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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왕국
المملكة الأردنية الهاشمية
Hashemite Kingdom of Jordan
파일:요르단 국기.svg
파일:요르단 국장.svg
국기
국장
الله، الوطن، الملك
알라, 국가, 국왕
면적
89,342 km²
인구
10,269,022명 (2021년) | 세계 87위
수도
공용어
종교
이슬람교 95%, 기독교 4%, 드루즈교바하이교 등 기타 1%
시간대
UTC+2(서머타임 시행)
명목 GDP
418억 달러
GDP(PPP)
941억 달러
1인당 명목 GDP
4,428 달러
1인당 GDP(PPP)
9,406 달러
$1,660억 / 세계 78위(2020년)
통화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사실상 전제군주제),[1] 단일국가, 양원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18위(2020년)[권위주의]
건국
1921년 4월 11일 (요르단 토후국 건국)
1946년 5월 25일 (독립)
1952년 1월 11일 (헌법 제정)
국왕
총리
오마르 라자즈
HDI
0.735
도메인
.jo
국제 전화
+962
ISO 3166-1
400, JO, JOR
여행경보
여행유의
황색경보 지정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
여행자제

1. 개요2. 역사3. 정치4. 외교5. 군사6. 경제7. 자연8. 종교9. 문화, 사회
9.1. 언어9.2. 관광
9.2.1. 유명 관광지9.2.2. 가는 방법
9.3. 스포츠
10. 국가

1. 개요[편집]

Jordan Travel Video Guide

서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3] 수도암만(عمان).

면적은 89,342km², 인구는 10,248,069명(2017년 통계).[4] 얼핏보면 내륙국 같지만 홍해로 이어지는 해안선이 아주 약간 있다. 아카바는 유일한 항구도시.

정식 국명은 요르단 하심 왕국. 영어로는 'Jordan'이라 하며[5] 아랍어 표기로는 알-우르둔이라고 한다. 같은 이름의 요르단 강으로부터 국호를 따 왔으며, '요르단'이라는 번역은 대부분의 번역 성경의 저본인 라틴어판에서의 번역명인 Iordanis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

여담으로 구글에 영문 국명인 Jordan이라고 치면 스포츠 용품이나 마이클 조던 관련 결과만 가득 나온다. Jordan country라고 쳐야 나라 요르단 관련 결과가 나온다.

2. 역사[편집]

※ A는 북부 암몬 일대, M는 중부 메데바 일대, P는 남부 페트라, S는 시리아 사막일대

요르단 지역은 요르단 강의 아랍어 명칭인 우르둔에서 유래하였다. 고대의 페트라로 유명한 나바테아 왕국이 유명하고, 고대,중세사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역사와 다소 비슷하다. 고대 로마 시대 이 지역은 아라비아 나바테아로 불렸다. 고대 말 이 지역에는 아랍계 기독교 왕국 가산 왕국이 들어섰다.

이슬람화 이후 이 지역은 고대 로마와 파르티아 중립지대 역할을 상실하고 무역 중심지 역할을 상실하였다.

오스만 제국 말기에는 베두인들을 정착시키고 러시아 제국에서 피난 온 체르케스인들을 이주시키며 농업을 확대하였다.

파일:Arabia_1905-1923.png

요르단 왕국의 시작은 하심 가문의 일원으로 메카의 샤리프였던 후세인 빈 알리(حسین بن علی, Hussein bin Ali, 1853/1854~1931)의 반란에서 비롯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영국이 무함마드의 정통 후손임을 주장하며 일어난 후세인에게 접근, 오스만 제국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면 전후 그 대가로 통일 아랍국가를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맥마흔 선언. 후세인은 이에 동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전후 약속된 아랍국가 건설은 빈 말이 되었고, 영국은 요르단 지역을 차지해버렸고, 후세인의 차남인 압둘라가 트란스요르단의 형식적인 국왕이 되었다.

한편, 같은 하심 가문의 헤자즈 왕국은 압둘아지즈 빈 사우드의 네지드 술탄국에 점령당하여 합병되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인데, 이런 사연 때문에 요르단의 하심 왕가와 사우디의 사우드 왕가는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현대의 이라크는 1958년에 공화국이 되었기에 일단 이 사연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그렇다고 사우디와 사이가 좋단 말은 아니다

나세르아랍 연합 공화국 구상에 자극을 받아, 1958년 한때 요르단과 이라크의 하심 왕국들끼리 '아랍 연방'이라는 연합을 구성하기로 하고, 이라크의 파이살 2세를 연방의 원수로 추대하기로 했다. 그러나 반 년 만에 이라크에서 압둘카림 카심의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국왕 파이살 2세를 포함한 파이살 1세의 후손들을 학살해버렸고, 이라크로 망명했던 후세인의 장남 알리의 아들 압달라('Abd al-Ilah)[6]도 끔살시켜버렸다. 그래서 현재 이라크 하심가의 수장은 후세인의 4남인 제이드[7]와 그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3. 정치[편집]

공식적으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입헌군주제라곤 하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고 국왕이 모든 권한을 쥐고 있는 전제군주제 국가다. 국왕은 총리와 군부 및 정보기관 수장 임명권을 갖고 있으며,[8] 대법관과 의회 의원[9]까지 국왕이 임명한다. 의회 역시 국왕이 해산권을 가지고 있어 국왕 내키는 대로 소집하고 해산하여 있으나 마나한 존재다. 입법도 공식적으론 상원과 하원의 인준을 거쳐야 하지만, 실제론 국왕이 있는 정부 주도의 입법이 대부분이다.[10] 언론에 대한 탄압도 심각한 수준이라 언론과 출판, 인터넷은 무조건 검열하며 국왕, 왕실, 정부, 군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철저하게 금지하며 할 경우 가차없이 무거운 벌금을 물거나 징역 산다. 기자들에 대한 정부의 탄압도 심각하다. 그러다 보니 요르단은 언론자유지수가 138위에 불과할 정도로 심각한 언론탄압국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다.

파일:2018-06-14T150027Z_1952498080_RC1742C81AB0_RTRMADP_3_JORDAN-GOVERNMENT-CABINET.jpg

요르단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압둘라 2세 국왕(왼쪽)과 오마르 라자즈 총리(오른쪽)

후세인 1세는 꽤나 개념있던 군주로 이름이 높으며, 그의 치세 때 입헌군주제가 되었다.[11] 현 국왕인 압둘라 2세는 그의 장남. 그는 다른 아랍 왕족과는 비교될 정도로 개념충만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아버지보다는 약간 평가가 안 좋은 편이다. 또한 그의 아내인 라니아 왕비가 미인으로 유명하다.

평가가 안 좋은 건 압둘라 2세가 이스라엘과 미국을 노골적으로 편들어 이슬람 민족주의라든지 자국에서 꽤 많은 수를 차지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는 요르단에 이슬람 과격파가 득세하거나 민주주의로 이행될 것을 우려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되려 군사원조 등 막대한 지원을 제공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12] 정치적으로는 큰 힘이 없다지만, 그래도 국왕이고 압둘라 2세 역시 반정부적이거나 자신에 대한 비난을 탄압해서 인권면에선 아버지에 못 미친다는 의견이 많다. 반대파를 정중히 대우하면서 반대파에게도 인정받던 아버지와 달리 강압적으로 나서면서 과격파들에게 받는 원한도 큰 듯.

이 때문에 요르단에서도 종종 과격파에 의한 테러가 벌어지는데, 2005년 암만에 있는 고급 호텔이 폭발하여 많은 사망자를 낸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폭발사고로 전설적인 슬래셔 영화 할로윈 시리즈 제작자이자, 사막의 라이온 등을 감독한 무스타파 아카드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후 할로윈 시리즈 판권은 아들인 말렉 아카드가 이어받아서 2010년대에 리부트된 할로윈 시리즈 제작에 말렉 아카드가 참여하고 있다.

튀니지이집트에서 벌어진 민중혁명으로 요르단 왕가도 좌불안석이다. 그동안 친미, 친이스라엘 정책으로 지원을 얻어 왕가와 군부를 유지했기에 인구 다수가 팔레스타인계로서 불만을 억누르던 터에 이런 일로 이집트에 이슬람 과격 정권이 세워지고 그 여파로 요르단도 민중혁명이 터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벌써부터 왕가는 각종 세금을 내리고 불만을 다독이고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 위기론도 있었으나 그래도 2012년 11월까지도 난장판이 된 시리아와는 달리 그럭저럭 잘 넘어간 듯.[13]

2014년 아랍권을 휘어감은 암적인 존재 다에시(IS)가 나오면서 요르단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에시의 주요전략이 국내 치안이 불안정하고 국가가 파탄나기 일보직전인 나라에 기생하여 이슬람의 성전을 주장하며 하층민들이 이에 동조하는 형태인데, 요르단의 경우 치안유지도 잘 되고 있고 국민의 의식 수준도 높아 아직 대대적인 침략이나 각종 시설의 공작파괴 등을 받지 않으나 요르단 내에서 가담자가 나오면서 테러라든지 여러 우려가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시리아 내전에서 난민들이 수십만씩이나 들어온 상황이라 임금은 하향세를 보이고[14] 집세가 급속히 올라버려서 자국민들의 불만이 상당한데 이와중에 이라크에서도 난민들이 대거 몰려오게 생겼기 때문.[15] 근데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에게는 요르단 주민들 상당수가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인 걸 보면서 배은망덕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16]

그러다보니 요르단도 감당이 안되어 2017년 1월에 더는 난민을 못 받아주겠다며 시리아 국경을 폐쇄했다. 공식수치상 요르단이 수용중인 난민은 200만 가량으로 그 수효는 300만 이상인 터키 다음이다. 터키가 8천만대 인구를 보유한 반면 요르단은 천만단위, 요르단은 상상하기 어려운 세계최악의 난민부담을 감내하는 셈이다. 유럽 난민 사태를 논하지만 실상 비교를 불허하는 이 인구대비비중에서 유럽은 명함자체를 내밀수 없다. 때문에 IS와 시리아 반군들이 대거 진압되고, 시리아 내전이 종결로 다가간 2010년대 이후 요르단 정부는 난민의 귀향을 독려하고 있다.

2015년 2월, 다에시측은 과거에 포로로 잡았던 요르단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를 요르단 측에서 잡은 다에쉬 테러리스트들과 맞교환하기로 한 협상을 결렬하였고, 이후 조종사를 산 채로 분살(화형)시켰다. 이 동영상을 본 요르단 측은 테러리스트들을 즉각 사형시켰으며, 국민들은 ISIL의 만행에 격분했다.[17] 압둘라 2세가 직접 공습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표명하며 크게 분노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18]

그리고 요르단은 2017년 8월 1일부터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에 이어서 강간범이 결혼하면 죄를 묻지 않는 악법을 폐지했다.

2018년 6월 4일에 요르단에서는 정부의 긴축 정책과 증세조치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총리가 물러났다.

요르단에서는 2018년에 좌파정당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들이 창당한 '시민동맹'은 결국 크게 활약하진 못했는데, 요르단의 무시무시한 기성정당들(아랍사회주의 바트당 요르단 지부, 요르단 공산당, 심지어는 극좌파 혁명조직인 팔레스타인 해방민중전선 계열 정당이 두개나 있다.)이 걸었던 운명을 그대로 따라간 셈. 본래 아랍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민족사회당이 1956년 선거에서 승리한 후 공산주의자들을 포함한 좌파 내각을 구성하자 후세인 1세가 당을 해산시켜버리고 1989년까지 정당활동 전면금지를 해 버렸던 나라라 특이한 것도 아니다. 아랍권 국가들이 대부분 민족주의+약간의 좌파를 더한 독재국가이거나, 친미 왕정 국가이거나, 이슬람 극단주의 국가이거나 내전 상태나 그에 준한 막장국가(...)가 되버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요르단은 친미 왕정으로 남기로 결정한 셈이라 볼 수 있다.

2021년 코로나19 유행으로 경제가 흔들리면서 정치에도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왕자가 쿠데타 음모에 연루되었다가 가택연금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기사 함자 왕자는 초반에 쿠데타 음모를 주도한 적이 없다며 항변을 하며 저항하다가 결국 국왕의 작은아버지인 하산 왕자의 중재하에 국왕에게 충성 맹세 서한을 보냈고, 갈등이 표면적으로는 봉합된 모양새를 보였다.기사

4. 외교[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요르단/외교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군사[편집]

요르단군 문서 참조

6. 경제[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요르단/경제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자연[편집]

파일:Wadi Rum.jpg
와디 룸(Wadi Rum)이라는 붉은색 사막 지역.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작품을 찍을 때 필수요소급으로 써먹는 곳이다.
미션 투 마스》, 《마션》, 《알라딘》 등에서 이곳이 나왔다.

국토의 80%가 사막일 정도로 척박하다. 사막성 기후에 더운 곳도 꽤 많지만, 바람이 불고 기후도 선선한 곳이 많아 다른 아랍국가 왕족들이 이 곳에 피서를 오기도 하고, 해변이 있는 아카바의 경우 아예 여러 곳에 개인별장을 사둔 게 많다.

물부족이 심각한데 여름철에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연 강수량은 90mm밖에 안 될 정도로 강수량이 적다. 특히 요르단강의 수자원을 둘러싸고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과의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게다가 요르단은 전체 인구의 60%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을 정도로 도시화가 됐고, 인구 증가로 인한 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가뜩이나 부족한 수자원의 고갈이 더 심해지고 있다.그래서 요르단은 많은 양의 물을 수입해오고 있지만 이것으로도 감당이 안 되어 정부에서 서민들에게 물을 주 1회만 공급하는 배급제를 실시할 지경까지 왔다. 이럼에도 요르단의 물부족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사막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가뜩이나 적은 강수량까지 갈수록 감소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실 요르단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시리아, 이라크, 이란,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키프로스, 아랍 에미리트 등 중동 지역 대다수 나라들과 이집트나 알제리 같은 북아프리카 나라들도 같이 물부족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실 국가별 사회 문제 문서에 나오듯이 유럽도 상당수 나라들이 똑같은 물부족으로 물값이 어마무시하게 비싼 경우도 많다.... 다만 여긴 물이 많긴 한데 석회질이 많아서 정제해야하기 때문...이지만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이조차도 없어 물이 말라버릴 상황이다.

북미의 케찰코아틀루스와 더불어 백악기 말기 최대 크기의 익룡인 아람보우르기아니아의 화석이 이 나라에서 발견되었다. 이 익룡의 화석이 발견될 당시 압둘라 1세 요르단 전 왕과 하심 왕가 인사들이 직접 화석 발굴 현장에 와서 이 익룡의 화석을 보고 갔을 정도로 당시 요르단에서는 엄청난 화재거리였다고 한다.

8. 종교[편집]

요르단 국민의 92% 이상이 수니파 이슬람교도이지만, 팔레스타인이 인접해있기 때문에 국민의 약 7%가 기독교인이다.[19] 최대 종파는 정교회 소속이며[20], 가톨릭[21], 시리아 정교회,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등을 믿는 이들도 있다. 요르단에서는 또한 소수의 시아파 이슬람교도와 드루즈파 신자도 찾아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요르단은 이슬람권 국가들 내에서 다른 종교에 대한 관용을 베푼 것으로 유명한 나라였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차별을 금지하고 종교적 신앙과 예배를 자유롭게 실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현재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는 다른 중동의 이슬람 국가 지도자들 가운데 비교적 진보적인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5년 9월 13일 영국에서 가진 연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비판하며 포용과 타협을 바탕으로 한 대화를 강조한 바 있다. 요르단 의회도 2006년 9월 24일 요르단 내 이슬람 사원을 통해 극단주의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슬람 사원 및 기관에서 진행되는 모든 종교 행사에 대해 주제 및 강사 등 세부 내용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2012년에도 정당들조차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것을 금지하여 요르단의 정당들은 모두 세속주의를 추구하지 종교정당은 하나도 없다.

또한 요르단 정부는 국민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요르단인들은 물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난민들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허용하는 등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로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종교의 개방성이 높은 나라로 알려졌다.

요르단은 헌법으로 종교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슬람교 신자에게는 이슬람 율법을 적용하는 이중 법률체계를 시행하고 있다. 그래도 막장 이슬람 율법을 시행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브루나이보다 심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이슬람에 대한 비판을 금지하며 처벌하고 있는점이 인권단체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특히 반이슬람 만평을 실은 요르단의 작가가 기소되어었고 그의 만평이 삭제되고 싣는것까지 금지당했으며 재판을 기다리는 중 작가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살해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9. 문화, 사회[편집]

종교적으로 무슬림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에 이슬람 법계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채택하고 있지만 아랍, 이슬람권 국가들 중 문화적, 종교적으로 가장 개방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여성의 지위도 중동에서 상당히 높은편이라 여성들에게 베일을 강요하지 않기에 여성들도 베일을 안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일부다처제는 여전히 허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드물다.

파일:카라케일 맥주.png
요르단의 국산 맥주 카라케일(Carakale).

더불어 이슬람을 믿는 아랍 국가면서도 바레인튀니지처럼 이슬람 율법에서 하람으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22] 판매도 허용하고 있는데 이 때문인지 아예 페트라, 필라델피아, 카라케일[23]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들이 존재하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중동 이웃나라 사람들이 자국에서 금지된 술을 사려고 혹은 술을 마시기 위해 여행을 오거나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미국,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들에서 온 외국인 체류자들과 관광객들이 돼지고기를 살 때도 있으며 일반동성애 또한 합법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전한 중동국가 중 하나이다.

하지만 완전히 개방적인 것은 아니라서 넷플릭스의 첫 아랍어 드라마인 '진'이 외설논란에 휩싸였다.#

9.1. 언어[편집]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그리고 아랍어 방언이 타 중동국가보단 심하지 않아서 아랍어 어학연수지로 손꼽히는 나라 중 하나다. 거기에다 영어는 주요외국어로도 지정되어 있어서 영어도 널리 사용되는 편이다.

9.2. 관광[편집]

9.2.1. 유명 관광지[편집]

파일:암만 신전.jpg
수도 암만 시타델의 헤라클레스 신전

파일:Jerash.jpg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

파일:카스르 므샤타 2.jpg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지어진 별궁 카스르 므샤타

파일:케라크.jpg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십자군 시대의 케라크 성채


관광업은 영토가 척박하고 석유나 가스같은 자원도 그리 없는 요르단의 가장 큰 돈줄 중 하나이다. 이슬람 국가이긴해도 개방적인 문화이다 보니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거나 없애버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거기에 이라크나 시리아, 사우디라든지 주변 아랍권 나라보다도 치안도 안정적인 편이다. 때문에 이 유적지를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다. 요르단 유적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이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며,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3편 '최후의 성전'의 촬영지로 유명한 페트라 - 알 카즈네 신전. 유독 유적의 보존 상태가 좋은데 깊은 산과 계곡 속 천연 암반을 깎아 만들어진 유적들의 위치 덕분에 자연 풍화를 면하였고, 나바테아인이 사라진 뒤 이곳을 차지한 아랍인들이 우상화될 만한 석상의 얼굴만 부수고 나머지는 손대지 않은 채 방치하며 잊혀진 덕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론 알 카즈네에 보물이 있다고 하여 안에 들어가 파보기도 했지만 아무 것도 발견되지 않아 그대로 방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유적들은 1812년에서야 유럽인들에 의하여 알려졌다. 산으로 가려진 좁디 좁은 길에 이런 귀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당시 유럽에서도 엄청나게 놀랐다. 현재 페트라에서 이나 낙타관광객을 태워 주거나 관광 가이드를 하는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대대로 이 곳에서 살던 유목민들의 후손이다. 요르단 정부가 이곳 관리권을 국영화하려고 하자 대대로 이 유적지 부근에서 살아오던 이들이 반발하였고, 이에 정부가 이들을 달래고자 유적 관광업에 종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현지인들은 매우 저렴한 가격(대략 1500원)에 페트라에 입장할 수 있으나 외국인 관광객들은 10만 원에 가까운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요르단 국민이 아니더라도 학업 때문에 요르단에 살고 있으면 현지인만큼 저렴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다. 페트라를 널리 알린 주역인 인디아나 존스 3편은 요르단에선 1년에도 몇번씩 방영하여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 트랜스포머 2도 여기서 촬영한 것 때문에 여기서 정기적으로 방영해준다고 한다. 요단강 익스프레스의 종착역 사해도 유명하다. 대개 이스라엘 쪽으로 많이들 구경하러 왔으나 엄청 비싼 물가 덕에 훨씬 물가가 싼 요르단 쪽 바닷가로도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다. 이스라엘도 관광업에 타격이 갈게 뻔하니 사해 관광을 더 싸게한다든지 발버둥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가보면 사실 정말 별거 없다. 이집트 홍해가 있는 누웨이바에 가는 경로로도 많이 이용 된다. 2004년 테러 사건 이전에는 이스라엘-이집트 성지순례 코스로 텔아비브-암만-아카바-누웨이바 코스가 주력 상품이였다. 지금도 이 코스는 살아 있지만 2004년 10월 7일에 벌어진 동시다발 폭탄 테러로 관광객만 해도 31명이 죽은 사건 이후로 누웨이바를 가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페트라가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다른 관광지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페트라 뿐만 아니라 고대 로마 유적인 제라쉬나 아카바 만의 항구도시 아카바[24], 요르단 남부의 사막지대 와디 룸 역시 요르단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역사를 좋아한다면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수도 암만부터가 3천년 역사를 지닌 도시로, 그 시타델 일대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헬레니즘, 로마, 우마이야 시대를 망라하는 각종 유적이 즐비하다. 중세 이슬람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암만, 마다바 일대에 흩어진 10여개의 우마이야 왕조 시대의 별궁들을 답사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이슬람 시대의 비키니 벽화로 유명한 왈리드 2세 시기의 카스르 암므르. 참고 12세기에 약 70년간 십자군 하에 있던 요르단은 예루살렘 왕국의 동부 방어를 맡았기에 당시의 성채들도 제법 잘 남아있다. 사막 기후와 개발이 더뎠던 탓에 본국인 서유럽의 중세 성채들보다 더 잘 보존되어 있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것은 그 유명한 살라흐 앗 딘도 세 차례의 시도 끝에야 점령한 알 카라크 (케라크) 성채[25]와 샤우바크 (몽레알) 성채이다.

9.2.2. 가는 방법[편집]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도착비자를 2만원 후반대에 발급받을 수 있다. 또한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가진 몇 안 되는 아랍 국가라 이스라엘을 방문해도 입국에 별 지장이 없으며 이스라엘에서 육로로 입국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때 요르단에서 찍은 입국 도장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이후 타 아랍 국가들을 여행하려 할 경우 유의해야 한다.

대부분 중동국가들이 그렇듯이 항공편으로는 한국에서 요르단까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두바이도하, 이스탄불 등 다른 중동 도시들을 경유해서 가야 한다. 보통 두바이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타고 간다.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주의점을 숙지해야한다. 그나마 직접 이스라엘에 취항하는 터키항공이나 최근 대 이스라엘 관계 개선에 나선 아랍에미리트의 에미레이트 항공, 에티하드 항공은 사정이 나으나 카타르 항공은 이스라엘과 카타르의 사이가 매우 나쁘기 때문에 카타르 항공으로 경유할 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9.3. 스포츠[편집]

국가 이름답게 아랍에서 농구인기가 많은 나라로 2000년대 와선 한국을 여러 아시아 대회에서 자주 발목을 잡으며 한국 킬러가 되어버린 나라이긴 하지만, 농구가 강해진 것이 미국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못한[26] 농구선수들이나 아프리카 농구선수들을 귀화시켜서 단기간에 강해졌기에 진정한 강국이라고 해야할지? 참고로 2010 터키 세계 농구대회에서도 그동안 올림픽이나 세계 농구대회에서 자주 대패하던 하지만 아프리카 챔피언 앙골라 16강 진출 제물이 되었다. 참고로 앙골라는 8강전에서 우승팀 미국에게 121-66, 55점 대패로 이 대회 최다 점수차 패배에 최다 실점을 당했다.

이 때문에 카타르와 같이 허울좋은 농구강호라는 평을 듣다가 2011년 중국에서 열린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선 귀화선수의 국대 참가를 엄격히 제한한 것에 카타르가 스스로 실격패를 자초하여 탈락한 것과 달리 요르단은 의외로 강세를 보이며 자국선수 위주로 강호급으로 발전한 이란을 8강전에서 88-84로 이겼다. 필리핀도 준결승에서 이기고 아시아 최강급인 중국과의 결승에서 통한의 아쉬운 69-70 패배로 준우승을 거두었다. 어찌됐든 3위를 거둔 한국과 같이 2012 런던 올림픽 최종예선에 참가는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배정된 조예선에선 그리스푸에르토 리코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를 만나게 되었다. 경기는 2012년 7월 2일부터 8일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열렸는데 요르단은 그리스에게 63:107, 푸에르토 리코에겐 52:93. 2경기 모두 40점차 대패를 당하면서 참가국에서 가장 많은 실점을 당하면서 12위 꼴찌로 마무리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농구에서는 한국에 조예선에서 69-98로 참패했으며 약체인 몽골에 74-83으로 패해 11위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하긴 역대 아시안 게임에서 자주 부진했었던 요르단이긴 했지만...

중동답게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아무래도 축구는 아랍권에서도 떨어지는 편에 속한다. 요르단 축구에 관한 자세한 건 요르단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그래도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호주를 이기는 대이변도 보였다. 그러나, 16강에서 베트남에게 승부차기 끝에 탈락.

태권도도 좀 한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요르단은 은 3, 동 1을 획득했는데 모두 태권도에서 딴 것이다.[27] 특히 은 3개는 모두 결승에서 한국선수에게 패한 것이며, 동 1개는 8강에서 한국선수를 격파한 결과다. 하지만 그래놓고 4강에서 졌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태권도와 가라테에서 각각 금, 은, 동메달을 똑같이 2개씩을 받았던 걸 비롯하여 개인 종목은 꽤 하는 편인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선 태권도는 메달제로였다(가라테에서 은메달 1개를 받았으며 다른 종목에서 동메달 4개).

2016 리우 올림픽 태권도 68kg급에서 요르단의 아부다디 아부가우시가 한국의 이대훈을 비롯하여 여러 우승후보들을 꺾고,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1980 모스크바 올림픽대회 이후 최초의 메달을 금메달로 획득하였다.

10. 국가[편집]


요르단 왕실가(앗 살람 알 말리키 알 우르두니, السلام الملكي الأردني)는 1946년 요르단 왕국이 출범하면서 제정되었고, 압둘모넴 리파이가 작사하고 압둘 카데르 알타니르가 작곡했다.

[1] 모로코처럼 국왕이 총리를 탄핵할 수 있다.[권위주의] 3.62점[3] 물론 공식적으론 입헌군주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국이다.[4] 해외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요르단인+요르단거주 외국인을 합한수치다. 요르단은 특이하게도 자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과 해외에 거주하는 요르단인을 모두 요르단 인구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타국에 비해 인구집계기준으로서의 인구 뻥튀기가 있는 나라다. 그리고 최근 10년간 시리아와 이라크로부터 난민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많이 증가했다.[5] 사실 이 단어는 미국의 어떤 먼치킨 농구황제의 이름과 그 철자 및 발음이 같다. 이를 이용해 영국 코미디언 Ali G는 유엔 본부를 방문한 스케치에서 "아무리 유명해도 한 사람을 위해 의석을 마련해주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개드립을 쳤다.[6] 파이살 2세가 미성년자였을 때 섭정을 맡았다.[7] 1958년 당시 영국 주재 이라크 대사로 런던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했다.[8] 실제로는 의회의 동의를 받아서 임명하지만, 의회에서 부결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9] 상원만 해당[10] 다만, 현재 입법 과정에서는 선거로 구성이 되는 하원에 우선권을 부여한다.[11] 물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진압한 검은 9월 진압 같은 사건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12] 미국 공화당 의원이자 빌 클린턴 정권에서 하원의장이었던 뉴트 깅리치가 오래전 아랍 나라들을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할때, 미국 민주당에서 비웃었다. 그러자면 요르단은 친팔레스타인 국가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할 테고, 다들 미국을 싫어하는 민주국가가 될테니. 그리고 2013년 민주화된 이집트와 리비아에서 이 예상은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13] 이는 요르단 왕정이 공식적으론 전제군주제가 아닌 입헌군주제인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중동권 국가들의 국가 막장테크의 정석이자 가장 큰 요소인 이슬람 극단주의등 종교적 광신이 없다![14]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로써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저임금직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데 요르단 주민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받는 임금보다 더 싸게 일하는 데다가 수십만씩 몰려들어와서 실업률이 증가하고 집세가 급증해 물가도 동시에 급속히 오르는 바람에 집 가진 부유층들만 대박이 터져서 가뜩이나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악화되다보니 시리아 난민들이 곱게 보일 수가 없다. 이 문제 때문에 요르단 정부에선 시리아 난민들에게 정해진 구역 외에서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덕택에 시리아 난민들의 대다수가 시궁창인 상황에 빠져들었다. 참고로 터키레바논도 똑같은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15] 한국으로 친다면 북한에서 난리가 나서 300-500만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몰려온 상황인데 거기에 더해서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백만의 난민이 추가로 몰려오는 상황이라고 생각해보면 된다.[16] 사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들어오면서 갈 곳이 없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으로 가서 난민생활하다가 돌아올 수 없게 되면서 별 수 없이 정착하는 경우가 많았다.[17] 어이가 없는 사실은 이 조종사는 요르단에서도 제법 유력한 가문이었고 특히 그 아버지는 IS에 딱히 부정적으로 보지도 않았고 아들이 잡히자 단독으로라도 교섭을 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이슬람 교리에도 어긋나는 분살당하자 저놈들은 이슬람이라는 탈만 쓴 테러리스트라고 분개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자폭한 셈이다.[18] 압둘라 2세의 항목을 참조하면 좀 더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다만 위치도 위치이거니와 군생활을 마친 지 좀 되었기때문에 직접 몰기는 힘들다. 압둘라 2세는 공격헬기 조종 면허를 보유하고 있지만, 전투기도 격추당하는 마당에 국왕이 직접 헬기를 끌고 나가는 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자칫 격추라도 당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19] 다만 알아둘 점은 이들도 기독교인이 꽤 많이 사는 아랍 지역 나라들이 그러듯,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거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라는 사실.[20] 약 12만 명 정도이며, 통계에 따라 30만을 추산하는 경우도 있다.[21] 약 11만 명 남짓. 로마 예법 신자들이 약 8만 명으로 가장 많고, 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소속 신자들이 약 3만 명 정도이다. 이외에 시리아 가톨릭,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자들이 소수 있다.[22] 수도 암만에 돼지고기 정육점이 두 군데 있는데 고객은 주로 비무슬림과 외국인들이다.[23] 현지 양조장 사장이 미국 유학 생활 시절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10년간 맥주 양조업을 배우면서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모국인 요르단뿐만 아니라 해외의 맥주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중동 최고의 명품 맥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24] 20세기 영국의 사주로 일어난 대오스만 반란인 아랍 대봉기 당시 처음으로 점령된 도시였기에 역사적 의의도 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통해 잘 알려진편[25] 1868년 독일인 의사가 여기서 고대어로 된 돌비석을 발견했던 일이 있다.하지만 현지인들이 연구를 방해했고 독일 측이 이걸 알게되자 독일로 가져가려 했기에 현지인들이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서 당시 요르단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 총독에게 뇌물을 먹이면서 독일로 가져가게끔 허락했는데 주민들은 억지로 빼앗길 바에는 차라리 부순다고 부숴버리고 만다! 실망한 독일이 포기한 거랑 달리 프랑스에서 깨어진 돌비석 잔해나마 주민들과 협상 끝에 사가지고 가서 일부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돌비석의 2/3 수준만 프랑스에 있다. 그나마 탁본을 뜬 게 남아있어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 무려 기원전 840년쯤에 만들어진 가장 오래전에 남은 고대 히브리어 비석이다.[26] 하지만 NBA 선수로도 잠깐 뛴다든지 하부 미국 농구리그에서 뛰던 이들이라 이들도 절대 무시못한다.[27] 당시 남자만 8체급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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