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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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仁川廣域市
Incheon Metropolitan City
남동구 정각로 29 (구월동)
하위 행정구역
면적
1,065.2㎢[1][2][3]
인구
2,936,382명[4]
인구 밀도
2,756.64명/㎢
박남춘 (초선)
33석
2석
1석
1석
교육감
도성훈 (초선)
11석[5]
1석[6]
1석[7]
9석[8]
1석[9]
상징
시화
시목
목백합
시조
032[10]
IATA 도시 코드
KR-28
홈페이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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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천광역시 위치.png
인천광역시의 위치
1. 개요2. 역사
2.1. 인천이 최초인 것들2.2. 명칭 유래2.3. 인구 추이
3. 지리
3.1. 생활권3.2. 서울과의 거리
3.2.1. 가깝고도 먼 곳3.2.2. 멀고도 가까운 곳
3.2.2.1. 중앙정부의 인천 패싱
3.3. 행정구역 개편 문제
4. 기후
4.1. 대기
5. 행정구역
5.1. 자치구 명칭 변경
6. 정치7. 군사8. 사법
8.1. 법원8.2. 검찰
9. 사회10. 경제
10.1. 실업률10.2. 재정10.3. 상권10.4. 특산물
11. 인천경제자유구역12. 문화
12.1. 방언12.2. 음식12.3. 축제12.4. 종교12.5. 스포츠12.6. 독서12.7. 음악12.8. 언론
12.8.1. 일간신문12.8.2. 방송
13. 관광14. 상하수도
14.1. 상수도14.2. 하수도
15. 매체에서16.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16.1. 영화16.2. 드라마16.3. 뮤직비디오16.4. 기타
17. 자매결연도시 및 우호교류도시
17.1. 자매결연도시17.2. 우호결연도시
18. 비판19. 출신 인물20. 인천광역시장21. 둘러보기22. 관련 문서23.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1. 개요[편집]

All ways INCHEON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
한반도 중서부[11]에 자리한 광역자치단체. 인천국제공항인천항이 있어 대한민국 수도권의 관문도시이자 항구도시로 기능하며, 국내외 대부분의 항공사는 국제선 허브공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삼고 있다. 관내에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조성 중이며, 이를 담당하기 위해 산하 외청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을 두고 있다.

면적은 약 1,063km²으로 한국 최대 면적 광역시다.[12]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인천직할시로 승격된 당시의 면적은 206.6km²였으나,[13] 지속적인 간척으로 면적이 대거 늘어났다. 80~90년대를 전후해 현재의 검단과 계양구 북부 등 주변지역이 편입되고, 궁극적으로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직전 정부의 직할시 광역화 정책에 따라 경기도 강화군, 옹진군을 편입함에 따라 오늘날 인천의 모습을 갖추었다.

2016년 KOSIS 국가통계포털 기준으로 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에 이어 국내에서 3번째로 인구 300만 도시가 되었다. 주민등록인구 기준으론 아직 300만에 이르지 못했다.

수도권보다 인구가 적은 경상도에 3개의 광역시가 있는 것과는 달리[14] 수도권에서는 인천이 유일한 광역시다. 서울은 특별시고, 나머지는 전부 경기도 산하 기초자치단체들이기 때문이다.[15]

육지를 기준으로 북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동으로 서울특별시, 부천시, 남으로 시흥시, 안산시와 접하고 있다. 해상으로는 남쪽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서산시태안군[16], 서쪽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NLL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룡연군, 옹진군(황해도), 강령군, 청단군, 연안군, 배천군개성특별시와 맞닿아 있다.[17] 이로 인해 접경지역이 관할하에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며, 자치군 2개를 보유한 유일한 광역시이기도 하다.

시목은 목백합, 시화는 장미, 시조는 두루미다.[18][19]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 유티가 두루미를 의인화한 것도 인천광역시의 시조가 두루미였기 때문이다.

서해에 접한 대규모 항만과 세계적인 국제공항, 경제자유구역, 개화시기 주요 개항장, 다도해 등 다양한 테마를 보여주는 도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발전해왔고,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1985년 인천시청 구월동[20] 이전을 기점으로 도심이 이동했다.[21][22]

인천을 한자로 仁(어질 인)과 川(내 천)으로 풀이하여,어진내로 순우리말화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인천이라는 지명이 인주(仁州)에서 조선 태종 시기에 격하당해 주(州)에서 점을 세 개 뺀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에 어진내를 대구광역시의 달구벌, 광주광역시의 빛고을처럼 사용하지는 않는다.[23] 차라리 인주를 순우리말로 번역해 '어진골'이라 하면 모를까...인천광역시를 순우리말로 이를 때에는 고구려 때의 지명이었던 미추홀을 훨씬 더 많이 쓴다. 단, 인천광역시 전역을 미추홀로 칭할 때도 있지만, 새로 명칭변경을 한 미추홀구(舊 남구)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수도 인근에 있는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일본요코하마시, 중국톈진시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다만 요코하마는 카나가와현 산하의 시로 도(道)에 속한 기초자치단체와 비슷한 반면 인천은 별도의 광역 자치단체를 구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2. 역사[편집]

인천광역시는 대체로 원인천, 부평, 강화 세 권역으로 구분된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역사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붉은 표시가 되어있는곳이 인천광역시의 행정구역으로, 광역시치고는 매우 넓다.

삼국시대에는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로 불리다 신라삼국 통일에 따라 통일 신라9주 5소경에 편입되어 한산주 율목군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다. 이후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인천 이씨 가문에서 7명의 왕비를 배출하면서 경원군, 인주[24], 경원부로 계속하여 승격되었다. 그래서 인천 이씨의 그 유명한 별칭이 경원 이씨.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시절에 군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인주가 다시 경기도 인천군(후에 인천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인천(仁川)이란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한말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개화의 도시인데, 인천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서양인들을 비롯한 외국인의 왕래가 잦았다. 현재도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에 구한말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담으로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서양 문물 중 대표적인 것이 야구축구 같은 스포츠 종목이다.

1995년, 경기도에서 강화군옹진군, 중구 영종지역을 새로 편입하면서 시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강화군은 인천광역시보다는 경기도 김포시와 더 근접해 있으며, 인천광역시 본토와는 단절되어 별개의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다. 옹진군은 인천 생활권이다.

이로 인해 관할 해역이 위도 1도 경도 2도에 달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 해역의 이름은 본디 경기만이지만 경기도에 경기만이 없고 인천에 경기만이 속하게 되었다. 또한 이를 통해 경기도에서 유인도 39개를 가져왔다. 광역시 출범 당시 초안에는 강화, 옹진군 외에 김포시 전역(결국, 검단면만 편입)과 시흥시(현 시흥시 북부(구 소래면 지역)는 1914년 이전까지 인천도호부에 소속, 1973년에 시흥군 편입 전에는 부천군)까지 편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만이 주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으로 편입되었다.

2.1. 인천이 최초인 것들[편집]

조선 후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대한민국에서 최초인 것들이 많다.[25]
  • 짜장면 : 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인 쿠리(苦力·하역 인부)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이 짜장면의 시작이었다. 이후 청조계지를 중심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중식음식점이 많이 생겼는데, 흔히 '원조 짜장면 집'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1905년에 문을 열었다가 83년에 폐업했다. 오늘날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은 2004년 한국인이 상표만 가로채서 세운 짝퉁이므로 주의.
  • 쫄면 : 인천에서 처음 생겼는데 이건 광복 이후 1970년대이다.
  • 축구, 야구 : 인천이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된 지역이다. 1904년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도입. (앞서 야구를 했다고 기록이 있는 인천의 일본인 학생이 있는걸로 보아 더 빨리 됐을거라는 추측도 있음) 축구도 인천을 통해서 들어온 종목. 축구가 야구보다 더 빨리 들어왔다. 야구에 있어서 구도(球都)가 어디인가를 두고 부산과 다투고 있으나 확실한 것은 한국에서 가장 빨리 야구를 도입한 지역은 인천이라는 점이다.
  • 자유공원 :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이 있다.
  • 경인선 :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 경인고속도로 : 인천광역시와 서울특별시를 잇는 대한민국 최초의 고속도로
  • 대불호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2018년에 복원돼 현재 역사 전시관으로 활용 중이다.
  • 영화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 1892년 개교, 현 영화초등학교.
  • 성공회 내동성당: 대한민국 최초의 성공회 교회
  • 내리교회 : 대한민국 최초의 개신교 감리회 교회
  • 제물포 구락부 :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사교클럽
  • 애관극장: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
  • 팔미도 등대 :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 하와이 이민: 대한민국 최초의 근현대적인 이민. 101명의 한인들을 실은 최초의 이민선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이후 1905년 일본의 제지로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총 7,22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인하대학교도 인천시민들과 하와이 교포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학교로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자에서 따왔다. 월미도한국이민사박물관도 있다.
  • 해수욕장: 우리나라 현존 최고(最古)의 해수욕장은 부산의 송도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있으나, 일본인 지주가 인천에 유곽과 함께 해수욕장을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름은 묘도해수욕장[26]이며, 지금의 북성포구 근처에 있어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묘도유원지라는 이름으로 영업하여 찾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나 현재는 텅 빈 백사장만 사유지로 남아있고, 명칭으로 찾을 수 있는 과거 해수욕장의 흔적이라고는 바로 앞의 간척지에 세워진 주공아파트인 만석비치타운이 전부이다.
  • 조선인촌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성냥공장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 동양연초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담배공장
  • 인천탄산수제조소: 대한민국 최초의 사이다공장. 우리나라 최초의 탄산음료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가 없으면 못 마십니다
  • 존스톤별장: 대한민국 최초의 별장. 6.25전쟁때 파괴됨.
  • 통제영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 인천기상대: 대한민국 최초의 기상대
  • 월미도 조탕: 대한민국 유일의 원조 조탕 해수탕[27]
  • 주안염전: 대한민국 최초의 천일염전
  • 전화소: 대한민국 최초의 시외전화
  • 훈맹정음: 인천 출신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최초의 한글 점자
  • 새나라자동차[28]: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승용차 제조공장. 현 한국GM 부평공장의 전신.
  • 인천시립박물관[29]: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박물관

2.2. 명칭 유래[편집]

인천 칭하는 단어로 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것은 미추홀(彌鄒忽)이다.[30]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軍□□首攻取 …[A] 彌鄒城 … [B]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33]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A] 미추성 …[B] 을 공격하여 취하고 (후략)

이후 고구려는 이곳을 매소홀(買召忽)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는 미추홀(彌鄒忽)의 다른 표기에 불과하며, 실제 발음은 ‘mit-kol/mi-kol’로 추정된다고 한다.[36] 여기서 ‘mit’은 물(水)의 뜻을 가진 어휘로, 밑(本, 始, 底), 뭍(陸), 미르(龍), 믿-(信) 등의 다양한 어휘로 분화되는 어휘이다.[37]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통일신라9주 5소경 제도에 따라 한산주 매소홀현(買召忽縣)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이름을 고쳐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38]으로 경덕왕때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인주(仁州)이다.[39][40]
경원(慶原)이라고도 한다. 매소(買召)는 미추(彌鄒)로도 쓴다.[41]

이후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의 왕후를 배출한 지역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한 번 더 승격되었는데, 이는 공양왕신종을 매개로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다시 인주군(仁州郡)으로 강등되었고,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의 이름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어,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다.[42][43]

2.3. 인구 추이[편집]

525,827명
634,046명
800,007명
1,083,906명
1981년 인천시 → 인천직할시 승격
1,386,911명
1,817,919명
1995년 인천직할시 → 인천광역시 개칭 및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강화군, 옹진군[44] 편입
2,353,073명
2,545,769명
2,600,495명
2,758,296명
2,925,815명
2,942,828명
2,936,241명

2017년까지만 해도 인구증가율이 1~2%에 달하였으나 현재는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국가적인 출산율의 감소로 젊은층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인천 내 신도시, 택지지구의 개발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다.

인천광역시는 송도국제도시, 영종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인천경제자유구역, 상업, 업무지구, 산업단지의 개발로 자족기능을 향상하고 있으며, 서울의 전세난에 지친 수도권 통근자들이 대안으로 찾는 도시로 지하철을 활용해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부평구와 계양구를 선호한다. 서울의 집값이 장기적으로도 내려갈 가능성은 희박하고, 하락을 가정해도 많은 인구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주장은 인천의 자족기능을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는 것이며, 자녀를 키우기 좋은 계획도시 지역이 서울엔 부족한 것을 간과한 것이다. 검단신도시만 해도 수용계획인구가 177,700명이며, 송도, 영종, 청라와 서창지구 역시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원도심 재개발도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수도권 인구와 시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는 조치가 꾸준히 취해지고 있어 인구증가가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전망은 어려워지고 있다. 뉴스기사 참고

인천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기초자치단체는 서구이며, 옹진군을 제외하고는 동구가 인구가 가장 적다. 연수구송도국제도시의 영향으로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2016년 10월 19일 3,000,013명으로 마침내 300만을 돌파해 1980년 부산시[45] 이후, 36년 만의 300만 도시이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300만 도시가 될 것이다. 다만 이는 외국인까지 포함한 인구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민등록인구로는 300만을 돌파하지 못했다. 증가세를 유지하던 주민등록인구가 2019년 5월(2,957,179명)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현재는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지역과 중구 영종국제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주변 지역으로 인구가 유출되는 추세다. 특히 부평구동구는 감소세가 더욱 심해지는 중이다.[46]

위의 영상에도 나오듯이 2018년 12월 말, 서구가 남동구 인구를 추월했다. 서구의 인구증가요인으로는 청라, 검단, 루원 등 도시개발사업의 활달한 진행을 들 수 있다. 계양구는 3기 신도시인 계양신도시가 개발 예정이지만, 동구는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고, 부평구는 그나마 남은 구산동과 일신동이 군사구역에다가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때문에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연수구는 송도국제도시와 동춘동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한 주택공급의 증가에 따라 2020년 현재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남동구도 논현지구, 구월아시아드단지, 서창2지구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서구도 청라, 가정2지구, 검단지구의 개발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중구도 영종국제도시가 인구 증가세를 주도하면서 구 전체 인구도 증가세를 보이며, 2019년 전국 인구 증가율 1위를 기록했다. 원도심 지역은 도심 공동화와 낙후된 상권으로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9년 6월, 동구는 66,000명선이 붕괴되었다.

통계청 KOSIS에서 제공하는 국가통계지표에 따르면 '2018년 인천광역시 주택보급률은 101.2%로 나타났다. 참고로 울산광역시 110.3%, 광주광역시 106.6%, 대구광역시 104.0%, 부산광역시 103.6%, 대전광역시 101.6%

2019년 295만 명이었던 인구가 2020년 294만 명으로 1만 명 감소했으며, 이와 같은 감소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민등록상 295만 명은 300만 명 이상의 대도시와 같은 혜택이 주어지는 마지노선인데 이 마지노선이 무너져 인천시는 300만 도시 혜택은 커녕 실•국 통폐합 등 행정 개편 축소가 불가피해졌다.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와 인천광역시 집계 결과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인천시, 인구 300만 안된다...전국시도 5위

하지만 계획 인구가 18만명인 2기 신도시검단신도시가 입주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인구가 조금씩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3. 지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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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생활권[편집]

도서 지역을 제외한 인천 본토는 크게 네 개의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동구-중구(영종지역 제외)의 동인천[47], 미추홀구와 남동구 및 연수구의 남인천[48], 계양구와 부평구의 북인천, 마지막으로 서구의 서인천. 도서 지역은 인천국제공항을 위시한 영종국제도시 생활권[49], 그리고 강화도 및 기타 군소도서지역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3.2. 서울과의 거리[편집]

3.2.1. 가깝고도 먼 곳[편집]

흔히 인천이 서울과 아주 가깝다거나 아주 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평구와 계양구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서울과 생각만큼 가깝지 않다. 연수구청에서 서울시청까지 자동차 기준 41.5km인데 이는 38.8km인 수원시청-서울시청, 38.0km의 안산시청-서울시청 간 거리보다 더 긴 수준이다. 서울 사대문안이 아닌 서울 강남역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하면 더 멀어진다. 직선거리로 보면 광화문 도로원표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의 거리는 광화문에서 수원시 영통구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며, 부평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분당신도시의 중심지인 서현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고, 영종하늘도시-광화문간 거리는 동탄신도시-광화문간 거리와 비슷하다. 각 자치구청, 시청과 서울시청 간의 거리는 하단 표 참고. 강화군[50]과 옹진군청은 제외. 옹진군은 여러 개의 섬들이다. 제일 먼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뱃길로 210km을 가야 하므로, 서울시청에서 인천항까지 45km 정도를 합산한 서울에서의 거리는 약 260km으로, 군위군, 남원시 일대까지의 거리에 육박하고[51]. 서울에서 제일 가까운 옹진군 관할 섬인 신도[52]만 해도 60km이나 떨어져 있다.

인천이 서울과 직접 닿은 곳은 강서구[53]뿐이고 도심인 영등포, 여의도, 부도심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신촌&홍대, 마곡지구목동은 가깝지만 이들 지역은 종로/강남 지역에 비해 일자리가 상당히 적으며, 서울 사대문 안과 강남구까지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과포화되어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경인고속도로와 수도권 서부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의 탓도 크다. 계양구청에서 강서구청은 11.3km , 부평구청에서 양천구청까지는 13.3km, 남동구청에서 구로구청까지는 17.3km에 불과하지만 극과 극인 도봉구청에서 중구청은 62.8km고, 노원구청에서 연수구청은 65.8km다. 군청까지 포함할 경우 옹진군청에서 도봉구청은 64.5km, 강화군청에서 강동구청까지는 69.7km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는 59.7km로 이천이나 평택시 송탄 일대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물론 인천공항철도의 직통열차 또는 택시렌트카를 이용하면 1시간만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도심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청까지의 거리(자동차 기준)
인천광역시청
35.1km
중구청
41.3km
동구청
36.6km
미추홀구청
38.6km
연수구청
41.5km
남동구청
33.3km
부평구청
26.8km
계양구청
26.2km
서구청
31.2km

철도 기준 서울역까지의 거리
인천시청역
31.2km
동인천역
36.8km
주안역
32.2km
인천역
38.7km
부평역
26.6km
원인재역
36.6km

철도 기준 서울역에서 부평역금정역, 인천시청역당정역과, 동인천역, 원인재역성균관대역과 비슷한 거리에 있다. 다만 경부선의 서울-경기 구간은 비교적 서쪽으로 우회한다는 것을 감안하자.

부평-계양권은 부평산단을 기반으로 자체 생활권을 이루기도 하며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어느정도 있고, 그 외 나머지 인천 지역은 공항철도가 지나는 서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체 생활권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인천광역시는 시민의 70%가 인천광역시 내 직장에서 종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천광역시는 부평구, 계양구를 제외하고 서울 통근, 통학률이 10% 미만이었고 이는 수원시, 화성시, 양평군 등 서울에서 멀거나 자체 생활권인 곳들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고양, 광명, 구리, 성남, 안양 등과 같은 경기도 근교 위성도시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인천에서 서울 통근자가 가장 많은 지역인 계양구, 부평구 역시 자족성이 높은 수원-서울 간 통근자 비중과 비슷했다.

수도권의 문화는 서울/인천/수원 크게 3대장이라 나눌수 있는만큼 문화적으로도 서울과 인천은 제법 차이가 있다. 일례로 2000년의 한 조사 기준, 당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주부들의 일회용 기저귀만 쓰는 비율이 서울은 84.6%로 대부분이었는데 인천은 54.7%로 반이 조금 넘는 것에 불과하였고, 서울 접경에 있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의 베드타운 생활권이 강하고 보수적이지도 않은 지역인 부천, 성남, 고양, 안양, 의정부, 구리 등에서는 서울과 거의 비슷한 사용률을 보였다. 이 말은 유년기를 서울에서 보낸 사람과 인천에서 보낸 사람간의 문화나 언어 등에 차이도 좀 있고, 즉 서울에서 시작한 유행은 금방 주변 위성도시로 퍼지지만 인천까지 오는데는 그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는 예로 볼수 있다.

또한 인천을 지나가는 서울시내버스 노선이 없다는 것도 생활권 상의 분절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서울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군포, 의왕, 파주에도 서울시내버스가 운행하는데 그보다 가까운 인천은 서울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54] 부평 바로 옆인 부천시는 광역버스도 아닌 일반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 4대문 안까지 도착할 수 있다.

3.2.2. 멀고도 가까운 곳[편집]

그럼에도 김포국제공항 인근에서 서울특별시와의 직접적 경계선이 약간 존재한다. 덕분에 1990년대 이후부터는 시외전화도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해졌다.[55] 당시 기준은 30km 이내였는데 인접 통화권은 예외가 적용되어 인천광역시 중구도봉구 간도 시내요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부천이 인천과 같은 통화권이고 부천과 서울이 맞닿아 있기도 했으니. 창원시와 한 생활권이라서 통합된 진해구의 경우도 인접 지역 시내전화요금 도입 이전에는 시외전화였음을 상기하자. (당연히 인천-서울도 시외전화였다.)

일단은 수도권인 만큼 서울과 이어진 교통도 발달한 편이라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는 심리적 거리와 실제 거리 간의 괴리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천은 1899년에 경인선이 개통되는 등 서울과의 교통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천국제공항철도, 7호선 연장선 등이 개통되어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해지고 있고[56], 여기에 GTX-B까지 개통되면 앞으로 서울과의 심리적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경기도의 도시들과는 다르게, 특히 부평-계양권이 아닌 원인천 지역의 경우 서울과 상당 부분 생활권이 분리된 면이 있다. 게다가 인천의 경우 수도권인 점을 감안해도 정체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서울과 이질적인 면 역시 상당히 많다.
3.2.2.1. 중앙정부의 인천 패싱[편집]
주민등록인구 기준 294만 명 가량이 거주하는 대도시임에도 아직까지도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정부에서도 인천에 문화시설, 고등법원을 짓지 않고 서울가서 해결하라는 정책기조이고[57] 수도권 매립지, 석탄부두, 화력발전소 등 서울의 혐오시설들이 자리잡아서 심지어 일각에서는 "서울의 식민지"(...)라는 아주 괴랄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해서 인천광역시 입장으로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모양이고, 인천은 엄연한 인천이지 수도권 도시,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야 한다는 주장이 인천시민들 사이에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도시 자체는 서울특별시와 따로 발전했더라도 인천을 중심으로 하는 인천권이라고 할 만한 도시권역이 없고, 심지어 인천광역시 내의 자치단체인 계양구, 부평구, 서구 지역은 인천 내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특별시의 위성도시화된 지역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광역시들과 1대1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인천은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경기도 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동쪽으로는 바로 서울과 접한다. 이로 인해 다른 경기도에서의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지며 이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은 상당하다. 따라서 경기도도 전혀 대표하질 못한다. 인천 옆에 자리한 부천시도 교통이 좋아지면서 서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나머지 인근 도시들은 그냥 서울의 위성도시들에 가깝다. 인천 인구가 300만에 달한다고 하지만 다른 지방 광역시들은 인구는 인천보다 적어도 대구-경북권, 광주-호남권, 대전-충청권은 각각 약 500만의 인구를 담당하고 있다. 인천과 비슷한 광역시로는 울산광역시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도 서울-인천의 관계가 부산-울산으로 대응된다. 따라서 울산에도 정부 행정 시설 등이 없으며 부산으로 가야만 한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인천시와 여러 시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인천에 대한 무관심, 홀대는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시절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도 인천 출신 인사가 공직에 거의 등용되지 않았고[59] 이는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장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수도권 규제의 여파로 산업 기반이 유출되는 와중에 인천시가 20년 전부터 육성해왔던 바이오 산업 허브를 정부에서는 정치 논리로 충북에 안겨주었고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최고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항공 산업 육성마저 경남 사천시에 내줘야만 했다. 인천 소재 국가 공공기관마저 이전시키려는 와중에도 인천고등법원, 국립 문화시설은 감감무소식이고 서울을 위해 수도권 매립지는 어떻게든 잔류시키고 심한 공해를 발생시키는 화력 발전소만 증설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와 시민이 아무리 노력한들 높으신 분들인식은 수 십년 전 인천을 서울의 님비 시설 건설지로 생각했던 것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다. 2019년 3월 인천지방법원에 서울고등법원 원외재판부가 설치되었지만 민사 합의부만 설치되었다.

3.3. 행정구역 개편 문제[편집]

: 인천광역시
: 인천광역시 (옛 경기도 김포군 검단면)
: 경기도 김포시
: 인천광역시 (옛 부평도호부)
: 경기도 부천시
: 경기도 시흥시 (옛 부천군 소래면)
: 경기도 시흥시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서 인천권의 서울 통합안은 다른 방안에 비해 덜 주목받고, 나오는 빈도도 낮은 편이다.

특히 원인천(중•동구,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 지역의 경우, 부평 지역(부평, 계양, 서구)과도 생활권과 문화의 이질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데 서울이나 경기도와 같은 색깔이 완전 다른 두 도시를 합친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점을 낳을 것이다. 부평 생활권과 인천 생활권 역시 다른 지역으로 구분하는 경향 역시 조금 남아있다. 생활권 자체가 아예 영등포권에 속한 광명시의 서울 편입 문제만 해도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할 지경인데 1981년에 대구와 같이 직할시로 승격할 정도로 자족기능이 수도권의 여타 위성도시보다 훨씬 강한 인천의 경우에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다만 행정구역 개편 방향이 도 폐지 및 광역자치단체 분할 쪽이 아닌 광역자치단체 대규모 광역화(도+광역시 통합)로 간다면 인천광역시 해체 후 경기도에 환원 혹은 시 단위가 아닌 "서울도" 로서의 서울/인천/경기 광역 대통합 혹은 경인통합(인천권의 서울 편입)이 논의될 가능성은 있다. 이건 자유선진당 개편안에서 서울+인천권 통합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자유선진당이 제시한 광역화 방안에 대해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인천이 '경기도 인천시'나 '서울특별시 인천구'가 되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한 바가 있다.[60]

그 외에는 인천과 인접한 부천시, 시흥시, 김포시와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하며 부평구, 계양구가 인천광역시에서 분리되는 방안도 논의되기도 한다. 다만 인천권 통합은 경기를 일으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해당 시들의 반발이 극심하고 특별시와 광역시의 추가 확장을 억제하는 정부 정책 기조상 현실성이 떨어지며, 부평권 분리 또한 행정구역 개편/수도권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외에는 강화군의 경기도 편입(사실상 환원)도 거론된다.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강화군, 옹진군은 도로 경기도로, 서해 5도는 다시 황해도 관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없다. 일단 서해 5도는 최전선 지역으로 북한에 의한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인데 통일 이후 구 북한 지역 지자체 밑으로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수도권 문서 참조.

4. 기후[편집]

인천은 온대하우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wa)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해 5도와 본토처럼 온대하우기후(Cwa)에 속하는 곳이 많지만 강화도 등은 냉대동계건조기후(Dwa)에 속한다. 해안도시이지만 낮은 수심의 경기만 깊숙이 자리하여 기온과 강수량은 내륙 지방과 비슷하다. 7~8월에 기온이 가장 높고 강수량이 많다. 인천은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동해 연안의 도시보다 겨울철 기온이 낮다. 강수량은 한국 중부의 타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옹진군 섬 지역은 인천 육지보다 바다의 영향으로 따뜻한 편이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31년 1월 11일의 -21˚C이며,[61] 역대 최고 기온은 1949년 8월 16일[62]38.9˚C이다.

인천과 서울은 기후가 비슷할 것 같지만 인천 공식관측소는 바닷가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남동구, 미추홀구, 부평구, 계양구쪽에는 연교차가 크고 여름에 덥기도 해서 서울과 비슷하긴 하다. 공식관측소는 중구 바닷가라서 분지지형이 아닌데도 해안가라서 서울보다 일교차도 작고 연교차도 작은데 우선 12~1월의 겨울철에는 서울보다 따뜻해서 서울에 비하면 기온이 들 내려가고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한파가 와도 서울보다 높으며 평균기온도 -2.1°C이다. 그러나 봄철로 접어들어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2~5월에는 서울보다 기온이 낮아진다. 또한 전국적으로 이상 고온이 올 때 덜 더운 경향도 있다. 봄철에는 서풍이 자주 불면서 해안지역의 기온이 많이 오르지 못하기도 하며 해안지역이라 기온 오르는 속도가 더딘다. 인천의 경우 기본적으로 서울보다 2도, 대구보다 5도 낮으며 극단적으로 오르는 경우가 없으며 이상 고온이 심해도 크게 오르지는 못한다. 2020년 4월에는 고작 하루만 20도를 넘었다. 또한 3월 17도, 4월 23도, 5월 28도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다.[63] 다만 2005년 4월에 32.7°C를 기록한 적이 있으니 인천의 봄이 시원하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더울 때도 꽤 있다.[64] 또한 초봄 3월의 경우 최저기온은 서울보다 높을 떄도 있으며 2019년 3월에는 인천에서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없었다.[65] 여름에 들어서 동풍이 잦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뎅워지는 시기라서 6월에 여름이 시작되며 여름도 서울보다 확실히 낮다. 서울에서는 2000년 이후에는 2003년 빼고 다 폭염이 있었으나 인천은 2003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1년, 2013년 총 6번이나 폭염이 없었다. 2020년도 여기에 들어갈 뻔 했으나....... 8월 26일에 33.9도까지 오르면서 실패했다. 또한 이전에도 폭염이 없는해도 많았다. 그리고 2018년도 35.9도가 최고였다. 또한 그로 인해 8월을 제외하고는 폭염이 많이 발생하지 않아 폭염일수도 적어서 폭염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다.[66] 그러나 마냥 폭염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1939,1943,2018년처럼 폭염일수가 20일을 넘기기도 하며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폭염이 잦아지는 경향을 보이고도 있다. 2019년 8월 10일에 36도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1949년 8월에는 38.9도를 기록해 2017년까지 수도권 1위였다. 게다가 인천의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더 덥게 느껴진다. 그리고 9월부터는 이제 식기 시작하는 기간이라 천천히 식어 서울과 엇비슷해진다. 게다가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식는 시기라서 다시 서풍으로 바뀌어도 인천이 타 수도권 지역에 비해서 따뜻한 편이다. 연 평균기온은 12.1도로 서울보다 약간 낮고 수원과 비슷하다.

타 지역에 비해 여름철에 소나기가 잘 안 온다. 오더라도 주로 남동구, 부평구 등 인천 중심권만 온다(...) 예를 들면 인천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이 있는 송월동은 쨍쨍한데, 구월동은 천둥번개를 동반한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다.[67] 이 영향으로 해안지역의 여름철 강수량이 적은것 때문에 연강수량이 적고 비가 잘 안 온다. 그리고 맑은 날이 많아 일조시간도 많다. 그러나 바닷가 근처라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작아 여름에는 기온은 낮을지언정 습도높은 더위를 느낄수 있다.

4.1. 대기[편집]

인천은 강한 편서풍 기류를 타는 몽골 사막지대의 황사 발생원에 가깝고 중국이 공장을 대거 이전하고 소각장을 설치하는 산둥성이 인천의 정서방에 소재하여서 황사의 영향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받는다. 목포시는 같은 서해안이지만 몽골이나 공장이 밀집된 산둥성의 정동방이 아니어서 미세먼지가 훨씬 덜하며 높은 산과 구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내륙 도시들에 비해 황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데 비해 인천은 직방으로 받는다는 얘기.

황사와 미세먼지의 경우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긴 하나 관내에 산지가 적고 바닷가라 먼지가 정체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세먼지 통계를 보면 경기 북부와 충북이 미세먼지 특보 발효건 수가 많다. 통념과 달리 인천은 수도권 평균보다 미세먼지가 적은 곳이다. 한마디로 황사나 미세먼지가 빨리 오지만 그만큼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5. 행정구역[편집]


연수구의 경우 2016년 송도랜드마크시티 착공 및 완공을 기준으로 송도국제도시 일대가 연수구에서 송도구로 분구 주장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행정자치부의 자치구 분구 기준은 대략 50만 명인데 연수구의 인구는 겨우 40만명이라 가까운 시일 내에 분구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5.1. 자치구 명칭 변경[편집]

다른 광역시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인천 자치구 이름은 지역 특색을 살리지 않고 방위를 갖다 붙여 지은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명명 당시의 인천시청(현 중구청)을 기준으로 지어져 구명(區名)과 방위가 일치했으나, 시역이 확장되고 시청이 이전하면서 점점 불일치 문제가 두드러졌다.[68] 특색도 없고 방위마저 불일치한 자치구 이름은 지역 주민의 소속감·정체성 형성, 자긍심 고취, 지역 홍보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른 광역시의 자치구들과도 구별하기 어려운 탓에 외지인의 혼동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구명 변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자세한 사항은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인천개편론 문서의 4번째 문단 참고

인천의 자치구 명칭 변경이 실현된다면, 다른 광역시들의 구명 변경에도 큰 영향을 예상된다. 인천을 제외하고 방위명을 쓰는 자치구는, 대구, 부산 각 5곳[69], 광주, 울산 각 4곳[70], 대전 3곳[71], 서울 1곳[72]으로 총 22곳이다.

한편 개명 추진에는 중구·동구 통합, 서구 분리 문제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특히 통합이 점쳐지는 중구·동구는 기껏 명칭을 변경했는데 자치구 통합으로 명칭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전술했듯, 동구의 명칭 변경 움직임은 교착상태에 있다.

# # # # #

6. 정치[편집]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정치 문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21대 국회의원 임기 : 2020년 5월 30일 ~ 2024년 5월 29일

7. 군사[편집]

대한민국의 광역시 중 유일하게 최전방에 자리해 있으며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어 군부대들이 많이 주둔해 있다.[73] 일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중 최대규모인 제17보병사단이 인천에 주둔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외곽경비도 예하 제3경비단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국제평화지원단제9공수특전여단[74], 제1군수지원여단도 주둔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의 모항도 있었으나 평택시로 편대 배치가 이루어진 이후로는 이 부지에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인천 연근해와 도서 지역, 인천국제공항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강화군에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2해병사단 일부 부대가 있고 서구에는 사단 본부의 일부 시설이 있으며[75], 서해 5도에는 제6해병여단 및 연평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제2해병사단 정문의 위치는 김포시에 있으며 서울특별시와 가깝고 부대 시설은 인천시와 김포시에 걸쳐 있으며 인천 시내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시내에 대한민국 공군 부대는 따로 없으며, 영종도에 공군방공유도탄사령부 제3여단 예하 포대가 있다. 중앙방공통제센터 및 제10전투비행단에서 유사시에 대응한다.

서해5도제6해병여단 및 연평부대 그리고 2함대 소속 조기경보전대 및 예하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도 레이더 부대를 둔다. 육군은 없고 해병대가 육군 역할을 한다.

8. 사법[편집]

8.1. 법원[편집]

서울고등법원 관할지역으로 항소심부터는 서울특별시로 나가야 한다.

8.2. 검찰[편집]

9. 사회[편집]

시간이 흘러 조사 당시와 차이가 있겠으나 실제 조사에 의하면 충청도 출신 주민의 비율이 토박이에 이어 2순위이다. 토박이 중에서도 충청도 원적자 출신(특히 충남 내포지방)이 상당하다. 해반문화사랑회에서 발간한 <열려있는 땅 인천>이란 지역정주성보고서에서 인용한 97, 98년도의 인하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1, 2차 시민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출신별 인구분포는 인천, 충청, 서울, 경기, 전라, 경상, 강원, 이북, 제주의 순으로 각기 대략 28%, 16%, 14%, 12%, 11%, 11%, 5%, 2%, 1%로 되어있다. 미추홀구 관교동 관교중학교 바로 옆에 충남도민회관이 있을 정도다. 물론 충청남도청이 공식적으로 세운 것은 아니고 인천 지역의 충청남도 출신 주민들이 세운 일종의 향우회 건물이라고 보면 될 듯. 이 건물 1층에는 충남지역 농산물 판매점이 있다. 이는 인천이 여러 곳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개방적인(?) 땅임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인천 토박이들 역시 많고, 황해도로 대표되는 이북 실향민과 그 후손들도 많이 사는 곳이 인천이다.[76]황해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기도 했다.

경인방송에서는 인천 인구 270만 중 100만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말했을 정도. 또 다른 예로는 한화 이글스가 있다. 대전광역시가 연고인 한화 이글스는 다른 지방팀인 광주광역시 연고팀 KIA 타이거즈부산광역시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 바로 옆 인접 지역인 서울특별시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등보다 원정 티켓파워가 한참 밀리는 게 사실. 하지만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만큼은 기아와 함께 원정 관중이 가장 많은 걸로 유명하다. 2007년 이후의 홈팀 SK 와이번스의 인기 수직상승 전에는 게임마다 한화 원정팬이 홈팀팬보다 더 많이 왔을 정도.

인천 거주자 중 출신지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권역별 출신 인구 비율 현황
권역명
비율
52.2%
15.6%
15.4%
10.0%
5.2%
0.3%
광역지자체별 출신 인구 비율 현황
지자체명
비율
비고
인천
31.2%
서울
11.7%
충남
10.8%
경기
9.3%
전남
8.9%
전북
5.9%
강원
5.2%
경북
5.0%
충북
4.0%
경남
2.5%
해외
1.9%
부산
1.5%
광주
0.8%
대구
대전
0.6%
제주
0.3%
울산
0.2%
광역자치단체 별로는 인천 토박이-충남-경기-전남 순이며, 권역별로는 수도권-호남권-호서권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적인 의미의 토박이(즉, 선조 대부터 인천에서 살아온 집안 출신)와 다르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토박이로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전라권 출신 인물들이 많다고 알려졌고, 위의 수치만을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울특별시의 호남권 출신자 비율인 20.3%[77], 경기도의 16.8%보다 낮은 15.6%에 그치고 있다. 호남권 출신이 많이 산다고 일부 사람들에겐 알려져있지만[78] 사실은 반대로 수도권에서 호남권 출신자의 비율이 가장 적은 곳이 인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순 출신지가 아닌 본적지로 계산해본다면 충청권 출신이 호남권 출신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또한, 재미있는 점은 수도권에서 충청권 출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으면서 영남권 출신자의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79] 서울의 영남권 출신자 비율은 13.8%, 경기도는 11.8%. 참고로 서울 출신 인천 거주자들은 대부분 서울의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점점 서쪽으로 가다가 결국 서울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상당수이다. 이러다 바다에 빠지겠다.

그 외 국내에서 중국인, 특히 화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 인천이다. 애초에 중구 선린동에 차이나타운이 존재하고 인천역의 부역명이 차이나타운이며, 그곳을 중심으로 화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참고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도 중국인들이 꽤 많이 거주한다. 다만,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인은 귀화했거나 대만 국적의 화교들이 다수인 반면, 구로, 영등포 지역에 사는 중국인은 한중 수교 이후 건너온 중국 출신 조선족, 한족이 많다는 것이 차이다.

9.1. 치안[편집]

서울특별시, 경기도, 부산광역시에 이어 4번째로 치안정감이 지방경찰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외 지역의 지방경찰청장은 치안감이다.

인천지방경찰청은 남동구 구월동에 있으며, 중부경찰서[80], 미추홀경찰서[81], 남동경찰서, 부평경찰서, 서부경찰서, 계양경찰서, 강화경찰서, 연수경찰서, 삼산경찰서, 논현경찰서 등 10개의 경찰서가 치안을 담당한다. 2025년 영종경찰서 개서가 확정되었으며, 송도경찰서, 검단경찰서 신설이 추진중이다.

인천시의 치안에 대한 이미지는 과거 항만산업단지로서의 기능만이 강조되던 시절 거친 항만과 산업단지 노동자들, 강력범죄의 이미지가 덧붙여져 치안이 나쁜 도시로 인식되어 있으나, 과거의 일면을 일반화 시켜 마계인천등의 멸칭으로 비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9.2. 교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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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교통[편집]

10. 경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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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내
총생산
전체
₩89조 5710억2019 (전국 대비 4.7%)
1인당
₩3,044만 930원
지역
총소득
전체
₩91조 9천억2018 (전국 대비 4.8%)
1인당
₩3,126만 7천
개인
소득
전체
₩54조 7,000억2018
1인당
₩1,862만 6천
성장률
1.4%2019
위의 표는 2018년 기준이며 인천광역시는 제분, 제당 산업을 위시한 경공업부터 기계공업, 제철공업, 석유화학 산업으로 대표되는 중화학 공업, 반도체, 로봇 산업, 바이오 산업 등을 위시한 첨단 산업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제2의 산업도시이자 한국 미래 유망 업종 중 하나인 바이오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이며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바이오, IT, 로봇, 드론 산업과 관광, 항공, 반도체 산업 등 첨단산업과 3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역내 총생산(GRDP)은 88조 3,900억원으로 전국 7위 중상위권이지만 실질성장률은 13위인 0.4%로 전국 평균인 2.8%에 비해 더딘 성장률을 보여주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 등지의 해외 자본 유치, 기존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신규 산업단지 조성 등은 긍정적 요인이나 인천 내 기업의 해외, 지방 이전 등 부정적 요소 역시 상존한다.

인천광역시는 1960, 70년대부터 국가정책에 의해 공업지대로 성장하였으며 이때 조성된 산업단지로는 남동인더스파크부평산단, 주안산단, 인천기계산단이 대표적이다. 한국GM과 협력업체 그리고 중소기업에 경제적인 부분을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남동인더스파크의 경우 수도권에서 가장 큰 산업단지다.

과거에는 대우그룹의 영향력이 상당히 컸던 도시였다. 부평과 학익동에 소재했던 대우전자, 부평에 소재한 대우자동차, 화수동에 소재했던 대우중공업[82] 등 대우의 주요 계열사들이 소재해 나중에는 대우그룹 본사를 인천으로 이전하려는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83]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아 해체되면서 외환위기로 인한 인천지역 경제 타격 수준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훨씬 컸었다. 현재로 치면 울산에서 , 수원에서 삼성전자가 부도났다고 가정하면 된다. 그 이후 수도권 규제, 인건비 상승 등으로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지방으로 산업기반이 유출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조성된 산업단지의 구조고도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과거엔 국내수요를 모두 책임지고도 남을 정도의 염전이 주안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주안 염전. 과거 인천 사람들의 경제 소득 기반 중 하나였을 정도. 하지만 이것은 경인고속도로 공사 이후로 사라지고 넓은 부지와 인천항과 가깝고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는 등의 이유로 수출 산업단지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인천J밸리. 이외에도 가좌동 쪽에는 가구공단이 들어서 있으며, 인천항 근처에는 OCI, 위니아대우, 두산인프라코어, CJ제일제당, 현대제철, 대한제분 등 대규모 회사들의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여담으로 국내 밀가루와 설탕 생산의 많은 양이 인천에서 이뤄진다. 이는 대한제분, 동아원, CJ제일제당 등 제분, 제당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의 원료가 선박을 통해 전달되고 항구와 맞닿은 인천에서 생산해야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천항과 가까운 옛 남인천역 일대에는 일제시대부터 대규모 곡물시장이 소재해 있었다.[84]

기업 본사의 경우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포스코건설, 패션그룹형지, 포스코인터내셔널[85], 코오롱글로벌,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기업들이 유치되고 있으며, 청라국제도시에는 하나금융지주가 들어설 예정이다. 원도심에는 두산인프라코어 본사 및 인천공장, 현대제철 본사[86] 등이 있고 부평구에는 한국GM 본사와 부평공장과 인켈의 본사와 연구소, 미국계 앰코테크놀로지 코리아 공장, 린나이 , 동서식품 부평 공장 연구소가 있다. 또한 국내외 많은 기업들의 R&D 시설들이 있고 계속해서 유치 중이다. 사조그룹사조대림 공장, 사조동아원 공장 , S&T 모티브 공장, 코웨이 공장 , 한진중공업 공장 , LG전자 인천캠퍼스, 쌍용그룹의 쌍용양회 인천출하공장, 이수그룹의 이수엑사보드 공장, SK인천석유화학이 있다.

인천항 북항과 맞닿은 동구에는 대규모 공장이 많은데 현대제철(구 인천제철), 동국제강, 두산인프라코어, 샘표 등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가좌동에 KG동부인천스틸(DB그룹의 계열사였던 KG동부제철) 공장도 있다. 이 근처에 대규모 고가도로인 가좌IC고가교가 있는데 교량 위에서 차로 지나가다 KG동부인천스틸의 공장을 바라보면, 마치 우유팩처럼 생겨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제철소 중 자동차 강판을 주로 생산하는 냉연공장은 루퍼(Looper)라는 설비 때문에 공장이 우유팩처럼 생겼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냉연공장도 마찬가지로 공장이 우유 팩 모양이다. 가좌IC고가교 로드뷰

10.1. 실업률[편집]

2021년 4월 기준 인천의 실업률은 전국 1위로 나타났다.

인천의 실업은 제조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파견 형식의 일자리가 많다 보니 임금은 최저 수준인데다 고용 안정성마저 담보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08년 ~ 2017년, 2019년 ~ 2020년 인천지역 실업률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위로 나타났다.

10.2. 재정[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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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상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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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특산물[편집]

서해에 끼어있기 때문에 삼치, 새우, 꽃게 등의 해산물이 풍부하다. 또한, 백령도연평도를 중심으로 꽃게잡이가 성하며 강화도에서는 쌀 생산도 성한 편이다. 이 외에도 , 포도, , 인삼, 순무, 고추, 버섯, 까나리액젓 등이 있다.

11. 인천경제자유구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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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문화[편집]


[87]
인천은 수도권의 여타 도시들이 그러하듯 인천 토박이의 수가 매우 적다. 인구 구성의 대다수가 삼남 지방 및 이북 출신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충청도 출신이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한다. 인천 사람 10명이 모이면 그중 3~4명이 충청도 출신일 정도인데[88], 그렇기에 인천 내에서는 충청도 연고자들의 입김이 매우 센 편이라고 한다. 이외에 경북, 전라도, 황해도 출신이 뒤를 잇는다고 한다. 충청도, 전라도 및 이북 출신들의 비율이 높은 만큼 텃세가 심하고 수도권 치고는 배타성도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어서 경상도 출신이 정착하기 힘든 지역으로 꼽힌다. 참고로 수도권에서 부울경 출신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인천이다.[89]

인천의 20~30대는 조부, 조모가 이북 출신인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실향민 후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천지역의 특징이라면 특징.

또한, 대부분의 인천 시민들은 인천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러니 인천 사람 앞에서 인천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기사 물론 이는 다른 지역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로, 특정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당 지역민 앞에서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12.1. 방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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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음식[편집]

짜장면이 태어난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 선린동 화교들을 통해 중국식 작장면이 한국화된 음식이 바로 우리가 즐겨 먹는 지금의 짜장면이다. 한국 짜장면의 시초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시초는 아닌 공화춘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다. 원래의 공화춘은 현재는 옛 흔적만 찾아볼 수 있고 현재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은 원래 공화춘과는 연관되는 점 없이 가게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곳이다. 원조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가게가 따로 있다.[90] 북성동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신포동(도보 15분, 버스 5분 거리)쪽도 많은 중화요릿집들이 있다. 구경하느라 지쳐서 정 가까운 곳에서 먹고 싶다면 중구청 근처인 바로 옆의 선린동 쪽의 중국집들을 추천. 차이나타운 중심구역보다 약간 외곽 쪽일수록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며 신포동 쪽의 중국집들이 오히려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차이나타운보다 유명한 화상이 도시 구석구석에 널려있다. 볶음밥은 용화반점[91], 탕수육은 연중반점[92]. 짬뽕은 대명반점[93]이 알려졌다.

쫄면이 탄생한 곳이 신포국제시장이다. 신포국제시장의 '신포우리만두'라는 분식점이 원조인데[94] 맛도 괜찮은 편이다. 신포시장에서는 닭강정도 유명하며, 신포동 칼국수골목도 유명하다. 특이하게도 칼국수의 고명으로 치킨을 튀기고 남은 튀김가루도 넣어주는 곳이 있다.[95] 사람마다 취향 타는 편이니까 참고하자. 경인선 제물포역 지하상가에 가면 분식점에서 쫄우동이라는 것을 판다. 이 음식은 쫄면에 각종 양념, 고명을 얹고 우동국물을 부어 만든 것인데 면의 쫄깃함과 우동국물이 잘 어울린다.

화평동으로 가 보면 일명 세숫대야 냉면을 맛볼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집집마다 원조타령하며 견제하는 분위기는 아닌데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모여 입점한 이유로 보인다. 양이 정말 푸짐하고 리필에 인색하지도 않아 가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단체로 와서 1인당 세숫대야 4-5개 분량을 흡입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출신의 여자 농구선수 유영주정은순이 여기에서 둘이 합쳐 10대야 분량을 해치웠다는 카더라가[96] 있다.

로 유명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는 횟집에서 먹기보다는 어시장에서 직접 사서 집에서 먹거나 차림비를 받는 식당에서 먹는 것이 좋다. 다만 연안부두에 밴댕이회, 밴딩이회무침 거리는 가격과 양이 괜찮은 편이다. 때만 잘 맞으면 2~3명 먹을 산낙지를 만 원에 살 수도 있다. 연안부두 외에 월미도 인근 북성포구나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지에서도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북성포구에서는 부두에 막 접안한 낚싯배 위에서 횟감 흥정을 할 수도 있다.

인천 방언으로 물텀뱅이[97](아귀)라고 불리는 음식도 유명하다. 용현동에 물텀뱅이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맛집들이 많다. 과거 인천 어부들이 조업을 하다 이 물고기가 잡히면 재수 없다고 버렸는데 물고기가 바다에 빠지면서 나는 '텀벙'소리 때문에 물텀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먹지 않고 버리는 생선이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해안가로 밀려온 물텀뱅이를 가져다 삶아먹는 걸 보고 대포집에서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막걸리를 마실때 술국으로 거저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반응이 좋자 정식 차림으로 하면서 물텀뱅이 찜이나 이를 활용한 술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외에 2000년대 들어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신포닭강정을 위시한 소위 4대 닭강정이 많이 알려졌고, 냉면도 유명하다. 화평동 냉면 골목은 90년대 학생들이 토요일 즈음에 동인천 놀러 간 김에 싼값에 배 채우는 곳이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SBS 미운 우리 새끼[98]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백령도식 냉면이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그리고 인하대학교 학생들이 싼값에 안주를 해결하던 동인천 삼치거리관교동[99] 먹자골목의 밴댕이 회는 저렴한 안줏거리로 뛰어난 맛을 자랑하며 구 송도의 꽃게찜과 물텀벙이찜도 명물이다.

그밖에 1970년대부터 신포동에 자리잡은 메밀국수집 '청실홍실'도 유명하다. 메밀국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서울 피맛골의 미진과 함께 수도권 메밀국수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인천 최초의 카페인 금파가 운영되던 자리였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 후 새로 지은 건물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MBC의 주말 드라마 가화만사성을 촬영했던 인천역 인근 중화요리 전문 대형 식당인 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고 수도권 전철 수인선 역세권 편입까지 더하게 되며 월미도, 인천국제공항을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는 코스까지 마련된 것도 물론 존재하게 된다. [100]

최근에는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전문 쉐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 자리잡고 있다.

김밥천국의 탄생지가 바로 인천이다.

여담으로, 인천에서는 돼지국밥이 인기가 없다. 애초에 돼지국밥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게다가 인천은 수도권에서 부산, 경남 출신자들의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다. 요즘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고 인천에서도 돼지국밥을 파는 곳도 점차 생기고 있다지만 인천 토박이들 특히 에코세대의 경우는 돼지국밥이 뭔지도 모르고 먹어본 적도 없는 게 태반. 부산이나 서울[101], 대전[102]과 달리 돼지국밥을 파는 곳도 찾아 보기 힘들며, 판다 해도 돼지국밥만 따로 단독으로 파는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설렁탕이나 순대국, 뼈해장국집은 많고 인기도 좋다. 20대쯤 나이 먹고 돼지국밥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나 요즘은 유튜브같은 먹방 채널을 통해 아는 경우도 많다.당장에 인천 사람이 돼지국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를 할 확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자...

12.3. 축제[편집]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 송도국제도시 소재의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국내, 해외의 유명 락밴드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인천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즐기러 오는 편이다.
  • 송도맥주축제 :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여러가지 세계맥주와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 있다.

12.4. 종교[편집]

대한민국에서 천주교 개신교가 가장 강세인 지역.[103] 차 타고 가다보면 한 블럭에 하나씩 교회가 보일 정도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천의 종교인구는 117만명으로 개신교 64만명, 천주교 26만명[104], 불교 24만명 순으로 나타났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치면 90만명으로 불교 인구의 3배가 넘는다. 전통적으로 불교세가 강한 부산, 대구, 경남, 경북, 울산 등 영남(경상도)지역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인천을 불교 취약지역으로 꼽고 있다.

서울이나 경기도 등 수도권 내 다른 지역과 달리 장로회보다 감리회가 초강세다. 특히 강화군은 대한민국 관내 시군 중 감리회의 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며 성공회의 교세가 강한 지역이기도 하다.[105][106] 또 서해 최북단 백령도는 한때 섬 거주 인구의 95%가 천주교 신자였을 정도로[107] 천주교의 교세가 여전히 매우 강하다.[108]

개신교와 천주교 모두 인천지역의 선교 역사가 매우 깊다. 개신교는 1885년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와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가 인천에 들어와[109] 서울과 인천에서 선교 활동을 한 것이 인천 기독교 역사의 시초로 여겨진다. 천주교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3년이 지난 1889년 답동성당이 설립되면서 본격적으로 퍼졌다. 다만 답동성당 설립 시점보다 훨씬 이전인 1830년대 조선의 천주교 박해 시기에 인천 출신 순교자가 있다는 기록을 볼 때, 19세기 초·중반에 인천에 천주교가 전래됐다고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및 감리교회인 내리교회중구 내동에 자리해 있고 설립일이 1885년으로 136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인 신홍식(1872~1939) 목사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후 내리의 담임목사로 부임해(1922~27) ‘인천내리교회역사’(1923)를 직접 기록했다. 그것이 오늘까지 중요한 사료로 전승되고 있다.

중구 답동에 소재한 답동성당천주교 인천교구주교좌 성당이자 국가 사적으로, 19세기 말에 건축된 대한민국 성당 중 가장 오래 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서울에 명동성당이나 약현성당이 있다면, 인천에는 답동성당이 있다.

기독교 인구가 많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렇다 보니 인천에서 성소수자들이 퀴어축제를 열려다가 기독교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집회로 무산되거나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남동구 간석동모든 기독교 종파[110]들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12.5. 스포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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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독서[편집]

2015년 4월 23일부터 2016년 4월 22일까지 1년간 '세계책의수도'로 지정되었다. #

12.7. 음악[편집]

과거 인천에는 주한미군기지가 있는 부평과 번화가였던 동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국내 양대 악기 제조사인 삼익악기, 영창악기가 모두 인천에 소재했고 콜트, 콜텍도 마찬가지로 인천에 있었다. 여기에 더해 미군기지로 인해 기지 주변인 부평 신촌은 수많은 음악인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곳들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노래는 본래 작곡 목적과 달리(?!) 야구 응원가로 널리 알려진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한 개뿐이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근대적 도시로서의 역사가 가장 긴 도시들 중 한 곳 답게 나름 인천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은 꽤 많은 편이다.[111] 근래 들어서는 인천 출신의 리듬파워 같은 힙합 그룹들도 탄생했다.

여전히 부평, 동인천 등지에서 활동하는 로컬 뮤지션들이 많지는 않지만 남아있고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World Club Dome Korea 등의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을 2개나 개최하는 등 음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부평구가 문체부 선정 음악도시 사업을 진행 중이고, 부평 미군기지 반환과 함께 인천 음악의 산실이자 아픈 역사의 현장인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굴포천 상류를 복원할 계획이다.

12.8. 언론[편집]

12.8.1. 일간신문[편집]

인천에 본사를 두고 있는 지방 일간지는 2곳이다. 수도권 최대 규모의 지방 일간지인 경인일보수원시에 본사를 두고 있다.[112]
  • 인천일보
  • 기호일보

12.8.2. 방송[편집]

인천을 주력 시청·청취권으로 두고 있는 방송사는 2곳이다.
  • OBS경인TV: 본사가 부천시에 있다.[113]
  • 경인방송: 1997년 인천방송으로 시작했던 지상파 TV 방송은 2004년 폐국됐고 현재는 FM 라디오만 방송하고 있다.

13. 관광[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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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상하수도[편집]

14.1. 상수도[편집]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한 역사는 서울특별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다. 인천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서울 노량진(당시 과천군 노량진리)에 1910년에 들어선 노량진정수장. 그 노량진정수장은 1948년에 서울시에 인수되었다가 2001년에 폐쇄되었다. 참고로 서울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1908년 뚝도정수장(현 뚝도아리수정수센터)이었으니 인천시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상수도 시스템을 구비한 것이다. 노량진정수장은 인천 뿐만 아니라 경성부(특히 영등포) 일부에도 수돗물 공급을 책임졌다.

서울시에 노량진정수장을 스틸당한 인천시가 지은 대체 시설이 지금의 부평정수장. 이후에도 남동(장수)정수장, 공촌정수장, 수산정수장 등을 세웠다.

인천시 상수도 인프라는 의외로 마당발이 넓었는데, 주변지역의 수돗물 공급도 책임지기 위해 인천시외에 정수장을 여럿 설치한 역사가 있다. 인천시 일부와 김포군, 부천시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58년 김포군 양서면 신월리(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에 김포정수장을 설치했다. 그리고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일대 및 인천시 일부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88년 광명시 노온사동에 노온사정수장을 설치했다. 김포정수장은 1979년에 서울특별시에 인수되어 신월정수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2003년까지 가동하였고, 노온정수장은 2009년에 광명시에 인수되어 현재에도 운영 중이다. 앞서 언급한 노량진정수장과 신월정수장이 서울특별시로 이관되기 전에는 인천시는 서울특별시의 수돗물 공급의 일부를 책임지는 패기를 보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역사에 걸맞지 않게 2019년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인천광역시 상수도 운영, 관리의 후진성이 드러났다. 3주가 지나도록 별다른 원인 파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생수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서울 등의 타 지자체에서 시민들이 직접 공수해왔다.

그리고 1년 후인 2020년, 인천 수돗물 유충 사태역사는 반복된다를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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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하수도[편집]

인천광역시 관할 각 하수처리장 준공일

하수처리장 건립이 서울에 비해 좀 늦은 편이다. 천만 인구에 달하는 서울의 생활 하수를 한강에 방류하는 것은 환경오염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반면, 인천은 바다에 접해 있어 그 문제가 두드러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가좌하수처리장이 생기기 이전에는 인천의 모든 생활하수는 정화처리를 거치지 않은채로 그대로 바다에 방류되었다. 때문에 90년대까지만 해도 월미도 앞바다 바닷물은 그야말로 똥물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송도해수욕장의 수질도 매우 좋지 않았다. 이후로 1995년 승기하수처리장, 1999년 공촌하수처리장, 2008년 남항하수처리장(구 학익하수처리장)[114] 등 인천 곳곳에 하수처리장이 설치되었다. 2005년 만수하수처리장 신설로 기존 승기하수처리장 처리구역 일부가 그쪽으로 편입되었다.

부평구(십정동, 부평3동 제외)와 계양구(경인운하 이남)의 하수는 부천시 굴포천하수처리장[115]에서 위탁처리한다.

현재의 인천시 산하 각 하수처리장의 관할구역의 큰 틀은 인천시 생활하수 전량이 그대로 바다로 버려졌던 시절에 설정된 배수구역에 근간을 두고 있다.

15. 매체에서[편집]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봉기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언급된다. 언급으로 봐선 바르샤바 봉기 급의 규모였던 모양이다.

네이버 웹툰 하이브(웹툰) 1부에서 인천송도국제도시에서 군대의 통제하에 시민 대피소가 있었고 언급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벌레들을 잘 막아내고 있는듯 했으나 지휘관의 실책으로 인해서[116] 송도대피소도 무너지게 되고 주인공인 이은성과 그의 아내인 민영과 가까스로 만나게 되나 흑벌이 민영을 납치해감으로써 민영이 다시 헤어지게되고 과장이 아내를 구하러가는 하이브의 메인 스토리가 시작된다.

16.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편집]

16.1. 영화[편집]

16.2. 드라마[편집]

16.3. 뮤직비디오[편집]

16.4. 기타[편집]

17. 자매결연도시 및 우호교류도시[편집]

17.1. 자매결연도시[편집]

17.2. 우호결연도시[편집]

18. 비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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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출신 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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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인천광역시장[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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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둘러보기[편집]

22. 관련 문서[편집]

23.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편집]

[1] 2020년 12월 기준 국토교통부 국토 면적 현황[2] 대한민국 광역시 중 면적이 가장 넓다. 근소한 차이로 울산보다 넓다.[3] 자치구 지역은 434.30㎢이며 부속도서를 제외한(옹진군, 강화군, 영종도 등) 본토 면적은 300㎢를 약간 넘긴다. 간척 사업으로 매년 면적이 확대되고 있다.[4] 2021년 5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통계[5] 동·미추홀갑, 연수갑, 연수을, 남동갑, 남동을, 부평갑, 부평을, 계양갑, 계양을, 서갑, 서을[6] 중·강화·옹진[7] 동·미추홀을[8] , , 미추홀, 연수, 남동, 부평, 계양, , 옹진[9] 강화[10] 경기도 부천시안산시 일부 지역(대부동)도 사용.[11] 남한의 최북서단이다. 북한과 인접해 있다. 다만 기초지자체로서는 옹진군, 강화군이 접경지역으로 분류되나 인천 자체(광역자치단체로서의 인천. 특히 자치구 지역)는 접경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12] 원래는 울산광역시가 한국 최대 면적의 광역시였으나, 인천광역시에서 지속적인 간척 사업으로 2016년 역전했다.[13] 현재의 경기 고양시보다 조금 좁은 정도다.[14] 부산, 대구, 울산. 또한 인구 100만 이상의 도시로 창원도 존재.[15] 물론 수도권에는 수원, 용인, 고양 등 인구만 따졌을 때 광역시급인 도시들이 존재한다.[16] 당진, 서산, 태안은 연륙교가 없어 바다로만 경계를 이루고 있다.[17] 해수 권역이 국내 광역시 중 가장 넓다.[18] 인천의 지명 중에도 문학동, 선학동, 임학동, 송학동(두루미 학)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19] 두루미는 현재 많이 사라져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군에 10개체 정도만이 도래하고 있다. 문학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 수로 끝나는 지명들의 유래는 대체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지명으로 학, 수 등의 한자를 선호해서라고 한다.[20] #[21] 과거 시청사는 현재 중구청사로 바뀌었다.[22] 사실 구한말 개항 전까지 인천도호부 청사와 인천향교가 있던 관교동 일대가 중심지였다. 개항 이후 개항장이 있던 제물포 일대로 도심이 넘어갔다가 시청과 인천터미널 이전을 기점으로 다시 돌아온 셈[23] 또한 앞에 말한 대구와 광주는 원래의 우리말 이름에서 한자어가 붙여진 것이지, 인천처럼 억지로 한자어에서 순우리말을 만든 것이 아니다. 어진내의 용례로는 서구에 기반을 둔 감자탕 체인점(...)과 한 때 추진하던 어진내 300리 물길투어 정도가 있다.[24] 현재의 지명 인천의 시초가 되었다. 그래서 SBS 드라마 '시티홀'에 나오는 인천을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 이름도 '인주시'다. 인주시의 특산물 중 하나는 밴댕이인데, 실제로 강화도의 특산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아산시인주면이 있지만, 한자 표기가 비슷한 것을 빼면 서로 관련이 없다.[25] 1883년 개항한 인천항은 1876년 개항한 부산항보다 다소 늦게 문을 열었지만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인천항으로 들어오는 서양 외국인들이 더 많았고 그 덕에 인천이 서구 문물을 먼저 받아들이게 됐다.[26] 묘도(猫島)라는 지명은 인천 동구의 유명한 달동네인 괭이부리말의 어원이 된 섬으로, 구한말에 일본 지주들의 간척 사업으로 인하여 사라진 섬 중 하나이다.[27] 바닷물을 끌어와 따뜻하게 데운 목욕탕.[28] 광복 이후 1962년[29] 광복 이후 1946년[30] 한 동안 역사 속에서만 남아있다가 2018년 7월부터 인천 남구의 새 이름이 미추홀구로 정해짐으로써 다시 명맥이 이어지고있다.[A] 31.1 31.2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B] 32.1 32.2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33] 백제를 말한다.[36] 김종택(1999). 고대국어 음절 말 자음의 음성 실현. 한글(245), 5-20[37] ≪국어 어휘 분화의 기제; mit계 어휘 분화의 구조도≫(난정 남 광우 박사 화갑 기념 논총, 일조각, 1980)[38] 현(縣)은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고구려 멸망 이후 설치되었다. (삼국사기 권제삼십칠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39] 邵城縣 本高句麗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40] 삼국사기 권제삼십오 잡지 제4 지리2 신라[41] 一云慶原 買召一作彌鄒[42] 사실 이 날은 음력이다.이 날을 당시 양력인 율리우스력으로 고칠 경우 율리우스력 서기 1413년 11월 8일이고 오늘날 그레고리력으로 고칠 경우 여기에 9일을 더한 1413년 11월 17일이 된다.[43] 10월 15일로 시민의 날을 옮기기 전에는 7월 1일이 시민의 날이었다. 1981년 7월 1일 경기도에서 분리돼 직할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했기 때문이다.[44] 대부도 제외[45] 당시 정부직할 부산시. 1963년에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나 공식 명칭은 '부산시'였다. 직할시 명칭은 1981년 대구, 인천의 직할시 승격과 함께 도입되었다.[46] 두 지역에서는 최근 1년간 인구가 1만명 이상 감소했다. 그 다음으로 인구 유출이 심한 곳은 미추홀구계양구이다. 특히 부평구는 심각한 인구 유출로 인구 50만선이, 계양구도 30만선이 무너졌다. 이는 수도권 규제와 김포시, 시흥시, 부천시, 고양시, 파주시 등의 개발로 주변 경기도 도시로 인구가 유출되었기 때문이다.[47] 방위상으로 봤을땐 인천의 동쪽이 아니지만 '동인천역' 상권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어 '동인천'이라고 한다[48] 동인천과 남인천을 묶어 '원(原)인천'이라 하여 같은 생활권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그 중에서도 원도심 지역을 따로 구분할 때에는 동구-중구 2개 구만 거론된다. 남인천 지역의 3개 구는 각 구의 거점(미추홀구의 주안-관교, 남동구의 구월동, 연수구의 선학동)을 중심으로 서로 연담화가 되어있고, 동인천 지역이 워낙에 쇠퇴해 버렸기 때문에 미추홀구의 숭의동과 용현동 지역을 제외하면 동구-중구와의 교류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수구의 송도국제도시는 독립된 생활권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49]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상 인천광역시의 부도심이다.[50] 강화군청은 광화문에서 약 55km 거리에 있다. 대략 포천시청, 양평군청과 비슷한 거리.[51] 광화문-백령도간 거리는 직선상으로도 210km에 육박하여 부안군, 칠곡군 왜관읍과 비슷한 거리에 있고, 북한 기준으로도 원산이나 평양보다 멀다.[52] 인천국제공항 바로 북쪽에 있는 삼목선착장에서 배로 2km만 들어가면 된다.[53] 김포국제공항 바로 옆의 농지이다. 장기적으로는 개발계획이 있으나, 근래의 일은 아니다. 이곳은 현재의 공항동 지역인데 이 곳은 김포공항과 가까울뿐더러, 그린벨트 지정 지역이라 개발이 어렵다.[54] 물론 과거에는 있었다. 672번, 6712번, 6641번 버스가 인천 일부 지역을 경유하였지만 노선이 단축되었거나 폐선되었다. 그나마 현재 가장 가까이 인천광역시에 접근하는 노선은 606번, 661번, 673번이 있는데 인천과 매우 인접한 부천시 상동이 종점이다.[55] 원래는 서울-인천 간 전화도 시외요금이 부과되었다. 정부가 서울 인접 위성도시 주민들의 서울전화(02) 편입 요구를 억제하고, 도시권 광역화의 현실을 반영하여 근교 주민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1구간(인접지역) 시외통화 요금을 시내통화 수준으로 책정한 것.[56] 특히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인해 검암, 청라, 영종 등에서도 서울 시계 내로 30분대에 진입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평촌과 비슷한 수준이다.[57] 정부 행정 시설은 물론, 국립 문화 시설들도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다른 광역시에는 하나씩 있어도 인천은 서울에 가야만 한다.[58][58] 사실 울산도 부산하고 지도상으로는 붙어 있지만 실제 생활권은 분리되어 있다.[59] 다만 이것은 대한민국 중앙정부가 서울특별시장경기도지사만을 우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있다.[60] 물론 광역시를 일개 자치구 하나로 격하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며, 현재 인천에 존재하는 자치구들이 그대로 서울의 자치구로 전환되는 편이 더 현실성있다. 서울특별시 부평구, 서울특별시 연수구 하는 식으로... 이 경우 이름이 겹치는 중구의 경우 본토 지역은 서울특별시 제물포구, 영종도 지역은 서울특별시 영종구 등으로 개편되고, 강화군과 옹진군은 경기도로 돌아갈 것이다.[61] 이날 서울도 -22.5˚C를 기록하여 역대 서울 최저기온 2위를 달성하였다. 1위는 1927년 12월 31일의 -23.1˚C[62] 같은해 7월 16일도 38.9˚C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통계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1949년 7월과 8월 모든 날의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복붙되어 있는데, 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류로 7월 한달 분량의 데이터가 소실되어 8월 데이터를 7월 쪽에 복붙한 것으로 보인다. 8월 16일이 더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인천과 가까운 서울이 동년 7월 15~16일 사이에 27~30˚C의 온도를 기록했지만, 8월 15일~16일 이틀에 37˚C가 넘는 폭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서울의 온도가 27~30˚C 정도면 인천도 비슷하거나 낮은 기온을 기록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7월 쪽이 더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63] 서울은 3월, 4월, 5월 기준 각각 최고기온이 7~13°C, 14~20°C, 21~26°C로 따뜻하며 이상 고온이 심할때 16~21°C, 22~28°C, 28~33°C로 덥다.[64] 진짜 봄에 춥다 할수 있는 인천 지역은 옹진군이다.[65] 3월로는 유일한 날이다.[66] 또한 장마의 영향을 받는 7월의 경우 2018,2019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폭염일수가 없었다.[67] 2018년 7월 28일은 남동구와 부평구 일대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60mm가 넘는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그러나 이때도 연수구, 중구, 동구의 바닷가 인접지역은 거의 오지 않았다.[68] 인천 전체를 놓고 보면, 동구가 서구보다 더 서쪽에 있는데, 서구는 과거 이 지역 지명인 "서곶"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북구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부 지역이 계양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을 부평구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불일치 문제가 해소되었다.[69] 동구,서구,남구,북구,중구[70] 광주:동구,서구,남구,북구 울산:동구,남구,북구,중구[71] 동구,서구,중구[72] 중구. 다만 서울을 강동구, 강서구, 강남구, 강북구가 각각 동서남북을 명칭으로 사용하고 성북구와 성동구, 동대문구와 서대문구 또한 방위명을 명칭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지명과 다르게 제대로 정착되었기에 바꾸기 쉽지 않을듯 싶다.[73] 우리나라 광역시 중 유일하게 북한과 맞닿아 있다.[74] 부천시와 면적을 걸치고 있음[75] 인천시와 김포시의 경계에 사단 본부가 걸쳐있다. 이로 인해 사단 본부 시설의 일부는 인천시, 일부는 김포시 관할이다.[76] 황해도 은율군의 민속놀이인 은율탈춤도 지금은 인천에서 전수되는데, 은율출신 피난민들이 인천에 정착해서 그런 것이다.[77] 지역구마다 편중되어있는 편이라 관악구금천구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호남 출신이다.[78] 이는 부평권의 경우 일부 맞을 수 있는데, 원인천권의 경우는 택도 없는 얘기.[79] 이 때문에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 찾아오는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등 영남 연고팀 팬의 규모도 한화 이글스, KIA 타이거즈보다 확실히 적다.[80] 원래 동구미추홀구 일부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동부경찰서도 있었지만 2006년 남부경찰서가 새롭게 개서하면서 중부경찰서와 통폐합됐다.[81] 2006년 중부경찰서, 동부경찰서, 연수경찰서가 분할해 관리하던 지역 치안 업무를 맡기 위해 새로이 개서됐다. 2018년 남구 명칭 변경과 함께 개칭되었다.[82] 현재는 두산인프라코어로 바뀌었다.[83] 이러한 배경 때문에 1997년 한국프로농구 창설 당시 대우증권 농구단의 연고지도 인천광역시로 낙점했다. 대우증권 농구단의 역사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이어가는 중.[84] 현재는 이 시장 근방에 수도권 전철 수인선 숭의역이 있다.[85] (주)대우 무역부문 - 대우인터내셔널 - 포스코대우 등 여러 번의 사명 변경을 거쳤다. 본사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중구이지만 모든 직원들은 송도의 포스코타워-송도에서 근무하고 있다.[86] 주소상 본사, 실제 본사 역할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양재동 사옥에서 한다.[87] 이 영상에서는 아침이 되면 서울로 출근한다.. 라고 하지만 계양구부평구 북부 한정이다. 원인천, 영종도 등 인천 타 지역은 수도권임에도 정체성이 강하다. 인천시민 70% 이상은 인천 내부에서 출퇴근한다. 이 문서에 나와 있듯, 인천은 일자리가 많은 편에 속한다.[88] 충청도 중에서도 서해안 지방(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등) 출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89] 다만 도서 지역인 옹진군강화군은 예외적으로 3대째 이상 살고 있는 토박이가 50% 이상 많은 편이다.[90] 인천역 건너편 하인천파출소 뒤에 신승반점이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91] 동인천역도원역 사이 배다리철교 건너편에 있다.[92] 석바위시장역 근처에 있다.[93] 예술회관역 근처에 있다.[94] 출발을 신포동에서 했기에 신포우리만두라는 상호가 붙었다. 현재도 신포국제시장 내에 본점이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본사와 공장은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으며 인천보다 전주시의 점포 밀집도가 더 높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신포우리만두 창업주가 전라북도 출신이라고 한다.[95] 동인천역 인근 우리은행 인천지점 뒤편과 신포 문화의 거리 광장(연말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장소) 인근의 칼국수 골목에 이런 식당들이 있다. 여담으로 송림동 박문로터리에 있는 메밀우동 식당 '오목골'도 유명한데 여기는 메밀우동에 치킨튀김가루를 고명으로 얹어먹는다.[96] 외박 나와 이곳에서 냉면을 먹던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수병들의 목격담이다.[97] 물텀벙이라고도 한다.[98] 2018년 7월 8일, 15일 방송[99] 구월동 번화가와 예술회관 반대편에 있다. 구월동 상권과 거의 인접해 있어 남동구 구월동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미추홀구 관교동으로 서로 다른 행정권 뿐 아니라 두 상권은 사실상 분리되어 있다.[100] 참고로 연경은 SBS런닝맨의 짜장로드, KBS 2TV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도 소개된 것으로 나왔다.[101] 서울이야 워낙 인구도 많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돼지국밥집이 어느정도 있다.[102] 의외겠지만 대전도 충청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다 충청권에서 영남 출신의 비중이 가장 높고, 그 중에서도 부산/경남 출신들이 상당히 많기에 돼지국밥의 인지도도 높으며 돼지국밥집이 의외로 적지 않게 있는 편이다. 참고로 대전 다음으로 청주가 충청권에서 영남 출신의 비율이 높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대구/경북 출신이 압도적이다.[103] 개신교 신자 비율 1위는 전북이고 천주교 신자 비율 1위는 서울이나, 개신교+천주교 신자 비율은 인천이 가장 높다.[104] 천주교 인천교구의 소속 신자 수는 2015년 기준으로 49만 6,364명이다. 인천교구의 관할 지역이 인천에만 국한되지 않고 부천시김포시 전 지역, 시흥시 일부 지역과 안산시 일부 지역까지 걸쳐진 것을 감안한다면, 교구 신자의 절반은 인천시민이라고 볼 수 있다.[105] 강화군 인구의 35%는 감리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106] 대신 강화군에는 성결교회, 침례회 등은 매우 드물며, 구세군 교회는 단 한 곳도 없다. 애초에 강화군뿐 아니라 인천광역시 자체가 구세군의 교세가 매우 취약한 곳. 그래서 강화도 사람들은 구세군 자선냄비 자체를 모르거나 생소히 여기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107] 현재는 개신교 신자 수가 천주교 신자 수를 추월해 30% 정도가 천주교 신자 인구라고 한다. 물론 이 지역 역시 개신교와 천주교 신자 인구를 합치면 90%에 육박한다고 한다. 섬 지역에 있을법한 민간 무속신앙이 이 섬에서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한 상태.[108] 백령도의 지역 행사 때 초청되는 지역 유지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 옹진군수, 백령면장, 해병대 제6여단장 외에 백령성당 주임신부와 해병대 제6여단 군종 신부가 포함될 정도.[109] 이를 기념한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이 중구 항동 중부경찰서 옆에 있다.[110] 감리회, 장로회, 침례회, 성공회, 가톨릭, 정교회, 성결교회.[111] 연안부두 이외에 가장 유명한 인천 배경의 가요는 박경원이 부른 <이별의 인천항> 정도가 있다. 아울러 정식 가요가 아닌 구전 가요지만 <성냥공장 아가씨>라는 노래도 인천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는데 가사가 상당히 외설적인(...) 노래다.[112] 물론 인천일보와 기호일보도 수원과 의정부 등에 본사를 두고 있으나 사실상 지사 성격에 가깝다.[113] 계양구 용종동에 지어진 방송통신시설(계양터미널 부지 일부)로 OBS 본사를 옮기겠다는 계획이 있었는데 매우 오랜 기간동안 인천시와 OBS가 갈등을 벌였다. 결국 2020년 11월 방송통신시설 사용 권한이 OBS에 낙찰되면서 2022년쯤에 인천으로 본사를 옮기는 계획을 추진한다.[114] 돌려말하자면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구 본토 일대와 남구 일부(용현동, 학익동, 숭의동)의 생활하수가 정화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버려졌던 것이다.[115] 1995년 준공. 1999년에 부천시 산하가 됨.[116] 흑벌이 바다쪽으로 돌아서 온다는 소리를 듣고 대피소를 지킬 최소한의 비호도 남겨두지 않고 가용가능한 비호와 전차를 모두 해안선에 집중시켜놓는 미친짓을 벌인다. 간단히 말해서 적에게 등을 대놓고 보인 셈이다.[117] #[118] 자유공원과 공원 아래 제물포 구락부, 신포동송현동 등 원도심 지역에서 주로 촬영했다. 그러나 실제 작중 배경은 부산광역시였다. 부산 올 로케이션 촬영이 힘든 여건상 부산과 분위기가 비슷하고 서울과 가까운 인천에서 찍었다고 한다.[119]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서 촬영했다.[120] 옹진군 북도면 시도에서 촬영했다.[121] 야구 드라마답게 문학야구장과 인천시내 곳곳에서 다수 장면을 촬영했다.[122] 동구 배다리 헌책방 등지에서 촬영했다.[123] 중구 차이나타운이 주배경이다.[124] 동구 배다리 헌책방 근처 문구점 건물에서 촬영했는데, 최근 건물 리모델링으로 드라마 촬영 흔적은 사라졌다.[125] 인천시와 SK 와이번스 측에서 아예 제작 지원에 나섰고 인천 SK행복드림구장을 비롯해 인천 곳곳에서 촬영이 이뤄졌다.[126] 인천광역시청인천광역시의회가 등장한다.[127] 중앙시장 일대와 동인천역 일부가 1화 촬영 때 쓰였다. [128] 정식 관계도시.[129] 강화군교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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