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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승희 (趙承熙, Cho Seung-Hui)
출생
사망
2007년 4월 16일 (만 23세)
신체
183cm, 75kg
학력
미국 버지니아 공대 재학생
국적

1. 개요2. 인적 사항3. 조승희 선언문 일부4. 관련 발언5. 기타6. 소수 추종자들의 몰상식한 재평가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 범행 후 현장에서 자살했다. 이 문서에서는 조승희 본인의 신상정보에 다루며 사건의 경과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

2. 인적 사항[편집]

충청남도에서 살다가 이주하여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거주하던# 조승희의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간 전형적인 한국 서민이다. 미국 현지에서도 동네 사람들로부터 평판이 좋고 세탁소를 경영하며 열심히 사는 조용하고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손위의 누나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를 나와 미국 국방부에서 일하며 사회 생활도 원만했다.

조승희의 유가족에 의하면 어린 시절 그는 성격이 과묵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삼촌은 그가 '열린 사회'인 미국에 가서 자신감을 되찾기를 기대했다.# 9살 나이의 그는 낯선 미국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워 힘든 시기를 보냈다. 당시 영어를 못하던 그는 매우 조용했고 그런 그를 학교에선 문제아로 여겨 특수교육을 받게 했다. 그는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다시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학교의 상담 프로그램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서럽던 시기를 잘 극복했다.# 5학년이 된 조승희는 수학과 영어에 특히 뛰어난 학생이었다. 교사는 그를 다른 학생들의 모범으로 삼기도 했다. 급우 김경원에 의하면 교내에는 3명의 한국인 학생들이 있었으며, 아무도 조승희를 미워하지 않았다. 김경원은 당시 조승희에 대하여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아래 항목에도 나와 있듯이 어릴 적부터 정신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말들도 있어서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조승희는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다. 중학생 급우들은 또한 그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하였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그는 결국 선택적 무언증,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는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동창들 인터뷰에 의하면 여학생들을 스토킹하는 게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고도 한다(단지 괴롭힘을 이유로 그의 기행을 다 감싸려는건 무리가 있다). 조승희의 부모는 망가진 그를 치료하고자 교회에 보냈지만 교회의 기독교 소년 단체는 그를 조롱하기 바빴다. 특히 부유층 자녀들은 그를 더욱 심하게 괴롭히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조승희가 8학년 때[3][4]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이 났는데 한 학생의 말에 따르면 그가 그것을 소재로 살인자살에 대한 글을 썼다고 한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를 향한 폭력과 인종차별은 끊이지 않았다. 당시 급우들은 반에 그가 나타나면 물건을 던져댔고 그를 넘어뜨리면서 소리치며 비웃었다. 그는 항상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계속 불러도 대답을 아예 거부하자 참다못해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 낙제 점수를 주겠다는 교사의 경고에 마지못해 책을 읽는 그의 목소리는 낮았으며, 마치 무언가 입에 물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한다. 자신감 없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고 "중국으로 돌아가"라며 그를 조롱했다. 학교에서 그가 심한 따돌림을 당하는 걸 걱정하던 그의 가족들, 특히 어머니와 누나는 그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했지만 무슨 질문을 해도 그냥 "Okay"가 다였다고 한다. 그를 답답해하던 아버지는 그를 꾸짖었지만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커질 뿐이었다.#

대학교에서 그는 지극히 내향적이며 겉도는 사람이 되었다. 버지니아 공대 사건을 접한 니키 지오바니 교수는 곧바로 범인이 누구인지 직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수업을 가르치던 지오바니 교수에 의하면 그의 작문은 증오로 가득차 있었고 그의 극본은 위험한 것이었다.#[5] 조승희는 출석 시트에 본인 이름이 아닌 그냥 물음표만 적어 내기도 했다. 그는 여학생들의 다리를 찍었고 세 여학생을 스토킹 하기도 했다. 첫째는 온라인 채팅에서 만난 여학생의 주소를 찾아낸 뒤 무작정 방문한 것. 이 여학생은 경악하며 경찰에 신고를 하였고 조승희는 경찰로부터 경고처분을 받는다. 두 번째 사건의 전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세 번째 스토킹은 역시 온라인상에서 만난 여학생의 집 문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 대사를 써놓은 쪽지를 붙여놓으며 시작되었다. 처음에 여학생은 별 위협을 느끼지 못했지만 알고 지내던 지인으로부터 조승희의 스토킹 전력과 정신분열증으로 의심되는 기이한 행동들에 대해 전해 듣고 경악하며 경찰에 신고한다. 그러자 조승희는 이 여학생에게 자살하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결국 여학생으로부터 전모를 전해들은 조승희의 아버지에 의해 버지니아의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또 그와 같은 방을 썼던 학생의 말에 따르면 젤리(Jelly)라는 '상상 속의 여자친구'를 마치 실재하는 양 언급했고 "젤리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며 문을 열어주지 않는 등 망상이 심했다고 한다.#[6]

조승희는 사건을 일으키기 직전 NBC에 보낸 영상에서 '선언문'을 낭독하여 자신의 뜻을 설파했다. 그는 "너희는 오늘을 피하기 위한 기회를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나는 내뺄 수 있었지"만 "너희가 욕보인 내 형제 자매들"과 "약하고 죄없는 동포들을 위해" 행동했다고 밝히며 "너희 덕분에 예수처럼 죽는다"고 선언했다. 그는 "목으로 쓰레기를 쳐넣는" 것과 같은 치욕적인 괴롭힘들을 나열하면서 이 괴롭힘들이 "단지 너희들이 그럴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랬다"며 "너희는 고통을 느껴본 적이 없"고 "너희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행동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뒤 카메라는 꺼진다.

조승희의 선언문
영문 위키
  • 1993년에 어머니가 미국인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아버지가 얼마 후 재혼을 했다는 오보가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
  • 항간에 조승희가 아메리칸 아이돌에 예선 참가를 했다는 사실이 나도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의 유머 사이트에서 비꼬는 의미로 조승희가 참가했다고 한 것을 한국 언론에서 오보를 하면서 생긴 오해이다. 한 EBS 다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서 "조승희가 관심을 요구했다"고 분석했다.

3. 조승희 선언문 일부[편집]

You have vandalized my heart, raped my soul and torched my conscience. You thought it was pathetic boy's life you were extinguishing.
Thanks to you, I die like Jesus Christ, to inspire generations of the weak and the defenseless people

너희들은 내 마음을 파괴했고, 영혼을 겁탈했으며, 의식을 불태웠다. 너희들은 단지 한 불쌍한 소년의 삶을 짓밟아 없앤다고 생각했다. 고맙게도 덕분에 나는 예수처럼 죽는다. 약하고 힘없는 동포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

You had a hundred billion chances and ways to have avoided today. But you decided to spill my blood.>
You forced me into a corner and gave me only one option. The decision was yours. Now you have blood on your hands that will never wash off.

너희들에게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천억 번의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 피를 흘리게 했다.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으며 한 가지 선택만을 남겨놨다. 결정은 너희들이 했다. 이제 너희들의 손에는 영원히 씻기지 않을 피가 묻었다.

Like Moses, I split the sea and lead my people

나는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고 내 동포들을 이끌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떠날수도 있었다. 도망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도망가지 않을것이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니다, 나의 자식들, 나의 형제자매를 위해서이다.

내 삶이 이렇게 끝나기를 기대해왔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만큼 총알로 되갚아주마.

내가 이런 짓을 할 때까지 너희들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봐.

-조승희 선언문 中-

4. 관련 발언[편집]

"조승희의 극본들은 악몽 같았어요. 생각도 못했던 무기들 가지고 역겹고 끔찍한 폭력을 행사하는 내용이었죠. 총기 사건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페이스북으로 친구한테 말을 했어요. 아마 조승희가 엮이지 않았을까 하고. 그리고 친구가 자기도 완전 동의한다고 바로 말하더라고요."

- 버지니아 공대에서 조승희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 이언 맥팔레인
"어릴 때부터 무척 차가운 아이였어요. 긴 대화가 불가능했죠. 부모가 무슨 말을 시켜도 단답형 대답이 다였어요."

- 조승희의 이모할머니 김윤수
"조승희는 똑똑하기로 유명한, 뭐든 물어보면 바로 해결해주는 믿음직스런 친구다."

- 초등학교 동창 김경원
"조승희는 중학교 때부터 여학생들 꽁무니를 따라다니고 도대체 말을 하지 않았다"

- 중고등학교 동창 레이건 와일더
"그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계속 겁을 먹은 걸 보고 전 결심했죠. 제가 학교를 그만두든지 조승희가 내 수업을 그만두든지 둘 중 하나라고. 그에게 위협적인 시를 쓰지 말라고 계속 부탁했지만 그는 완강히 거부해 왔습니다. (사건에 대해서 묻자) 범인이 밝혀지기 전에 조승희가 범인일 거라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 버지니아 공대 니키 지오바니 교수
"추수감사절 전화를 하더라고요. 푸틴이랑 노스캐롤라이나에 같이 있다고. 한 번은 자기한테 젤리라는 상상 속 여친이 있는데 지금 그 여친하고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이유로 문을 안 열어준 적이 있어요. 정말 저런 사람이 있구나 했죠. 제 친구(여성)한테 계속 집요하게 자살에 대해 메시지를 해서 한 번 경찰에 신고당했던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믿기지가 않네요. 그런 대량학살범이랑 같이 밥 먹으며 살았다는 게... 그때 뭔가 했어야 했어요."

-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의 룸메이트 앤디 코크
"그는 수준이 높은 클래스를 많이 들었고 공부도 잘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말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승희가 내성적이라거나 조용한 성격이라고 말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만으로는 약하다. 그는 아예 말을 하지 않았다."

- 중학교 동창 제니퍼 채프먼
"솔직히 인정하건대, 우리는 그를 너무 못되게 대했습니다. 어떤 경우 잔인하고 비열하기까지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그에게 공개적으로 대답을 강요하면, 그의 목소리는 너무 낮고 작아서 마치 동굴 속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지요. 우리는 그에게 물건을 집어던졌고 그에게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1달러 지폐를 내밀면서 그에게 무슨 말이든 하면 주겠다고 놀렸지요. 이제 되돌아보니 그 당시의 내 행동이 창피하기 그지없습니다."

- 익명을 요구한 고등학교 동창
"스페인어 수업 같이 들을 때였어요. 바인더에 뭘 쓰더군요. 뭔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말은 안 하겠지만 뭐 '개자식들 다 뒈져버려' 대충 이런 식의 글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컬럼바인 총기사건에 완전 푹 빠져 있었어요. 심지어는 그걸 자기가 재현하겠다는 글을 제출한 적도 있어요."

- 고등학교 동창 벤 볼드윈
"우리한테 아예 얘기를 안 했어요. 얘기를 해보려고 다가가면 매번 그냥 한 마디 툭 던지는 게 다였죠. 아예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도 거부했죠."

-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의 룸메이트 조지프 오스트
"나는 조승희가 조용했지만, 아주 똑똑했다고 기억합니다. 나는 과학과목에서 그와 함께 팀을 이루었고 그 덕택에 우리는 1등상을 탔습니다"

- 고등학교 동창 에드 노버
"고등학교 때 죽이고 싶은 사람 리스트를 조승희가 만들었던걸 기억해요. 이름들 적어가면서 '죽여 버릴 거야'라고 우물우물 얘기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농담인 줄 알았죠..."

- 고등학교 동창 카먼 블랜던
"내가 조승희와 가장 가까이 있었던 순간은 일대일 강의를 하던 시간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다른 학생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고 말했고, 그는 처음으로 내게 난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라고 대답했죠.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안녕, 잘 지내?(Hi, How are you?)라고 말해보라고 했죠. 그는 언젠가 그렇게 해보겠다고만 말하고는 그게 끝이었어요.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한참 뒤에 그가 총기 난사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강의실에 있던 사람들에게 안녕, 잘 지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을 듣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어요."

- 버지니아 공대 루신다 루이 교수[7]
"솔직히 별 문제 없을 것 같아요. 이제 조승희는 없으니까요. 그의 기행 때문에 더 이상 고생할 일은 적어도 없겠죠. 이제 좀 제 생활도 정상적으로 돌아오겠네요."

- 버지니아 공대 조승희의 룸메이트 카란 그루얼, 조승희가 사건을 일으킨 이후 그 방에서 계속 지내는 게 괜찮냐는 인터뷰에서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거의 매번 헤드폰을 끼고 살았던 게 기억나네요. 교수가 수업 시간에 그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그냥 먼 산 바라보듯 다른 곳을 보더라고요. 교수 말을 아예 들은 체도 안 했어요. 기가 막힌 교수가 '뭐 하냐, 수업 끝나고 잠깐 볼 수 있냐'라고 했는데도 그는 여전히 다른 곳을 응시하면서 교수를 무시했어요. 다들 어이없어 했죠."

- 버지니아 공대에서 조승희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 브룩 키스트너
"교수가 질문을 해도 누가 말을 걸어도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와 얘기를 시도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죠. 수업 끝나자마자 잽싸게 나갔거든요. 그리고 사건 한 달 정도 전부터는 아예 수업에 오지도 않았어요."

- 폴 김, 조승희와 수업을 같이 들었던 학생
"인사하려고 다가가기만 하면 그저 쌩 지나갔어요. 우리 아이들도 인사를 했지만 아예 받아주지도 않더라고요."

- 압둘 샤시, 조승희의 이웃

5. 기타[편집]

이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인 에밀리 힐셔가 조승희의 여자친구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힐셔는 여자친구는커녕 조승희가 누군지도 몰랐다는 것이 경찰의 수사결과 밝혀졌다.

이 당시 총기 마니아였던 어느 중국계 미국인용의자로 추측되기도 하였는데 미국의 언론에서 이 사람의 블로그를 공개하면서 논란이 가중되었다. 그 블로그에는 무려 수백여 정이나 되는 각종 총기를 사 모은 그 중국계 미국인의 사진이 한가득 게재 되어 있었기 때문인데 정작 당사자 본인은 이렇듯 높은 관심도로 접속자가 엄청나게 늘어나자 이에 관한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범인은 총기 덕후인 중국인 유학생"이라는 오보가 발생했으며, 조승희가 한국계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국내 인터넷에서는 이걸 그대로 믿고는 중국, 중국인을 온갖 악플로 신나게 까던 사람들이 사실이 밝혀지자 완전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조승희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나이대가 비슷하고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미니홈피가 네티즌들에게 털리는 일이 발생했다. 물론 네티즌들도 동명이인이란걸 알고 있었고 장난식으로 사격솜씨가 좋다며 방명록에 글을 남긴 것이다. 또한 동명이인 조승희는 대문짝에 "내가 안 죽였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라고 써놓기도 하였다.

서울신문에 연재된 백무현 만평에서는 부시가 이 사건으로 미국산 무기의 우수성이 증명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식의 내용을 올렸으나 발터 P22 권총은 독일제고 GLOCK-19는 오스트리아제 총기다. 고인드립인 데다가 사전지식 없이 본인의 무식만 인증한 병크라서 결국 다음 날 사과 만평을 올렸다.

개그맨 황현희가 이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금지를 받기도 했다는 루머가 있다. 그리고 황현희 본인과의 인터뷰로 말 그대로 루머로 끝났다.

조승희의 누나 조선경은 AP통신을 통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동생이 온 미국을 슬픔에 빠뜨렸으며, 동생을 대신해 피해자의 가족과 미국시민들에게 사죄하고싶다고 말했다.#

2009년 초 디시인사이드 코갤에서는 K4라고 해서 킬러조, 류시퍼, 혜느님, 버지니아 조 중에서 버지니아 조가 이 조승희였다. 그러나 그 이후 갱인, 스틸곽, 그랜드현우, 발치몽 등 수많은 범죄자들이 발굴돼서 혜느님과 함께 묻혔다. 4chan에선 한때 몇몇 잉여들이 필수요소로 쓰거나 총기난사 사고 중 가장 하이스코어를 기록했다고 영웅 취급하며 그의 날을 기린 적도 있다. 한 유저가 조승희의 기록을 깨겠다며 총기난사를 /b/에 예고했다가 다른 유저들이 FBI에게 이를 알려준 덕분에 FBI가 총기난사를 예고한 그 유저를 체포한 일도 있다.# 다만 이게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진짜 예고한 거였는지는 알 수 없다.[8]

2011년 12월 8일. 버지니아 공대에서 또 다른 총기 사건이 일어나 이목을 끌었다.# 동년 브라질에서도 조승희 추종자가 총기난사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2014년에 디시에서 "인종차별에 항거한 의사 제너럴 조"[9] 드립이 흥하면서 "서양에서도 인정 받는 재림 예수 제너럴 조"라며 뒤늦게 재발견되었다. 그리고 2012년 4월 한국계 이민자가 벌인 오이코스 신학대학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범인 고수남은 자살은 하지 않았지만 살아서 체포됐는데, 조승희와 마찬가지로 역시 집단괴롭힘이 원인이었다. 다만 그는 정신질환자라는 게 증명되어 재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2013년 1월 무기한 재판 연기 및 정신 치료 명령이 내려져,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 2015년 WDBJ7 방송사 뉴스 생방송 총격 사건의 범인 역시 조승희를 인종차별에 항거한 투사로서 존경한다고 썼다.

미국의 모 변호사는 "이게 다 게임 때문입니다. 게임을 탓하세요."라는 말로 수많은 게이머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실제로 한국의 모 신문에는 그가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빠져서 그랬다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혹자는 초등학교 시절 게임중독 예방교육을 할 때 강사가 조승희가 서든어택을 너무 많이해서 사람을 죽였다는 망언을 했다고 한다. 그 밖에 조승희가 생전에 썼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계산기가[10] 경매로 올라와서 논란이 되었다. 99달러짜리가 4300달러까지 값이 올랐다고 한다.# 사실 범죄자가 사용한 물건이나 의복 등이 은근히 인기를 끄는 경우가 있긴 하다. 신창원이 입었던 쫄티나 유병언의 구두, 신정아의 가방 등이 그 예다.

인디 밴드 주로파 옐로우의 노래 "구름 위를 걷다(2008)"와 이장혁의 "조(2008)"는 조승희를 소재로 한 곡들이다. 물론 사건이 일어난 미국에서도 조승희를 다루는 인디곡들이 있다.

나무파일:attachment/조승희/image.jpg

버지니아텍의 4/16 추모비.

원래 비석은 조승희의 몫을 포함하여 총 33개였으나 그의 비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잘려나간 채로 훼손되었고 결국 철거됐다. 남은 비석은 32개이다.

6. 소수 추종자들의 몰상식한 재평가[편집]

야갤에서 동양인 외모를 폄하하며 서양인을 숭상하는 탈아입구론자들이 동양인이 열등하다고 주장하다가 누군가 조승희로 반격하면서 조승희를 숭배하는 분위기가 여러 곳곳에서 퍼지고 있다.

나무위키에서도 실제로 초반에는 조승희에 대해 엄청나게 옹호글만 잔뜩 올라왔었고 약간이라도 비난하는 글이 있으면 그런 글은 쓴 사람들이 오히려 역으로 욕을 먹고 비난 글은 칼같이 삭제되었다. 그 후 몇 차례 토론을 통해 어느정도 무분별한 옹호글들이 삭제되긴 했지만 정말 제 3자가 보면 그저 비극의 희생양으로 생각될 정도로 조승희에 대한 옹호론만 잔뜩 써져 있었다.

일단 그의 유언이 된 연설을 보면 꽤 구체적으로 자신의 범행 동기를 설명하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인지 풍부한 수사와 표현을 통해 전달하고 있는데, 이러한 무차별 살인의 범죄자 대다수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몰린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드물다.[11] 최소한 조승희 본인은 자신의 테러가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개선시키고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것이라고 굳게 믿은 듯하다. 이런 특이성 때문에 "인종차별에 펜 대신 총을 들고 항거한 의사," 혹은 "동양의 예수"[12] 같은 댓글들이 주로 조승희 찬양글에 쓰인다.

외국에서는 실제로 조승희가 범행 뒤 방송국에 보낸 비디오가 공개되고 나서부터 소수의 추종자들에 의해 조승희에 대한 찬양 움직임이 일부에서 일기 시작했다. 미국내 동양인 사이트 등지에선 조승희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조승희의 행동에 경의를 표하는 것과 조승희를 영웅시하는 사이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을 경계하는 칼럼이 나오기도 하였다. # 네이버 댓글의 일부 악성유저들은 조승희를 효순이 미선이의 복수를 한 열사이자 한국을 잘 모르는 나라들에 한국을 소개한 애국자로 추앙하였으며#, 심지어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움츠러든 한민족의 기상을 세웠다며 대장군으로 명명하기까지 하였다. 호주의 한 네티즌은 조승희가 인간적이고 연약한 사람이라면서, 자신도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있어 조승희를 이해한다며 그의 범행을 미화하는 게임을 제작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실제 나무위키 내에서도 조승희에 대한 무분별한 옹호글이 여러 번 올라왔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미스터 빅Shine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잘못된 사실이다. 그의 룸메이트들은 "조승희는 컬렉티브 소울(Collective Soul)의 Shine을 즐겨 들었다. 그는 그 곡을 거듭해서 여러 번 듣곤 했다"라고 증언했으나,[13] 야갤러들이 "뭐야, 이 노래가 더 좋잖아" 하며 미스터 빅의 Shine을 밀어주는 바람에 왜곡되어 버렸다. 덕분에 미스터 빅의 곡이 업로드된 유튜브 댓글란에는 온갖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조 장군 그립습니다" 식의 댓글들이 달리게 되었다.

디시인사이드 등을 통해 퍼진 그의 별명 제너럴 조(General Cho)는 그의 범행을 버지니아 대첩으로 왜곡하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에 생겼다. 사망 사살 비율이 1:30이라며 그동안 서양 군대에 처참한 교환비를 찍은 역사 속의 전투랑 비교하며 명장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재평가할 때 쓰이곤 하는 당신은 대체... 드립도 '제너럴 조'와 같은 이유로 등장했다고 알려졌다.

물론 디시 등지에서 진지하게 조승희를 재평가하는 건 아니다 조승희를 찬양하는 야갤도 서양인의 외모나 문화를 찬양하는 글에서 조승희를 싸이코 살인마라면서 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일종의 밈으로 조승희를 찬양하는 걸 누군가가 비판하면 "장군님... 이런 새끼를 위해 당신은...", 인종차별 사건으로 동양인이 피해를 받은 사건이 올라오면 "그립습니다... 장군님", 그 반대 사건이라거나 동서양 비교 글에는 "제너럴 조 당신은 틀렸어", "조승희 넌 살인마일 뿐이야!", "조승희 복도에 나가 손들고 서있어."라고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7. 관련 문서[편집]


[1] 충청남도 아산시 모종동(現 온양동)[2] 영주권은 미국[3] 그가 8학년 때. 미국에서 고등학교는 보통 9학년 때부터 시작.[4] 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5] 한 학생은 그의 극본을 읽을 때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고 한다.[6] 그가 문학 클래스에 제출했던 극본인 <Richard McBeef>가 널리 알려졌다. 심지어 유튜브에 <Richard McBeef>를 실제로 연기한 영화판이 나오고#, <Richard McBeef>가 문학적으로 분석되고 평론된 기사와 풍자된 예도 있다.#[7] 임상심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해 봤으면 알겠지만, 이런 충고는 정신질환자에게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충고에 속한다. 그야말로 의도만 좋은 발언이었던 셈.[8] 미국에서 테러 경고는 최대 무기징역이지만, 그냥 장난 좀 친 걸로 입증되면 처벌 수위는 단순 업무방해 정도로 내려가게 된다. 2013년에 911에 장난전화를 한 한국인이 미국 송환을 면할 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니 한국에서 장난을 친 것일 뿐, 테러와는 관계가 없는 걸로 판명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름과 사진은 대문짝만하게 공개 됐다.[9] 당연히 조승희는 장군이긴커녕 군 복무 이력 자체가 없다. 그냥 질 나쁜 고인드립일 뿐이다.[10] 가장 흔한 공대 계산기이다.[11] 예로 강남역 살인사건의 범행자는 범행 동기가 한국 여자가 증오스러워서 그랬다고 밝히면서 지리멸렬한 소리를 늘어놓았을 뿐이었다.[12] 특히 그가 남긴 영상에 "나는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예수처럼 죽는다."라고 말한 부분 때문에 예수 드립을 많이 친다. 심지어 한 발 더 나아가 예수가 서양의 조승희라는 댓글도 늘고 있다.[13] One of his favorites was the song "Shine" by Collective Soul, which he played over and over. #