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야 왕조

에 마지막으로 수정됐습니다.

아랍어: الدولة الأموية (al-dawlah al-ʾumawiyyah), الخلافة الأموية (al-khilāfah al-ʾumawiyyah), الأمويون ‎(al-ʾUmawiyyūn)
영어: Umayyad Caliphate

나무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00px-Age-of-caliphs.png

660~750
알안달루스의 이슬람 왕조
이슬람세력의 이베리아 정복
우마이야 왕조

이슬람 최초의 번영기이자 전성기

인류역사상 6번째로 거대했던 나라이자 왕조[1]

우마이야 왕조는 두 번째 이슬람 칼리파 시대로써, 현재 시리아에 있는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이슬람 제국을 통치하였다. 과거 한국 교과서의 표기는 옴미아드 왕조[2].

1. 혼란의 종식2. 이슬람 세습 왕조3. 후우마이야 왕조4. 우마미야 왕조와 후우마이야 왕조의 계보도5.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목록6. 둘러보기

1. 혼란의 종식[편집]

정통 칼리파 시대 말기는 이슬람 신앙의 동요와 잇따른 음모로 혼란이 거듭되던 시기였다. 3대 칼리파 우스만이 암살당하고, 그 배후가 밝혀지기 전 알리가 제4대 칼리프로 선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심을 품은 우스만의 6촌 동생이자 당시 다마스쿠스 총독이던 무아위야가 우스만의 복수를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알리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알리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무아위야와 동맹을 맺은 아이샤가 이끄는 메카 귀족들과의 첫 전투인 낙타 전투(656년)에서 승리했으며, 그 후 벌어진 십핀 전투(657년)에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자 무아위야군은 협상을 요구했는데, 협상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면서 알리를 은근히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 후 661년 알리가 하리지파에 의해 암살당하자, 힘의 균형은 무아위야에게 기울었으며, 그는 분열된 이슬람 세계를 통합하는 한편 칼리파 자리에 올랐다.

2. 이슬람 세습 왕조[편집]

무아위야는 선출로 칼리파를 뽑는 전통을 무시하고 아들 야지드에게 칼리파 지위를 물려 주었다. 이로서 칼리파 제도는 선출의 관행을 깨고 세습제로 전환되었다. 군사 조직도 옆나라 로마 제국의 양식에 따라 새로이 편제하였는데, 이는 강력한 중앙정권의 수립과 지속적인 영토 확장의 바탕이 되었다. 무아위야는 668년 콘스탄티노플 공략에 나섰다가 실패하였지만, 이는 아랍-이슬람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무슬림의 단결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마이야조의 전성기는 제5대 칼리파인 아브드 알 말리크와 그의 아들인 왈리드 1세 때이다. 특히 왈리드 1세는 정복 사업을 매우 활발히 펼쳤다. 그의 치세에 우마이야조의 영토는 아프가니스탄 지방과 옥수스 강 건너편, 팔루치스탄과 펀자브 지방, 북아프리카 전역과 스페인 전역까지 떨쳤다.

한편 내정에 있어서는 완비된 역체제도, 밀정사찰 제도로 전제군주권을 강화하였고, 종래의 잡다한 통화체계를 개선하여 중앙정부가 발행한 순수한 아라비아풍의 디나르 금화와 디르함 은화로 통일하였다. 다수의 비 아랍계 주민들도 지즈야와 갖은 무슬림들의 탄압을 벗어나기 위해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마왈리가 됨으로써 세금 수입이 대폭 감소하였다. 때문에 이라크 총독 하자지는 그들을 농지로 되돌려 보내고, 당초 부담한 지즈야와 인두세를 부과하였으므로 마왈리의 불만이 증대하였다.

특히 우마르 시기 땅에 대한 세금을 낼 의무가 있는 자가 개종할 때는 그 토지를 이슬람 공동체의 공유재산으로 하고 원래 소유주는 땅을 빌리는 입장에서 경영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실패하여 이후 수정된 하자지의 제도로 복귀하였다. 결국 가혹한 세금 때문에 궁핍해지고 아랍인만을 우대하는 인종차별에 분노한 피정복민과 호라산의 반란을 이용한 아바스 가문에게 멸망하였다.

칼리프들은 화려한 궁전 외에도 오아시스에 호화로운 별장을 지었고, 사치스럽고 문란한 생활을 즐겼다. 이들은 페르시아와 동로마의 문화와 풍습을 받아들였고, 전제적이고 화려한 생활방식 또한 흡수하였다. 이런 태도가 독실한 신자들에게 지탄받았고, 왕조의 신망을 추락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3. 후우마이야 왕조[편집]

747년 아부 알 아바스를 위시한 반란군들이 우마이야 왕조에 불만을 품던 피지배층들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750년 마르완 2세를 죽이고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켰다. 아바스 왕조를 세운 아바스는 우마이야 왕조의 왕족들을 불러들여 모두 죽였다. 하지만 10대 칼리파 히삼의 손자 아브드 알-라흐만은 운좋게 탈출하여 당시 우마이야조의 영토였던 현재의 스페인 중부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가서 그 곳의 지배자(에미르)가 되었다. 이로써 동 칼리파-서 에미르 체제가 생겼다.

4. 우마미야 왕조와 후우마이야 왕조의 계보도[편집]

5.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목록[편집]

대수
이름
재위기간
1대
661~680
2대
680~683
3대
683~684
4대
684~685
5대
685~705
6대
705~715
7대
715~717
8대
717~720
9대
720~724
10대
724~743
11대
743~744
12대
744
13대
744
14대
744~750

6. 둘러보기[편집]

Contents are available under the CC BY-NC-SA 2.0 KR; There could be exceptions if specified or metioned. theseed-skin-buma by LiteHell, the seed engine by thesee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