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 농구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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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미국의 농구 리그
구분
명칭
프로
1군
NBA
동부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2군
NBA D-League
동부 컨퍼런스 / 서부 컨퍼런스
서머리그
라스베이가스 서머리그 / 올랜도 서머리그 / 유타 서머리그
여자부
독립리그
IBA / PBL / ABA
NCAA Division I / NCAA Division II / NCAA Division III
고교농구
Division I / Division II / Division III
유소년
리틀농구
† NBA와 프로리그를 양분하다 흡수합병당한 ABA와는 별개의 단체로 2000년에 창설되어 지금까지 운영중이다.
명칭
영어: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한국어: 전미 농구 협회
종목
설립
리그 창설
1946-1947 시즌[1]
참가 국가
파일:미국 국기.svg(29개팀) | 파일:캐나다 국기.svg(1개팀)
사무국
커미셔너
애덤 실버(2014~)
하위리그
최근 우승팀
최다 우승팀
링크
파일:NBA.svg 공식 웹사이트

1. 개요2. 특징
2.1. 규칙2.2. 살인적인 일정
2.2.1. 플레이오프
2.3. 서고동저
2.3.1. 동고서저였던 1980년대2.3.2. 1990년대2.3.3. 2000년대 이후2.3.4. 개별 사례2.3.5. 원인2.3.6. 비판
2.4. 샐러리 캡2.5. 드래프트
3. 인기
3.1. 미국3.2. 해외
3.2.1. 중국에서의 인기와 영향
4. 소속 팀과 연고지 분포
4.1. 동부 컨퍼런스
4.1.1. 애틀랜틱 디비전4.1.2. 센트럴 디비전4.1.3.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4.2. 서부 컨퍼런스
4.2.1. 노스웨스트 디비전4.2.2. 퍼시픽 디비전4.2.3.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5. 역사
5.1. 창설 이전5.2. 창설 이후
6. 로고에 대해7. 역대 총재8. 아시아의 NBA 도전사9. 한국 중계10. NBA 파이널
10.1. 역대 우승 횟수
11. NBA 올스타전12. 서머 리그13. 기타
13.1. 콜업과 10일 계약13.2. 평균신장13.3. 선수들의 혜택13.4. 직관
14. 관련 문헌15. 관련 커뮤니티1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NBA는 미국캐나다의 30개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세계 최고의 프로 농구 리그이자 모든 농구선수들의 꿈의 무대이며 NBA 리그를 운영하는 미국의 프로 농구 협회다.[2] 이 협회는 아시아(홍콩 및 필리핀), 아프리카, 중국, 캐나다 등지에 총 7개 현지 사무국을 두고 있다.

2. 특징[편집]

2.1. 규칙[편집]

NBA의 규칙은 국제 농구연맹(FIBA)이 제정한 농구 규칙과 조금 다른점이 있다.
  • 3점슛 라인이 50cm정도 더 멀다. NBA의 3점슛 라인 거리는 7.24m로 한 때는 FIBA의 규정보다 1m나 더 멀었으나, 현재 FIBA나 KBL 모두 3점슛 라인을 50cm정도 늘렸다.
  • 게임시간이 쿼터당 12분. 도합 48분 경기를 한다. 이 때문에 타임아웃도 1개 더 많고, 파울 아웃도 5반칙이 아니라 6반칙이다. 또한 팀 파울 기준도 4개가 아닌 5개이다.
  • 벤치에 총 13명의 선수가 앉을 수 있다.[5]
  • 수비 3초룰이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NBA룰이 FIBA에 흡수되어 국제 공인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중국 CBA 리그외에는 수비 3초룰은 운영하고 있지 않다. 이는 KBL에서도 포기할 정도.
  • 보편적으로 홈 유니폼은 밝은색[6], 어웨이는 어두운 색의 유니폼을 입는다.[7][8]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이런 홈, 어웨이 유니폼의 구분이 어렵고, 팀별로 워낙 다양한 색상의 유니폼이 있다보니 다른 스포츠와는 다르게 유니폼 색만으로는 홈, 어웨이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 가끔은 홈 팀이 어두운 색[9], 원정팀이 밝은색을 입을 때도 있다.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에는 홈 팀이 검정색 유니폼을 입는다. 2017-18시즌을 앞두고는 협회 에디션 - 아이콘 에디션 - 스테이트먼트 에디션 - 시티 에디션으로 유니폼을 정의해서 아예 홈, 원정구분이 사라졌다. 한국 축구에서 정의하는 대로 주 유니폼(협회 에디션), 제 X[10] 보조 유니폼으로 옮기는 게 그나마 정확하다.

NBA의 인기로 인해 표준농구 규칙이 NBA기준으로 바뀐 게 많다. 이전에는 축구와 마찬가지로 1st half, 2nd half로 진행되었으나 4쿼터로 운영되고 매우 익숙한 3점슛 라인도 1979-80 시즌부터 도입하여 활용하던 것을(ABA기준으로는 1961년) 88년 서울 올림픽부터 처음 도입했다. 2001년까지는 지역방어가 금지되기도 했다.

2.2. 살인적인 일정[편집]

NBA는 경기일정이 빡빡하기로 유명하다. 정규 시즌만 25주간 82경기를 치른다.[11][12] 평균적으로 1주일에 4경기 꼴로 경기를 치른다. 백투백(2일 연속 경기) 일정도 간간히 있다. 경기 시간도 8분 더 많다.

다만 과거에 비하면 선수들의 평균 출장시간이 상당히 줄었다. 2018-19시즌이 진행중인 3월 2일 기준으로 NBA에서 가장 오래 뛰는 선수는 제임스 하든과 브래들리 빌로 37.4분, 36분대가 두명에 35분 이상 뛰는 선수는 모두 12명이다. 그러나 1997-98시즌을 보면 41.4분을 뛴 마이클 핀리를 선두로 무려 7명이나 40분 이상 뛰고, 38.8분이나 뛴 마이클 조던이 17위, 38.4분을 뛴 게리 페이튼이 20위일 정도로 엄청나게들 뛰었다.

시간을 10년 정도 더 돌려서 NBA 역사상 가장 페이스가 빠르고 피지컬했던 1980년대의 87-88시즌을 보면 체력부담 때문인지 90년대보단 적지만 2010년대보단 훨씬 많아서 1위 조던이 40.4분, 39분대만 네명에 톱 20 전원이 36.6분 이상 뛰었다. 그 다음시즌도 40분대의 조던이 1위, 전 시즌은 래리 버드가 1위로 40분대였다. 게다가 당시는 시즌 후반 체력 보강 차원에서 결장이란 개념은 있지도 않았기에 조던은 저러면서 둘 다 전경기 출장, 버드는 부상으로 8경기만 빠졌을 뿐이었다. 게다가 보스턴같은 팀이 팀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난 팀은 케빈 맥헤일같은 선수가 발의 뼈가 부러졌음에도 수술을 미루고 플레이오프를 전부 치르는, 그것도 39분씩 뛰는 미친 짓을 하다가 선수생명을 깎아먹기도 했다. 뭔가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터프한 시기 (...)인데다 관리도 못 받다보니 전반적으로 지금보다 훨씬 선수생명이 짧은 선수들이 많았다. 버드는 10년차에 몸이 아작나 마지막 세 시즌은 악으로 깡으로 버틴 수준이고 맥헤일과 아이제아 토마스는 둘 다 13시즌, 빌 레임비어는 14시즌만에 GG를 쳤다. 물론 카림 압둘자바, 로버트 패리쉬처럼 롱런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매우 드물었고, 유타의 말론&스탁턴은 80년대라기보단 90년대 선수들에 가깝다.

이에 대한 케니 스미스의 부심가득한 멘트가 바로 "Men played in the 80s". 포인트는 세계에서 가장 빡센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는 NBA선수들이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양호한 환경이라는 것. 심지어 8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전세/전용기도 없이 일반인들과 같이 수속을 밟고 신인들 놀리느라 잡일 잠깐 시키는 지금과 달리 트레이너와 신인들이 일손이 부족해 잡일을 해야했다. 거기에 팀이 많다보니 백투백 경기로 2일 연속 비행기 타고 이동해서 다른 구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게 미국 동-서부를 가르는 장거리라도 얄짤 없다. 거기에 플레이오프가 1라운드부터 7전 4선승 제도로 바뀌면서 파이널까지 갈 경우 최대 110경기, 최소 98경기를 소화한다.[13]

NHL과 NBA팀이 같은 도시를 연고지로 쓰는 경우, 거의 대부분 경기장을 같이 쓰기 때문에 시즌 도중에는 매일 마루 조각을 깔았다가 치웠다가를 반복한다. NHL도 똑같이 82경기를 치루긴 하지만 시즌기간이 2주정도 더 길다. 그리고 스타급 플레이어라고 해도 한 경기에 20분 이상 뛰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유럽의 주요 아이스 하키 리그들의 경우 6개월에 56경기를 치루는 일정으로 NHL이 다른 아이스하키 리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경기를 치룬다고 보기 힘들다.

NBA팀 중 역대 가장 많은 경기수를 치른 팀은 2008년 보스턴 셀틱스로 플레이오프에서 7차전-7차전-6차전-6차전까지 가는 강행군 끝에 무려 108경기나 치르고 우승했다. 당연하지만 우승팀 중에서도 최다경기.[14] 반대로 현 16강 플레이오프로 정착한 이후 (과거엔 4팀만 가던 때도 있었으니 적절한 비교가 아니다) 가장 적은 경기수로 우승한 팀은 플레이오프 통틀어 한 경기 패배한 2001년 LA 레이커스. 당시엔 1라운드가 5전3승제라 15승1패로 통합 98경기 치르고 우승했다. 1라운드가 7전 4승제로 바뀐 2003시즌 이후 최소경기로 우승한 팀은 2017년 워리어스로 플레이오프에 단 1패만 하며 16승1패, 통합 99경기 치르고 우승했다.

이쯤되면 다른 나라들의 리그는 어떤가 싶을 텐데, NBA 다음으로 많은 경기를 벌이는 리그가 한국의 KBL이다. KBL은 22주 동안 54경기. 10개의 팀이 한 팀당 6전로 진행된다. 평균적으로 1주일에 3경기 정도 소화하는데 정규리그 경기수부터 30경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다가, 한국이 워낙 땅이 좁아 원정거리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15] 세계 대부분의 농구리그는 1주에 한 경기씩 해서 30경기 안팎을 치른다. 중국 농구 협회는 20개 팀이 38경기. 유럽도 마찬가지여서 유럽 상위리그의 경우 한 시즌에 평균적으로 34경기를 소화한다. 유럽리그에서 클럽대항전에 나가는 유럽 상위권팀이 유로리그와 자국리그 다 합쳐서 8개월간 60~70경기 정도 소화한다. 경기 시간까지 감안하여 세계 평균이랑 따졌을 경우 NBA는 거의 3배에 달하는 일정을 소화한다. 그야말로 지옥의 레이스.[16]

이 때문에 NBA에서도 경기 스케줄 조정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으며, 그렉 포포비치같은 몇몇 감독들은 이 지옥 같은 레이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주축 선수에게 휴식 시간을 더 주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이 설사 NBA 사무국과 NBA 방송사의 심기를 거스르고, 벌금을 먹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이다.

이런 빡빡한 일정이 지켜지지 않았던 적이 몇 번 있는데 예를 들어 1998-99 시즌은 직장폐쇄로 50경기로 단축되었다. 2011-12 시즌도 직장폐쇄로 66경기만 치뤄졌다.[17][18][19] 2019-20 시즌 역시 코로나19로 인해 4월 13일 현재 리그가 중단된 상태이다. 정규시즌은 물론 플레이오프까지 단축이 예상되는 상태이며 이로 인해 NBA 역사에 또 하나의 시즌 단축 사례가 추가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지옥의 일정으로 인해 내외부적으로 불만이 제기되자 2017-18 시즌에는 개막을 앞당기고 백투백 경기를 종전보다 줄이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현재 언론, 전문가들을 통해 얘기되고 있는 개선책은 크게 두 방향이다.
1. 경기수 자체를 줄이기
2. 18시즌에 시범적으로 한 정책을 확대해서 정규시즌을 연장하고 시범경기를 줄여서 82경기를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치르기
다만 현실적으로 1은 불가능에 가까운게 경기수가 줄어들면 입장료 수익+TV중계료+광고료 등 관련 수익이 줄어든다. 이러면 구단주들이 버는 돈이 줄어듬과 동시에 BRI(Basketball related income: 농구 관련 수익)의 특정 %로 정해진 샐러리 캡이 줄어들고, 샐러리캡의 일정 %로 정해지는 최대액수 연봉도 줄어든다. 즉, 관련된 모두가 수익이 줄어든다. 이 때문에 돈을 벌만큼 번 슈퍼스타들을 제외하곤 이 안에 대해 대부분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크리스 웨버 등 은퇴한 선수들도 "82경기는 전통"이기 때문에 경기수 단축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20] 실질적으로 계속해서 2번의 방향을 확대하는 쪽으로 갈 확률이 높다.

2.2.1. 플레이오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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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Larry O'Brien Trophy)

컨퍼런스별로 1위 vs 8위, 2위 vs 7위 식으로 16강(동부 8팀+서부 8팀)-8강(1,8위전 승리팀 vs 4,5위전 승리팀/2,7위전 승리팀 vs 3,6위전 승리팀)-4강(컨퍼런스 파이널) 토너먼트를 치른 후, 6월쯤 동-서부 컨퍼런스 챔피언팀끼리 챔피언 결정전인 NBA 파이널을 치른다.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팀은 래리 오브라이언 트로피를 받는다. 과거 동서부 디비전부터 시작된 NBA는 리그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17개로 팀이 늘어난 1970-71시즌부터 네 개 디비전, 즉 1. 서부해안의 퍼시픽, 중서부의 미드웨스트, 중부의 센트럴, 동부해안 쪽의 애틀랜틱애 디비젼으로 개편되어 8강 플레이오프에서 10강, 12강에 이어 1984년에 부전승 제도가 사라지면서 현 16강 플레이오프 제도가 확립되었다. 이후 2004-05시즌부터 샬럿 밥캐츠 (현 샬럿 호네츠)가 창단하며 34년간 지속된 4대 디비전 체제는 사라지고, 6개 디비전 체제로 개편되게 된다.

2005-06 시즌까지는 승률보다 디비전 내 성적을 우선시해서 플옵 시드와 실제 승률간의 괴리가 있었다. 즉, 각 디비전 1위팀간 승률에 따라 1, 2, 3번시드를 먹고 2위팀 중 가장 성적 좋은 팀이 4번시드를 먹는 방식이었다. 이렇다보니 2005-06 시즌 덴버 너기츠는 44승 38패로 승률은 서부 공동 7위였는데 당시 노스웨스트 디비전이 죄다 막장이었던 관계로 그 성적으로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면서 3번시드를 가져갔다. 그리고 1라운드 대진에서 만난 6번시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가 47승 35패로 오히려 성적이 좋았다.(...) 물론 시드 상으로만 덴버가 상위시드였기에 홈코트 어드밴티지는 그대로 클리퍼스의 것이었고 플옵 결과도 1승 4패로 덴버의 광탈.[21]

또한 2005-06 시즌의 경우 서부 1, 2위의 승률을 거둔 스퍼스와 매버릭스가 같은 디비전이라 메인 이벤트여야 될 이들의 대결이 2라운드에 벌써 이뤄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2006-07 시즌부터는 포맷이 바뀌었는데 기존처럼 디비전 1위팀 세팀과 이들을 제외하고 가장 성적이 좋은 팀 하나를 묶어서 이들 네팀들을 성적순으로 세우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전에서 서부 1, 2, 3위팀이 나왔다고 치자. 그러면 2005-06 시즌까지는 서부 1위팀만 1번 시드를 받고 나머지 팀들은 4, 5번 시드가 되어 1라운드에서(!!) 맞붙게 된다. 그러나 바뀐 방식으로는 위의 예시에서 1위팀은 1번시드, 2위팀은 2번시드를 받고 나머지 디비전의 1위팀들이 각각 3, 4번 시드를 받게 된다.

물론 이렇게 되더라도 서부 3위팀이 5번시드를 받아 좀 억울한 감이 있지만 기존 방식보다는 훨씬 공평하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웬만해선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면 디비전 우승팀에 어드밴티지를 주는 기존 방식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강한 디비전에 속한 팀을 억울하게 하지 않는, 상당히 균형잡힌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015-16 시즌부터 각 컨퍼런스에서 승률이 높은 8팀이 디비전 성적과 관계없이 실제 승률 순으로 플옵 시드를 배정받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따라서 디비전 1위가 가지는 이점들도 사라졌다. 기존 룰에서는 승률이 조금 낮아도 디비전 1위만 하면 플레이오프 진출은 물론, 최소 4번 시드까지 보장됐지만 변경된 제도에서는 극단적인 경우[22] 아예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도 없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승률 순으로 시드를 배정하므로 이제는 상위 시드팀이 무조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가게 되었다. 이와 함께 타이브레이커 룰도 변경되었다. 승률이 같은 두 팀이 발생할 경우 플레이오프 시드배정과 홈코트 어드밴티지 모두 맞대결 성적이 제일 우선순위가 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룰에서 승률이 같은 두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경우 한 쪽이 디비전 우승팀이면 그 팀이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갔지만 2015-16 시즌부터는 먼저 맞대결 성적으로 타이브레이커 룰을 따진다. 디비전 우승을 못한 팀이 디비전 우승팀을 만나더라도 맞대결 성적에서 우위에 있는 경우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가져 올 수 있게 된 것. 출처

종합적으로 봤을 때 2018-19시즌 현재, 디비전의 효과는 "비교적 가까이 있는 같은 디비전의 팀들과 좀 더 많은 수의 정규시즌 경기를 치르게 된다"는 것과 별 큰 의미는 없는 "디비전 챔피언"이라는 것, 그리고 타이브레이커에서 약간 이득을 보는 것 외에는 거의 없어졌다.[23]

2.3. 서고동저[편집]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동부의 근소 우위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잘나가던 소위 "왕조"가 어느 팀들이었는지 감안하면 쉽게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경우 서부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홀로 군림했지만 동부에는 보스턴과 필라델피아 양대 산맥이 있었고 후반부에는 디트로이트가 치고 올라오면서 동부쪽이 전체적으로는 우위였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양대 컨퍼런스 챔피언이 맞붙는 파이널에서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동부팀들을 잘 잡아냈고(5우승 3준우승) 전체적으로 80년대에는 우승 10번을 동서부가 정확히 5번씩 양분했다. 다만 실질적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팀이 서부에선 레이커스 단 하나(실제로 이 시기에 우승을 한 서부팀은 레이커스 뿐이다)였던 반면 보스턴과 맞먹는 전력의 필라델피아(전반기), 디트로이트(후반기) 등이 있었던 동부가 더 빡센 것은 사실. 그나마 레이커스의 라이벌이었던 휴스턴의 전력은 끽해야 유독 보스턴을 애먹였던 (실제로 탈락시키기도 했던) 밀워키 벅스 수준이었다.[24]

2.3.1. 동고서저였던 1980년대[편집]

플레이오프에서 성과의 경우 대진운이나 맞붙는 우승후보의 수, 업셋 등[25] 여러 변수가 있으니 일단 전반적인 전력 비교를 위해 1979-80시즌부터 1988-89시즌까지 정규시즌 승수로 동서부의 수준 차이를 따져보자.
항목은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 총합, 플옵 진출 팀 중 톱시드와 최하위 시드의 승수, 그리고 각 컨퍼런스 최하위 팀의 승수이다.[26]

1)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 총합

* 앞의 숫자는 시즌이 종료되는 해이다.

1980년: 동부 291승 vs 서부 305승 - 4,5번 시드를 제외한 나머지 시드는 모두 동부가 조금씩 성적이 앞섰으나 4번 시드 피닉스 선즈가 무려 55승이나 거두고 5번 캔자스 시티 킹스가 47승이나 했다.

1981년: 동부 321승 vs 서부 288승 - 전년도와 달리 동부가 무려 33승이나 더 거둔 해이다. 서부엔 단 한 팀도 없던 60승 팀이 동부엔 보스턴, 필라델피아(62승), 밀워키(60승)까지 세 팀이나 있을 정도로 동부의 강세가 두드러진 해. 여담으로 이때 빅3였던 보스턴, 밀워키, 필라델피아는 이때부터 85-86시즌까지 무려 6년동안이나 셋이서 톱3 시드를 나눠먹는다.[27] 플레이오프 마지노선인 6번시드도 동부 6위인 인디애나는 44승, 서부 6위 휴스턴 로키츠는 40승으로 전체적으로 동부의 우위가 두드러진 시즌.
서부의 경우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가 매직 존슨이 부상으로 시즌 절반을 빠지면서 54승에 그치고, 2월말에 그가 복귀한 이후부터 건강하게 뛰긴 했지만 당시 3전2승제이던 1라운드에서 휴스턴에게 충격의 업셋을 당한게 컸다. 로키츠는 당시 6번시드였지만, 레이커스 외엔 강력한 우승후보급 팀이 없어져 서부 플옵에서 다른 팀들을 제끼고 파이널에 오른 것이다. 재밌게도 서부 결승 상대 역시 40승에 그친 5번 시드 캔자스 시티 킹스였다. 킹스에게 업셋당한 당시 서부 1위 피닉스 선즈는 레전드 가드 데니스 존슨, 건실한 파워포워드 "트럭" 로빈슨, 훌륭한 득점원 월터 데이비스란 올스타 3인방이 57승으로 이끌었지만,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가 있는 팀은 아니었다.[28] 즉, 절대강자가 없어졌기 때문에 누가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1982년: 동부 305승 vs 서부 295승 - 서부가 하위시드에서 더 강세였음에도 불과하고 상위시드에서 격차를 좁히지 못해 동부가 우위인 해.

1983년: 동부 308승 vs 서부 303승 - 젊은 팀들의 약진과 밀워키가 다소 주춤하면서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또한 50승 이상 팀이 동서부 3팀씩으로 균형이 맞춰지면서 상위권에서도 격차가 줄었다.

1984년: 동부 380승 vs 서부 349승 - 플레이오프가 8팀 체제로 확장된 첫 해. 서부에선 오직 레이커스만이 50승을 넘긴 반면(54승), 동부에선 보스턴, 밀워키, 필라델피아가 나란히 50승을 넘겼다.

1985년: 동부 382승 vs 서부 366승 - 레이커스가 오랜만에 60승을 넘기고, 동부는 지난 2년간 정규시즌 성적이 주춤했던 밀워키가 59승으로 오르면서 빅3체제가 견고해졌다.

1986년: 동부 382승 vs 서부 358승 - 이 시즌은 상위권에선 동부의 우위가, 하위권에선 서부의 우위가 두드러지는 시즌이었다. 1~5위까지를 보면 동부는 보스턴 67승, 밀워키 57승, 필라델피아 54승, 애틀란타 50승[29], 디트로이트 46승으로 이어지지만, 서부는 레이커스 62승, 휴스턴 51승, 덴버 47승, 댈러스 44승, 유타 42승으로 이어졌다. 하위권의 경우 동부는 워싱턴과 뉴져지가 39승씩, 시카고가 30승으로 플옵 막차를 탔고, 서부는 포틀랜드가 40승, 새크라멘토왜 샌안토니오가 37승과 35승을 했다. 사실 7,8,9는 큰 차이가 안나지만 플옵 탈락 팀들의 경우 서부 9위인 피닉스 (32승)부터 꼴찌 워리어스까지 30승을 넘긴게 크다.[30]

1987년: 동부 386승 vs 373승 - 래리 버드 입단 이후 7년 동안 6번이나 60승을 넘긴 보스턴이 부상악령에 시달리면서 60승 고지를 넘는데 실패했다. (59승) 또한 줄리어스 어빙, 모제스 말론 등 주축선수들의 노화에 시달리던 필라델피아가 45승, 동부의 한 축인 밀워키가 50승에 그치면서 6년간 계속된 빅3 체제가 무너졌다. 대신 젊은 강자들인 애틀란타가 2번 시드(57승), 강력한 공격팀에서 수비와 조직력 위주 팀으로 변신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3번 시드(52승)으로 그 자리를 메웠다. 서부에서는 레이커스가 최전성기를 누리는 MVP 매직 존슨 덕분에 무려 65승을 거뒀는데, 매직이 버드보다 팀성적에서 앞선 것은 이때가 최초였다.

1988년: 동부 371승 vs 서부 390승 - 밀워키가 아직 서부에 있던 80년 이후 처음으로 서부가 우세한 시즌이다! 동부는 보스턴이 57승으로 톱시드를 차지하며 마지막 불꽃을 불태웠지만 필라델피아는 플레이오프 탈락, 밀워키는 42승으로 하위시드에 그치며 빅3 체제가 완전히 종결되었다. 반면 피스톤즈와 호크스는 여전히 강력했으며, 래리 버드와 매직 존슨을 제치고 MVP를 차지한 무서운 신예 마이클 조던의 불스가 50승이나 거두며 상위시드에 진입했다.
서부에서는 여전한 62승의 레이커스 외에 미친 공격력을 자랑하는 덴버 너기츠(54승), 돈 넬슨이 이끌며 슈퍼에이스는 없지만 공수균형이 좋은 댈러스 매버릭스(53승), 젊은 클라이드 드렉슬러가 슈퍼스타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53승)가 두각을 나타냈으며, 칼 말론, 존 스탁턴이란 젊은 듀오가 실력발휘를 하기 시작한 유타 재즈가 세대교체에 완전히 성공하며 47승을 거뒀다.

1989년: 동부 408승 vs 서부 381승 - 자신감을 얻은 피스톤즈가 무려 63승을 거두는 미친 모습을 보이며 1년만에 다시 동부의 우세로 돌아갔다. 이 시즌은 본격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시즌이었는데, 80년대 동부를 지배한 보스턴은 버드와 케빈 맥헤일의 부상으로 42승에 그치며 추락했다. 필라델피아는 46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복귀했지만 젊은 찰스 바클리가 독보적인 에이스였다. 85년 드래프트 1순위 패트릭 유잉은 뉴욕 닉스를 52승으로 이끌었으며, 베테랑 래리 낸스가 젊은 피 마크 프라이스, 브래드 도허티와 빅3를 이룬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무려 57승을 거두었다.
서부는 레이커스의 독주가 계속되는 가운데 계속 성장하는 유타가 2번 시드를 차지했으나, 승수 상으로 2위였던 피닉스 선즈는 2년차 시즌을 맞으며 무려 20.4점 12.2어시스트란 괴물같은 성적을 낸 젊은 가드 케빈 존슨과 톰 체임버스, 특급 식스맨 에디 존슨 등 활약에 힘입어 55승을 거두며 강팀으로 복귀했다.

이처럼 플레이오프 진출팀들의 승수로 따져본 1980년대는 1979-80시즌은 서부의 우세로 시작했으나, 강팀 중 하나인 밀워키가 동부로 옮기면서부터 동부의 확연한 우세가 계속되었다. 10년동안 동부가 더 우세한 시즌은 8번, 서부는 2번에 불과했으며 총 승수로 따져보면 동부가 10년간 126승, 평균 12.6승을 더 거두었다. 이를 보면 평균적으로 동부의 플레이오프 팀들의 전력이 더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부가 우세했던 1980시즌과 1988시즌을 제외한 나머지 8시즌의 경우 상위권에서 동부의 확연한 우세가 돋보인다.

2) 플레이오프에서 각 컨퍼런스 톱시드 팀

*. 앞의 팀이 동부, 뒤의 팀이 서부이다.

1980년: 보스턴 셀틱스 61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0승 - 1승 차이로 사실상 큰 의미는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파이널 진출은 59승을 한 필라델피아가 했다. 총 승수와 마찬가지로 동부가 우세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던 해.

1981년: 보스턴 셀틱스 62승 vs 피닉스 선즈 57승 - 디펜딩 챔피언 레이커스에서 매직 존슨이 무릎 부상으로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먹은 해였다. 심지어 1라운드 업셋을 당하며 서부 플레이오프는 사실상 확실한 강자가 없는 상황, 반면 동부는 보스턴이 타이브레이커에서 이겨 톱시드를 얻었을 뿐 필라델피아도 62승, 밀워키도 60승이었다.

1982년: 보스턴 셀틱스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7승
1983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65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8승 - 에이스 모제스 말론이 플레이오프 전승을 장담할 정도로 강력했던 해이다.
1984년: 보스턴 셀틱스 62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4승
1985년: 보스턴 셀틱스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6년: 보스턴 셀틱스 67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7년: 보스턴 셀틱스 59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5승
1988년: 보스터 셀틱스 57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2승
1989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63승 vs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57승

버드와 매직 입단 이후 레이커스가 처음으로 승수에서 셀틱스를 앞선 1987, 1988년을 제외하면 전부 동부의 우세이다. 또한 그 중 보스턴과 로스앤젤레스가 동시에 동서부 톱시드를 나란히 차지한 적이 무려 7번으로, 80년대 NBA는 두 팀이 다 해먹었다는 걸 알 수 있다. 10년간 동부 톱시드의 평균 성적은 62.2승, 서부 톱시드의 평균 성적은 59.4승으로 동부의 우세다.

3) 각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진출팀들 중 최하위 시드 팀

* 앞이 동부, 뒤가 서부

1980년: 워싱턴 불리츠 39승 vs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8승
1981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44승 vs 휴스턴 로키츠 40승
1982년: 애틀란타 호크스 42승 vs 휴스턴 로키츠 46승
1983년: 애틀란타 호크스 43승 vs 덴버 너기츠 45승
1984년: 워싱턴 불리츠 35승 vs 캔자스시티 킹스 38승
1985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36승 vs 피닉스 선즈 36승
1986년: 시카고 불스 30승 vs 샌안토니오 스퍼스 35승
1987년: 시카고 불스 40승 vs 덴버 너기츠 37승
1988년: 뉴욕 닉스 38승 vs 샌안토니오 스퍼스 31승
1989년: 보스턴 셀틱스 42승 vs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39승

상위시드와 달리 격차가 적은 편이어서 5번은 동부의 우위, 4번은 서부의 우위, 한번은 동률이다. 평균을 내보면 최하위시드 팀들은 동부는 평균적으로 38.9승, 서부는 38.5승으로 동부의 매우 근소한 우위. 0.4승 차이이니 이 정도면 사실 우열을 따질 것 없이 최하위 시드팀의 수준은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4) 컨퍼런스 최하위 시드 팀

1980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16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4승
1981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21승 vs 댈러스 매버릭스 15승
1982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15승 vs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17승
1983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0승 vs 휴스턴 로키츠 14승
1984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6승 vs 휴스턴 로키츠 29승
1985년: 인디애나 페이서스 22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22승
1986년: 뉴욕 닉스 23승 vs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30승
1987년: 뉴욕 닉스 24승 vs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2승
1988년: 뉴져지 네츠 19승 vs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17승
1989년: 샬럿 호네츠 20승 vs 마이애미 히트 15승[31]

동부가 우위였던 시즌은 5번, 서부가 우위였던 적은 4번, 동률은 한번이다. 동부 최하위는 평균적으로 20.6승을, 서부 최하위는 평균적으로 19.5승을 거두었다. 위와 마찬가지로 동부의 매우 근소한 우위인데, 플옵 최하위 시드와 달리 그래도 1승 차이는 난다.

5) 기타

간단하게 각 시즌별로 고승률(50승 이상) 거둔 팀들의 수도 살펴보자

* 50승 이상

1980년: 동부 3 vs 서부 3
1981년: 동부 4 vs 서부 3
1982년: 동부 3 vs 서부 2
1983년: 동부 3 vs 서부 3
1984년: 동부 4 vs 서부 1
1985년: 동부 3 vs 서부 2
1986년: 동부 4 vs 서부 2
1987년: 동부 4 vs 서부 2
1988년: 동부 4 vs 서부 4
1989년: 동부 4 vs 서부 3

동부 36번, 서부 25번

* 55승 이상

1980년: 동부 2 vs 서부 3
1981년: 동부 3 vs 서부 1
1982년: 동부 3 vs 서부 1
1983년: 동부 2 vs 서부 1
1984년: 동부 1 vs 서부 0
1985년: 동부 3 vs 서부 1
1986년: 동부 2 vs 서부 1
1987년: 동부 2 vs 서부 2
1988년: 동부 1 vs 서부 1
1989년: 동부 2 vs 서부 2

동부 21번, 서부 13번

* 60승 이상

횟수가 적기 때문에 총 횟수로 대신한다. 동부 10번, 서부 5번

* 65승 이상

1983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65승), 86년 보스턴 셀틱스 (67승), 87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65승)

뭘 기준으로 봐도 상위권 팀들은 동부가 훨씬 더 강력했다는 것이 명백하다. 일단 50승 이상 팀 자체도 동부가 확연히 앞서며, 보통 우승후보로 분류되는 팀들은 55승 이상인데, 동부는 84년, 88년을 제외하면 매 시즌 최소 두 세팀은 55승 이상을 했다. 반면 서부는 레이커스가 아닌 팀이 55승을 넘긴 적은 10년을 통틀어 5번 뿐이다.[32]
60승 이상 팀으로 가면 더 심각하다. 80년대에 서부에서 60승을 넘긴 팀은 단 하나, 레이커스 뿐이었다. 반면 동부는 셀틱스가 6번, 필라델피아가 두번, 밀워키가 한번, 디트로이트가 한번 넘겼다.

65승 이상이야 역대급이니 어차피 몇 번 안 나오긴 하지만 그것도 동부가 2회, 서부 1회이다.

6) 플레이오프 실패팀들의 평균 승수

마지막으로 각 해에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팀들의 평균 승수를 보자. 총 승수가 아닌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 79-80시즌을 제외하곤 매년 서부가 한 팀씩 많았기 때문이다.

1980년: 동부 32.6 vs 서부 28.6
1981년: 동부 28.6 vs 서부 31.6
1982년: 동부 31.2 vs 서부 31.16
1983년: 동부 30 vs 서부 30.3
1984년: 동부 27 vs 서부 33.2
1985년: 동부 26.6 vs 서부 28.7
1986년: 동부 26 vs 서부 31.2
1987년: 동부 26.3 vs 서부 26.25
1988년: 동부 31 vs 서부 22.25
1989년: 동부 28.5 vs 서부 24.4

전반적으로 서부가 앞선 해들이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동부가 소수 둘째자리 차이로 앞선 82년, 87년은 사실상 동률이라고 볼 때 동부가 우세한 해는 80, 88, 89년이고, 서부가 우세한 해는 81, 83, 84, 85, 86년이다. 하위권에선 84년, 86년에서 서부가 크게 앞섰지만, 88, 89년엔 반대로 동부가 크게 앞섰다. 동서부 간의 평균 승수 격차를 합쳐보면 서부가 10년간 평균 0.9승을 더했는데, 사실상 크게 의미는 없는 수준이다.[33]

이보다는 사실상 각 연도별로 비교하는 것이 더 적합할 텐데 동부가 우세한 3년 중 80년은 동서부 균형이 비교적 맞은 해, 88년은 서부가 플옵 진출 팀 총 승수와 톱시드면에선 앞섰지만 플옵최하위 시드는 동부가 앞선 해, 89년은 플옵 진출팀들 중 총승수, 톱시드, 최하위 시드, 컨퍼런스 최하위 팀까지 전부 동부가 확연히 앞선 해였다.

서부가 앞선 5년을 보면 81년은 주요 4개 항목 모두에서 동부가 앞선 해, 83년은 톱시드와 플옵진출팀 총 승수, 컨퍼런스 최하위팀은 동부가 앞서고, 플옵 최하위시드 팀은 서부가 앞선 해, 84, 86은 톱시드팀과 플옵진출팀 총 승수는 동부가, 플옵최하위시드팀과 컨퍼런스 최하위시드는 서부가 앞선 해, 85년은 톱시드팀과 플옵진출팀 총 승수는 동부가, 플옵최하위시드팀은 서부, 컨퍼런스 최하위시드는 동률인 해였다.

재밌게도 상위권에서 동부가 크게 앞선 84년과 86년에서는 중~하위권에서 서부가 앞섰고, 반대로 상위권에서 서부가 앞선 88년에는 중~하위권에서 동부가 앞섰다. 85년도 어느 정도 비슷한 해였고, 81년의 경우는 동부가 상위~중위권(플레이오프 막차)까지 모두 앞서지만 하위권에서 서부가 약간 우세였던 해였다. 83년의 경우 동부가 상위권에서 확연히 앞서고, 서부가 중위권에서 근소하게, 그리고 하위권에서 서부가 우위긴 하지만 평균 승수 0.3정도라 사실상 동부의 근소우위라고 봐야한다.

80년은 하위권은 동부가 약간, 상위권은 서부가 약간 앞서고 중위권은 비슷해서 균형이 가장 잘 맞는 해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89년은 플레이오프 진출팀의 총 승수, 톱시드, 최하위시드, 컨퍼런스 최하위, 하위권팀들의 평균 승률 모두 동부가 확연하게 앞서는 해로 80년대에서 가장 동고서저가 심했던 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경향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지속되었는데, 이 해에 동부 챔피언 피스톤즈는 레이커스를 결승에서 스윕해버렸다.[34][35]

7) 결론

일단 동서부 최강이었던 레이커스와 보스턴은 80년대를 통틀어 보면 백중세의 기량이다. 80년대 중반에 보스턴이 확연히 더 강했고, 80년대 후반엔 레이커스가 확연히 더 강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60승을 넘긴 횟수도 보스턴 6회, 레이커스 5회, 55승 넘긴 횟수는 보스턴 9회 레이커스 8회, 50승을 넘긴 횟수는 보스턴은 9회, 레이커스는 10회다. 이 기간동안 보스턴은 59.2승, 레이커스는 59.1승으로 사실상 완전히 대등하다.[36]

그러나 종합적으로 보면 80년대 동부가 확연한 우위라고 볼 수 있다. 보스턴이 하락세를 그리고 레이커스의 황금기였던 87,88시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매 시즌 동부 플레이오프 팀들이 서부 플레이오프 팀들보다 더 많은 승리를 거뒀으며, 전체 1위도 동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건 상위권에서 특히나 동부의 우위가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플레이오프 막차 팀들이나 컨퍼런스 최하위팀들의 경우 위에서 살펴봤듯이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상위권 팀들 사이에서 동서부 격차로 인해 저런 차이가 난 것이다. 어떻게 봐도 동급인 레이커스와 보스턴을 빼고 나머지 동서부 상위권 팀들을 보면 이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필라델피아는 79-80시즌부터 84-85시즌동안 평균 59승을 거둔 초강팀이었다. 이 6년동안 레이커스는 5번 파이널 진출, 보스턴은 세번, 필라델피아도 세번 파이널에 올랐다. 만약 필라델피아가 동부가 아닌 서부팀이었다면 보스턴과 로스앤젤레스의 파이널 진출 횟수가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다.
필라델피아는 80년대 통틀어 53.5승을, 밀워키 벅스는 52.2승을 올렸다. 그러나 서부에서 레이커스 다음으로 80년대에 높은 평균 승수를 올린 팀은 포틀랜드인데 44.2승에 불과하다. 레이커스 외에 55승을 넘긴 적이 가장 많은 (3회) 피닉스 선즈의 경우 43.9승이다.
앞서 79-80시즌부터 84-85시즌까지 필라델피아가 평균 59승을 거뒀다고 했는데, 이 기간동안 레이커스 다음으로 평균 승수가 높았던 선즈는 평균 48승을 했다. 같은 기간 벅스는 평균 54승이었다.

이처럼 서부가 동부와 비슷하기라도 한 것은 중위권~하위권 한정이었으며, 그나마도 특정 시즌 (85-86시즌이라든지)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체를 보면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서부가 확실하게 우위인 것은 플레이오프 실패팀들의 평균승률 항목 단 하나인데, 이 마저도 큰 차이는 아니다.[37]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상위권의 절대적인 우위로 인해 80년대는 확실한 동고서저라고 할 수 있다.

2.3.2. 1990년대[편집]

* 동서부 균형이 맞았던 시대

1990년대는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단독으로 왕조로 군림했지만 조던의 1차 은퇴 시기였던 94년, 95년에는 서부팀 휴스턴 로키츠가 우승을 가져갔고 2차 은퇴 직후인 99년 역시 서부팀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이 시기를 상세히 보면 조던 은퇴 시기에도 휴스턴과 뉴욕은 사실상 대등한 전력이었고, 95년 동부 파이널리스트 올랜도는 오히려 객관적인 전력이 휴스턴보다 위였다. 즉, 이때 우승팀이 휴스턴이긴 해도 서고동저는 결코 아니었다. (2008년에 동부에서 우승팀이 나왔다고 플옵커트라인이 50승이었던 서부가 더 약한게 아닌것처럼)
전체적으로 90년대는 동서부 균형이 어느 정도 맞는 수준이었지만, 굳이 따지면 최강팀 불스가 있는 동부가 더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조던이 사라져서 불스가 2라운드 탈락한 94시즌에, 전 시즌보다 전력이 소폭 하락한 닉스가 결승에 진출하고 휴스턴과 백지장 하나 차이 승부를 펼친 걸 보면 알 수 있다. 즉, 리그 최강자였던 조던이 없이도 동서부 균형이 어느 정도 맞을 정도였다는 것.

* 절대강자의 퇴장, 짦은 춘추전국시대

99시즌은 단축시즌으로 여러 이변이 있었는데, 짧은 시즌이다보니 여러 팀이 동률이 되어 시딩이 복잡했다. 동부에선 무려 세팀이 33승으로 동률, 서부에선 두 팀이 37승으로 동률을 이룬데다가 뉴욕같은 강팀이 8번 시드에 그쳤다. [38] 또한 하필 동부 최강인 마이애미가 천적 뉴욕을 만나서 1라운드 탈락하고, 뉴욕이 센터 패트릭 유잉 없이 파이널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확실한 우승권팀인 스퍼스가 있는 서부가 근소하게 더 강하긴 했다.

99시즌은 유독 절대강자가 없던 시즌이었는데 유타가 주축선수들의 노화로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 유타를 떨어뜨린 포틀랜드도 구심점이 되는 에이스가 없어서 애매한 팀이었다. 그나마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라쉬드 월러스는 기복이 심했다.(그리고 이 고투가이 부재 문제는 2000시즌에도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레이커스는 당시 코비 브라이언트는 20점도 못 넣던 애송이였고 샤킬 오닐, 에디 존스(시즌 중반에 글렌 라이스 등과 트래이드), 닉 반 엑셀 등 선수들의 재능은 뛰어났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을 전략이나 지도력이 부족했다.[39] 동부의 히트는 알론조 모닝이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에이스 센터치곤 득점옵션이 다소 부족했고, 팀 하더웨이는 빠르게 기량을 잃어가고 있었다. 닉스는 시즌 내내 조직력 문제로 삐걱거리다가 플옵에 와서야 극적으로 팀이 완성되어 돌풍을 일으켰지만 정작 파이널에선 주전 센터 패트릭 유잉을 잃었다. 실질적인 동부 최강에 가까웠던 페이서스는 안토니오 데이비스를 잃고 골밑의 세기가 조금 약해진데다가 역시 노장팀이라 단축시즌 빡센 스케쥴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가장 전력이 강했던 스퍼스도 흔히 스퍼스하면 떠오르는 극강의 팀플레이와 호흡이 완성되기 전이라 하프코트 오펜스에서 팀 던컨-데이비드 로빈슨이란 최강골밑의 개인기량에 의존하는 성향이 높았다.[40] 서부 컨파가 진짜 파이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던 2000년대 및 그 이후와 비교해보면 훨씬 더 균형이 유지되고 있었다.

2.3.3. 2000년대 이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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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 컨퍼런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밸런스가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서고동저는 기존의 강호들이 몰락하는 가운데 동부의 신흥강호들이 상승세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게 컸다. 인디애나, 뉴욕 등 강호들이 주축선수들의 노화와 세대교체 실패로 무너졌고, 90년대 후반부터 떠올랐던 마이애미 히트는 알론조 모닝이 난데없이 신장병으로 아웃되면서 동기 샤킬 오닐이 최강으로 군림하는 동안 약체로 전락했다. 아이버슨이 두각을 나타냈던 필라델피아는 잦은 부상과 계속해서 바뀌는 팀구성으로 제 궤도에 오르지 못했으며 가드-가드-포워드 빅3에 의존했던 밀워키는 골밑이 약해서 한계가 있었고, 올랜도는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원맨팀이었다. 이 중 유일하게 강호로 자리잡은게 뉴져지 네츠였는데, 네츠 역시 센터가 전무하고 골밑을 어린 파워포워드 케년 마틴 한명에만 의지해야했다. 이러는 동안 서부엔 포틀랜드가 스카티 피펜을 데려오고, 90년대에 MVP까지 차지했던 센터 데이비드 로빈슨을 중심으로 한 강팀이었던 스퍼스는 또다른 최강의 빅맨 팀 던컨을 중심으로 2000년대 최강 팀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케빈 가넷, 디르크 노비츠키, 크리스 웨버 등이 던컨을 위협하는 최강의 파워포워드 라인을 구성해 각자 팀을 이끌었고, 새크라멘토 킹스가 오랜 약체의 역사를 뒤로 하고 강팀으로 떠올랐고, 레이커스는 드디어 넘치는 재능을 활용할 필 잭슨이란 지도자를 만나 2000년대 초반에 3연패를 달리며 왕조로 떠올랐다. 한 마디로 동부팀들은 하나도 안 풀리는 동안 서부팀들이 줄줄 풀리면서 확 기울어진 것.

파이널에서는 서부팀의 확연한 우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8년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2019년까지 총 21번의 파이널에서 서부팀이 14회의 우승을 차지하는 동안 동부팀은 7회 우승에 그쳤다.

NBA 팬들 중에서도 동부 컨퍼런스는 가짜리그, 서부 컨퍼런스의 하위리그라며 조롱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걸 단순히 악의적인 폄하로만 받아들일 수도 없는게, 실제로 동부팀과 서부팀의 전력차는 존재하며 이게 극단적으로 심했던 시기엔 동부 1위팀이 서부 2~3위팀보다도 전력이 훨씬 떨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댈러스 매버릭스의 구단주 마크 큐반의 경우 컨퍼런스 개편을 해 서부 일부 팀을 동부 쪽으로 소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실제로 아담 실버 총재가 플레이오프 방식을 일부 바꾸는 것을 논의했다가 현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오랫동안 동부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던 르브론 제임스가 LA로 떠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가 몰락하면서 '동부는 이제 정말로 유의미한 우승도전권 팀이 없는것 아니냐'라는 걱정까지 나왔고, 실제로 정규시즌 동서부 간의 상대전적이 지난해보다 벌어지면서 현실이 되는듯 했지만.. 그 해에 쓰리핏을 도전하던 서부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깨부수고, 동부의 토론토 랩터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지막의 웃는 건 동부였다.

그리고 18-19 및 19-20 시즌에 들어서 드디어 본격적으로 서고동저가 완화되고 양대리그애서 우승권 팀들이 다양화돠는 조짐이 보이긴 했다. 과거에 동부에서는 르브론의 소속팀을 제외하곤 진지하게 우승에 도전해볼만한 팀이 없던 지금까지의 동부와는 달리, 여러 컨텐더 팀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해당 시즌은 상위 1~6위 선에서는 동서부의 전력이 얼추 비등했던 것. 단, 그 아래로 내려가면 승률의 격차가 꽤 남아있는 편이라 기존의 서vs동 승률 자체는 그닥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7~8위 경쟁은 서부가 동부보다 훨씬 힘들었을 정도르 중위권 아래에서는 여전히 극심한 서고동저가 남아있었다.

20-21 시즌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는데, 양 컨퍼런스의 상대전적이 처참하게 차이가 난다. 02월 20일 기준 서부 8위에 불과한 워리어스가 동부 기준으로는 상위시드인 4위에 해당될 정도. 물론 아직 시즌 초이긴 하나 극초반이 아닌 5분의 2 이상이 지난 시점임을 고려하면 빈말로도 균형이 맞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양 컨퍼런스의 올스타 뎁스만 보면 서고동저가 시작된 이래 처음이라 해도 될 정도로 양측의 균형이 맞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부분이기도 하다.

2.3.4. 개별 사례[편집]

  • 1998-99 시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위에 언급한대로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서부에는 코비 브라이언트, 샤킬 오닐, 팀 던컨, 제이슨 키드 등으로 이어지는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차례로 나오는 반면 동부에선 이렇다할 슈퍼스타들을 발굴하지 못했다. 그리고 왕조를 이끌었던 시카고 불스와 강호 뉴욕 닉스가 각각 프런트 운영에 있어 잘못된 선택들을 반복하면서 모두 암흑기에 빠져버렸다. 반면 서부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가 90년대 중반의 주춤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다시 왕조를 세웠다. 이 시기는 진짜로 서부 파이널을 뚫고 올라온 팀들이 곧 NBA 파이널에서도 우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2003-04 시즌
르브론 제임스, 카멜로 앤서니, 드웨인 웨이드 등 황금 세대라 불리는 03 드래프티들의 루키 시즌이다. 단일팀 기준으로 1위는 동부팀인 인디애나 페이서스(61승)이나 컨퍼런스 전체 승률로 보았을때 서부가 동부 상대로 266승 154패, 63.3%의 승률을 가져간 역대급 서고동저 시즌이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새크라멘토, 댈러스, 샌안토니오, 포틀랜드같은 기존 강팀에 케빈 가넷을 위시로 한 미네소타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서부는 더욱 더 치열해진 경쟁구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하위권팀들도 부진했던 것이 아닌 게 서부 꼴찌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는 28승으로 이보다 더 안 좋은 성적을 기록한 동부팀이 세 팀이나 있었다. 하지만 최종 우승팀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 마이클 조던 은퇴 이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가 양분하던 NBA 우승 트로피를 6년만에 동부팀에서 다시 가져오게 되었다.
  • 2008-09 시즌
2008-09 시즌의 경우엔 전체 컨퍼런스 성적으론 동부가 서부보다 12승을 더 했음에도 서고동저라고 분류가 되는 시즌이었다. 우선, 전체 승률 1~4위 중 세 팀이 동부이다. (클리블랜드 66승, 보스턴 62승, 올랜도 59승) 하지만, 서부의 플레이오프권 팀들의 승수가 인플레이션되어서 동부에서 47승으로 4위를 기록한 애틀란타가 서부로 가면 9위로 플레이오프 탈락을 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하위권에서의 동부가 서부를 압도하면서 승수를 역전시켰다. 서부에서 9위 피닉스의 승수가 46승이고 다음 순위인 골든스테이트의 승수가 29승으로 동부에 적용하면 꼴찌인 워싱턴 바로 윗 순위이다. 결국 하위권 팀들의 성적은 그닥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서고동저로 불리던 시즌이다.
  • 2013-14 시즌
2013-14 시즌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서고동저가 절정에 달했던 시즌이었다. 우선, 전체 승률 1~3위가 모두 서부팀이다. 그리고 플레이오프를 아쉽게 탈락한 피닉스 선즈의 승수가 48승인데 동부에서 3번 시드를 따낸 토론토 랩터스의 승수와 같다. 동부는 노골적으로 탱킹하는 팀이 생기면서 밀워키 벅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20승을 채우지 못했다. 전체 성적으로도 서부가 동부보다 100승 이상을 더 거둘 정도로 전력 불균형이 심했다. 상위권, 중위권, 하위권 구분 없이 모두 서부가 동부 상대로 압도했던 진정한 역대급 서고동저 시즌이었다.[41]
  • 2014-15 시즌
스테판 커리라는 새로운 아이콘의 탄생과 더불어 시즌 초반에는 서부가 동부를 상대로 70% 이상의 승률을 가져가면서 역대급 서고동저가 올거라는 예상과 함께 이 시점부터 동서부 개편 논의가 수면위로 올라오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후 동부팀들의 약진과 더불어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263승 187패 승률 58.44%로 서부팀의 우세로 끝났다. 이 수치만 보면 심각한 서고동저가 맞으나 시즌 초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상태. 우승팀은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5-16 시즌
2015-16 시즌의 경우엔 시즌 초반, 동부팀들의 약진으로 서고동저가 해결되나 싶었으나, 서부의 강팀들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동부는 다시 한 번 서부를 상대로 균형을 맞추거나 우위를 점한 시즌이 되지 못했다.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232승 218패로 서부의 근소한 우위이다. 하지만 서부팀에서 역대급 1,2위팀들이 나오면서 전력 불균형에 대한 얘기가 나왔던 시즌이기도 하다. 골든 스테이트와 샌안토니오가 나란히 73승과 67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을 기록한 것과 대조적으로 동부팀인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역대급 탱킹을 이어가는 와중에 정규시즌을 10승으로 마무리한 것의 임팩트와 엮여서 서고동저가 심한 것처럼 보였던 시즌이었다. 하지만 우승팀은 동부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 2016-17 시즌
작년 시즌보다는 서고동저가 심화된 시즌이다. 게다가 케빈 듀란트가 골든스테이트로 이적하면서 NBA 역사를 통틀어서도 역대급 슈퍼팀의 탄생이 나온 시즌이기도 하다. 서부 1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67승), 2위 샌안토니오 스퍼스(61승), 3위 휴스턴 로키츠(55승)가 그대로 전체 1~3위가 되었으며 동부 1위팀인 보스턴 셀틱스(53승)와 서부 1위팀과의 승리 차이가 14승이나 차이가 나는 등 상위권에서 동부가 서부에 일방적으로 밀린 형세이다. 반면 하위권은 동-서부 비교적 대등한 시즌이기도 하다. 우승팀은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 2017-18 시즌
2017-18 시즌을 앞두고 폴 조지와 지미 버틀러, 폴 밀샙, 카멜로 앤서니 등 동부의 올스타급 선수들이 시즌 이후에 줄줄이 서부 팀으로 이적함에 따라 서고동저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였다. 물론 서부의 유타에서 동부의 보스턴으로 이적한 올스타 레벨의 고든 헤이워드같은 사례도 있긴 하지만 전문가나 일반 팬 사이에서도 2017-18 시즌 NBA가 역대급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가 될 거라는 예측이 주류였다. 막상 시즌에 돌입하고 나서는 동부팀들이 예상보다 선전하면서 동/서부 컨퍼런스 상대전적은 서부가 237승 213패로 오히려 작년보다 더 완화되었다. 심지어 시즌 초반에는 동부가 서부를 상대로 이기는 경기가 더 많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승팀은 역시 서부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였고 11년만에 파이널 4:0 스윕이 나오면서 서고동저 얘기가 다시 나왔다.
  • 2018-19 시즌
FA 시장이 개막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선수 커리어를 쭉 동부에서 보내던 르브론 제임스의 레이커스행이 확정되면서 또 한 명의 슈퍼스타가 서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하지만 카와이 레너드라는 서부의 슈퍼스타가 동부인 토론토로 이적했다. 그리고 미네소타에서 팀원들과 사이가 안 좋은 지미 버틀러가 2:3 트레이드를 통해 팔라델피아로 이적하며 동부로 새롭게 합류했다. 한때 서부가 더블스코어 가까이 벌렸지만 현재는 상당히 완화된 상태. 또한 트레이드로 동부의 상위팀들이 상당한 전력보강을 하면서 상향평준화가 되었다. 다만, 시즌 종료 2주 전 시점부터 서부 팀들이 다시 승률을 끌어올리면서 상대전적은 서부가 252승 198패로 결과적으로 봤을때는 작년보다 벌어졌다. 하지만 우승팀은 동부팀 토론토 랩터스로 3년만에 동부팀이 우승에 성공했다.
  • 2019-20 시즌
지난 시즌 준우승팀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듀란트를 떠나보낸데 이어 탐슨, 커리의 사실상 시즌 아웃으로 탱킹에 가까운 성적을 내고 있는 등 올시즌은 동부가 서부에 비해 유리한 형세를 띠고 있다. 그러나 결국엔 시즌 상대전적은 이번에도 서부의 우위로 끝났고 우승도 서부로 떠난 르브론 제임스로스엔젤레스 레이커스가 차지했다.

2.3.5. 원인[편집]

  • 동부팀과 서부팀의 프런트 차이
    미국의 대도시는 서부보다 동부에 더 많고, 따라서 빅마켓 역시 동부쪽이 조금 더 많다.[42] 역설적으로 그렇게 유리한 조건 때문에 동부를 대표하는 뉴욕 닉스, 시카고 불스 같은 팀들의 프런트는 우승을 위한 운영이 아닌, 적당한 인기 유지와 관중 동원을 통한 수익 올리기 운영만 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계약 등으로 스스로 암흑기에 빠지는 등 운영 쪽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는다. 반면, 서부는 샌안토니오 스퍼스, 댈러스 매버릭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을 필두로 프런트가 운영을 잘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상위픽으로 뽑은 선수들이 기대치만큼 크는 경우가 서부 쪽에 좀 더 많았고, 심지어 하위픽에서 대박 터지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서부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도 단순히 빅마켓에 의한 편견일 뿐이다. 동부에도 토론토 랩터스,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같은 경우, 나름 빅마켓이면서 팀 운영을 잘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도 덜어낸 반면 서부에도 피닉스 선즈,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경우는 잘못된 계약들로 고생을 하는 등 운영을 못하는 팀들도 있다. 결국 잘하고 못하고는 그냥 반반인데 특히 프런트의 차이에서 마치 뉴욕과 시카고만 동부인 것 마냥 대표해서 나오는 얘기들인 셈이다.
  • 르브론 제임스의 8연속 NBA 파이널 진출
    르브론 제임스는 데뷔 이후 2018년까지 동부팀인 클리블랜드와 마이애미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던 선수로서 현재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 및 10번의 NBA 파이널 진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르브론의 8년 연속 파이널 진출 기록이 동부 컨퍼런스라서 가능했었다는 주장과 더불어 르브론의 파이널 연속 진출 기록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이들이 자주 드는 근거가 바로 이 서고동저 현상이다. 아직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르브론이 우승을 하면 '경쟁이 치열한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지친 상태인 팀을 상대로 거저 얻는다'[43]는 식이며, 준우승을 하면 '결국 서부가 압도하는구나' 식으로 서고동저가 다시 한 번 확인이 되는 셈이 되는 식의 주장이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 2000년대 초반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실질적인 결승전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고, 2018년 파이널이 종료된 시점을 기준으로 르브론의 파이널 전적은 3우승 6준우승에 개별 경기로 따지면 18승 31패로 승률이 3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파이널 진출 시즌 동부 PO 전적은 108승 31패, 승률 77%로 파이널만 가면 승률이 반토막이 나버렸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해도 8년 연속 NBA 파이널 진출은 절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44][45] 물론 여기에는 단순히 서고동저 외에도 8번 중 절반 이상인 4번이 한창때의 동부팀 들이 빅3로 한 팀에 모여서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도 참작해야 하겠지만.[46]

2.3.6. 비판[편집]

서고동저를 나누는 기준이 모호하다. 기준은 각각이다. 플레이오프를 배제한 동서부 전체 승률, 상위 플레이오프 8팀의 동서부 상대 승률, 상위시드팀들의 상대 승률, NBA 파이널 우승 횟수 등등 다양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때에 따라 바뀐다는 것이다.

그 예로 08-09 시즌의 경우 승률로는 동부가 더 우세한 시즌임에도 상위팀들의 승률로만 계산하면 서부팀들이 압도적이기에 서고동저라는 것이고, 그 전 시즌인 07-08 시즌의 경우 전체 1-2위가 동부팀에서 나왔지만 이럴때는 서고동저에서 동부 1-2위팀이 배제하면서 나머지가 압도적이라는 이유로[47], 17-18 시즌의 경우 상위권팀들은 서부팀들이 많이 우세하지만 하위권팀들은 동부팀들의 승수가 더 많다. 그렇게 된다면 다음 드래프트에서 상위픽을 많이 가질 확률은 서부팀이 좀 더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왜냐면 성적 역순으로 상위픽을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도 탱킹마저도 서고동저라는 얘기들을 진지하게 한다. 동부 하위팀들이 일방적으로 밀린 시즌의 경우는 탱킹이라도 동고서저다라는 얘기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르브론 제임스 항목에도 그렇듯이 르브론 제임스가 우승한 시즌(2011-12 시즌, 2012-13 시즌, 2015-16 시즌)에서도 서고동저라는 인식이 나오는 것은 변함이 없었으며 서부팀이 우승했던 시즌에선 서고동저가 심하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에 비해 동부팀이 우승한 시즌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에는 일관성의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2.4. 샐러리 캡[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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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드래프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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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인기[편집]

3.1. 미국[편집]

1970년대까지 대학농구와 타 프로스포츠에 비해 인기가 뒤떨어졌으나, 1980년대 초반 매직 존슨래리 버드의 라이벌 구도로 시작해서 1980년대 후반 마이클 조던이라는 대스타의 등장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면, 2010년대 중후반에는 스테판 커리르브론 제임스의 대결구도, 그리고 스몰라인업의 부상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0년대 중후반 NBA의 인기는 마이클 조던 시대 이후 최고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북미 프로 스포츠 리그 중에선 가장 세계화가 잘된 리그이며, 글로벌로 가도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 리그, 라리가 정도를 빼면 가장 인지도 있고 인기도 많은 프로 스포츠 리그라 할만하다. 덕분에 NBA 선수들의 평균 연봉은 미국 4대 스포츠 중 최다, 그리고 경기당 영업이익은 이미 MLB를 2배나 뛰어넘었다.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 ESPN이나 사용자가 가장 많은 야후 스포츠 등에서도 NBA는 NFL 바로 뒤에 위치한다.[48] 또 2019년 북미 4대 스포츠 사상 최초로 연봉 500억원 시대를 연다. 다가올 시즌엔 연봉 500억원 이상 선수만 5명[49]이 쏟아질 전망이다. 전 세계 스포츠 스타 중 광고 수입과 스폰서십 등 부가 수입을 제외한 순수 연봉이 500억원을 넘는 선수가 리오넬 메시 하나뿐임을 고려하면 NBA 선수들의 몸값 상승세가 엄청나다는걸 알 수 있다. 평균 연봉이 8년 새 2배 가까이 오르는 등 NBA의 위상이 달라진 건 높아진 인기 덕분이다. 느린 경기 전개로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받는 MLB와 팬층이 북미로 한정된 NFL에 비해 NBA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북미, 중국 시장은 물론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중계권, 광고, 브랜드 파트너십, 농구용품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NBA 리그의 엄청난 수익 창출은 각 팀이 운용할 수 있는 연봉 상한선을 늘리고 전력을 보강해 리그 인기를 높이는 선순환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기사

스타 플레이어의 파워에서도 매우 압도적이다. SNS 팔로워 수[50], 인기면에서 NBA 스타를 압도할 4대 스포츠 스타는 없으며, 쉬운 예를 들면 NHL 스타인 시드니 크로스비는 브루클린 네츠 에이스인 디안젤로 러셀보다 인기가 떨어지고[51], MLB 최고 투수인 클레이튼 커쇼는 같은 지역내 크리스 폴[52]에게 인기가 밀리는 현실이다. 또 NFL 스타 중에서도 톰 브래디 등 일부 쿼터백을 제외하면 NBA 스타보다 인기가 현저히 떨어진다. 물론 예외는 있다.[53] 뿐만 아니라 미국인이 사랑하는 스포츠 스타 30위 안에 농구선수만 절반이 넘게 포진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스타로 농구의 신이라 불리는 마이클 조던을 비롯,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등이 최상위권에 포진하고 있을 정도. 또 현 시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의 선수로 평가되는 마이크 트라웃의 인지도는 Q Scores(Q rating)를 인용한 2018년 워싱턴 포스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이 살짝 넘게 아는 수준이라고 하며, NBA 선수로 치면 인기 선수라고 볼 수 없는 케네스 페리드와 동급이라 한다.[54]

전국 중계권 계약에서도 NBA는 MLB보다 2배나 더 높은 계약을 체결했다. 2016년 ESPNTNT 등은 2024~25시즌까지 TV 중계권을 240억 달러(약 25조5000억원)에 구매했다. 이전 계약보다 약 30억 달러 증가한 액수다. 또 시카고 컵스가 108년만에 염소의 저주를 깨고 우승했던 2016년을 제외한 5년간의 NBA 파이널 시청률이 월드 시리즈의 시청률보다 높았다.

2017-2018시즌에는 NBA 사상 처음으로 관중 2200만명을 돌파했다. 2016~17시즌(2199만 7412명)보다 127,147명 늘었고, 좌석 점유율은 95%를 넘겼다. 경기당 평균 관중은 17,987명이며, 가장 많은 평균 관중을 기록한 구단은 시카고 불스로 20,776명이다. 미국 스포츠매체 스포팅뉴스가 "NBA는 현재 황금기(golden age)를 보내고 있다"고 전할 정도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등이 활약했던 1980, 90년대에도 NBA는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당시 경기당 평균 관중은 12,000명 안팎이었다.

당시에는 팀별로 편차치가 심했다. 마이클 조던은 불스 시절 홈에서 610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했으며(당연히 은퇴와 함께 끊겼다), 원정에서도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면서 98년 은퇴가 예상될때 조지아 돔에서 열린 애틀란타와의 원정경기서 6만명이 넘는 관중을 동원, 당시 실내스포츠 관중 동원기록을 세웠다. (현재 풋볼경기장인 카우보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년 올스타전이 10만명 넘게 동원하며 깨짐) 그러나 인기 없는 팀들은 경기장을 절반도 못 채우는 경우도 경우도 있었다. 당장 시카고만 해도 조던 입단 전에 2만명 이상 들어가는 시카고 스타디움에 6,7천명밖에 못 모았으며 사실 조던 입단 이후에도 루키시즌엔 경기장이 절반 가까이 비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관중 동원력이 150% 이상 는 것 자체가 센세이셔널한 것. 지금을 생각하면 안된다. 80년대엔 NBA 자체가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80파이널이 녹화중계되고 현재는 스폰서 받는 드래프트 생중계를 오히려 리그가 방송사에 돈을 주고 모셔오던 시절이다.

80년대 후반에 창단한 팀들 중 농구 인기가 많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럿 호네츠는 인기가 많았지만, 아이스하키와 야구의 고장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는 케빈 가넷 입단 전까지 암울했다. 절정은 미국도 아닌 캐나다 밴쿠버에 덩그러니 입단한데다 농구도 못하고 재미도 없었던 그리즐리스... 이런 팀들은 인기스타들이 올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12,000명은 80년대까지 포함한 수치로 보이는데, 90년대에는 위에 언급한 그리즐리스 정도를 제외하면 경기장이 절반씩 비고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현재는 NBA 자체가 인기가 전체적으로 오르고, 가장 최근에 창단해 역사와 고정팬층이 가장 미약한 샬럿 호네츠조차 10년이 넘어가 안정기이며, 팀 가치가 가장 낮은 호네츠조차 10억 달러를 넘길 정도로 장사가 잘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흥행이 높다.

특히 다른 종목과 비교해 젊은 시청 층 및 관중이 NBA를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7월 미국의 스포츠 비지니스 관련 매체인 스트리트 앤드 스미스 스포츠 비즈니스 저널이 24개 스포츠 리그 및 이벤트의 TV 시청자 평균 연령을 조사했다. NBA는 평균 42세로, MLS(40세) 다음으로 젊었다. NHL이 49세, NFL이 50세, MLB는 57세였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SNS에서도 NBA에 대한 높은 관심을 엿볼 수 있다. NBA 사무국은 "소셜미디어 활동량이 8억 800만건, 동영상 뷰는 110억 건을 기록했다 2016~17시즌 이후 NBA 구단의 소셜미디어 팔로워 수는 870만명 더 늘었다"고 설명했다.기사 또 NBA의 유튜브 채널은 전세계 프로 스포츠 리그 채널 최초로 1000만 구독자를 돌파한 채널이다. 2018-2019시즌에도 NBA는 또 760경기가 매진되면서 5년 연속으로 총매출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고, 2년 연속 경기장의 95% 이상이 매진을 달성했다.

2018년 미국 갤럽이 조사해 발표한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 종목 순위에서 농구는 11%를 얻어 9%에 그친 야구를 제치고 미식축구(37%)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20년 4월 포브스 구단가치에서도 NBA 구단 평균 가치는 21억2000만달러로, 전년대비 14%가 오르며 최초로 20억 달러를 돌파했다.[55] [56] NBA는 지난 10년간 평균 구단 가치가 6배나 상승했다.[57] 원인이라면 슈퍼스타들이 리그의 인기를 이끌며 그로인해 유입되는 젊은팬과 글로벌팬들이 늘어나기 때문일것이다. 실제로 북미 기준 35세 이하 선호도에서는 NBA 41%로 NFL 38%를 넘었으며 18세 이하에서는 NBA 57%로 NFL 13%, MLB 4% 를 압도하고있다. NBA 전체 구단가치 1위는 뉴욕 닉스로 46억달러로 5년역속 1위이다.성적과 무관한 빅마켓의 위엄[58]상기한 이유등으로 당분간 NBA의 성장세는 계속될것으로 예상된다. 조던 은퇴후 주첨했던 과거 NBA와 달리 현재는 르브론이 은퇴한다 해도 이미 다른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상황역시도 NBA의 미래가 밝은 아유중 하나이다.

3.2. 해외[편집]

해외에서의 인기만큼은 MLB, NFL, NHL가 다 덤벼도 NBA를 절대 못 이긴다. MLB의 해외 인기는 야구가 보급된 국가들에 한정되어 있고[59], NFL은 미국 고유의 종목인데다 장비가 필수로, 미국 외에서는 수요라는 게 존재하지 않고, NHL은 계절 종목이라는 한계로 인해 체코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러시아와 같은 북방 지역 나라에서 주로 인기를 끌 뿐이다. 세계적으로 농구는 미국이 만든 구기종목[60] 중에서 극강의 인기를 자랑한다.[61]

NBA의 세계적인 인기는 NBA가 오랫동안 공들인 글로벌 전략의 산실이다. NBA는 선수 발굴부터 마케팅까지 세계적으로 다각도로 힘을 써왔고, 덕분에 해외의 인재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경기와 새로운 컨텐츠로 사업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런 전략이 통했는지 2019 NBA 시상식에서는 그리스 국적의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MVP에 선정됐고, 슬로베니아 국적의 루카 돈치치가 신인상, 카메룬 국적의 파스칼 시아캄이 기량발전상, 프랑스 국적의 루디 고베어 수비상을 수상하며 주요 수상자 대부분이 비미국 국적이었다. NBA는 아프리카에서도 인기가 많다. 앙골라케냐탄자니아, 나미비아 같은 경제적으로 잘 산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까지 NBA에서 자주 팀을 보내 친선경기를 가지는데, 농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현지에서의 반응은 아주 뜨겁다.[62] 이런 인기에 NBA는 2019년 아프리카 시장을 개척한다고 밝혔다. NBA가 국제농구연맹(FIBA)과 손을 잡고 아프리카 12개국을 대표하는 프로팀이 참가하는 농구 리그를 만든다고 전했다. 이 리그의 명칭은 바스켓볼 아프리카 리그(BAL)다. 현재 BAL 참가가 결정된 나라는 앙골라와 케냐, 모로코, 나이지리아,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르완다, 이집트 등 9개국이다.

중남미유럽이나 아시아, 오세아니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주 해외 친선경기를 가진다. 스페인이나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터키러시아유라시아권 및 아랍에서도 자주 친선경기를 하러 갈 정도.[63] 필리핀도 농구 인기가 엄청나서 서민들이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보통 월급 1/3는 내야지 볼 수 있는 친선경기에서도 NBA에서 친선경기하러 왔다하면 매진이 된다. 필리핀은 미국, 중국과 더불어 공식 NBA 스토어가 있는 세 나라 중 한 나라이다. 캐나다에서도 인기가 상승하고 있다. 2018-2019 시즌 토론토 랩터스의 돌풍으로 캐나다에서의 NBA 인기도 급상승했다. 2019년 6월 11일 열린 2018-19 NBA 파이널 5차전은 캐나다에서만 1,340만 명이 봤다. 특히 5차전 막판 동시청자 숫자는 850만 명이었다. 파이널 5차전은 역대 NBA 경기 중 가장 많은 캐나다 사람이 시청한 경기로 기록됐다. 캐나다의 인구는 약 3,700만 명. 파이널 5차전을 캐나다 사람 3분의 1 이상이 시청한 셈이다. 인도에서도 인기가 늘어나고 있으며 2010년대 중반부터는 인도의 잠재적인 거대한 시장을 알아차리고 다양한 마케팅을 진행중이다.기사 또 인도에서 인도의 농구 유망주들을 뽑는 NBA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선발된 24명의 유망주 선수들을 델리 NCR에서 선수 개발 프로그램을 통해 미래의 농구 스타들을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기사

워낙 NBA가 해외의 인기가 넘사벽이고 해외에 벌어들이는 돈이 어마어마 하다보니 MLB와 NFL이 NBA의 압도적인 해외수익을 보고 자기들도 미국에만 안주하지 말고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다. 그중 제일 해외 인기에 크게 관심가지고 열심히 일하는 인물이 MLB 커미셔너 롭 맨프레드

하지만 NBA와 다르게 두 종목은 걸림돌이 너무 많다.

첫번째는 장비이다. 농구와 축구같이 전세계적으로 즐기는 운동은 일단 장비가 공이면 끝이다. 전세계 어딜가나 축구장이아닌 골목이나 공터에서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볼수있다 농구 역시도 공과 골대가 있는 간단한 코트가 있으면 어디서든 즐길수있는 종목이다. 하지만 야구는 일단 공만으로 즐길수없다. 공과 배트 글러브등의 장비가 필요하고 배트와 글러브는 상대적으로 농구공이나 축구공에 비해 고가의 장비이다.. 미식축구 경우 공만있어도 어느정도 패싱연습은 가능해도 딱 거기까지다. 또한 게임의 난이도와 숙련도 이해도 차이가 있다. 농구와 축구는 딱히 배우지 않아도 친구들 끼리 즐길수있다. 하지만 야구나 미식축는 이게 힘들다. 야구는 일단 공을 스트라이크존에 던질수준의 투수가있어야 게임이 가능하고 미식축구 역시도 게임을 하려면 해당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가 필수이다. 이는 프로의 장벽에서도 드러난다. NBA나 축구 유럽 빅리그를 보면 NBA경우 고졸 선수들이 NBA에 드래프트후 바로 주전으로 활약하고 축구역시 10대 선수들이 프로선수로 활약한다. 하지만 야구는 한국이나 일본이라면 몰라도 MLB에서 고졸선수가 바로 주전으로 활약하는건 리그 역사에도 거의 없을 정도이다. 대학 출신 선수들도 대부분 마이너 리그에서 1~2년 담글질을 한후 MLB무대로 들어온다. NFL경우 아예 고졸선수는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다. 즉 MLB나 NFL이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장비지원과 더불어 인적지원까지 이루어져야 야구나 미식축구가 보급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두번째는 경기 시간의 차이이다. 축구는 보통 2시간내, NBA는 2시간 20분, MLB는 3시간, NFL은 3시간 10분 정도로 걸리지만 역으로 실제 플레이 타임은 축구가 가장 길고 다음이 농구-야구-미식축구 순으로 경기시간은 길지만 플레이 타임은 오히려 적은 두종목은 상대적으로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의미이다.이건 미국내에서도 현재 두종목의 문재로 지적되며 MLB경우 경기 촉진룰등을 도입해 경기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중이다

세번째는 다국적 스타 플레이어의 차이이다. 축구의 경우 유럽 빅리그에서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활약 중이고 NBA 역시도 최근에는 개막전 로스터에 외국인 선수들이 20%로 100여명 정도 등록되고 있다. MLB도 의외로 외국인 선수가 많긴 하며, 보통 25%~30%로 250여명 정도의 선수가 로스터에 등록되어있다. 단 NBA의 경우 캐나다와 유럽, 남미 국가들이 주축인 반면 MLB는 대부분 중남미 국가들이고 한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이나 소수의 유럽이라 시장성역시도 NBA가 더 뛰어나다. NFL의 경우 아주 소수의 선수를 그나마도 대부분 키커 포지션 선수를 제외하면 다 북미 선수들이다. 박찬호와 박세리의 예만들어도 해당종목의 스타 플레이어가 나오면 그 종목의 인지도와 인기가 상승하는건 자명하다. 이런 쪽에서 역시 MLB와 NFL은 NBA에 비해서 불리한 조건이다.

3.2.1. 중국에서의 인기와 영향[편집]

애덤 실버 NBA 커미셔너가 중국은 NBA에서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아예 매해 중국을 방문할 정도이다. 중국의 농구 인기는 상상을 초월하며 중국내 농구 인구만 비공식적으로 억대이상이라 한다. 그만큼 인기가 뜨거운데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인구가 바글바글한 대도시가 아닌 지방 도시를 방문해도 몇만 명이 넘치게 몰려들 정도다보니 안타(Anta)나 리닝(Li Ning)같은 중국 스포츠 업계들이 거액을 제시하며, NBA 선수들 스폰서로 나서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제시한 돈이 나이키를 능가하는 수준이라 몇몇 선수가 계약하기도 했다.[64] 또 NBA는 모바일 메신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와 디지털 방송 권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에 힘입어 2017년 NBA는 중국에서만 2억명의 모바일 시청 건수를 기록했다. 2018-2019 NBA 시즌에는 4.9억 명의 중국 농구 팬들이 텐센트 플랫폼을 통해 NBA 경기 생방송 및 VOD 서비스를 이용하였고, 시즌 결승전 6번째 경기의 시청자는 총 2,100만 명 이상으로 NBA 이벤트 중 가장 많은 시청자 수로 집계됐다고 한다. 이런 인기 덕분에 텐센트는 2020년부터 2025년까지 NBA 중계권 재계약을 맺었다. 총 15억 달러(약 1조 8,217억원) 규모로 성사되었으며, 지난 계약 금액의 약 3배에 달한다. 또 중국 국가연구조사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인이 농구를 관람하는 시청률은 TV 시청과 현장 관람을 포함하면 34.9%로 축구(10.4%)를 압도한다.기사

2019년 포브스는 중국의 NBA 인기로 인해 약 3억 명 이상의 중국인이 농구를 즐기고 있다는 점과 미국 외의 전세계 팬층 중 10대들이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해 이 점을 긍정적으로 본 투자자들의 투자로 NBA의 연간 수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기사

그러나 홍콩 시위의 불똥이 NBA까지 튀는 바람에 중국과의 사이가 험악해졌다. 휴스턴 단장의 홍콩시위 지지발언에서 비롯한 나비효과가 중국 내 NBA 중계 취소 등 중국농구협회와 갈등을 빚고 있다. 자세한건 중국과 NBA 간 갈등 사태 문서 참조.

4. 소속 팀과 연고지 분포[편집]

파일:attachment/NBA_MAP.jpg

2개 컨퍼런스 6개 디비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와일드카드 제도가 폐지되면서 야구, 하키와 달리 디비전의 의미가 대폭 줄어들었다.[65] NHL과 달리 캐나다 소속팀이 토론토 랩터스 하나 뿐이다. 이전에 밴쿠버 그리즐리스가 있었으나 흥행 폭망의 문제로 연고지를 멤피스로 옮겨 이제는 오직 토론토뿐. 나머지는 전부 미국팀이다.

동서부 6개 디비전은 지역에 따라 분류되어 있는데, 이는 각각 Pacific (태평양 해안/퍼시픽), Northwest (북서부/노스웨스트), Southwest (남서부/사우스웨스트), Central (중부/센트럴), Atlantic (대서양해안/애틀랜틱), Southeast(동서부/사우스이스트) 지역으로 나뉜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알다시피 디비전과 실제 위치한 지역이 생판 다른 팀들이 몇 군데 있는데 예를 들어 북서부 디비전의 팀들 중 실제로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팀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단 한 팀, 후하게 봐야 유타와 덴버까지다. 여러 사정이 있는데 일단 첫번째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는 원래 북서부 지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시애틀 슈퍼소닉스로 창단했으나 연고지 이전을 하면서 새 구단주의 사업기반이 있고 농구열기가 높은 오클라호마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사우스웨스트 디비전 팀들이 몰려있는 텍사스 주 바로 위에 있으며 위치상으로 보면 이 팀들과 같은 디비전 팀인 멤피스 그리즐리스보다 더 가까이 있다.

사실 이건 연고지 이전으로 인한 특수한 경우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 중서부 지역은 광활하지만 인구밀도가 그만큼 굉장히 낮기 때문이다. 미네소타 옆에 위치한 몬태나나 남북 다코타 주들, 주변의 와이오밍같은 경우 영토는 굉장히 넒지만 인구밀도는 미국 내에서 낮은 편이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동부에서부터 개척을 시작했기 때문에 규모있는 도시들이 동부에 더 많이 몰려있는데다가 중서부지역은 사막과 산맥, 초원지대가 많아 거주가능 지역이 적다. "Mountain(산) state"에 해당하는 주들은 몬태나, 콜로라도, 아이다호, 네바다, 뉴멕시코, 그리고 피닉스 선즈가 있는 애리조나와 유타 재즈가 있는 유타가 있으며, 심지어 이 지역들은 건조하기까지 해서 산 외에 광활한 사막까지 있다.[66] 이 때문에 부유한 캘리포니아나 거대한 텍사스를 제외하면 서부 팀들이 띄엄띄었 있고, 심지어 서부 팀들이 너무 없어 위치상으로 동부인 밀워키나 시카고, 디트로이트가 70년대까지는 서부 컨퍼런스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는 현재 센트럴 디비전인 팀들이 한 시즌 간격으로 소속 컨퍼런스를 바꾸곤 했다. 지도에서 보면 센트럴 디비전은 가장 연고지들이 서로와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당시 NBA의 팀 배포상 밀워키와 시카고, 디트로이트가 서부였고, 클리블랜드는 동부였다. 당시 센트럴 디비전이었던 팀들 중 뉴올리언즈와 휴스턴 역시 지역상으론 중부였으나(즉, 같은 시간대) 엉뚱하게 위치상 동부 연안쪽인 워싱턴 불리츠 역시 센트럴 디비전이었다. 즉, 같은 디비전 소속인데 시차가 날 정도로 거리가 멀었던 것. 문제는 이 상황에서 76년에 ABA가 망하며 이 중 네 팀이 확장팀 자격으로 들어온 것. 이들은 인디애나 페이서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뉴욕 네츠 (합류와 동시에 뉴저지 네츠가 됨), 그리고 덴버 너기츠였다. 뉴져지는 당연히 동부고 덴버도 서부였으나 문제는 인디애나와 샌안토니오. 이들은 둘다 중부지역 시간대인데 인디애나가 훨씬 동쪽에 있었으나 인접 팀들이 이미 모두 서부였고 스퍼스는 반대로 인접 로키츠가 동부였다. 이에 따라 스퍼스는 동부로, 페이서스는 서부로 분류된다.

이 상황이 계속되다 78년에 동부의 버펄로 브레이브스가 서부로 이전해 샌디에이고 클리퍼스가 되면서 디트로이트가 동부로 편입(이때 워싱턴이 애틀랜틱 디비전으로 재분류), 79년엔 뉴올리언즈 재즈가 유타로 이동하며 서부로 이동한데 이어 인디애나가 동부로 편입, 80년에는 인접 팀들이 모두 동부가 된 밀워키와 시카고가 동부로, 반대로 인접한 덴버와 유타에 팀이 생긴 샌안토니오와 휴스턴이 서부로 옮기면서 현재와 비슷한 팀 분포로 80-81시즌을 치르게 된다. 양 컨퍼런스의 팀 수를 최대한 동일하게 맞춰야했기 때문에 실제 위치 지역과 안 맞는 컨퍼런스에 팀을 넣어야했고, 이 때문에 클리블랜드는 같은 디비전인 휴스턴 로키츠와 경기하러 갈때는 머나먼 여정을 떠나야했고, 다른 디비전이자 다른 컨퍼런스인 피스톤즈는 바로 옆동네인 이상한 상황이었던 것.

어쨌거나 지도에서 보다시피 각 팀마다 주변팀들간의 거리가 천지차이이다, 애틀란틱 디비전처럼 대도시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에서부터 주변의 규모있는 도시를 가려면 말 그대로 산넘고 물 건너야하는 유타의 솔트레이크시티나, 사막을 몇 시간동안 차를 타고 지나야 도시를 볼 수 있는 피닉스는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선수들이 선호하는 연고지들이 있고, 기피하는 연고지들이 있다. 로스앤젤레스[67], 뉴욕같은 대도시, 마이애미, 올랜도같은 휴양지[68]는 인기 만점이며, 사막 한 가운데 있는데다가 몰몬교와 백인 비율이 많아 놀 곳도 없고 흑인 선수들은 더 꺼리는 경향이 있는 유타, 엄청나게 추운 미네소타, 백인 비율이 높고 조용한 동네인 새크라멘토, 도시 자체가 하향세인데다 치안도 최악인 디트로이트, 환경이 안 좋은 클리블랜드 등은 인기가 없다.

또한 이동거리로 인한 스케쥴 차이가 조금씩 있다. NBA팀들은 같은 디비전의 팀들과 경기를 더 많이 치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팀들이 밀집되어 있는데다 대륙 중간에 있는 센트럴 디비젼이 조금 더 유리한 경향이 있다. 물론 그냥 스케쥴을 잡으면 위에 언급했다시피 서부지역의 팀들이나, 도시 밀집지역에 있어도 대륙 끝과 끝에 있는 보스턴이나 골든스테이트같은 팀들의 이동거리가 헬이 되므로 매 시즌 개막을 앞두고 NBA사무국은 이동거리를 감안해 최대한 공정하게 스케쥴을 짜려고 하는 편. 예를 들어 같은 디비젼 팀들과 원정을 치르려면 다른 디비전 팀과 경기하는 것보다도 더욱 멀리 이동해야 하는 포틀랜드는 한번 원정갔을 때 여러 경기를 치르고 온다던지 하는 식이다. 여기에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매년 열리는 로데오 이벤트를 위해 경기장을 장기간 비워줘야 하며, 시카고 불스는 몇 년전까지 서커스를 위해 자리 비워주느라 11월에 장기 원정을 떠나야 했으므로 매년 NBA관계자들은 박터지는 고민을 하게 된다.

참고로 2017-18시즌 기준 팀들간의 연간 이동거리는 다음과 같다. (기준은 마일/mile) 보다시피 팀들이 몰려있는 센트럴 디비전과 애틀랜틱 디비전의 팀들이 비교적 짧게 이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센트럴은 가장 짧은 이동거리 Top5안에 5팀이 전부 있다) 그 중에서도 남쪽지방팀들과도 가까운 인디애나가 가장 짧으며, 센트럴 팀들과 애틀랜틱 팀들과 거리가 모두 가까운 토론토가 2위이다. 반면 애틀랜틱 팀들과는 가깝지만 동부 끝이라 다른 팀들과는 멀 수밖에 없는 보스턴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해야 하며, 1,2위는 중서부 지역의 포틀랜드, 미네소타. 이 시즌에는 7위로 비교적 양호하지만 가장 서쪽으로 멀리 떨어져있는 골든스테이트도 이동거리하면 1,2위를 다투는 팀이다.

인디애나 37,624 (센트럴)
토론토 37,818 (애틀랜틱)
디트로이트 38,525 (센트럴)
클리블랜드 39,219 (센트럴)
애틀란타 40,292 (사우스이스트)
브루클린 40,999 (애틀랜틱)
샬럿 41,196 (사우스이스트)
시카고 41,550 (센트럴)
워싱턴 41,319 (사우스이스트)
밀워키 43,041 (센트럴)
멤피스 44,070 (사우스웨스트)
뉴욕 44,446 (애틀랜틱)
덴버 44,984 (노스웨스트)
오클라호마시티 44,887 (노스웨스트)
샌안토니오 45,489 (사우스웨스트)
올랜도 47,630 (사우스이스트)
댈러스 47,738 (사우스웨스트)
필라델피아 47,839 (애틀랜틱)
유타 48,051 (노스웨스트)
마이애미 48,472 (사우스이스트)
휴스턴 48,126 (사우스웨스트)
새크라멘토 49,211 (퍼시픽)
피닉스 49,855 (퍼시픽)
골든스테이트 50,515 (퍼시픽)
뉴올리언즈 50,223 (사우스웨스트)
클리퍼스 50,410 (퍼시픽)
레이커스 53,104 (퍼시픽)
보스턴 54,022 (애틀랜틱)
미네소타 55,139 (노스웨스트)
포틀랜드 55,298 (노스웨스트)

게다가 저건 위에 언급했다시피 최대한 공정하게 스케쥴을 잡으려고 한 정규시즌 얘기고, 같은 팀과 최대 7경기까지 치러야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예를 들어 무늬만 같은 디비전인 포틀랜드와 오클라호마시티가 붙는다면 무려 1,484.59 마일, 비행시간으로만 3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왔다갔다해야하며, 포틀랜드에서 뉴올리언즈까지 비행시간은 4시간이 넘는다. 반대로 뉴욕의 경우 옆동네인 브루클린은 말할 것도 없고 필라델피아까지는 95마일 정도라 차로도 두시간이면 간다.[69]

4.1. 동부 컨퍼런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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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BA Eastern Conference logo (2018).png

4.1.1. 애틀랜틱 디비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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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명
국가
도시
홈구장
수용인원
창단
가맹
NBA 파이널 우승
18,624명
1946년
17,732명
1967년
1976년
19,812명
1946년
20,478명
1946년
1949년
19,800명
20,500명
1995년

4.1.2. 센트럴 디비전[편집]

4.1.3. 사우스이스트 디비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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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서부 컨퍼런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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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BA Western Conference logo (2018).png

4.2.1. 노스웨스트 디비전[편집]

4.2.2. 퍼시픽 디비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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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명
국가
도시
홈구장
수용인원
창단
가맹
NBA 파이널 우승
18,064명
1946년
19,060명
1970년
18,997명
1947년
1948년
18,422명
1968년
17,608명
1945년
1948년

4.2.3. 사우스웨스트 디비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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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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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부터 현재까지의 NBA 소속 구단 로고 변천사

5.1. 창설 이전[편집]

최초의 프로농구 리그는 1898년에 창설된 NBL이었지만, 몇몇 북동부 지역 유지들의 운영에 의존하며 선수 수급 등 운영상 문제로 1904년에 해체되었다. 1925년에 ABL이 창설되었으나, 근거지가 시카고 등 북동부라 야구의 인기에 밀린 데다 재정난과 흥행요소 부재 등으로 오래가지 못하고 1931년에 해체되었다.[71]

그러나 농구 창시자 네이스미스 박사와 수많은 농구인들의 노력으로 1932년 국제농구연맹(FIBA)이 창설됐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부터 농구 종목이 채택되어 미국 대표팀이 처음 금메달을 딴 걸 계기로 농구의 저변이 넓혀졌다. 1933년에 ABL이 재개된 후 1937년에 NBL이 창설되어 NBA의 탄생을 위한 씨앗이 뿌려지게 된다.

5.2. 창설 이후[편집]

1946년에 아메리칸 하키 리그(AHL) 총재 모리스 포돌로프의 주도로 피터 A. 타이렐 등 실내경기장 소유주 11명이 모여 아메리카 농구 협회(BAA)를 발족했다. BAA는 초기부터 안정적 재정능력을 확보해 기존의 ABL과 NBL을 점차 밀어냈고, 1949년에 NBL을 흡수합병하면서 현 명칭으로 바뀌었다.

1948년에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 포트 웨인 졸너 피스톤즈, 로체스터 로열스, 인디애나폴리스 제츠 등 4개팀, 1949년에 시라큐스 내셔널즈,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시보이건 레드스킨스, 데이턴 렌즈(Dayton Rens), 덴버 너기츠(현재의 덴버 너기츠와는 무관), 앤더슨 패커스 등 6개팀이 각각 합류함으로써 17개 팀 체제가 정립되었으나, 합류 팀 대다수가 NBL 때처럼 경영이 부실한데다 너무 많아서 관리에 어려움이 생기자, 다음 해에는 11개 팀으로 줄었고, 1954년부터 8개팀 체제로 바뀌었다. 또 NBL 합병 이후 알 세르비와 레드 홀즈먼, 돌프 쉐이즈, 조지 마이칸 등 우수 선수들까지 끌어모았으며 1954년에는 24초 슛클락을 처음 도입했다.

리그 초기에는 조 포크스가 이끄는 필라델피아 워리어스가 강세였으나, 1948 NBL 합병 후 1950년대 초반까지 조지 마이칸이 이끄는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가 씹어먹다가 1954년 마이칸이 은퇴해 시라큐스 내셔널즈, 보스턴 셀틱스,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등이 각축을 벌였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셀틱스의 황금기 등으로 주목을 받왔으나, 1960년대 초중반까지 당시 8개밖에 없던 팀 수와 대도시 중심의 리그 운영은 우수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장애로 적용했고, TV 중계권 확보마저 잘 안 돼 흥행에서도 열세였다.

1963년부터 부임한 J. 월터 케네디 커미셔너는 단호한 태도로 리그 전체의 기강을 확립해 신생리그 ABA의 도전에 맞서 시카고 불스, 볼티모어 불리츠, 샌디에이고 로키츠, 뉴올리언스 재즈,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등 신규팀 수를 점차 늘려 리그다운 모습을 갖추었다.

1975년에 정치인 출신 래리 오브라이언이 커미셔너로 취임해 1976년부터 경쟁단체인 ABA를 흡수하면서 4개팀(인디애나 페이서스, 뉴저지 네츠, 덴버 너기츠, 샌안토니오 스퍼스)이 가입했고, 줄리어스 어빙과 아티스 길모어, 조지 거빈, 댄 이젤, 모제스 말론 등 ABA 때 선수들까지 끌어모아 선수 수급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1979/80 시즌부터 3점 슛이 도입했다.

위와 같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NBA보다는 대학 농구가 인기가 많을 뿐더러 결승전마저도 녹화중계될 정도로 인기가 없었고, 게다가 여러 번 터지는 선수들의 마약 스캔들 등으로 이미지가 안 좋아졌던 적이 있었다.[72] 심지어는 덴버 너기츠,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유타 재즈를 위시한 3개의 비인기팀들이 합병을 의논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에 대학농구 스타 매직 존슨래리 버드가 데뷔한 후 1984년에 입단한 마이클 조던의 활약으로 NBA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그해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 총재는 1989년부터 드래프트를 2라운드제로 바꾸고 1993년에 플레그런트 파울 규정을 제정하는 등 리그 내부의 질 향상에 주력하는 한편, 해외사무국을 지구촌 곳곳에 설치하고 유럽과 아시아 등지 유망주를 노리거나 미디어 사업과 해외중계권 판매를 강화하는 등 세계화 정책에도 주력했다.

미국 내에서는 인기가 미식축구에게 많이 밀리고 야구와 2위 싸움을 하고 있지만 그 대신 세계적인 인기로는 미국 내 구기종목 중에서 최고라 유럽 및 아시아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상당하다. 농구의 인기가 높은 중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세계 2위라고 한다.[7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이걸 보고 자신들도 중국 진출을 했으나 그다지 성과는 없다. 미국구기종목에서 가장 국제적으로 홍보를 잘한 프로 스포츠로 알아준다. 앙골라나 여러 아프리카 및 많은 나라에 현역선수들이나 농구 유망주들을 보내 친선경기 및 사인회를 꾸준히 하기 때문이다.

2011년 7월부터 단체교섭이 결렬되어 직장폐쇄에 들어갔다. 덕분에 시즌아웃이 될 뻔한 상황에서 타팀으로 이적도 막혔기에 선수들이 타국 리그로 건너가는 일이 벌어졌다. 다행히 단체교섭이 늦게나마 타결되어 2011년 크리스마스에 시즌 개막하기로 합의하고 2011~12시즌을 66경기 시즌으로 진행했다.

2014년까지 총재는 유대인 출신인 전직 변호사 데이비드 스턴(1942년생)으로 1984년부터 총재를 맡고 있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NBA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것에는 엄청난 기여를 했다. 다만 30년 가까운 장기집권에 대하여 스턴에 대한 반대도 심했다.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기여했느냐, 처음에 막으려고 해쓰냐는 얘기가 갈리는데, 이에 대해선 현지 기사에 여러번 언급되었다. 먼저 TIME지 기사 For example, when the Olympics decided to open up its basketball competition to NBA players before the 1992 Games in Barcelona, some owners weren’t totally on board with the idea....(중략) Stern, however, convinced stakeholders that the NBA’s Olympic participation would show his product off to the world (예를 들어 올림픽이 1992년 바르셀로나 게임을 앞두고 최초로 농구 부문을 NBA선수들에게 개방하기로 했을 당시 몇몇 구단주들은 이 생각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턴이 NBA가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그의 제품들(NBA선수들)을 세계에 공개하게 해줄 것이라며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했다.)라는 문구를 통해 스턴이 드림팀에 기여했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즈 기사에서는 스턴이 드림팀의 성공을 예측하지 못했으며, 미국측이 처음엔 프로들의 올림픽 참여를 반대했고 스턴 본인은 "올림픽 참여에 대해 열광적인 입장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CBS스포츠 기사에서도 Stern helped build the Dream Team(스턴은 드림팀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나와있다. 위 기사들과는 달리 아마추어 사이트긴 하지만 블리처 리포트에서도 ESPN을 인용하며 Stern was one of the major orchestrators of the 1992 Dream Team (via ESPN). (스턴은 1992년 드림팀을 만드는데 주요 orchestrator 중 하나였다.)고 하고 있다.

정리하자면 스턴이 드림팀 결성에 큰 기여를 한 것 자체는 여러 매체에서 언급된 만큼 사실로 추정하는게 타당하다. 그러나 공신력이 높은 뉴욕타임즈에서 스턴이 처음에 반대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근데 사실 이 두 견해는 서로 모순되는 건 아니다. 즉, 스턴이 처음에는 NBA선수들의 올림픽 참여에 대해 반대했으나, 곧 입장을 바꿔서 최선을 다해 지원했고 결국 드림팀이 결성되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고 정리해볼 수 있다.

결국 스턴은 2014년 딱 30년 만에 총재에서 물러나고 부총재인 애덤 실버(역시 유대인)가 5대 총재가 되었다. 현재로서의 실적은 대체적으로 괜찮다는 평이 주를 이루고 있는 편.[74]

2019~20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2020년 3월 11일(미국 시간), 유타 재즈오클라호마시티 썬더간 경기 시작 직전, 유타 재즈의 센터 루디 고베어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경기가 무기한 연기되었고, 유타의 동부 원정 일정동안 경기를 가졌던 캐벌리어스, 닉스, 셀틱스, 피스톤즈 선수단은 자가격리에 들어갔으며, 뒤이어 재즈의 가드 도노반 미첼까지 확진판정을 받자 애덤 실버 커미셔너는 결국 3월 11일을 기해 모든 NBA 경기를 중단하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75] 그 후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크리스찬 우드도 코로나 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브루클린 네츠에서도 케빈 듀란트를 포함해 4명의 선수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 후, 6월 4일에 월트 디즈니 월드에 위치해 있는 ESPN 와이드 월드 오브 스포츠에서 7월 31부터 리그를 재개한다고 밝혔다. 이미 플레이오프 진출이 확정되었거나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남아있는 팀들[76]이 8개의 경기를 통해 플레이오프 시드를 정하며, 또한 각 콘퍼런스의 8위 팀과 9위 팀의 승차가 4경기 이하일 경우 8위 시드를 확정짓는 "Play-in Tournament"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6. 로고에 대해[편집]


최초로 리그 로고가 쓰인 것은 1950/51 시즌부터인데, 농구공을 형상화한 원 안에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리그 단체 같다고 혹평을 받자, 1969/70 시즌부터 현재의 빨강/파랑 바탕 네모에 드리블하는 선수를 형상화한 로고를 새로 제정했다. 1980년대부터 유니폼, 농구 코트, 트로피 등에 확대돼 '상표'로서 완전히 정착되었고,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에 들어서 마케팅사업부를 만들어 라이센스 수익을 거두기 시작했다. 2017/18 시즌부터 'NBA' 부분을 더 키웠다.

농구 팬들 사이에선 로고 속 드리블하는 사람이 제리 웨스트라는 소문도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특정 선수를 지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항목에 상세히 나와있듯이 로얄티 문제로 인정하지 않을 뿐 로고를 디자인한 사람부터 웨스트를 참고한게 맞다고 하고 있고, 공식 NBA 페이지에서도 웨스트 페이지에 "Mr. Logo"라고 해놓고 있는 등 정설에 가깝다.

코비 사망 이후 코비를 로고 모델로 쓰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200만명이나 청원할 정도로 큰 반응을 이끌어 냈지만 실질적으로 바꾸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이는 비극적으로 요절한 슈퍼스타에 대한 팬들의 동정여론에 가깝고, 주로 논의되는 것도 팬 사이트일 뿐 현실적인 제안은 아니다. 실제로 팬들의 청원이 올라온 1월 말에 NBA는 이미 이 제안을 "로고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일축한 상태다. 그 이유는 "수많은 NBA선수들이 농구란 경기가 성장하는데 필수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에 그냥 전형적인(generic) 이미지가 더 낫다"는 것이다. 실제로 위에 적혔다시피 NBA는 디자이너 본인부터가 웨스트가 맞다고 인정한 현재 로고조차 웨스트의 모습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특정 선수 모습을 그린 새 로고를 도입할 리가 만무하다. 또한 이런 논리라고 하면 만약 코비 정도의 위상을 지닌 슈퍼스타가 비극적으로 사망하는 일이 생기면 또 로고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동정론만으로 로고를 바꾸는 건 굉장한 무리수다. 예를 들어 (그래선 안되겠지만) 팀 던컨이 갑자기 내일 사고로 사망한다고 치면, 던컨이 NBA기여도가 적은 것도 아니고 사랑을 안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로고를 또 바꿔야 한다. 르브론 제임스같은 선수도 마찬가지.

따지고 보면 코비 브라이언트보다 더 진지하게 새로운 로고 모델로 논의되어 온 선수가 있는데, 바로 수십년 동안 NBA의 얼굴이었던 마이클 조던이다. 조던이 90년대 내내 확고부동한 NBA의 얼굴이었고 현역 시절이던 97, 98년부터 그는 이미 역대 최고의 선수로 인정받고 있었는데, 20년 이상 NBA 역대 최고의 선수로 불리는 그의 모습을 로고에 박아야 한다는 여론은 현지 팬들 뿐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위에 언급된 코비 로고 청원 당시 스티븐 A. 스미스는 "좋은 일이긴 하지만 난 항상 로고가 조던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고 할 정도.
무엇보다 현 로고 모델인 제리 웨스트 본인조차 조던의 모습이 로고에 박혀야 한다고 2015년에 발언한 바 있다. 웨스트는 인터뷰에서 "레이커가 아닌게 매우 아쉽긴 하지만 (로고의 주인공은) 마이클 조던이어야 해요. 그는 제가 본 최고의 선수입니다. 전 선수의 재능을 평가할 때 기준이 높은 편인데 좋은 공격수일 뿐 아니라 좋은 수비수여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제 생각엔 그의 현역 시절 당시 그는 최고의 수비수였습니다. 더 중요한 건 그는 최고의 공격수이기도 했죠. 그리고 그는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요"라면서 조던이 "로고에 넣기엔 굉장히 적합한 사람(would be a wonderful person to have there)"이라고 말했다.[77]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설령 조던보다도 더 위대한 선수가 나오더라도 한 선수 개인의 이미지를 공식적으로 써서 새 로고를 만들리는 만무하다. 애초에 웨스트도 그 모습을 따온 것 뿐이고, 그가 로고의 모델이라는 것도 우연에 가깝게 유출된 것이고 NBA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웨스트 본인도 "이러한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유출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할 정도. 즉, 설령 NBA가 새로운 로고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MLB처럼 어떤 선수라고 특정할 수 없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현 NBA 역시 모델이 알려져서 그렇지, 그냥 전형적인 농구선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78]

7. 역대 총재[편집]

  • 초대: 모리스 포돌로프 (1946~1963) : 참고로 NBA 정규시즌 MVP 수상자에게 주는 모리스 포돌로프 트로피는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 2대: J. 월터 케네디 (1963~1975) : 훗날 그를 기리기 위해 'J. 월터 케네디 시티즌십 어워드'가 만들어졌다. 1967년부터 1975년까지 초대 커미셔너였다.
  • 3대: 래리 오브라이언 (1975~1984) : NBA 파이널 트로피의 주인공. 이분은 과거 민주당 소속 중역으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보좌한 바 있으며, 워터게이트 사건의 중심에 선 인물로도 알려진 바 있다. 그는 NBA에서 9년간 일하면서 1976년에 ABA를 합병시켰고, 1975년에는 CBS와 중계권 계약을 맺은 뒤에 1980년대 초반부터 중계권료를 최고액으로 올렸으며, 1983년에는 샐러리 캡 제도를 도입했다.
  • 5대: 애덤 실버 (2014~ )

8. 아시아의 NBA 도전사[79][편집]

순서
이름
국적
드래프트 순위
클럽
기간
1
중국
2라운드 36순위
(2001년~2002년)
(2002년~2003년)
(2003년~2005년)
2
1라운드 1순위
(2002년~2011년)
3
미지명
(2002년)
(2002년~2003년)
(2003년~2004년)
4
대한민국
2라운드 46순위
(2004년~2006년)
5
일본
미지명
(2004년)
6
중국
1라운드 6순위
(2007년~2008년)
(2008년~2010년)
(2010년~2011년)
7
2라운드 40순위
(2008년~2009년)
8
이란
미지명
(2008년~2013년)
(2013년)
9
중국
2라운드 46순위
(2017년~2018년)
10
미지명
(2018년)
11
일본
미지명
(2018년~2020년)
(2020년~현재)
12
1라운드 9순위
(2019년~현재)

최초로 NBA에서 활약한 아시아인 선수는 1947년에 뉴욕 닉스에서 뛰었던 와타루 미사카인데, 일본계 미국인으로[80] 최초의 아시아인 선수는 물론이고 NBA 최초의 유색인종 선수이다. 그의 상황은 MLB의 재키 로빈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다만 실제 경기는 딱 3경기만 뛰었다.[81]

이후 반세기 동안 NBA에는 아시아인 선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가[82] 2001년에 중국의 왕즈즈(王治郅)가 댈러스 매버릭스에 들어오면서 NBA에 첫발을 내딛기 시작해 2002년에 야오밍멍크 바터가 진출, 2004년에 한국의 하승진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통해 진출했고, 같은 해에 일본의 타부세 유타가 진출하는 등 아시아 출신 NBA 리거들이 늘어났지만, 어느정도 성적을 기대할수있는 NBA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은 야오밍, 이젠롄, 하치무라 루이정도이고 이중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선수는 야오밍뿐이다.[83]

아시아인들이 NBA에서 활동하는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장벽은 운동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NBA에서 그나마 몇년동안 살아남았던 선수들인 야오밍, 이젠롄, 왕즈즈 등은 NBA에서 비슷한 체격을 가진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이었다.[84] 사실 아시아에서도 종종 NBA급의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 종종 나오지만 기본적으로 흑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백인급에 버금가는 운동능력을 지니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농구는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덩치들이 자주 부딛히는 스포츠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힘과 점프력이 안되면 살아남을 수 없고[85][86], NBA는 페이스가 무지막지하게 빠른 스포츠이기 때문에 스피드와 체력이 안되면 끝이다.

NBA에서 운동능력이 쳐지기로 유명한 191cm가드 스티브 내시의 점프력이 79cm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운동능력이 좋기로 유명한 183cm 가드 이상민의 전성기 점프력이 85cm정도이다. 한마디로 NBA기준 저질 운동능력도 한국 기준으로는 상급이라는 것. 제레미 린 역시 191cm에 경기 중 덩크를 성공시킬 정도로 아시아인으로서는 사기급의 운동능력이지만, NBA 가드 기준으로는 평균을 약간 뛰어넘는 수준이다.[87] 제레미 린은 점프력은 몰라도 민첩성은 NBA가드들 중에서도 빠른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덕분에 제레미 린의 운동능력은 NBA에서 특출나진 않아도 평균 이상 수준은 되고, 위에 언급된 야오밍, 이젠롄, 왕즈즈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체격을 지닌 NBA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수준의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해 대부분 아시아선수들처럼 운동능력의 한계에 부딫힐 정도는 아니란 얘기.[88]

최진수의 경우 NBA포워드급의 신장을 지녔지만 NBA도 아니고 NCAA에서조차 뒤쳐졌는데, 점프력이나 스피드는 기준에 어느 정도 됐지만 파워가 지나치게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와 운동능력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NBA진출이 기대되었던 유망주였지만, 대학 수업 문제도 있고 실력 문제도 있어서 결국 NCAA에서 국내로 돌아와야했다.

한국의 경우, 지나치게 팀 플레이를 우선시하는 농구와 학원 스포츠 문화가 걸림돌로 꼽힌다. 제레미 린이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킬 당시, "국내에서는 지나치게 억압적인 학원 스포츠 문화에서는 제레미 린 같은 선수가 탄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89] 실제로 국내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학생선수들은 감독의 불호령과 구타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다. 그 결과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국내 선수들은 프로레벨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다. 또한 본인의 의향에 상관없이 키가 크면 무조건 농구를 시키는 풍토 역시 학생들의 재능을 꽃피우는데 제약을 준다. 케빈 가넷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센터급의 신장이었고 공식 포지션도 센터였지만, 포인트 가드를 포함해 5가지 포지션을 모두 소화했다. 이는 코비 브라이언트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 학원 스포츠에서는 보통 선수 본인이 실력이 되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마이클 조던이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의 거의 비정상적인 승부욕과 노력, 최고의 재능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가 진심으로 농구를 사랑했다는 점이 크다.[90] 실제로 조던은 "농구를 가르치려면 먼저 농구를 즐기고 사랑하는 법부터 가르쳐야한다. 기술은 그 다음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뭐든 간에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에서 뭔가 특출난 걸 해낼 수 있을까? 이런 환경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플레이를 했던 허재 같은 선수는 그야말로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 할 것이다. 사실 허재는 정봉섭최인선이라는 당대의 대인배감독 밑에서 선수 생활을 한 것이 크지만 또한 야오밍 역시 다른 중국선수들과 달리 적극적으로 NBA스타일을 배우려고 했던 점에서 "전형적인 아시아 선수의 스타일"이 NBA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들만 찍어내는 천편일률식의 양성문화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91]

물론 위의 서술은 팀플레이를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지나치게 팀플레이만을 우선시하느라 창의적인 플레이를 아예 등한시하는 문화가 창의적인 플레이어를 배출하는데 해가 된다는 얘기다.
당연히 농구에서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팀플레이를 가르친다. 그러나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것과 팀플레이 하라고 강요하는 건 천지차이다.
즉, 위의 서술은 개인플레이고 나발이고 무조건 팀플레이하라고 강요하는 강압적인 학원스포츠가 선수들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걸 막는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중고등학생이 크로스오버를 경기중에 하면 감독이 구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덩크를 해도 맞는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단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걸 문제 삼는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정해진 플레이에서 벗어나는 플레이를 하면 구타와 욕설이 날아오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창의적인 플레이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팀플레이 중시가 문제되는게 아니고 억압적인 환경이 문제라는 것.

NBA는 미국의 4대 스포츠리그 중에 유일하게 한국인, 한국계 선수가 우승을 해보지 못한 리그로 남아있다.

물론 파이널 진출도 없다. 사실 여기엔 어느 정도 운빨도 있다. 유일한 NBA선수인 하승진이 입단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가 하필 당시 리빌딩하던 시점이라 플레이오프 근처에도 못 갔던 것. 실제로 중국인으로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인 멍크 바터쑨예는 NBA기준으로 하승진(두 시즌 통산 평균 6.9분 1.5점 1.5리바운드)과 별 차이도 없는 폐급 선수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아시아인으로 유일한 NBA슈퍼스타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 야오밍은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사실 멍크 바터는 덴버에서 첫 시즌동안 15분 뛰며 5.1점 3.6리바운드란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냈다. 하지만 나머지 두 시즌동안 각각 3.8분 0.8점 0.8리바운드, 5.7분 1.1점 1.1리바운드란 화려한(...) 성적을 남겼다. 더욱 심한 건 6피트9인치 콤보가드로 기대를 받았던 쑨예로 09시즌 딱 1년 뛰면서 2.8분, 0.6점 0.2어시스트 0리바운드 0.1스틸 0.1블럭이란 엄청난(...) 기록을 냈다. 구체적으로 슛 11개 던져 3개 넣어 6점, 어시스트 2개, 0리바운드 1스틸과 1블럭을 했다. 10경기동안. 하승진 커리어에서 유일한 하일라잇이었던 2004-05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그가 24분 뛰면서 기록한 13점 5리바운드 1스틸보다도 쑨예가 NBA 커리어 내내 쌓은 기록이 더 적다(...). 한마디로 쑨예나 바터나 NBA기준으로는 하승진과 별 차이도 없는 선수들이었던 것. 그런데 이들은 운좋게 강팀에 합류해 우승반지를 하나 챙겼다. 사실 덴버에서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바터는 제쳐두고라도 쑨예는 강팀 레이커스가 아니라 그 어떤 팀에서라도 출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택도 없는 돌파하다가 어이없이 공 흘리기, 쉬운 슛 놓치기, 수비에서 정신 놓기 등... 오죽하면 36분 환산 기록이 평균 7.7점 2.6어시스트다(...) PER은 마이너스에 트루슈팅 퍼센트가 2할대라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차라리 골밑에 거대한 덩치 하나 박아놓는 효과가 있는 하승진이 그나마 나을 정도다.

NFL은 2006년 슈퍼볼에서 피츠버그 스틸러스하인스 워드가 우승과 더불어 MVP까지 수상했었고, MLB는 김병현이 2001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으며, NHL은 한국계 백지선(짐 팩) 현 한국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감독이 1991년과 1992년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2번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다.

9. 한국 중계[편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NBA 방송 기록은 1970년 10월 24일에 MBC에서 방영된 뉴욕 닉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간의 NBA 파이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1990년대에 마이클 조던드림팀을 앞세운 NBA의 세계화 전략을 통해 한국에도 NBA가 본격적으로 소개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 슬램덩크마지막 승부, 그리고 농구대잔치의 붐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NBA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당시 초등학생들까지도 NBA를 챙겨보고 선수들의 카드를 모았을 정도. 적어도 TV에서 NBA를 보기는 지금보다 편했을 정도다. AFKN이나 위성 NHK, 스타스포츠 등을 통해서 쉽게 볼 수 있었고, 지상파 방송으로는 SBS가 한창도 위원[92]의 해설과 함께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매주마다 한 경기씩 녹화중계를 했다. 이후 케이블 TV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경인방송-MBC ESPN-SBS 스포츠-슈퍼액션 등에서 생중계로 방영하였다.

2004년에 데뷔한 하승진을 빼고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에서 나름 큰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90년대 NBA 세계화의 주역들이 은퇴하고 농구 붐이 사그라들면서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다소 매니악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그 시절이 워낙 인기가 많았고 여전히 1980~90년대 슈퍼스타들을 추억하는 팬들이 많기에 잠재적인 국내에서의 인기는 실제로 나타나는 것보다 훨씬 크다.

국내 TV 중계권은 2014년부터 SPOTV에서 갖고 있다.[93] 2015시즌 부터 꾸준한 중계를 통해 팬덤의 저변이 확대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스테판 커리라는 슈퍼스타의 스텝업과 그가 이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73승 신기록 레이스와 함께 또다른 대스타인 르브론 제임스와의 라이벌리 형성을 통해 국내 NBA 팬덤이 점점 확대되었다. 자연스레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비교하는 여론이 생겨났고 이로 인해 과거 1990년대 NBA에 빠졌다가 관심을 접은 사람들이 다시 NBA를 보기 시작했다. 중계방송의 확대와 인터넷을 통한 정보 습득이 쉬워지고 국내의 언론들도 NBA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기 시작하면서 점차 국내의 NBA 열기는 상승할 전망이다.

2019년 현재, NBA 중계는 SPOTV와 NBA 공식홈페이지, 두 곳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SPOTV는 BIG 6팀[94] 위주로 편성해 중계중이다. 정작 2년 연속 정규시즌 승률 1위와 2019년 MVP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속해있는 밀워키 벅스는 BIG 6팀에 포함이 안 되어있다. 기본적으로 유료중계이지만 무료 중계도 1주에 몇번씩 하는중인데 NBA의 세계화를 위해 NBA측이 일부러 무료중계 조항이 삽입된 계약을 했다는 말이 있다. NBA 리그패스는 NBA 공식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으며 한글화도 되어있고 원화 결제도 지원한다.

현재 SPOTV의 NBA 중계진은 김명정, 조주영, 이준혁, 최두영, 양동석 캐스터와 조현일, 박세운[95], 이민재 해설위원이 담당하고 있는데, 좋은 중계퀄리티로 무한찬양을 받고 있다.

슈퍼스타들이 서부에 포진해 있고, 이 팀은 아예 주전 라인업 전체를 슈퍼스타로 꾸리면서 서부팀 팬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이다. 실력이 서부가 더 높기도 하고. 실제 서부에 스테판 커리, 르브론 제임스, 러셀 웨스트브룩, 제임스 하든, 카와이 레너드, 폴 조지, 앤서니 데이비스 등 스타들이 다양한 팀에 포진해 있는 반면 동부에는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등 전통 있는 팀들을 제외하면 선수들 이름값이 떨어지는 실정이라...18-19 시즌 샌안토니오 레너드가 토론토로 이적했지만 2019년엔 르브론 제임스가 서부로 가면서 오히려 서부 인기 편중이 늘어날 예정이다. 그러나 르브론이 서부로 떠나면서 레이커스가 플옵 진출에 실패하며 조엘 엠비드, 야니스 아데토쿤보, 카이리 어빙 등의 동부 젊은 스타들이 주목받게 되었고 브루클린 네츠가 분전하면서 빅마켓 뉴욕 농구의 체면을 세웠다.

10. NBA 파이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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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역대 우승 횟수[편집]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17
15
1949, 1950, 1952, 1953, 1954,
1972, 1980, 1982, 1985, 1987,
1988, 2000, 2001, 2002, 2009,
2010, 2020
1959, 1962, 1963, 1965, 1966,
1968, 1969, 1970, 1973, 1983,
1984, 1989, 1991, 2004, 2008
17
4
1957, 1959,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6, 1968,
1969, 1974, 1976, 1981, 1984,
1986, 2008
1958, 1985, 1987, 2010
6
5
1947, 1956, 1975, 2015, 2017,
2018
1948, 1964, 1967, 2016, 2019
6
0
1991, 1992, 1993, 1996, 1997,
1998
-
5
1
1999, 2003, 2005, 2007, 2014
2013
3
6
1955, 1967, 1983
1950, 1954, 1977, 1980, 1982,
2001
3
4
1989, 1990, 2004
1955, 1956, 1988, 2005
3
3
2006, 2012, 2013
2011, 2014, 2020
2
6
1970, 1973
1951, 1952, 1953, 1972, 1994,
1999
2
2
1994, 1995
1981, 1986
1
4
2016
2007, 2015, 2017, 2018
1
3
1958
1957, 1960, 1961
1
3
1978
1971, 1975, 1979
1
2
1977
1990, 1992
1
2
1979
1978, 1996
1
1
1971
1974
1
1
2011
2006
볼티모어 불리츠[97]
1
0
1948
-
1
0
1951
-
1
0
2019
-
0
2
-
1976, 1993
0
2
-
1997, 1998
0
2
-
2002, 2003
0
2
-
1995, 2009
시카고 스택스[98]
0
1
-
1947
워싱턴 캐피톨스[99]
0
1
-
1949
0
1
-
2000
0
1
-
2012

11. NBA 올스타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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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NBA 올스타전(NBA All-Star Game)은 1951년 3월 2일 매사추세츠보스턴에 있는 보스턴 가든에 개최었다.

참가자는 현재 두 가지 방법으로 선택을 하게 된다. 첫 번째는 팬 투표를 통해 최고의 투표를받는 각 위치에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둘째는 보유 각 선수의 특정 회의 감독의 투표에 의해 선정을 하게 된다. 단, 코치 자신의 선수 투표는 허용되지 않는다 . 만약 선수 부상에 참여할 수 없으면 커미셔너 교체를 선택할 수있는 기회가 있다.

12. 서머 리그[편집]

해마다 오프 시즌이 되면 NBA는 서머리그를 열어 유망주들의 기량을 팬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그해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신인과 NBA 진출을 노리는 해외 유망주들, 하위 리그에서는 꿈의 무대 입성을 노리는 이들을 초대해 기회의 장을 제공한다. 커리, 듀란트, 조지, 크리스 폴, 블레이크 그리핀 등 대학 무대를 평정했던 이들이 서머리그를 통해 자신의 기량을 팬들에게 선보이며 각 구단 스카우터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현재의 NBA 서머리그라스베이거스, 유타 주캘리포니아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올랜도는 2017년 대회 끝으로 해체되었다.
파일:external/media.graytvinc.com/NBA+SUMMER+LEAGUE+LOGO.jpg NBA 서머 리그
리그 명
창설년도
해체년도
참가팀
경기장
위치
수용인원
2004년
32개팀
콕스 파빌리온
네바다주 패러다이스
2,500명
토머스 & 맥 센터
18,776명
2013년
2018년
9개팀
18,846명
2015년
4개팀
19,911명
존 M. 헌츠맨 센터
15,000명
2018년
4개팀
17,608명

13. 기타[편집]

  • NBA는 한국에서는 전 농구협회라고 번역되지만 직역하면 전 농구 협회란 뜻이다.[100]
  • 2011년경 촬영된 <Ultimate All-star Fantasy Draft>에서 찰스 바클리, 케빈 맥헤일, 레지 밀러, 크리스 웨버, 스티브 커, 케니 스미스 등 NBA 출신 해설자들이 모여서 역대 NBA 선수들을 놓고 가상 드래프트를 펼쳤다. NBA 전현직 농구인들이 대충 선수들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자료. 참고로 바클리는 올스타전인줄 알고 앨런 아이버슨을 1픽으로 골라버렸으며 케빈 맥헤일은 셀틱스 출신답게 셀틱스 레전드 래리 버드를 2위로 뽑았다. 그는 여기서 로스터 전원을 셀틱스에서 뛴적이 있는 선수 위주로만 구성했다. 역대 최고 명문인 셀틱스는 출신 선수들과 골수팬들이 Celtic nati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프라이드가 강한데, 역대 최고의 선수를 자진해서 걸렀다는 점에서 그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이게 웬 떡이나며 마이클 조던을 픽하려는 레지 밀러에게 주변에서 "샘 보위"를 픽하라고 놀리고 있다 : ##
  • 아디다스가 유니폼 독점 계약을 맺어왔으나 2017-18시즌 부터 8년간 나이키가 유니폼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KBL과 유럽 각국 농구리그처럼 유니폼에 광고 부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미국 프로스포츠는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유니폼 광고 부착에 대해 상당히 꺼리는 분위기이다. 돈이 되는 명명권 판매조차 빅클럽들은 꺼리는 곳이 미 프로스포츠. 2005년 데이비드 스턴 총재 때도 이와 유사한 계획을 하려다 무산되었다.
  • 흔히 관심없는 사람들은 흑인선수들만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경우도 있는데, 2015년 기준으로 NBA선수의 인종 비율은 흑인 74.4%, 백인 23.3%, 기타(히스패닉+동양인)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NBA역사상 흑인비율이 80%를 넘은 적은 거의 없으며 1995년과 2011년이 약 80%로 가장 높았다.
  •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NBA는 백인 위주였다. 영화 Glory Road에 보면 60년대 대학농구에서는 흑인들이 운동능력은 뛰어나도 머리가 더 우수한 백인선수들을 이길 수 없다는, 지금 보면 웃기지도 않는 편견이 널리 퍼져있었으며[101], 각 팀마다 흑인들이 면피용으로 한 두명 정도였다. 당대 최고의 팀이었던 켄터키 대학의 명장 아돌프 럽 감독은 수십년동안 단 한명의 흑인선수도 데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1966년에 사상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뤄진 팀[102]인 텍사스 웨스턴 대학이 켄터키 대학을 꺾고 우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흑인의 스포츠 재능이 재조명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해에 준우승한 켄터키 대학의 주전으로는 훗날 NBA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명예의 전당급 감독이 되는 팻 라일리가 있었다. 50년대부터 70년대를 거치면서 빌 러셀, 윌트 체임벌린, 엘진 베일러, 윌리스 리드, 월트 프레이저, 카림 압둘 자바 등 우수한 흑인 선수들이 나오면서 70년대쯤 되면 "백인선수의 우수성"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였는지 철저히 까발려진다. 그러면서 70년대에는 운영자들이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흑인 비중이 급격히 높아졌는데, 이러한 위기감은 닉스가 최초로 전원이 흑인인 팀을 구성하면서 절정에 달한다. 물론 60년대와 비교해 높았다는 얘기지 현재보다는 훨씬 낮았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흑백분리정책이 철폐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흑인들의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NBA의 주고객층은 압도적으로 백인이 더 많았었기 때문이다. 물론 데이브 코웬스나 존 하블리첵 등 훌륭한 백인 선수들이 있긴 했지만 그 비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리그를 주름잡는 카림이나 줄리어스 어빙 등은 모두 흑인이었다. 이로 인해 NBA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는데, 1980년도 결승 6차전은 우승이 결정된 경기임에도 녹화중계될 정도... 이 상황을 뒤집은 것이 1979년에 데뷔한 "백인" 래리 버드였다. 신인임에도 리그 최고 선수들과 대등한 수준의 엄청난 실력을 자랑했던 버드의 활약은 이미 박살난 백인들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기에 충분했고, 그는 White hope(백인들의 희망)라고 널리 알려졌다.[103] 심지어 같은 해에 데뷔한 매직 존슨과의 대학시절부터 계속된 라이벌 관계로 인해 NBA는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또한 세월이 흐르면서 NBA 고객들 중에 흑인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고, 흑인 선수들의 활약에 대한 백인 팬들의 거부감도 점점 줄어들면서 더 이상 흑인이 많다는 이유로 NBA 인기가 타격을 입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게 마이클 조던이었는데, 이미지 관리의 달인이었던 그는 최고의 실력과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흑인 마이클 조던"이 아닌 "유명인사 마이클 조던"으로 알려지고자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수 있을 만한 이슈나 인종논란이 생길 법한 이슈에는 조심스럽게 코멘트를 하거나 노코멘트로 일관했는데, 이와같은 그의 행보는 비록 일부 흑인 팬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백인이 대다수인 주류 미국 사회의 사랑을 받는데 도움이 되었다. 당시 그의 위상에 대해 한 방송인은 "마이클 조던 이전까지는 14세 백인 소녀가 흑인 남자 운동선수의 포스터를 방에 걸어놓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96년에 데뷔한 신인 앨런 아이버슨이 "나는 마이클을 상대할 수 있다"고 당돌하게 말을 하자, 미국의 Sports Center는 이 말에 대해 "(이 멘트로 인해) 마이클은 기분이 상했죠(offended). 그리고 마이클이 기분이 상하면, 미국이 기분이 상하는 겁니다.(And when Michael is offended, America is offended.)"라고 말하기도 했다.
  • 2011년부터는 유럽 선수들의 NBA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점점 백인 비율 더 높아지는 추세이다. 물론 미국의 4대 인기 스포츠 중에서는 흑인 비율이 가장 높다. 다만 구단주들은 마이클 조던이 구단주인 샬럿 호네츠 빼고 백인들이 다수이다.
  • 백인 스타들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긴 하지만 미국 출신 백인의 경우 거의 씨가 말라가고 있다. 유럽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프로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유소년 시스템이 상당히 잘 발달되어 있어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팀플레이에 능한 선수들이 많고 미국의 흑인선수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학원스포츠 문화로 창의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운동능력이 장점이라면, 이도저도 아닌 미국의 백인선수들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 덕 노비츠키(독일), 가솔 형제(스페인), 스티브 내쉬(캐나다)와 같은 과거의 스타들 뿐만 아니라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라트비아),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 루디 고베어(프랑스) 든 최근 몇년간 두각을 나타난 백인선수들은 거의 유럽이나 비미국 출신이며, 미국 백인 슈퍼스타는 케빈 러브 정도 뿐이다. 외형상 백인으로 보이는 클레이 탐슨이나 블레이크 그리핀 등은 흑인으로 분류된다.
  • 드레스 코드가 존재한다. NBA의 게임, 인터뷰, 자선행사등 공식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선수들은 힙합, 스타일의 복장[104]을 착용할 수 없다. 코치는 정장 혹은 재킷을 착용해야한다.[105] 이러한 드레스 코드는 05-06 시즌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는 04-05 시즌 인디애나-디트로이트의 경기중 벌어진 초유의 관중폭행 사태[106]로 인한 리그의 이미지 하락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시작되었다.
    드레스 코드는 NBA 패션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 대부분의 NBA선수들은 여러 스타일의 복장으로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위에 언급된 아이버슨이 대표적이지만 라쉬드 월러스는 큰 덩치에도 더 통이 큰 옷을 즐겨입으며 져지, 후드티 등 특유의 자유로운 성격을 나타냈고, 케빈 가넷은 기나긴 기럭지를 부각시키는 깔끔한 세미정장을 즐겨입었다. 마이클 조던은 현역시절 항상 정장을 입었는데 이는 "완벽한 젠틀맨" 이미지를 밀었던 그가 고집한 패션이었다. 데니스 로드맨은 그야말로 예측불가능한 패션을 보였다. 그러나 드레스 코드로 인해 선택의 폭은 크게 좁아졌다. 그러나 개성강한 선수들이 NBA에서 바라던 대로 "깔끔한" 모습만을 할리는 없었다. NBA선수들은 드레스코드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는 꽃무늬 난방, 총천연색의 자켓과 셔츠, 특이한 모양의 안경, 마피아를 연상케하는 털코트, 체크무늬 바지, 멜빵(...), 책가방(...)[107], 모자와 안경의 특이한 조합 등 기상천외한 패션코드들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기존과 달리 캐쥬얼~정장 범위만 가능해지자, 그 범위 내에서 더욱 특이한 패션을 뽐내기 시작한 것. 그 중 멜빵, 안경, 책가방 등 특이한 아이템들을 이용한 온갖 조합을 선보이는 러셀 웨스트브룩은 그 평가가 현지에서 패션 리더에서 패션 테러리스트까지 극단적으로 갈린다. GQ에서 그의 패션을 호평하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의 코드와는 굉장히 떨어져 있는만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108]
  • 여타 다른 북미 스포츠처럼 NBA League Pass라는 이름의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북미 스포츠들과 달리 해외에서도 NBA의 인기가 높은 덕에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어지간한 나라에 모두 서비스를 하고 있으며, 구독비는 18-19시즌 전 경기 기준 192,800원이다. MLB.tv와 달리 동시 시청이 불가능[109]하기 때문에 공구 등의 편법이 불가능해 체감 가격은 더더욱 비싸게 느껴지는 편이다. 하지만 VPN으로 저렴한 국가로 우회하여 결제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 NBA도 언젠가 32팀 체제로 확장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2020년까지 키 아레나[110]를 NBA와 NHL이 요구하는 조건에 맞게 리노베이션 할 예정이고, 동시에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부활을 꿈꾸는 시애틀이 확장팀 1순위로 예상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5월에 NBA 간부가 스프린트 센터를 보유하고 있는 캔자스시티가 언젠가 NBA팀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언급함에 따라 # 캔자스시티도 상당히 유력해졌다.
  • NBA 역사상 최고의 드래프트로는 1984년[111], 1996년[112], 2003년[113] 드래프트가 손꼽힌다.
  •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어머니나 할머니의 말을 듣고 NFL에서 NBA로 진로를 바꾼 경우가 많다. 미식축구가 워낙 부상휴우증이 높은 위험한 스포츠이기때문인 듯.
  • 민주당의 영원한 우방 중 하나다. 다른 스포츠 리그들과 다르게 선수들은 흑인 비율이 높고 임원은 유대인, IT 사업가들 비율이 높아서 스포츠 리그들 중에서 좌파 성향이 가장 강한 편이다. 이 때문에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툭하면 NBA를 비난하는 말을 많이 한다.

13.1. 콜업과 10일 계약[편집]

실력 부족으로 퇴출되거나, 아예 드래프트에서 지명 받지 못한 선수들이 농구를 계속 하고자 할 경우, 보통 다른 나라 프로농구리그로 가서 돈을 벌거나, NBA의 공식 하위리그인 NBA G 리그에서 뛰며, NBA 진출은 노리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아시아나 유럽의 리그로 갈 경우, G 리그에서 뛰는 것보다 훨씬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NBA 도전기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에서 기사화되어 잠깐 유명세를 탄 무명 선수 자비안 도우델의 경우, 유럽에서 75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D리그의 털사에서 1만 3천달러 받는 계약을 선택했다고 한다.[114]

보통 NBA에 근접한 선수들은 웬만한 다른 나라 리그에서 에이스이거나 팀의 주축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거액을 받는다. 반면 G 리그에서는 연봉수준이 A급이거나 B급[115]으로 나뉘며, A급은 우리 돈으로 2,000만원 정도이며, B급은 그 이하를 받는데, 가정이 있는 선수들의 경우 이것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아무리 타지생활이라고 해도 수입만 놓고 보면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차이가 심하다. 외국인 선수에 대해 샐러리 캡이 존재하는 한국프로농구에서도 팀당 2명의 외국인 선수 도합 상한선이 70만 달러라서 기본적으로 억대 연봉은 보장받고 시작한다.

근데 이건 NBA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의 스포츠 자체가 2부에게 많은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것이 현실이라서 그렇다. 1부와 2부는 모두 프로지만, 미국에서는 2부 선수들에게 대접을 악랄하게 하며, "꼬우면 1부로 올라와라"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추신수도 1부와 2부의 차이는 모든 것이 하늘과 땅 차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다면 왜 저 푼돈 받고도 G 리그에 목 메느냐? 바로 NBA에 가장 근접하기 때문이다. NBA G 리그는 NBA 구단들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추가로 선수 수급이 필요한 구단이 언제든지 콜업(call-up)할 수 있다.[116] 션 킬패트릭의 경우, 2014-15시즌에 G 리그 팀 델라웨어 에이티세브너스의 팀 단체 사진을 찍던 도중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부름을 받았다. 미네소타는 NBA팀에게 경기를 치르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 선수 수인 8명을 채우지 못해 급히 그를 부른 것이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 합류한 팀 프레이저의 경우, 식서스가 경기를 치를 장소인 보스턴과 가까운 메인 주 포틀랜드[117] 연고의 G 리그 팀에서 뛰고 있다는 이유로 부름을 받았다. 반면 해외리그에서 뛸 경우 시즌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는 NBA팀에 합류할 수 없고, 사실상 스카우트들의 눈에 띄기도 힘들다.

이 때 선수들의 편의가 아닌 팀의 편의에 따라 부르기 때문에, 별의 별 해프닝이 다 있다. 앞서 언급된 션 킬패트릭의 경우 델라웨어에서 사진 찍다가 불과 경기 세 시간 전에 콜업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는 75분 만에 숙소에서 가방 챙겨 나와서 134마일을 자기 차로 미친듯이 달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도착해 차를 길거리에 세워두고, 준비를 마친 후 겨우 경기 시작 전 팀연습에 합류할 수 있었다고 한다.[118]

역시 앞서 언급한 프레이저는 자기 운동장비를 챙기러 G 리그 팀의 건물에 갔지만 직원들이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예전에 보스턴 셀틱스의 트레이닝 캠프에서 뛸 때 셀틱스의 가드 에이버리 브래들리가 자기와 똑같은 사이즈의 신발을 신었다는 걸 기억하곤, 상대팀 셀틱스 선수인 브래들리의 농구화를 빌려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119]

이렇게 콜업된 선수들은 NBA팀과 10일 계약을 하게 된다. 이 10일 계약은 말 그대로 NBA팀에 10일동안 합류하게 되는 계약으로, 보통 NBA팀은 이 기간에 3경기, 많으면 4경기 정도 치른다. 이 때 10일 계약 선수들은 팀이 잡아준 숙소에 머물며, 전세기/전용기, 연습장, 체력단련실, 마시지룸, NBA팀들이 지급하는 원정경기 경비 등 팀의 모든 혜택을 다 누릴 수 있다. 이들은 NBA 최소 연봉의 10일치를 받게 되는데, 최소 연봉이라 해도 NBA라 연봉이 수 십만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이 돈만 해도 무시할 만한 수치가 못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G 리그에선 아무리 받아봤자 3만불이 안되는데 킬패트릭의 경우 15시즌에 10일 뛴 대가로 4만9천709달러를 받았다.[120] 즉, NBA에서 10일 일한 것이 G 리그에서 시즌 내내 일한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는다. 이들은 NBA선수들과 완전히 동등한 신분이긴 하지만[121], 고작 10일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파리 목숨이나 다름없다. 한해에 수 천만 달러에서 1억달러를 연봉으로 쓰는 NBA팀 입장에서 5만불 짜리 선수는 얼마든 쓰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나 다름없고[122], 실제로 나태한 모습을 보이거나 팀에 도움이 안되는 선수는 하루만에 방출되기도 한다.

자신이 10일계약 선수 출신이기도 한 에이버리 존슨은 10일 계약 선수 생활에 대해 "잠도 거의 못 자고, 항상 폰을 보고 있다. 누구도 당신의 집에 리무진을 보내거나 당신 부인을 위해 장미를 보내지 않을 것이다. 택시를 타고 영수증을 제출하는 생활이다"[123]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10일 계약 출신이었지만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는 선수들도 있다. 존슨은 16년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영구결번까지 되었으며, 커트 램비스는 건실한 롤플레이어로 14년간 NBA에서 뛰며 4차례 우승을 했고, 앤소니 메이슨은 올스타에까지 올랐다.

13.2. 평균신장[편집]

NBA 선수의 평균 체격 조건은 12-13시즌을 기준으로 신장 6'7" (약 201cm), 체중 222lbs (약 101kg)이다.[124] 각 포지션별 차이는 있다. 알다시피 센터가 가장 크고 포인트가드가 가장 작다. 하지만 NBA에서 가장 작은 포지션인 포인트가드도 평균 6'2" (약 188cm)로 매우 큰 편이다. 미국 4대 스포츠 중 신장은 가장 크고 체중은 NFL 다음으로 무겁다.

NBA는 평균신장이 1990년대에 이미 2미터를 넘을 정도로 체격이 거대한 선수들의 리그이다. 그런데 보다보면 기록된 신장보다 조금 작은 선수들이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다. 물론 2미터 거인들의 신장을 비교하는 건 대다수 일반인들에겐 무리지만, 키 큰 일반인 정도인 스티브 내쉬 (191cm)같은 선수들의 경우 키에 대한 논란이 많이 올라온다. ("내가 봤더니 185밖에 안되더라, 커봐야 188이다 등등)[125]

이는 NBA가 기본적으로 농구화를 신고 키를 재며, 신장 기입을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자율에 맡기는지라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126] 물론 선수들의 자율에 맡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드래프트 전 신체검사 제도가 있고, 팀들이 딱 보면 어느 정도 키인지 알기 때문에 진짜 신장에 가까운 신장을 기재한다. 근데 신장이 제멋대로인 이유에는 굽이 최소 1인치(2.5cm) 이상인 농구화의 "굽," 그리고 피트와 인치로 표기하는 특성상 몇cm정도 차이는 무시되기 때문이다.

먼저 농구화를 신으면 키가 최소 1인치는 커진다. 여기서 맨발로 키를 재는 프로리그 (한국 등)과 차이가 난다. 또한 인치가 2.5cm 단위로 끊기기 때문에 키가 정확하게 표기되는게 아니다. 예를 들어 189cm인 선수A와 191.5cm인 선수 B가 있다고 치자. 1인치는 농구선수에게 무시할 차이가 아니다.[127] 그런데 A선수는 농구화를 신으면 192cm라서 6피트4인치(193cm)로 표기하고 B선수는 조금 굽이 낮은 농구화를 신고 194.5cm이지만 193cm로 표기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키 차이가 나는 선수들이지만 똑같은 키가 되는 것이다.[128]

더 심한 케이스는 시카고 불스에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드래프트 된 커크 하인릭과 벤 고든. 2004-05시즌 당시 두 선수는 동일하게 6피트 3인치(191cm)로 표기되었지만 누가 봐도 키 차이가 있었다. 이는 실제로 하인릭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이다. 하인릭의 키는 6피트 2.75인치, 고든은 정확히 6피트 1인치로 두 선수 사이에서는 1.75인치(4.5cm)로 거의 2인치에 달하는 키 차이가 있었다. 이는 포지션 평균 사이즈와 언더사이즈를 가르는 키 차이이다.

보통 선수들은 이렇게 소수점이 남는 경우 반올림한다.[129] 문제는 신발 신고 6피트 3.75인치라 원한다면 충분히 6-4로 표기될 수 있는 하인릭이 0.75인치를 깎고 6피트 3인치로 표기되길 원했고, 반대로 신발 신고 6피트 2.25인치라 웬만하면 6-2로 표기될 고든이 올려서 둘이 같은 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두 선수의 포지션 차이에서 비롯된다. 당시 둘은 대학시절 둘다 듀얼가드였지만 하인릭은 포인트가드 소화 능력이 출중했고, 실제로 데뷔와 동시에 완벽한 포인트가드 전환을 이뤄냈다. 포인트가드로서 190이 넘는 신장은 엄청난 어드밴티지였기에 굳이 키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 반대로 고든은 슈팅가드에 가까웠고, 6-4, 6-3도 작은 마당에 6-2의 슈팅가드는 그야말로 땅꼬마에 가깝다.[130]

이처럼 단신 선수들은 키를 될 수 있는대로 키우는 성향이 있어 오류가 나기 십상이다. 8,90년대에는 신체검사 결과가 공표되지 않았기에 추정에 가깝지만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맨발키가 188cm 정도에 불과했지만 한때 6피트5인치(195cm)까지 스스로 뻥튀기했던 존 스탁스가 있다. (말년에 6피트 2인치로 슬그머니 바꿨다;;;) KBL에 오는 외국인 선수들이 KBL신장과 NBA진출 시도할 때 신장이 다른 이유가 이 때문이다. 물론 이유 중 하나는 KBL특유의 목집어넣기와 무릎빼기로 작아보이기(...)지만, 또 다른 이유는 이들 대부분 미국 기준으로 언더사이즈들이라 미국에선 최대한 커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131]

예외적인 케이스는 아예 초단신이라 키워봤자 의미가 없는 경우로 5피트 9인치라 표기되는 아이재아 토마스 등이 있다. 토마스는 사실 맨발키가 5피트 8.75인치고, 신발 신으면 5피트 10인치가 넘는지라 사실 NBA식이면 5피트 10인치로 표기되어야 맞다. 그러나 5-9이건 5-10이건 NBA기준으로 초단신이라 메리트가 없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냥 맨발키로 쓰는 것.

또 다른 케이스는 포지션 대비 키가 엄청 커서 마찬가지로 키를 부풀릴 메리트가 없는 경우다. 마누트 볼, 숀 브래들리를 포함해 대부분 초장신 센터들은 맨발키를 그대로 표기한다. KBL에서 맨발키가 221cm 넘게 나왔던 하승진도 NBA에서 221cm로 표기됐다. 다만 야오밍은 좀 애매한게 그는 분명히 드래프트 당시에 맨발 7-5/신발 신고 7-6이었다. 그런데 루키시즌엔 7-5로 표기되다가 2년차부터 7-6으로 표기됐다.[132]

그 외에 누가봐도 7피트로 표기되는 선수들보다 확연히 큰 케빈 가넷 역시 6피트 11인치 표기를 데뷔부터 은퇴까지 고집했다.[133]

특이한 케이스는 빌 월튼. 70년대에 황금기를 보낸 백인센터였던 그는 6피트 11인치로 표기됐지만 당시 당연한 듯 7피트1인치 내지는 7피트 2인치로 받아들여졌다. 위에서 언급된 시대적 한계 때문에 정확한 그의 키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7-2였던 카림 압둘자바와의 매치업 영상을 보면 키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3인치나 작다면 엄청난 차이가 나야 함에도.
86년 파이널에서 월튼의 보스턴 셀틱스휴스턴 로키츠와 붙었을때 프로필상 월튼이 213cm으로 표기되던 하킴 올라주원보다 훨씬 큰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하킴은 훗날 자신의 맨발키가 208cm에 가깝다고 인정했다. 어쨌든 월튼이 실제로 7피트 2인치라면 정말 키를 엄청나게 깎은 셈이다.[134]

결국 19-20시즌을 앞두고 버디 힐드의 프로필 오류[135]와 같은 사태를 막고자 모든 구단에 소속 선수의 나이, 맨발신장[136], 체중을 정확히 조사해서 제출하게끔 했다. 프리시즌이 진행되면서 수정된 프로필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는 상황.

13.3. 선수들의 혜택[편집]

NBA선수들은 2018-19 시즌 기준으로 최소연봉이 신인 기준 83만 8천달러가 조금 넘는다.[137] 게다가 NBA에서 초고액 연봉자들의 경우 한화로 340억원이 넘어가며, 광고 수익까지 합하면 그 두배에 가깝게 벌 수 있다. 마이클 조던의 경우 1998년 물가로 연봉만 3천3백만불, 광고 수익이 4천만 달러가 넘었을 정도다.[138]

NBA선수로서 혜택은 이 정도 엄청난 수익, 팬들의 사랑과 인기도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NBA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만 해도 팀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혜택들을 공짜로 누릴 수 있다.

일단 NBA팀들은 엄청난 돈벌이 수단인 선수들을 말 그대로 모시고 다닌다. 한국에서처럼 자기 유니폼이나 신발, 짐을 챙기고 이럴 필요가 전혀 없이 그냥 라커룸에 경기 장비들이 전부 구비되어 있다. NBA에서 잡일이란 걸 조금이라도 하는 선수들은 오직 신인 뿐이고, 이조차도 호텔방으로 선배들 짐가방을 옮기거나 연습때 도넛 등 간식거리를 챙겨오는 정도다. 물론 이것도 전통에 가까운 것이라 실제로 힘든 일을 하진 않으며 그나마도 잠깐 부려먹고 만다.

농구화의 경우 사실 나이키, 아디다스 등 유명 브랜드와 계약하는 슈퍼스타들만 유명하지만 의외로 많은 선수들이 LA기어, 리닝, 안타, 피크 등 덜 알려진 브랜드와 계약하고, 그 아래급의 브랜드와 계약하는 이들은 더 많다. 개인 자격으로 브랜드와 계약하지 못한 선수들은 팀 차원에서 후원받고 있는 브랜드의 용품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139]

농구용품만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과 연습장과 딸린 부대시설까지 이용이 가능한데 기본적으로 연습코트 뿐 아니라 헬스장, 통증 완화를 위한 핫텁, 마사지대와 마사지사, 식당, 경기 분석을 위한 비디오 시청실 등 공간들이 존재한다.

이동시에는 당연히 최고급 호텔만을 이용하며 심지어 농구 잡지 루키의 2007년 기사에 따르면 2007년 올스타 주간에 선수들과 가족들을 위해 특급호텔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호텔에서 경기장, 경기장에서 공항 등으로 이동할 땐 당연히 최고급 버스이며, 이 버스는 NBA최장신 선수도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대형버스이다.[140]

이동수단의 최고봉은 단연 비행기인데, 당연히 공항에서 수속을 밟거나 하는 일 없이 버스가 활주로로 직행해 바로 선수들이 비행기에 올라탈 수 있게 한다. 현재 NBA팀들은 팀 상황에 따라 전용기를 이용하거나 전세기를 이용한다.

이 전세기/전용기들은 거의 날아다니는 호텔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급 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1996년 당시 시카고 불스의 생활을 찍은 영상에서 5분 40초부터 이들이 타고 다닌 전세기가 나온다.

보다시피 일단 전 좌석이 최소 비지니스 클래스~퍼스트 클래스이며 바와 뷔페식 식당이 있어 언제든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또한 거구인 선수들이 편히 앉을 수 있도록 자리도 널찍하고 몇자리를 혼자 차지할 정도로 여유가 있다.

그 외에 칸막이가 있는 객실형 좌석에서 코치진이 비행기에 설치된 TV를 보면서 전략을 짜거나, 마이클 조던이 론 하퍼 등 친한 동료들과 함께 카드게임을 하기도 한다.

당연히 이 영상은 1996년이기 때문에 현재 전세기는 시대에 맞춰서 시설이 좋아졌을 것이다. 96년 당시엔 저 정도 좌석이 퍼스트클래스 좌석이었고, TV도 저런 볼록한 TV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고 보면 정말 최고급의 시설뿐이란 걸 알 수 있다.

여담으로 같은 시카고 불스1987-88시즌 당시 원정생활 영상을 보면 얼마나 형편이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데, 전세기가 아닌 일반 비행기(물론 1등석이긴 하다)를 타고 다니고 일반인들과 똑같이 공항에서 수속을 밟으며, 호텔도 특급호텔까진 아니고 심지어 유니폼도 일일히 트레이너가 직접 세탁해서 선수들에게 나눠준다음에 선수들이 챙겨간다.[141] 위에 언급된 신인들이 잡일을 하는 전통도 여기서 생겨났을 가능성이 있는데 당시는 이게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실제로 잡역부들이 부족해서 트레이너가 직접 잡일을 할 정도였다. 당연히 당시 NBA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았는데, 단적인 예로 샐러리캡이 팀당 612만 달러로 현재 9천9백만 달러의 16분의 1수준이었다.[142]

또 하나 주요한 혜택은 바로 원정경기시 팀에서 배급되는 식비. 이를 per diem(일일 경비)라고 부르는데 2017-18시즌 기준으로 NBA per diem은 원정에 나설때마다 하루당 129달러(한화 14만5천원)에 달하며 이는 미국 4대 스포츠 중 최고액수이다.

보통 원정 시작 전에 각 팀에서 원정경기 소요 날짜에 따라 계산된 식비를 봉투에 담아서 배급한다. 이를 쓰는 방식은 NBA선수들마다 각각 다른데, 연봉이 적은 편이었던 네이트 로빈슨같은 경우 젊은 시절 돈 많은 팀동료들한테 빈대붙고 자기 per diem은 그냥 부가수입으로 챙기거나, 마찬가지로 연봉이 적었던 카일 코버의 경우 필라델피아 76ers시절 아예 per diem을 생활비로 쓰고 연봉은 아껴놨다고 한다. NBA팀들은 6개월 시즌 중 절반을 원정경기로 보내기 때문에 보통 누적된 경비가 1만 달러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어 무시할 액수가 못된다.[143]
지금은 어엿한 베테랑이 된 JR 스미스는 신인시절에 용돈 정도밖에 안되는 per diem을 제대로 쓰지 않고 과자같은 걸로 끼니를 떼우고 나머지는 삥땅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44]

베테랑들은 그들 입장에서 얼마 안되는 per diem을 굳이 챙기기보단 그냥 쿨하게 돈 없는 후배나 직원들에게 줘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해외 리그를 떠돌고 긴 무명생활 끝에 올스타까지 성장한 안토니오 데이비스는 고액연봉자가 된 말년에는 팀이 고용하고 있는 트레이너나 경호원들에게 나눠줬고 마커스 캠비같은 경우 어린 선수들이나 연봉이 적은 선수들에게 인심을 쓰곤 했다.

13.4. 직관[편집]

NBA 경기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실제 저 경기장의 분위기와 선수들이 뛰는 것을 실제로 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가져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직관을 가고 싶어하는 국내의 NBA 팬들도 꽤 된다. NBA 매니아NBA 갤러리 등지에는 매 시즌마다 직관 후기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고, 직관에 관한 질문을 하는 유저들도 자주 보인다.

하지만 직관을 가기 위해서 준비해야할 것들과 무엇보다 비용이 엄청 들어간다. 미국 비행기 왕복 티켓과 숙박비, 식비 그리고 경기장 입장료까지 최소 200은 잡고 시작해야할 가격이다. 더군다나 직관을 가고자 하는 경기가 초인기 팀들간의 대결이거나 NBA 파이널이라면?.... 설명이 필요없다.

기본적으로 3층 이상에서 보는 게 아닌 이상 입장료는 최소한 100불 이상은 생각하고 가야 한다. 경기장 입장료는 홈팀이 인기팀인지, 그날 상대가 누군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편이다. 예를 들어 18-19시즌 최고의 인기매치 중 하나인 골든스테이트와 LA 레이커스의 티켓값은 시작 가격이 200달러가 넘었지만, 상대적으로 비인기팀으로 분류되는 샬럿과 멤피스의 경기는 같은 층 기준 6달러가 시작 가격이였다. 아무튼 입장료가 상당히 비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면 잘 준비해서 갈 경우 최대한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적당한 인기팀(플레이오프 컨덴더 정도)을 상대로 하는 경기를 보러 가는 경우는 비용도 어느정도 절약하면서 본인의 만족도도 충족하는 일석이조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나는 컨덴더 팀을 좋아해서 무조건 컨덴더 팀과의 경기를 보러 가고 싶다 한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티켓 예약은 보통 시즌 일정이 나오는 대로 시작되며, NBA 공식 홈페이지나 스텁헙(Stubhub)이라는 사이트에서 예약 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좌석별 가격도 다 나오고 절차도 상대적으로 간단한 스텁헙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미국의 치안이 도시마다 천차만별이므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숙소에 귀가할때는 주변 치안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145] 특히 디트로이트. 제일 좋은 방법은 차를 렌트하는 것이다. 주차장이 떨어져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경우 2만명 정도가 이동하는지라 경찰들이 경기장 주변의 교통을 통제하는 목적에서 배치되는 지라 안전하게 주차장으로 갈 수 있다. 물론 주차비 아끼려고 아주 먼 곳에 주차했다면....어쨌든 주차장은 공간도 넉넉하고 치안도 괜찮기 때문에 돈 나가는 것만 감수할 수 있다면 운전하는게 제일 안전한 방법이다. 물론 운전하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건, 2만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면 엄청 걸리기 때문에 승부가 일찌감치 기운 경기라면 3쿼터 종료나 4쿼터 몇분 지나서 빠져나가는 것도 방법. 실제로 이 때문에 접전 경기가 아니라면 4쿼터 쯤 되면 관중석이 듬성듬성 비어있고, 종료 직전쯤 되면 절반 가까이 비어있는 경우도 종종 나온다. 그 유명한 티맥타임 당시 관중석을 보면 빈자리가 많고, 출입구 근처에서 서서 보는 팬들도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장에 가봤으면 경험했겠지만, 여기는 경기장 규모가 더 크고, 그나마 뉴욕같은 곳을 빼면 대중교통보다 운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에 차 빼는데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스테이플스 센터의 경우 하루 최대주차비가 정해져 있기도 하므로, 그냥 포기하고 경기 다 보고 경기장 주변에서 저녁 먹고 (주변에 상가가 있어 밤 치안이 그렇게 나쁘진 않다) 느긋하게 가는 것도 방법.

만약 주차비나 밤길 운전이 걱정된다면 차선책은 우버를 부르는 것이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거의 대부분은 좋은 기사분들이시고, 숙소까지 논스톱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다. LA 같이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는 한인택시도 이용할 수 있다.

14. 관련 문헌[편집]

  • 실전 NBA - 새벽소리 기획팀 편. 새벽소리. 1994.
  • NBA 농구기술을 훔쳐라 - 유우키 쇼지 저/김혜원 역. 하늘출판사. 1994.
  • NBA 길라잡이 - 루키 NBA취재팀 편. 하늘출판사. 1995.
  • 뚱딴지 NBA 탐방 - 덩크슛 편집부 저/김우영 그림. 대교출판. 1997.
  • I LOVE NBA - 손대범 저/김민석 그림. 루키. 2004.
  • TIME OUT: 최인선, 손대범의 LET'S TALK NBA - 최인선/손대범 저. 인21. 2006.
  • I Love Basketball - 손대범 저. 지식프레임. 2008.

15. 관련 커뮤니티[편집]

16. 관련 문서[편집]

[1] BAA로 시작함.[2] 원래 NBA라고 하면 이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편의상 이 단체가 주관하는 프로농구 리그를 의미하는 말로도 합쳐진 상황. 사실 NBL과 BAA가 합쳐지면서 둘의 이름을 합치다보니 어쩌다가 리그가 아니라 협회가 되어버렸다. 이름은 전미 농구 협회이지만, 리그의 흥행과 이익을 목표로 하는 프로농구 단체이기 때문에 국가대표 운영과는 관련이 없다.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은 USA Basketball'이라는 단체에서 관리한다. 한국도 이와 비슷한데, 대부분 프로선수이지만 국가대표로는 별개의 단체인 대한민국농구협회(KBA) 소속으로 출전한다.[3] 정확히는 공을 갖고있는 선수.[4] 이 때문에 극적인 플레이가 나오기도 하는데, 볼 경합 중 볼을 잡을 순 있지만 잡는 동시에 라인 밖으로 나가는 경우 대부분 선수들은 볼을 잡지 않고 (몸은 밖으로 나가면서) 라인 안쪽으로 볼을 쳐낸다. 그런데 이게 공중에 떠 있는 짧은 순간동안 쳐내는 것이다보니 잘못하면 동료가 아닌 상대팀에게 주는 경우도 있고, 최악의 경우 상대팀이 역습으로 손쉬운 득점을 하게 어시스트 (...)하는 꼴이 날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단 한번의 공격권이 매우 중요하지만 경기 후반의 경우 센스 있는 선수들은 공을 잡고 공중에 떠 있거나 밸런스를 잃은 상태에서 (아웃되기 직전) 심판에게 재빨리 타임아웃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경기 초반에 공격권 하나 얻자고 귀중한 타임아웃을 써버리는 건 영리한 플레이가 아니다.[5] 원래 12명이었고 2011~12시즌 일정의 빡빡함 때문에 예외적으로 CBA에서 조건부로 확대했었는데 그 이후 시즌에도 적용되었다.[6] 레이커스는 노란색. 과거 푸른 색 저지 시절 이후 상징색이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바뀐 후 (공식적으론 purple&gold라고 부른다) 리그에서 흰색 유니폼을 아예 안 입는 유일한 팀이었으나 02-03시즌부터 얼터니티브 홈 져지로 하얀색 바탕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이는 당시 제리 버스 구단주의 딸이자 현 구단주인 지니 버스가 디자인한 것으로, 일요일 홈경기에만 입는지라 Sunday Jersey라고도 불린다. 여담으로 코비가 81점을 퍼부을 당시 유니폼도 이 흰색 유니폼. 이 흰색 유니폼은 이후 협회 에디션으로 분류.[7] KBL은 초창기는 NBA와 같았으나, 현재는 정반대.[8] 잘 알려져있다시피 이 전통은 미국에서 처음 프로리그를 출범시킨 야구에서 원정경기가 계속될때 유니폼이 점점 더러워지는게 티가 덜 나게 하기 위해 어두운 색을 입으면서 시작되었다. 당연하지만 현재는 이런 문제가 없는데다가 흰색 유니폼은 다고 밋밋한 반면 원정 유니폼은 팀의 고유색이라 더 강렬한 디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홈에서 어두운 색을 입게 하자는 목소리가 있어왔다. 단적으로 마이클 조던의 경우 카드나 사진 등 기념품에서 (특정 경기 장면이 아닌 그냥 일반적인 사진의 경우) 붉은 색 원정 유니폼을 입은 모습의 사진이 흰색 유니폼 사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9] 가끔은 얼트를 입을 때도 있다.[10] 1이 아이콘 에디션, 2가 스테이트먼트 이런 식.[11] 같은 디비전 팀간 4경기(16경기)+같은 컨퍼런스 다른 디비전 팀간 3~4경기(36경기)+타 컨퍼런스 팀간 2경기(30경기).[12] KBL은 NBA 정규리그가 종료할 때쯤 챔피언결정전까지 거의 모든 일정이 끝난다. 그만큼 NBA의 일정은 빡세다.[13] 여담으로 NHL도 정규시즌이 대략 7개월간 82경기인데, 10월 초부터 4월 초까지 농구시즌과 거의 겹친다.[14] 아이러니하게도 기존 기록을 보유하고 있던 1994년 뉴욕 닉스는 우승을 못했다. 1라운드 3승1패 이후 7차전만 세번 연속 치렀으나 휴스턴에 패배. 즉, 당시 기준으로 NBA역사상 가장 빡센 시즌을 보내고서도 결국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다.[15] 하지만 KBL도 리그 선수층에 비해 일정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장 사용료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16] 단순히 경기수만 많은 게 아니라 경기시간 자체도 48분으로 국제규격이나 다른 리그에 비해 긴 데다가 페이스도 빠르다. 또한 선수들의 체격조건이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기 때문에, 거구들과 몸으로 부딫히는 데서 오는 체력 소모가 더 크다. 김승현의 경우에 전성기 시절 시카고 서머 캠프에 잠깐 참여했다가 체력이 도저히 안 돼서 중간에 포기한 적이 있다. 서머 캠프도 이 정도인데 정규시즌 리그는... 실제로 대학시절 30경기 안팎을 뛰다가 NBA에서 82경기를 처음 치르게 되는 신인 선수들은 초반에 아무리 잘하던 선수들도 중반쯤 되면 체력의 한계를 나타나며 부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걸 NBA에서는 보통 ''Rookie Wall"라고 부른다.[17] 두 차례 모두 파업(strike)이 아니라 직장폐쇄(lockout)였는데 국내팬들은 이 차이를 인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파업은 노동자들이 일할 수 없다고 나서는 것이고 직장폐쇄는 회사 측에서 일자리를 주길 거부하는 것이다. NBA의 경우 이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새로운 연봉체제에 대한 선수노조와 구단주(일반 노사갈등에 대입하면 사측의 입장에 해당한다)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18] 함정은 경기수가 줄었지만 일정은 더 빡세졌다는 것이다. 시즌 자체는 3개월로 절반이 되었는데, 정작 경기수는 82경기의 61%다 보니까 이틀 연속 경기를 뛰어넘는 3일 연속 경기가 나오는 등, 안 그래도 빡센 일정이 더욱 빡세졌다. 그래서 경기수가 줄었음에도 노장들이 많은 팀들 중 몇몇은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고, 플레이오프에서도 부진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리그 공동 1위에 해당하는 정규시즌 성적을 거뒀음에도 2라운드에 포틀랜드에게 탈락한 전 시즌 준우승팀 유타 재즈.[19] 참고로 헷갈릴 수 있는데 NBA선수들의 고용주는 NBA가 아닌 각 팀이고, 각 팀은 독립된 기업의 형태로 노동자인 선수들을 고용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NBA사무국의 힘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팀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팀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리그를 운영하는 것. LA클리퍼스의 전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의 인종차별 망언 당시 그를 쫓아낼 수 있었던 것도 구단주들이 일제히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크리스 폴 트래이드 비토 역시 총재의 권한으로 비토한 것이 아니라 당시 구단이 매각 진행중이라 구단주가 없어 구단주를 대행하던 자격으로 한 것. 계약이나 트래이드 절차 자체가 하자가 있지 않는 이상 합법적인 트래이드를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은 총재에게 없다. 비유하자면 총재는 대통령이 아니라 UN사무총장에 가까운 위치다. 실제로 NBA 운영비 역시 구단주들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20] 또한 이렇게 되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달성된 성과들이 폄휘될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 현재의 경우 룰과 트렌드 변경으로 과거보다 덜 피지컬해진 반면, 기술적으로는 큰 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2010년대와 90년대를 비교하며 갑론을박이 있다. 그런데 만약 정규시즌이 70경기로 줄어들면 당연히 컨디션 조절이나 몸관리 측면에서 엄청나게 유리해지고, 이 상황에서 낸 기록을 과거 82경기/38분씩 뛰면서 내던 마이클 조던같은 선수의 기록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 것이다. 그리고 시대적 차이로 특정 시대를 폄훼하는 건 말도 안되는게 맞지만, 이 경우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커진다. 82경기를 뛰는 것보다 70경기를 뛰는게 훨씬 덜 피곤하고, 덜 피곤하면 플레이오프에서 뛸 때 좋은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기 때문.[21] 당시 시리즈 결과 https://www.basketball-reference.com/playoffs/2006-nba-western-conference-first-round-nuggets-vs-clippers.html, 클리퍼스 홈에서 열린 1차전은 2점차 접전, 덴버 홈에서의 3차전만 너겟츠가 승리했을 뿐 나머지 경기에선 클리퍼스가 그리 어렵지 않게 승리했다. 시리즈 전체 득실점차도 +7.6점.[22] 나머지 두 디비전에서 승률 상위 8팀이 나온 경우[23] 특수한 상황 (정규시즌 최다승 등 기록 수립)이 아니면 NBA는 정규시즌 1위에 별다른 수상이나 혜택을 주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정규시즌 성적으로 "챔피언" 칭호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디비전 챔피언 뿐이다. 다만 디비전 챔피언에는 트로피가 수요되지 않는다. 팀에 트로피가 공식적으로 수여되는 것은 NBA챔피언과 각 컨퍼런스 챔피언인데, 둘 다 플레이오프 결과로 결정이 된다. 예를 들어 99시즌의 경우, 뉴욕 닉스는 동부 8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으나 결승에 올라 동부 컨퍼런스로 기록되고 트로피도 받았다. 반면 동부 1위인 마이애미 히트는 디비전 챔피언으로만 기록됐다. 즉, 정규시즌 성적이 아무리 좋아봤자 플레이오프에서 죽을 쑤면 트로피는 받을 수 없다.[24] 사실 이렇게 보기도 어렵다. 휴스턴의 81년 파이널 진출은 매직이 시즌 절반을 결장하면서 전 시즌보다 약간 삐끗한 레이커스를 3전2승제에서 기습적으로 업셋한 뒤, 절대강자가 없어진 서부에서 업셋이 난무하면서 5번시드 캔자스 시티와 6번시드 휴스턴이 서부 결승을 치르면서 가능했다. 즉, 이때 40승에 그친 휴스턴이 우승후보급 전력이라고 보기가 애매하다. (휴스턴은 동부에 가면 플레이오프 탈락할 성적이었고, 이 시즌 밀워키는 60승이나 거뒀다) 86시즌에도 정규시즌 성적은 벅스가 57승, 휴스턴은 51승이었다. 결국 당시엔 동부가 서부에 비해 상위권이 훨씬 빡셌기 때문에 플레이오프 실적이 휴스턴이 좋을 뿐, 실질적인 전력은 벅스보다 아래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실제로 80년대를 통틀어 휴스턴의 성적이 더 좋았던 적은 단 한번, 87-88시즌 뿐이며, 그나마도 46승대 42승으로 둘 다 중위권 정도 팀이었다. 반면 벅스는 79-80시즌부터 중간에 87-888년을 제외한 9년동안 각각 휴스턴보다 8승, 20승, 9승, 37승(!!) 21승, 11승, 6승, 8승, 4승씩을 더 거뒀다.[25] 1981년 플레이오프에서 54승 레이커스가 40승 로키츠에게 업셋당했다고 이 때 레이커스가 로키츠보다 전력이 약하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또한 83년에 셀틱스는 부상에 시달리던 버드가 평상시보다 부진하고 한 경기를 결장하는 등 고전하다가 한 수 아래 전력인 벅스에게 스윕당했다. 1990년대를 지배한 마이클 조던이 단 한번의 업셋도 허용하지 않아 간과되지만, 그 어떤 레전드 선수라도 업셋을 당할 순 있으며, 업셋을 당한 적이 있다.[26] 각 컨퍼런스의 승수 총합의 경우 1979-80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서부컨퍼런스가 한 팀씩 많았기 때문에 공정한 비교가 될 수 없다.[27] 사실 80시즌에 비해 81시즌에 갑자기 동부가 더 빡세진 것도 밀워키 때문이다. 80시즌 당시는 아직 밀워키가 서부에 있었고 서부 2번 시드를 받았다. 근데 그 밀워키가 동부로 와버린 것이다.[28] 존슨은 이 시즌에 전성기를 보내며 생애 유일한 퍼스트팀에 올랐지만, 폭발적인 득점이나 어시스트로 팀공격을 주도하기보다는 두 항목 모두 준수한 수준에 특급 수비력으로 서포팅해주는 특급 조력자에 더 어울리는 선수였다.[29] 젊은 에이스 도미니크 윌킨스가 이끄는 애틀란타 호크스가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며 50승을 거둔 첫 시즌이다.[30] 여담으로 이때문에 당시 동부를 폄훼하려는 사람들이 "당시 동부 8위는 서부 가면 꼴찌였다."고 주장하지만, 위에서 보이다시피 어차피 우승을 노리는 팀들은 상위시드에서는 동부가 훨씬 빡셌다. 우승을 노리는 입장에선 동부가 훨씬 더 힘들었던게 맞다.[31] 오기가 아니다. 1988-89시즌에 리그에 합류한 마이애미 히트는 실제로 첫 시즌을 서부 컨퍼런스, 미드웨스트 디비전 소속으로 치렀다. 이는 당시 NBA팀들의 구성 때문인데, 1980-81시즌부터 NBA는 계속해서 서부가 한 팀 많았다. NBA는 가급적 양대 컨퍼런스 팀의 수를 맞추려고 했는데 문제는 이 시즌에 합류한 두 팀 샬럿 호네츠와 마이애미는 둘 다 명백하게 동부였다. 둘 다 동부로 넣으면 동부 컨퍼런스에 승수를 추가하기 쉬운 확장팀 두개가 생기는 셈이라 동부가 너무 유리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하게 남동부 해안 끝에 있는 팀인 마이애미를 서부로 넣은 것. 문제는 다음해에 올랜도 매직과 미네소타 팀버울브즈가 합류한 것. 신생팀은 약할 수밖에 없고 신생팀이 같은 팀에 있으면 승수쌓기가 유리해지기 때문에 NBA는 가급적 두 시즌에 걸쳐 생긴 신생팀 넷을 네개 디비전에 고르게 배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중부에 한 팀, 동부 해안의 세 팀인데 퍼시픽 디비전에 배치하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었고 북중부 지역에 홀로 있는 미네소타를 동부로 배치하기도 애매한 상황, 궁여지책으로 전시즌에 미드웨스트에 하나, 애틀랜틱에 하나였으니, 이번시즌엔 센트럴 디비전에 하나(올랜도), 그리고 미네소타는 미드웨스트에 그대로 두고 엉뚱하게 샬럿을 미드웨스트로 옮긴다.[32] 동부는 셀틱스 외에 55승을 다른 팀이 넘긴 적이 12번이다. 89시즌은 보스턴 자신이 우승후보가 아니라서 제낀다고 쳐도 그전까지 10번이다. 즉, 보스턴이 플레이오프에서 레이커스보다 훨씬 힘들었다는 소리이다.[33] 위에 나온 수치를 전부 더 한 수치가 서부가 동부보다 0.9 높게 나왔다는 소리다. 연간 수치를 구하려면 여기서 10으로 나눠야 하니 10년 평균으로 나누면 사실상 의미가 없다.[34] 물론 매직 존슨이 부상 때문에 한 경기 결장하긴 했지만, 그가 뛴 경기에서도 명확히 전력이 한 수 아래였다.[35] 마이클 조던의 1988-89 시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불스는 이때 아직도 조던 원맨팀에 가까웠다. 전 시즌에 든든한 조력자인 찰스 오클리가 이적하는 대가로 받아온 빌 카트라이트는 전성기가 지난 롤플레이어로 12.4점 6.7리바운드에 그쳤고, 2년차였던 호레이스 그랜트는 주전으로 올라온 첫 시즌이었으며, 동기 스카티 피펜은 트위너 브래드 셀러스에게 밀려 후보였다가 셀러스가 주전으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자 그제서야 주전으로 올라섰다. 로스터를 통틀어 평균 15점을 넘는 선수가 한명도 없었으며, 포인트가드 포지션은 그야말로 가관으로 샘 빈센트와 존 팩슨으로 실험하다가 결국 막판엔 조던을 PG로 올릴 정도. 이 시즌에 막판 트리플더블 행진 등으로 팀을 그야말로 멱살잡고 47승으로 캐리한 조던은 1라운드에서 평균 39.8점 8.2어시스트 5.8리바운드 3스틸, 2라운드에서 35.7점 9.5리바운드 8.3어시스트, 2.5스틸을 거뒀고, 불스는 57승팀과 52승팀을 연이어 업셋한 다음 63승을 기록한 최강 피스톤즈를 상대로 2승을 따내며 이 해에 플레이오프에서 유일하게 피스톤즈를 상대로 승을 따낸 팀이 되었다. 피스톤즈를 상대로는 평균 29.7점 6.5어시스트 5.5리바운드 2스틸에 필드골성공률도 처음으로 5할 밑으로(46%) 떨어지는 등 부진(?)했지만 3차전에서 61.5% 성공률로 46점 7리바운드 5어시스트 5스틸을 거두는 등 맹활약했다. 이때 피스톤즈를 상대로 플레이오프에서 40점을 넘긴 선수는 조던과 제임스 워디(40점) 뿐이었다. 한마디로 동고서저의 최절정에서 원맨팀을 이끌며 플레이오프에서 군계일학의 활약을 한 것.[36] 88시즌까지는 보스턴이 더 성적이 좋았지만 89시즌에 42승으로 추락해서 확 깎아먹었다.[37] 사실 10년 중 9년동안 서부에 한 팀이 더 있었다는 것도 서부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양 컨퍼런스의 플레이오프 진출팀 수는 같기 때문에, 한 팀이 더 있다는 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하는 약팀이 하나 더 있다는 건데, 더 많은 경기를 치르는 같은 컨퍼런스 내에 약팀이 하나 더 있으면 당연히 승수 쌓기에 더 유리하다. 88-89시즌에 팀에 합류한 신생팀 둘은 지역과 별개로 하나는 서부에, 하나는 동부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한쪽에만 유리하게 적용하지 않았다.[38] 기적의 8번 시드로 불리지만 사실 뉴욕은 플옵에 턱걸이할 전력 자체가 아니었다. 뉴욕은 00시즌에 50승, 01시즌에 48승했으며, 98시즌에 43승에 그친 것도 전성기를 이끈 여러 멤버가 팀을 떠나서 새 멤버들이 들어오며 팀이 재정비하는 시기인데다 패트릭 유잉이 부상으로 26경기 출장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때는 팀이 변화를 겪느라 초반에 부진해서 그렇지 82경기 풀시즌을 치렀다면 후반에 승률을 끌어올려 최소 4,5번 시드는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에이스 페니 하더웨이가 더 이상 슈퍼스타급 기량이라고 하기 힘들고 팀 뎁쓰가 비교적 얕은 올랜도가 팀워크와 젊은 에너지에 힘입어 33승을 거뒀는데, 풀시즌이었다면 톱시드는 아무래도 힘들었을 수 있다. 전체적으로 혼돈스러웠던 시즌.[39] 필 잭슨 부임 전이었다.[40] 페이스가 29개팀 중 19위/경기당 득점은 13위이나 수비 레이팅 1위[41] 이때에 비하면 2017-18 시즌은 서고동저가 많이 완화된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7-18 시즌은 상위권에서 서부팀들이 동부팀들을 상대로 앞설뿐, 하위권 즉 탱킹 레벨에 있는 팀들끼리는 승수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쳐져 있다. 하지만 이 시즌은 전체 승률 뒤에서 1~3위도 모두 동부팀이었다.[42] 단적인 예로 뉴욕 같은 경우, 2000년대 초반에 그 삽질을 하면서도 왕조를 구축하고, LA라는 매력적인 빅마켓에 위치한 레이커스와 구단 가치 1,2위를 다투었다. 넘사벽인 뉴욕이란 거대 시장, 그리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가치 덕분이었다. 시카고 불스도 뉴욕까진 아니어도 높은 가치를 갖고 있다. 심지어 당시 서부엔 유독 가난한 구단주들이 많았다. 스퍼스 구단주 피터 홀트는 현재 자산 규모가 2억달러에 불과하고, 피닉스 선즈 구단주 로버트 사버는 4억달러다. 심지어 당시 워리어즈 구단주였던 크리스토퍼 코한도 2억 5천만 달러 수준.[43] 8년 내내 그런 건 아니었다. 2012년에는 동부 우승팀 마이애미가 서부 우승팀 오클라호마에 비해 더 어렵게 올라왔으며, 2013년의 경우 서부 우승팀 샌안토니오가 인디애나와 처절한 사투를 벌인 동부 우승팀 마이애미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올라왔다. 또한 2016년에도 클리블랜드가 나름 토론토와 접전을 벌였다. 어렵게 올라온 거는 다 이기고 쉽게 올라온 거는 다 지네? 뭔 이런 경우가...[44] 2012년 컨퍼런스 파이널, 2015년 플레이오프, 2018년 플레이오프와 같은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8년 연속 파이널에 간다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당장 보스턴 빅3, 폴 조지의 인디애나, 데릭 로즈의 시카고, 애틀랜타, 토론토 등 르브론의 팀과 제대로 대적한 경우도 많았다.[45] 하지만 르브론 vs 조던 항목에도 볼 수 있지만 빅3, 폴 조지, 데릭 로즈 때문에 파이널 8번 진출이 어려웠다 라는 주장은 다소 과장이 심하게 들어가있다. 빅3의 전성기는 사실상 2010년 정도까지였고, 데릭 로즈는 MVP 시즌후에 한 시즌 정도만 더 활약하고 부상으로 아예 하향세를 탔으며, 폴 조지가 뛰어나긴 하지만 폴 조지와 비슷하거나 더 뛰어난 선수들은 서부에는 더 많았다(...). 언급된 애틀란타, 토론토는 절대 르브론만한 슈퍼스타를 거느린적이 없다. 그리고 애초에 르브론 자체가 8년간 거의 최고의 동료들을 (웨이드, 보쉬, 어빙, 러브) 두고 뛰었는데 파이널에 못 오른다면 그것도 우스운 이야기다.[46] 다만 2012년에는 보쉬가 부상당했다가 파이널에 복귀하였다.[47] 15-16 시즌은 반대로 서부 전체 1-2위팀의 예를 상세히 나열하면서 역대급 팀들이 서부에 두 팀이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고동저라고 불리기도 했다.[48] 특히 MLB 인기가 하락세이기 때문에 더더욱 대비 효과가 크고, MLB 팬덤에서도 자체적으로 'MLB 위기설'을 꺼낼때 자주 등판시키는 리그가 NBA이다.[49] 스테판 커리, 러셀 웨스트브룩, 크리스 폴, 제임스 하든, 존 월.[50] 이는 아무래도 유럽에서의 인기가 큰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51] 물론 미국 한정.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의 인기가 여전히 상상을 초월한다. 캐나다 국가대표팀 주장이기도 한 크로스비의 인기는 한국에서 전성기 시절의 박지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52] 19-20 시즌 현재 폴은 오클라호마 시티 소속.[53] 대표적으로 야구-풋볼 강세인 동부 지역은 야구선수들이니 미식축구 선수들이 농구선수들보다 인기가 많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뉴욕의 2018 스포츠 스타 인기순위는 1위가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MLB), 2위 지안카를로 스탠튼(뉴욕 양키스-MLB), 3위 오델 베컴 주니어(뉴욕 자이언츠-NFL)이며 4위가 NBA 뉴욕 닉스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이다. 보스턴에서는 현 NFL의 간판 스타인 톰 브래디는 물론 데이빗 오티즈(은퇴), 무키 베츠, 볼티모어에서는 아담 존스, 워싱턴에서는 브라이스 하퍼(데이빗 오티즈 이하 모두 MLB 선수들)가 가장 인기가 많다. 야구는 지역 스포츠 성격이 강하기에, 그 지역만을 국한하면 야구 선수가 그 지역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전국으로 범위를 넓히면 NBA 선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마지막 전국구 스타라고 불리던 최고 인기팀 양키스 소속 주장 데릭 지터조차도 농구 선수들의 인기에는 미치지 못했다.[54] # 한편 유고브를 인용한 2019년 뉴욕타임즈의 기사에서는 43프로의 미국인이 트라웃의 이름을 들어봤다고 한다.#[55] NFL은 28억달러 MLB는 18억 달러[56] 전체 구단 가치 1위는 NFL 댈라스 카우보이스 2위는 MLB 뉴욕 양키스 3위는 뉴욕 닉스 4위 LA 레이커스 5위 골든스테이츠 워리어스 순이다.[57] 2010년 마사장님이 샬럿 호넷츠를 2억7500만달러에 인수했다.2020년 성적도 인기도 바닥인 구단의 가치는 15억달러이다.마사장님 클라스 2010년 구단가치 1위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18억 달러였고 2020년 맨체스터의 가치는 38억 달러인걸 생각하면 NBA의 성장을 알수있다.참고로 2010 닉스는 NBA1위였지만 전체 50위로 순위표에 턱걸이였고 구단가치는 5800만 달러였다.[58] 뉴욕은 양키스도 50억달로 전세계 구단가치 2위이지만 지난해 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NBA팀인 닉스 15% 레이커스 19% 워리어스 23% 상승세가 어마어마하다.각각 구단가치 3위 4위 5위의 팀이다.[59] 주로 야구라는 스포츠가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한국이나 일본, 대만, 북중미 국가들 정도의 소수의 나라들만 국한된다.[60] 배구도 있긴 하지만, 배구는 세계 골고루 인기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미식축구는 세계적 인지도는 말할 거 없고 야구는 미국이 현대적으로 개량했다 뿐이지, 미국이 만든 구기종목이 아니며 역시 전세계적으로 보면 인기도에서 농구에게 매우 압도적으로 밀린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농구를 능가하는 인기 단체 구기 종목은 축구밖에 없다.[61] 더구나 농구나 축구는 앞서 언급된 다른 구기종목들 보다 우위에 있는것이 바로 면적과 인원수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1대1, 2대2 같은 소규모의 인원으로도 경기가 가능한데다 풋살이나 하프 코트 경기와 같이 제한된 면적에서도 대결이 가능하다는 편리성까지 지녔다. 여기에 옥외에서나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전천후성 비기까지 가지고 있다.[62] 축구의 인기에 가려져서 그렇지 아프리카에서 농구의 인기는 엄청나다. 케냐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농구를 하고 싶었는데, 어찌 림을 구해서 대충 나무로 골대를 만들어 집 근처에 뒀더니만 현지인들이 몰려와 덩크를 시도하기도 하며, 나중에는 그 곳이 농구 경기장이 되어버린 일화가 있다... 공과 골대만 있으면 농구도 많이 한다고...[63] 유럽내에서 nba는 축구 다음가는 넘버2로 자리잡았다 남미도 마찬가지.[64] 예시로 안타와 계약한 클레이 탐슨이 있다.[65] 현재 디비전은 전략상 의미보다는 미국이 워낙 땅덩이가 넓기 때문에 같은 디비전 (=가까이 있는) 팀들끼리 조금 더 경기를 많이 하고 지역이 먼 팀들은 적게 하는 의미가 크다. 동서부 해안 끝과 끝에 위치한 보스턴이나 골든스테이트같은 팀들은 현재도 이동거리가 긴 편인데, 만약 디비전이 없이 그냥 모든 팀과 같은 수의 경기를 하려면 죽어난다.[66] 몬태나 주는 한반도 면적에 두배에 가까운 거대한 주인데 인구가 백만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저 광활한 영토에 퍼져있기 때문에 주도 헬라나의 인구는 3만명이 안되며, 가장 큰 도시인 빌링스의 인구는 주변 지역까지 전부 합쳐봐야 (서울로 따지면 경기도지역까지) 18만명 조금 넘는 수준. 이런 지역에 메이저 스포츠 팀이 살아남을리가 만무하고, 실제로 마이너리그 팀이 몇개 있을 뿐이다.[67] 르브론 제임스는 레이커스에 오기 전부터 LA에 집이 있었으며 매 여름휴가를 여기서 보냈다. 그리고 이건 드문 경우도 아니다.[68] 미국은 주마다 내는 세율이 다른데, 플로리다는 주 세율이 낮기 때문에 고액연봉자인 NBA선수들에겐 이 점도 굉장히 크다. 반대 경우가 세금이 높은 캐나다에 위치한 토론토 랩터스. 물론 여긴 외국인데다 농구 인기가 비교적 적다는 점도 한 몫한다.[69] 실제로 윌트 체임벌린은 필라델피아에서 뛰던 시절 뉴욕에서 살면서 필라델피아로 출퇴근을 했었다. 물론 NBA선수들은 뉴욕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가는 짧은 거리도 비행기를 타고 간다. 그러나 뉴욕 원정 후 브루클린 원정으로 갈 때는 당연히 차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 NBA선수들은 뉴욕 원정시 맨해튼의 The Ritz, The Conrad 등 맨해튼에 위치한 최고급 호텔에 묵는데 여기서 바클레이 센터까지는 10km 정도 거리여서 뉴욕에 있는 세 공항 중 어디보다도 훨씬 가깝기 때문에 굳이 비행기를 타는게 바보짓이기 때문. 한국으로 비유하면 서울 중심지에서 과천까지 가려고 인천공항 가는(...) 꼴이다.[70] 2020~2021시즌 코로나19의 여파로 캐나다 정부가 스코샤뱅크 아레나 사용 불가 결정을 내리자, 대체홈구장(NHL탬파베이 라이트닝 홈구장이다.)으로 사용하게되었다.[71] 현재 NBA 팀 보스턴 셀틱스가 ABL 팀인 '오리지널 셀틱스'에서 따온 것이다.[72] 이것 때문인지 1984년에 부임한 데이비드 스턴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마약 퇴치 정책이다.[73] 월간 루키 2012년 10월호 참고. 코비 브라이언트 및 NBA 중국 수익관련기사[74]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 前구단주 스털링 사건에 관해 신속하게 처리해 많은이들에게 호평을 받았다.[75] 98-99시즌 당시 선수노조와 구단주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직장폐쇄가 일어나 98년분과 1월까지의 정규시즌 일정이 통째로 날아가 50경기 단축시즌이 열린 바가 있으나, 정규시즌이 짧아지고 올스타 위켄드가 없어졌을 뿐 정규시즌 수상과 플레이오프는 그대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선수들이 최소한 수상실적에서 손해는 없었다. (굳이 따지면 올스타 선정횟수에서 손해봤지만, 이보다 권위있는 올NBA팀을 포함한 모든 상은 그대로 선정) 그러나 만약 시즌이 재개되지 못한다면 사상 초유로 시즌 MVP를 포함한 모든 상과 동서부 챔피언과 최종우승자 등 모든 영예가 날아가게 된다. NBA 최초로 포스트시즌이 없어지는 것으로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가 되는 것. 여담이지만 권위는 없지만 투표진 중 70여명을 두고 MVP투표를 한 결과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야니스 아데토쿤보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76] 서부 13팀, 동부 9팀[77] 여담으로 마이클 조던의 실루엣이 로고로 쓰이진 않겠지만, NBA 져지에 박혔으면 좋겠다는 많은 이들의 바람은 2020-21시즌에 실제로 이뤄질 전망이다. 나이키는 지난 7월, 차기 시즌에는 NBA Statement Edition 져지 오른쪽 가슴에 박히는 나이키 로고 대신 조던 브랜드의 "점프맨" 로고가 박히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78] 로고의 깔끔한 헤어스타일은 아무리 봐도 백인선수로 보이는데, 로고가 만들어지던 당시 NBA는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던 리그였다. 물론 실루엣처럼 머리를 깔끔히 빗어넘기던 헤어스타일로 유명하던 선수는 웨스트가 대표적이었다.[79] 제레미 린 등 순수 아시아 대륙 태생이 아닌 선수들은 제외.[80] 부모님은 일본 출신이였으나 와타루 미사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차 세계대전에도 미군으로 참전했을정도[81] 이 사실을 최초로 다룬 <바스켓볼 다이제스트> 2002년 2월호에 의하면 그가 뛸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의식이 팽배했으며, 감독은 그에게 한 마디 건네지 않은 데다 구단으로부터 강제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지금 농구에서 뺄 수 없는 흑인 선수조차도 NBA에서 뛸 수 없었던 시절이었으니... 거기다 당시 시기는 일본과의 2차 대전이 종료된지 겨우 2년 뒤였다.[82] 굳이 억지로 엮어 본다면 1988년에 마이애미 히트에서 데뷔해 NBA에서 10여년간 주전으로 활약했던 로니 세이컬리(레바논 태생)이 있었고, 1995년 오프시즌에 유타 대학교 출신인 중국인 선수 마젠(马健)이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트레이닝 캠프에 초청받았으나 당시만 해도 아시아인들의 기량이 검증되지 않았던데다가 신장과 포지션에서의 역할이 매치 되지 않는 트위너로 전락하면서 입단이 무산되었고, 후웨이동 역시 1998년과 2000년에 댈러스 매버릭스올랜도 매직에서도 각각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상으로 무산되었다. 북한의 유명 농구선수 리명훈 역시 1999년에 캐나다로 가서 NBA 진출을 위해 맹훈련했으나 결국 NBA 문턱에는 못 갔다.[83] 성공은 아니지만 사실 왕즈즈나 이젠롄도 기대치나 명성에 비해 못 했을 뿐 롤플레이어로 충분히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었다. 고국리그에서 슈퍼스타 대접받으면서 편하게 선수생활 할 수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빡센 리그에서 굳이 후보선수로 뛸 이유가 없어서 그렇지...[84] 특히 이젠롄은 케빈 가넷에 비견될 정도로 NBA기준으로도 사기적인 운동능력을 지녔다. 야오밍은 절대적으로 보면 운동능력이 낮은 편이지만 226cm 이상의 소위 말하는 "거인"센터중에는 단연 최강이었다.[85] KBL의 경우 하승진급의 덩치가 골밑에 있으면 그것 자체만으로 상대팀에겐 위협이 된다. 그런데 NBA에서는 하승진이 아니라 야오밍이라도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먹을 정도로 괴물들이 즐비하다. 야오밍은 NBA에 오기 직전에 중국리그를 완전히 평정하고 왔는데, 루키시즌 골밑에서 레이업을 하다가 같은 루키였던 211cm의 네네 힐라리우에게 뒤에서 블럭당했다. 아시아 무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무브. 쉽게 말해 KBL에서 한시즌에 덩크 블럭이 얼마나 나오는가? 그런데 NBA에서는 원맨속공의 덩크조차 종종 블럭이 나온다. 사실 블럭능력이 뛰어난 네네까지 갈것도 없이 175cm의 초단신인 네이트 로빈슨조차 야오밍을 한번 블럭한 적이 있다. NBA 선수들이 얼마나 상식밖의 괴물들인지 보여주는 부분.[86] 야오의 전성기 당시 골든스테이트의 루키 앤서니 랜돌프가 야오 위로 덩크를 찍고 트래쉬토킹을 하며 도발했다가, 야오가 묵묵히 경기력으로 처참하게 박살을 낸적이 있었다. (인유어페이스 덩크와 앤드원 포함) 그런데 그때 혼자 포효하게 난리치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은 랜돌프를 해설자들이 어이없다는 듯(휴스턴 지역 방송이라 더 고깝게 본 것도 있다) 한 말이 "야오 위로 덩크하는 선수들은 많은데 말입니다.(A lot of players dunk on Yao)"였다. 물론 야오의 골밑존재감은 상당히 높고, 그가 블럭능력이 낮다기보단 열심히 수비하다보니 덩크를 많이 먹는 것이지만, 살짝만 뛰어도 덩크가 가능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높이를 가진 야오조차도 아차하면 얼마든지 덩크를 먹는 리그가 바로 NBA란 소리.[87] 데이먼 스타더마이어 같은 선수들은 스피드는 빠르지만 점프력은 NBA 가드 기준으로 평범한 편에 속하고 키가 178cm에 불과한데도 경기 도중에 덩크를 무난히 성공시킨 적이 있다. 즉, NBA 기준에서 178인 선수가 덩크능력이 있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다는 것. 참고로 이건 국내 기준으로 김승현의 키와 같다.[88] 린의 운동능력이 NBA가드 중 톱급이란 오해가 있는데, 린의 민첩성은 확실히 NBA가드치고도 빠른 편이다. 그러나 린의 운동능력은 평균 이상 정도이지 톱급은 절대 아니다. 그는 점프력과 힘, 체력은 평범, 스피드 뛰어나기 때문에 평균 이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드래프트 당시 린의 운동능력은 지극히 평범하다고 평가되었다. 린이 그간 아시아가드들에 대한 편견을 벗어난 스타일인 것 맞지만 그건 플레이스타일 얘기고 여기서 말하는 운동능력 측면에선 NBA 가드치고 평균이상인게 맞다. 일단 운동능력이 되어야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든 말든 할게 아닌가? 즉, 린은 야오밍과 이젠롄, 왕즈즈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체격의 NBA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운동능력을 지닌 아시아계 선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느나, 운동능력으로 압도하는 정도는 아니란 소리, 다시 말해 평균 이상이란 소리다.[89]엘리트주의’ 학원 스포츠에서 ‘린새니티’는 없다#[90]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NBA팀들은 선수들과 계약할 때 스키나 오토바이, 스카이다이빙 등 부상위험이 큰 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넣었는데, 이 중에 농구경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연습도 못하는 건 아니고, 자선경기나 야외경기 역시 팀이 합의해주면 할 수 있다. 그러나 조던은 "내가 원하면 언제 어디든지 농구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었고, 이런 조항을 넣은 선수는 조던이 최초였다. 이는 일명 "농구에 대한 사랑(for the love of the game)" 조항으로 불린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조항이 상당히 흔해졌다고 한다.[91] 야오의 루키시즌을 다룬 다큐 Year of Yao에 보면 야오가 너무 소극적이고 얌전하다고 감독 루디 탐자노비치와 선배 쿠티노 모블리가 상의하는 장면이 있다. 실제로 야오는 원래 테크니컬 파울 하나 받지 않을 정도로 얌전했으나 루키 시즌에 호크스와의 경기에서 테오 레틀리프에게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작렬하고 포효하다 테크니컬을 받자 동료들이 일제히 신나한다. NBA에선 얌전히 경기만 하는게 아니라 심판에게 가끔 불평도 하고 말싸움도 하고 해야 기죽지 않으므로...아무튼 야오는 NBA기준으론 얌전한 편이지만 적극적으로 판정에 어필도 하고 트래쉬토킹도 하는 등 아시아기준으론 전혀 얌전한 선수가 아니다.[92] 당시 본업은 이화여대 농구부 감독이었다.[93] 2015-16 시즌에는 skySports도 중계권을 구입하여 skySports에서도 SPOTV가 제작하는 중계방송이 송출되었다. 2016-17 시즌 현재 skySports에서는 녹화중계로 편성 중.[94]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휴스턴 로키츠, 보스턴 셀틱스,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토론토 랩터스[95] CBS 노컷뉴스 기자. 2017-2018 시즌 올스타전 중계에서 갑작스레 나온 재채기로 빅재미를 선사했다(...)[96] 2008년 해체.[97] 1954년 해체.[98] 1950년 해체.[99] 1951년 해체.[100] American이라고 안 붙힌게 의아하긴 하지만 당시 NBA, 그 이전의 NBL와 BAA는 세계 최초의 프로농구리그였다. 창설 당시 기준 농구는 1981년에 생긴 비교적 신생 스포츠였고, NBA 창설로부터 10년 전에야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당시 프로급으로 농구를 하던 국가는 세계에서 미국밖에 없었다. 애초에 미국에서 만든 스포츠이기도 하기 때문. 사실 미국은 자신들이 종주국인 자국 스포츠 리그에 자국 중심적인 이름을 붙히는 경향이 있다. MLB의 결승인 World Series나 자국 챔피언은 World Champion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101] 60년대에 이미 NBA에 빌 러셀과 윌트 체임벌린이란 양대 산맥이 있었지만, 사실 이들도 극심한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윌트의 실력 자체는 누구도 부인을 못 했지만 너무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농구한다는 편견이 있었으며, 보스턴은 러셀 입단 당시 이미 MVP 수상 이력이 있던 명포인트가드 밥 쿠지나 팀 시스템 자체에 공을 돌리는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러셀은 (비록 올림픽 출전 때문에 24경기 결장하긴 했지만 실력이나 기록 면에서 상대가 안되는 타미 하인슨에게 신인왕을 뺏기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이들에 60년대 투톱으로 인정받지만, 이들은 당시에 극심한 폄훼에 시달렸다. 물론 이와 별개로 체임벌린과 러셀은 유일하게 당시 10만 달러 연봉을 넘기고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의 인기스타들이었지만, 농구계 "높으신 분들"의 편견은 깊었다.[102] 물론 백인 선수들도 있었지만 이 경기에서 뛰지 않았다.[103] 정작 이 발언의 대상인 버드는 자신을 "백인들의 희망"이라고 보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첫 입단시에는 팀의 동료들이 고깝지 않게 봤음에도 그랬다. 버드는 다큐멘터리에서 백인이고 흑인이고는 중요치 않다는 점을 계속 강조했고 자신이 농구를 하게된것도 주변의 흑인들이 농구할때 같이 끼어서 농구를 할 수 있었다면서 인종차별과는 상당히 먼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아이재아 토마스와 로드맨이 한 인종차별 발언도 크게 개의치 않으며 경기가 더 중요하다고 할정도로 대인배적인 면을 많이 보인 인물.[104] 저지, 모자, 두건, 티셔츠, 큰 장신구, 스니커등[105] 이에 대해 가장 크게 반발했던 두 선수가 앨런 아이버슨팀 던컨이다. 아이버슨은 평소에 개성 넘치고 화려한 힙합 패션스타일을 고수했기 때문이고, 팀 던컨은 그냥 정장이 불편하고 귀찮아서 (...)[106] 자세한 사항은 론 아테스트 문서 참조.[107] 의외로 책가방을 메고 기자회견에 나타나는 선수들이 많다. 러셀 웨스트브룩케빈 듀란트 등. 무슨 이유에선지 한동안 유행하던 패션 아이템이었다.[108] 비유하자면 예전의 노홍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노홍철의 특이한 패션과 실험정신을 호평하는 전문가들도 있었지만, 굉장히 호불호가 갈리는 패션이었다.[109] 리그 패스를 시청 중인 상태에서 다른 기기로 접속하면 시청 중이던 기기의 접속이 끊기며 로그아웃되어버린다. 심지어 태블릿으로 경기 보며 박스스코어 확인하려고 폰으로 모바일앱을 켰을 뿐인데도 태블릿이 동시 접속으로 끊기며 로그아웃되는 경우가 있다.[110] 슈퍼소닉스 홈구장이였다.[111] 1순위 하킴 올라주원, 3순위 마이클 조던, 5순위 찰스 바클리, 16순위 존 스탁턴[112] 1순위 앨런 아이버슨, 5순위 레이 앨런, 13순위 코비 브라이언트, 14순위 페자 스토야코비치, 15순위 스티브 내시[113] 1순위 르브론 제임스, 3순위 카멜로 앤서니, 4순위 크리스 보쉬, 5순위 드웨인 웨이드[114] # [115] 원래 C급까지 있었으나 17시즌부터 폐지.[116] 사실상 미국 내 하부리그 선수들은 시즌 내내 오디션을 보는 것에 가깝다. 해외로 가는 선수들은 NBA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 비열하게 이중계약에 야반도주했던 버나드 블런트가 계약했던 리그는, 항목에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두시즌만에 망한 소규모 허접한 리그였다. 돈도 별로 안 주는 이런 리그들에서 뛰는 유일한 이유는 NBA 스카우터들에 근접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NBA 스카우터들도 싸게 써먹을 수 있는 선수들을 찾기 위해 (아래 나오지만 보통 10일 단위로 최소연봉 계약) 이런 리그들을 샅샅히 뒤진다.[117] 훨씬 유명한 도시이자,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연고지인 오레건주 포틀랜드와 다른 곳이다.[118] 15시즌에 고작 4경기, 그 다음 시즌엔 31경기밖에 못 뛰는 등 입지가 불안했던 킬패트릭은 16년에 브루클린 네츠와 3년 계약을 체결했다.[119] # [120] # [121] 물론 동등하다는 건 공식적인 NBA 선수란 얘기일 뿐이지, 팀내 입지에선 당연히 팀내 최하위이다. 여기에 신인이라면 그 위상이 더욱 추락한다.[122] 물론 NBA팀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5만불이 진짜 껌값처럼 버려도 되는 돈은 아니다. 다만 쓸모없는 선수를 로스터에 두고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다른 선수를 놓치는게 손해가 더 크기 때문에 손해를 무릅쓰고 선수들을 방출하는 것이다.[123] NBA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워낙 알아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 사용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이 중 특이한 경우는 코비 브라이언트인데, LA의 악명 높은 교통혼잡을 버틸 수 없어서 경기장까지 자가용 헬리콥터로 출근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헬기는 코비의 개인 소유는 아니고 렌트한 것인데, 팀 동료 스티브 블레이크가 급하게 치료 받아야 할 때, 빌려준 적도 있다고 한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헬기를 타고 다녔지만 그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124] 역대 레전드급 선수중 저 평균체격과 일치한 선수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이다.[125] 191cm면 일반인 중에서도 매우 큰 편이긴 하지만, 일부 진술대로 185cm라면 좀 큰 수준이고 서양에서라면 그렇게까지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180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211이나 216되는 사람은 너무 키 차이가 많이 나 구분이 무리지만, 자기 키와 비교해 다른 사람이 185인지, 191인지 정도는 쉽게 구분할 수 있다.[126] 이같은 케이스가 데뷔 후 표기 신장이 198cm->201cm->다시 198cm로 바뀐 코비 브라이언트, 데뷔 이후 2000년대 초중반에 7피트(213cm)로 바꿨다가 다시 6-11로 낮춘 팀 던컨 등이 있다. 또한 스카티 피펜은 선수생활 내내 6피트 7인치(201cm)로 표기되다가 선수생활 말기인 30대 후반에 갑자기 6피트8인치로 바꿨다.[127] 206cm인 파워포워드는 조금 작은 감이 있지만, 208cm는 파워포워드 평균신장이다.[128] 후자의 케이스에 가까운게 신발 신고 194cm가 조금 넘지만 193cm로 표기되는 드웨인 웨이드이다. 이 때문에 웨이드는 6-4급 선수들 중에 상당히 큰 편이다.[129] 2003년 드래프트 신체검사 결과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발신은 키/반올림하는 걸 볼 수 있다.[130] 이 정도 키의 슈팅가드들은 2004 덩크 챔피언 프레드 존스같이 롤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다. 183cm인 앨런 아이버슨은 워낙 예외적인 존재고, 그조차도 슈팅가드 수비를 191cm에 달하는 장신 PG 에릭 소노우가 대신 해줬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아이버슨은 전성기 몇년만 슈팅가드로 뛰었을뿐 데뷔도 포인트가드로 했고, 커리어 대부분을 포인트가드에서 출전했다. 그는 슈팅가드 수비를 거의 할 수 없는 선수였기 때문.[131] 이 때문에 신발 굽 1인치, NBA에서 키 부풀리기 0.5~1인치, KBL에서 키 줄이기까지 해서 NBA식 키와 실제 키 사이에 2~3인치 정도 차이가 나곤 한다. 가장 심한 케이스는 201.7cm로 KBL에서 측정됐지만 미국에선 211cm(6피트 11인치)로 표기된 나이젤 딕슨인데, KBl키가 실제일 경우 미국식으로 농구화를 아무리 굽높은 걸 신어봤자 절대 6피트9인치를 넘길 수 없다.[132] NBA식 표기법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알파위키를 포함해 일각에선 그가 데뷔 후 자랐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만 22세인 야오밍이 데뷔 이후 자라는게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이에 대한 출처를 찾아볼 수가 없다.[133] 하도 키에 대해 질문이 많자 장난스럽게 "난 6피트 13인치에요"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피트-인치법은 12인치가 끝.[134] 월튼은 극심한 부상으로 인한 오랜 투병으로 신체가 많이 굽어 현재 현역시절에 비해 키가 많이 줄은 상태라 현재 월튼의 키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135] 원래 92년생인데 93년생으로 표기된 프로필이 돌아다녔다. 본인이 나이를 속이거나 한 것은 아니다.[136] 정확히는 양말 신은 상태에서 잰 신장. 여담으로 과거 제이슨 테리같은 선수는 양말을 여려겹 신고 신장을 잰 적도 있다고 한다.[137] NBA는 철저히 연차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기 때문에 연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최소/최대 연봉이 달라진다. 10년차 이상 베테랑이라면 NBA와 풀타임 계약을 한 것만으로 1년에 293만 달러 이상을 받는다. 물론 NBA입성이 아슬아슬한 선수의 경우 처음부터 1년 계약을 맺기보단 단기계약을 맺는게 보통. 또한 베테랑 선수들이 연봉이 높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걸 막기 위해 3년 이상 뛴 (연차로 따지면 4년차) 베테랑 선수들을 계약하는 팀에겐 NBA차원에서 보상을 해줘서 2년 경험을 가진 선수(3년차)의 미니멈 연봉만 지불할 수 있게 해주고 차액을 NBA에서 보상해준다. 예를 들어 13년차 선수를 계약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이 팀은 원칙적으로 293만 달러를 지불해야 하지만, 해당 규정으로 인해 3년차 선수의 연봉인 151만2천 달러 정도만 지불해도 된다. 물론 해당 선수는 연봉을 다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그 차액인 142만 달러 정도는 NBA사무국에서 지불해준다는 얘기. # [138] 물론 조던은 80년대 후반에 장기계약타이밍을 잘못 잡아서 커리어 대부분 기간동안 헐값에 뛰었다. NBA가 새로운 TV중계권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장기 계약을 했는데, 그동안 치솟은 NBA의 인기 덕분에 그 계약액수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계약 당시만 해도 NBA에서 1,2위를 다투던 계약이 순위권에도 못 드는 헐값으로 전락한 것. 비슷한 예가 스카티 피펜 예를 들어 1995-96시즌의 경우 조던의 연봉은 385만달러로 토니 쿠코치보다 고작 29만달러 많았으며 피펜은 심지어 쿠코치보다 50만달러 넘게 적었다. 해당 시즌 연봉 1위는 패트릭 유잉의 1천8백만달러, 2위는 클라이드 드렉슬러의 981만 달러였으며, 당시 리그 평균 연봉이 415만 달러였으니 조던과 피펜이 얼마나 헐값에 뛰었는지 알 수 있다. 여담이지만 조던이 계약기간이 끝난 97년, 98년에 초고액을 받을 것은 이미 예정되어있었지만, 무려 통합 6천3백만달러를 받은 것 (선수생활 받은 연봉 총액의 2/3)은 시카고 불스의 삽질 때문이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139] 물론 이런 선수들은 조던처럼 매 경기 농구화를 갈아신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다.[140] KBL의 경우 한동안 리그 최장신이었던 서장훈도 뒷자리에 겨우 앉는 수준이었다가 그보다도 14cm가 더 큰 하승진이 입단하고나서야 KCC가 그가 앉을 수 있는 버스를 마련했다. 그런데 NBA에서 쓰는 버스는 하승진보다도 큰 숀 브래들리도 여유있게 앉는다. 웬만한 선수들은 서서 이동할 때 머리 숙일 필요도 없을 정도.[141] 현재는 라커에 그냥 들어가면 깨끗한 유니폼과 각종 장비들이 구비되어있다. 이 중 르브론같은 유명선수들은 후원받는 농구화들이 몇개씩 쌓여있기도 하다. 또한 경기가 끝난 후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선수들은 농구화를 그냥 라커룸에 버리고 가는 경우도 많다.[142] 여담이지만 영상을 보면 당시 감독 덕 칼린스가 필 잭슨 코치를 칭친하며 "저 친구는 곧 감독이 될 거에요"라고 하는데, 머지않아 본인의 자리에 잭슨이 앉게된다(...).[143] 다만 이건 그가 2라운드 출신 최소연봉자였던 식서스 시절 얘기이다. 당시 그는 언제 짤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지만 현재 그는 16년차 베테랑에 누적연봉도 7천만달러가 넘는 부자이니 지금은 다를 확률이 높다.[144] NBA Rookies 2005년 판에 나온 장면인데 당시 JR은 19세 신인이라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자기 돈으로 산 집이지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아직 애였다. 사실 따지고보면 좋은 모습은 아닌데, 몸관리가 생명인 프로가 과자로 끼니를 떼운다니...[145] 보통 경기가 끝나는 시간이 밤 늦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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