교회복음주의 교회 신도들이 감금을 당할 정도로 개신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심하며, 기독교 박해지역의 기독교인들이나 개신교 박해지역의 개신교 신자들을 지원하는 국제선교단체인 오픈도어(Opendoor)에서도 에리트레아를 개신교 박해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옆 나라 에티오피아와 마찬가지로 커피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6. 외교 관계[편집]

대한민국은 1993년에 수교했으며 북한도 동년에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주(駐) 수단 대사관이 에리트레아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외교부의 소개 문서에 따르면, 현재 에리트레아 경유 항공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만 의외로 막상 가는 것 자체는 쉽다.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새벽 3시 40분(두바이의 항공편 대부분은 새벽에 출발한다)에 출발하는 플라이두바이 항공편이 직항운행하기도 하며, 카이로에서도 이집트항공이 직항운행한다. 당연히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인 입국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 견지"라고 한다. 여행금지국가는 아니지만 함부로 여행하면 위험하니 가지 않는게 좋다.

에리트레아는 정교회가톨릭을 제외한 개신교 선교를 박해하는 대표적인 종교탄압국가 중 하나인데, 마지막 한국인 교민이 개신교 선교를 하다가 2009년 8월에 추방되기도 했다. #

7. 기타[편집]

  •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외증조부인 아브람 페트로비치 간니발이 에리트리아 출신 흑인이다.

[1] Hagre ʾErtra.[2] Dawlat Iritrīya.[3] 에티오피아와 영토, 국경 분쟁 중이라 면적이 오락가락한다.[4] #[5] 다만 2017년, 드디어 북한에게 꼴찌 자리를 뺏겼다. https://en.m.wikipedia.org/wiki/Press_Freedom_Index [6] 차악은 남수단처럼 극도로 혼란스러운 경우.[7] 겉으로만 이렇지 나중에 이사이아스도 세습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2남 1녀를 두고 있다.[8]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자신을 신인 것처럼 묘사하지는 않고, 그냥 독립투쟁 경력만 강조하는 수준이다. 김일성, 차우셰스쿠도 처음에는 우상화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상화할 가능성도 무시하지 못한다.[9] 북한의 경우 중국이 있기는 하지만 최근 중국조차도 북한을 적대하거나 비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심지어는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을 버리고 한국과 손을 잡거나 혹은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허락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국교, 동맹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북한 김씨 독재 정권 체제가 붕괴될시 한반도가 미국의 영향권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물론 주한미군이 북한 지역에 주둔하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하에서 남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인정해주자는 의견도 중국 내부에서도 간간히 나오곤 한다.)[10] 실제로 1990년대 말 이 전쟁을 다룬 국내 언론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내부에서는 "국민들은 굶어 죽는데 경제나 살릴 것이지 무슨 전쟁이냐" 며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11] 이것을 3국해법, 영어로 Three state solution이라고 한다.[12] 참고로 언론자유지수는 142점 만점인데 점수가 높을수록 언론자유도가 낮음을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북한 최고 기록이 2012년 141점인데 에리트레아 최고 기록은 역시 2012년에 탄생. 무려 142점 만점![13] 본래 독립투사였으나 아프리카의 독립투사 출신 지도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독재자로 변질된 인물이다. 에리트레아 독립 이후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에티오피아와의 전쟁 과정에서 민영언론 폐쇄, 일당독재 체제 구축, 영구적 전시체제 구축 등을 강행하며 나라 전체를 자신의 사유물로 바꿔놓았다.[14] 개쌍놈 맞다. 거의 나라 꼴을 아프리카의 북한 꼴로 만들어 놨으니 그 막장성은 김씨왕조에 맞먹는 막장 독재자라고 할 수 있다.[15] 참고로 무솔리니후세인, 히틀러, 벤 알리, 카다피 같이 부정부패와 숙청,전쟁으로 나라를 망친 독재자들도 집권 초기에는 정상수준을 넘어서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16] 에티오피아와의 갈등은 에티오피아 전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가 압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17] 애시당초 그 정도면 정권이 유지되지도 못한다. 하다못해 그 북한조차도 극단적인 기아 상황은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약 3년 정도였고, 그 이후에는 식량 부족이 그렇게 극심하지 않았음에도 정권이 흔들렸고, 그 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는 판이다.[18] 북한의 경우 남쪽으로는 남한의 DMZ와 NLL 등에 막혀있고, 북동쪽으로는 러시아 연해주 지방과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러시아 국경을 통해서 탈출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고, 북쪽으로는 중국이 북중 국경의 압록강 부근에 철조망을 치고 중국 경찰, 군인이 엄격하게 단속, 검거하여 북한에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을 북한으로 강제송환시키는 등 북한 주민들의 탈출을 원천 차단하는 반면 에리트레아는 이웃 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수단이나 에티오피아, 지부티 같은 아프리카의 나라들이 워낙 가난한 빈국들이다 보니 국경을 굳이 차단하려고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 나라들은 내부가 혼란한 상황이라서 국경 통제에 신경을 제대로 못쓴다.[19] 이 가운데 20만 명은 현역이다.[20] 예비군까지 포함하면 순위가 조금 떨어진다. 그래도 상위권이다.[21] 물론 남침해봤자 개박살나겠지만, 승패를 떠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크게 우려한다.[22] 실제로 실전 경험이나 무장 수준, 병사들의 사기나 영양 상태도 에리트레아군보다 소말리아 군벌군이 훨씬 낫다. 애시당초 자기 국민들을 그저 자신의 욕구 충족에 쓸 노예로나 생각하는 이사이아스 일당과 달리 소말리아 군벌들은 어쨌든 자기 병사들이 너무 허약하거나 훈련이 안 되어 있으면 다른 군벌 총에 맞아 죽기 십상이다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