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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政略結婚

1. 개요2. 역사적 정략결혼3. 대중매체4. 예시
4.1. 실존인물4.2. 가상인물
5.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
5.1. 실존인물5.2. 가상인물
6.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

1. 개요[편집]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을 말한다. 스케일이 커지면 집안이 아닌 나라사이에 왕실의 공주왕자가 결혼하여 나라간의 동맹 등을 이루기도한다.

단, 현대에 들어와서는 애정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가 어떤 일(돈을 서로 배분할 일이 생겼는데, 서로 배분을 못하는데 빨리 처리해야 하는 등 주로 돈에 관계된 일 때문에) 때문에 법적 관계를 맺어서 사회적 위상과 보호를 얻기 위해 사무적으로 결혼하는 것 역시 서로의 자의로 했어도 정략결혼이라 부른다. 더 정확히는 돈만 보고 한 결혼은 정략결혼이 아니라 혼테크라 부른다. 정말 사회적 위상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 한 결혼만이 정략결혼으로 불린다. 혼테크 문서 참조.

2. 역사적 정략결혼[편집]

아주 오랜 옛날부터 존재해왔던 행위이며 주로 정략결혼은 평민보다는 높은 계급의 귀족이나 왕족들이 많이 해온 풍습이다. 특히 뼈대있는 집안들에서 정략결혼은 꽤나 흔한 경우도 많았고 정략결혼을 통해서 서로간에 가족관계를 맺어서 이득을 취하는일도 역시 많았다. 왕족들은 이것으로 나라간에 평화를 이루는데 많이 써먹었으며 대개는 약소국가에서 힘 있는 강대국에게 왕이 자신의 딸인 공주를 강대국의 왕족에게 시집보냄으로써 사돈관계도 맺고, 동맹국으로 만들어 전쟁의 피해를 줄여보고자 하는 경우가 상당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클리셰중에서 사랑하던 연인 중 다른 1명이 정략결혼으로 곁을 떠나고 서로간에 그리워한다는 사랑 이야기는 정말로 주변에서 흔하디 흔한 이야기거리 중 하나다.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난 비운의 연인은 사랑의 도피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재벌들은 지금도 정략결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략결혼에서 사랑이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공민왕노국대장공주의 금슬은 굉장히 유명했는데, 노국대장공주의 죽음으로 인해 공민왕이 비탄에 빠져 고려 멸망을 앞당겼다는 학설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 다만 정략결혼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반원정책의 완벽한 지지자였던 공민왕과 노국공주와의 결혼은 원나라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실패해버린 정략결혼이다. 서양에서는 이사벨라 1세와 페르난도 2세의 금슬이 유명하다.

근세나 근대 이후로는 정략결혼이라도 무조건 시키는 게 아니고 정치적 사정상 동등한 여러 후보 중 마음이 맞는 상대와 시켜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특정국 왕가의 인물들 중 하나와 한다거나.

서양에서의 수많은 정략결혼 중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마리 앙투아네트루이 16세의 결혼이다. 유럽 대륙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던 전통의 강국들인 프랑스오스트리아가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던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간혹 정략결혼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강대국에서 다른 나라로 시집간 여성이 그 나라에서 좋지 못한 대접을 받거나 홀대당한단 소식이 강대국에 전해졌을 때 전쟁이 일어나고 나라간에 대립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실 비단 나라간의 일만이 아니라 집안끼리 결혼시킨 남녀들 중에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던 이들도 많았으며, 만약 여자가 못생겼거나 남자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략결혼하고도 아내가 남편을 자주 볼 수 없었던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남편은 아내에게 예의바르게 대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는 다이묘들의 세력확장을 막기 위해 정략결혼을 금지시켜놓고 정작 본인의 자식과 가족은 모두 정략결혼을 시켰다. 물론 금지를 시켰어도 다이묘들 간에 정략결혼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정략결혼한 부부가 서로를 부부로서 존중하거나 존경의 감정을 보이며 남매, 친구, 부녀처럼 원만하게 지내긴 해도 연인으로서 서로를 원하거나 사랑하지는 않는 경우도 많았다.

3. 대중매체[편집]

대중매체에서는 재벌, 명문가 같은 높으신 분들 속성이 있는 집안 출신 캐릭터가 으레 안고 있는 클리셰 중 하나이다. 즉 집안에서 정해준 미래의 배우자가 존재하고 상대방도 상당한 호의를 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략결혼에는 관심 없고 상대방에게 연애적인 감정이 일말도 들지 않는 상황에서 평범하디 평범한 주인공과 이런저런 일로 엮여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뜨고... 뭐 이런 식. 막장 드라마에서도 꽤나 보이는 클리셰이다.

4. 예시[편집]

※ 금슬이 좋았던 경우는 ♡, 금슬이 나빴던 경우는 ♥표시를 한다.
※ 남자 & 여자 식으로 기재한다.

4.1. 실존인물[편집]

4.2. 가상인물[편집]

5. 시도했으나 파토난 사례[편집]

5.1. 실존인물[편집]

5.2. 가상인물[편집]

6. 정략결혼으로 오해되기 쉬운 것들[편집]

  • 혼테크: 왜 정략결혼이 아닌지는 정략결혼 문서 토론 참조
  • 혼맥: 왜 정략결혼이 아닌지는 정략결혼 문서 토론 참조
  • 중매결혼

[1] 심지어 한번은 반란이 일어났을때 반란군이 공민왕을 죽이려 하자 자신이 직접 가로막았다. 보통 같으면 끔살행이지만, 그 반란이 친원세력이 일으킨거라 결국 공민왕노국대장공주도 죽이지 못했다.[2]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다스리던 바빌로니아는 건조 기후였는데 아미티스의 고향인 메디아는 온대 기후였다.[3]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아들.[4]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5] 끝이 좋지 않았고 일본인이라 한국에선 소 다케유키가 욕을 먹는 경우가 많지만, 의외로 사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끝이 좋지 않았던 것은 덕혜옹주조현병 때문이었는데, 병의 원인은 적어도 부부 사이의 불화는 아니다.[6] 처음에는 사이 좋은 척 연기하였으나 나중에는 세자가 먼저 고백하면서 좋아졌다. 그러나 이 와중에 대비는 옛 애인인 결혼한 시동생(=서방님)과 바람을 피웠다. 애초에 세자가 자기 동생의 여자친구한테 정략결혼 하자고 청혼해서 결혼하긴 했지만.. 결국 이율을 낳고 잘 살기는 한 모양이지만 의강세자는 병으로 요절하고, 대비는 세손에서 세자의 아들인 정2품 군으로 격하된 아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난다. 이후 세월이 지나 남편이 왕으로 추존되어 대비로서 궁으로 돌아온다.[7] 위의 실제와는 정 반대인데, 연의에선 두 사람의 관계는 좋았지만 유비와 동오의 형주 문제로 인한 갈등이 고조되었고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없던 손부인을 동오에서 어머니 오국태의 건강 악화를 이유로 다시 데려와 사실상 이혼을 하게 되었다. 이후 촉한과 동오의 전쟁이 벌어지자 유비의 건업 입성을 바랄 정도로 그리워 했지만 유비가 패하고 사망했다는 소식에 장강에 투신자살을 해 비극적으로 끝을 맺게 된다.[8] 이 둘은 어렸을 때 서로 결혼을 약속을 하였지만 남편이 바람둥이가 되어버려 아내의 체질이 잠들지 않는 체질이라며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아내는 거들떠 보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마르가리타는 옆에만 있어도 좋아고 한다. 그리고 카스팔은 마르가리타가 준 gift로 인해 죽고 결국엔 마르가리타도 그걸 먹고 자살한다.[9] 이쪽은 별 문제 없이 잘 산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표르도바 2세가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신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라 왕비와 결혼한 것이고 결혼 후에도 여전히 에이레네를 그리워했다.[10] 여포와의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어 원소, 조조를 견제하려 했다. 진궁 등 호족들도 긍정적으로 봤지만, 진규의 방해와 여포의 뒷끝때문에 결국 다 성사될뻔했던 것이 파토가 나 버렸다. 재밌는건 여포의 뒷끝이란게, 원술이 자기를 쫒아내서였는데 그 이유도 결국 여포의 안하무인적인 태도가 원인이라 자업자득이었던 셈이다.[11] 동오에서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에게 정략결혼을 권했으나 관우가 동오의 사자를 모욕하며 쫒아냈다. 연의에선 여기에 좀 더 각색해서 호랑이의 새끼를 개의 새끼에게 줄 수 있겠냐고 대놓고 까댔다.정작 자기 형수는 그 개의 누이였는데 관계는 좋진 않아도 어쨌던 동맹 세력의 군주를 일개 장수가 모욕을 주는 셈이어서 인격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매우 큰 결례를 범한 셈이었다.[12] 강유라의 고모 강나미가 자신의 시아버지인 엄일남에게 잘보이기 위해 했던 결혼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엄일남은 윤정애와 재혼 후 콩순이김강재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이에 엄일남이 허상순을 갈궜다. 이때 엄일남의 속내는 김강재를 정략결혼시킬려고 했는데, 콩순이 임신으로 무산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13] 파혼이 아니라, 둘 다 비명에 사망해버리는 바람에 결혼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