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在日學徒義勇軍. 한국전쟁 당시 일본에 거주하다가 자발적으로 UN군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을 도운 재일 한국인.

1. 개요2. 이야기

1. 개요[편집]

1940년대 중후반에 많은 수가 귀국하긴 했지만 1950년일본에는 60만의 재일교포가 살았다. 이들은 GHQ일본인외국인을 분리하고 비일본인의 일본 재입국을 막음에 따라 애매한 상태로 남았다. 그러던 중에 한국전쟁한반도에서 터지자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했다. 이를 카투사 제도 창설로 본다. 규모는 641명으로 전사자 61명, 실종자 144명이다. 생존자 중 절반 가량은 한국으로 영구귀국하였다.

2. 이야기[편집]

재일 학도의용군은 6.25 발발후 일본에서 대한민국을 구하자는 의지 하나로만 모였다고 한다. 전쟁 발발 직후 라디오에서 한 재일교포 소녀가 자신도 참전하고 싶다며 열변을 토했는데 이를 들은 반 조총련 재일교포 청년들 사이에서 모국을 도와주러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다시 말해 어떤 단체가 모집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자발적으로 참전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래서 학도의용군들 사이의 개인적인 인적 관계도 드문 편이었고, 출신 및 경제적 사정 등도 각양각색이었다고 한다. 또한 한국으로 파병(?)된 다음에도 바로 여러 다른 부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학도의용군 전체를 묶어주고 대표하는 조직은 전쟁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야 생성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대별 혹은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기반한 소규모의 전우들은 존재했지만, 모임 전체를 묶는 공동체의식은 초창기에는 크지 않았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학도의용군 모임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에는 서로가 잘 알지 못해서, "김선생님은 어느 부대에 계셨나요?" 라고 서로 물어볼 정도의 분위기였다고... 도쿄에서 파병 직전 찍은 사진 같은 걸 돌려보면서, "김선생님은 여기 계셨던 거군요!" 같이 서로 공감하곤 했다고 한다.

파병당시 부대배치는 복불복이었는데, 전방부대에 배치되었던 인원들은 많은 수가 조국에 돌아온 지 며칠 만에 전사하였다고 한다. 일부는 후방에서 1년가량 문선대 역할만 하다가 전쟁이 한풀 꺽이자 일본으로 귀국하기도 하였다.(일본 귀국자는 거의 다 전쟁 1년후에 귀국하였다.)

흔히 이스라엘이 전쟁나면 해외 유학생들이 귀국한다느니 어쨌느니 하는데, 왠만한 나라는 다 그정도는 안한다.(이스라엘의 교전국인 중동 국가 유학생들도 조국을 돕기 위해 귀국하였다.) 하긴 그 정도의 애국자들이 없던 나라들은 진작 다 망했을테니... 그런데 이스라엘의 해외 유학생들은 예비군 신분으로 의무복무 대상자들이고, 재일 학도의용군들은 한국에 대한 병역 의무가 없고[1], 일본에서 자라 일본 문화에 익숙한 터라 사실상 일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즉, 부모가 조선 출신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대한민국과 접점이 없는 사실상의 외국인이 부모의 나라를 위해 참전 한 것. 다시 말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라고 예비군에 편성된 상태로 학교만 외국에서 다니던 유학생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 때 참전자중에서 2016년 9월 기준으로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무공훈장을 두개나 받은 전쟁영웅이.

해외에 있으면서도 대한민국을 위하여 목숨을 희생하신 분들을 위해 묵념.
[1] 당시만 해도 한일협정 체결 전이어서 한국과 일본은 미수교 상태였고, 따라서 이분들은 무국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