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올바름'이란,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언어적 표현을 쓰지 말자는 개념 혹은 사회적 운동이다. 그 시작은 다민족 국가인
미국으로, 1968년
68운동[1]부터 시작해 1980년대에 강하게 대두되었다. 어떠한 사안을 접했을 때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크게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즉
인종,
성,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종교,
직업, 나이 등을 기반으로 언어와 행동에 차별을 가하지 않는 태도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전세계 많은 사용자들이 드나드는
위키백과 등과 같은 곳에서 지향하고 있는 운동이나,
한국인 사용자가 대부분인
나무위키 등 한국 인터넷 내에서도 암묵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운동이다.
[2]쉽게 말하자면 지역/종교/사상/인종 등을 근거로 타인을 매도하는 단어
[3] 즉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말하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단어의 사용을 자제하자는 운동이다.
정치정의(政治正義)라고도 번역된다. 주로 2000년대 초반이나 신문에서 이렇게 번역된것을 볼수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라고 하면,
국회의원이나
정당이
국가의 크고작은 일들에 대해 의논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연상하기 쉽다. 때문에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사람은 구체적인 예시 없이는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인터넷 등지에서의 논란을 살펴보면 단순한 언어순화운동인 PC의 의미가 확대 및 재생산되어 이제는 다문화와 다각적 시야가 존재하는 사회에서의 평등과 차별에 대한 담론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경우를 고려한다면, 이 용어를 다음 정도로 고치는 것이 직관적인 이해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완곡어 운동
언어 순화 운동
바른말 쓰기 운동
언어적 중립
다문화사회의 평등과 차별에 대한 논의의 주제로 삼을 용어로 미군 등지에서는 기회균등(Equal Opportunity, EO)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비하적 의미나 편견이 담겼거나, 혹은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은 사용을 삼가는 것이
예의라는 인식이 있다. 평소에 간과하기 쉬운 이러한 부분을 사회적으로 크게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정치적 올바름' 운동에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평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근래에 들어서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윤리규범 가까운 것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되도록이면 해당 개념을 지킬 것이 사회적으로 권장된다. 즉, 어떤 의미로는 도덕 내지는 윤리의 일부로서 이미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적절하고 올바른 정치적 올바름의 예시로, 2012년 10월경 공중파로 방영되었던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열대 식물의 매우 크고 넓적한
나뭇잎에 음식을 담아 먹는 부족을 취재하면서 꼬박꼬박 그 나뭇잎을
그릇이라고 부른 일이 있다. 아무런 가공을 거치지 않은 그냥 나뭇잎이었지만, 나뭇잎에 음식을 담아 먹는다고 그대로 내 버리면 은연중에 그 부족이 위생관념이 없다는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될까봐
[4] + 그 부족이 나뭇잎에 음식을 담아 먹는 행동이, 일반인들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행동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행동이기 때문에 꼬박꼬박
그릇이라고 부른 것.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 운동은 평범한 대중들에게까지 "여태 아무 생각 없이 써 오던 표현들이 그런 공격적(offensive)인 함의를 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는 자각을 일으켰고, 자신이 무심코 사용한 차별적이고 편견어린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각성이 일어나게 되었다.
반 PC 운동이 가장 크게 표출된 것이 바로 주류 언론과 분석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이다.
[5] 주류 언론과 분석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에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의 득세에 대한 피로가 작용한 것이 한 몫을 했다는 시각이 있다. 일반적인 학자들의 인식과 미국인들의 성향에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등에서는 본인이 내심으로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을 것을 두려워해서 본심을 숨기는 브래들리 효과(
샤이 지지층)가 예상과 결과의 격차를 이끌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이다.
트럼프의 당선 후 여러 언론들은 마치 트럼프가 '저소득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로만 당선된 것 처럼 말했지만,
투표 결과를 보면 이는 그렇게 정확한 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여러 정치 평론가들은 '트럼프는 나쁜 사람'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에 말을 꺼내지 못했지만
[6] 투표장에서 그에게 표를 던진 '조용한 다수'가 그의 당선에 제일 큰 기여를 했다고 평했다.
트럼프는 선거 운동 초창기부터 경솔하거나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는 발언으로 언론으로부터 "막말 후보", "인종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면서 스스로
"나는 PC를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이를 두고 주류 언론은 트럼프 강경파
불법체류자 관련 정책을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곡해하거나, 그의 과거 행적들과
사생활을 들춰내면서 마치 사악한 인간 또는 멍청한 인간인 마냥 몰아갔다.
[7][8] 그러나
힐러리 클린턴의 스캔들과 과거들을 비롯한 여러 이슈들은 언론이나 유명인들의 지지와 무관하게 트럼프에게 힘을 더했고, 결국 전 세계에 충격을 안기며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이 관점으로만 선거라는 대사건을 바라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지만 반 PC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력들이 그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7년에는
구글 내부에서도 PC주의 운동을 비판하는 문건이 오가고 있는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이 되었다.
전문 그 내용은 남녀간 임금 격차가 왜 다른가에 대한 질문이며, 전에 쓰여져있던 생물학적 차이 부분은 일부 언론에서 임의로 추가시킨것으로 확인되었다.
者는 '놈 자'이고 人은 '사람 인'이니 'OO자'보다 'OO인'이 더 좋은 표현아니냐(!?)라는 이유로 기존에 멀쩡히 쓰이던 '~자'류의 명칭을 '~인'으로 바꾸는 운동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15] 옥편의 '놈 자'를 '사람 자'로 고쳐야 하는 거지 자를 인으로 고쳐야 하는 게 아니다. 대표적으로 '장애자' → '장애인'. 지금은 장애인으로 굳어졌다고는 하지만, 원래 장애'자'에도 어떤 비하적 의미는 전혀 없었다. 그저 (단어 자체로) '장애자'에 비하의 맥락이 담겼을 뿐. 단어를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애초에 'OO자(者)' 보다 'OO인(人)'이 낫다는 논리에 어떤 근거도 역사적 맥락도 없다. 그 말이 사실이라 치면 현재 멀쩡히 사회적으로 상위의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자' 돌림의 직업, 명칭들은 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예:
기자,
학자/
과학자,
편집자, 경영자, 유권자
[16], 연기자, 성직자, 수호자...)
물론 실제로 '자(者)'가 비하의 의미로 쓰일 때가 있는데, "저 자가 범인입니다!"라는 식으로 3인칭 지시 대명사로 쓰일 때이다.
[17] 이는 가까운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당신'으로 부르면 높임말이지만, 생판남에게 '당신 누구야?'이라고 하면 시비거는 느낌이 되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명칭으로서 'OO자'에 낮춤의 의미가 있다는 주장의 뒷받침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글자에는 죄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자를 동성연애자라 칭해 왔다. 그러나 동성연애자라는 용어를 옳지 않다. 동성연애자라는 낱말 안에는 모든 동성애자들은 성기결합 등 섹스를 전제로 한 연애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들어있다. 모든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이 교제 상태에 있지 않은 것처럼, 모든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 역시 교제 상태에 있지 않다. 모든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의 교제가 성기결합의 욕구에만 집중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모든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 역시 성기결합의 욕구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동성연애와 이성교제라는 낱말 사이에 묘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이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은 고상한 ‘교제’를 하고,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은 추잡한 ‘연애질’만 한다는 식의 정의는 동성애자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비정상화’하고, ‘변태화’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 성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시민연대
참조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은 성적지향을 연애를 하는 특정 행동으로 국한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모든 이성애자들이 연애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자 중에서도
솔로가 있는데, 그럼 연애를 하지 않는 동안에는 동성애자는 동성애자가 아니게 되는가? 이는 이성애자가 연애를 할 때만 이성애자인게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여성영화제 등 젠더문제에 민감한 장소에서 동시통역자가 외국인 감독의 인터뷰를 통역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썼다가 관객들의 항의가 빗발친 사례도 있다. 또한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하면 '동성연애자'보다는 '동성애자'라는 말이 더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