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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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91년 서울특별시 출생. 한국양심적 병역거부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프랑스에 사는 한국 출신 중 대한민국의 병역의무 하나만으로 체류 허가를 받은 것을 언론에 공개한[1] 최초의 난민이다.[2] 2012년 7월 징병제 반대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유로 프랑스에 난민지위 신청을 했으며 2013년 6월 받아들여졌다. 이전에도 병역거부를 이유로 망명에 성공한 사례는 있었으나 유독 그가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한국인의 보편적인 사회인식에서 동성애 같은 난민으로 납득받을만한 사유가 있는 것이 아닌[3] 일반인이라면 상상조차 할수 없는 생각인 정치적 망명이라는 선택을 했다는 점이다. 즉 보편적인 인식으로는 군대 아니면 교도소 밖에 없고 교도소에 가서 출소후 범죄자로 낙인찍히며 사느니 차라리 군대 갔다오고 만다는 것인데, 이예다는 병역의무 앞에서 선택에 관한 상식의 틀을 완전히 부수는 행위를 한 것이다.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군대 그 자체만을 사유로 난민 신청에 성공했다는 점[4], 의외로 평범하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공감하기 쉬운 20대 초반의 금수저도, 높으신 분의 아들도 아닌 일반인이었다는 점[5], 언론에 공개된 시기가 탈조선 신드롬과 겹쳤다는 점. 그리고 지상파 언론까지 출연하였으며, 일본까지 가서 기자회견을 열 정도로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면서까지 언론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 점[6] 등이 크게 작용한다.

흔히들 이예다가 한국군의 열악한 복무환경 때문에 난민지위를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난민신청이 받아들여진 사유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때문이지, 복무환경과는 무관하다.

보통 타국의 징병제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대체복무를 시켜주거나 아니면 아예 국방세를 징수해서 군복무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막는 대체제도가 병행되지만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로서는 드물게 그런 배려가 전혀 없는 게 문제였다.

2. 반응과 여파[편집]

병역에 민감한 한국이지만, 의외로 한국 언론들은 그의 망명에 무관심했다. 설령 기사를 낸다고 해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가 난민자격을 획득한 후 기자회견을 했을 때에 한국 언론사는 단 하나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해외 언론들이 그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취재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한국사회의 특성상,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다. 남초, 30대 이상, 보수성향이 강한 커뮤니티일 수록 부정적인 여론이 강하다. 이예다는 자신과 같은 병역거부자들의 망명을 돕기 위해 자신의 SNS와 이메일 주소를 공개했는데, 이를 통해 살해협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진지하게 병역거부를 통한 망명을 상담하길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의 행동을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하겠지만 한국군이 징집병들을 취급하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유보적인 여론이 있다. 군복무가 자신의 양심에 반했으나 처벌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군복무를 한 사람으로서 그의 행동을 응원한다는 옹호적인 여론도 존재한다. 이렇다보니 이 기사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대다수지만 그 와중에도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가장 흔한 부정적인 반응은 "영원히 입국금지시켜라."이며, "국외로 추방시켜라.", "국적 박탈해라." 등도 나온다[7]. 이런 말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난민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난민신청을 한다는 것은 신청자가 모종의 사유로 본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탈옥수보고 "다시는 교도소 못가게 해라!"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게 없다.

첨언하자면 한국 정부가 친히 나서서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도, 프랑스의 난민법 때문에 한국에 입국할 수 없다. 즉, 그가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면 그건 프랑스의 난민법 때문이지 한국 정부의 입국금지조치 때문이 아니다.

3. 계기[편집]

병역을 거부하게 된 계기는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에서 생명에 대해 깨닫고 '어째서 내가 타인의 목숨을 죽여야 하는가'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였으며, 입대하기 전에 대한민국 국군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관련 저서나 국방부의 역사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군대는 안간다고 생각한 처음엔 교도소행을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갔다가는 그저 수감자의 수 +1만 늘어나고 사회에는 아무런 영향도 달라지는것도 없을 것[8]이라고 판단하여 차라리 나라를 떠서 난민 신분을 인정받는게 가장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그가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후 언론에 보도되면서 헬조선 신드롬까지 겹쳐져 이때까지 종교+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들 전부를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긍정적,부정적인 반응 전부 포함)을 받게 된 것을 보면 그의 정치적 계산은 제대로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이런 그의 결정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아버지(직업군인에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계급이 '대령')와 누나는 별 말이 없었으며 오히려 어머니가 감옥 가는 것도 충격을 먹었는데("어떻게든 군대 가! 그냥 가!" 라고 들었다고 한다.) 망명한다니 더더욱 충격을 받았으며, 감옥을 가면 출소 후 볼 수 있겠지만 난민으로 살면 언제 볼 수 있겠냐며 극렬한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결국 어머니에게 단돈 70만 원만 받아들고 프랑스에 관광 명목으로 들어가서 하루 지난 다음날 난민구호소에 접수하여 11개월(신청절차 4개월, 판정 7개월)의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본인의 언급으로는 난민치고는 이례적으로 빨리 나왔다고 한다. [9] 굉장히 불안했다고 한다. 자긴 '동성애자도 아니고 종교적 사유가 있는 것도 아닌 전례가 없는 상황인데 과연 받아줄까?'라는 생각을 수 없이 했었다고.

그 뒤에 양심적 병역거부 사유로 오랫동안 추가 사례가 나오고 있지 않았지만. 3년만에 드디어 새로운 난민인정자가 나왔다. # 난민 신청계기는 이예다 본인의 언론공개이후 마음을 먹었다고. [10]

그는 한국 국군의 파병이 권력자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당한 사건이라 보았으며, 병들의 휴대전화 소지 불가(덤으로 육군의 전자기기 소지 불가[11]), 굉장히 제한적인 외박 · 외출 · 휴가, 사상이나 정치적인 행보 감시 등의 일과 후 자유 부재를 이야기했다. 이런 그의 인터뷰에 당시 난민 심사를 하던 사람이 이를 듣고 '(내가) South와 North를 잘못 봤나?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했을 정도라고. 인권 수준이 높다고 생각했던 고소득·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충격을 먹었다고 한다. 죄수보다 더 못한 인권 수준의 사병 생활은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징병제가 사라지면 지금처럼 사람을 데려다가 고생시키고 제대로 보상도 안 해주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은 사라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왼쪽부터 아마미야 카린(작가), 통역자, 이예다, 안악희(現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서울지부장)
안녕하세요. 저는 이예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1991년에 태어났습니다. 현재 22세입니다. 2012년 7월, 20살이던 해에 징병에 가고 싶지 않아서 망명을 결심하고 프랑스로 떠났습니다. (중략) 2013년 6월, 프랑스 정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징병 거부로 망명한 한국인은 있었지만, 징병제 자체가 망명의 이유로 인정된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성소수자나 종교를 이유로 징병을 갈 수 없다고 하여, 망명이 허용되었습니다. (중략)
한국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체복무제도 없습니다.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1년 반 동안 수감됩니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는 징병에 응하지 않으면 취직이 어렵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징병을 거부한다는 것은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중략) 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한국에 있습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망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개선하도록 한국 정부에 요구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프랑스에 망명한 제가 한국에 돌아가면 감옥에 가게 됩니다.[12][13]
다른 망명자를 돕기 위해 연락도 받아준다. 망명 25시 그는 프랑스의 난민 관련 NGO인 'France Terre d'Asile'을 통해 난민 신청을 하였으며, 노숙도 해보고 난민기구에서 자원봉사로 나오는 밥도 먹고 살 정도로 힘든 부분을 겪었던 점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사실 그는 일본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언어도 어느 정도 통하는 터라 일본으로 가려 했지만 난민에 대한 인식은 한국과 별 차이가 없어서 접었고, 복지가 잘 되어있는 북유럽 국가로 가자니 추위가 싫어서 프랑스행을 택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 신청을 하겠다면 난 독일을 추천하고 싶다.[14] 나는 독일이 공식적으로 징병제를 폐지한 게 (난민 신청을 할 당시를 기준으로) 겨우 1년 전(2011년 7월)이라서 독일을 피했는데, 작년에 전쟁 없는 세상 활동가들과 독일의 활동가·국회의원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신들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의 비슷한 점을 들며 공감을 많이 하는 편이었고 병역거부권에 호의적이었다. 심지어는 나에게 "독일로 난민 신청을 하러 올 생각을 안 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리가 돕지 못해서 부끄럽다"라고 말한 의원도 있었다. - 출처
나무위키에서도 그의 인터뷰와 그가 가입한 시민단체의 기사를 토대로 해서 망명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진지하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유로 난민신청을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다음 항목을 참고 하는것을 추천한다.#
[1] 망명자 본인이 자신의 망명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본국의 정부, 언론이 이를 알아낼 방법은 없다. 단 2017년 UN에서 526명이 난민지위를 얻었거나 난민으로 신청중이다. 그것이 군대에 의한건지 아닌건지는 알수 없다.[2] 보통의 경우 수용국에서는 난민이 생기는 것을 무척 싫어하기 때문에, 난민 지위를 받기가 엄청나게 까다롭다. 그러나 이예다의 경우는 모셔가지 못했다고 땅을 쳤던 사례(독일)도 있다.[3] 이예다 이전에도 병역거부(+동성애)로 인한 난민이 있었으나 당시의 반응은 "나는 성소수자가 아니니까 난민으로 인정받을만한 해당사유가 없을거야"였다. 실제로 호주,캐나다 난민 허가 사유에서도 군대 자체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충분하지만 성소수자는 더더욱 위험한 신변의 위협에 처해있다. 고 명시되어 있었다. 사회인식도 군대에서 동성애자는 탄압받는다는 인식도 있어서 충격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4] 이 사람이 난민 신청에 성공하면서, 대한민국 병역의무가 엄청나게 열악하다는 사실이 전세계에 들통났다! 면접관이 북한이 아닌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라고 말할 정도다.[5] 전문대 졸업후 PC방 알바를 하며 생활했을 정도.[6] 이런 식으로 망명한 사람 대부분은 신변을 지키려고, 언론 자체를 꺼린다. 유튜브나 게시글을 포함하여 그에게 비난을 직접적으로 들어먹을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SNS에서 그에게 대놓고 욕설한 사람도 있었다.[7] 북한은 정치적인 이유로 자국민을 쫓아내며, 말레이시아는 국까 성향을 보이면 자국민도 예외 없이 국적을 박탈하거나 추방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외 사례이며, (유감스럽게도) 병역 거부를 이유로 자국 국민을 추방하거나 국적을 빼앗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다. 설령 국내에서 합법이라고 해도 타국에서는 난민 인정의 사유가 될 수 있다.[8] 실제로 정치적 목적의 병역거부자가 매년 한 자리 수 이내로 수감되고 있지만 아직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고 있다.[9] 의외로 프랑스의 난민 인정률은 매우 낮은 편으로, 같은 유럽국가인 독일에 비해 약 3배 정도 낮은편이다.[10] 기본적으로 난민 신청자의 인정여부는 국제법에 따라, 반드시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인의 소신에 따라 언론에 공개한 사람이 있는 반면, 난민 불인정으로 강제송환, 재심재판을 진행중인 경우도 있을수 있다. 현재로써 수많은 신청자중 본인의 양심발표로 언론을 통해 확인이 가능한 사례는, 독일 2건, 프랑스 3건, 캐나다 4건, 호주 2건 이다.[11] 해군과 공군은 카메라와 휴대전화를 제외한 전자기기를 병이 사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육군의 경우는 육군참모총장 지시로 어떠한 개인 전자기기도 상황을 불문하고 사용하지 못한다.[12] 현재 그는 프랑스에서 10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 난민자격 한국 국적 보유자이다. (자국인의 입국을 거절하는 경우는 없으므로) 귀국은 가능하지만 입국 즉시 병역법 위반으로 징역 5년 이하의 형사처벌이 확정이니, 제7공화국이라도 나오지 않는 이상, 아니 나온다 하더라도 귀국은 불가능한 것이나 마찬가지.[13] 유승준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하여 지금은 엄연히 외국인이다. 그래서 귀국 한국 입국이 막힌 것이다.[14] 유럽 연합은 더블린 조약으로 인해, 회원국 가운데 한 나라에만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실제 난민 인정률은 프랑스보다 독일이 훨씬 더 높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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