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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명이인/ㅇ. 동명의 방송인 겸 정치인은 유정현(방송인) 문서로.

1. 개요2. 생애3. 수전노 재상4. 사극에서
유정현
유정현

1. 개요[편집]

柳廷顯 (1355~1426)
고려조선 초의 인물. 본관은 문화(文化). 고려 원나라 간섭기 중찬을 지낸 유경(柳璥)의 자손이다. 태종 세종조의 재상으로 세종조의 다른 재상들과 같이 죽을 때까지 혹사당한 인물. 주로 역덕후들 에게는 세자 양녕을 폐하고 세종을 세운일과 세종의 장인 심온을 국문해 죽인인물로 유명하다.[1]

2. 생애[편집]

고려 말 음보로 등용되어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조선이 건국되고 정몽주 잔당을 숙청하는 과정에 관직을 회수당하고 귀양을 갔다가[2] 자식 둘을 모두 과거에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태조 2년 관직을 돌려받는다. 그리고 태조 3년 상주 목사에 임명되었다가 각 도의 관찰사, 대사헌, 형조판서, 참찬, 찬성 등을 거쳐, 1416년 좌의정이 되었고 곧 영의정이 되었다.

이후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하고 새로운 세자를 세우려 할 때 태종의 언질을 받고[3] 박은과 함께 어진 이를 세자로 세워야 한다며 주장해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는 데 일조했다. 세종이 즉위하고 상왕이었던 태종이 추진한 대마도 정벌 때 삼군도통사가 되었으며

태종이 소헌왕후의 아비인 심온을 숙청할 당시 옥사의 책임자로 임명 되었으며 박은과 함께 심온을 주도적으로 처벌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후폭풍을 막기 위해 심온의 가족[4]까지 처벌할 것을 주장하여 관노로 만든다. 하지만 태종 사후 세종에 의해 좌의정 판호조사로 제수 받고 궤장까지 하사 받았다. 세종의 원수와 같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중임을 맡긴 이유는 그가 건국초 조선에서 제일가는 재정 전문가 였기 때문. 이후 경시서 도제조를 임명되어 하루종일 시전에 죽치고앉아 물물거래를 단속하는등 다방면으로 활동을 했으며,[5] 판호조를 겸해 예산을 방만히 쓰지 못하도록 예산의 경위를 꼬치꼬치 캐물으며 반드시 줄이려고 했다.[6] 이외에 개인의 토지와 노비의 소유수를 제한하는 법안을 제시하고 관리의 녹봉도 화폐로 주자고 주장했으며 강물이 어는 겨울에는 조운을 육로로 바꾸자고 제안했으며 공신전이나 다름없는 별사전의 상속을 금지하는 제안을해 관철하는 등 상당히 혁진적인 제안을 한것도 보인다. 그리고 기반 공사가 많은 국초에 재정이 많이 필요한 역사를 주도하며 공사비를 상당히 줄였다. 나이가 70이 넘은 이 후 꾸준히 치사를 건의 했지만 세종의 혹사에 의해 계속 부려먹히다가 나이 72에 은퇴해 4일후에 죽었다.

3. 수전노 재상[편집]

개인적인 성품으로 수전노로 유명했다. 효령대군의 장인 정역의 사노가 그에게 돈을 빌린일이 있었는데[7] 납기일을 어기자 그 집으로 쳐들어가 가마솥을 압률해 왔으며, 일본에서 바친 코끼리가 사람을 죽이자 어차피 콩을 수백석씩 먹기만 하는동물이니 섬에 귀양보낼 것을 주장했고, 북방의 군인들은 어차피 수조권을 받으니 중앙에서 주는 급료를 없애자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한성 외관직의 하급관료들에게 임금체불과 국가에서 지급하던 점심을 없애 세종을 충공깽으로 몰기도 했다. 집에서도 자녀들에게 콩 한톨도 주지않는 인색함을 보여 당시 백성들에게 "당장 굶어 죽어도 영상의 재물을 안빌리겠다"라는 조롱을 들었다. 그래서 실록의 졸기도 그를 한대의 상홍양[8]에 빗대어 까고 있다.

4. 사극에서[편집]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신귀식씨가 맡아서 열연하는데 앞서 말한 수전노까지는 아니지만 지독하게 깐깐한 이미지에 드라마 말미의 심온 옥사 때는 태종에 의해 의금부 도제조에 임명되어 수사 지휘권를 받아서 심온과 그 관련자들을 혹독하게 추국하는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예 심온은 국문을 받을때 "이미 유정현 그 사람은 나에게 이럴 줄 알았다" 그의 지독함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말하였다.[9]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성우이자 배우인 김기현 씨가 열연하였으며, 극중 심온의 가족을 노비에서 풀어 줘야한다며 간청하던 정소공주가 죽자 태종의 조치를 부정하며 심온의 옥사를 뒤집고 주요 관료들을 다 탄핵하려 하자 신진 관료들에게 공수까지 하면서 기존 관료가 탄핵되면 나라가 돌아갈 수 없다며 옥사를 뒤집을 수 없지만 심온의 가족의 처지는 반드시 해결하고 사과하는 장면은 명장면

[1] 물론 이 두 가지 일화는 태종이 뒤에서 조종한 일이다.[2] 태조가 즉위하자마자 귀양에 처해졌다.[3] 세종대왕을 세우라고 주장하라는.[4] 소헌왕후의 어머니와 형제자매들.[5] 이때 너무 각박하게 집행해서 세종의 흑역사인 백성 자살사건이 일어나게 된다.[6] 이가 얼마나 심했는지 필수 비품을 사는 예산이 부족한 부서도 생겼다고 한다.[7] 돈거래를 부끄럽게 여기던 조선 양반들이 사노를 통해 돈거래했다는 사실을 보면 돈을 빌린주체는 정역으로 봐야 할 것이다.[8] 한 무제대의 재정관료 상인출신으로 소금과 철의 전매를 주장해 재정을 확대시켰지만 생활 필수품목인 소금과 철을 전매해 백성을 수탈 한다는 비판을 들었다.[9] 그런데 그 유정현은 반대로 심온이 고문에도 거짓 자백을 하지 않자, "심온 저 사람은 참으로 지독해" 라고 역으로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