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평화 유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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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
유엔 평화 유지군

1. 개요2. 문제점
2.1. 흑역사
3. 주요 임무지역 부대장4.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유엔 소속의 연합군 부대로 주요 분쟁지역이나 재난지역에 파병된다. 그때문에 유엔 소속의 국가들의 군대를 필요할 때마다 차출하는 형태가 되어 비상설 조직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주도하에 생긴 유엔군과는 다르다.[1]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은 공산권 세력의 한반도 점령을 막기 위해 생긴 세력의 군대고, 평화 유지군은 어느 편에서도 서지 않고 중립 입장에 서서 단지 치안 유지를 위해 활동을 펼치는 군대다. 평화유지군이 파란색 방탄헬멧을 착용하고 중장비를 흰색으로 칠하고 큼지막한 UN 마크를 붙이는 등 위장 효과를 거의 없다시피 만드는 것도, 이들이 교전 임무가 아닌 치안 유지 임무를 맡기 때문이다.
1988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민간인이 사무총장 특별대리 겸 임무책임자(Special Representative of the Secretary-General and Head of Mission)를 맡고 부대 지휘관이 보좌하는 형태이다.

유엔 소속의 국가면 어디나 되기 때문에 부대장들이 전세계에서 온다. 한국의 UN군사령관의 경우에는 미군 장성인 한미연합군사령관이 겸직한다.

안보리의 승인이 있어야 구성할 수 있다. 대한민국소말리아동티모르에 파병한 적 있다.

그리고 분쟁지역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거나 분쟁국가들과 사이가 나쁜 국가들은 해당 지역 사령관직에 오를 수 없는 암묵의 룰이 있으며, 대체로 분쟁국가들과 전혀 전쟁을 한적이 없거나 아예 영토문제로 갈등이 없는 제3의 국가에서 사령관이 오는 경우가 많다.

2. 문제점[편집]

비상설 조직 그 자체가 문제다. 우선 제3세계 군대는 그 특성상 무장도, 훈련도 빈약한 오합지졸들이 많다. 무장 자체도 충실하지 못한 군대라면 필사적으로 싸우는 현지 게릴라들을 상대로 전투를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또한 UNPKO의 기본 임무는 분쟁지역에서 일종의 UN관할의 중립 안전지대를 형성하는 것이지 분쟁을 종결하는 것이 아니므로 분쟁으로 인해 개막장이 된 전쟁터의 상황을 손놓고 방관만 한다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 당시에 사라예보에서 저격수와 민병대에 의한 학살이 벌어졌을때도 이를 방치했다는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다.

게다가 기강이 빠져 있다는 건 대민범죄도 자주 저지른다는 뜻이다.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는 이게 너무 심각해서 UN이 직접 조사에 나설 정도였다. 물론 평화유지군 파견 당시 현지범죄가 아닌 파견국의 법률로 재판한다는 일종의 SOPA 협정을 맺고 들어가기 때문에 처벌할 수도 없다. 그나마 한국 같은 나라는 국제 이미지를 엄청 신경쓰기에 잡히는 족족 FM대로 처리하지만, 우루과이만 해도 그런거 신경 안 쓴다.

그래서 최근 UN은 PMC 조직으로 평화유지군을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PMC도 대민범죄 저지르긴 마찬가지지만 이 자들은 면책특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데다 평시에 훈련을 받기 때문에 전투력을 제대로 갖췄다는 점이 전혀 다르다.

2.1. 흑역사[편집]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1992년 평화유지 작전인 UNOSOM I(United Nations Operation in Somalia)를 시행한다. 계속되는 폭력과 내전으로부터 남부 소말리아의 안정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국제 연합은 군사연합을 구성하였다. 이는 1992년 12월에 소말리아에 진주하였으며, 리스토어 호프 작전은 국제 연합군의 성공으로 끝난다. 1993년 5월, 국제 연합군은 대부분 철수하고 UNOSOM II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UNOSOM II는 블랙호크다운으로 유명한 모가디슈 전투의 원인 중 하나로 적용된 파키스탄군이 주축이 된 UN평화유지군과 아이디드군이 정면 충돌하는 초대형 사건이 터짐[2]으로서 사실상 UNOSOM-2는 평화유지니 초동조치니 뭐니 다 집어치우고 일단 파라 아이디드를 상대로 싸우는 전투 작전으로 변질됐으며 다국적군도 완전 전투부대가 됐다. 이 엄청난 사건에 충격도 받았지만 평화유지 작전이 전투작전으로 변질될 것까지 예상을 못한 파키스탄은 핵심 전투병력을 모조리 철수시켰고, 짐바브웨와 루마니아, 스웨덴도 이러리라곤 예상을 못해 병력을 철수시키자 이어 다른 나라들도 덩달아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인해 아이티로 파견된 평화 유지군이 콜레라를 전염시켰다는 의혹이 있었지만 그 동안 유엔에서 부인해오다가 유엔 특별 조사위원이자 미 뉴욕대의 법학 교수인 필립 올스턴의 보고서를 통해 콜레라 창궐 책임을 인정하였다. # 이에 도덕적 책임은 물론, 물자지원에 대한 약속하기로 했다. #

이 콜레라 전염 사태는 아이티 국민의 약 80만명이 감염되고 약 1만여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유엔은 이것을 인정하는데 무려 5년이나 걸렸고 아이티는 극한의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평화유지군이 평화를 박살낸 것이다.

13년만에 아이티에서 불명예를 얻고 철수를 하게되었다. # 게다가 비용문제까지 겹쳐 일부 분쟁지역은 병역을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3. 주요 임무지역 부대장[편집]

나무파일:external/www.un.org/fc_ngondi.jpg
레오나르드 무리우키 응곤디(케냐군)
  • 아브예이
비르하누 줄라 게랄차(에티오피아군)
http://downloads.unmultimedia.org/photo/medium/554/554244.jpg
델라리 존슨 사키 소장(가나군)이사람만 사진이 크다
자료 없음

4. 대중매체에서[편집]


[1] 현재 주한UN군이 계승.[2] UN군은 아이디드 군이 점령하고 있던 선전기구로 활용되던 라디오 시설과 언론사, 무기 시장을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군 경기갑 여단을 파견했는데, 거꾸로 아이디드 군의 매복에 당한 것이다. 이 결과로 파키스탄군 24명이 사망하고 50여명이 부상당하는, UN 평화유지군 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죽은 파키스탄군의 일부가 시체훼손이 되면서 끌려다니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CNN에 보내고 UN 철수를 요구하는 초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3] 시크교 신도들은 터번을 쓰고 복무할 수 있다. 이 사람은 군복도 안 입고 찍었지만. 이 분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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