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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Johnny McDowell
생년월일
1971년 1월 20일
국적
출신학교
하워드 칼리지(NJCAA) (1989~1991)
텍사스 알링턴 대학교 (1991~1993)
포지션
신체사이즈
194Cm, 107Kg
프로입단
1997년 외국인선수 드래프트 18번 (대전 현대 다이넷)
KBL소속팀
1997~1998년 한국프로농구 외국인 선수상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다이넷)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다이넷)
1998~1999년 한국프로농구 외국인 선수상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다이넷)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다이넷)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9~2000년 한국프로농구 외국인 선수상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다이넷)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걸리버스)
1997-98 시즌 KBL 베스트 파이브
가드
포워드
센터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1998-99 시즌 KBL 베스트 파이브
가드
포워드
센터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1999-2000 시즌 KBL 베스트 파이브
가드
포워드
센터
조니 맥도웰
(대전 현대)
한국 프로농구 출범 20주년 기념 레전드 12
조니 맥도웰

1. 소개2. KBL 입성 전3. KBL에서의 선수생활4. 플레이 스타일5. 기타

1. 소개[편집]

탱크
프로농구 역대 최고의 용병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선수
한국프로농구 역사상 7년 연속 PER 20+을 기록한 유이한 선수.

대전 현대의 중흥기를 이끈 외국인 농구선수이자, KBL 초창기 최고의 언더사이즈 빅맨 중 하나이다. 현재 외국인 선수 득점 2위 7,077점에 기록되어 있다. 1위는 애런 헤인즈.

2. KBL 입성 전[편집]

NJCAA 소속의 하워드 칼리지에서 2년을 보내고, 1991년 텍사스 알링턴 대학교에 편입해 2시즌을 보냈다. 팀이 워낙 약체였던 탓에 겨우 6-5(196cm,미국신장)의 맥도웰이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오가며 골밑을 지켜야했고, 2시즌 내내 팀내 최다 득점과 리바운드를 올렸다.(2시즌 평균 16.9득점-9.7리바운드-2.7 어시스트)

1993년 졸업 후 당연하게도 NBA 진출에 실패한 맥도웰은 미국 하부리그인 USBL의 마이애미 트로픽스에서 1시즌을 뛰었고, 이후 스페인 4부리그팀인 히혼 발론세스토에 입단해 2시즌을 뛰는데, 1994-95 시즌에는 히혼의 리그 우승을 이끌며 3부리그에 진출시키지만, 바로 다음시즌에 리그 최하위에 그치며 다시 4부리그로 추락했고, 맥도웰은 팀과 이별한다.

이후 1997년 여름 KBL 트라이아웃에 지원한 맥도웰은 20명의 선수 중 전체 19순위로 대전 현대의 지명을 받으며, 낯선 동아시아 국가에 발을 내딪었고, 그렇게 전설이 시작되었다.

3. KBL에서의 선수생활[편집]

KBL 시절 성적

사실 대전 현대 입장에서는 나중에 LG에서도 혼자 팀의 공격을 이끈거나 마찬가지였던 세인트 조셉 대학교 출신의 득점기계 버나드 블런트를 지명하려 했지만, 이충희 당시 LG 감독이 암묵의 룰을 깨고 지명해 버리자 신선우감독이 힘이 좋아 보이던 맥도웰을 뽑았다.[1]

그러나 힘이 뛰어난 맥도웰은 단단한 체구와 파워를 바탕으로 KBL 내 다른 팀의 골밑을 박살내는 활약을 펼쳤다. 힘이 워낙 좋은 선수였던지라 매치업에서도 밀리지 않는 활약을 펼친데다, 팀의 동료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던 라인업인 전설의 , , 라인업이었다. 특히 이상민의 볼배급이나, 이상민과 보여주었던 2:2 픽앤롤 플레이는 호사가들이 한국의 존 스탁턴칼 말론의 픽앤롤에 비견할 정도의 파괴력을 갖춘 것이었다. 재키 존스와도 훌륭한 호흡을 자랑했던 맥도웰이 있었기에 대전 현대는 90년대 후반 KBL의 지배자로 군림할수 있었다.

이후에는 신선우 감독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하면서 마지막에는 조금 안 좋게 헤어졌고, 이후 SK 빅스에서는 대전에서의 파괴력만큼은 내지 못했고, 모비스에서는 노쇠화와 용병제도의 변화로 인한 매치업의 변화로 인해 그저 그런 실력을 보이다 퇴출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워를 앞세워서 매치업 상대를 누르고 골밑을 휘저었고, 리바운드를 잘 따냈다. 사실 힘만 단순히 좋은 플레이어가 아니었고 펌프 페이크나 포스트에서 드롭 스텝, 준수한 스피드와 속공에서 트레일러 역할 등 신선우 감독의 전술에 잘 따르는 선수였다. 나름대로 미들슛도 갖춘 선수였다. 게다가 시야가 넓고 패싱 센스도 좋은 편이라 한 시즌당 평균 4개의 어시스트를 해줄 능력을 갖춘 선수였다.

무엇보다 맥도웰은 한국 농구의 고질적인 공포증인 장신 빅맨에 대한 거부반응이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사실 KBL 첫해부터 농구연맹은 외국인 선수의 밸런스 조정을 위해 일명 398cm룰, 외국인 선수 용병 2명의 신장합계가 398cm를 넘지 않도록 한다는 원칙을 세웠었다. 이는 외국인 선수의 신장제한을 없애면 너무 강한 용병때문에 리그 밸런스가 무너지고, 그렇다고 너무 작게 두면 서장훈을 막을 선수가 없어지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허나, 398cm룰 하에 외국인 선수를 조합하게 하면서 첫해 리그를 제패한 조합은 원년 최고의 용병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클리프 리드 vs 제이슨 윌리포드라는 199x2 = 398원칙의 2빅맨 조합이었고 어차피 서장훈 뺀 국내선수중 2m도 없었기에 클리프 리드가 타팀 골밑을 박살내고 다녔다. 이때문에 KBL은 장신 용병의 신장제한을 205cm까지 높여서 모든 팀이 2빅맨을 가지 않도록 유도하고, 제랄드 워커나 워렌 로즈그린 같은 가드-포워드 스타일 단신용병을 쓰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규정을 바꿨다.

그런 환경이 찾아낸 선수가 바로 조니 맥도웰. 맥도웰은 NBA나 상위권 리그에서는 가드 수준의 키에 불과하지만 KBL에선 충분히 빅맨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고, 재키 존스등의 센터 파트너와 함께 실질적인 4-5번 콤비로 골밑을 휘젓고, 외곽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모습으로KBL을 제압했다. 결국 이 맥도웰때문에 199x2 = 398 시스템은 193+205 = 398 시스템으로 재편되어 또다시 단신 빅맨,장신 빅맨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2]

그러나 이후 외국인선수 제도의 개편으로 매치업 상대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자신의 운동능력이나 파워가 감퇴하면서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5. 기타[편집]

  • 한국 문화에 큰 거부를 드러내지 않고 받아들이고, 팀원들과 친화력 있게 지내려는 모습으로 한국형 용병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간혹 감독들에게 경기 끝나고 용돈형식으로 뒷돈을 받았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과연 한국형
  • 2011-2012시즌 올스타전 당시 레전드 올스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몇몇 외국인 OB를 초청하려는 계획이 있었고, 맥도웰에게도 참여해 달라는 연락이 와서 맥도웰 역시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KBL에서 취소했다고(...).
  • 최근에는 미국에서 중견 물류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KBL 20주년 기념 레전드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기뻐했고 초창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과거 동료들과 만나고 싶다고 인터뷰했다.

[1] 트라이아웃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온 대전 현대 신선우 감독은 분을 참지 못하고 창원 LG 이충희 감독에게 쓰레기통을 집어던졌다고 한다.(...)[2] 사실 지금도 일부 구단은 맥도웰의 키가 190cm란 말을 믿지 않을 정도. 최고 195cm는 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